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강 - 두 가지 사건과 이스라엘의 혼란 / 전체녹취

강 번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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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특강 14 - 두 가지 사건과 이스라엘의 혼란 (삿 17-21장)

본문: 사사기 21장 25절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오늘은 사사기 공부 열네 번째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17장부터 21장까지 꽤 긴 내용을 다루게 되는데, 사실 이 분량 안에 담긴 사건은 두 가지입니다. 사사기 기자가 아주 탁월하게 기록해 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사건인데, 이를 통해 사사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이 꽤 많은데, 그중에 이 시대를 특징짓는 어떤 사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 문제를 볼 수 있는 사건 사고를 보면, 그 한 가지 사건을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사기 기자는 사사 시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두 가지 사건을 사사기 말미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만약 이것을 신문 기사 쓰듯이 르포 형식으로 기록해 두었다면 재미가 없었을 텐데, 아주 생동감 있게 실제 있었던 이야기 두 가지를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레위인들의 타락입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인물이 레위 지파, 레위인들, 제사장 집단인데, 그들의 타락이 사건의 근저에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 자체가 상당히 엽기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내용을 소화시키기가 좀 어렵습니다. '이걸 이렇게 봐도 되나? 이걸 우리가 지금 이렇게 읽어도 되나?' 할 정도로 정말 '이랬다고?' 싶을 만큼 대단히 엽기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이었기에 성경에 그대로 기록해 둔 것입니다.

그 아주 오래전 사사 시대 때 일어났던 일이 지금 이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와 사사 시대가 별반 다를 게 없고,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심각한 내용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두 가지 사건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그 내용들을 살펴보고 사사 시대를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 두 가지 사건을 우리는 보통 이렇게 부릅니다. 첫 번째 사건을 '미가 신상 사건'이라고 하고, 두 번째 사건을 '레위인 첩 사건'이라고 합니다.

1. 미가 신상 사건

1-1. 무너진 가정의 율법

미가의 신상 사건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17장 1절을 보시면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은을 잃어버렸는데, 범인이 누구입니까? 아들이 훔쳐간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은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들릴라가 삼손을 넘겨주는 대가로 약속받은 현상금이 은 1,100개의 다섯 배였습니다. 은 1,100개의 다섯 배가 오늘 우리 시가로 약 220억 정도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은 1,100개는 그것을 5로 나누면 한 44억 정도 되는 엄청난 금액인데, 이 아들이 그것을 훔쳐갔습니다.

그러면 이 집을 보면 꽤 부잣집이었고 상당한 부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은 손버릇이 좀 나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어머니는 돈을 잃어버렸으니 저주를 했겠지요. 어떤 놈이 훔쳐갔는지 저주를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알고 있습니다, 아들이 훔쳐간 것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아들의 귀에 저주를 쏟아부으니 아들이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께 토해냅니다. "어머니, 이거 여기 있습니다. 제가 찾아왔습니다" 하니까, 어머니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절 끝에 보면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여러분, 여기 빠진 것이 있습니다. 도둑질은 십계명의 제8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 열 가지 계명 중에 여덟 번째 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을 어겼습니다. 아들이 그것을 훔쳤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했는데, 물론 자수했으니 아들을 칭찬하고 "잘했다, 돌이켰으니 괜찮다" 이렇게 말해 주는 것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책망이 있어야 합니다. 도둑질했으니까, 가져갔으니까, 그것을 한번 따지고 넘어가야 합니다. 책망이 없는 칭찬입니다.

이 사사 시대를 보여주는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보면, 가정에서 하나님 말씀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십계명, 그들 삶의 근간 아닙니까? 구약 시대 때 십계명, 그 열 가지 계명은 다른 세부 규정과 별개의 문제로 대단히 중요한 율법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고 어머니의 돈을 훔쳐 갔습니다. 그러면 이 부분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자수했으니 한번 용서해 주마"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율법이 이미 무너졌습니다.

1-2. 혼합주의의 만연

그다음이 더 웃깁니다. 3절에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더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하였습니다. 신상을 만든다고 했고,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서로 일치하는 말입니까? 신상을 만드는 것은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을 어기면서 여호와께 거룩히 드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혼합주의라고 부릅니다. 이방의 신상을 만들면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어머니는 십계명을 이 짧은 시간에 두 가지나 어기고 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고, 신상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도 여호와를 위하여. 혼합주의 신앙이 지금 이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사사 시대 때 가정에서부터 율법이 완전하게 무너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진짜 만듭니다. 4절에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돌려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가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으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었더라" 하였습니다.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었습니다. 이제 갈수록 가관인데, 그 신당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었습니다. 은 200을 가지고 말입니다.

