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 기드온의 실패와 타락 / 전체녹취

강 번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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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특강(8) - 기드온의 실패와 타락 (삿8장)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사사기 8장 27절입니다.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함으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기드온 이야기를 우리가 지금 세 번째 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은 기드온의 실패에 대한 말씀입니다. 기드온 같은 위대한 사람이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입은 사람이 왜 실패했을까요? 이 사람의 실패의 이유를 살펴보면 이 사람의 실패가 곧 우리의 실패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 사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함께 보게 될 것입니다.

  1. 기드온의 출발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큰 용사라고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사실 소심한 인물이었습니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용감하지 않은 그런 인물입니다. 그런데 소심했지만 그래도 기드온이 꽤 괜찮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싶어 했습니다. 따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확인하는 절차를 여러 번 지속적으로 거칩니다. 그가 확인하는 절차를 세 번이나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 세 번에 다 응답해 주십니다. 바위에서 불이 나오게 하시고 양털에 대한 두 번의 테스트도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시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드온을 특별하게 사랑하신 방법이고 그를 지도자로 세우신 방법입니다.

1-1. 하나님의 군대

이제 지도자가 세워졌으면 그다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군대를 세워야 하는데, 이스라엘 진영에 군대를 모았는데 32,000명이 모입니다. 근데 하나님이 그 군대가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돌아갈 사람 돌아가라. 첫째, 두려움에 떠는 자들은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떠는 자들을 보내니까 22,000명이나 다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하나님 군사의 조건, 두려움 있는 자는 군사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물가에 가서 물을 한번 먹여 봅니다. 물가의 테스트를 하는데 그 물가의 테스트는 정체성의 테스트입니다. 좌우 사방을 경계하며 마시는가? 아니면 무릎을 꿇는데 바알에게 무릎 꿇어본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테스트해서 다 돌려 보내고 나니까 300명만 남았습니다. 적들은 135,000명인데 우리 군대는 300명. 450대 1입니다. 무려 450대 1의 싸움을 하게 하는데, 그건 상대가 얼마나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이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군대를 그렇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1-2. 하나님이 주신 무기

그리고 나서 무기를 주지 않습니까? 무기는 세 가지였습니다. 나팔, 빈 항아리, 그리고 빈 항아리 속에 있는 횃불. 나팔은 불게 하셨고 항아리는 깨뜨리게 하셨고 항아리가 깨어져야 그 안에 있는 횃불이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나팔은 영적 각성을 의미하고 빈 항아리는 우리 인간의 흙으로 빚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횃불은 하나님 빛 되신 그리스도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무기가 과연 공격력 무기가 되는가? 거기에 칼이 없고 거기에 공격 무기가 없는데 왜 이게 공격 무기인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즉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칼처럼. 근데 그걸 순종하고 붙잡으면 그 말씀이 나에게도 칼이 되는데 그 말씀을 붙잡지 못하면 칼이 될 수가 없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걸 가지고 135,000명 가운데 120,000명을 쳐서 무찌릅니다.

  1. 잔당 섬멸

이제 잔당들이 남아 있습니다. 원래 전쟁이라고 하는 건 그 잔당들까지 다 섬멸해야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잔당들을 섬멸하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합니다. 근데 한번 상상해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 진영에 한번 군대를 모아라 해서 다 모였는데 32,000명밖에 안 모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하셨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근데 판세를 보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아주 압도적으로 이기고 이들은 도망을 갑니다. 그러면 이 판세를 읽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에 숟가락 하나 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2-1. 에브라임의 트집

그 사람들이 우리 지난 시간 끝자락에 봤던 에브라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7장 23절 한번 보시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이제 추격을 한 거죠. 24절,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여기를 점령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누가 응답했느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수로를 점령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응답을 한 거예요.

자,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25절,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자, 이 정도면 성공적입니다. 사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처음부터 참전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나 뒤늦게 발을 들이고 숟가락 하나 얹었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이 여기에 참전했기 때문에 잔당들 중에 오렙과 스엡 같은 사람을 섬멸할 수 있었습니다. 잘한 거죠.

근데 여기까지 잘했으면 괜찮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이제 어떤 짓을 하느냐? 오늘 1절 말씀 보시면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크게 다투는지라" 그랬습니다. 우리를 왜 대접하지 않느냐? 왜 안 불렀느냐? 그러면 기드온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직접 가서 무릎을 꿇고 빌어야 됩니까? 제발 좀 일해 달라고, 제발 좀 여기 와 달라고 빌어야 됩니까?

사실 이 전쟁을 하고 그가 사사로 부르심을 받고 구원자로 세움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 그랬습니다. 성령이 마치 옷 입히듯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 진영에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서 32,000명이 왔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트집 잡는 거밖에 안 됩니다. 민망하니까 트집 잡는 거.

자, 근데 크게 다투다라는 말 이제 이걸 보면 실력 행사를 하다, 힘을 쓰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력 행사까지 했다는 뜻입니다. 싸우려고 들고 무력 행사를 하고.

2-2. 콤플렉스의 뿌리

근데 여기서 우리는 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이런 짓까지 해야만 했는가 한번 그 뿌리를 한번 올라가 보면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는 한 집안입니다. 요셉 자손들입니다. 아버지가 요셉이고 큰 아들이 누굽니까? 므낫세고 작은 아들이 에브라임입니다.

근데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는 한 특별한 기억, 추억이 있는데, 창세기 48장에 보면 아버지 요셉이 이 두 아들을 데리고 그 아버지 야곱에게 축복 기도를 받으러 가지 않습니까? 근데 야곱 할아버지가 어떻게 기도합니까? 손을 어긋 맞춰서 기도합니다. 므낫세가 장자니까 오른손을 그의 손에 올리고 먼저 기도하고 그다음 해서 데리고 와서 에브라임을 기도하면 괜찮은데 둘이 한 번에 그냥 기도해 버립니다. 그것도 사실 요셉 마음에는 좀 마땅치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세트로 한 번에 그냥 하냐? 그냥 두 아들인데 그냥 한 사람 하고 또 한 사람 해 주면 좋은데, 근데 그것도 이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손을 어긋 맞춰 가지고 왼손을 므낫세에게 얹고 오른손을 에브라임에게 얹어 버립니다.

