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 다른 세대와 다른 신들 / 전체녹취

강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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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특강(2) - 다른 세대와 다른 신들(삿 2장)

본문: 사사기 2장 4절과 5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우니라.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사사 시대의 특징 - 영웅의 시대에서 평신도의 시대로

오늘은 사사기 공부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사사 시대를 특징지어서 말할 때 영웅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평신도의 시대가 왔다고 했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같은 불세출의 영웅들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또 그분들도 백성들과 함께 소통했습니다. 그때는 사실 백성들 입장에서는 걱정할 것도 별로 없고 모세 할아버지를 찾아가거나 여호수아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평신도의 시대, 이제는 개인이 선택해야 되는 시절이 왔습니다. 그래서 사사 시대는 아주 중요한 핵심 키워드가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습니까? 자유가 있으면 책임이 따르는데, 그 선택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근거로 어떤 것을 기준으로 선택을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레위 지파를 세우시고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말씀 교육, 재판 그리고 예배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전부 다 기준이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라 그랬고, 하나님 말씀에 적혀 있는 대로 예배를 드리라 그랬고,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만약에 분쟁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면 이것을 분별하고 해결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가 타락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내가 해야 되는 겁니다. 그 선택을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그런데 사사기 말씀을 아우르는 핵심 주제 말씀이 "그때에 왕이 없으므로 백성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입니다. 그냥 인간 왕이 없었다는 것도 되지만, 핵심은 우리가 왕으로 정말 모시고 따라가야 될 하나님의 왕되신 말씀을 붙잡고 살지 않았다라는 말씀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예를 들어서 이제 1장부터 쭉 나옵니다. 유다 지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죠.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유다가 올라가야 됩니다. 유다가 어떻게 했습니까? 시므온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거기에 말씀에 뭔가를 덧붙인 겁니다. 또 유다 지파가 잘못한 것이 산악지대는 점령했는데 골짜기에는 철병거가 있으므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선택적 순종. 그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말하느냐? 그건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유다 지파는 베냐민 지파와 겹치는 지역인 예루살렘 지역이 있었는데 거기에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의 일인데 누구의 일도 아닌 게 되어서 그 예루살렘이 400년 동안이나 여부스 족속의 지역으로 그대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게 하나님 말씀이 정확하게 있는데 이 말씀을 조금 더하고 조금 빼고 그것을 과연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보면 잘 모릅니다. 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유다가 올라갔으니까, 사람들 데리고 갔으니까, 시므온 지파까지. 그리고 산지를 점령했으니까.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건 잘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불순종이죠. 그것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갈렙과 옷니엘 - 빛나는 신앙의 본보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주 빛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갈렙, 옷니엘, 악사의 가정이었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가 죽고 자기가 리더십을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알고 하나님의 때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키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기럇세벨을 점령할 때 옷니엘을 데리고 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갈렙은 아주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윗샘과 아랫샘을 한꺼번에 다 줘서 그다음 세대가 풍성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뒤를 봐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2장을 보는데, 사실 사사기 1장과 2장은 본격적으로 사사들이 나오기 직전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서론이라고 하잖아요. 근데 서론부터 이미 사사기는 사사기 전체가 어떻게 흘러갈지를 다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1장에서 나온 것이 2장에서 그 죄악이 더 깊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 이 죄가 진행되는지 오늘 한번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전한 메시지

첫 번째 질문.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1절을 보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이 내용도 아주 중요한데, 정말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될 부분이 누가 나타나셨습니까?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사자라는 것은 누가 보낸 겁니까? 여호와가 보낸 거죠. 하나님이 보낸 거죠. 그러면 여호와의 사자는 무엇을 가지고 왔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온 거죠. 그러면 이 사람은 그냥 할 일 없이 생각 없이 지나가다가 한번 가볼까? 해서 온 게 아니라 사명을 가지고 온 거죠.

이분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 하나님의 군대 장관 이런 분들이 나타날 때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나타나는 겁니다. 메시아가 탄생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수태고지를 하기 위해서 마리아에게 보내지 않습니까? 그전에는 엘리사벳에게도 보냅니다. 아주 중요한 역사적인 분기점이 있을 때 보냅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그러면 이 하나님의 사자가 지금 이 시점에서 찾아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들에게 아주 중대하게 뭔가를 할 말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눈여겨 봐야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선택을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빼버립니다. 그 선택적 순종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럼 뻔한 것이 이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잘하고 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어떻게 된다? 괜찮다. 이제 이것을 여호와의 사자가 전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아주 중요한 타이밍이죠, 이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는 의미

여호수아 5장 14절 15절을 보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러분, 이게 여호수아 5장 끝에 나오는 거거든요. 그러면 이 5장이 끝나고 그다음 6장이 시작됐는데 6장의 첫 시작이 여리고성 정복입니다. 자, 그러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여호와의 사자로 여호수아를 만나러 왔습니다. 거기서 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신 벗으라고 했습니다. 왜 신을 벗으라고 했을까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잖아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결입니다. 신에는 먼지 더러운 게 다 묻으니까. 하나님께서 거룩한 땅, 거룩한 전쟁을 하게 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는데 너희들, 여호수아를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될 첫 번째가 성결이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성결밖에 없다. 신을 벗어라. 그게 첫 번째고.

