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 구원자들을 세우시다 / 전체녹취

강 번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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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특강(3) - 구원자들을 세우시다(삿 3장)

본문: 사사기 3장 9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사사기 서론 정리

사사기 1장과 2장은 사사기 서론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서론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그 사사들 이야기가 나오는 오늘부터 3장 이야기를 함께 다룹니다.

1장과 2장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면, 사사 시대는 영웅의 시대가 끝나고 이제는 개인의 선택의 시대, 개인의 결단의 시대가 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영웅의 시대는 모세 그리고 여호수아로 이어지는 시대는 사실 개인이 결정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다 알아서 해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정착 시대를 맞이하면서부터는 본인이 선택해야 됩니다. 그런데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기준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기준이 중요한데, 절대 불변의 기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절대 기준인 말씀을 근거로 판단하지 않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순종을 하기는 하는데 선택적으로 순종하고 선택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안타까이 여기시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온전한 순종을 하라고 책망합니다. 그 책망을 받자마자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울었습니다. 통곡합니다. 그런데 울고 통곡하는 것으로 그친 나머지 그 자리를 '보김'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는 자들'이라고요.

원래 회개라고 하는 건 전인적이어야 되는데, 지·정·의가 함께 작동할 때 제대로 된 회개라고 말합니다. 우선 머리로 깨닫고 가슴으로 뜨거워져서 눈물이 났다면, 그럼 회개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됩니다. 지속적으로 그 회개가 계속 기능해야 그걸 온전한 회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온전한 회개에 실패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지속적으로 그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고, 처음에 선택적 불순종이 시간이 지나면서 2장 끝에 가니까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좇았더라" 그렇게 갑니다. 완전한 불순종으로요.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의 죄처럼 처음에는 자그만하게 들어왔다가 나중에는 완전한 실패로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또 심각한 것은 세대 전승이 안 됐습니다.

세대 전승의 실패

사사기 전체 주제를 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사사들이 살았을 때는 제대로 하다가 사사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그들은 다시 원점이었습니다. 그건 신앙 계승에 실패한 것이고 신앙 교육에 실패한 것입니다.

결국 영웅들의 신앙생활에 기대했지, 자기들은 말씀을 가지고 분별하고 말씀을 가지고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가정에 믿음 교육, 신앙 교육 시스템들이 다 붕괴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족속들을 남겨 두신 목적 (1-3절)

그런 전제를 가지고 오늘 3장 말씀을 대합니다. 1절에서 3절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족속들을 남겨 두신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서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두신 이방 민족들은..."

여기까지 읽으면 좀 이상합니다. 느낌이 이상하다는 걸 느끼셔야 됩니다.

3절: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헷 족속이라"

여러분 여기 표현들을 잘 보셔야 됩니다. 지금 핵심은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쫓아내지 못한 이방 족속들이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누구누가 남아 있습니까? 블레셋 족속 다 남아 있죠. 모든 가나안 족속 다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했다고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아직까지 여전히 그들은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그들, 그대로 있습니까? 그들도 시집 가고 장가 가고 애들 낳고 번성하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인구가 늘어날 것 아닙니까?

자, 그런데 이들을 남겨 두신 분이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2절에 보니까 하나님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 1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라고 말했고, 또 남겨 두신 목적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시험하려고 남겨 두셨다고요.

근데 이건 우리가 1장과 2장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전혀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1장과 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너희가 올라가면 쫓아내게 할 거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문자 그대로만 이해를 한다면, 하나님이 어차피 남겨 두셨을 거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투하러 올라가도 그들을 못 쫓아냈을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시험 도구로 사용되는 잔존 족속들

이렇게 상호 충돌하는 말씀이 가끔 하나님 말씀에 나옵니다. 그러면 이걸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느냐?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 방향은 한 가지입니다.

일단 지금 가나안 땅에 쫓아내지 못한 이방 족속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하나님이 그들에게 쫓아낼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건 우리가 1장과 2장을 통해서 이미 배운 바입니다. 올라가기만 하면 쫓아낼 수 있는데 선택적으로 순종하고 선택적으로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못 쫓아낸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남아 있습니다. 이 남아 있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남은 그다음 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시험의 대상으로 사용하신다는 뜻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만약에 윗세대가 이전 세대가 정착할 때, 그 세대가 원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믿음을 가지고 가나안 일곱 족속을 싹 쓸어 버렸다면, 블레셋도 다 쫓아버렸다면 남아 있는 자가 없을 것 아닙니까? 그럼 남아 있는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 다음 세대, 자녀 세대들에게도 그들은 시험거리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런 의도로 이걸 이렇게 기록해 놓은 겁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는 "그래, 너희들이 못 쫓아냈구나. 어차피 쫓아내지 못한 것, 그러면 이제 이들을 내가 사용해서 너희 후손들을 시험하는 도구로 내가 사용하마. 이제 앞으로 너희 후손들은 너희가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일곱 족속과 블레셋 족속 때문에 많이 괴로울 거야." 그 말씀입니다.

윗세대의 책임과 다음 세대의 대가

이걸 보면 윗세대가 죄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그 대가를 누가 봤습니까? 다음 세대가 받는 거예요. 윗세대가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하지 못하고 청산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대가를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내 자식 세대가 그대로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걸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하지 못했으니까요.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우리 부모 세대에서 돈 문제, 경제적인 관념을 자녀들에게 명확하게 심어 줘야 됩니다. 이 물질이 누구로부터 온 것이냐? 누구 겁니까? 하나님 거 아닙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물질, 이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 개념을 명확하게 심어 줘야 되는데, 그걸 흐릿하게 남겨두었습니다. 거기에 사탄이 틈타도록 정확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게 우리 자녀 세대에게 시험거리가 됩니다.