그렇게 한참 기도하는데 "아버지, 그거 잘못됐습니다. 아버지 손이 잘못 갔습니다. 아버지 능력의 오른손이 큰 아들 므낫세에게 가야 됩니다"라고 하니까 "내 아들아 나도 안다, 나도 안다" 그랬습니다. 그냥 그대로 해 버립니다. 사실 그게 그 당시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는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겠지만, 나중에 세월이 가고 시간이 가서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집안을 이루고 그 집안이 땅을 분배받고 난 다음에 그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승 아닙니까?

그게 그러면 그 집안의 뿌리는 요셉인데 그 뿌리에서 갈라진 므낫세 집안과 에브라임 집안 가운데 에브라임 집안은 상당한 선민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므낫세 집안은 거기에 대한 열등감, 콤플렉스, 불편한 마음이 계속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기분 나쁘거든요. 사실은.

근데 거기서 결정적으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고 간 지도자가 누굽니까? 여호수아. 여호수아가 어느 지파입니까?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그럼 에브라임 사람들은 이게 확정되는 거예요. "그거 봐라. 우리 조상 야곱께서 용하지 않냐? 야곱께서 역시 기도하셨는데 므낫세 지파 너희들에게 뭐가 있냐? 우리 조상은 결국 에브라임 지파의 조상인 어른인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다." 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 이런 상황이에요.

그리고 땅 분배할 때 보세요.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을 나누는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요단 서쪽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그 땅을 차지하라 그랬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요단강 건너 서쪽입니다. 지중해와 마주하고 있는. 근데 요단 동쪽에 이미 땅을 분배받은 두 지파 반이 있습니다. 이제 이 정도 얘기하면 다 알아듣죠. 우리 너무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그 두 지파 반이 누굽니까?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 므낫세 중에 절반은 또 한 발짝 빠져 버렸어요. 건너오지도 않아요. 걔들은 그냥 한 발짝 뒤로 빠져 가지고 그냥 그렇게 삽니다. 근데 요단강 건너와서 요단 서쪽에 자리 잡은 지파가 므낫세 반지파라고요. 그것도 반 토막 났다고요. 그러니 므낫세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지속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살고, 에브라임 자손은 므낫세 지파는 그냥 상대도 안 되고 경쟁 상대로조차 여기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이 므낫세 지파거든요. 기드온이 므낫세 지파인 기드온이 나서서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쓰시니까, "저 집안에게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누구야?" 그래서 에브라임 지파는 처음부터 아예 참전도 하지 않은 건데, 그런데 가만히 두고 보니까 이놈이 공을 다 세울 거 같거든요. 전부 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에 끝자락 잡고 숟가락 하나 얹었는데 그게 오렙과 스엡을 죽였어요. 그리고 그 머리를 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사령관인 기드온에게 딱 바치면 끝나는 문젠데, 거기서 "네가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대접하느냐" 어쩌고 저쩌고 뭐 이렇게 이제 딴지를 거는 거죠. 자기를 알아 달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자기를 알아 달라고.

2-3. 영적 전투

여러분, 지금 이 공동체가 전쟁 중이잖아요. 지금 남은 잔당들을 물리치고 전쟁하고 있습니다. 지금 도망갔어요. 15,000명이 그거 잡으러 가야 돼요. 영적 전투의 순간에 이런 식으로 발목 잡고 이런 식으로 딴지 걸고 이게 정상입니까?

여러분,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악과 싸우는 전쟁입니다. 우리가 그냥 평화롭게 신앙생활하고 믿음 생활 하는 거 같지만 교회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서 세상의 악과 싸워야지, 우리끼리 "왜 너는 나를 이런 식으로 대접했냐? 왜 나를 알아주지 않냐?" 발목 잡고 이러면 세상을 향하여 싸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 보십시오. 크게 다투는지라. 크게 다투어야 될 대상이 누굽니까? 사탄이에요. 사탄 마귀. 남아 있는 잔당들과 크게 다투어야지, 왜 총부리를 우리 편에게 겨눕니까? 방향이 잘못됐잖아요, 이게. 그래서 싸우는 교회 치고 성장하는 교회 없습니다. 갈등하고 싸우고 서로 자기 알아 달라고 대접해 달라고 "우리 조상 중에 여호수아가 있는데 왜 여호수아의 공을 너는 인정하지 않느냐?" 조상이 여호수아면 어쩌라고요?

너희들이 지금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는데, "우리 조상이 누구고 우리 아버지가 누구고 내가 이 교회에서 얼마고" 그게 어쩌라고요? 그게 아무런 대접받을 자격 조건이 안 됩니다. 지금 내가 일하지 않는데,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에 발 들여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데 나를 알아 달라고 떠들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알아줄 이유도 없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근데 지금요, 지금 기드온은 얘들하고 다툴 시간이 없어요. 빨리 가야 되잖아요. 보세요. 기드온이 어떻게 하는지. 2절,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너희가 한 일이 훨씬 큰 일이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첫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아비에셀은 므낫세 지파의 한 집안이에요. 므낫세 지파의 한 작은 족속 아비에셀의, 자기 아버지가 요아스잖아요. 그래서 지금 므낫세 지파라는 말도 하지 않아요. 그냥 므낫세 지파 중에 있는 한 집안 아비에셀의 첫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우리가 아무리 잘났다 해도 너희 중에 가장 못난 놈들보다 우리는 못하다" 이런 얘기예요.

3절,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었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하는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어떤 마음 드세요? "웃기고 있네" 이런 마음 들지 않으세요? "꼴값하고 있네" 이런 마음 드시죠? 진짜 정말 기드온이 이래서 이런 말을 한 겁니까? 정말 이걸 인정해서?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라 얘들하고 상대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상대를 안 해 주는 겁니다. 이게 또 굴욕이에요. 이게 차분히 앉아서 다투고 논쟁하고 논증하고 "선은 이렇고 악은 이렇고 그러니까 노여움을 풀어라" 이럴 시간이 없는 거예요. 상대도 안 해 주는 거예요.