에봇은 제사장의 의복입니다. 이 에봇이라고 하니까 우리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 만들었습니까? 기드온이 금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본받아서 이 사람들도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은으로 말입니다. 드라빔은 무엇입니까? 가정의 수호신입니다. 어디서 봤습니까? 창세기에 라반 이야기 나올 때 봤습니다.

그래서 이런 신상, 에봇도 만들고 드라빔도 만들고,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고, 제사장의 의복을 일반 가정집에서 만들어서 섬기고, 기드온이 그렇게 하는 것을 봤으니까 이 사람들이 그렇게 합니다. 은 1,100 가운데 도로 찾아서 그중 200을 가지고 이것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하였습니다. 이 신당을 운영하고 거기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가정의 제사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니까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였습니다.

이 왕이 진짜 정치적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들 원하는 대로 멋대로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짧은 6절까지 나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 사건을 보니까 그 당시 사사 시대 사회상과 가정상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이 무너졌고, 혼합주의 신앙이 판을 치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기준도 없고 상식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도 없는 시대,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냥 예사롭게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의 죄악에서부터 흘러나온 것도 여기에 보이고 있습니다.

1-3. 타락한 레위인

이런 상황인데 여기서 사건이 점증됩니다. 조금 더 나아갑니다. 7절에 보니까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의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하였습니다. 레위인이 베들레헴에 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사 시대 배경을 공부할 때 이미 살펴봤는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고 12지파에 땅을 분배하셨습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주셨습니까, 안 주셨습니까? 뭉텅이 땅을 안 주셨습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땅을 흩으셨습니다. 주요 성읍들로 레위 지파를 흩어버리고 그들에게 미션, 사명을 주셨는데, 그 사명 첫 번째가 예배입니다. 제사를 집례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재판이고, 세 번째가 신앙 교육입니다. 이것을 레위 지파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는 땅이 없습니다. 농사 짓고 먹고 살 땅이 없습니다. 레위 지파는 전업으로 예배와 신앙 교육과 재판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레위인은 유다 땅 베들레헴을 위수 지역으로 받은 것입니다. 거기에 배치된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분은 베들레헴에서 예배도 드리고 재판도 하고 백성들 신앙 훈련과 교육도 하면서 베들레헴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분의 먹고 사는 생계는 누가 책임져 줘야 합니까? 베들레헴 사람들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레위기 율법을 보면, 신명기 레위기 율법을 보면 십일조의 쓰임에 대해서 나옵니다. 십일조에 세 가지 쓰임을 이야기했는데, 그 첫 번째가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따로 생업을 위해서 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가 십일조의 일부분은 성전과 성막의 관리, 감독, 유지, 보수를 하는 데 쓰입니다. 세 번째 일부분은 고아와 객과 과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베풀고 나누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 십일조의 세 가지 쓰임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서 십일조를 하라고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이것을 어떤 식으로 써야 된다는 구약의 정신에서부터는 잘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와 신명기 율법에서는 이 세 가지 십일조의 정신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왜 떠돌아다닙니까? 생계가 안 되니까, 먹고살 길이 없으니까 딴 데로 막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순환입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지금 사사 시대가 영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습니다. 또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과거에 그런 율법적인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또 존경하지 않겠지요. 그러니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겠지요. 그러니 그 땅에 있는 레위인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겠지요. 그러니 흩어지겠지요. 그러면 유다 땅 베들레헴은 또다시 영적으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역자들이 없으니까, 예배를 인도하고 백성을 지도하고 재판을 해 줄, 말씀으로 판단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백성들은 또 신앙 교육을 못 받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 돌아갑니다.

이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하나님 책임입니까? 첫째는 지도자, 레위인들의 책임입니다. 무조건 이 순환을 만든 레위인들의 책임입니다. 그다음 그 안에서 자정 능력이 없었던 그 공동체 지도자들의 책임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1-4. 신앙의 사유화

