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특강(6) - 미디안의 압제와 기드온의 부르심(삿 6장)
1. 서론: 드보라 이후 40년의 평화와 실패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사기 6장 12절 말씀입니다. 사사기 6장 12절 말씀 한 절을 우리 한 목소리로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멘.
오늘은 우리 사사기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드보라 이야기를 살펴봤고 드보라의 노래까지 살펴봤습니다. 드보라 시절에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라고 하면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했습니다. 종려나무 그 자체가 유명한 것이 아니고 드보라에게 가면 기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혼란스럽고 기준이 없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기준, 미쉬파트(מִשְׁפָּט)와 체다카(צְדָקָה)의 기준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드보라의 종려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그냥 하나의 교실일 뿐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를 배우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는데,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아내는 현장 아니겠습니까?
그 현장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함께 전쟁하고 싸울 수 있는 현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보라와 함께 허락하신 장군이 있었는데, 바락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락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도 못 가겠다고 하지 않습니까?
"만일 당신이 함께 가면 제가 가겠지만, 함께 가지 않으면 저는 못 갑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바락은 전쟁에 나가서 일은 했지만 영광은 얻지 못했습니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이라는 여인이 그 모든 영광을 가져갔습니다. 야엘이라는 사람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그 여인은 기준을 제대로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펴봤고, 지난주에 보았던 드보라의 노래를 보면 그런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한 지파가 있고 동참하지 않은 지파들이 있었습니다. 동참한 사람들은 당연히 칭찬을 받았고,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은 메로스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르우벤 지파 같은 사람들은 심사숙고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요단 동쪽에 있었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동참하지 않았고, 남쪽에 있었던 유다 지파, 시므온 지파도 아예 흔적조차 없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했는데, 먹고 놀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일에만 함께하고, 힘든 일, 고난당하는 일, 어려운 일에는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중성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스라의 어머니의 노래를 봤는데, 시스라의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창문을 통해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창문은 그 여인이 평생 살아왔던 가치관, 세계관이라고 했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기다리는 아들의 어떤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까? 양쪽에 수놓은 채색 옷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들이 가져올 전리품을 기다리는 겁니다. 아들은 지금 이미 죽어 있는데, 평생 동안 이 여인은 아들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숙제가 남겨져 있습니다. 드보라 이후에 40년간 그 땅에 평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40년의 평화는 사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니었습니까?
40년 동안 무엇을 해야 됩니까? 그냥 즐거워하기만 하면 됩니까? 가나안 왕 야빈과 군대 장관 시스라가 죽고 물러갔으니까 이제는 즐거워하고 행복해하기만 하면 되는 시기가 아닙니다. 체계를 세워야 됩니다. 시스템을 세우고 신앙교육을 바르게 하고, 위대한 사사가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율법과 말씀은 여전히 이어져 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2. 또다시 반복되는 죄와 심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40년의 숙제를 잘 했습니까? 잘했으면 이제 다시 기드온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잘했으면 사사기는 짧게 5장에서 끝나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숙제를 잘 풀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그랬습니다. '또'라는 말이 나오죠. 또 반복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40년 동안 그들에게 주어진 평화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드보라가 살아있을 때 40년인지 드보라가 죽고 난 이후에 40년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드보라가 살아있을 때 40년을 보냈다면 드보라가 지도자로서 숙제를 제대로 못 푼 겁니다. 그런데 드보라가 죽고 나서 40년의 평화라면 그 백성들 전체에게 다 책임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또 악을 행합니다. 사사기에서 말하는 악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상숭배입니다. 그냥 도덕적인 일반적 악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악을 범했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우상숭배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여호와께서 7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여기 '넘겨주다'는 말, 히브리어 마카르(מָכַר)라는 말을 사용했고, 헬라어로는 파라디도미(παραδίδωμι)라는 '팔았다'는 말입니다. 마카르와 파라디도미가 이 사사기에서 전형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말입니다.
'팔았다', '넘겨주다'. 이제는 소유권을 이전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 안에서 너희는 더 이상 다스림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의 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2절을 보십시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미디안이 강해서 이긴 게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께서 팔았으니까, 하나님이 넘겨주셨으니까 미디안의 손이 그들을 이긴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의 시기로 들어왔다는 얘기입니다.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벌어지면, 7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가 일어나면, 이제 이들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디에서부터 답을 찾아가야 됩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에게 팔렸으니까, 하나님이 파셨으니까, 이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에게 있으니까 하나님께 나와서 이 문제를 풀어달라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어디로 갑니까? 산으로 가서 먹고 살기 위해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숨어 들어갑니다. 더 깊은 곳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도망갑니다.
