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실과 열심
출애굽기 34장
잃어버린 형상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사람을 지으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었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외모와 인간의 외모가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인격을 인간이 그대로 닮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어떤 일을 계획하시면 끝까지 이루어가는 열심이 있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최초의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성실했고,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선한 일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진실하고 열심을 다해 일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이후 하나님의 형상이 가려졌고, 인간은 성실과 열심 대신 게으름과 방종으로 일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것은 최초의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 존재 가운데서 다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돌판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성실과 하나님의 열심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꼭대기로 모세를 부르시고 성막 제작을 명하셨으며, 40일간 함께 있으면서 이미 선포하셨던 십계명을 두 돌판에 직접 써서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산 아래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40일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모세가 죽었는지 그들을 떠났는지 알지 못해 불안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아론과 함께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고 그 앞에서 절하며 먹고 마시고 뛰어놀았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모세가 내려가 보니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았던 십계명의 두 돌판을 던져 부숴버렸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입니다.
그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모세를 산꼭대기로 불러 올리시고, 다시 직접 기록하셔서 십계명의 두 돌판을 써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까지 준비하고 아침에 시내 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아무도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출애굽기 34:1-3)
처음에 하나님은 돌도 준비하셨고 돌에다가 기록도 직접 하셨으며, 모세와 함께 여호수아도 같이 불러 올리셨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돌은 모세에게 준비하라고 하셨고, 이제는 모세 혼자 산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직접 돌을 준비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령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니" (출애굽기 34:4)
이때부터 하나님과 모세는 40일 동안 산에서 교제하며, 하나님은 직접 다시 모세가 준비한 돌판에 하나님의 손으로 십계명을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주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출애굽기 34:28)
하나님께서 왜 똑같은 일을 두 번이나 번거롭게 하셨을까요? 십계명은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를 통해서 전해진 이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으면 그것으로 충분할 텐데, 한 번 기록해서 주신 것이 깨졌으면 그만일 텐데, 왜 또다시 40일 동안 모세와 함께 거하면서 십계명을 기록해서 주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똑같은 일을 두 번이나 반복하시고 직접 하나님의 손으로 기록하여 주신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중요하고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말씀이 백성에게 전해지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소중한 것과 경계할 것
하나님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신의 선포된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지혜로운 자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우리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소중하게 여기는 말씀을 소중히 여기면, 하나님이 그들을 아끼고 사랑하실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도처에서 나타내시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런데 미련한 우리는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말씀을 거추장스럽게 여깁니다.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지키고, 거추장스러운 말씀은 애써 무시하고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면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와 반대로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 것은 물질입니다. 물질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갈까봐 하나님은 항상 물질을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멀리하라 하신 물질은 지독하게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두 번이나 모세를 불러 올려 기록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하고 별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수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도 함께 머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고 그들을 돌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고아와 과부를 아끼고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고 책임져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성품을 모세에게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애굽기 34:6-7)
하나님 스스로 당신의 성품을 설명하시기를, 하나님은 인자하고 자비롭고 죄를 용서하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읽으면 곤란합니다. 그 다음 중요한 말씀이 나오는데, 하나님은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지만,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않으십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와 똑같습니다. 자녀가 잘못하고 용서를 빌면 부모는 자녀를 용서합니다. 하지만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자녀를 회초리로 때리고 훈계하여 다시는 그 길을 걷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실 때 인자하고 자비로우셔서 회개하면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않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사건을 일으킨 이후, 거룩한 분노의 자리에 선 레위 지파를 통해서 3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벌을 면제하시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든 것을 원칙대로, 하나님의 성품대로 이루어 가셨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건 이후에 침상을 눈물로 적실 만큼 많이 울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밧세바와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삶을 통해 기억하고 몸에 새기라는 뜻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용서하시지만, 결코 우리에게도 벌을 면제하지는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말씀을 우리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두 번이나 직접 기록하실 만큼 말씀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한 절 한 절을 생명처럼 붙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연약한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 편에 서서 그들을 돌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나 공의로우신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용서하시지만 벌을 면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두려움으로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고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정의로움 앞에 바르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