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 작은 사사들과 입다 / 전체녹취

강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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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특강(10강) - 작은 사사들과 입다 (삿10:1-11:28)

본문: 사사기 10장 10절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사기 10장 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1. 기드온 이후의 시대

기드온 이야기를 오랫동안 살펴봤습니다. 기드온 이야기는 오르내림이 있어서 재미있습니다. 성장도 있고 실패도 있고, 그 이후에 주어지는 영향력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셨고, 그의 동역자 300 용사들을 세우셨고, 그들에게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군대를 이기게 하셨고 승리를 경험하게끔 하셨습니다.

그런데 외면적인 성장의 이면에 기드온의 내면이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을 양껏 표현합니다. 금을 거두어서 에봇을 만들어 자기 고향 오브라에 두기도 했고, 아들 70명을 낳기도 했고, 첩이 낳은 아들을 아비멜렉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너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 결과 아비멜렉이 일으킨 폭정을 보았고, 그 때문에 이스라엘 온 천지가 피로 물든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 과정이 6장에서 9장까지 나옵니다.

이제 한바탕 폭풍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됐을까요? 악이 다 지나가고 나서 이제 다시 이전 기억은 다 잊어버리고 리셋,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그게 참 어렵습니다. 그 땅에 전쟁이 일어나고 난 이후에 다시 재건하려면 잿더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됩니다. 우선 잿더미를 치워야 됩니다.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다 갈아엎고 또 씨를 뿌리고 다시 거기서 시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바른 길을 가는 게 중요한데, 잘못된 길을 갔다가 한번 망하고 일어서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2. 돌라와 야일

오늘 제목이 '작은 사사들과 입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 '작다'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키가 작다는 말일까요? 영향이 적다는 말일까요? 보통 신학자들은 '소사사'라고들 말을 합니다. 업적이 적어서 소사사가 아니고 성경이 얘기하고 있는 분량이 적어서 그렇습니다.

돌라와 야일이 두 사람이 소사사인데 그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오늘 본문이 얘기해 줍니다. 1절을 보시면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그랬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살펴봤는데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비멜렉 왕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비멜렉이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왕이 된 거지, 하나님이 그에게 '너 왕이야'라고 왕권을 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비멜렉 이후에 "그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그랬습니다.

돌라가 이 어려운 시절을 수습했습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참 힘든 일이거든요. 누군가가 큰 사고 치고 나서 그 뒷처리 감당하는 게 쉽겠습니까? 깨끗한 뒤에 와서 그 깨끗한 걸 다 받아서 하고 싶지, 아비멜렉이 엉망진창을 해놓고 간 이스라엘 온 천지를 이 사람이 사사가 되어서 23년 동안 그 뒤치다꺼리를 한 겁니다.

2절 보시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23년 만에 죽어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도대체 이 사람을 가지고 우리가 뭘 논하자는 건지 궁금하시죠? 근데 이 짧은 구절에서 우리가 봐야 될 게 있습니다. 이 사람의 지파가 어디 출신입니까? 잇사갈 사람입니다. 근데 이 사람이 사역을 한 사역의 중심지는 어디입니까? 에브라임 산지입니다. 자기 지파가 자신의 본거지인데 그곳에서 사역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에브라임 산지에 보내서 그것을 거점으로 사역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무려 몇 년 동안? 23년 동안. 23년 동안 에브라임 산지에서 사역하고 그가 죽어서 묻힌 곳이 또 어디입니까? 사밀입니다.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거기를 거점으로 사역을 했고, 그가 23년 후에 죽어서 묻힌 곳이 사밀이었더라.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울에 가면 양화진이라는 곳이 있는데 아마 많이 다녀오셨을 텐데, 거기에 가면 외국인 선교사 묘지입니다. 우리나라 선교 140년인데 올해가.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왔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잘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호주에서 영국에서, 그 당시 다 부강한 나라들이었습니다. 근데 그곳에서 이 땅에 와서 역병으로 죽습니다. 이질에 걸려 죽고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전염병에 걸려 죽고, 태어난 아이들, 이제 태어나서 뭐 100일도 안 된 아이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근데 이분들이 죽고 나서 이 땅에 묻힌 거죠. 이 땅에 자기 고향 산천이 있잖아요. 자기 고향 산천에 부모 형제가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유해를 그쪽으로 모셔가지 않고, 여기서 화장해서 모셔가지 않고 이 땅 사명의 땅에 묻힌 겁니다. 그래서 그런 선교사 묘지가 지금 이 땅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잇사갈 사람인데 이분이 에브라임 산지 및 사밀에서 23년간 사역을 했고 그리고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러면 이분의 사역을 미루어 보면 이 사람은 정말 이 땅을 사랑했다. 본인이 사역했던 에브라임 산지 그곳을 사랑하고 성실하게 섬겼다. 그래서 죽어서도 그곳에 묻히고 싶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자리에서 머물고 싶지 않습니까?

야곱이 이집트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장례는 막벨라 굴에 가서 합니다. 요셉도 유언을 남깁니다. 내가 여기서 죽지만 내 뼈를 출애굽할 때 가지고 나가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나중에 세겜 땅에 묻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은 죽어서 자신이 사역했던 23년 동안 열심히 했던 그 자리에 묻혔습니다. 비록 이 사람의 사역을 성경은 단 두 줄로 얘기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분의 사역은 23년 동안 참 수고로웠다. 왜냐하면 자신의 업적을 만들 수 없을 만큼 이스라엘이 엉망이었기 때문에, 그 엉망진창이었던 나라를 여기서 세는 것, 저기서 세는 것, 지붕 수리하고 저기서 문제가 생기면 또 저기 가서 수리하고, 백성들이 문제가 생기면 이것저것 다 고치느라 자기 업적을 기록할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 그는 사밀에 묻혔다. 이것이 이 사람이 23년의 사역의 방향성과 이분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겁니다. 우리 이렇게 읽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23년 동안 한 사람이 피 흘리면서 고생하면서 수고하면서 죽을 고생 다 하면서 수습을 했어요. 그러면 그다음 이어지는 사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 토양 위에 아름다운 믿음의 집을 지어야죠. 그렇잖아요?