사실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엎드려야 하는데, 이 문제 해결의 접근법 자체가 전혀 틀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신앙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들 인생에 일어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엉뚱한 처방을 내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좋은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처방을 정확하게 내립니다. 약으로 치료가 될지, 수술을 해야 할지, 아니면 마음을 다스리면 될지 정확하게 판단합니다. 그런데 유능하지 않은 의사는 엉뚱한 처방을 내립니다. 수술해야 할 환자가 아닌데 괜히 칼을 대고 수술을 해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엉뚱한 데서 환자를 고생시킵니다. 그러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다가 결국은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지금 이들이 못 배워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40년 동안 평화의 시간 동안 닥치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문제 접근법과 해결책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은 미디안이 압제하니까 미디안이 강한 줄 알고, 미디안이 무서우니까 산으로 숨어 들어가서 굴 파고 거기에 움막 짓고 먹고 살려고 그쪽으로 다 피해버린 겁니다.
사실은 이 문제의 열쇠는 하나님에게 있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인데, 결국 문제가 일어나면 하나님께 나와서 여쭤야 됩니다. 문제를 풀어주시는 분이 아버지시니까요. 엉뚱한 데서 문제 해결하려다가 잘못 건드리면 전부 다 망하게 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이제 농사를 지으려고 파종을 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미디안만 올라오는 게 아닙니다. 아말렉도 거기에 덧붙여지고, 동방 사람들도 덧붙여집니다.
원래 이 악이라고 하는 것은 합종연횡을 잘 합니다. 이전에 옷니엘 시절에는 메소포타미아 하나만 왔습니다. 드보라 시절에는 가나안 왕 야빈 하나만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플러스 둘이 더 왔습니다.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함께 덤빕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이들이 와서 어떤 짓을 합니까?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먹을 것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군 산업이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농사, 하나는 목축입니다. 농사하고 목축하는데, 토지 소산을 다 파괴했습니다. 양이나 소나 나귀를 다 멸절시켰습니다. 다 빼앗아 갔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지금 무엇을 먹고 산다는 얘기입니까? 먹고 살 것이 없습니다. 경제가 한순간에 바닥을 쳤다는 말입니다. 적들이 들어와서 그들의 토지도 빼앗고, 짐승도 빼앗고, 목축과 농사가 한순간에 완벽하게 다 무너졌습니다.
이제 먹고 살 일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자, 이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졌으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문제의 근원을 풀어가야 하는데, 이들은 이 문제의 근원을 풀지 않습니다.
3. 부르짖음과 선지자의 파송
시간이 지나서야, 7년이 지나서야 깨닫습니다. 7년의 압제, 7년이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7년이 지나서야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되어서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제 와서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부르짖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1절에서 6절까지 말씀이 또 하나의 패턴을 만들지 않습니까? 사사기에 나오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죄를 짓고, 심판당하고, 그다음 부르짖고, 그리고 구원하십니다.
지금 죄가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죄입니다. 하나님이 미디안과 여타 족속들을 통해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원하실 텐데, 중요한 것은 이 부르짖음이 과연 회개를 동반한 부르짖음이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회개 없는 그냥 단순한 외침이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조금 더 엄밀한 의미로 본다면, 2장에서 보김 사건을 보셨을 겁니다. 보김은 '우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울기만 했습니다. 울고 제사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자복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회개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회개했다면 삶이 달라져야 하는데, 완벽하게 삶이 뒤집어져야 하는데, 그들은 회개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사시대 전체를 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그들은 회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회개했다면 이 사이클 속으로 또 들어갈 수 없지 않습니까? 회개하면 이 사이클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똑같이 죄짓고 똑같이 심판당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의 부르짖음은 그냥 못 살겠다고 부르짖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하여 진정한 회개까지 가지 않아도 못 살겠다고 부르짖기만 해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거든요.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렇게라도 하면 이들이 진짜 회개할까 해서, 이렇게라도 부르짖기만 하면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주시면 진실한 회개로 돌아올까 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백성들에게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기만 해도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이제 기드온이 나오기 전에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과거 이전에는 백성들이 부르짖으면 바로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부르짖으면 구원자. 옷니엘, 에훗, 드보라가 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을 보내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먼저 보내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부르짖었다고 했죠. 그러면 원래 패턴대로라면 하나님이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이렇게 나와야 하는데, 8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뜻밖에 구원자 사사 이전에 선지자를 먼저 보내십니다.