두 번째, 신을 벗는다는 것은 또 이 권리 포기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룻기 공부했잖아요. 보아스가 성문 위에 올라서서 지나가는 사람 아무개를 불러다가 "네가 나보다 저와 친족이 가까운데 어떻게 할래?" 물으니까 이 사람이 신을 벗어버렸습니다. 그게 무엇이에요? 권리 포기입니다. 그래서 신을 벗으라는 말은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권리를 포기하는 겁니다.

여호수아가 대장이잖아요. 지금 여기에 지휘관, 장군 아닙니까? 그런데 너는 앞으로 이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하고 나서 어떤 권리도 너는 주장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건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여기에서 전리품에 대한 권리도 주장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 이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아주 중요한 시점에 찾아와서 말씀하신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했습니까? 여호수아가 신발 벗죠.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지 않습니까? 그다음부터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 수월하게 이루어집니다. 이건 아주 좋은 케이스.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왔을 때 순종한 케이스.

근데 반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는데 순종하지 않아서 망한 케이스도 있습니다. 열왕기상 11장 9절과 10절.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기는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지 않고 건너뛰고 생략하고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왜 찾아오셨습니까? 솔로몬이 이방 결혼해서 이방의 여인들이 우상을 가지고 들어오니까 솔로몬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 가니까. 거기서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하지 말라. 그것도 몇 번이나, 두 번이나. 하나님이 솔로몬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며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추억이 많잖아요. 또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두 번이나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어떻게 했습니까?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한 겁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오시는 의미

결국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온다, 하나님이 오신다. 이건 우리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죠. 중의적 의미입니다. 첫째는 돌이키면 회복될 것이다. 만약 여기서 돌이키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 끝난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 생활하다가 잘못된 길로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내 마음에 가책이 오고 "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마음에 부담감이 온다면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찾아오시는 걸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우리는 너무 동화적으로 "아 나에게는 여호와의 사자가 오시지 않나? 나에게는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찾아와서 말씀하시지 않나?"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여러분에게,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어떻게? 양심의 가책으로 혹은 말씀 들을 때 찔림으로 혹은 우리가 성경 읽을 때 "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의 결심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면 그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 지금이 분기점이구나. 이 타이밍에 내가 돌이켜야 되는구나."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거기서 계속 직진해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그 인생은.

지금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거기에다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나 더하고 하나 빼고. 바로 그 타이밍에 여호와의 사자가 오셨잖아요. 여기서 그만하라는 말입니다.

하라는 것은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라는 게 무엇이었습니까? 제단을 헐라. 하지 말라는 건 무엇이었습니까? 이 땅 주민과 언약 맺지 말라. 그런데 하라는 건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건 했습니다. 대체로 죄라는 게 그렇습니다. 대체로 음식도 그렇잖아요. 맛있는 건 거의 다 몸에 별로 좋지 않은 것처럼. 죄라는 것도 정말 자극적이고 감각적이고 말초적인데 그게 죄예요. 근데 그 하지 말라는 건 이스라엘이 했고 하라는 건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지금 지적하시는 거죠.

3절.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의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내가 너희를 그들 앞에서 쫓아내지 않겠다." 이 말씀의 본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건 지난 시간 했던 것을 살펴봐야 되는데 1장 19절과 1장 22절을 한번 보십시오. 화면을 보시면 이렇게 나와요.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22절. "요셉 가문도 벧엘을 치러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 거거든요. 함께 하셨다는 말은 철병거가 있어도 올라가고 돌진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준다는 뜻이잖아요. 근데 산지는 갔는데 골짜기는 철병거 때문에 안 갔다고요. 선택적으로 유다 백성들이 요셉 자손도 선택적으로 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막 살려 줍니다. 그런 식으로 살았다고요. 그런데 이제는 이 말씀, 3절에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 말씀은 "내가 너희와 함께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제 너희가 올라가서 한번 해 보려고 해도 내가 너희에게 힘을 줄 생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근데 여호와의 사자가 여기 오셔서 이 말씀을 하는 진의가 무엇입니까? 진짜 이렇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모든 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돌이키면 회복하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제 멈추면 경고라는 뜻이죠.

백성들의 반응 - 울기만 한 회개

그러면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들었을까요? 못 알아들었을까요? 지금 이 사람들이 알아들었을까요? 못 알아들었을까요?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고 못 알아들은 것 같기도 하고, 이 내용만 보면 그냥 문장만 읽어 보면 4절과 5절만 보면 알아들은 것 같아요. 근데 사실은 못 알아들었습니다.

자, 4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우니라." 은혜의 도구인 여호와의 사자가 올라와서 이렇게 하니까 백성들이 소리를 높여 울었어요. 통곡하고 막 부흥회가 막 일어난 거예요. 소리를 높여 막 울었어요. 운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회개 아니에요, 회개. 우리가 예배 시간에 기도하다가 찬양하다가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하는 것 회개잖아요. 돌이킴과 회개.