원래 사명이라는 게 한 세대가 한 번에 3층집, 4층집, 고층 빌딩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자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가꾸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열매를 수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습니다. 열심히 땅 파고 수고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신의 업적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근데 돌라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럼 그다음 야일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3절.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 어떻게 살았을까요? 4절. "그에게 아들 30명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 30명 정도는 우리에게는 뭐 그 정도 낳을 수 있지, 왜냐하면 너무 어마어마한 걸 봤으니까. 기드온이 70명 낳은 걸 봤잖아요. 그러니까 30명은 아이 뭐 반도 안 되는데 뭐. 근데 이 중에 아들 30명 낳아 보신 분 계십니까? 그런 분 본 사람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잖아요. 그러면 이 아들 30명을 낳으려면 도대체 부인이 몇 명이어야 되는지. 물론 기드온의 그 명수에는 반도 미치지 못하지만, 아무튼 야일도 대단한 인간이었다는 겁니다.

사사였는데 이 사람이 겨우 윗대의 사사가 평안을 찾아 주었더니, 이분이 하는 짓은 엉망진창 타락입니다. 다시 아내를 많이 뒀고 첩을 뒀고 그들을 통해서 자녀를 30명을 뒀습니다. 정욕적인 사람이죠.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 아들 30명이 어린 나귀 30을 탔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다 자기 차를 끌고 다닌 거죠. 이 사사의 아들 30명이 다 어린 나귀 30을 다 타고 막 몰고 다닙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닙니다. 성읍 30을 가졌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성을 하나씩 다 나눠 준 거예요. 지극히 가정적인 사람이죠. 지극히 자녀를 사랑하는 사람. 얼마나 좋은 아버지입니까? 이제 자기 아들 30명 낳았고, 거기에다가 나귀 30을 태웠고, 성을 30개 분양해서 다 하나씩 성주로 다 임명해 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사람이 그 성 30개를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하봇야일'이라 그랬습니다. 야일이라는 사람이. 하봇이라는 게 촌락, 마을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야일의 촌락'이었더라. 그런 말입니다.

야일이 자기 왕국을 건설한 겁니다. 자기의 왕국을, 그 30개의 성읍을 다 촌락을 건설한 겁니다. 그럼 이 사람은 사사잖아요. 사사가 뭐 하는 사람입니까? 백성들을 돌보는 사람 아닙니까? 백성들의 형편을 살피고 돌보고. 위대한 돌라는 23년 동안 그거 일하느라 자기 거 챙긴 적이 없어요. 업적을 만들지 못했다고요. 사고 친 놈 뒷수습한다고. 근데 이제는 깨끗하게 해놨더니 이 사람 야일은 자기 촌락 30개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 낳고 그거 다 나눠 주고 분양하고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정상입니까? 다시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 타락 시기로 다시 회귀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기, 이런 흑암의 시기로 돌아갑니다.

3. 다시 시작된 우상숭배

그러면 아비멜렉 이후에 몇 년입니까? 23 더하기 22, 45년이잖아요. 45년. 45년 중에 앞 23년은 수습 기간이라고 하고, 뒤 22년은 이제는 회복기여야 됩니다. 이제는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야 되는 시기인데 그걸 못 한 겁니다. 그러면 다시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병들고 또다시 우상숭배로 빠지는 거죠. 그게 순서입니다.

6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아, 이 '다시'라는 말 보면 힘이 쭉 빠지죠. 다시 그 사이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사이클이 뭐라 그랬습니까? 죄 짓고, 심판받고, 부르짖고, 구원하시고. 이 사이클 속으로 또다시 들어갑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다'는 딱 한 가지입니다. 뭐 그냥 도덕적인 일반적인 악이 아닙니다. 사사기에서 말하는 악은 뭐다? 우상숭배다.

이제 보십시오.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신들은 다 나옵니다. 근동의 신들은 마치 우상들의 박람회 같은 신들이 다 나옵니다.

이전에 여러분 다시 사사기 2장을 나중에 한번 찾아보십시오. 사사기 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들을, 어떤 신들을 섬겼는지가 나옵니다. 기억나십니까? 바알과 아스다롯 딱 둘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물론 우상을 섬긴 것이 숫자의 문제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하나의 우상을 섬겨도 우상숭배는 우상숭배잖아요.