여러분, 선지자가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말씀 전하는 사람입니다. 누구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에게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이 선지자가 전한 말씀의 내용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보십시다.
8절부터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자, 평범한 말씀처럼 보이죠? 그런데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원했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바알과 아스다롯 등등의 기타 여러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은 신들이고, 사람이 만든 형상이지, 나처럼 너희를 이집트에서 건져낸 참신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두 번째 중요한 말씀은 너희가 지금 이렇게 된 이유를 말씀하시는 겁니다.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까 지금 너희가 망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살기 위해서 산에 들어가서 움막 파고 웅덩이 파고 땅 파고 숨어 살 것이 아니고, 나 앞에 와서 부르짖으라는 얘기입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라는 것입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오죽 답답하셨으면 구원자를 보내기 전에 선지자를 보내서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하시고, 동시에 구원자가 누구인지, 너희가 왜 이런 일에 말려들어서 지금 고생하고 있는지 원인을 밝혀주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토지를 빼앗겼죠? 짐승을 빼앗겼습니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말씀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까? 말씀이 없는 것이 문제예요.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먹고 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7년 동안 압제당하고 다 빼앗기니까 산에 가서 먹고 살려고 나물 뜯어먹고, 나무 껍질 벗겨 먹고, 나무 뿌리 캐먹고, 그러면서 연명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진짜 이들의 문제는 말씀이 없는 것이 문제인데, 신앙교육이 없는 것이 문제인데 말입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말합니다. 아모스 8장 11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죠.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것이 진짜 기갈이에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정말 배고픈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새와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고 돌보시고 먹이시는 분이 내 아버지이신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면, 하나님이 먹는 것, 입는 것, 살아가는 것 다 책임지십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말씀을 읽지 않아서 죽어가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그것을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지금 하나님은 이 구원 자체가 문제가 아닌 겁니다. 구원은 당연히 하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부르짖었으니까요. 구원자 기드온을 보내시던, 그가 누구든지, 아낫의 아들 삼갈이든지, 아니면 오른손이 부자유스러운 왼손잡이 에훗이든지, 그가 여자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면 백성들 구원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너희가 시간을 제대로 활용했느냐는 것입니다. 옷니엘 이후에 몇 년이요? 40년입니다. 에훗 이후에 몇 년입니까? 80년이에요. 드보라 이후에 몇 년이요? 40년입니다. 합이 160년입니다.
160년이라는 장대하고 길고 긴 세월을 그들은 다 허비했습니다. 신앙교육을 하지 않고 말씀을 허비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 말씀이 메말랐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으니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4. 기드온의 부르심
이제 11절을 보십시오. 이제 기드온을 찾아오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제가 옛날에 교회학교 소년부와 아동부 사역을 오래 했는데, 이 기드온 설교를 하고 활동으로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려보게 했거든요. 지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만나는 장면, 그 이후의 장면을 그렸는데, 어떤 아이가 사자를 그렸어요. 사자, 라이온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어르렁거리고 있는 걸 그렸어요.
왜 사자를 그렸나 했더니, 여호와의 사자를 라이온 사자라고 생각해서 사자를 그린 겁니다. 웃고 말았는데, 우리 중에 그런 분이 아마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설마 해서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라이온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사자, 여호와의 신분을 가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입니다. 이 사람이 진짜 사람인지 하나님이 보내신 여호와의 사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라이온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반드시.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 이 기드온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까? 밀을 타작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입니다.
밀은 어디에서 타작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마당에서, 넓은 마당에서, 혹은 밀을 거두고 나서 추수하는 곳에서 나중에 말려놓고 타작하는 것이 정상인데, 포도주 틀에서 타작했습니다. 포도주 틀은 아주 좁은 공간 아닙니까? 거기에 올라가서 자기 발로 밟으면서 아무도 모르는 척하면서 타작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 걸까요? 들키면 수탈당하니까요. 미디안 사람들이 하도 많이 뺏어가니까, 토지도 곡물도 다 뺏어 가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은 그래도 기드온 집은 먹고 살 만했다는 것입니다.
