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특강 13 - 삼손의 인생 (삿 14-16장) 강의 요약
본문: 사사기 14-16장
핵심 구절: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삿 16:22)
서론: 삼손의 배경
1. 마노아의 가정 (13장 요약)
마노아의 가정은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사는 가정이었다. 사사 시대는 영적으로 매우 타락한 시대였고, 사사들조차 여러 아내를 두고 아들을 삼십 명씩 낳는 비성경적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마노아의 가정은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했음에도 한 아내와 함께하며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아들을 허락하시며 다섯 가지 약속 중 핵심 세 가지를 명하셨다(나실인 서원):
- 포도주와 독주를 금할 것
-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 것
이는 제사장에게 명하신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평생 기르라는 부모의 사명이었다.
2. 성령의 특별한 임재 방식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한 방식은 앞선 사사들과 달랐다.
파암(פעם) - 두드리심, 울리심
"여호와의 영이 삼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더라"(삿 13:25). 히브리어 '파암'은 '두드리다', '울리다'라는 뜻으로, 성령께서 삼손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며 계속 감동을 주셨음을 의미한다. 삼손이 사역하는 동안 항상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며 마음에 찔림을 주셨다.
이것이 14-16장 전체를 관통하는 전제다. 성령께서 계속 삼손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셨다는 것을 알아야 삼손이 얼마나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는지가 명확해진다.
본론
1. 삼손의 선택: 사명인가, 자기 애인가
1-1. "보다"의 문제
14장 1절,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삼손은 성인이 되어 사사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40년간 블레셋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딤나는 블레셋 지경이다. 정상적인 사사라면 블레셋을 치거나 고통받는 백성을 구원하러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삼손이 딤나에 내려간 목적은 여인을 보기 위해서였다.
"보다"는 삼손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다. 14장, 15장, 16장 모두 "보다"로 시작한다. 삼손은 항상 여인을 봤고, 이것이 그의 인생의 문제요, 멍에요, 죄였다.
1-2. "내가"와 "나를 위하여"
3절에서 부모가 만류하자 삼손이 답한다: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사사는 말씀을 맡은 사람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야 할 사명자다. 그러나 삼손의 말에는 사명감이 전혀 없다. "내가", "나를 위하여"라는 표현에서 철저히 자기 중심적임이 드러난다.
영적 성장의 원리: 믿음이 어릴 때는 자기 애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자기 애가 사명에 의해 점점 낮아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삼손은 사사임에도 사명과 자기 애 사이에서 자기 애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그의 부모는 시대를 거슬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는데, 삼손은 오히려 그 시대에 휩쓸려 살았다.
1-3. 사사기 14장 4절의 해석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이 구절을 "하나님이 삼손의 잘못을 계획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1-3절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고, 4절은 사사기 기자의 역사적 평가다.
올바른 이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와 죄악까지도 당신의 방식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 요셉이 창세기 50장 20절에서 고백한 것과 같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형제들의 죄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 악까지도 선으로 바꾸신 것이다. 삼손이 정상적으로 사사 역할을 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사사를 통해서도 백성들을 구원하신다. 이것이 삼손의 죄를 면책하는 것은 아니다.
적용: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잘못한 것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과 실수와 연약함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 그렇다고 우리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찬양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2. 반복되는 실패의 패턴
2-1. 성령의 강권적 임재 - 찰라흐(צלח)
삼손이 딤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젊은 사자가 소리 지른다. 6절,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히브리어 '찰라흐'는 '강하게 쏟아지다'라는 뜻이다. 소나기가 퍼붓듯이 갑자기 임하시는 것이다. 성령께서 마음을 두드리셔도(파암) 반응하지 않으니, 이제 강하게 쏟아부어(찰라흐) 막아 세우신 것이다.
사자가 울부짖고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면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삼손은 그 힘으로 사자를 찢어 죽여 버린다. 그리고 부모에게 알리지 않는다. 왜? 영적인 부모가 알면 "하나님이 막으신다"고 했을 것이고, 사자 시체를 만진 것은 나실인 서원 첫 번째(시체 접촉 금지)를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2-2. 나실인 서원의 점진적 파기
첫 번째 위반 - 시체 접촉 (14장)
사자를 찢어 죽이고 시체를 만졌다. 나중에는 사자 사체에서 꿀을 먹기까지 했다.
두 번째 위반 - 포도주와 독주 (14장)
10절, 블레셋 동네에서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 잔치에는 당연히 술이 있었을 것이다. 시대의 풍습을 따라 두 번째 서원도 어겼다.