근데 5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보김은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동사 바카, 바카라는 동사는 울다, 깊은 슬픔으로 통곡하다라는 뜻입니다. 왜 여기가 보김, 우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자 여기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이 그들의 머리를 때렸죠. "아, 잘못했구나." 그리고 그들의 감정이 울렸죠. 그래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무엇이 나와요?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이렇게 나와요. 단락이 완전 달라져요.

자, 깨달았고 울었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럼 그다음 무엇이 나와야 됩니까? 아, 우리가 두 가지 해야 되잖아요. 무엇이요? 그들과 맺은 언약을 파괴하고 이방의 신상과 제단을 깨고, 이 두 가지 해야 되잖아요. 그 두 가지 했다는 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이게 회개입니까? 아닙니까? 아니잖아요. 울었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일어나는 후속 행동이 없습니다. 그것을 회개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게 무슨 회개입니까?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여러분, 회개는 하나의 솔루션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덩어리. 제가 솔루션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우리가 성령에 대해서 공부할 때 아마 기억하시는 분 계실 텐데 성령은 이 세 영역으로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첫째 지성으로, 두 번째 감정으로, 세 번째 의지로.

근데 이 한국 교회가 우리 이 땅의 교회들이 성령이라고 하면 너무 감정에만 역사하는 걸로 오해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뭐 예배드릴 때 찬양할 때 울컥울컥 해야 되고 뭐 눈물이 나야 되고 그리고 가만히 있는데 손도 좀 올라가야 되고 그런데 내 옆에 있는 내 남편 내 아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고 이러면 저 사람 성령 못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은혜 못 받고 저렇게 앉아 있다고 제발 좀 반응 좀 하라고.

근데 성령은 그렇게 감정적으로도 다가오는 한 영이지만 동시에 지성으로도 역사하시거든요. 왜냐하면 성령은 전인적인 영이니까, 지정의를 갖춘 전인적인 영이시니까. 성경을 읽는데 더 읽고 싶어요. 알고 싶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사사기 1장 공부했는데 이번 주 빨리 가서 2장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면 내가 성령 충만한 겁니다. 왜? 내 지성이 지금 막 뜨겁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주로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있는 학생들에게 지성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시죠. 그래서 질문이 많습니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질문하고 궁금한 걸 묻는데 부모들이 "야, 너는 그게 구원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왜 자꾸 따져 묻느냐"고 얘기한다면 그건 성령을 훼방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성령은 감정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은 지성으로 또한 성령은 의지로도 역사하시잖아요.

술, 담배 열심히 하시던 분들이 어느 순간 딱 끊었습니다. "담배 끊는 인간하고는 사귀면 안 된다. 저런 독한 인간하고는 뭐" 그러시잖아요. 근데 그게 사람이 독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한 순간 그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성령은 지정의를 갖춘 영인데 회개가 똑같습니다. 회개란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함께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그것을 회개라고 말합니다.

여기 있잖아요.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얘기했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이 딱 깨달아져요. 그게 무엇이에요? 지성. 잊고 있었던 말씀이 딱 깨달아집니다. "아 그래, 그랬지." 그리고 그게 깨달아지는 순간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내 상황과 지금 내가 이렇게 그 말씀을 못 지키고 있는 내가 너무 미운 거예요. 미안하고 하나님 앞에 죄스럽고 그래서 막 감정이 올라오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무엇을 했어요? 울었어요. 그래서 웁니다. 그 지성과 감정이 일을 했습니다.

그다음 무엇을 해야 됩니까? 이제 나가서 해야지. 이제는 진짜 회개의 삶을 살아야죠. 나가서 제단을 깨뜨리고 그들과 맺었던 잘못된 언약들을 파괴해야죠. 그래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 그게 회개의 삼박자가 다 제대로 갖춰지는 거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그게 회개인데 이 사람들은 지성과 감정만 일하고 그리고 끝. 그래서 여기를 보김, 우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사울의 잘못된 회개 사례

여러분, 성경에 이런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24절과 25절을 보시면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누가 하는 말이에요? 사울이 누구에게? 사무엘에게. 사무엘이 지금 사울에게 와서 무엇을 책망했느냐?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고 자기 눈에 좋은 짐승 감춘 것을 책망한 거거든요. 그때 사울이 "잘못했다" 했어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제가 예배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어요. 이게 회개입니까?

자 그다음을 보십시오. 30절과 31절. 사울이 말합니다.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를 높이사" 자기 체면이 지금 말이 아니다는 거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예배드려라." 이렇게 예배드렸어요. 지금 보김 사람들도 하나님께 제사했습니다. 울었습니다. 통곡했습니다.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행동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세례 요한도 얘기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무엇을? 열매를 맺으라"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까? 여기에 없잖아요. 근데 이게 무슨 회개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예배 시간에 저분이 반응하는 걸 보고 저분이 믿음이 있다, 없다 판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는 저분들의 삶을 보고 "아, 저분이 신앙이 있다, 없다" 판단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절대 없습니다. 그분들의 믿음은 자신들 삶에서 돌이킴으로 결정되는 겁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