이제 보십시오. 8절에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이 말은 먹고살 곳을 찾고자 하여라는 뜻입니다—"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떠나면 안 되잖아요. 여기가 하나님께 받은 땅인데 떠났습니다. 왜요? 굶어 죽으니까. 그냥 있으면.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미가가 묻습니다. 우연히 그 집에 간 것입니다. 부잣집이니까 한끼 밥을 얻어 먹으려고요.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이 레위인이라는 말에 미가의 귀가 번쩍 뜨인 것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여러분, 이 "나를 위하여"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지금 이 집에 신당이 있다고 했습니다. 에봇과 드라빔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신상을 만들어 줬습니다, 은 200을 가지고. 그러면 그 신당의 제사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한 사람은 레위인이 아닙니다. 미가가 우연히 만난 이 레위인을 자기 집에 제사장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하여 제사장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사장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막에서 봉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그 말씀을 가지고 사는 존재들이 제사장인데, "나를 위하여 제사장이 되라." 이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을 사유화하려는 태도입니다. 지금 미가가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미가가 돈이 많잖아요. 부자잖아요. 그러니 제사장을 자기 집에 꽂아 놓고 "나를 위하여 제사장이 되라" 그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연봉 협상을 합니다.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여러분, 은 열 개를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그 당시 노동자의 1년 연봉이 은 열 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은 1,100개는 110년치 연봉이라고 했습니다. 1년에 한 4천만 원이라고 소박하게 잡고 계산하니까 은 5,500개가 220억이 나온 것이고, 오늘 은 1,100개가 약 44억 정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노동자의 시세대로 은 열 개를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레위인은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그것을 못 받은 것입니다. 그 당시 평균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급여를 못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못 먹고 살겠지요. 그러니 또 돌아다니지요. 그래서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니까 이 사람은 거기에서 그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 버립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함매" 어색하지 않으십니까?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제사장 위임식을 하고 하나님이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되는데,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한 이가 미가가 되어 있습니다. 미가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하나님의 제사장이 아니라—"그 집에 있었더라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여러분, 신앙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이것을 요즘으로 치면, 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한 부잣집의 개인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조만간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우리 사회에서도.

신앙을 사유화하려는 태도는 굉장히 악한 태도입니다. 신앙을 사유화하려고 하는 것. 이 미가가 하는 짓을 보면 큰돈이 있는 집입니다. 어머니 돈 한 44억 정도는 훔쳐도 어머니 잔소리 듣기 싫어서 토해 낸 것이지, 그것이 별로 이 가정에 타격감이 없는 집입니다. 그 정도로 굉장한 부잣집입니다.

그런데 이런 집에서 하는 것을 보십시오. 돈이라면 제사장까지 고용해 버리잖아요. 돈이라면. 그러면 물질 아래에 하나님의 말씀이 종속되었다는 말입니다. 미가가 제사장을 거룩하게 구별했다니요.

그러면 오늘 우리 시대에 과연 교회가 물질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가? 과연 목회자가 돈 앞에서 자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이거든요. 이것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지만, 이 질문을 보편화시켜서 우리에게 던져 보면 그것은 우리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도들 중에 돈이 많은 부자들이 많습니다. 목회자를 개인의 사유물로 만들려고 하는 시도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목회자의 급여와 목회자의 사례비와 그들의 생활은 교회가 공적으로 책임져야 되는 것입니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른 데 마음 쓰지 않도록, 다른 데 눈 돌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목양하고 전념할 수 있도록, 그것 때문에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않도록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책임지는 것이지, 어느 한 누군가가 "교회가 이것밖에 못 드리니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고 거기서부터 사단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누군가가 한 사람을 종속시키기 시작하면 거기서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데,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이 미가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을 사유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욕망이 있거든요. 우리 속에도 목회자가 우리 가정만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좋겠고, 목회자가 우리 가정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다 개입해 주셨으면 좋겠고, 이런 마음들이 있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 부탁을 하는 것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권력을 내세워서 하는 것하고, 그것이 옳습니까?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권력 앞에서 하나님의 종인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들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이냐? 이 질문을 오늘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에게도 무거운 질문이고 우리 신앙 공동체에도 대단히 무거운 질문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단 지파의 이탈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미가 사건은 행복하겠지요. 이제 이 사람은, 이 레위인은.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요, 레위인의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보편적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일이, 한 레위인 청년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보편적으로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을 특정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 사람 레위인뿐만 아니라 많은 레위인들이 이런 식으로 일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미가가 여기에 창시자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이 사사 시대 전체,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다음 이제 여기에 단 지파가 딱 끼어듭니다.