명확한 신앙 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고 유산만 남겨뒀습니다. 집을 남겨주고 땅을 남겨 주고 물질을 남겨 줬습니다. 그럼 그게 자녀들에게 시험거리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 세대에서 영적 전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지 않고 흐릿한 상태로 던져두면, 그게 우리 자녀들에게는 전부 다 올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됩니다. 특별히 자녀를 사랑하신다면, 이 나라 이 민족 우리 다음 세대, 맨날 입으로만 다음 세대 다음 세대 하는데,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믿음 생활 제대로 해서 깨어 있고 죄 문제 깔끔하게 청산하고 세계관 신앙관 인간관 물질관 등등을 제대로 딱딱딱 세워 줘야 됩니다. 그거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대로 물려 주지 못하면 자녀 세대 가서 다 망합니다. 그게 전부 다 올무가 되고 시험거리가 되니까요.

하나님의 순수성 검증 (4절)

4절 보시면 이제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여'라는 표현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남겨두신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누가 시험합니까? 하나님이 조상들이 쫓아내지 못한 이방 민족들, 그걸 도구삼아서 하나님이 현세대,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를 시험하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이 '시험하다'라는 동사 히브리어 '나사'라는 말을 썼습니다. 히브리어 '나사' 무슨 뜻입니까? '순수성을 검증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을 남겨 두셔서 그들의 순수성을 검증하신다고 하면, 만약에 그걸 남겨 두지 않았더라면 이 시험의 검증의 대상이 다음 세대가 될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검증하시면 그럼 나는 검증받아야 되잖아요. 검증받을 때는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검증하시면 나는 에너지와 시간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모릅니다. 윗 세대가 청산하지 못한 악한 유산이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를 훈련하시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겁니다.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께 검증받으면서 에너지와 시간을 사용해여 합니다.

훈련받는 거 좋은 거죠. 나쁜 것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 윗세대가 이 문제를 청산해 버렸다면, 이런 쓸데없는 것으로 훈련받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이런 걸로 내가 검증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하나님은 영원하시지만 우리 인생은 길어야 80년 90년, 그중에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짧은 세월을 사는데 어떻게 훈련만 받다가 볼일 다 보겠습니까?

광야 40년의 교훈

이스라엘 백성들 출애굽했습니다. 자, 출애굽했는데 가나안 땅으로 오는 여정에 광야에서 몇 년 동안 있었습니까? 40년. 우리가 구약 개론 공부할 때 배웠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출애굽시킬 때부터 원래 40년을 생각하셨을까요? 아니었을까요?

원래 하나님의 의도는 40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켜서 바로 시내산 아래로 데리고 갑니다. 시내산에서 두 가지를 주셨죠. 십계명 율법, 두 번째 성막. 그리고 다시 출발시킵니다. 어디로? 바로 광야로 가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딱 갑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땅 저 남쪽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입니다. 거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여장을 풀게 하고 각 지파별로 한 명씩 12명 뽑아서 가나안 땅 40일 동안 정탐시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지형과 지물을 다 확인하고 바로 밀고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정탐하는 사람들의 보고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10대 2,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 그런데 그 정탐꾼들의 문제 보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 보고를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울고 불고 난리입니다. "우리가 이제 돌아가자. 지휘관을 다시 세우자." 그리고 돌을 들어서 모세를 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그래서 거기서 하셨던 말씀 민수기 14장 34절 3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쳐서 그 40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더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자, 이 말씀을 보면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12명의 정탐꾼이 딱 한 마음이 되었고 돌아와서 제대로 보고했고 백성들 같은 마음으로 가나안 땅에 밀고 들어갔으면, 그들은 40년간 광야 방황할 일이 없습니다. 훈련받은 겁니다. 진짜 이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그 순수성을 하나님께서 검증하신 겁니다. '나사' 하신 겁니다. 이게 훈련이거든요.

그런데 이 시간이 얼마나 아깝습니까? 아깝잖아요.

훈련 시간의 최소화

야곱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을 오랫동안 훈련시킵니다. 왜? 자기 의를 꺾지 않으니까. 계속해서 거짓말하니까. 지속적으로 자기 욕심대로 사니까 하나님이 그를 지속적으로 훈련시킵니다. 평생을 훈련받습니다.

훈련이 나쁜 것 아닙니다. 그런데 훈련받는 시간은 최소화하고 쓰임받는 시간이 길어야 됩니다. 훈련의 시간은 빨리 끝내고 졸업하고 끝내야 됩니다. 그다음에 훈련을 졸업하고 그다음에는 쓰임받는 시간이 많아져야 됩니다.

예수님 제자들 보십시오. 딱 3년 훈련받고 평생 쓰임 받습니다. 훈련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시간이 갈수록 짧아집니다.

부모 세대가 청산하지 못한 과거와 죄 문제 때문에 다음 세대, 자녀 세대들이 거기서 하나님 앞에 순수성을 검증받느라 시간을 보내야 됩니다. 이게 아깝지 않으세요?