자, 밀을 수확하고 있어요. 밀을 수확하고 있습니다. 땅을 다 빼앗겼는데 밀을 수확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사람은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로 치면 친일파 정도 되든지, 아니면 자기 아버지가 대단한 부자든지입니다. 나중에 보면 아버지가 부자로 나와요. 어쨌든 정권과 미디안 사람들과 어떤 모종의 관계가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드온은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습니다. 일단 소심한 사람입니다. 대단히. 그런데 두 번째로, 이 사람은 책임감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서라도 내 식솔들,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대단히 강한 인물입니다. 소심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오셨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큰 용사여. 큽니까? 큰 용사라고 말할 만한 근거가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보통 우리가 큰 용사라고 한다면 보여준 것이 있는 사람을 얘기합니다. 업적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은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하는 꼴을 보니까 소심해서 큰 용사는 글렀습니다.
그런데 큰 용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 뒤에 나오는 말이 중요하죠.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이런 소심한 사람도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소몰이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삼갈도 큰 용사가 되고, 에훗도 큰 용사가 되고, 여성 드보라도 큰 용사가 되고, 사람이라고 생겨먹은 사람은 누구나 다 큰 용사가 됩니다.
나 같은 인간도, 사람들이 너 보고 "너는 그렇게 해서 뭐가 될래?"라고 말하는 사람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다 큰 용사가 된다는 뜻입니다. 큰 용사는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함께 하시지 않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34쪽을 보시면 여호와의 사자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후에 기드온의 반응을 한번 보십시오. 기드온의 반응이 좀 뜻밖이에요. 소심한 사람이라 그랬잖아요.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큰 용사여" 어쩌고저쩌고 하면 엎드려서 "죽겠습니다" 든지 "힘듭니다" 든지 어쩌고저쩌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 반응을 한번 보세요.
13절을 보니까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오,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는 얘기를 들으니까 바로 그 말을 받아서 대꾸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다면서요?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어야 됩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과거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셨다던 그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 겁니까?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셨습니까?"
여러분, 이 기드온의 질문 속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어떤 오류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느냐고 말했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미디안의 7년 압제가 이들에게 주어진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들에게는 이런 고통도 이런 고난도 이런 어려움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니까 이들을 고치려고, 이들을 때려서라도, 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사람 만들어서 쓰시려고 하나님이 이렇게 행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시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또 질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왜 우리를 버려서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겼습니까?" 하나님이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 버리시면 유기하시는 거지, 내버려 두시는 거지, 죄악 중에 살다가 그냥 죽도록 던져버리시지요.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이런 고난이 있는 겁니다.
여기에 심각한 오류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보면 기드온이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다시 우리가 원점으로 돌아가면 신앙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못 배워서입니다. 부모로부터, 자기 아버지 요아스로부터, 그 조상들로부터, 성경 선생들로부터 체계가 없고 시스템이 없어서 고난을 인식하는 방식을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성경 공부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설교를 안 들어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해서 그렇습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이고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기드온이 지금 하는 말 중에 자기의 죄 문제를 돌아보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 우리 죄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내가 이 큰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의 사자를 제가 만나다니요"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다가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렇게 나와야 정상 아닙니까? 성경 공부를 안 하니까, 제대로 못 배우니까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 자녀들이 하는 말과 너무너무 똑같습니다. 아이들이 대학 입시에 실패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취업에 실패합니다. 자기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럼 이렇게 얘기합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다면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냐"고.
"하나님 계시다며? 엄마 그렇게 하나님 잘 믿고 맨날 새벽기도 가고 매일같이 헌금하고 교회에서 살면서, 우리 집에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느냐고.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풀리지 않느냐고. 내 인생에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고. 하나님 우리 버리신 거 아니냐"고. 그런 질문 받아보셨지 않습니까?