근데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다가 이제는 어떻게 됩니까? 이제는 뭐 모든 우상들을 다 끌고 들어온 겁니다. 이제 우상 천지가 돼 버렸습니다. 그러면 이 영적 상태가 어떤 상태라는 말입니까? 이제는 걷잡을 수 없다. 이제는 우상이 다 보편화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누구의 집에 가도 우상 한두 개씩은 다 있는 게 되었다. 우상 없는 집이 도리어 이상한 집이 되었다. 이 정도로 우상 천지가 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여전히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이 상징하는 게 뭡니까? 바알은 풍요, 아스다롯은 다산입니다. 풍요와 다산. 근데 백성들이 왜 풍요와 다산을 원했는가 하는 지점입니다. 당연히 백성들은 풍요와 다산을 원하겠죠. 뭐 많이 버는 거 좋잖아요. 많이 가지는 거 좋잖아요. 자녀 많이 낳는 거 좋죠. 과거에는 자녀들 자체가 경쟁력이고 노동력이 곧 자신의 경제력이었으니까. 근데 문제는 이 사람들이 왜 풍요와 다산을 요구하고 원해서 우상을 숭배했느냐 하는 게 문제입니다. 뭘 본받았을까요? 사사 야일, 사사 기드온. 자녀 70명 낳았잖아요. 자녀 30명 낳았습니다. 근데 그 자녀들에게 다 어린 나귀를 태웁니다. 성을 하나씩 다 나누어 줍니다.

그럼 백성들이 생각할 때 뭐가 각인됩니까? '복받았구나. 다산의 복을 받았구나.' 그래서 부인을 많이 두는 게 이제 이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죄책감이 없는 거예요. 왜? 사사들도 그렇게 하니까. 그래서 자녀들을 많이 낳으니까 그들에게 성업을 물려줄 만큼 그들은 힘이 있고 권력이 있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걸 보면 야일도 역시 우상숭배자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이럴 수 없거든요. 신앙인이라면 부인을 여럿 둘 수 없고, 신앙인이라면 우상을 섬길 수 없고, 신앙인이라면 적어도 지도자인데, 신앙인이라면 자녀들에게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불신앙이니까. 신앙이 없으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신앙인이라면, 바르게 된 신앙인이라면, 그냥 가방 들고 교회만 다니는 사람 말고 진짜라면 이럴 수 없습니다.

이제는 우상숭배가 아주 일반화되었다. 근데 이를테면 예레미야 말씀을 보면 또 재밌는 말씀이 나옵니다. 제가 밑에 적어뒀죠. 예레미야 2장 28절.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유다의 성읍이 많잖아요. 뭐 큰 성, 작은 성, 조그만한 더 작은 성들이 많은데,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상의 수 이 정도와 비교가 안 됩니다. 예레미야 시절.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시절이 언제입니까? 남유다 말기. 나라가 망하기 직전.

그러면 지금 이제 이게 점증적으로 증가하는 겁니다. 한번 보세요. 사사기 2장에 보면 그들이 섬겼던 우상이 딱 둘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근데 사사기 중반 이후로 넘어오니까 지금 여기 우상이 막 많잖아요. 그죠? 근데 여기서 유다 말기로 가니까, 유다 말기 정도로 가니까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수가 유다의 성읍의 수만큼 많아진 겁니다. 그렇죠?

죄가 이렇게 폭발적인 전염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죄는 어떻게 해야 된다? 처음부터 지으면 안 된다. 처음부터.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 가면 그거 끊어내기는 진짜 어렵습니다. 피 흘리기까지 투쟁해야 됩니다. 죽을 만큼 투쟁하고 죽을 만큼 애를 써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거 끊어내는 것이 대단히 대단히 어렵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처음부터 잘못된 길로는 아예 가지 않아야 됩니다. 그 길 자체로 가는 것이 이미 마지막 결과가 예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 정도 괜찮겠지? 조금 지나면 활짝 열어야 됩니다. 나중에는 문 부서집니다. 그냥 들어와서 자리 잡고 드러눕습니다. 죄라는 놈이 그만큼 무서운 겁니다. 성경이 그걸 알려줬습니다.

4. 하나님의 심판과 백성의 부르짖음

이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요? 7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진노하시겠죠. 그죠? 죄 지었으니까 진노하시죠.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어, 이 단어 또 나왔어요. 반갑습니다. '팔다.' 배웠죠. 우리가 히브리어 마카르. 소유권을 이양하다. 그랬습니다. 히브리어로 팔다가 마카르고, 헬라어에서 그리스에서 뭐 넘기다, 팔다, 파라디도미라 그랬습니다. 뭐 들어본 거 같죠? 그죠? 앞에서 여러 번 다루었습니다.

마카르와 파라디도미가 또 나왔습니다. 소유권을 이양하다. 우리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허락하셨다. 그랬습니다. 악한 영을 허락하셨다는 말이 뭐다? 악한 영을 내리셨다. 악한 영이 활동하도록 그냥 놔두셨다는 뜻이거든요. 지금 여기도 "그들을 파셨다"는 말은 악한 자들이 그들을 유린하도록 하나님이 그냥 눈 감으셨다. '멋대로 해 봐라' 하고 던져 버리셨다. 그런 뜻입니다.

"그 해에 그들이" 요단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여기서 '그들'이라는 건 블레셋 사람들, 암몬 자손들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이제 그들이 치겠죠. 하나님이 허락하니까, 가만히 두니까 "18년 동안 억압하였더라." 18년 동안 억압당했습니다.

"18년 동안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싸우므로 이스라엘이 크게 곤고하였더라."

여러분, 18년 동안 곤고를 당하기 전에 한 18일 정도 되었을 때 기도하면 되잖아요. 그렇죠? 하루만, 우리는 막 이래도 못 견딜 텐데 18년을 이렇게 미련하게 이 사람들이 그렇게 견디고 버팁니다. 이게 잘하는 게 아니에요. 그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냥 막 달려와서 엎드리고 부르짖고 해야 됩니다.