지도를 한번 보시면, 지중해 쪽으로 구석에 있는 녹색이 원래 단 지파 자리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12지파 땅 분배받을 때 단 지파가 이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는 이 땅이 매우 불만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래쪽에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원래 블레셋 사람들이 살던 땅입니다. 블레셋이 단을 가만히 두지를 않습니다. 계속 괴롭힙니다. 그래서 단은 블레셋과 매번 국경을 가지고 다투고 싸워야 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단이 어떻게 했느냐? 새로운 땅을 찾기로 하고 그 땅을 버려 버립니다. 그 땅을 버리고 새로운 땅을 찾아서 올라갑니다. 이미 땅은 분배받아서 자기 동족들이 다 살고 있으니까 어디로 갑니까? 같은 색깔로 저 꼭대기까지 가 보십시오. 보입니까? 저 꼭대기, 원래 라이스라는 도시가 있는데 라이스를 중심으로 한 그 지역까지 올라갑니다. 거기로 올라가던 중에 단 지파 사람들이 미가의 집에 잠깐 묵어갑니다.

2절을 보시면, 18장 2절입니다.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러운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다섯 명 정탐꾼들이 먼저 땅을 정탐하러 가는 중에 이 다섯 명이 미가의 집에 정말 우연히—하나님 앞에서 우연은 없다고 했지요—그 집에 딱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가니까 뭐가 있습니까? 신당이 있네. 대단한 부잣집이네요. 그리고 먹을 것도 잘 나오고. 그런데 그 집에 레위인 가정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섯 명이 레위인 가정 제사장에게 물어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평안하겠느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때 뭐라고 말합니까? 이 레위인 청년 제사장이 6절에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평안을 약속해 줍니다. 걱정하지 마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냥 막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간이 뭐가 능력이 있겠습니까? 이런 인간이. 그냥 다섯 명 막 이렇게 울퉁불퉁한 사람들이 와 가지고 "우리 잘될 것 같아요?" 이렇게 물으니까, 거기서 "가다가 사자들 만나서 물어뜯겨 죽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잘될 것 같습니다"라고 해 준 것이지요.

그런데 진짜 그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서 갔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을 보시면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저 북쪽 아까 우리가 본 그 지도 말입니다—"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이 말이 중요합니다—"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이것이 중요합니다. 염려 없고 평온하고 안전한 곳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들은 항상 블레셋 때문에 염려가 많고 맨날 싸우고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진짜 염려 없고 평온하고 안전한 땅이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 다섯 명이. '용하네. 아, 용하네. 아, 용해.'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제 돌아와서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지파 사람들이 선발대를 보냅니다. 몇 명을? 600명을 보냅니다. 600명을 보내서 거기에, 저 북쪽 지역 보고 온 땅을 완전히 그 600명이 먼저 선점하도록 합니다.

그다음에 이 600명에게 맡겨진 아주 중요한 사명이, 올라가다가 미가의 집에 또 갑니다. 가서 미가의 집에서 봤던 에봇과 드라빔, 이것을 신령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훔쳐갑니다. 빼앗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용한 사람, 그 레위인을 데려가 버립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19절을 한번 보십시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라는 것이지요. "네가 한 사람의 집에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의 한 지파 한 족속의 제사장이 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하는지라."

자, 이 사람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레위인 입장에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먹고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미가의 집에 와서 연봉 협상을 잘해서 먹고 사는 것은 이제 평범하게 살게 됐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게 됐습니다. 미가 비위, 그 사람 한 사람만 맞춰 주면 되니까. 그런데 한 가정의 제사장이다가 이제는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게 되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을 잡지 않겠습니까?

20절과 26절을 한번 보십시오. "그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기뻤습니다. 나의 진가를 알아주네—"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받아 가지고" 다 털었습니다, 여기 집에 있는 것을. 그 백성 가운데로 가 버렸습니다. 그냥. 그러니까 이 미가가 쫓아왔거든요.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여러분,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갈 데까지 간 것입니다. 이 레위 자손은 일단 하나님이 주신 위수 지역을 이탈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우리가 이해 한다고 합시다. 100번 양보해서. 그런데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레위인이, 제사장이 물질 앞에 무릎 꿇고 그 앞에 종속되는 것은 매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고 맘몬 앞에 무릎 꿇은 일인데, 그런 일을 했거든요. 이제 돈을 쫓아간 것입니다.

이제는 뭐, 명예를 쫓아간 것입니다. 돈과 명예. 그 당시 제사장 집단, 그 당시 제사장 집단의 내면과 그들의 삶의 지향점이 이랬다는 것을 보여주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히 무너져 버린.