건너건너 옆집에서 그런 얘기하는 것 들어본 적 없습니까? 우리 청년들, 우리 시대 젊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하나님 탓하기 바쁩니다. 자기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어떤 인생이었는지,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만한 인생이었는지 벌 받을 만한 인생이었는지, 하나님이 내 인생을 바라보실 때 정말 하나님께서 고귀하고 귀하게 여기실 만한 인생인지 그렇지 않은지 보지를 못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못 배워서 그렇습니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서입니다. 부모가 제대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다면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내 인생을 해석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기드온이 하는 꼴을 보십시오. 지금 못 배웠으니까요. 가르치지 않으면, 성경 공부하지 않으면,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 자기 인생의 조그마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만 해보십시오. 전부 다 하나님 탓합니다. 전부 다 보는 사람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것을 붙들고 앉아서 그때부터라도 가르쳐야 됩니다. "하나님이 널 버리신 게 아니라 네가 먼저 하나님 버렸다"고. "하나님이 너를 버리신 게 아니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시지 않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그때부터 울면서라도 제대로 가르쳐야 됩니다.
그때부터라도 유구무언으로, 자녀들이 그렇게 달려들고 대들 때 할 말 없어서 입 다물고 있어선 안 됩니다. 그때는 제대로 가르쳐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40년 동안 전해지지 않으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기드온을 보면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딱 보는 것 같습니다.
5. 하나님의 부르심과 기드온의 반응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하나님이 기드온을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답답하지만 현실적으로 쓸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유는 뒤에 나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소심하죠. 자신의 약함과 소심함을 계속 얘기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출애굽기 3장 11절과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로에게 가라 하시니까 모세가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말했죠.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시면서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할 것이다."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는 방식이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비록 소심하고, 그 사람이 비록 마음의 응어리가 있고, 그 사람이 비록 약점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기드온이 하는 말을 한번 보세요. 재밌는 얘기를 하죠. 17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당신이 하나님의 사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제 표적을 달라는 얘기예요.
그런데 여기 재밌는 얘기를 하죠. '만일'이라는 말입니다. 만일. 딱 걸리지 않습니까? 어디서 보셨습니까? 바락이 드보라에게 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너더러 전쟁하러 가라 하셨다 하니까 바락이 무엇이라 합니까?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겠거니와, 당신이 함께 가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잖아요. 조건을 단 겁니다. 조건부 순종, 조건부 불순종입니다. 똑같지 않습니까?
지금 기드온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락은 얄짤없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그런데 너는 오늘 영광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끝내버렸습니다. 더 이상 논쟁하거나 더 이상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더없이 자비로우십니다. 표적을 보여달라니까 또 보여주십니다. 뒤에 가면 양털 테스트도 나오는데요. 그것도 두 번이나 하잖아요.
왜 그렇게 하시는가? 이것을 우리가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는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한번 보셔야 됩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심령과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시는 분이시잖아요.
자, 바락의 경우는 가기 싫어서 그런 얘기를 한 거예요. 가기 싫어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만일'이라는 말을 한 거라고요. 그런데 지금 여기 기드온의 경우는 자기도 믿고 싶어요. 믿고 싶다니까요. 자기도 정말 내가 큰 용사이고 싶고, 내가 이 백성들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하고 싶어요.
그런데 나는 소심해요. 정말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서 나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확실하면 나는 가겠다. 그런데 불확실하니까 이것을 자꾸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믿고 싶어 하는 그 중심을 아시고 하나님은 그의 불순종처럼 보이는 이 모습에도, '만일'이라고 조건을 다는데도 계속 계속 응대해 주시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보지 않으면 이 본문은 이해할 수 없는 본문입니다. 그 마음과 중심과 생각을 아시기 때문에 그러십니다.
보세요. 18절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떠나지 마옵소서" 하고 갔어요.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19절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무교병도 만들었습니다. 고기를 소쿠리에 담았습니다. 국물을 양푼에 담았습니다"
그렇게 준비해 놓으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염소고기와 무교병을 그 바위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부으라"고 합니다. 부었어요.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나와버립니다. 다 태워버렸습니다.
불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거든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의 시초가 되었던 모세를 만나주셨던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는 타지 않았습니다. 불만 있었습니다. 그것을 여호와의 신성한 불이라고 불렀거든요.
유대인들은 알아봅니다. 지금 여기 불씨가 없습니다. 누가 불을 피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위에서 불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국을 쏟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물며 물기가 흥건한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 표적을 보여주신 것 아닙니까?
