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 은사, 성령의 선물 / 전체녹취

고린도전서 특강 10 - 은사, 성령의 선물 (고전 12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특강 열 번째 시간입니다.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 번째까지 왔습니다. 열 번째 시간에는 12장을 공부하는데,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고린도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살펴본 문제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교회 분열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냥 자기들끼리 분열한 것이 아니라 교회 영적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나는 누구 편"이라며 바울파, 아볼로파로 나뉘어 분열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굉장히 길게, 굉장히 체계적으로 책망했고, 그러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음행의 문제가 있었고, 또 성도들끼리 송사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송사의 문제가 심각한 것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그 자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이 옳다고 여기고 그것만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책망하셨고, 그다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문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먹으면 안 되느냐 하는 문제, 그리고 성만찬의 문제까지 살펴보았습니다.

따져보면 참 골치 아픈 문제들인데 답은 있었습니다. 그 답은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는데, 그 원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이 참 복잡하지 않습니까? 매일같이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나한테도 문제가 있고, 가정에도 있고,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있고, 일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원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굉장히 단순한 원리인데 그 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사탄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방해하며, 자꾸만 남 탓하게 만들고 환경 탓하게 만들고, 그리고 내 인생의 과거를 탓하게 만듭니다. 인생 과거를 탓하면 어디까지 올라갑니까? 부모 탓, 조상 탓, 가정 탓, 나라 탓, 탓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전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이렇게 결론지으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으면 억울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끌고 와야 문제에 해답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성령의 선물, 은사 문제도 결국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에게로 귀결됩니다.

1. 영적 현상의 배후

1-1. 성령의 역사

첫 번째 질문을 보시면, 영적인 현상에 대한 바울의 입장입니다. 교회 안에 영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던 영적인 놀라운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병들었던 사람이 낫는다거나, 도무지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멀쩡하게 돌아다닌다거나, 귀신 들려서 예배를 소란하게 하고 방해하던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간다거나, 등등의 여러 가지 영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 현상에 대한 바울의 입장을 설명합니다. 1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중 부정입니다.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한다, 이것은 강한 긍정입니다. 알기 원한다,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이 무엇입니까? '프뉴마티콘'(πνευματικῶν), 초자연적인,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고 벗어나는 초자연적인 영적인 현상이 교회 안에 일어나는데, 너희들은 이 일의 배후에 누가 계신지, 이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나는 너희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지성적인 태도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고, 우리의 세계를 벗어나는 일들을 사람들은 "야, 그냥 믿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바울은 이 일이 왜 일어나는지를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설명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 배후에는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려면 뒤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 신령한 일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데, 이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는 그 배후에는 누가 계시는가, 성령이 계시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1-2. 예수는 주시라

그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세상이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주는 누구입니까? 로마 황제입니다. 지금 고린도교회가 있는 자리, 고린도 성도들이 거하는 자리가 로마의 식민 통치 아래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항상 고백을, '주'라는 고백을, 최고 존엄과 최고 위엄에 대한 고백을 로마 황제에게 올려드립니다.

로마는 굉장히 독특한 식민지 통치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황제 숭배 사상입니다. 로마가 어느 땅을 지배하면 거기에 로마 황제의 흉상이나 동상을 만들어 두고 신전을 하나 만들어 둡니다. 로마 황제가 신의 아들이라 하여 신전을 만들어 둡니다. 그리고 거기 가서 경배하게 하고 절하게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그 지역의 문화도, 그 나라의 법도, 그들의 언어도 다 사용하게 해줍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로마의 신민이 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요.

피지배국 입장에서 보면 그냥 주인만 바뀌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자기네들이 다른 신을 섬겼는데 이제부터는 로마 황제를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차피 지금까지 온갖 잡신을 다 섬기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지금까지 이 하나님만 섬겼는데, 이 하나님이 아닌 로마 황제를 주로 섬기라고 하니 그것은 하기 힘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신앙의 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옛날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하라고 강요한 것처럼,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사참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조상들 묘소에 가서 절했고, 지금까지 자기 집 짓더라도 사당 만들어 놓고 거기 가서 계속 제사에 엎드렸는데, 신상에게 절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섬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은 목숨을 걸어야 되는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지금 로마 시대의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목을 내놓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문화에서, 지금 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이 문화에서 "예수는 주시다"라고 고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숨을 걸고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배경에는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성령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내 목이 달아나도 성령이 함께하면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 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 다 도망갔지요. 각자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모였습니다. 한 군데 모여 가지고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문을 꼭꼭 닫아걸고 불빛도 새어 나가지 않게 덜덜 떨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말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리고 "성령 받으라" 하셨습니다.