그러면 그 당시 영적으로 그들을 이끌어야 될 지도자들이 돈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서 이런 식이라면, 백성들의 영적 상태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이제 우리가 알 만하잖아요. 그러니 신앙 교육이 안 됐을 테고, 신앙 교육을 못 받으니 다시 이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고 십일조를 하거나 헌금을 하거나 해서 공동체를 세워갈 생각을 안 했을 테고, 완전히 신앙 교육이 붕괴된 것입니다. 그러니 미가 같은 인간이 생겨나고 종교적 혼합주의가 횡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뭐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 썩어 빠진 것입니다. 그렇게 가 버렸습니다.

여러분, 단 지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땅을 마음대로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단 지파에게 그 땅을 분배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블레셋, 싸워 이기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블레셋 쫓아내면 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12지파가 함께 합심해서 마음을 모아서 싸워 이기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도망갔습니다.

가면서 이 사람들도, 단 지파도 이런 용한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점쟁이 같은 인간. 똑같은 사람들이지요. 단 지파의 문제. 그래서 가 버렸습니다.

이것이 미가 신상 사건입니다. 미가 신상 사건 정리되십니까? 이제 이것을 어디 가서 이야기하라 하면, 미가가 이렇게 하다가 시작했다가 마무리를 못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미가 신상 사건을 정리를 하셔야 됩니다.

2. 레위인 첩 사건

2-1. 기브아의 악행

이제 두 번째 레위인 첩 사건이 나옵니다. 아, 이것은 참 입에 담기 부끄러운데, 레위인 첩 사건이 말이 맞습니까?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어느 목사님 첩 사건입니다. 이것을 입에 올리기가 좀 자유롭습니까? 대단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레위인 첩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19장부터 21장까지 이야기인데요, 레위인 첩 사건이 내전까지 이어집니다.

21장까지 한번 보겠습니다. 1절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또 여기도 어떤 레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이유는 보편적이기 때문이라고요—"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말이 안 되지요. 레위인이 첩을 맞이했다니.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말이 됩니다. 왜 되느냐? 사사들이 다 그랬거든요. 그 당시 사람들이 다산이 축복이었던 시대라 했잖아요. 기드온이 70명 아들을 두었잖아요. 그러니 이 시대가 지도자들이 성적으로 엄청나게 타락했던 시대입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첩이 행음을 했네요. 어우, 가관이지요. 2절에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을 지내니라." 그러면 이 레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쓰레기를 버려야 되는데, 자기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하고 돌아와야 되는데, 이 첩을 달래러 갑니다. 달래러 가서 겨우겨우 설득하고 달래고, 뭐 장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첩의 아버지 장인을 설득해 가지고 다시 데려옵니다.

데려오다가 사건이 터지잖아요. 어디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사는 기브아에서 사건이 터집니다. 22절을 한번 보십시오. 어느 한 집에 들어가서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했습니다.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동성 연애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은 이미 소돔성에서 롯 집에 들어온 천사 이야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했는지요. 그러니까 노인이 하는 이야기를 한번 보십시오.

24절에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까? 자기 처녀 딸이 있고 이 사람 첩이 있는데, 그들을 줄 테니까 너희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이제 이 사람들, 그 당시 사람들 사고 구조에서 여성은 그냥 하나의 수단과 도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보편적인 사건입니다. 얼마나 신앙이 무너졌으면 이런 상황까지 온 것입니까? 과거에 소돔성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그 사람 레위인입니다—"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죽었습니다.

여인이 이럴 거면 왜 데리고 옵니까? 사랑하기나 한 겁니까? 그래도 삼손의 사랑은 이렇게 따지면 지극히 지순이라도 하지요. 삼손은 그래도 들릴라를 사랑했잖아요. 어쨌건. 그런데 이 사람은 지극히 악한 인간입니다. 이 레위인은 여성을 도구화하고, 그리고 자기가 위기에 빠졌을 때 줘 버렸습니다. 그냥. 그리고 밤새도록 돌보지 않았습니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시신을 데려다가 묻고 장례 치르면 그만인데, 그런데 이 사람이 한 짓이요, 역기적입니다. 그 시신을 나귀에 매고 와서 자기 집에 와서 12토막을 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다 보냅니다. 편지를 보내지요. 그 토막 난 시신과 함께 편지를 보냅니다. "내가 베냐민 지파가 사는 기브아 땅에 가서 이런 이런 일을 당했노라. 여러분들이 가만히 있으면 되겠느냐? 베냐민 지파를 우리가 응징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고 편지를 보냅니다. 이스라엘 12지파에다가.