여러분, 열매는 어떻게 맺습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맺어집니까? 씨를 뿌려야죠. 땅 파야죠. 농사 지어야죠. 열매 맺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자, 죄를 지었습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속도가 붙는다고 합니다. 가속도가 붙습니다. "아, 이거 잘못되었네. 돌이켜야 되겠네." 멈춰서서 시간과 힘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달려오는 물체를 세우는 데는, 가속도가 붙은 물체를 세우는 데는 그만큼의 힘이 몇 배로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자동차끼리 정면 충돌해 보세요. 어떻게 되나? 그 안에 있는 사람 다 죽지. 그러니까 그만큼 에너지가 많아서 세워야 되는데 거기에 회개하는데 얼마나 큰 에너지가 들겠느냐고요. 그리고 나서 다시 그 에너지를 역행해서 거꾸로 밀고 올라가야 됩니다. 다시 땅 파야 되고 씨 뿌려야 되고 농사 지어야 되고 시간이 지나야 되고 그리고 열매를 맺는 거예요.

입술로 그냥 한번 회개했다고, 입술로 "내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회개했다고 그다음날 내 삶이 달라지던가요? 안 달라집니다. 똑같습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구해야 됩니다. 성령의 도움을. "하나님, 제가 의지가 부족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 의지력을 가지고 끝까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해 달라"고. "아, 그렇게 안 살아야지"라고 했는데 또 죄가 유혹하면 다시 그 자리에 가 있습니다. 또다시 그 생각하고 또다시 그 행동하고. 이것을 멈춰 세우고 거꾸로 밀고 올라가려면 그거 하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 여호와의 사자가 오셨잖아요. 여기서 "하나님, 우리가 울고 예배드리고 통곡하는데 힘이 없습니다. 이것을 멈춰 세우고 밀고 올라갈 힘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의지를 주시고 힘을 주십시오" 하면 안 주셨겠습니까? 주셨겠죠.

그래서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같이 해야 돼요. 여러 사람들이 가족이, 그리고 우리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같은 공동체에서 저분의 사정을 알고 힘을 같이 실어 주고 기도해 주고 그래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근데 이분들은 울기만 했습니다. 다 울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놓쳤습니다. 발로 차버렸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오셨는데. 우린 이렇게 되면 안 됩니다.

다른 세대의 등장과 신앙 교육의 부재

자, 여호수아 시대의 세대와 또 다른 세대, 다른 세대가 나타나죠. 자, 8절 한번 보세요.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었고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헤레스에 장사하였더라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알지 못했다고 했어요.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했어요.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고 했어요.

여러분, 이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말씀, 진짜 몰랐을까요? 하나님 몰랐을까요? 알았죠. 왜 몰랐겠습니까?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사기 기자가 고발하고 싶은 건 신앙 교육에 전승이 안 됐다는 얘기입니다. 신앙 전승을, 신앙 훈련과 교육을 못 했다는 얘기입니다. 뒤에 가면 또 나와요. 여호수아가 살았을 때는 괜찮았어요. 근데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 멋대로 사는 거예요.

영웅의 시대가 지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 분별하고 판단해야 되는데 그것을 안 하는 거죠. 그러니까 잘못 가르치는 거죠. 부모 세대는 믿음 생활 잘하고 왕성했습니다. "나는 신앙생활 잘합니다" 그랬는데 우리 자녀는 아니에요. 그건 내가 잘못한 거 아닙니까? 내가 신앙 교육 제대로 못 한 거 아니에요? 교회가 못한 거 아닙니까? 가정이 못했고 교회가 안 했고 교회와 가정이 책임지는 거죠. 그건 하나님 앞에 가서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목회자와 교사들과 중직들과 부모 세대가 책임져야죠.

여호수아가 그것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 마지막까지 불러놓고 "오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니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자, 신앙 교육의 부재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제가 에베소서 6장 4절을 적어뒀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이 말씀은요, 사실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하나님 말씀이 절대 기준이 되어야 된다. 뭐 세상 학문 가르치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살아 분별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자, 이럴 테면 우리 자녀들이 혹은 우리 성도들이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살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일날 교회로 옵니다. 공동체로 옵니다. 소그룹으로 옵니다.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옵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을 가지고 한번 이렇게 살아봤습니다. 이렇게 했는데 이건 되고 이건 안 되던데요" 하면 그것을 가지고 다시 나누고 또 그것을 교정해 주는 겁니다. 그게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야 되고 교회 공동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야 됩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서 소그룹 성경 공부들을 통해서, 우리 교회 같으면 정원을 통해서, 여전도회 남선교회 모임을 통해서 공동체가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이야기, 경제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주식 이야기 등등의 이야기로 꽃피우지 말고 그건 얼마든지 우리가 다른 데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가 모였다는 건 주의 교훈과 훈계로 내 삶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점검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말씀이 중심에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개모임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습니까?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 말씀 중심이어야 되고 가정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공동체 어디 갔다 온 아이들 불러놓고 뭐 등등 기타 등등의 이야기 말고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그 아이들의 삶을 함께 나누는 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신앙 교육에서는 그게 주의 교훈과 훈계입니다.

