우상의 본질
출애굽기 32장
끊어내기 어려운 것
고무줄을 끊으려면 힘을 지속적으로 가해야 합니다. 힘껏 잡아당기다가 놓아버리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나쁜 습관을 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가진 습관이 나쁘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좋은 습관을 향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나쁜 습관이 끊어지고 좋은 습관이 몸에 익을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도 역시 그렇습니다. 죄를 끊으려면 먼저 내가 하는 행위와 품은 마음이 죄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 다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어떤 방향이 올바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달려나가야 죄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지만, 죄의 습관을 끊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죄는 사탄이 주장하는 영역인데,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을 사탄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죄의 습관 가운데 주저앉히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여전히 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우상을 섬긴 슬픈 모습을 보여줍니다.
금송아지 사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후 3개월 만에 시내산 아래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언약 체결식을 통해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불러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 두 사람만 산 위로 불러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은 40일 동안 모세에게 성막 제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동안 산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그들은 아론에게 요구합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출애굽기 32:1)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우상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 - 이것이 우상의 본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대를 이어 이집트에서 살면서 조상 때부터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일상적으로 봐왔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각종 우상의 형상을 만들어 절하고 섬기는데, 그 본심과 본질은 오직 한 가지, 자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병장수, 부귀영화, 재물, 자녀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그들은 각종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의 형태가 바뀌고 이름이 바뀌고 크기가 달라져도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인도할 신 - 이것이 우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상을 섬기는 자리에서 건져내시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십계명에는 자기를 위하라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열 가지 계명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거기에는 자기 사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기 사랑은 근본적으로 우상 숭배자들의 본질입니다.
오늘날 타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다르고 섬기는 신이 다르더라도, 모두 자기를 위해 빌고 엎드립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무병장수와 부귀영화와 출세를 위해 우상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습니다.
교회 안의 우상
그렇다면 교회 안에는 이런 우상숭배적 요소가 없을까요? 안타깝게도 있습니다. 이름만 하나님을 섬길 뿐,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신앙생활하면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도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두 자기를 위한 하나님만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만 복 주셔야 하고, 나를 위해 모든 일을 행하셔야 하고, 나에게 부귀영화와 무병장수와 자녀 출세의 복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 때문에 헌금하고 봉사하고 믿음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방 들고 교회는 다니지만 똑같은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누가 위해줍니까? 나를 위해서 일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챙깁니까?"
성경은 도처에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아도, 내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내 필요를 채우시고 나를 돌보십니다.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모세를 보내 구원하셨습니다. 그들과 교제하도록 성막 제작을 명하시고,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한 제사 제도를 주셨습니다. 온 세상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 모두 나를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신앙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고, 하나님은 나를 위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열심히 살고 섬기면, 하나님이 내 가정과 일터와 삶을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이 방향이 거꾸로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아론의 실패
백성들의 요구를 대하는 아론의 태도는 몹시 실망스럽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2-4)
모세가 부재할 때 아론은 모세의 자리를 대신하는 두 번째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없는 그 자리에서 아론은 백성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합니다. 몸은 출애굽했지만, 그의 영혼과 정신까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지도자의 위치는 정말 중요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자녀들에게 다 중요하고, 교회 공동체에서도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장로들의 리더십이 모두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또 한 사람이 그 자리를 지켜야 하고, 한 사람이 부재하면 또 다른 사람이 공동체를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론은 속절없이 백성들과 똑같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좋은 공동체란 모든 리더십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로 이끌고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우상의 본질은 자기 사랑입니다. 우상숭배는 형상을 만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인도할 신을 찾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명하셨지만, 우상은 오직 자기 사랑만을 추구합니다.
둘째, 신앙의 원리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십니다. 이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자기만을 위하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셋째, 영적 리더십은 굳건히 서야 합니다. 아론처럼 백성의 요구에 쉽게 무너지면 공동체 전체가 잘못된 길로 갑니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올바른 방향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도 우상숭배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자가 되며,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아론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