부모 세대에서 이 많은 시간에 우리가 물질 문제 물질관을 자녀들에게 똑바로 세워 주고, "하나님 앞에 드릴 건 이런 거야.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거는 이런 거다. 예배 생활은 이렇게 해야 된다. 헌금 생활은 이렇게 해야 된다. 믿음 생활은 이렇게 하는 거다. 섬김은 이렇게 하는 거다." 그걸 제대로 보여 주고 정리 정돈을 딱 해 주고 내가 하나님 나라 가야지, 그래야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 앞에 쓸데없는 순수성을 검증받는 이 시련의 시간들이 빨리 끝나고 이 아이들은 쓰임받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그렇게 원치 않으세요?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종들이 되어야 되는데, 그런데 하고 많은 시간들은 죄짓는다고 다 흘려 버리고 훈련의 시간들은 우리가 훈련받지 못하고 그거 정리 정돈 하지 못하고, 뭘 그렇게 먹고 사느라 바빠서 딴 일 하느라 세월 보내고 그걸 자녀 세대에게 또 넘겨 줍니까? 이게 너무 나쁜 거예요.

부모 세대가 여기 사사 시대에 이 초기 부모 세대들이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다시 순수성을 검증합니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맡겨도 될지 안 될지 하나님이 계속 테스트하셔서, 왜냐하면 자기 부모에게 훈련 못 받았잖아요.

보십시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제가 신방 가서 이렇게 뭐 물어보면 "목사님 저는 신앙의 1세대라서 훈련이 많습니다." 그래요. 신앙의 1세대는 훈련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왜? 부모 세대에게 내가 훈련받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다루시잖아요. 하나님이 직접 훈련시키고 다루면 체험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요.

그런데 부모 세대가 제대로 훈련시켜서 내놓은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딱히 훈련시킬게 별로 없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아이들로 그렇게 길러내야 됩니다. 그게 가정의 역할이고 교회 역할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 교육이 중요합니다. 교육이, 신앙 교육과 말씀 교육을 제대로 해야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운 거고 교회가 공적 교육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그게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사사 시대의 순환 구조

사사 시대의 실패를 보면서 우린 깨달아야 됩니다. 여러분 사사 시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순환 구조라고 하잖아요. 죄짓고 하나님께 두드려 맞고 그다음 부르짖고 하나님이 사사 보내시고, 그다음 또 어떻게 됩니까? 다시 죄짓고 두드려 맞고 부르짖고 구원하시고 계속 도는 거예요. 이게 순환 구조입니다.

여러분 이 구조가 너무 답답하지 않으세요? 이걸 깨야 되거든요. 어디에서 깨야 됩니까? 죄짓고 매맞았습니다. 그럼 깨달아야 됩니다. 부르짖을 때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원하시면 다시는 죄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그 사슬을 깨버려야 되는데 사사시대 끝까지 못 깹니다. 끝까지 그러면 계속 돌고 도는 겁니다.

그게 우리 인생도, 신앙의 성장이라는 것은 이 구조를 깨는 겁니다. 이 이 구조를 박살내고 깨버려야 그래야 신앙에 한 단계 도약과 성장이 있는 거지. 그렇지 못하면 다시 죄짓고 다시 두드려 맞고 또 부르짖고 또 구원받고 이런 식으로 계속 평생 살면 한 번도 하나님일 제대로 못 하고 사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지 아십니까? 불행한 인생입니다.

이방 족속과의 혼인과 문화적 동화 (5-6절)

그다음 페이지 넘겨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 족속들과 혼인한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자, 5절, 6절 잘 보세요.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누가? 이스라엘 족속은. 어떤 어떤 어떤 어떤... 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이방 족속이잖아요. 이방 족속을 다른 말로 풀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또 조금 더 다르게 얘기하면 우상을 섬기는.

그러면 이스라엘 족속은 이방 민족이면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 가운데 거했다는 얘기죠. 그게 5절 이야기입니다.

6절: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여러분, 이게 하나의 흐름입니다. 과정으로 보셔야 돼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문화적으로 이방 민족과 동화됩니다. 문화적으로 동화됩니다. 그다음 신앙적으로 그들과 동화돼 버렸습니다. 우리 신앙으로 그들을 끌고 온게 아니라 그들 신앙으로 내가 끌려가 버린 겁니다. 그걸 지금 통혼이라는 도구로 말씀한 겁니다. 결혼이라는 이야기로요.

이건 노아 시대와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결혼했다 그 얘기거든요. 이 결혼 자체가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서 심각한 건 그들과 함께 통화한 겁니다. 문화적으로 그들과 통화됐고 신앙적으로 통화됐습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영적으로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거죠.

한 번에 가지 않습니다. 문화가 먼저 들어오고 그다음에 그들의 신앙이 또 들어옵니다. 이런 식으로 서서히 서서히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음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같아요? 이 사람들은 학습 효과가 없는 사람들이에요. 역사 의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과거를 통해서 오늘을 돌아보는 훈련을 못 해서 그렇습니다.