새로운 세대의 우상 숭배

그다음 16쪽을 보시면 비참한 얘기가 나옵니다. 새로운 세대가 우상을 섬기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잘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또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아,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또 나오죠.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아스다롯이 나왔으니까 요것만 가볍게 짚고 넘어갈게요. 아스다롯 보셨습니까? 그림이나 사진으로. 아스다롯과 아세라는 같은 신입니까? 다른 신입니까? 가나안 땅을 기준으로 가나안 남쪽에서는 아스다롯이라고 부릅니다. 가나안 중북부 지역에서는 아세라고 부릅니다. 그 바알과 아세라가 세트잖아요. 바알이 남신이고 아세라가 여신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 북쪽 지역은 아세라고 부르는 이유가 두로와 시돈이 있잖아요. 두로와 시돈의 공주 이세벨, 우리가 구약 공부할 때 했는데 이세벨이 북 이스라엘에 시집올 때 사명을 가지고 왔는데 이세벨의 사명은 북 이스라엘에 바알 신앙을 전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똑같은 아세라를 가나안 땅 남쪽 사람들은 아스다롯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요단강을 건너서 동쪽으로 가면 이 아람 사람들이 있거든요. 아람을 요즘으로는 시리아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들은 아시라고 불렀습니다. 아 들어보셨습니까? 아, 똑같은 여신이에요. 또 그게 더 동쪽으로 가면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을 만나는데 거기에 바벨론 사람들은 이 신을 이슈타르라고 불렀습니다. 이슈타르 들어보셨습니까? 이슈타르.

그래서 아세라나 아스다롯이나 아시나 이슈타르는 다 똑같은 여신입니다. 그런데 이 여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풍요와 다산입니다. 풍요와 다산. 이 여신을 섬기면 풍요와 다산은 보장되어 있다, 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바알, 바알 아시죠? 농경의 신, 농사의 신. 바알의 아내가 되는 여신입니다.

자, 그런데 뭐 그건 우리가 크게 중요하진 않은데 지금 13절을 보시면 "곧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를 버렸습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타락의 단계적 진행

여러분, 이건 2장으로 가니까 1장과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죠. 어떤 분위기요? 1장에서는 그래도 유다 지파는 한 발은 여기, 한 발은 저기에 걸쳐 있었습니다. 그렇죠? "유다가 올라가라." "아니요, 시므온도 데리고 갈게요." 산지는 점령하고 골짜기는 점령하지 않고, 책임지고 책임지지 않고, 이런 식으로 적당하게 했다면 2장으로 가니까 이제 그들의 조상들이 다 죽고 다 떠나고 나니까 이들이 어떻게 됐습니까? 여호와는 버리고 우상을 섬깁니다.

자, 이제 처음에는 완전 신앙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때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사사기가 시작하는 1장에는 반쪽짜리 신앙입니다. 2장으로 오니까 완전 타락입니다.

여러분, 타락의 순서가 이렇게 갑니다. 처음부터 한 방에 가는 거 없습니다. 순서가 이렇게 진행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장에서 2장으로 넘어가는 시점, 2장 1절에 누가 오셨습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오신 거예요. 완전 타락으로 가기 전에.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너무 중요한 겁니다. 그분의 등장이. 하나님이 딱 보고 있다가 "야, 이 타이밍 놓치면 이제 이 분기점을 지나가면 이제 이들을 완전히 잃어버리겠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낸 거거든요.

반응했습니다. 지식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게 모자라는 건 의지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거예요. 회개는 전인적으로 일어나야 되는데 전인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겁니다. 2장에 가니까 완전 박살 나잖아요.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거. 버렸어요. 이전에는 한 발은 담고 있었는데.

현재 우리 시대의 상황

여러분, 그러면 우리 세대를 보세요. 우리나라가 기독교 복음 이제 140주년입니다. 140년 동안 이 땅에 기독교가 쭉 들어와서 복음화되어져 왔습니다. 이 신앙의 1세대들은 우리는 못 봤어요. 사실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님에게 복음 듣고 신앙생활 했던 거. 우리는 책으로만 혹은 설교로만 뭐 등등의 자료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한국 전쟁 세대를 겪었던 분들의 신앙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직접 받고 경험했고 우리도 어려운 추억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교회가 얼마나 세련되어 가고 현대화되어 가는지 우리는 너무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 하셨던 분들은 옛날에 마룻바닥도 아니고 그냥 거적때기였잖아요. 그죠? 거기서 마루바닥, 거기서 방석 그러다가 의자 들어오고 그러다가 지금 시원한 에어컨 틀고 예배드리고 그렇죠. 옛날에 에어컨 어디 있습니까? 선풍기 어디 있습니까? 그냥 예배드리는 거지. 그냥 그런 세대를 우리는 수십 년을 아주 빠르게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완전한 신앙이었다가 조금씩 사탄에게 잠식되어 잠식되어 가다가 나중에 어떻게 될까요? 이제는 교회 안에 동성애가 들어와요. 교회 안에 뭐 "그게 어때서" 이렇게 돼요. 이제는 여러분, 이게 무서운 거예요. 이게 처음에 틈을 주면 사탄은 발가락 하나만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그 발가락이 발가락 두 개가 되고 나중에는 한 발이 되고 나중에는 무릎이 들어오고 어깨 들어오고 다 들어옵니다. 안방까지 내어 줍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수시로 나타나서 "그거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타협하잖아요.