2-2. 내전의 발발

그러면 그 편지를 받은 그 지파의 대장들이, 지도자들이 모입니다. 20장 1절에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서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더라" 하였습니다. 웃긴데 아무튼 이 사람들은 자기들은 명분을 가지고 모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모인 것입니다. 대단히 큰 사건이지요. 사실 이것이 토막 난 시신을 받아 들고 이 사람들이 모인 것이니까.

그러면 이 레위인을 징계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자정하기 위해서 우리가 레위 지파들이 타락했다, 지금까지 그것을 회개하기 위해서 모였다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모여서 뭘 합니까?

11절에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그 성읍이 기브아 성읍입니다. 그리고 그 성읍이 베냐민 자손들입니다. 그러면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가만히 있습니까? 이제 나머지 지파들이 한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는데요.

15절에 "그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그러면 이 사건의 핵심 되는 도시 기브아 사람에게서 700명이 징집됐습니다. 베냐민 지파 전체에서 26,000명이 징집됐습니다. 총 얼마입니까? 26,700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지파들에서 몇 명의 군인이 징집됐느냐? 17절에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40만 명인데 26,700명입니다.

싸웁니다. 이것을 가지고 이 사람들이 전쟁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1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여기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씀을 하나님이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에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 하나님이 응답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대답을 안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헛소리 하지 말라고 하든지,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 가지고 그 자리에서 죽이시든지, 뭔가 좀 보여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이것을 어디서 봤습니까? 우리가 유다가 올라가라 했는데 유다가 선택적 순종한 것을 우리가 사사기 앞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같은 맥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했는데 유다가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기도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틀렸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 뭘 전제로 기도했습니까? 전쟁을 하는 것을 전제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물을 때 전쟁은 반드시 하는 건데, 그러면 우리 나머지 지파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선봉에 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제 없이 "하나님, 우리가 모였는데 좀 찝찝합니다. 뭔가 좀 불편하고 찝찝한데 이 전쟁 하는 게 옳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답을 정해 놓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다가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2-3.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의도가 그다음에 나옵니다. 보십시오. 21절에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22,000명이 죽었습니다. 지금 베냐민 한 지파 대 나머지 지파가 전쟁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이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는데 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고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 종교적 형식만 갖추어서, 기도라는 형식만 갖추어서 하나님 앞에 나가서 엎드리고 "전쟁할까요, 말까요?"가 아니라 "누가 먼저 올라가야 될까요?"라고 묻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심판이라고요. 22,000명이 죽잖아요.

그다음 이상하니까, 하나님 응답하셨는데 우리가 왜 졌지? 두 번째 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또 나갔습니다. 두 번째 어떻게 됐습니까? 25절에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들이라." 18,000명이 또 졌네요. 또 죽었네요.

더해 보십시오. 몇 명입니까? 4만 명. 10분의 1이 죽었습니다. 40만 명 중에. 이쯤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예민한 자들은 딱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일을 가져가셨네. 그러면 이 전쟁 자체가 틀려 먹은 거야.' 그렇지요?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유다가 올라가라, 누가 올라가라고 했으면 그 전쟁은 틀림없이 이기는 것이거든요. 이때까지 그렇게 하셨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전쟁을 뒤집어서 지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그래도 깨닫지 못합니다.

세 번째 또 기도하고 또 갑니다. 이번에는 하나님 어떻게 하시느냐? 28절 중반을 보시면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화가 났습니다, 이들이—"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35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심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 명을 죽였으니." 베냐민 자손, 기브아 자손 다 털어서 20세 이상으로 칼 빼고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 몇 명이었습니까? 26,700명. 그런데 25,100명이 죽었습니다. 몇 명 남았습니까? 1,600명. 1,600명 남았지요.

그런데 그 천 명은 어디로 갔는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보십시오. 47절에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600명이 뭉쳐 있었습니다. 600명만 생사가 확인되는 것입니다. 나머지 천 명은 생사가 확인이 안 됩니다. 도망갔는지, 실종됐는지, 물에 빠져 죽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600명만 남았습니다.

그러면 더하기 한번 해 봅시다. 22,000 더하기 18,000, 4만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25,100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얼마입니까? 65,100명. 내전으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자기들끼리 내전에서 이렇게 죽인 것이 아비멜렉 사건, 그리고 입다 사건, 그 두 번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부 다 블레셋이나 가나안 민족이나 미디안 족속이나 이런 자들에게 압제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싸웠다고요.

그런데 그것도 형식은 다 하나님께 물어봤습니다. 기도했고 응징한다고 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보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솎아내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제는 이방 민족을 들어서 그들을 칠 필요도 없다. 너희들끼리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너희들끼리 칼 빼고 죽고 죽이고 다 죽어 없어져라. 그리고 하나님이 그냥 놔두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셔야 합니까? 우리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봐야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이것이 심판인 줄 몰랐습니다. 심판인 줄 모릅니다.