민수기 25장 1절에서 3절을 보시면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이 '머물러 있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음행이 시작됩니다.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청했습니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했습니다." 이게 우상숭배죠.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러분 민수기 25장은 아직까지 출애굽이 완전 끝나지 않은 시점입니다. 출애굽 과정입니다. 광야 과정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러 있고 멈출 때는 딱 한 가지 조건밖에 없습니다. 뭐가? 멈출 때? 구름기둥이 멈출 때. 구름기둥이 멈추면 그들이 가고 싶어도 서야 됩니다. 구름기둥이 옮겨가면 그들이 멈춰있고 싶어도 따라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 민수기 25장은 구름기둥이 멈췄다는 말이 없는데도 그들이 머물렀습니다. 왜요? 이쁜 여자들이 유혹하니까. 싯딤에서 모압 여성들이 유혹하니까 머물렀습니다. 거기에 잠시 쉬었습니다. 그대로 음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이 이방의 우상신들을 섬깁니다. 그 여인들이 그들을 불렀습니다. 청했다 그랬습니다. "한번 가보자. 우리 신들의 제사에 한번 와 보기만 해라." 갔습니다. 거기서 바로 우상숭배하는 겁니다.

신앙의 여정을 멈추지 말아야

여기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가 뭡니까? 머물러 있는 겁니다. 머물러 있는 거. 신앙은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 가는 순례자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아, 이쯤 하면 되었다." 그게 어디습니까? "이쯤 하면 되었다"가 효과를 향하여 바울처럼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달려가는 거지. 물론 교회가 정한 연령의 은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직분과 직책에 대한 은퇴지,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이루는 데는 우리는 멈추지 말아야 됩니다.

성경 공부하는 거 멈출 수 있습니까? 주의 일에 섬기고 봉사하고 일하는 거, 전도하는 거, 기도하는 거 그거 멈춰서 됩니까? 하나님 나라의 방향을 잡고 계속 그 길을 향하여 달려가는 거 그거 멈춰서 됩니까? "이제 됐다. 나는 다 끝이다. 나는 주일에 한 번 예배만 드리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멈추는 순간 이런 일이 순식간에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 순례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열심히 믿음 생활 한다 한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딱 100점 딱 맞출 수 있습니까? 천만입니다. 택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방향을 이쪽으로 잡고 계속 그 방향으로 걸어가야 됩니다.

멈추는 순간, 믿음의 여정을 멈추는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향하여 걸어가는 그 걸음을 멈추는 순간 모압 여자들이 유혹하고 성적 음행에 빠지고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 지금 여기 이들도 그렇잖아요. 거주했다 그랬습니다. 거주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방 민족들과 함께 살았다는 얘기예요. 그냥 그들과 섞여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데 어떻게 그들의 방식대로 내가 살 수 있습니까? 거기 머물러 있으니까 그들과 당연히 보는 것이 아름답고 멋져 보이니까 통혼하게 되고 이방신들을 섬기게 되는 거죠. 별 거 있습니까? 타락이라는게 이게 세속화지.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기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산상수훈 말씀.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우리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너희는 성도들이거든요.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라 그랬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 빛을 내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산 아래 사람들이 "저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도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찬란하게 빛이 나는가" 궁금하게 여겨야 되는 겁니다.

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신앙생활하는 저 공동체가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궁금해져야 됩니다. 하나도 안 궁금하면 "어차피 저 썩어 빠진 것들, 저것들 저기 모여 가지고 맨날 시끄럽게 떠들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행동은 똑같은 것들" 이렇게 생각하면 궁금하지 않습니다. 하나도. 그렇게 생각하면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궁금하게 여기고 교회로 오겠습니까?

우리 예수님 하시는 말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빛을 내고 산 아래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불어 넣어 주도록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나의 삶이 우리 신앙인들의 삶이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과연 궁금한가?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떤 정신으로 어떤 마인드로 어떤 생각으로 살길래 저런 행동과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아낌없이 나누고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저렇게 선한 행동을 과감하게 하고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을까?" 그게 빛된 삶이고 그게 소금된 삶이거든요.

그렇게 해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들어오죠. 우리는 끌어당기는 사람들이 돼야지 끌려 나가는 사람이 되면 그게 얼마나 맥이 없습니까? 맥이 없는 신앙생활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세속화고 그게 타락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사람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까 방향 없이 끌려다니는 겁니다. 계속 한번 보십시오. 우리 주변 사람들도 믿음의 목적과 방향이 있는 사람,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항상 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기 때문에 쓸데없는 일에 세속화되지 않고 발목 잡히지 않습니다. 목적과 방향이 없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휘둘리지 그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결과 (7-8절)

7절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잊어버렸다 그랬습니다. 이것도 단계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해요? 이방인들 사이에 거주했습니다. 거주하다 보니 통혼했습니다. 통혼하다 보니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이방신을 섬기다 보니 하나님을 어떻게해요? 잊어버렸습니다.

예, 그냥 이 나오는 말이 아니에요. "하나님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냥 깜빡 잊어버리고 그냥 사는 겁니다. 이런 단계로 가는 겁니다.

여러분 이거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평소에 평소에 훈련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야구 선수들이 폼이 무너지고 스윙 폼이 무너지고 투구하는 투수가 그 폼이 무너지면 옛날 기량이 나오질 않잖아요. 근데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자기 몸을 만들어서 과거에 잘했던 기량으로 그 폼을 딱 기억해야 됩니다.

수영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몇 년간 안 탄다고 그거 잊어버립니까? 다시 자전거 잡으면 타잖아요. 물에 들어가면 수영하잖아요. 내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걸 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연습해야 됩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그래서 바울이 말했습니다. 디모데에게. 디모데전서 4장 7절 15절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연습하라는 말입니다. 경건을 연습하라. 훈련하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라" 그랬습니다.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훈련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는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율법적이지 않나? 은혜가 중요하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마음이 움직여져야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맞습니다. 틀린 말 아닙니다.