왜 성령 받으라고 하셨을까요? 성령 받아야 두려움이 사라지니까요. 성령이 임해야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가서 예수를 주라고 외칠 수 있으니까요.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당시 고린도교회, 이렇게 문제 많은 교회, 이렇게 심각하고 부패한 교회에도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배후에는 누가 계십니까?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이 교회 안에 일어나는데 그 배후에도 누가 계십니까? 성령이 계십니다. 이 말씀을 지금 하고 싶은 것입니다.

2. 은사와 삼위일체

2-1. 은사, 직분, 사역

그다음 이제 더 중요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4절을 보면,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눈치가 조금 있으면 이 세 구절에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삼위일체가 보이십니까? 성령님, 주, 하나님. 그렇습니다. 삼위일체가 다 등장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고 했습니다. 은사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뒤에 가면 나오는데 여러분이 아는 은사들이 많습니다.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통역의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 등등의 은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 다양한 은사들 배후에는 누가 계십니까? 성령이 계십니다.

직분이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라고 했습니다. 많이 들어보셨지요? 디아코니아, 듣긴 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는 모를 수 있습니다. 봉사, 섬김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많지 않습니까? 목회자, 목사,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 등등의 여러 직분들이 있는데, 이 직분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봉사입니다. 섬기는 것, 섬기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봉사하는 것입니까? 여기 나옵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직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직분의 본질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의 본질은 다른 여타의 무엇인가를 섬기는 것이 아니고, 직분의 본질은 주를 섬기는 것,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분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이상한 다른 것을 섬깁니다. 돈을 섬기고 이상한 것을 섬깁니다. 그러면 그 직분이 잘못된 것 아닙니까? 섬김의 본질이 틀어진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직분 뒤에는 누가 계십니까? 주께서 계십니다.

그다음,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사역도 있고 직분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주방에서 사역하시는 분, 찬양대, 교회학교 교사, 주차 안내 등등의 사역이 굉장히 많은데, 그 사역 이면에는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사역은 자기를 뽐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를 드러냅니까?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수렴하고 있습니다.

2-2. 사람이 없다

그러면 여기에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데 많이 길들여져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은사가 충만해", "저 사람은 성령이 충만해." 누군가가 병 고침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이 보입니까, 그 은사를 주신 성령이 보입니까? 솔직히 말해 보십시오. 솔직히 그 사람이 보였습니다. 사실은 "야, 저 권사님 능력이 있다", "아, 저분 대단하다", "저 기도원 원장님 대단하다"며 거기 가서 머리 들이대고, 그분을 신격화 시키고, 그분을 떠받들고, 그분을 높이고 그렇게 했습니다.

방언은 많이들 하시는데 방언의 통역은 잘 없습니다. 드뭅니다. 그런데 방언도 하고 방언 통역도 그 자리에서 하시는 분들 보셨지요. 그러면 그런 분들 보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굉장히 부럽습니다. 나도 내가 방언 기도 하는 것의 뜻을 좀 알고 싶은데, 도대체 방언 기도를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종일 기도하는데 도무지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대단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분 뒤에 계시는 누가, 성령이 보여야 되는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동일하다고 했으니까요.

여기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 배후에 은사가 있고 성령만 있습니다. 직분만 있고 예수 그리스도만 있습니다. 사역만 있고 하나님만 있습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없고 직분은 있는데 직분자가 없고, 사역은 있는데 사역자가 없습니다. 은사는 있는데 은사를 행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고린도교회 문제가 무엇입니까? 은사 가진 사람에게 매몰되고, 직분을 가진 사람이 자기 패거리를 형성하고, 사역을 가진 사람이 자기 사역에 자신을 나타내고 사람을 끌고 다니고, 그러면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영광 받고, 예수 그리스도보다 자기가 더 뽐나고, 성령은 온데간데없고, 은사 가진 사람이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 그것을 지금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신앙생활을 할 때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배후에 누가 계신가. 그래서 그런 태도는 굉장히 버려야 되는 태도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당연히 기도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데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입니다.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너 믿음이 부족하구나. 너의 믿음을 더 굳세게 해라. 믿음을 보이는 방법은 이것이니 봉투에 돈을 가득 채워오라."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믿음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그분의 믿음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기도하는 자가 잘나서도 아니고,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성령께서 보시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이고, 아직까지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고,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도구로.