이러고 나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기드온이 22절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거나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야가 그랬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여호와 살롬(יְהוָה שָׁלוֹם)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평화가 되신다. 하나님과 내가 평화를 얻었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죽지 않았다. 이제 확실해졌잖아요. 이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6. 바알 제단을 헐라는 명령
이제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었던 것 같습니까? 기드온이 쥐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진짜 하나님의 사자가 맞습니까?" 어쩌고 저쩌고 대들기도 하고 이상한 말 하기도 하고 조건을 달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확실해졌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십니다.
25절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이제 하나님의 사자는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기드온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입니다.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7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에 아세라 상을 찍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거 소심한 인간이 할 수 있겠습니까?
26절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세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첫째,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바알의 제단을 헐라. 둘째, 아세라 나무 목상을 찍어라. 셋째, 그 찍은 것을 땔감으로 해서 번제를 산꼭대기에 가서 드려라. 할 수 있겠습니까? 소심한 인간이요.
자 보십시오. 중요한 말씀입니다. 27절 "이에" '이에'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에'라는 말은 곧 했다는 뜻이에요. 곧장, 즉시라는 뜻이에요.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밤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밤에 해치워버린 거예요. 무서워서 아침에 날이 밝으면 생각이 바뀔까 봐 어쨌든 했어요. 혼자 하지도 못했어요. 누구와 함께요? 종 10명과 함께. 그런데 한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한 것이 중요한 거예요. 종 10명의 도움을 받았든, 한밤중에 했건, 두려워서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다 잠들었을 때 했건 말건, 어쨌든 한 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것이 순종이거든요. 기드온이 순종한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바알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부터 정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순종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마태복음 27장 32절 말씀을 보시면 구레네 시몬 얘기가 나오죠.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가게 하였더라"
구레네 시몬,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갔습니다. 물론 순종에 자발성이 더해지면 가장 좋죠. 기뻐하며 순종하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 가니까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문에 영광이 있었지 않습니까? 로마서 16장에 보면 그 영광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지금 이 사람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날 밤에 종 10명 데리고 가서 자기 아버지 집에서 그것을 깨부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왜 내리셨을까요? 아버지가 진짜 자신의 주인인지 하나님이 자신의 주인인지를 테스트해 보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말 내가 두려워하고 정말 내가 무서워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 내 인생의 참 주인이 누구인지를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지금 시험해 보시는 겁니다.
7. 성읍 사람들의 반응과 가치관의 전도
자 그 다음날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28절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고, 그 곁에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더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마땅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에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이때 집안에 숨어 있었던 기드온은 얼마나 떨렸을까요? 바들바들 떨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참 슬픈 이 시대의 자화상을 봅니다. 너무 웃기지 않으세요?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 숨어서 우상을 숭배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숨어서 자기들끼리 몰래 못된 짓 하는 시대가 아니에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끼리 점조직으로 모여서 몰래몰래 우상을 섬기는 시절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 마을 사람들, 이 성읍 사람들이 다 떼로 몰려와서 모두가 "이 아들을 끌어내라. 너희 아들 기드온이 했다는 제보가 있다. 그를 끌어내서 죽일 것이다. 마땅히 그를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 아닙니까?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을 잡아내어서 "우상을 섬겼으니 그를 돌로 쳐서 죽이겠다" 해야 정상인데, 바알의 우상을 훼파한 사람을 죽이겠다고 합니다. 가치 전도 현상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와 너무 똑같습니다. 정상적인 가정,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세상에 이상한 가치관이 들어와서 반성경적이고 반율법적이고 반민주적인 세상의 가치관이 주류 사회가 되어버린 이런 사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집을 짓고 우리가 말씀의 가치관 위에 사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한 시대. 그런 시대를 우리가 지금 살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결혼하고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면 돌팔매질 당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시대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공직사회에서 청문회 자리도 통과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사회. 그런 시대가 지금 이 시대가 됐지 않습니까?
가치관이 완전히 역전되어 버린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크리스천인 것을, 내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나는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임을 담대히 말할 수 없는 사회가 지금 이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 이 시대와 우리 시대가 똑같습니다.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서 기드온을 죽이겠다고 이렇게 된 것은 신앙 교육의 부재가 낳은 결과입니다. 40년 동안 신앙교육을 안 하면 이렇게 됩니다. 교회가 교회학교 아이들을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예수 믿는 가정이 우리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40년이 지나면 이 꼴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지금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신앙교육 안 하고 학교 교육만 시키고, 학원 보내고 과외시키고 공부시키고 출세하라고 하고 돈 많이 벌라고 하고,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에게 재산 증여하고,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고, 가치관의 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무엇을 가르친 겁니까?