그런데 은혜가 우리에게 한번 주어지고 그다음 우리가 훈련하는 거는, 하는 것은 그다음 지속적으로 내가 해야 될 몫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열 가지 재앙 하나님께서 출애굽하실 때 행하셨습니다. 그거 은혜 아닙니까? 장자의 죽음을 면한 것 은혜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 은혜입니다. 그다음부터 자기 발로 광야 걸어가야 됩니다. 자기 발로. 하나님이 구름 보내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 태워서 가나안 땅으로 옮겨 주지 않습니다.

그게 경건에 이르는 연습입니다. 그게 전심전력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 받고 나서 얼마나 훈련하셨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시고 얼마나 열심히 성경 읽고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애쓰고 힘쓰고, 그게 내 몸속에 각인되도록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셨느냐고요. 한번 따져 보십시오.

새벽기도 10년을 열심히 했는데 일주일 쉬면 못 일어납니다. 몸이라는게 원래 그렇습니다. 10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새벽 제단 쌓았는데 "몸이 아파서 일주일만 쉬어야 겠다." 그러면 못 일어납니다. 그다음 회복하는데 한참 걸립니다.

나쁜 습관은 너무 빨리 몸에 베기는데, 좋은 습관은 평생을 해도 며칠만 흔들어 버리면 다시 원점입니다. 그래서 전심전력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면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거 붙들고 살아내는 거 매일 해야 되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소명이고 사명입니다. 그래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8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 동안 섬겼더니"

파셨다 그랬습니다. 우리 지난 시간에도 봤죠. 팔다. '마카르' '마카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사용하는데, 그런데 이게 그 그리스어 헬라어에 보면은 비슷한 단어가 있습니다. '파라디도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파라디도미' 어디에 나오냐? 로마서 1장 28절에 나옵니다. 로마서 1장 28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함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내버려두다는 말이 '파라디도미'입니다.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내버려 두는 거예요. 그냥.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마카르' 소유권을 이전한 겁니다. 이거 이제 내 자식이 아니에요. 내 자식이 아닌데 하나님이 개입할 이유가 있습니까? 소유권을 양도했는데. 그래서 내버려 두는 겁니다. 그게 팔다라는 표현입니다. 대단히 무서운 겁니다.

하나님께서 망각하고 잊어버리는 자들 그냥 내버려 둡니다. 자기 멋대로 죄짓도록.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 그렇게 죄짓다가 죽음으로 가버립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을 파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8년 동안 섬겼다 그랬습니다. 8년 동안 8년 동안 섬겼는데 이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팔았는지 하나님이 나를 넘기셨는지 그것조차 모르고 그냥 8년을 지나는 거예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괴로운 거예요. 내가 내가 이걸 빨리 깨달았다면 빨리 기도했겠죠. 그러면 이들이 8년이 지나도록 영적 무감각 속에 살았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구원자 옷니엘 (9-11절)

8년이 지나고 나서 어떻게 합니까? 9절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이 영적 무감각의 시간이 8년이나 지속된 겁니다. 여러분 8년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대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두 번 반복해야 되는 시간인데, 올해가 2025년이면 2033년이 끝나야 되는 시점인데요. 8년이나 이들이 영적 무감각 상태로 지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8년이 지나니까 이제야 문득 깨달아지는 거죠. "아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안 되겠구나. 괴롭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없구나." 그래서 부르짖습니다.

부르짖으니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옷니엘 우리가 잘 아시죠? 옷니엘 누굽니까? 여호수아 15장에도 나오고 사사기 1장에도 나오는 옷니엘. 갈렙이 헤브론을 정복하기 위해서 올라갈 때 그때 올라가서 기럇세벨을 정복할 때, 유다 지파의 다음 세대를 세우기 위해서 자기 딸 악사를 걸고 젊은 이들을 모집했을 때 그때 응모한 사람 옷니엘.

모세는 여호수아를 키웠고 갈렙을 키웠고, 갈렙은 옷니엘을 키웠습니다. 그 옷니엘이 이제 드디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로 쓰임받는 순간 그 순간이 온 겁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만약에 만약에 갈렙이 옷니엘을 미리 준비해 두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훌륭한 젊은이를 미리 준비하고 세워 놓지 않았더라면 암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준비하는게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을 준비해서 그에게 윗샘과 아랫샘 다 줬잖아요. 투자를 많이 한 겁니다. 많은 물질을 투자하고 자기 딸까지 줬습니다. 윗샘, 아랫샘 다 줬습니다. 그런데 그게 이제 하나도 아깝지 않게 됐습니다. 이제 본전을 뽑는 거예요. 훨씬 더 많은 본전을.

그래서 우리 윗세대들이 다음 세대 어린 생명들에게 투자하는 겁니다. 그 투자라는 것이 영적 투자고 신앙적 투자고 물질적 투자고 전방위적인 투자를 해야 됩니다. 신앙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무엇이든지간에.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 온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세우시니까 그때 갈렙의 혜안이 칭찬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 단견이에요. 우리 세대에 다 뽑아 먹으려고 하니까. 이 세대에 내가 투자한 것 다 회수하려고 하니까.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수고하고 땀흘리고 뿌려 놓으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 수고를 사용하십니다. 옷니엘이 그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귀하게 쓰임받을 때가 오지 않습니까?

10절: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심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여러분 여기서 아주 전형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다"는 표현. 이게 사사에게 계속 반복되는데요. 근데 이게 나오지 않는 사사도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좀 있다 제가 설명을 드릴 텐데.