우리 인생에 조그만한 위기가 찾아온다 하면 화들짝 놀라서 성전으로 뛰쳐와야 됩니다. 근데 미련한 인생들은 한 절반 정도 망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요. 기도 안 해요. 안 찾아옵니다. 답답하지 않아요. 주변에서 다른 사람이 더 답답합니다. '저러다가 큰일 났는데, 저러다가.' 근데 뭐 '뭐 어떻게 되겠지?' 그러고 그냥 18년을 지나요. 정말 미련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 기간 동안. 10절. 이제 부르짖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이제 공식입니다. 죄다 뭐요? 심판. 그다음 부르짖음. 그다음 뭐가 나와야 됩니까? 구원. 그럼 하나님이 공식대로 하실까요?

11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그랬습니다. 오, '이르시되'가 아니고 '부르짖음에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시매' 이렇게 돼야 되잖아요. 근데 지금 하나님이 뭐 이러십니다. 뭐 하실 말씀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옛날에 그랬잖아. 옛날에 너희 부르짖어서 했지 않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과거에 하신 일을 상기시킵니다.

13절.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공식이 어긋났어요. 어, 여기서 공식이 깨지는 건가요?

14절.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당황스러웠겠죠. 여러분 어떠세요? 이런 하나님을 보시면서 '고소하죠. 잘했네요. 하나님 속 시원하네. 맨날 속 없이 뭐 기도하는 대로 다 들어 주시더니 이제야 하나님이 좀 제대로 정신 차리셨네.' 이런 마음이 딱 들잖아요.

5. 하나님의 숨은 뜻

근데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 아니셨잖아요.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 이 상황에서 이런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어떤 느낌일까요? 낯설죠. 하나님이, 하나님이 낯설지 않습니까? 이상합니다. 이 패턴과 패턴이 좀 다릅니다. 전혀 다릅니다.

그럼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아, 여기에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구나. 하나님의 숨은 뜻이 있겠구나'라는 걸 생각해야 됩니다. 그게 눈치입니다. 영적인 감각, 눈치가 좀 있어야 됩니다. 눈치가 인간관계에서도 눈치 없는 사람들이 참 답답하거든요. 사실 좀 척하면 척해야 되는데, 그 말로 다 해 줘야 다 아는 사람은 답답하잖아요. 척하면 척해야 되는데.

근데 하나님이 이렇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아야 됩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7장 25절 26절 보시면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여자"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곧'이라는 말, 빨리 왔다는 얘기예요.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그러면 이 공식대로 하면 예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앞장서라 가자' 하시든지, 아니면 예수님 시간이 좀 없다. 그러면 '지금부터 너희 딸이 나았다' 선포하시든지 뭐 이래야 되잖아요.

근데 이렇게 간구했는데 27절 28절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낯설어요. 이런 예수님이.

근데 여자가 뭐라고 합니까?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님이 "네 믿음이 크다" 그랬어요. "네 딸이 나음을 얻었다" 그랬어요. 그 시로 그 딸이 나았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이방인입니다. 이 여인이. 그죠? 이방인을 차별하는 말씀입니까? 아니에요.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건 진짜 이 여인의 믿음을 보고 싶어서 말씀하신 겁니다.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이 여인을 개 취급하는 거거든요.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개 취급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러면 여인이 기분 나쁘잖아요.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고 재수 없고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그냥 가 버리면 끝이잖아요.

그러면 믿음과 자존심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내 자존심 지키려고 믿음을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냐? 아니면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자존심 따위는 잠시 접어두는 사람이 될 것이냐? 우리 주님이 이걸 요구하신 거예요. 사실은 이 여인에게 믿음을 달아보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믿음 지키기 위해서 제일 어려운 게 뭐냐? 넘어서기 힘든 장벽이 뭐냐? 자존심이거든요. 극한 자존심. 그게 뭐라고? 내가 한번 숙이면 되는데. 내가 한번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데. 내가 한번 내 잘못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하면 되는데, 그거 하기가 진짜 힘듭니다.

근데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너의 자존심과 믿음 중에 너는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딸의 죽음 앞에서 딸의 병 고침을 구하는 여인이 자신의 자존심 따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믿음 하나 딱 붙잡은 겁니다. 그거 달아보시려고 주님이 묻는 거거든요. 평소와 다르잖아요. 평소와 주님의 어투와 어법과 주님의 대화의 방식이 다르다면 '뭔가 여기에 주님의 깊은 뜻이 있겠구나'라는 걸 눈치로 좀 알아야 됩니다. 그거 모르고 뭐 원망하고 저주하고 생난리 치고 이제 나는 들어눕고 교회 안 오고 막 뭐 이러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일도 우리 인생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놀라운 일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 진심일까? 하나님. 만약에 진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상관없이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면 입을 딱 닫아 버립니다. 대답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사무엘상을 보십시오. 나중에 28장에 사울, 사울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잖아요. 블레셋 전쟁 앞두고. 하나님 응답을 안 하세요. 말씀을 안 하세요. 그래서 답답해서 사울이 누구 찾아갑니까? 점쟁이 찾아갑니다.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 찾아갑니다. 너무 답답하니까.

그 전에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에봇 안에 넣는 우림과 둠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묻기도 했는데, 그걸로도 응답하지 않고 꿈으로도 응답하지 않고 선지자로도 제사장으로도 어떤 식으로도 하나님 응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입을 딱 닫아 버립니다. 그게 하나님의 심판이고 하나님이 '너와는 관계가 없다'는 거거든요. 지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게 여기에 포인트와 힌트가 있는 겁니다. 그 정도 눈치는 좀 있어야지. 그 정도 눈치는. 눈치 없는 사람이 제일 답답하거든요.