근데 이 짓을 하고 있다니까요. 이걸 보고 헛발질한다 하고 허공을 치듯한다 하는 겁니다. 싸울 대상을 제대로 골라 싸워야지. 우리는 영적 전투를 하는 사람이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공동체에서 사람들 발목 잡고 믿음의 사람들, 함께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딴소리 하는 사람들이 되면 안 됩니다. 절대.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세상의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과 싸우는 거예요. 디모데후서 2장 23절, 야고보서 1장 20절 한번 보십시오. 바울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알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디모데는 바울의 뒤를 이어서 에베소 교회를 목회한 목회자입니다.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 하지 마라 그랬어요. 피하라 그랬어요. 교회에서 싸움 거는 사람들하고 다투지 마라. 거기에 스트레스 받고 거기에 힘 빼고 그런 짓 하지 마라. 자기 알아 달라고 대접하다, 대접받겠다고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느냐" 하고 소리 지르는 인간들하고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지 말라. 말을 섞지 말라는 말이에요.

근데 에브라임 사람들은 노여움이 풀렸다. "아, 이제 체면은 세웠다" 하는 거죠. 이게 지금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두고두고 수천 년이 지나서 우리가 지금 읽고 있습니다. 얼마나 에브라임 사람들이 웃깁니까? 두고두고 욕 먹을 짓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1. 숙곳과 브누엘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이제 4절 보니까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300명이" 이 300명이 전력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얘기예요. 전부 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300명이 잔당들을 쫓아갑니다. "요단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계속 추격합니다.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 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이제 보급이 필요한 거예요.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밤 새워 가지고 전쟁했고 그리고 또 잔당들 쫓아가니까 요단강까지 건넜으니까 배가 고프니까 보급을 해 달라는 거죠.

근데 이거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옛날, 요즘은 그런 얘기 잘 하지 않는데 우리가 선교할 때 한창 한국 교회가 90년대 80년대 막 선교사 보낼 때 뭐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우리 모두가 다 선교적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 전 그거 되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다 선교적 사명을 주셨잖아요. 근데 모두가 다 선교사로 나갈 수는 없습니다. 가는 분이 있으면 보내는 분도 필요하잖아요. 기도로 후원하고 물질로 후원하고 섬김으로 후원하고 그런 분이 필요하죠.

300명의 용사는 직접 가서 세바와 살문나를 때려잡아야 되고, 지금 이들은 떡을 공급해서 이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고, 이거 다 싸움에 동참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 숙곳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회가 온 겁니다. 이 영적 전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 위대한 기회잖아요. 아주 훌륭하고 좋은 기회. 하나님이 그들에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3-1. 숙곳의 거절

근데 뭐라고 해요? 6절,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말이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매" 안 주는 거예요. 이들이 하는 말 보세요. "세바와 살문나 잡아왔냐? 너희가 지금 가면 걔들 잡아올 수 있냐? 그거 어떻게 보장하냐?"

자, 지금 이들이 300명입니다. 남아 있는 잔당들이 얼마라 그랬습니까? 15,000명이에요. 135,000 중에 15,000이 남았어요. 빨리 계산해 보십시오. 50대 1입니다. 50대 1. 몇 명 잔당들 쫓아가는 게 아니고요, 300명이 또다시 15,000명을 쫓아가는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들 숙곳 사람들이 딱 계산을 해 보니까 이 싸움 가망 없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이들에게 떡을 줬어요. 먹을 걸 줬어요. 만약에 패배하고 돌아오면 우린 어떻게 돼요? 보복당하는 거죠. 미디안 사람들에게. 미디안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광을 털어서 곡식 다 털어서 떡 주고 먹을 거 주고 그랬다고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계산을 한 거예요. 눈에 보이는 계산.

근데 이 사람들이 간과한 게 있습니다. 지난밤 있었던 하나님의 능력을 계산해 넣지 못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잖아요. 기적을, 놀라운 역사를. 아무것도 없는데 나팔과 빈 항아리와 횃불 가지고 120,000명을 죽이고 15,000명 남은 잔당들을 잡으러 가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얘들이 꽁지 빠지게 다 도망간 것도 보여 주셨습니다. 근데 그걸 못 믿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건 못 믿고 실제로 자기 눈에 보이는 숫자만 보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게 오늘 우리예요. 똑같아요.

예수님의 부활, 홍해가 갈라진 사건,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오늘 이 땅에도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들을 보고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고 자기 눈앞에 있는 15,000 대 300만 보는 어리석은 사람들, 그런 자들입니다.

3-2. 분노의 시작

자, 7절 이거 잘 보셔야 돼요.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하나님이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실 거라는 걸 기드온은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라는 말을 하죠. 근데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여기 "내가"라는 말, 자 기드온의 어떤 마음이 느껴지세요? 분노, 열받음, "동참하지 않은 너희들을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거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에요. 지금 기드온이 "내가"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이 정도 했으면 괜찮은 거예요. 그 하나님께 맡기는 거니까. "하나님, 저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 심판하십시오" 가버리면 되는데, 기드온이 거기서 "내가"라고 말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미 기드온 마음에는 깊은 열받음이 있습니다. 지금 왜냐 이전에 바로 직전에 에브라임 사람들한테 한번 상처를 대게 받았잖아요. 열 받았어요. 화가 났어요.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은 자기 감정이 있습니다. 지금 빨리 이들을 쫓아가서 무찔러야 되니까 오긴 했는데, 오면서도 괴로운 거예요. 에브라임 자손들이 화가 나 있는 거죠. 근데 숙곳 사람들이 또 이런 식이에요. 그러니까 화를 돋우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 이때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 "내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감정 정리라는 거 대단히 중요한데, 지금 기드온은 전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상대와 싸우는 중인데 그때 심리 상태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사탄은 이런 와중에도 장수의 마음을 계속해서 요리조리 식으로 흔들어댑니다.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 함께 협력하지 않고 돕지 않는 사람들, 지속적으로 발목 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 사람을 계속 시험하고 나를 화나게 만듭니다. 거기에서 내가 템포를 잃어버려요. 지금 첫 단계입니다. 여기 잘 보셔야 돼요.