자, 하나님께서 옷니엘을 세웠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고 그가 사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서 건졌다. 이게 결론입니다.

자,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질문을 해야 되죠. 그렇다면 옷니엘은 이미 준비된 사람 아닙니까? 갈렙의 영향력을 받아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왜 옷니엘은 지난 8년 동안 메소보다미아 구산 리사다임의 압제 시간에 가만히 있었을까? 왜 그는 일어나서 떨치고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고 구원하지 않았을까?

이걸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셔야 되는데, 사사기의 주인공은 사사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영웅을 세우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는 거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해야 그가 일할 수 있는 거지. 준비된 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그가 일하는 거지. 내가 손들고 "제가 하겠습니다." 이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사기를 영웅의 스토리로 보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로 보셔야 됩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하니까 시대를 이끌고 가는 걸출한 영웅을 기대합니다. 훌륭한 사역자들, 훌륭한 목회자들 혹은 이 시대의 영웅들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영웅을 있게 만들어 주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는 분은 누구시다? 하나님이시다. 그가 아무리 준비된 자라 하더라도 그가 아무리 갈렙의 정신을 이어받은 자라 하더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주셔서 세우지 않으면 그는 무력합니다.

8년 동안 침묵의 기간이 입증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시대는 없다. 결론적으로 모든 시대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가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 안 됩니다. 내가 그건 강단에서 목회자부터 교회 중직들부터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셔야 되고 나는 거기에 기름부음 받아서 쓰임받는 연약한 질그릇일 뿐입니다. 그래야 그 집안이 제대로 돌아가고 그 교회와 그 공동체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나중에 사사 시대 중기 말기로 가면 타락한 사사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이걸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가 영웅인 줄 착각합니다. 그게 타락이에요. 거기서 무너지고 거기서 쓰러집니다.

11절: "그 땅이 평온한지 40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40년을 통치했습니다. 평온한지 40년.

옷니엘 시대의 한계와 교훈 (12절)

자, 요 사사에 대해서 제가 좀 있따 다시 설명을 드릴 텐데. 그런데 자, 12절 다시 보십시오. 11절 지나고 바로 12절이 넘어가죠. 데 12절이 또 답답해요.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누가 죽고 나서? 옷니엘이 죽고 나서 바로. 그러면 옷니엘이 이 40년 동안 뭘 한 겁니까? 뭘 했어요? 옷니엘이 40년 동안.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사가 죽고 나서 또다시 악을 행했다는 것은 그들의 신앙 계승이 안 됐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자립 신앙을 제대로 못 세워 줬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 지난 시간에 공부했잖아요. 스스로 홀로서기에 자립 신앙을. 그러면 옷니엘이 그걸 40년 동안 못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여러분.

이걸 보면 옷니엘이 잘못한 겁니까? 뭐가 문제입니까? 저는 옷니엘의 신앙 자체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옷니엘이 사는 날 동안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평온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다 붕괴되어 있는 겁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영성 있고 아무리 뛰어나도 각 가정까지 다 돌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옷니엘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이 다시 악에 빠졌다. 전적으로 영웅에게 기대는 시대였다는 뜻입니다. 옷니엘에게만. 그가 죽고 나니까 다시 원점이었다는 건 가정의 신앙 교육이 40년 동안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 신앙 훈련이 공동체별로 하나도 되지 않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거꾸로 진짜 훌륭한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입니까? 대중의 인기를 이끌어가고 유명해지고 훌륭해지는 지도자. 그 사람이 진짜 유명한 지도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세워야 됩니다. 시스템을, 조직을. 내가 없어도 내가 죽어도 내가 세상을 떠나도 그 시스템, 하나님 말씀으로 움직이는 그 조직과 시스템이 여전히 남아서 기능하는 그걸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지도자예요.

여러분, 기업을 보십시오. 기업을 창업한 창업주가 세상 떠나고 나서도 온전한 기업이 몇 개 있는가? 어떤 공동체에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이끌고 가는 사람이 떠나고 나서 그 공동체가 제대로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가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인 거예요. 리더의 잘못. 평소에 시스템을 제대로 구성해 놓지 않으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40년이라는 시간이 긴 시간이 결코 아닙니다. 이 40년의 시간 동안 옷니엘은 온 백성들과 한 마음이 되어서 그들이 조직과 시스템을 풀뿌리부터 젖뿌리부터 제대로 구성해야 됩니다. 아니면 다 갈아엎어야 됩니다.

우리 교회 교회학교 시스템 말씀 교육과 양육이 안 되면 다 갈아엎죠. 전부 다. 가정 예배 안 드리는 가정 일일이 찾아가서 가정 예배 드리라 해야 되고, 그래서 그 조직과 시스템이 뿌리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구성이 되어야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이지.

주일날 모이는 숫자 가지고 이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좋은 교회다. 모이는 헌금 액수 가지고 이 교회가 얼마나 성장했다. 그게 얼마나 넌센스한 웃기는 얘기입니까? 한 사람 빠지면 다 없어지는데 다시 원점인데, 이 40년이 지나는 동안 그 풀뿌리 저 밑바닥부터 하나도 수고하지 않았다는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아닙니까? 이게 그게 사사 시대 잘못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는 거기에서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 지난주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떠나서 하나님 나라 가고 나서 남아 있는 우리 자식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할 건지를 한번 그려 보십시오. 내 마음이 편안하고 흐뭇한가? 아니면 나는 눈을 못 감을 것 같은가?

