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7장

성경
출애굽기

예배자와 방해자

출애굽기 7장

심장부를 치시는 하나님

전쟁에서 적을 제압할 때는 적의 심장부부터 강타하는 것이 승리에 훨씬 유리합니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혀 적이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 후, 주변부를 하나하나 정리해 들어가면 승리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공중전 전투기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적의 주변부부터 차근차근 정복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전투기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제공권을 장악한 나라가 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습니다. 적의 수도와 심장부를 직접 강타한 후에는 나머지 승리를 손쉽게 거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실 때도 이와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마치 영원히 참으실 것처럼 계속해서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며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완악한 인간이 하나님의 경고를 외면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은 마지막 경고를 하신 후 그 세력을 심판하기 시작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은 주변부터 차근차근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적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사탄의 권좌와 그 세력의 중심부를 완전히 처단하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시고 바로에게 큰 타격을 가하실 때도, 하나님은 그가 가장 치명적으로 여기는 곳, 가장 뼈아프게 느낄 곳을 정확히 치십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바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을 보내라"고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의 명분은 예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노예가 된 이후로 하나님께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며 그 앞에 나아와 예배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배드릴 수 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벽돌을 만들고 각종 부역에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모세가 나타나서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 가서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고 요구하니, 바로의 입장에서 어떻게 이를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게 있어 엄청난 노동력이었습니다. 이들을 쉽게 보내줄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그들을 옥죄었습니다. 짚을 주지 않으면서도 동일한 양의 벽돌을 만들게 했고, 그들을 채찍으로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고, 하나님과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끼인 모세와 아론은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출애굽기 7:2)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바로에게 주시는 마지막 경고였습니다. 더 이상 예배 방해자가 되지 말라, 더 이상 예배를 막는 악한 자가 되지 말라, 그래야만 심판을 면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바로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게 하셨고, 그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출애굽기 7:13)

완악함에 내버려두심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것을 바로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만드셨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바로가 그 완악한 마음 그대로, 죄짓는 마음 그대로 내버려두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돌이키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을 보면,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일이 일어났다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살펴보며,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성찰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돌아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완악한 대로 내버려두셨기 때문입니다.

양심이 작동하지 않도록, 성령께서 그 마음에서 역사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내버려두셨다는 의미입니다. 심판 중에서 가장 무서운 심판이 바로 이 유기(遺棄)의 심판입니다.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 - 오늘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함에 내버려두시는 것은 그를 심판하시는 가장 치명적인 방법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기도할 때, 그리고 여러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마음에 찔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으로 붙잡아주시고 인도하시며 선한 길로 이끌어주시는 그 은혜가,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능력으로 함께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나일강의 피 재앙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바로에게 하나님은 가장 치명적인 심판을 내리십니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내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나일 강의 물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리니 애굽 사람들이 그 강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출애굽기 7:17-18)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출애굽기 7:19)

나일강은 이집트 사람들에게 단순한 강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그들의 생명의 젖줄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데 나일강이 없으면 불가능했고, 목축을 하는 데도 나일강 물이 없으면 비옥한 나일강 주변의 목초지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신중의 신이라고 섬기는 오시리스가 나일강을 다스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이 바로 나일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이 피로 변했습니다. 그들이 노예로 부리던 히브리 민족의 하나님께서, 40년 전 도망자로 이집트를 떠났던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의 세계관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습니다. 수천 년 동안 그들은 나일강의 신이 최고의 신이라고 여겼는데, 그들이 노예로 부리던 히브리 민족의 신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을 완전히 제압하고 있음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불안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믿어왔고 의지해왔던 세계관이 흔들린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한 일입니까? 이것은 바로의 통치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지금까지 바로는 신의 대리자로서 백성들을 다스려왔는데, 백성들의 세계관에 혼란이 생기면 그의 통치력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업용수는 고사하고, 짐승에게 먹일 물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이 마실 물마저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 물을 마실 수 없으므로 나일 강가를 두루 파서 마실 물을 구하였더라" (출애굽기 7:24)

이집트 사람들이 나일강 물을 마실 수 없어 강가를 파서 지하수로 식수를 구할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까지 그들은 바로를 파라오, 즉 태양신의 아들로 섬겼습니다. 신의 대리자이자 통치자가 이 나라와 민족을 다스린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덕분에 오시리스가 나일강에서 생명수를 공급해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대리자인 태양신의 아들 바로가 아무런 힘을 쓸 수 없게 된 이 현실을 이집트 백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였겠습니까? 이제 바로를 향한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그 심판은 외적인 공격이 아니라 내부적인 동요와 반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바로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한 것은 왕위를 잃는 것이었고, 가장 치명적인 타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예배자의 축복

예배를 방해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자가 받는 심판을 우리는 바로를 통해 명확히 목격합니다. 피 재앙으로부터 시작해서 열 가지 재앙이 연이어 일어나며,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예배를 방해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께서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반면에 예배를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배를 사모하는 자들이 받은 복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십수 년 동안 광야를 전전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을 보면 "성전을 향하여 예배드립니다"라는 구절이 도처에 나타납니다. 그가 광야에 있으면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고,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예배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전이 있는 방향을 향하여 엎드렸고, 기도했으며, 그 자리에서 예배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사모하는 다윗을 왕 중의 왕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려주셨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탄의 세력을 심판하실 때 그 심장부를 치십니다. 주변부터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핵심적이고 치명적인 부분을 정확히 타격하여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만드십니다.

둘째, 예배를 방해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를 방해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세계관과 통치력의 근간인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심으로써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셋째, 예배를 사모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다윗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은 그를 높이시고 축복하십니다.

바로처럼 예배를 방해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윗처럼 예배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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