그다음 8절,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그러면 뭐예요? 지금 보편적 정서가, 이스라엘의 보편적인 정서가 기드온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똑같이 15,000명의 군대가 훨씬 더 승산이 있다고 보는 거죠. 자, 절망스럽겠죠? 화가 나는 거예요. 너무.

9절,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기 또 뭐가 나옵니까? "내가" 여러분, 성경은 정말 정확한 책입니다. 성경은 "내가" 하나님이 아니에요.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망대를 박살내겠다 그랬어요.

자, 지금 기드온 마음에 이런 마음이 이제 크게 자리를 잡아 버렸어요. 에브라임 자손, 그다음에 숙곳 사람들, 브누엘 사람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편적인 정서라고 기드온이 생각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기드온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내가 강력해지면, 내가 좀 더 강한 권력을 가지면 이것들이 나를 따를까?" 이런 마음이 마음속에 슬슬 자리 잡기 시작하는 거죠.

3-3. 칼로 싸우다

그다음 10절, "이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 칼 든 자 120,000명이 죽었습니다. 그 남은 15,000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제 이들이 좀 멀리 도망을 가서 한 호흡을 고르고 있는 중이에요. 다시 전력을 정비하고.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쳤습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그럼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좀 궁금한 게 생기지 않으세요? 뭘 갖고 싸웠을까? 120,000명 쳐 죽일 때는 나팔, 항아리, 횃불이에요. 자기들끼리 막 찌르고 자중지란이 일어났잖아요. 근데 지금 이 15,000명, 대낮이에요. 지금 야밤 기습도 아니에요. 근데 이들과 싸울 때 지금은 뭘 갖고 싸웠을까? 똑같이 항아리 들고 갔을까? 항아리 깨부쉈는데 이 멍키를 쫓아오는데 항아리도 들고 나팔도 들고 횃불 들고 대나제? 뭘 갖고 왔을까요? 뒤에 보면 나오죠. 칼이에요. 칼. 칼 갖고 와요.

자, 그러면 우리가 질문해 봐야 되잖아요. 자, 왜 이들은 칼로 무찔러야만 했는가? 칼싸움하는 거예요. 이제 백병전 전투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기적과 이사를 보여 주시잖아요. 성경에 보면 홍해를 갈랐습니다. 그러면 갈라 놓고 나서 그 홍해를 건너가는 건 누가 해야 됩니까? 이스라엘이 하는 거예요. 건널 때 마음 편하게 노래 부르면서 뭐 피크닉 가듯이 그렇게 갔을까요? 못 갑니다. 옆에 보면 바다가 지금 마치 수족관처럼 딱 서 있는데 물이 막 튀고 무서워요.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큰 괴성을 내뿜으면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고. 근데 무섭다고 주저앉으면 어떡합니까? 가야지. 전진해야지.

하나님께서 기적을 열어 주시면 그 기적을 행하는 그 뒤를 따라가는 건 내 몫이에요. 하나님이 120,000명을 정리해 주셨잖아요. 그러면 남은 15,000명을 무찌르는 건 내가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근데 우리는 뭐든지 다 하나님께 던져 버려요. 귀찮은 건, 하기 싫은 건.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셨잖아요. 은혜를 주셨으면 그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건 내 몫이라고요. 하나님이 나를 목사 만들어 주셨어요. 정말 택도 아닌 인간을, 말 같지도 않은 인간을 장로 세우고 중직 세우고 목사 만들어 주셨어요. 그러면 목사다운 목사로, 장로다운 장로로, 중직자다운 중직자로 만들어서 가는 건 누가 해야 됩니까? 내가 하는 거라고요. 내가, 내가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게 특별 은총 이후에 일반 은총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 은총을 주셨으면 나에게 주어진 칼로, 나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거 안 하고 "아, 이제 대세가 끝났으니까" 하고 널브러져 있다가 당한 게 이스라엘 아닙니까? 가나안 땅 정복 전쟁 했는데 잔당들 못 쫓아냈잖아요. 그때 못 쫓아낸 애들이 미디안 족속이고 그 걔들이 여부스 족속이에요. 그 사람들이 다 나중에 세력을 확장해서 다시 이스라엘을 압제하지 않습니까? 이거 끝까지 해서 다 멸절해야 됩니다. 끝까지 가서 내가 해야 되는 거예요. 내 사명,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요.

은혜 받고 나서 그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건 나의 수고와 나의 피땀 눈물이 있어야 그 은혜가 되는 거지. 그래서 기드온 같은 소심한 인간도 손에 칼 들고 가는 겁니다. 그 300명의 용사들도 칼 들고 이 15,000명을 잡기 위해서 가요. 왜 두렵지 않았겠어요? 50대 1인데. 300명인데 15,000명인데. 그런데 이거 해야 되는 거거든요. 이거 반드시. 결국 어떻게 됩니까? 다 무찌르고 그 두 왕 세바와 살문나는 사로잡았습니다.

3-4. 사적 복수

자, 이제 그러면 기드온은 어떤 마음일까요? 마음속에 숙곳 인간들, 또 브누엘 인간들, "가만히 두지 않겠다" 이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는 거예요. 이게 승자의 여유는 아니에요. 이게 진짜 아량과 여유가 아니에요.

13절,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신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77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지도자들 이름을 명단을 확보했어요.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자, 여기서 보면 기드온이 "희롱하여 이르기를"이라고 말하죠. 그럼 기드온의 그때 감정이 뭐예요? 모욕감을 느꼈다는 뜻이에요.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다. 자,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말이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자, 사실 기드온이 모욕당한 거 맞죠? 근데 사실 하나님이 모욕당한 거 아닙니까? 그럼 하나님께 맡기면 되는 거예요. 근데 기드온은 그걸 구별을 못 했어요. 지금 자기 마음의 정리를. 그래서 이걸 철저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 한 자, 토시 하나 빼먹지 않고. 아, 이 소심한 사람들 무서워요. 딱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가 딱 말 하나 기억하고 있다가 이걸 그대로 갚아 줘.