6.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

그래서 다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18년 동안 고생하면서 눈치는 좀 있었던 거 같아요. 보세요. 15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아, 그래요? 하나님. 하나님 기분 나쁜데 우리가 빌던 우상에게 가라고요?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한 게 아니고.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주 뜻대로 하십시오.' 이런 뜻입니다.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오직'이라는 말 중요하고요. '오늘'이라는 말 중요합니다.

'오직' 우리는 다른 신에게 빌지 않겠습니다. '오늘'이라는 말은 즉각 구원해 달라는 겁니다. 힘들다고, 너무 고통스럽다고.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6절.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이걸 바란 거거든요. 이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기 10장까지 오기 전까지 그들의 언어는 기도의 언어였습니다. 입으로 때우는 겁니다. 입으로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셨고, 부르짖음에 건져 주시고 부르짖음에 기도하셨거든요. 입으로 때우는 거였어요. 그냥 기도의 언어. 그 언어가 기도였습니다.

이제 와서 그들의 언어는 몸짓의 언어로 바뀝니다. 행동하는 기도, 실천하는 기도로 바뀝니다. 이걸 바라신 거거든요. '그래 그거부터 정리하고 와야지. 그게 순서지. 이방 신들도 안 내버리고 다시 나에게 왔느냐? 그러면 구원하고 나면 다시 너희 집에 있는 이방 신들 우상 섬길 거 아니냐?' 그 말씀이에요. 그다음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곤고, 아말. 히브리어 아말이라는 말인데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고통. 곤고가 그냥 '아 피곤해' 뭐 이런 말이 아니고요. 고통이에요.

18년 동안 받았던 고통. 심적인, 영적인, 외적인, 육체적인 그런 고통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근심하셨다'는 말이 재밌어요. 카차르라는 동사를 썼습니다. 히브리어. 근데 이 근심하다는 말이요. '영혼이 짧아지다'라는 뜻입니다. 예. 우리 어머니들이 얘기하시죠. '내가 너 때문에, 내가 너 때문에 내 명에 못 죽겠다.'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근심하다는 말은 카차르, '나의 영혼이 짧아진다. 내 호흡이 짧아지고 있다.' 하나님이 이런 표현을 하실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하나님이 공감하셨거든요.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발견하는데, 인간과 하나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왜 연결되어 있을까요?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하나님 자녀니까.

내가 겪는 고통을 보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줄이 짧아진다고 말씀하실 만큼,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인데 '내 호흡이 짧아진다'고 말씀하실 만큼 하나님과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고요. 근데 그 연결을 더 강화시키는 게 뭡니까? 기도예요. 기도.

내 입의 언어와 내 몸의 언어, 기도와 실천. 그게 나와 하나님과의 연결을 아주 밀착시키고 강화시킵니다. 기도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연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는 말씀 이사야 53장 5절과 6절을 알고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자세히 보십시오. 그런 맥락으로 보십시오. '하나님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맥락. "그가 찔림은" 그의 죄 때문이 아니에요.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연결되어 있죠. "그가 징계를 받았는데 우리가 평화를 누려요. 그가 채찍에 맞았는데 우리가 나음을 받았어요." 연결돼 있잖아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가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나와 하나님, 나와 예수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받는 고통 하나님 알고 계세요. 그래서 얘기해야 돼요. 얘기해야 됩니다. 나오잖아요. 성경에. 왜 얘기 안 합니까?

부르짖고 얘기하고 하나님 말씀 주시면 고치고 우상 내버리고 발부둥 치고 애쓰고 힘 써야 됩니다. 돈 버는 일만큼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에 애쓰면 우리 인생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아마 그 정도만큼만 하면. 연결되어 있다. 잘 기억하십시오.

7. 새로운 위기와 큰 용사 입다

하나님이 호흡이 짧아질 만큼 근심하셨거든요. 17절. "그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습니다." 와, 이제 쳐들어오는 겁니다. 대대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쳤습니다.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근데 지도자가 없잖아요. 지금 하나님이 안 세우셨어요. 하나님이 세우지 않았다고요. 지금 이게 문제예요. 18년 동안 고생했는데 또 고생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기도했잖아요.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살려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은 '모르겠다. 나는 너희들 딴데 가서 알아봐.' 근데 계속 부르짖었습니다. 우상까지 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줘야 되잖아요.

근데 하나님이 일하시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진다? 더 나쁜 일이 벌어졌어요. 여러분 이런 경험 많이 하시죠? 내가 기도하는데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루어지지 않고 더 큰 파도가 닥쳐옵니다. 더 큰 문제가 내 인생에 닥쳐옵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해요? 어떻게 해석합니까? 이런 문제를, 이런 상황을. 문제가 해소되기는커녕 그냥 더 큰 문제가 닥쳐온다고요.

놀라운 사실은 이제 이 백성들이 우상도 치웠잖아요. 근데 다시 우상 앞에 가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이게 가능성이 있는 거거든요. 이제 이게 놀라운 일입니다.

기도해 놓고 큰 문제가 와도 다시는 돌아서지 않습니다. 하나님 지금 이걸 보시는 겁니다. 지금 요거 이해되시죠? 요런 관점들.

