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아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3장
오감으로 판단하는 인간과 전지하신 하나님
사람들은 오감을 통해 사물을 정확하게 판단합니다.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보며 정확하게 사물을 파악합니다. 만약 오감 중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사물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후각에 문제가 생기면 미각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치고, 시각을 잃으면 촉각만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오감으로 사물을 판단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고 바라보실까요? 사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오감을 이용해서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바라보고 파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마치 사람처럼 표현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알고 계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내려오고 요셉이 죽은 후 세월이 흘렀습니다. 왕조가 바뀐 후 이집트의 왕들은 히브리 민족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지나치게 불어나고 번성하여 통치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430년입니다. 긴 세월이 흘렀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시고 그들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는 레위 지파의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이집트 궁전에서 왕자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40세 무렵 미디안 광야로 도주한 그는 장인의 양 떼를 치며 지냈고, 어느덧 80세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430년 만의 만남과 하나님의 자기 소개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출애굽기 3:6)
이 장면은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430년 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 누군가와 소통하시는 역사적인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당신을 소개하시는 방식이 매우 특별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자주 읽고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익히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하나님의 칭호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신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430년 동안 이 압제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건져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신 것은 알겠지만, 나의 하나님이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계셨고, 그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들이 부르는 표현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후 하나님께서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출애굽기 3:7)
이 말씀에서 중요한 동사 세 가지가 나옵니다. '보고', '듣고', '알고'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지만 마치 사람처럼 본다는 표현을 사용하셨고, 듣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으며, 알고 계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보시는 하나님, 들으시는 하나님, 아시는 하나님
첫째,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430년 동안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하나님은 당신의 눈으로 다 보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원망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그들을 눈동자같이 살피고 언제나 불꽃 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셨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보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를 돌아보고 살피며 제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죄를 짓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함부로 행동하고 죄를 짓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감독자로 인해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소리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현실에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여러 차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을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만 응답되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다양한 차원으로 나타납니다. 거절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 방법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판단하시면 하나님은 거절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지금 당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미루어 두시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시면 기도 응답을 지연시킵니다. 미루심도 응답의 한 차원입니다. 또한 나는 이 방법으로 되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다른 방법을 주시는 것도 기도 응답의 또 다른 차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거절도, 지연도, 다른 방법도 응답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를 다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들은 430년 동안 부르짖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미동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내가 다 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위로를 제공합니다. 여전히 우리가 기도하지만 하나님이 미동도 하지 않으시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전히 하나님은 듣고 계시고,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 주실지, 조금 더 기다리라 하실지, 아니면 내 욕심에 가득 찬 기도여서 거절하고 계시는지,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사실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누군가 한 사람만 내 마음을 알아주어도 우리는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그런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내 마음을 몰라줄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하는 설움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이해하고 계시며, "너의 상처도, 너의 고통도, 너의 눈물도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위로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늘 보고 계시므로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앞에 서 있다는 코람데오(Coram Deo)의 믿음으로 살아가며, 죄에서 떠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절도, 지연도, 다른 방법도 모두 하나님의 응답임을 믿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므로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몰라주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아시고 이해하시며,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도 보고 계시고, 들으시며, 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안과 위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