아니, 아침에 먹었던 반찬도 기억을 못 하는 판에 이 전쟁 통에 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넘어지고 하는 통에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다 기억이 나서 그걸 다시 곱씹어서 다시 77명을 잡아서 이러고 있어요. 지금 기드온이. 아직까지 기드온의 마음이 간장 종지예요. 이겼잖아요. 그러면 승자의 여유가 좀 있어야지. "왜 그랬냐?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겠느냐?" 뭐 이러면 좀 멋질 텐데.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자기 말 한 그대로 해 줘요. 들가시와 찔레로 징벌했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 찔렀겠지 뭐. 살을 벗겼는지. 아휴, 참. 자기 생긴 대로, 이 소심한 인간대로 들가시와 찔레로 사람을 징벌했다. 참 그냥 한 소리 하고 말지, 그냥 그냥 가면 되지. 근데 꼭 그렇게 했어요.

또 그다음 보세요. "브누엘 망대를 헐며" 아, 또 브누엘에 갔네요. 망대를 헐었어요. 여기까지 했으면 됐어. 여기까지 자기 말한 대로. 그다음 어디까지 가요?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여러분, 원래 분노라는 건요, 이게 폭발력이 있습니다. 분노라는 게. 들가시와 찔레로 사람을 찔렀어요. 괴롭혔어요. 사람을 애먹였다고요. 브누엘 망대를 허물었어요. 여기에 이제 기름이 부어져요.

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그랬죠. 화가 왜 무서우냐? 분노가 왜 무서우냐? 그게 사탄이 틈타거든요. 그게 사탄이 틈타서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를 징벌하리라. 브누엘 망대를 헐리라" 여기까지 갑니까? 아니에요. 브레이크가 없어요.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가요. 이게 하나님의 심판입니까? 자기 원수의 보복입니까? 원수 갚는 것 아닙니까? "내가 희롱당한 것, 내가 화난 것, 나를 너희가 모욕한 것" 여기에 대한 철저한 자기 응징이에요. 이 사람이 지도자 자격이 됩니까?

3-5. 내면의 관리

여러분, 우리는 그거 기억해야 돼요. 이 믿음 생활 하다 보면 업적이 생깁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에 뭘 하면 다 잘돼요. 이렇게 이 기드온처럼 300명으로 120,000명 죽이고 또 300명으로 15,000명을 죽이고 지도자, 적장들을 사로잡고, 이게 계속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서 잘돼요. 근데 그때 내 심리 상태, 내 영적 상태. 내 영적 상태는 어때요? 사람들은 그거 몰라요. 백성들은 모릅니다. 이 공동체가 잘되면 지도자의 영적 상태가 충만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그게 비례 관계라면 왜 수많은 이 시대 동서고금의 지도자들이 자기 성공 이후에 그토록 빨리 타락합니까? 영적 성장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공과 같은 그래프를 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드온을 보면 기드온의 가시적인 성과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근데 그의 내면은 반비례해요. 이렇게 하나님으로 충만했던 기드온이 그 마음에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한번 고개를 숙였잖아요. 그걸 보면 그 고개 숙인 것도 그의 진심이 아니었던 거예요. 정말 넓은 마음과 아량으로 마음이 이만큼인 거예요. 이만큼.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돼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업적을 가지고 그 사람의 영적 상태, 내면까지 판단하면 안 된다.

두 번째, 또 내가 뭘 하나님의 일을 하면 돼요. 이렇게 잘돼요. 근데 그때 내 영혼 관리를 잘해야 돼요. 나의 내면 관리를. 기드온이 이거 관리했어야 되거든요. 에브라임 지파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 마음에 남아 있는 감정의 찌꺼기, 감정의 응어리, 이걸 털어내고 그다음에 이 사람들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숙곳 사람들과 브누엘 사람들을. 그게 안 됐잖아요.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승리하고 나면 하나님께 예배드려야죠. 예배드리고 이 승리에 대한 반추를 하고 자기 자신을 살피고 그리고 나서 이 쌓여있는 감정들을 다 털고 돌아와야 돼요.

그렇지 않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살인이 일어나잖아요. 사람을 죽이는 살인. 여러분, 우리는 자기 감정을 너무 모릅니다. 나의 내면을.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왜 합니까? 내가 기도해서 내면을 살펴야 되는 거예요. 내가 잘 나간다, 사업이 잘되고 돈을 잘 벌고 교회에서 하는 일이 다 잘되고, 그렇다고 내 영혼이 그만큼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내면이 무엇 때문에 지금 병들어 있는지, 내면이 무엇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사탄은 눈에 보이는 성공은 줄지언정 이 사람 하나를 완벽하게 박살냅니다.

기드온이 무너지면 이스라엘이 같이 무너지거든요. 목회자들이 왜 타락할까요? 영적인 그 위대한 성공을 그럼, 목회자들이 내면 관리가 안 돼서 그런 거예요. 영적 관리가 누가 압니까?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 알아요.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기드온이 지금 이렇게 "내가" 하다가 "내가" 살인까지 하잖아요. 지금.

잠언 16장 32절 말씀 한번 보세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언 말씀이 주옥 같아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 그랬어요. 여러분, 지금 기드온이 자기 마음 하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거예요.

  1. 왕권을 탐하다

자, 그러면 이 백성들에게 기드온은 이제 어떤 감정입니까? 백성들에게 기드온은 대단한 존경받을 사람이었다가 이제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 거예요. "저 사람 건드리면, 저 사람을 자극하면, 저 사람에게 우리가 잘못 보이면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겠구나" 이런 두려움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게 된 거예요. 공포를 심어 주게 된 거. 여러분, 사람들에게 공포가 들어가면 그 공포에서 나오는 말이 진실입니까? 거짓입니까? 대부분 거짓이죠. 뭐 공포감을 심어 주는데 그게 권위가 됩니까? 여러분, 권위는 공포로 생기는 게 아니에요. 기드온은 이게 잘못된 거예요. 공포는 절대 권위를 이끌어낼 수가 없습니다.