1절, 11장 1절.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어, 큰 용사라 그랬습니다. 우리 언제 또 큰 용사 봤습니까? 큰 용사에게 우리가 질려 가지고 크게 한번 당한 적이 있어 가지고. 도대체 이 인간이 큰 용사라 하는데 진짜 큰 용사인지, 왜 이 사람이 큰 용사인지, 진짜 큰 용사가 맞긴 맞는 건지. 이 뒤에 가면 나옵니다. "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두 가지 정보가 있습니다. '기생'이라고 그랬는데요. 성경에서 말하는 기생은 크게 두 가지 유형입니다. 하나는 잔칫자리 혹은 술자리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서 노래와 춤을 하는 사람. 네. 그런 사람이 기생이기도 하고. 또 여기서 또 기생은 매춘부. 몸을 파는 매춘부를 기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 개역 성경이 이 다른 단어인데 같은 식으로 번역했어요. 근데 여기서 나오는 기생은 몸을 파는 매춘부를 얘기합니다.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은 사람 이름입니까? 지역 이름입니까? 앞에 나오죠. 1절에 '길르앗 사람 입다'라 그랬습니다. 근데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그럼 기생이 지역에서 낳습니까? 뭐 사람이 사람을 낳는 거지 뭐 동네가 낳습니까? '에게서'

그러면 이 뒤에 길르앗은 사람 이름이 맞습니다. 근데 보세요. 이 길르앗이 지역 이름과 똑같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이 사람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지역의 대표성을 가진 유지였다. 강력한 힘과 권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이름이 곧 길르앗인만큼 이 사람의 이름만 돼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길르앗이라고 해도 과언이 없을 만큼 이 사람은 탁월한 존재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뭐 매춘부하고 하룻밤 보내고 거기서 애도 낳고 했겠죠. 근데 길르앗이라는 이 탁월한 사람은 매춘부가 아기를 가졌는지도 관심도 없었을 겁니다. 근데 이 여인은 이 사람이 유력한 사람이니까 애를 낳은 거예요.

나중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절. "길르앗의 아내도" 본처죠. 본처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죠.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장성함에 입다를 쫓아내며" 당연히 쫓아내겠죠. 당연히 같이 두겠습니까?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분할도 해야 되고 뭐 '이 땅에서 너 못 산다.' 하고 쫓아낸 거예요.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합니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잡류, 레킴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 레킴은 레크라는 형용사에서 왔습니다. '빈, 텅 빈, 공허한'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지난 시간에 살펴봤던 아비멜렉이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70을 가지고 와서 이 경박한 사람들과 불량배들을 모았잖아요. 그때 경박한 자들 할 때 이 레킴, 레크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머리가 텅 빈, 속이 텅 빈, 알차지 못한' 그런 사람들을 '레킴' 즉 '잡류'라고 표현했습니다. 불량배들이죠. 그죠?

이 사람 옆에 잡류들이 모였습니다. 근데 잘 보세요. 이 사람에게, 입다에게 이 잡류들, 레킴들이 영향력을 주는가 못 주는가? 이 사람은 지금 쫓겨난 사람입니다. 자기 집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서자, 홍길동처럼 쫓겨난 사람이에요. 쫓겨난 사람에게 잡류가 모여들었어요. 근데 이 잡류들이 입다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바가 뭘까요? '뭔가 당신을 우리 조직의 우두머리로 삼아서 당신을 통해서 우리가 먹고살 길을 찾고 싶다'는 거겠죠? 그만큼 입다는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쫓겨났고 별 볼 일 없었으면 쫓겨나지 않았을 텐데, 쫓겨난 자들에게 파리떼들이 꼬입니다, 지금.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하니. 와 이거 보니까 이 사람의 실체가 진짜 큰 용사예요. 실력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지금 실력이 있었는데 출신 때문에 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형제들에 의해서 쫓겨난 사람인데, 지금 다급하게 되었으니까 길르앗의 장로들이 이 사람을 찾아와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그 잡류들이 옆에서 들썩이지 않겠습니까? '이제 가십시오. 가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나중에 한자리 하고 싶습니다.' 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겠죠.

그다음 보십시오. 9절. 입다가 장로들과 협상을 합니다. 9절.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그다음 중요하죠.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주시면 내가 과연 너희의 머리가 되겠느냐" 하니.

여러분,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나에게 넘겨 주시면" '나의 힘과 능력으로 그들을 쳐부수면' 이게 아니라. 이 사람은 큰 용사인데 싸움의 능력이 있고 소질이 있는 사람인데 여호와를 소환합니다. 하나님을. 그리고 주변에 잡류들이 한마디도 못합니다. 지금 끼어드는 잡류 아무도 없죠. 레킴들이 없습니다.

이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말합니다.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그렇게 행하리이다." 하니라. 하나님을 두고 장로들과 입다가 조약을 맺습니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를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아뢰니라." 뭘 했다는 말입니까? 기도했다는 말이에요. 하나님 앞에.

여러분, 참 이런 거 보면 돌연변이가 한 번씩 나타나는가 봐요. 이게 하나님의 은혜인데요. 지난 시간에 우리가 봤잖아요. 기드온이 신앙교육에 실패했습니다. 40년 동안 오브라에 금 에봇 걸어놓고 성지순례 즐겼습니다. 아들 70명 낳았습니다. 그 70명 아들이 죽는데 막내 아들 요담이 도망갔습니다. 요담이 탁월한 설교를 합니다. 요담은 누가 키운 겁니까? 그러면 기드온이 키운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키우신 겁니다. 그게 놀라운 일이에요.

지금 여기 보세요. 이 사람 매춘부 기생이 낳은 아들입니다. 입다가 아버지 집에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주류 사람이 아니에요. 주류. 비주류예요. 비주류 중에서도 가장 먼 비주류입니다. 저 언더그라운드 저 구석에 있는 마이너 중에 마이너입니다.

그런 사람 입다의 입에서 여호와 신앙이 고백되고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신앙교육을 받았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가 악하다고 해서 모든 시대에 희망이 없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룻기 1장 1절이 어떻게 시대 시작합니까?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라고 시작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사사 시대가 희망이 없는 시대 아닙니까? 신앙교육 무너졌죠. 공교육 무너졌죠. 레위인 첩 사건 일으키죠. 레위인들이 자기 거주 지역 떠나죠. 엉망진창입니다. 다.