눈을 못 감을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가르쳐야 됩니다. 제대로 제대로 훈련하고 눈물 뿌려 기도하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수고하고 그걸 만들어 놔야 됩니다. 교회도 가정도 그래야 그래야 온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두 번째 구원자 에훗 (12-31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함으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여러분 보세요. 아까는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모압왕이 암몬 더하기 아말렉까지 같이 옵니다. 원래 더한 것들이 옵니다. 이거 제대로 못 하면 처음에는 하나였어요. 이제는 셋이 같이 덤벼듭니다. 모압, 암몬, 아말렉.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종려나무 성읍 여리고성입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18년 동안 섬기니라." 꼼짝 못하고 18년 동안 섬겼습니다.

자, 18년 동안 그들이 괴로움을 당했다는 얘기죠. 자, 그런데 15절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드디어 부르짖습니다. 부르짖으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여러분 여기서 좀 이상한 걸 느껴야 됩니다. 아까 우리가 옷니엘의 경우를 봤을 때는 하나님께서 누구를 세우셨다? 사사를 세우셨다. 근데 여기는 사사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에훗 끝까지 다 훑어봐도 사사로 세우셨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만 에훗은 구원자로 세우셨다는 말씀만 있습니다.

자, 그러면 사사와 구원자의 차이가 뭐냐? 사사 이 히브리어로 '쇼페트'라고 했습니다. 쇼페트 이 쇼페트가 명사인데 동사는 '샤파트'입니다. 동사 '샤파트'는 재판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사사라고 하니까 우리는 이해가 잘 안되는데, 가톨릭에서는 사사기를 판관기라고 그랬습니다. 재판하다 할 때 판관입니다. 그래서 쇼페트의 동사 샤파트가 재판하다. 다스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사는 백성들을 재판도 하고 다스리기도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런 의미로 본다면 옷니엘은 40년 동안 백성들을 다스리고 재판했다. 뭘 근거로?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그런데 에훗은 재판하고 판결하는 사사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영향과 그런 능력과 그런 지위까지는 주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를 구원자로 세웠다. 구원자 '모시아'라는 뜻입니다. '모시아.' '모시아' 어디서 발음이 좀 비슷하죠? 메시아하고 비슷합니다. '모시아.' 메시아 구원자라는 뜻이고 동사 '야샤'에서 왔습니다. '야샤.' 구원하다, 건져내다.

일회적으로 혹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압과 암몬과 아말렉의 세력에서 건져내는 구원자로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셨다. 그런데 그에게는 통치와 재판과 다스림의 기능은 허락하지 않았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12명 나옵니다. 12명 중에 하나님께서 사사의 기능을 허락하지 않은 자들이 몇 명 있습니다. 기드온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걸 우리는 통칭적으로 그냥 사사라고 부를 뿐입니다. 근데 엄밀하게 더 들어가면 사사와 구원자는 구별됩니다. 이 안에서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 우린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훗은 그렇게 사용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주권자의 마음이겠죠. 그를 사용하시는 주권자의 마음.

에훗이 어떻게 모압 왕 에글론을 죽였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입니다." 왼손잡이.

제가 왼손 잡이거든요. 지금 마이크 왼손에 들고 있잖아요. 근데 제가 왼손잡이라 하는 건 오른손이 멀쩡한데 왼손 잡입니다. 왼손이 조금 더 쓰기 편해서 가위질도 왼손으로 하고 옛날에 밥도 왼손으로 먹다가 할머니에게 혼도 많이 나고 그런데.

여기서 왼손잡이라는 말은 여기 나옵니다. 우리 오른쪽 페이지 23페이지 보시면 "오른손이 막힌 자"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이 막혔다. 뭐가 생각나십니까? 조막손. 오른손이 막혔다. 다섯 손가락이 기능하지 못하는 조막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가 농경 사회 아닙니까? 또 목축하는 사회 아닙니까? 목축을 하든 농사를 짓건 오른손이 막힌 사람으로서 사회를 살아간다는게 어떤 의미였을까? 충분히 우리 짐작이 가능하죠. 요즘 같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른손이 막혔습니다.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왼손잡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왼손잡이 에훗을 오른손이 막힌 사람,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그가 모압 왕 에글론을 어떻게 죽였는지는 잘 나옵니다. 칼을 오른쪽 허벅다리에 찼습니다. 왜? 왼손으로 오른 허벅다리에 칼을 빼기 쉬우니까.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그 내용들은 우리가 읽어 보시면 되고,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인 이후에 그리고 에훗은 백성들을 나팔을 불러서 불러모읍니다. 전쟁을 합니다. 그리고 모압 왕 에글론에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고 구원시킵니다.

중요한 것 왼손잡이입니다. 사람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를 제대로 봐주지도 않습니다. 모압 왕 에글론이 얼마나 무시했으면 그와 독대까지 했을까요? 장애인이니까 오른손을 못 쓰는 사람이니까 그와 만나서 그냥 해도 아무런 경계심 없이 그를 만난 겁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도 하는 분이시다. 우리가 약해도 내 힘의 근원인 오른손을 쓰지 못해도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면 얼마든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건지고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다. 이게 에훗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자, 30절 보십시오. "그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함에 그 땅이 몇 년 동안요? 80년 동안." 아까는 40년이었습니다. 40년 옷니엘 때는. 근데 지금 에훗이 이 사람을 죽이고 나서는 80년간 평화가 왔습니다.