도대체 우리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이것은 전부 우리 탓입니다. 다 이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이전 세대의 탓이고 이전 세대의 문제입니다. 누구를 탓합니까? 내 눈을 내가 찌른 건데요.
그런데 그 아버지 요아스가 이렇게 몰려온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요아스도 우상숭배자잖아요. 사실. 그리고 그 동네의 유지였잖아요.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이런 얘기를 합니다. "야 조용히 해라" 이렇게 얘기해요.
그리고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바알이 알아서 내 아들을 죽이든지 벌 주든지 할 거다. 너희들이 내 아들을 꺼내서 죽이지 않아도 바알이 진짜 살아있는 신이라면 그렇게 할 테니까 돌아가라"고 말하며 돌려보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기드온의 이름, 별명이 여룹바알(יְרֻבַּעַל)이 된 겁니다. '바알이 스스로 다툴 것이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입니다.
이것을 보면 그 아버지 요아스가 그 동네의 주도적인 여론을 이끌어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잣집이고 주도적인 사람이고 힘이 있는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우상숭배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그 시대의 미디안과 어느 정도 적절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8. 성령의 임재와 기드온의 무장
자 그런 상황, 여기까지입니다. 자 그 다음 이사야 말씀은 우리가 읽어보시면 되고요. 그다음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요. 우리 교재에는 적어두지 않았는데 사사기 6장 33절과 34절 말씀을 화면으로 한번 보십시오.
그때에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준비가 되니까 하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면 사탄도 일합니다. "그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강을 건너와서 이스라엘 골짜기에 진을 쳤더라"
기드온이 준비되니까요. 기드온은 아직 군사를 모으지도 않았어요. 적들은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려고 진을 친 겁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안에서 바알의 신상과 아세라의 신상을 이런 식으로 훼파한 적이 없었거든요. 소문이 났겠죠.
자 34절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여기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셨다는 말씀. '임하다'라는 말에 라바쉬(לָבַשׁ)라는 히브리어를 썼습니다. 성경에 여기만 나옵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다는 말이 사사기에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만 라바쉬라는 말을 썼습니다.
성령이 옷 입히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에게 옷을 확 입혀주신 거예요. 성령이 말입니다. 자, 옷니엘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고 했고요. 또 입다에게도 임했고 삼손에게도 임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만 라바쉬라는 말을 썼습니다. 성령이 그를 무장시켰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성령이 직접 나서서 그를 옷 입히셨을까요? 지금 기드온이 한 일이 대단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사람이잖아요. 아버지의 바알과 아세라 제단을 훼파했습니다. 박살냈습니다. 내가 정말 무서워하는 분은 내 아버지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이것을 고백했잖아요.
두 번째, 또한 그의 이 일이 위대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신을 개조하시기 위한 것이거든요. 지도자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지도자로 나서는데 자기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 됩니까? 지도자가 되는데 자기 가정이 우상 숭배하는 가정에서 지도자가 나서면 됩니까? 지도자가 영적 지도자로 나섰는데 자기 아버지는 바알 우상숭배자예요. 자기 집에 바알의 제단이 버젓이 있다고요. 자기 집에 아세라 목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까?
하나님은 구원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기드온을 통해서. 그런데 문제는 구원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교육까지 생각하신 겁니다. "봐라 바알을 훼파해도, 바알 제단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부숴도 괜찮잖아. 너희 집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잖아. 오히려 그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 집에 있는 바알 제단도 아세라 목상도 다 부수고 너희도 하나님 백성이 되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 지도자가 되려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으려면 우리 자신부터 정리정돈을 잘해야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목회했잖아요. 에베소 교회의 중직들을 세울 때, 감독, 장로를 세울 때 이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2절과 3절 말씀을 보시면 장로의 자격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하죠. "그러므로 감독은" 여기서 감독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목회자, 장로들을 얘기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두 집 살림하면 안 된다는 얘기죠.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어려워요. 이것 쉽지 않아요. 한 가지라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기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자기 집을 잘 다스려"라고 나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자기 집안에 바알 우상이 있고 아세라 우상이 있고, 자기 집안이 믿음으로 바로 서 있지 않은데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것부터 정리하라는 겁니다. 그것부터 깨부수고 그것부터 정리해야 너는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 말씀을 하나님은 지금 기드온을 통해서 명확하게 하시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자녀들에게 귀감이 되려면 내가 붙들고 있는 우상들부터 깨부셔야 됩니다. 신앙생활하는 데 방해가 되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왜 없습니까? 다 있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나만의 우상들이 있습니다.