그런데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모압 여인 룻과 예루살렘 공동체, 베들레헴 공동체에서 신앙의 믿음의 자리를 잘 지키고 살았던 보아스가 함께 만나서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룻기잖아요. 그래서 다 썩어 빠져도 모두가 다 타락한 게 아니라는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희망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이게 성경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노아 시대 보십시오. 우리는 노아만 보지만 그 시대 노아는 주류가 아닙니다. 그 시대 주류들은 전부 다, 사람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예배 공동체 뛰쳐나와서 그들이 다 혼인하고 결혼하고 신앙생활 다 팔아먹는 그 사람들이 주류입니다. 노아는 미친 영감입니다. 미친 영감. 120년 동안 방주만 짓고 있으니까.

근데 하나님은 그 시대 정신을 노아를 통해서 이어가신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다수결로 결정되는 나라 아닙니다.

우리 자녀들, 옛날에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학교 다니면 절반 정도가 교회 다니는 애들이었어요. 주일날 다 교회 가고 막 그랬어요. 다. 근데 요즘은 고등학생들 뭐 한 2, 30명 그 반에 있으면 교회 다니는 애들이 한 둘. 애들이 숫자적으로 위축되잖아요. 다. 내가 신앙생활 한다. 나 교회 다닌다. 청년들, 대학생들, 직장인들, '나 신앙인입니다.' 이거 얘기하는 거 자체가 이미 위축되는 시대. 이런 시대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다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시대에도 하나님은 희망을 두신 한 사람. 이 한 사람 입다라는 사람을 통해서, 룻과 보아스를 통해서, 노아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면면히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가 내가 되면 됩니다. 그 하나가, 그 하나가 우리 자녀들이 되면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숫자 많은 것으로 결정되는 나라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해야 될 게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 교육을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해 가고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말씀대로 살아내고 있는가 이게 중요한 거죠. 그거 우리가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8. 입다의 출사표

이제 입다가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가 출사표입니다. 기도하고 나서 12절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했습니다. 왜 전쟁하러 왔느냐 물었어요.

"암몬 자손의 왕이 말합니다.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출애굽할 때죠. 그죠? 출애굽할 때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하니라.

오 여러분 이게 사실일까요? 사실입니까? 이거 '옛날에 너희 조상들이 출애굽할 때 우리가 옛날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땅을 너희 조상들이 빼앗았으니 그거 달라'는 겁니다. 지금 역사 논쟁으로 들어가 버렸어요. 지금 역사 논쟁으로.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말합니다. 15절. 그에게 이르되 입다가 이같이 말하노라.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언하고 시작합니다.

여러분, 여기 12절에서 28절까지는요. 첫째 사실 논쟁, 두 번째 신학 논쟁, 세 번째 선례 논쟁. 세 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사실 논쟁이라고 하는 건 암몬 사람이 와서 시비를 거는 이유가 '너희 조상들이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는 땅 찾으러 왔다.' 이거잖아요. 근데 그걸 조목조목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근거가 있습니다. 나중에 한번 찾아보십시오. 민수기 20장과 21장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집에 가서 민수기 20장과 21장을 읽어 보면 그 사실이 아니라는 근거가 나옵니다. 그 얘기를 지금 하는 거예요.

17절부터 16절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광야로 행하여 홍해에 이르렀고" 그렇죠. "가데스에 이르렀더니" 그다음 17절 "이스라엘이 사자들을 에돔 왕에게 보내어 말했습니다. 청하건대 나를 네 땅 가운데로 지나게 하라 하였으나 에돔 왕이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또 그와 같이 사람을 모압 왕에게도 보냈으나 그도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이 가데스에 머물렀습니다." 에돔, 에돔 조상이 누굽니까? 에서. 모압의 조상 누굽니까? 모압과 암몬 누굽니까? 아브라함의 조카 롯. 롯이 두 딸들과 각각 동침해서 낳은 아이들이 모압과 암몬 아닙니까? 그죠?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출애굽할 때 에돔과 싸우지 마라 그랬어요. 모압과 암몬과도 다투지 마라 그랬어요. 그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18절.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돌았습니다." 우회했다는 말이에요. 그게 민수기 20장과 21장에 나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불뱀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했거든요. 왜 원망했습니까? 막 원망했어요. 미치겠다고 죽겠다고. 왜 원망했냐? 돌아가니까. 빠른 길 놔두고 돌아가니까. 이것 때문에 돌아간 거거든요. 돌아가서 원망하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불뱀을 풀어 버렸습니다.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장대에 놋뱀 만들어서 높이 달아라. 그러면 보는 자마다 살 것이다.' 그 사건이 이것 때문이거든요.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게 이것 때문입니다. 에돔 땅과 모압 땅 밟고 지나가지 않으려고 먼 길을 돌아갔다고요.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입다가. 이해되시죠?