세 번째 위반 - 삭도를 머리에 댐 (16장)
들릴라에게 진심을 말하여 머리를 밀렸다. 마지막 보루까지 무너뜨렸다.
2-3. 수수께끼와 분노의 악순환 (14장)
삼손은 혼인 잔치에서 친구 삼십 명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베옷과 겉옷 삼십 벌을 걸고. 블레셋 사람들이 아내를 협박하여 답을 알아내자, 삼손은 아스글론으로 가서 삼십 명을 쳐죽이고 옷을 벗겨 준다.
사사의 행동인가? 이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체면을 세우고 분노를 푸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자기 분노 해소에 사용한 것이다.
2-4. 여우 삼백 마리 사건 (15장)
15장 1절, "삼손이 밀 거둘 때에 새끼 염소를 가지고 자기 아내를 보고자 하여"
또다시 "보고자"로 시작한다. 아내가 이미 다른 남자에게 주어졌음을 알고 분노한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백오십 쌍)를 잡아 꼬리에 횃불을 매고 블레셋의 곡식단과 포도원과 감람원을 태운다.
조롱의 의미: 여우 한 마리당 꼬리 하나, 이스라엘 지파는 열두 지파다. 여우 꼬리 삼백 개면 이스라엘 지파 수의 스물다섯 배다. "너희가 우리 이스라엘을 괴롭히니 이스라엘이 너희에게 스물다섯 배로 앙갚음하겠다"는 모욕이었다.
2-5. 걱정거리가 된 사사 (15장)
블레셋이 보복하여 올라오자,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삼손에게 가서 말한다: "블레셋 사람이 우리를 다스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였느냐"(15:11)
비극적 역전: 사사는 백성을 구원해야 하는데, 오히려 백성이 사사를 걱정하고 있다. 사사가 백성들의 염려거리요, 걱정거리가 되었다. 부모가 자식 걱정거리가 되면 불행한 가정이듯이, 지도자가 백성의 걱정거리가 되면 불행한 공동체다.
2-6. 나귀 턱뼈 사건과 엔학고레
삼손은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인다. 그리고 목이 말라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나님이 물을 주셨고, 삼손은 그곳을 "엔학고레"(עין הקורא)라 부른다. 뜻은 "부르짖는 자의 샘"이다.
사무엘의 에벤에셀과 비교: 사무엘은 승리 후 "에벤에셀"(여호와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이라 불렀다. 주어가 하나님이다. 그러나 삼손의 "엔학고레"는 "내가 부르짖었더니 물을 주셨다"는 것으로, 주어가 자기 자신이다. 끝까지 자기 중심이다.
3. 삼손의 마지막 (16장)
3-1. 더 깊이 빠져드는 죄의 패턴
16장 1절, "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또 "보다"로 시작한다. 가사의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간다. 성문과 문설주를 뽑아 육십 킬로미터를 달려가 조롱한다.
16장 4절, "삼손이 소렉 골짜기에 사는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함에"
이제는 "보다"에서 "사랑하다"로 바뀌었다. 히브리어 '아하브'(אהב)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것과 같은 표현이다. 처음에는 보고, 나중에는 마음을 다해 사랑하게 된다. 점점 더 깊이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3-2. 들릴라와 현상금
블레셋 방백들이 들릴라에게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현상금을 건다. 방백 하나당 은 천백 세겔, 다섯 방백이니 총 오천오백 세겔이다.
가치 환산: 당시 성인 남자 노예가 은 삼십 세겔, 일 년 연봉이 약 십 세겔이었다. 오천오백 세겔은 오백오십 년 치 연봉이다.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약 이백이십억 원에 해당한다.
들릴라가 삼손을 이백이십억보다 더 사랑했을까? 결론적으로 이 여인은 사랑하지 않았다. 삼손은 아하브(אהב)하며 모든 것을 걸었지만, 일방적 사랑이었다.
3-3. 네 번의 시험
첫 번째: "새 활줄 일곱으로 결박하면 약해진다" → 거짓말, 탈출
두 번째: "쓰지 않은 새 밧줄로 결박하면" → 거짓말, 탈출
세 번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에 짜면" → 거짓말이지만 정답에 근접해 감
네 번째: 진심을 말함 → 머리가 밀림
세 번째 답변에서 머리털을 언급한 것은 무서운 것이다.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다. 사탄의 시험은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두드린다. 연약한 부분을 계속 공략하면 점점 정답에 가까이 간다.
16절,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날마다"의 패턴: 보디발의 아내도 요셉을 "날마다" 유혹했다(창 39:10). 사탄의 패턴은 동일하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것을 피하라는 것이다.