여로보암의 죄 - 짝퉁 신앙의 시작

우리 가정에서도 그렇고, 이건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흐름이고 정신인데 우리 구약 공부할 때 이미 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을 어떻게 나뉘었습니까? 남유다, 북 이스라엘로 갈랐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남유다는 르호보암이,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그러면 솔로몬의 아들은 르호보암인데 여로보암이 북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북 이스라엘은 12지파 중에 열 지파가 있습니다. 무려. 그러면 따지고 보면 어차피 같은 이스라엘이지만 북 이스라엘이 훨씬 더 인구도 많고 군사력도 강하고 세력도 크다는 얘기예요. 거기에 첫 번째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그러면 여로보암이 잘했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그분을 통해서 흘러갔겠죠.

근데 여로보암이 왕이 딱 되고 나니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무엇입니까? "아, 우리는 열 지파. 남쪽은 유다 지파와 유다 지파 안에 더부살이하고 있는 시므온 지파. 두 개밖에 없거든요. 압도적입니다. 자기들이." 그런데 하나 부족한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전이 없어요. 성전이. 국경을 딱 나눠 놓고 나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남쪽에 있잖아요. 남유다는 아무것도 없는데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이분 마음속에 불안감이 딱 들어옵니다. 어떤 불안이요? 1년에 세 번씩 유대인들은 성전에 올라가서 20세 이상 남자들은 하나님께 자기를 보여야 됩니다. 유대인의 명절 세 번. 그러면 그것을 허락해 주면 북 이스라엘의 20세 이상의 남자들이 남유다의 유월절 지키러 갔다가 유다의 왕 르호보암이 국경을 폐쇄하면 안 돌아올 거 아닙니까? 그럼 어떻게 돼요?

그래서 이분이 생각한 게 이거죠. 열왕기상 12장 28절과 29절.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니라."

이래서 금송아지가 생긴 거죠. 북 이스라엘을 지도를 놓고 보면 북 이스라엘에서 가장 남쪽이 벧엘이고 가장 북쪽이 단입니다. 그래서 북쪽 사람들은 단에 가서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남쪽 사람들은 벧엘에 가서 숭배하고. 그래서 남쪽으로 못 가게 자기네들이 국경을 막아 버렸어요. 성전 비슷한 거 지었습니다. 건물 지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형상 하나를 딱 둔 거예요. 송아지를. 그 송아지가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한 하나님이다" 이렇게 가르쳤어요.

또 두 번째, 세 번째 한 일도 있습니다. 31절과 32절을 보시면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 곧 그 달 15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여기 중요한 거 "비슷하게 하고"가 중요해요. 두 가지 더했죠. 첫 번째는 벧엘과 단에 산당 짓고 금송아지 둔 거. 두 번째는 그것을 섬길 제사장이 필요할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 제사장들 다 어디 있습니까? 남쪽 성전에 있잖아요. 제사장이 없어요. 그래서 일반인 아무나 데려다가 옷 입히고 제사장 옷 입히고 "너희가 그냥 지금부터 제사장 해라. 처음부터 제사장이 어디냐? 너희들이 그냥 제사장이다" 하고 임명해 준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 절기가 있을 거 아니에요. 절기. 유대인의 절기. 세 번의 절기. 근데 그 절기와 날짜를 비슷하게 했어요. 그게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 읽어 보면 "아무개 아무개 왕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게 나오죠.

짝퉁 신앙의 특징

이것을 우리는 짝퉁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성전은 있는데 공간은 있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우상이 있고, 제사장은 있는데 레위인이 아니고 일반인이고 훈련받은 제사장이 아니고, 절기는 있는데 날짜가 비슷한 그런 가짜 절기. 그게 북 이스라엘의 정신이에요. 거기서부터 북 이스라엘이 점점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왕이 그렇게 타락하니까 나중에 어떤 왕이 나옵니까? 아합이 나오는 거예요. 거기서 거기서 조금 더 가니까 아합과 이세벨이 나오고, 조금 더 가니까 북기가 완전히 손 쓸 수 없을 게 될만큼 망해 버리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거 있잖아요. 처음 시작하는 거. 하나님은 처음 시작하는 거 너무너무 중요하게 보셨어요.