그다음, '왜 이렇게 길게 얘기한 거야? 이건 읽지 말아야지.' 이제 이러면 수준이 딱 초등학교 3학년 수준입니다. 그냥 이제 우리 정도 수준되면 '아 이걸 읽으면서 민수기 20장과 21장을 같이 보고, 야 입다가 참 똑똑하네. 성경 공부 많이 했네. 성경을 많이 알아야 사탄 마귀에게 안 속아 넘어가겠네.' 이렇게 알고 계셔야 됩니다. 19절. "이스라엘이 헤스본 왕 곧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또 사자를 보냈습니다. 에돔도 못 가고 모압도 못 가니까 '그 땅 좀 지나가자' 하니까 '우리를 당신의 땅으로 지나 우리의 곳에 이르게 하자'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의 지역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의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 치고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먼저 공격했어요. 시혼이. 에돔은 먼저 공격을 안 했거든요. 모압도 공격은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둘러갔죠. 근데 시혼은 먼저 공격했습니다. 공격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의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심에 이스라엘이 그들을 쳐서 그 땅 주민 아모리 족속의 온 땅을 점령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이 우리 땅이 된 거지. 이 얘기예요.

지금 사실 확인해 볼까요? 민수기 21장 21절 22절. 민수기로 들어갔습니다. 보세요.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냈습니다." 모세가 보낸 거예요.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에든지 포도원에든지 들어가지 아니하며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당신의 지경에서 다 나가기까지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리이다." 하나. 이렇게까지 했다고요. 물도 한번 안 마시겠습니다.

근데 어떻게 됐습니까? 23절 24절. "시혼이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로 지나감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예요. 근데 "백성을 다 모아 이스라엘을 치러 광야로 나와서 야하스에 이르러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이스라엘이 칼날로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그 땅을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까지 점령하여 암몬 자손에게까지 미치니 암몬 자손의 경계는 견고하더라." 그 땅 다 쳐부셔 버렸죠. 그래서 그 땅이 된 거예요. 여러분 이거 우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보죠. 성경 공부 대단히 많이 했구나. 입다가. 입다가 이런 상황에 거기에 밀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과거에 있었던 그들의 역사를 가지고 이걸 얘기하고 반박하고 있잖아요.

9. 결론: 진정한 큰 용사

그래서 큰 용사예요. 그래서 잡류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싸움을 잘해서 큰 용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말씀을 가지고 뭉개고 들어오는 사탄들 있잖아요. 악한 사탄 마귀가 '사과 따먹어도 안 죽어.' 사탄이 그러고 들어오잖아요. 근데 아담과 하와가 바보같이 그거 당했어요. '따먹어도 안 죽는다.' 그러니까, 그건 큰 용사가 아닙니다.

바로 그저께 얘기한 얘기를. 하나님 말씀을 그거 못 알아듣고 그거 지키지 않고 그냥 그대로 홀라당 넘어가 버렸어요. 근데 입다는 성경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그 과거에 그들의 역사, 기록된 역사를 다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지역 이름, 지명 이름까지. 그래서 그걸 이겨내고 있어요. 그래서 큰 용사예요.

사탄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큰 용사지. 제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 길르앗이 그 지역의 이름과 같잖아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녀나 낳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기 권세나 자랑하고 그래서 큰 용사가 아니에요. 진짜 큰 용사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자가 큰 용사지.

사실관계 논쟁에서 이긴 겁니다. 지금 이제 두 번째 신학 논쟁입니다. 2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족속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네가 왜? 이런 얘기죠.

24절. "네 신 그모스가" 이 암몬과 모압이 섬기는 신이 그모스거든요.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한 것을 네가 차지하지 아니하겠느냐?" 너의 신이 준 땅을 너희는 차지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죠. "근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이게 신학 논쟁이에요. 똑똑하지 않습니까?

사실관계 논쟁을 하고 그다음 신학 논쟁으로.

이제 그다음 예를 들어 봅니다. 선례 논쟁입니다. 이제 "네가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보다 더 나은 것이 있느냐? 그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투던 일이 있었느냐?" 싸운 일이 있었느냐? 출애굽할 때 십볼의 아들 발락이 있었죠. 거짓 선지자 발람을 데려다가 저주하게 해 달라고 했다. 근데 그 사람이 땅 잃었다고 땅 돌려 달라고 한 적 없어요.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300년이거늘 그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조상들이 300년 동안 입 다물고 있었는데, 그러면 그들이 다 바보냐? 이제 와서 왜 도둑질하려느냐? 이 말이에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실관계 팩트부터 체크했고 그다음에 신학적 얘기했고 그다음에 너희 조상들이 300년 동안 입 다물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왜 그러느냐? 이쯤 되면 '미안하다.' 하고 돌아가야 되잖아요. 그러나 28절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가 사람을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그럼 전쟁이죠. 뭐 그럼 싸우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이 말씀 보면 입다가 진짜 큰 용사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큰 용사는 다른 게 큰 용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큰 용사예요. 그리고 말씀을 꺼내어서 쓸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성경 공부 많이 하셔야 돼요. 여러분, 사탄은 항상 우리를 속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 그랬습니다. 항상 속입니다. 말씀을 흐리멍덩하게 알고 있으면 항상 우리는 흐리멍덩하게 끌려가다가 사탄의 밥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알면 안 됩니다. 제대로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나도 성경을 제대로 알고 우리 자녀들도 제대로 알고 그래서 결단코 사탄에게는 지지 말아야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작은 사사들을 보았습니다. 돌라가 23년 동안 피나는 고생을 해서 정리해 둔 그 땅을 야일이 22년 만에 다시 망쳐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호흡이 짧아지는 그 큰 고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우리의 고통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힘겨울 때 어려울 때 아버지께 부르짖고 기도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큰 용사 입다처럼 주여, 우리도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비관하지 않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내시고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처지가, 우리의 형편이 나를 원망하고 나를 낳아준 부모를 비난하고 멸시하고 저주하는 자리가 되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말씀을 배우고 익히고 그 말씀 붙잡고 살아서 하나님 앞에 쓰임받고 사탄의 권세를 이겨내는 큰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