2-4. 분열과 일치의 영

여러분, 사탄은 분열시키는 영입니다. 성령은 일치의 영입니다. 마노아가 자기 아내에게만 나타났던 여호와의 사자를 나도 좀 보자, 나에게도 좀 나타나 달라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셨잖아요, 찾아오셨잖아요. 고넬료도 베드로도 다 일치의 영입니다. 성령은 성령의 역사는 하나 되게 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분열시키는 역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분열시키는 역사에 이스라엘 백성들 누구 하나 여기에서 "이것은 분열입니다. 이것은 다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민족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말해 주는 지도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너무 슬픈 일 아닙니까? 우리 가운데 사람들이 갈라지고 싸우고,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싸우는 사람들 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싸웁니다. 보십시오. 이 사람들 전쟁하면서 하나님 유다가면 누가 먼저 올라갈 거예요? 물었잖아요. 자기들은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기도했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더 절박하니까. 자기 지파 하나 대 나머지 전체가 싸우는데 베냐민은 거기에서 악착같이 싸우지 않았겠습니까? 그들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나름의 기도 응답을 받았겠지요. 그래서 두 번 이기고 한 번 진 것입니다. 한 번 진 것이 전멸이라서 그렇지.

그래서 교회 안에서 다툼이 일어날 때요, 여러분 교회가 갈등하고 싸우는 것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전부 다 확신에 차 있습니다. 왜요? 저마다 기도하고 응답받았거든요. 이런 식으로 저마다 기도하고 저마다 응답받았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확신에 차 있습니다. 굉장한 확신에 차서 싸웁니다.

그런데 그 싸우는데 교회는 텅 비어 버립니다. 다 떠나고 다 가고 없습니다. 다. 누가 싸우는 교회 있습니까? 누가 갈등하는 교회 있겠습니까? 저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 줄 모른다니까요.

문제는 그렇게 많던 성도들이, 예배당이 다 비고 다 싸우고 갈등하고 우리만 남았어, 이제 이겼다고 이제 좋아하는 것이거든요. 바보 천치도 그런 바보가 없습니다. 누가 이겼습니까? 다 졌지. 그것은 다 진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교회는 절대 싸우면 안 됩니다. 절대 큰 소리 내면 안 되고, 그런 분노를 가지고 기도해 봐요. 하나님이 심판해 버리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심판하는데, 이것이 심판인 것을 모르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심판인 것을 알았다면 거기서 멈췄겠지요. 그런데 이제 멈추지 않습니다. 더 나아갑니다.

2-5. 야만적 해결책

그리고 나서 이제 박살을 냈습니다, 베냐민 자손을. 600명 남았다고 했습니다. 이 600명이라는 것은 여자, 노인, 어린아이 뭐 이런 것 빼고 20세 이상의 남자 600명이 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600명이 남았는데 이것이 이들에게는 고민이 됩니다.

그래서 이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제 미스바에서 이제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21장 1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것이 원래 뭐 전쟁도 끝나고 나면 전범 국가들이 있잖아요. 1차 세계대전 끝나고 2차 세계대전 끝나고 전범 국가들에게 배상금을 먹이고 뭐 벌을 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 이들도 나머지 지파들이 다 베냐민 자손에게는 딸을 주지 않겠다고 결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또 한 가지 결의를 한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다 전쟁을 소집했는데 각 도시마다, 지역마다 이 소집에 응한 사람들과 응하지 않은 도시를 가려낸 것입니다. 그것을 따져 보니까 길르앗 야베스라는 도시에서는 전쟁에 오지 않았거든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 보십시오. 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에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라"고 묻습니다. 8절에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어떻게 합니까? 심판하지요. 어떻게 심판합니까? 11절에 "너희가 행할 일은 이것이니 모든 남자와 남자와 동침한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용사 12,000명을 파견합니다. 그래서 길르앗 야베스를 쑥대밭을 만듭니다. 성인 남자들 다 죽입니다. 남자와 잠자리가 있는 여성들, 즉 가정이 있는 여성들 다 죽입니다. 그리고 처녀들을 사로잡아 오게 합니다. 왜 사로잡아 오게 할까요?