처음의 중요성

여러분, 우리는 그 처음 시작하는 걸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우리 교회가 신혼부 선교회라는 걸 하잖아요. 그죠? 우리 아이들이 학교 가잖아요. 또 우리 자녀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잖아요. 또 우리가 첫 직장에서 수고해서 첫 월급을 받잖아요. 다 첫 거잖아요. 또 내가 어떤 곳에서 뭔가를 처음 시작하잖아요. 그럼 그거 하나님도 긴장하고 보신다는 거 아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처음이 잘못되면 이만큼 잘못되면 한 10년쯤 가면 이만큼 벌어지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여리고성 전투, 가나안 땅 48개의 성 중에 첫 번째 성입니다. 여리고성 전투에서 헤렘 명령 내렸습니다. 다 멸하라고. 전리품 하나도 가지지 말고 여호와의 창고에 다 갖고 오라고. 누가 어겼습니까? 아간이. 아간 어떻게 됐습니까? 다 토해냈잖아요. 그거 토해내고 죄물 다 갖고 왔어요. 회개했어요. 그럼 살려 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정상적으로는. 우리로 치면 뭐 징계위에 뭐 이렇게. 근데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가혹하신 거 아닌가? 가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첫 것이니까. 첫 번째 성이니까. 거기서부터 잘못되면 가나안 땅 정복 전쟁 전체가 다 엉망되니까.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 아나니아와 삽비라. 그 사람들 어떻게 됐습니까? 부부가 동시에 한 날 같이 죽었습니다. 사실 그 정도 욕심 우리 다 가지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유명하게 되고 싶고 교회에서 중직이 되고 싶고 그런데 자기 재산은 아깝고 반은 주고 반은 감춰두고. 그런데 죽었습니다. 왜? 첫 번째 교회니까. 첫 번째 교회. 만약에 그거 용납하면 그 첫 것이 갈수록 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가서 전체를 다 집어삼키니까.

그래서 우리 처음 중요합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뭔가 처음 시작할 때 기도 많이 해 주셔야 됩니다. 그거 잘 잡아 주셔야 됩니다. 교회도 개척할 때 처음 교회, 첫 예배, 처음 처음 처음 이거 너무너무 중요하고 우리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처음이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뭐 다들 그렇게 하시지도 않는데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이사 가서 이사 감사 예배드리잖아요. 근데 요즘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이 뭐 그런 걸 뭐 이사 감사 예배 드리냐고 그냥 가서 잘 살면 되지." 그렇지 않아요. 처음이잖아요. 내가 이 가정에 와서. 근데 어떤 마음으로 내가 예배드리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이 집에 이사 와서 우리 모든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이곳에서는 하나님만 잘 섬기는 가정을 삼겠습니다"라는 결단으로 예배드리면 얼마나 중요하고 좋습니까?

신혼 부부가 신혼 여행 다녀와서 첫 예배를 자기 가정에서 드리는 거. 이거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처음이, 처음이 이렇게 되니까. 처음이 이만큼 틈이 생기니까. 지금 유다 백성들, 이스라엘 백성들 완전히 박살하죠.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더라."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죄와 똑같습니다.

여러분, 이건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사사기 1장과 2장은 아주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타락이 이렇게 급하게 진행됩니다. 잘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자, 14절을 보십시오. 이제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왜 진노하셨을까요?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 듣지 않았잖아요.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가 많죠. 첫 번째 말씀대로 하지 않았고, 두 번째 여호와의 사자 보냈는데 울긴 했는데 그런데 반응하지 않았고 그랬죠. 그리고 이제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죠. 그러니 진노하죠.

"이제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랬습니다. 넘겨주다, 넘기다라는 말. 넘기다, 팔아치우다라는 뜻입니다. 팔아치우다, 팔아버리다. 히브리어 마카르라는 동사를 썼는데요. 매매하다. 또 다른 뜻으로 소유권을 이양하다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나의 소유 안에 두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거 무섭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자기 소유 안에 두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나님의 소유권 포기의 의미

이사야 5장 5절과 6절 한번 보십시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내 포도원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의 삶의 자리죠.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울타리 걷는다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소유권을 넘기시면, 하나님이 소유한다는 건 책임진다는 뜻이거든요. 하나님이 울타리를 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안전합니다. 우리는 내가 잘해서 내가 똑똑해서 내 사업과 내 기업이 잘되고 내 가정에 문제가 없고 내 자녀들 건강하고 지금 이렇게 산다고 생각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유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지키고 돌보고 계시기 때문에 이만큼 사는데,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팔아넘기시면 우리가 조금 조금씩 벌어지다가 완전히 우리 신앙이 타락하게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팔아치우시면 소유권을 이양하시면 이제는 하나님 백성이 아니니까 하나님이 돌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저주고 그게 심판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래서 계속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이 사건도 터지고 저 사건도 터지고, 이 일도 일어나고 저 일도 일어나고. 무서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사들의 순환 패턴

자, 1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8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지금 이 말씀은 3장부터 나올 사사 시대의 요약이에요.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음으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러분, 이 말씀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살아 있을 때는 잘했다는 얘기예요. 사사도 위대한 사사들 많잖아요. 뭐 기드온도 있고 드보라도 있고 에훗도 있고 입다도 있고 뭐 등등 위대한 사사들이 많죠. 근데 그런 특별한 사사들이 살아 있을 때는 잘했어요. 근데 그가 죽고 나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들 다시 원점이에요.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유가? 모세와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들이 다시 우상을 섬기게 된 이유와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건 신앙 교육에 실패해서 그런 거예요.