4-1. 세바와 살문나

자, 이제 보세요. 18절,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냐 하니" 직접 기드온이 신문했습니다. 세바와 살문나를. 다볼에서 죽인 사람이 자기 친척들이거든요. 가족들, 핏줄들이에요. 그래서 지금 기드온이 이들을 신문하는데 이 세바와 살문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와, 여러분, 이 말 속에 세바와 살문나의 지혜를 볼 수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의 심리를 정확하게 알았거든요. "너와 같이 왕자와 같다" 그러면 기드온이 왕족이라는 뜻이잖아요. 지금 자기의 목숨이 끝장에 달린 거, 기드온의 칼에 달린 걸 알잖아요, 지금 얘들이. 그러니까 기드온의 마음을 어떻게든 기쁘게 해 주려고 "너와 같은 왕자들이더라" 야, 이 말은 "너를 보니까 후광이 빛난다. 너를 보니까 곧 왕이 될 상이다" 뭐 이런 말이에요. 지금 세바와 살문나가.

근데 기드온이 복수심이 좀 더 강했던 거 같아요.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여러분, 이거 대단히 개인적인 얘기예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바와 살문나는 자기 개인적 원수와 상관없이 처형해야 되는 사람들이에요. 적장이니까. 근데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을 지금 여기 넣고 있죠. 기드온의 문제예요. 이거.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기드온의 아들이죠.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아들이 겁이 나니까 적장의 목을 못 베는 거죠.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나는 죽어도 너의 칼에 죽고 싶다. 네가 죽이는 거라면.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자, 여러분, 여기서 성경이 왜 이 말을 기록해 두었을까요?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을 가졌다는 얘기를. 이게 잘한 걸까요? 못한 걸까요? 이 뒤에 가보면 나오죠. 이게 문제입니다. 잘못한 거예요.

신명기 7장 25절 말씀을 한번 보시면 율법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는 그들이 조각한" 그들은 이방인들이거든요.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들이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자, 이 배경이 어떠냐 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일곱 족속을 볼 거 아닙니까? 그 우상들을 때려 부수라는 얘기거든요. 근데 그 우상들에게 금박이 입혀져 있고 그 우상들에게 은금으로 포장된 게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거 껍데기 벗겨서 그 금이나 은 취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런 짓 하지 말라고. 그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거다. 그게 너희에게 올무가 된다는 얘기예요.

근데 지금 기드온이 어떻게 합니까? 낙타의 목에 걸려 있던 초승달 장식을 떼서 가지는 거예요. 이미 기드온의 마음속에 "내가 내가" 자기 의가 지속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방에 사람이 가는 게 아닙니다. 타락이라는 게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부터 처음부터 계속 지속적으로 가다가 지금 이런 모습까지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4-2. 왕이 되라

그다음 이제 22절 한번 봅시다. 이제 끝났어요. 전투는. 미디안 전투는 끝났습니다. 미디안 족속들 135,000명 다 끝났습니다. 끝까지 섬멸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백성들이 뭐라 그래요? "그때에" 그때란 전쟁이 끝난 후에, 잔당들까지 다 섬멸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야, 백성들이 지금 이런 말을 하네요.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이 말이 뭐예요? 세바와 살문나가 한 말과 똑같잖아요. 백성들의 이 말이 진심일까요? 일견 진심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뭐예요? 공포감을 느낀 거예요, 지금. 그리고 기드온 속에 있는 그의 사심을 본 거예요. 백성들이. 백성들이 예리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서 저 사람이 무슨 생각 하는지 대충 알아요. 지금 하는 행위를 보세요. 전쟁하고 돌아오면서 가시와 찔레로 징벌하고 사람을 죽이고 등등의 사적인 복수를 막 하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당신이 왕이 되어 달라" 듣기 좋은 소리 하는 거죠, 지금.

4-3. 칭찬의 유혹

자, 이때 어떻게 해야 돼요? 잠언 27장 21절 말씀 한번 보십시오. 자, 잠언 기자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제가 이 말씀 되게 좋아하는데, 사람을 단련하는 게 딴 게 아니라 칭찬이라 그랬어요. 채찍이 아니에요. 채찍은 사람을 철들게 합니다. 부모가 자식의 종아리를 때리는 것은 자식을 하나님 앞에 바로 세웁니다. 근데 칭찬이 사람을 단련한다 그랬어요. 칭찬이. 그래서 그 칭찬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해요.

지금 기드온이 백성들의 이 요구를 들었거든요. 백성들이 기드온뿐만 아니라 기드온의 집안이 왕이 되어 달라. "당신이 왕정의 첫 시작이 되어 달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왕정의 첫 번째 왕이 되어 달라"는 부탁 아닙니까? 지금 대단한 어마어마한 요구예요. 백성들의 요구가.

자, 이걸 어떻게 우리가 다루느냐가 중요하죠. 근데 이건 사람들 탓할 필요가 없어요. 대중들은 원래 그래요. 원래 대중들이라는 존재가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 행하시고 난 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 막 쫓아다닙니다. 목적이 뭐예요? 요한복음에 보면 왕 삼으려고. 왕 삼으려고. 예수님이 왕되면 어떤 일이 있습니까?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예수님을 왕 삼으려고 쫓아다녔어요. 대중들의 인기는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그, 그 사람들 핑계할 것 없어요. 사람들이 칭찬하는 거 자기 입 가지고 자기가 칭찬하는데 그거 입을 꿰매겠습니까? 하지 마라 하겠습니까? 근데 중요한 건 그때 내 마음을 다스리는 거예요. 그때 내가 이 말을 듣고 따라가면 그게 삼류가 되는 거고, 그때 그들의 칭찬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나의 그릇과 나의 자리가 어딘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해야 그게 복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사람들은 대체로 칭찬에 다 넘어집니다. 채찍에는 잘 안 넘어져요. 견디고 버팁니다. 근데 사람들이 칭찬하고 띄워 주고 막 이러면 정신없이 넘어갑니다. 기드온이 그랬어요. 기드온 보세요.