이들에게 지금 딜레마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희한한 집착이 있습니다. 숫자에 대한 집착, 12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12를 완전수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쟁 실컷 하고 나서 베냐민 지파 박살 내고 나니까 남자만 600명 남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자기들이 딸을 주지 않겠다고 했으니까 베냐민 지파가 없어지게 생겼거든요. 그러면 12가 안 되잖아요. 이것을 해결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 해결을 길르앗 야베스에서 데려온 처녀들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처녀들을 잡아옵니다. 400명. 그런데 600명 대 400명, 남초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들이 200명이 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이 200명 장가보내야 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19절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명절에 사람들이 놀러 나오잖아요. 여성들이. 그때 보쌈해 가라고 해 버립니다. 그 200명 베냐민 지파 처녀 못 구한 사람들에게.

그러면 자기들이 결의를 했잖아요. 지금 베냐민 자손에겐 딸을 주지 않겠다고. 이제 그것을 빠져나갑니다. 22절에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는 자의로 준 게 아니야. 결의는 지킨 거야.' "그런즉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자의로 준 것이 아니라 보쌈 당한 것이니까, 빼앗긴 것이니까, 너희에게는 죄가 없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빠져나간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되십니까?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그들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멈췄을 텐데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으니까 더 큰 죄를 짓습니다. 어떤 죄입니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또 학살했습니다. 그다음에 여성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여성들을 보쌈해 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도구화하고 인신매매를 정당화했습니다. 야만적이지요. 대단히 야만적이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출애굽 해 올 때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백성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라. 지금까지 430년 동안 율법 없이 말씀 없는 백성으로 살아서 너희들이 개돼지 취급받고 이집트에서 그렇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살았는데,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품위 있는 백성으로 살아가라." 그래서 율법을 주신 것이거든요.

그 율법을 지키면 적어도 인간의 존엄성이 보존되고, 적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으니까 그 율법을 주셨잖아요. 그런데 율법이 무너지니까 사람이 이렇게 야만적이 됩니다. 짐승만도 못한. 거기에 제사장도 레위인도 거기에 지도자도 거기에, 누구도 다 그 야만적인 인간의 야수성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까.

3. 말씀 없는 시대

잠언 29장 18절 말씀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여러분, 묵시는 비전이거든요. 비전은 내가 그냥 개꿈 꾼 것이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꿈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비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꿈을 가지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그 말씀을 가지고 내가 그 방향대로 살아내는 것을 우리는 묵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이 없으니까 백성이 방자히 행하지 않습니까? 말씀이 없으니까 이 인간들 하는 짓을 보십시오. 야만적이고 엽기적이고, 누구 하나 여기에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 없고, 이런 식으로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 갔습니다. 그것이 사사 시대입니다.

율법이 있는 자, 말씀이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옥죄는 사슬이 아닙니다. 말씀은 우리를 품위 있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가 존중받는 자요, 그 말씀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배우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됩니다.

말씀이 없는 세상을 보십시오. 좋은 옷을 입고 다니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많이 배우고 권력 가진 사람들의 이면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하는 짓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범죄로 나타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입이 쩍쩍 벌어지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런 짓을 할까?' 인간의 탈을 쓰고. 왜냐하면요? 묵시가 없으니까. 말씀이 없으니까.

여러분, 우리가 다른 것은 못 해도 우리 청년들에게, 우리 자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새겨야 됩니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다워집니다. 말씀이 곧 그리스도이니까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서 사셔야 그래야 내가 인간이 됩니다.

25절에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이 사사기 마지막 말씀입니다. 긴 여운을 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 말씀이 살아 숨 쉬는 시대가 되고, 그래서 우리 가정에는 적어도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있는 우리 공동체는, 우리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람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사사기 14강까지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고, 한번 복습하실 시간이 있으면 한 번씩 틀어 놓고 복습도 하시고 또 한 번 더 되새겨 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사기 14번의 말씀을 통해서 시대의 악함과 시대의 비정함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진 그 시대가 얼마나 무너지고 악한 시대인지를 보았습니다. 주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분별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모세와 여호수아 영웅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개인이 판단하고 개인이 결정해야 되는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서 살아가야 복이 될 텐데 그 말씀이 없어서 레위인도 제사장도 다 무너지고 사사들도 무너지고 백성들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였습니다. 주여, 우리는 부디 이런 시대를 만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 말씀을 빛 삼아 그 말씀을 등불 삼아 살아가기를 결단하오니, 주여 우리를 말씀 앞에 세워 주시옵소서. 주여 사사기를 통해서 배웠던 것, 깨달았던 것들 잘 새기도록 도우시고 말씀이 우리의 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