진정한 신앙 교육이란

그러면 신앙 교육이 무엇입니까? 데리고 앉아서 맨날 성경 읽어 주고 가르치는 게 신앙 교육입니까? 신앙 교육의 핵심은 홀로서기입니다. 분별력을 주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이 시대 한국 교회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있잖아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 중에 하나가 목사님들 중에 스타들이 좀 계셔요. 스타 목사님들을 맹목적으로 그분들을 따르는 분들이 계셔요. 근데 목사는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는 그냥 스피커잖아요. 스피커. 누구의 스피커요? 하나님의 스피커. 그 목회자가 하나님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전하는 걸로 끝이에요. 그렇잖아요. 목회자가 그거 이외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그런데 거기에서 신성화되고 절대적이 되고 거기서 권력을 누리고 그리고 성도들은 본인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고 이게 진짜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하려고 들지를 않습니다. 그냥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그냥 무조건 받아요. 그냥 "목사님 말씀하셨는데 뭐 틀리게 하겠어. 그게 뭐 거짓말이겠어. 뭐 도둑질하지, 도둑질하라는 말 그거 말고는 다 지키면 되지 뭐."

여러분, 그렇게 믿으면 나중에 같이 망합니다. 같이 망해요. 그분 세상 떠나고 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만약 그분이 사탄의 권세에 걸려 넘어져 가지고 타락하고 나면 그럼 내 신앙은 어떻게 됩니까? 그다음은 어떻게 돼요?

"우리 부모가 날 위해 기도해 줬어요. 모세처럼 여호수아처럼 우리 부모가 내가 결정할 문제 다 결정해 줬어요. 너 이거 이렇게 해야 돼. 너 이거 이렇게 해야 돼. 하나님 이렇게 하라 그랬어." 그럼 나는 엄마한테 와서 맨날 물었어요. 아빠한테 맨날 물었어요. 근데 그분이 갑자기 세상 떠났네요. 나 어떻게 살아요? 그다음은 무당한테 가요.

그다음에 진짜 중요한 건 독립 신앙을 길러 주는 겁니다. 제일 중요한 거. 스스로 성경을 읽어야 되고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수 있어야 되고 내가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서 이 말씀이 참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아 저건 저건 아무리 봐도 아니야"라고 내가 생각할 수 있어야 되고.

그래서 우리는 자기 스스로 성경을 읽는 힘을 길러야 됩니다. 제발. 그래서 우리는 우리 이번에 사사기 공부할 때 개인 묵상집 드렸잖아요. 그죠? 그거 복습하고 그거 예습하고 와서 그리고 내가 공부도 하고 그리고 저 목사가 사기 치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좀 들어보고 "목사님 그거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도 얘기해 주고 그래야, 그래야 우리가 내 신앙을 내가 지킬 수 있습니다.

독립적인 신앙, 분별할 수 있는 신앙. 그런 분들이 많아져야 돼요. 그런 분들이 함께 연대하고 그런 분들이 함께 말씀 나눔을 하셔야 돼요. 그게 교회 공동체 아니겠습니까?

가정에서도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스스로 홀로서게 할 수 있도록 길러내야 됩니다. 그게 교회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교회가 건물 크게 지어서 뭐 합니까? 교회가 헌금 많이 거둬서 뭐 합니까? 교회는 성도들을 독립적 신앙 인격으로 길러서 어디에 던져놔도 저 북한 땅에서도 저 시베리아 땅에서도 저 사막 한가운데 있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그런 실력 있는 신앙인을 길러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꼴이 된다니까요.

사사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잘하다가 그분이 죽고 나니까 엉망되고, 여호수아가 죽고 나니까 엉망되고. 여러분, 그건 신앙 전승이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집 물려 주는 거, 자녀들에게 돈 물려 주고 재산 물려 주는 거 그거 애들 망하게 하는 겁니다. 스스로 하나님 말씀 붙들고 설 수 있도록, 잘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도 하나님 말씀을 자기들이 먹고 읽고 묵상하고 홀로 설 수 있도록 그것을 가르쳐야 되는 겁니다. 교회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그것을 못 해서 사사 시대가 이렇게 혼란한 지경이 온 거고 오늘 지금 우리 시대도 사사 시대와 똑같은 겁니다.

부디 우리가 힘들더라도 내가 성경을 읽고 내가 말씀을 씹어 먹고 이게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 말씀이 정말 그러한지 분별하고 묵상해 내야 됩니다.

결론 -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 두신 목적. 이제 그들이 안 쫓아내니까 하나님도 소유권을 이관하셨잖아요. 23절.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지 아니하셨더라."

그냥 넘겨 두신 거예요. 그냥. 이제 그걸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잘 살펴보시고 또 복습해 보시고 또 되돌아보시고.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사들의 열전, 사사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가운데 말씀으로 위로 주시고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틀어졌던 것이 완전히 타락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금씩 한발은 하나님의 말씀에 한발은 세상에 두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사자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난 이후부터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절대 닥치지 않도록 깨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개는 전인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성으로, 감정으로, 의지적으로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루 이틀 수고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열심히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열심히 농부의 수고를 다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습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겠습니다. 그들이 주의 말씀을 읽고 스스로 분별하고 스스로 살아내고 그 말씀이 진리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하고 살아내는 놀라운 역사로 신앙 전승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세대가 끝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나라 간 이후라 할지라도 우리 자녀들은 믿음을 더욱더 굳건하게 안정적으로 잘 지켜 나가도록 도우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믿음의 세대가 영원히 이어지고 전승되고 계승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