23절, 뭐라고 대답해요?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우와, 멋진 말이죠. "그리하여 기드온의 뜻대로 되니라." 이러면 이제 8장이 딱 끝나고 기드온은 유혹에서 벗어난 위대한 사람이 딱 되는데, 아, 이놈의 금덩이가 문제예요.

  1. 금 에봇

24절,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좀 끝내지, 이걸로 그냥. 구질구질하잖아요. 구질구질 뒤에 막 사족 달고 뭐 그런 데 있잖아요. 뭐 이런 거.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로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여기서 그들은 동방 사람들이에요. 우리 기억나십니까? 6장 처음 시작할 때 미디안 사람들, 아말렉 사람들, 동방 사람들 이들이 쳐들어왔거든요. 거기에 동방 사람들이 이스마엘 사람들 후손들이에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찌른 잔당들이 다 이스마엘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그들은 금 부치가 많았거든요. 자기들을 치장하는 것들이 그 전리품이 있어요. 그걸 갖고 오라는 얘기입니다. 지금 기드온이. 아휴, 참 한숨 나오죠.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줘야지 뭐, 공포 정치하는데 즐겁겠습니까? 물론 즐거워서 드리는 자도 있지만, 안 줬다가 가시로 막 고문당할 수도 있고 망대가 무너질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데 줘야지 뭐. 줘야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 던졌습니다."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1,700세겔이요, 그 외에 초승달 장식물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여러분, 금 1,700세겔, 계산 한번 해 볼까요? 이런 거 궁금하잖아요. 그죠? 이거 되게 궁금하잖아요. 그 1세겔이 약 11.4g 정도 돼요. 11.4g. 그러면 1,700세겔 되면 19.4kg 정도 돼요. 대략 한 20kg라고. 뭐 물론 금은 1g 단위가 비싸긴 하지만 19.4kg 정도 됩니다.

자, 이제 빨리 계산해 볼게요. 금 한 돈이 몇 그램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저는 이거 공부하다가 알았는데 3.75g. 금 한 돈이 3.75g. 그럼 요즘 금 시세가 장난이 아니잖아요. 이게 지금 몇 돈인가? 빨리 나눠 보면 5,168돈이에요. 5,168돈. 어마어마하죠?

5,168돈. 그럼 금 한 돈에 요즘 80만 원 넘잖아요. 금 한 돈에 80만 원 치니까 41억 3,440만 원. 야, 이 정도니까 이제 딱 와닿잖아요. 우리한테. 41억 3,440만 원. 우와, 요즘 시세로 금 한 돈 시세가 80만 원 하면 그 정도 돼요. 근데 거기에다가 그것만 있습니까? 초승달 초승달 장식.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의복, 낙타 목에 있던 사슬. 줄잡아 한 50억 정도. 이제 이게 기드온에게 훅 들어온 거예요. 자기 전리품으로.

자, 여러분, 이거 보면 이 사람이 자기 입으로 "나는 왕이 되지 않겠다" 그랬어요. 근데 하는 짓을 보면 뭐예요? 왕보다 더해요. 하는 짓을 보면 전제 군주입니다. 명목상 왕이 아닌 거지, 내용상 실질적으로 이 사람은 왕 중의 왕이에요. 최고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겁니다.

5-1. 내면의 상처

왜 그랬을까요? 내가 무시당한 거. 에브라임 지파에게 무시당한 거, 숙곳 사람들, 브누엘 사람들에게 무시당한 거, "너희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한 거" 거기에 대한 자기 보상, 이런 게 여기에 다 고스란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내 감정을 그때그때 정리하지 못하면 나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님께 기도로 계속해서 회개하고 털어내지 않으면 그게 쓴뿌리가 되어서 나도 모르는 어디엔가 저장돼 있다가 이게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와서 내 발목을 잡아요. 이거 어떻게 하십니까? 이걸 그걸로 뭐 했습니까?

이제 27절,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에봇이 뭡니까? 제사장이 입는 옷이에요. 자, 여기서 이 기드온의 어떤 생각을 읽을 수 있죠. 기드온은 지금 왕이 된 겁니다. 이미 내용적으로 실질적으로, 이름만 왕이 아닌 거지. 근데 그는 또 종교적인 최고의 자리까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거예요. 에봇, 제사장이 입는 옷. 여러분, 에봇 안에는 우림(אוּרִים, urim)과 둠밈(תֻּמִּים, tummim)을 넣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탁을 받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게 있어요.

그래서 "내가 명실상부한 제정일치 사회의 최고의 왕이다. 나는 제사장의 권위도 가지고 있고 나는 정치적 군왕의 권위도 가지고 있다." 이걸 지금 에봇으로 표현한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 욕망입니까, 이 욕망.

근데 보세요.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함으로" 음란하게 위했다는 말은요, 음행이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하나님이 신랑이에요. 신부가 음란하게 행했다. 이거 바알에게 절할 때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러면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했다. 그게 뭡니까? 금 에봇 아닙니까? 그러면 금 에봇이 마치 바알처럼 자리 잡았다는 뜻이에요.

한번 상상해 보시면 자기 고향 오브라에 그걸 뒀어요. 전시에 뒀어요.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거 보러 갑니다. 다 버스 대절해 가지고 전부 다 거기 다 가요. 가서 뭐 합니까? "그거 한 번만 만져 보자고. 이거 만지면 우리 애도, 이렇게 소심한 우리 아들이 기드온처럼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럼 거기서 이제 기드온이 앉아 가지고 자기 무용담 얘기해 주고 그리고 돈 받고 뭐 이제 이런 거 했겠죠. 이제 그게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한 거예요.

여러분, 에봇이 바알이 될 수 있다니까요. 하나님의 언약궤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 들고 전쟁하러 갔다가 뺏기잖아요.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고 나가면 그게 우상이 되는 겁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물을 가지고 가면 그게 다 우상이 되는 거죠.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의 올무가 되니라."