그럼 여러분 거꾸로 아까 우리가 얘기한 바에 의하면 이 80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기회입니다. "야 내가 40년 줬는데 잘 안 됐어. 가정의 시스템을 세우고 자립 신앙을 기르게 하고 공동체가 하나님 말씀으로 제대로 서는 거 그게 잘 안 됐어. 그럼 80년 줄게. 한번 해 봐라."

80년 됐을까요? 안 됐을까요? 우리가 다음 시간에 보겠지만 사사 드보라가 또 나타나는 이유는 안 됐기 때문입니다. 안 됩니다. 40년 아니라 80년이라도, 80년 아니라 800년이라도 의지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거 이게 풀뿌리가 주변에서 저변이 확 일어나야 됩니다.

나와 함께하는 두 세 가정 이런 분들이 함께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대로 제대로 세워 보자" 하는 그런 마음들이 다 넓혀지고 넓혀지고 제대로 세워져서 그래서 그런 교회들이 또 모이고 모여서 일어나는 거지. 맨날 교회들이 모여서 딴 생각하고 딴 짓도 하고 이 그런 것만 해 가지고 어떻게 이게 일어나겠습니까? 그렇게 세월만 허송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세 번째 구원자 삼갈 (31절)

그런데 에훗이 살아 있을 때 또 다른 사사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사사라고 얘기했는데 사실은 엄밀하게 말하면 구원자입니다.

31절 "에훗 후에는" 에훗이 죽었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 "후에는"이라는 말을 잘 보셔야 돼요. 이 80년의 평화의 기간 동안 에훗은 사사가 아니라 구원자로 쓰임받았다 그랬잖아요. 구원자로 쓰임받은 후에는 하나님이 삼갈이라는 구원자를 또 세워 주셨다는 겁니다.

4장 1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오죠. 4장 1절: "에훗이 죽으니" 그러니까 삼갈이 활동했던 시절은 에훗이 죽기 전이었다는 말이에요. 이해가 되세요?

그래서 이 80년 사이에 에훗도 일어나고 삼갈 같은 구원자도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삼갈도 역시 사사 직함은 받지 못했습니다.

근데 삼갈이 어떤 사람이냐? "아낫의 아들 삼갈입니다." 지난 시간 복습하신 분들은 아실텐데 아낫이 누굽니까? 지난 시간에 아스다롯 얘기할 때 언급했는데 바알 아세라 그랬잖아요. 가나안 땅을 중북부 지방은 풍요의 여신을 아세라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가나안 남쪽 사람들은 아스다롯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아람과 시리아 쪽 사람들은 아낫이라고 부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쉬타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여기 아낫이 누굽니까? 아세라입니다. 아낫의 아들 삼갈, 아세라의 아들 삼갈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다르게 말하면 아세라를 섬겼던 혹은 집안 대대로 아세라를 섬기고 있었던 우상숭배자 집안의 삼갈이라는 뜻입니다. 이방신을 섬겼던 이방인 혹은 유대인이었지만 이방신을 섬겼던 사람.

그런데 이 사람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라요.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는지, 어떻게 믿음 생활을 제대로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으니까. 이 사람이 과거에 아스다롯을 섬겼던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과 진정성을 보시고 그를 사용하셔서 그에게 소의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게 하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시는 구원자로 사용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에훗과 삼갈 공통점이 있죠. 에훗은 왼손잡이입니다. 오른손을 못 쓰는 장애인입니다. 삼갈 집안이 좋지 못합니다. 우상숭배자 집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건지고 구원하는 도구로 쓰신다.

지금 나의 상황이나 지금 나의 현실이 나의 믿음 생활을 가로막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제가 이 모습으로 뭘 하겠습니까?” 에훗도 하는데 삼갈도 하는데 하나님이 쓰시면 아낫의 아들 삼갈도 하고 조막손 에훗도 하는데 우리가 왜 못 합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면 누구든지 다 하죠. 우리 자녀들 보고 "야 너는 그렇게 해 가지고 앞으로 뭘 하겠냐" 그런 말 절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생각조차 하시면 안 됩니다. 왜 못 합니까? 삼갈도 하고 에훗도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왜 못합니까? 삼갈은 농사 짓는 사람이죠. 소 치러 가는 사람.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였습니다.

자기가 한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겁니다. 주인공이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오른손을 못 쓰는 에훗을 쓰신 분 하나님. 아낫드의 아들 삼갈을 쓰신 하나님. 하나님이 주인공입니다.

이거 잘 기억하시고 사사기가 만만하진 않습니다. 복습하시고 또 한번 살펴보시고 그리고 다음 주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귀한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은혜 주시고 마음의 결단과 은총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라도 우리 자녀들에게 악을 물려 주지 않는 부모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정리하고 끊을 것 정확하게 끊고 신앙생활의 기준과 방법과 방향을 제대로 알려주는 부모 세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가 받은 자로서 우리 자녀들이 훈련받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주여 우리가 먼저 정리 정돈 잘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믿음 생활 제대로 해서 훈련받아서 내 몸에 그 훈련이 기억되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우리 가정과 교회와 우리 주변을 먼저 세우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붕괴된 시스템, 붕괴된 가정과 교회 이 조직을 그대로 두지 않게 하여 주시고 나 혼자 영웅인 세상을 살아가지 않도록 도우시며,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는 에훗 같은 삼갈 같은 옷니엘 같은 준비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