나의 유흥과 오락을 즐거워하는 여러 가지 것들, 그런 것들부터 깨부수고 하나님 신앙에 집중하셔야 자녀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녀들에게 얘기를 해야지 먹히죠. 교회에서 목회자가 자기 할 것 다 하고 놀 것 다 놀고 할 것 다 하고 쓸 것 다 쓰고 그리고 교인들에게 "이것 하십시오 저것 하십시오" 하면 먹힙니까? 그것이 하나도 안 먹히잖아요. 그래서 이것부터 정리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9. 양털 테스트
이제 이쯤 되면 하나님의 영이 성령으로 그에게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기드온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렇잖아요. 성령으로 옷 입었으면 영적 무장이 딱 된 거거든요. 나가면 되잖아요. 이제 전쟁터로 가면 됩니다.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참 참 다루기 힘든 인간이에요.
37절과 39절 화면을 한번 보십시오. 제가 천천히 읽겠습니다. "보소서" 내가 보소서 할 때 하나님이 "또? 왜 또?" 아마 그랬을 거예요.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양털 테스트를 합니다. 자 이것을 하려면 이슬이 내리려면 하룻밤이 지나야 하잖아요. 하룻밤 또 지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재했는데 하룻밤이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어요. "그래, 네가 소심하지. 돌다리도 두들기지" 그러면서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또 얘기해요. 39절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자기도 미안하니까 지금 벌써 세 번째 아닙니까? 세 번째잖아요. 첫 번째 하나님의 사자가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했고, 두 번째 양털 테스트 했고, 세 번째입니다.
"이번만 말하리이다" 마지막입니다 그랬어요.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주변은 다 이슬이 내리고 양털만 뽀송뽀송하게 해달라. 그것도 하나님께서 해주셨어요.
하나님은 왜 이렇게 기드온에게 약하신 것 같습니까? 진심을 아시기 때문에입니다.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심한 것을 어떡합니까? 믿고 싶은데 계속해서 돌다리를 두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베드로같이 즉각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마같이 계속해서 두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마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요한복음 20장 말씀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도마는 마침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고 나서 도마가 왔습니다.
제자들이 "나 부활하신 예수님 만났다니까" 하니 도마가 부럽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예수님 손에 못자국을 만져보고 발에 못자국을 만져보고 허리의 창자국에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어요. "만져보라. 허리에 손을 넣어보라. 그리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뉘앙스가 어땠겠어요? 화를 내시며 책망해서가 아니에요. 도마의 진심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주신 겁니다. 도마가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안 믿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제대로 믿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계속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베드로와 도마는 기질이 다른 사람이에요. 바락은 안 믿겠다고 조건을 달았고, 기드온은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 하나님 앞에 마음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중요합니다. 내 마음 중심을 가지고 모르면 하나님께 모르겠다고 따져 묻고 계속해서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다 알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는 분들도 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억지를 부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진짜 궁금해서, 이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리고 더 좋은 의견이 있어서 얘기하시는 분들과는 얼마든지 대화하고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질문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좋아하십니다. 기드온을 한 번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다 들어주셨습니다.
10. 결론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기드온처럼 질문도 많이 하시고, 또 신앙교육을 못하면, 안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셨으니 신앙교육을 제대로 잘하는 가정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40년의 평화의 시간을 또 실패한 이후에 그들은 미디안의 압제를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말씀이 없어 죽어가는 것이 문제였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심한 사람 기드온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큰 용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도 큰 용사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주변을 정리 잘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가정과 내 삶을 살피고 돌아보게 하옵시고, 내 삶의 우상이 있으면 그것부터 정리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가장 크신 분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고, 그리하여 성령께서 나에게 온전히 옷 입혀서 성령의 옷을 입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궁금하면 끝까지 질문하게 하여 주시고, 이해될 때까지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 물어보고, 진실로 합리적인 믿음, 질문하는 신앙을 가지는 기드온 같은 믿음의 백성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