2-3. 모든 영광 하나님께

그래서 바울이 지속적으로 계속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이 흐름을 한번 보십시오.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지 마라.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너희를 위해서 죽었느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았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그렇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바울은 그저 그 받은 것을 전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람이 영광 받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절대로. 그래서 "모든 영광 목사에게" 하면 큰일납니다. 그 목사도 망하고 그 교회도 망하고 다 망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모든 영광을 목사에게 돌리면 그것이 왜 안 되겠습니까? 교회가 안 되면 모든 원망은 다 그 목사에게 돌아올 것 아닙니까?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모든 영광 하나님께, 우리는 그것을 입에 달고 살아야 되고,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야 되고, 우리 인생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선을 넘지 않는 것, 그 배후에는 누가 계시는가, 성령이 계시고 그리스도가 계시고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됩니다. 바울이 그것을 지금 가르치는 것입니다.

3. 성령과 은사

3-1. 성령은 선물

그다음 은사를 말하기 전에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 되는데요. 성령과 은사를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 이 시점에서 성령을 한번 짧게나마 정리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 성령은 어떤 자에게 임합니까? 어떨 때 임합니까? 성령은 아무 생각 없는데 그냥 성령이 하늘에서 뚝 떨어집니까? 사도행전 2장 38절 말씀을 보시면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옛날 성경 보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어떨 때 성령이 임한다고요? 회개.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이쪽으로 가다가 유턴해서 돌아오는 것 아닙니까? 돌이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내가 주인이었고, 물질이 주인이었고, 세상의 어떤 것들이 다 주인이었는데, 그것이 다른 데로 물러가고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 회개의 삶을 계속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잘했다, 너 정말 잘했다"며 선물을 주시는데 그 선물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그 선물을 딱 준비해 놓고 계셨다가, 다 준비해 놓고 쟁여놓고 계셨다가, 주인 바꾸는 순간 성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3-2. 은사의 본질

그다음 은사입니다. 여러분, 은사가 무엇입니까? 은사를 헬라어로 '카리스마타'(χαρίσματα)라고 합니다. '카리스마'(χάρισμα)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지요. 저 사람 카리스마 있다 할 때의 카리스마. 원래 그 뜻이 아니고 카리스마의 원래 뜻은 하나님 은혜로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은사는 누가 주신다고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오해가 있습니다. 오해가 있어요. 첫 번째 오해는 "나는 은사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분들입니다. "나는 정말 은사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분들 없습니다. 은사 없는 분들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은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7절을 보시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의 은사를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왜 못 느끼느냐? 그것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입니다. 기도하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은사를 왜 주십니까?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본인의 유익을 위해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은사를 받기만 하는 것입니까? 그것만도 아닙니다. 은사를 사모해야 됩니다.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12장 31절에 보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은사가 또 구하면 주시거든요. 은사를 사모하라, 사모하고 구하라, 간구하라, 이것입니다.

3-3. 은사의 종류

이제 8절 이후를 보면 은사의 종류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지혜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지혜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능력입니다. 적용할 수 있는 능력. 우리가 지금까지 성경 공부도 많이 했고, 배운 것도 많고, 뭐 주일학교 교사 시절에 공부한 것, 대학부 시절에 공부한 것, 장년이 돼서도 구역 모임에서 공부한 것이 많습니다. 여러 가지 공부한 것들이 많은데 그것을 끄집어내지를 못합니다. 어디다가 쓸지 이걸 언제 꺼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수많은 은사가 주어졌는데, 그 은사 받은 것이 교회 안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가운데, 우리 자녀들 가운데, 우리 형제 가운데 이것을 발휘해야 되는데 그것이 잘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 상황에서 이 말씀을 딱 꺼내서 넣어주면 좋은 상황인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아, 그 상황에서 이 말씀을 넣어줬어야 했는데" 하는 것입니다. 늦었습니다. 그게 지혜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은사가 무엇입니까? 구하면 주십니다. "하나님, 제가 교회 유익을 위해서 이 은사 좀 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신앙 세월이 몇 년인데 이게 뭡니까? 이런 지혜도 없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님 말씀의 지혜도 없고, 하나님 말씀 창고에 배워 놓은 것은 많은데 이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지혜도 없으니, 지금 제가 이게 뭡니까?" 기도하고 간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영적 책임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지금 사회가 얼마나 급박하게 변하는지, 옛날 어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인 지식과 경험, 그들에게 쏟아야 다 쓸모없습니다. 듣지도 않습니다. 먹히지도 않습니다. 더 이상 아이들한테 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밖에 우리가 줄 것이 없는데, 그 말씀을 일러주고 길러주는 것, 그것이 지혜의 말씀입니다. 은사이니까 달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께 달라고 요구해서 적재적소에 말씀을 넣어 주어야 됩니다.