5-2. 올무의 의미

올무, 모케쉬(מוֹקֵשׁ)라는 히브리어를 썼는데요, 덫이라는 뜻이에요. 덫, 올무나 덫이 나왔죠. 근데 덫 한번 보십시오. 짐승을 잡기 위해서 덫을 다 보라고 다 이렇게 펼쳐 놓는 덫 보셨습니까? 이 지푸라기로 이렇게 가려 가지고 숨겨 놓잖아요. 그렇죠? 이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안에 놓여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거예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 백성들이 뜻을 모아 줘서 내가 이제 은퇴하고 이거 가지고 여기서 노후를 누리라고 나를 기념해 줬다고" 이 금덩이를 가지고. 근데 사실은 그게 숨겨져 있는 덫인 거죠. 거기에 딱 걸리면 그 후손과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 빠져나오는 거예요. 그 과거의 영광에 취해 가지고.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깔끔하게 일하고 다 잊어버려야 됩니다. 우리는 앞을 보고 가는 존재지, 내가 한 일에 영광과 기억과 기록을 남기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일을 시작하느냐보다 어떻게 일을 마무리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보십시오. 기드온과 비교도 안 되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 엘리야. 신명기 34장 5절과 6절,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무덤 몰라요. 모세의 무덤 없습니다.

열왕기하 2장 11절 12절,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이 두 사람은 엘리야 그리고 그의 제자 엘리사입니다. "불 수레와 불 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 옷을 잡아 둘로 찢고" 그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다 뒤져봤지만 시체를 못 찾았다 그랬어요.

엘리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죠. 모세, 말해서 뭐 합니까? 만약 이 사람들의 무덤이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겠어요? 사람들 마음에 있는 종교성이 맨날 그 무덤에 가 가지고 뼈다귀 하나라도 갖고 와 가지고 자기 집에다가 놓고 그게 용하다고, 그거 용하다고 맨날 그거 붙들고 기도하고 있을 거 아니에요.

예수님 무덤 있습니까? 없습니까? 빈 무덤이에요. 예수님과 엘리야와 모세가 변화산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잖아요. 제자들에게. 이분들의 공통점이 무덤이 없다는 게 공통점이에요. 하나님은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 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백성들은 뒤가 깨끗해야 됩니다. 나의 업적, 내 영광, 그거 뒤처리 제대로 안 하면 그게 올무가 됩니다. 덫이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일했지, 쓰임받았지, 기드온처럼 "내가 내가" 이러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이에요. 실컷 일하고 실컷 주를 위해 일하고 나중에 마지막에 뒷마무리가 이게 뭡니까? 이게 금덩이 받아 가지고 50억이 넘는 재산 받아 가지고 그걸로 금 에봇 만들어 놓고 자기 영광 계속 드러내고, 이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거 아닙니까? 그게 없어야 그게 영광이지.

  1. 기드온의 말년

이후에 그가 하는 일을 보세요. 28절,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와, 이게 사람들은 다 기드온의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기드온이 사는 40년 동안 그 땅에 평온하였더라."

여러분, 이 평화의 시기가 또 왔습니다. 40년 동안. 그러면 평화의 시기가 왔으면, 누차 반복하는 거지만 뭘 해야 됩니까? 체계와 시스템, 조직, 성경을 가르쳐야 되죠. 근데 기드온이 그 40년 동안 사는 날 동안 뭐 했습니까? 자기 집에 성지 순례 코스를 만들어 둔 거예요. 거기에 금 에봇 만들어 놓고 사람들에게 거기 와서 자기 업적 자랑하고, "봐, 내가 사는 날 동안 미디안 꿈쩍도 못 하지. 못 들어오지." 이 40년은 기드온의 내리막이고 영적 타락의 시간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40년 동안 기드온은 왕 노릇한 겁니다. "자기가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너무 실망스럽죠.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70명이었고" 한 여자가 70명 낳을 수 있습니까? 하나가 열씩 낳았다고 해도 일곱, 일곱씩 낳았다고 하면 열. 뭐 아무튼 열 명은 넘었다는 얘기예요. 지금 아내가 많았다는 말이 이게 왕이지 뭐. 왕이잖아요. 지금 왕으로 기능하고 있잖아요.

"그다음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첩까지 있네요. "근데 그 첩의 아들 이름이 재밌어요.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아비멜렉 이름의 뜻이 뭐냐?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자, 첩 아들입니다. 자기 정체성이 항상 "내 어머니는 내 아버지 기드온의 첩이에요." 이런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요. 근데 이 아들에게 아버지가 얘기해 줍니다. "야, 네 아버지가 왕이야. 네 아버지가 왕이니까 넌 꿀릴 것 없어. 네 아버지가 왕인데 네가 왜 정체성의 혼란을 겪냐?"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어 준 거예요. 9장에 가면 이놈이 결국 사고칩니다.

결론

기드온의 몰락의 시작이 어디입니까? 자기 내면을 살피지 못한 것부터예요. 눈에 보이는 영적 성장은 대단했습니다. 어마어마했습니다. 미디안 연합군들 다 무찌르고 40년 동안 평화로 왔습니다. 근데 그의 내면은 계속해서 타락하고 썩고 있었고 그가 왕 자리에 있었고 금덩이에 취해 살았고.

여러분, 우리는 뒤처리 깨끗하게 하는 사람들이 되셔야 됩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도 바울처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한 일,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멋지잖아요. 좀 멋지게 살아야지 우리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드온의 출발과 그의 성장과 그의 몰락을 보았습니다. 기드온의 몰락은 그의 외면의 성장과 반비례한 것도 보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와 감정의 찌꺼기들을 그때그때 기도로 털어내지 못하고 정리하지 못했을 때 일어났던 그의 몰락을 봅니다.

아버지, 오늘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너무 살피지 않습니다. 나의 내면이 무엇으로 고민하는지, 나는 무엇 때문에 시험에 들고 있는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매 순간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외적인 성공과 비례해서 우리의 영적 성장도 함께 일어나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그다음 깨끗하고 깔끔하게 주님께 그 모든 일을 맡기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는 사도 바울 같은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왕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만 고백하게 하시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깨닫고 고백하는 한순간의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존재로 감사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