삼손이 진정 번뇌해야 할 것은 "어떻게 백성을 구원할까?"였다. 그러나 그는 여인 때문에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3-4. 삼손과 요셉의 차이
요셉은 유혹 앞에서 겉옷을 벗어두고 도망갔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자기 연약함을 알았기에 현장을 피했다.
삼손은 세 번 속으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머리까지 밀려도 나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자기 힘을 과신하며 피하지 않았다.
결과의 차이: 요셉은 감옥에 갔지만 결국 총리가 되었다. 삼손은 눈이 빠지고 맷돌을 돌리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유혹 앞에서 피하는 것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것이다.
3-5.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
17절, 삼손이 진심을 말한다: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이것을 블레셋 여인에게 할 소리인가? 말해 놓고 그 집에서 잔다. 세 번째 언약까지 스스로 깬다.
역설적 비교: 들릴라와 삼손 중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믿은 사람은 누구인가? 블레셋 사람들이다. 세 번 실패해도 네 번 도전했다. 하나님이 성실하신데 사탄도 성실하다. 삼손은 말씀 앞에 성실하지 않았기에 망한 것이다.
3-6. "여호와께서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함"
20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삼손의 힘은 머리카락에 있었는가, 하나님에게 있었는가? 하나님에게 있었다. 떠나신 것은 하나님이시다. 머리카락에 마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머리카락을 매개로 삼아 그가 순종하는지 보셨던 것이다. 두 번째까지 언약을 깨뜨려도 하나님은 마지막 보루인 머리카락을 붙들고 그가 이 언약만큼은 지키기를 기대하고 계셨다.
3-7. 눈을 빼신 하나님의 사랑
21절,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놀이개로 쓰고 싶었다. 삼손이 그들을 조롱했으니 그들도 삼손을 조롱하며 유희를 즐기고 싶었다. 발목을 자르면 데리고 놀 수 없으니 눈을 뽑았다. 가사, 바로 삼손이 성문을 뽑아 가장 모욕했던 그 성에 끌려갔다.
마태복음 5:29-30의 적용: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멀쩡한 몸으로 지옥 가는 것보다 눈 없이 천국 가는 것이 낫다. 하나님은 삼손을 사랑하시기에 눈을 빼신 것이다. 보고 사랑했던 그 눈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역설이다.
3-8. 머리털이 다시 자라기 시작함
22절,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머리털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은유다.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삼손에게 다시 임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3-9. 삼손의 마지막 기도
28절,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마지막 기도도 "내 두 눈을 뽑은 블레셋 사람들 원수를 갚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끝까지 자기 원수를 갚는 것으로 끝났다. 백성 구원이 아니라 자기 복수였다.
삼손은 힘을 다해 기둥을 무너뜨려 삼천 명과 함께 죽었다. 죽을 때 죽인 자가 살았을 때보다 많았지만, 이것이 사사의 마지막이 되어야 했는가?
결론: 삼손에게서 배우는 교훈
1. 많이 준비되었으나 적게 이룬 사람
삼손은 하나님이 준비한 큰 그릇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준비되었고, 성령께서 움직이시고(파암), 두드리시고, 울리셨다. 성령이 비같이 쏟아져(찰라흐) 멈추기도 하셨다. 그만큼 크게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뿐이었다. 그것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결국 자기 원수 갚는 것으로 끝났다. 많은 것이 준비되었지만 그만큼 누리지 못하고 작은 것으로 끝냈다.
2. 솔로몬과의 비교
솔로몬도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지만, 우상숭배로 마지막을 망쳤다. 반면 다윗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기 사명에 충실했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기에 큰 일을 이루었다.
3. 핵심 교훈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도 적게 이루는 사람이 있고, 적게 가졌어도 많이 이루는 사람이 있다. 운명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삼손 이야기는 슬프게 끝나지만, 우리 인생은 슬프게 끝나면 안 된다.
핵심 정리
항목 | 내용 |
삼손의 문제 | "보다" - 여인을 봄, 안목의 정욕 |
성령의 역할 | 파암(두드림) - 내적 감동 / 찰라흐(쏟아부음) - 외적 강권 |
나실인 서원 파기 | 시체 접촉 → 포도주와 독주 → 삭도 |
자기 중심성 | "내가", "나를 위하여", 자기 원수 갚음 |
엔학고레 vs 에벤에셀 | "내가 부르짖음" vs "하나님이 도우심" |
삼손 vs 요셉 | 머무름(과신) vs 도망(지혜) |
눈을 빼심 | 하나님의 사랑의 역설 (마 5:29-30) |
머리털이 자람 | 하나님 능력의 회복을 의미하는 은유 |
교훈 | 많이 준비되어도 순종 없으면 적게 이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