3-4. 지식의 말씀

지식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지식의 말씀은 말씀을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해석하고 말씀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천국 비유를 하셨습니다. 천국 가본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는데 예수님이 천국을 직유로 설명하시면, 있는 그대로 설명하시면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습니까?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천국을 어떻게 설명하셨습니까? "천국은 마치..." 이렇게 설명하신 것입니다. 비유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천국의 그 본질과 예수님이 설명하신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해석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지식의 말씀입니다. 그 지식의 말씀은 가르치는 자, 목회자, 교사들한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이 지식의 말씀을 배우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 마음대로 천국 비유를 해석해 가지고 신천지가 비유풀이 하지 않습니까? 전부 다 엉망진창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따져 버리면 해석도 문제고, 또 하나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네 손이 범죄하거든 잘라 버려라." 손이 범죄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작두로 자릅니까? 날마다 자릅니까? 그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 지식의 말씀의 본질적 의도가 무엇입니까? 그만큼 죄가 무섭다는 것입니다. 네 손을 잘라야 되니까 죄짓지 말라고, 그렇게 우리가 알아들어야 됩니다.

"피차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했다고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붙잡고 쪽쪽하면 세상에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욕 먹지 칭찬이지? 이게 무슨 교회입니까?" 하며 난리가 납니다. 그 말씀은 바울이 옛날 초대교회 때 교회 공동체 안에 종도 있고 상전도 있고, 자유인도 있고 노예도 있고, 유대인도 있고 이방인도 있는데, 그들의 문화가, 그들의 인사가, 우리가 저 중동 사람들 인사하는 것 보셨지요? 서로 뺨을 맞추는 것, 그것을 입맞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종이나 자유인이나 교회 안에서는 서로 인사해라, 종들 왔다고 해서 눈 피하고 인사하지 않고 그러면 안 된다, 서로 편견 없이 다 인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준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준다. 그러면 용을 찾습니까? 지금 용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이 가상의 용이 어디 있느냐고 그러면, 그 당시 해석을 하려면 그 당시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서 용이 무엇이냐, 짐승은 무엇이냐, 이것을 우리가 공부를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것을 배우고 이것을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것을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 것을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 거기에 집요하게 파고들고 공부하고 또 따져보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 말고 그 지식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전해주는 것 잘 들을래요" 하는 분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도라면, 우리가 다 성도이니까,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중에 둘 다 중요하지만 우리는 지혜의 말씀을 받아야 됩니다. 그 은사를 사모하셔야 됩니다. 지식의 말씀이 좀 더 전문적인 것이라면 지혜의 말씀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끄집어내서 넣어 주어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 자녀들에게, 믿음이 어린 분들에게. 우리는 그것이 은사인 줄 몰랐는데 진짜 중요한 은사입니다.

3-5. 믿음의 은사

또 9절을 보십시오.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믿음도 은사입니다. 믿음의 은사입니다. 여러분 이것 알고 계셨습니까? 믿음의 은사입니다.

어떤 분은 큰 믿음을 갖고 계신 분도 있고, 어떤 분은 적은 믿음을 갖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2장 5절을 보면 믿음이 부요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5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여러분, 믿음에 부요하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이것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22장까지 다 믿어지는 것이 믿음에 부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 부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 믿어지십니까?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부터 성경 전체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다 믿어지는 것, 그것이 믿음에 부요한 은사입니다.

믿음의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됩니다. 우리가 맨날 물질의 부자 되게 해달라고, 내 인생 창고가 비었으니까 저 창고 좀 채워 달라고, 그것 말고 믿음에 부요하게 해달라고, 성경 말씀 한 절 한 절이 다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 믿고 실천하고 순종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이것 세 가지, 바울이 이야기했던 은사 세 가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이것은 나와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나와 상관이 있고 타인과는 별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은사는 누구에게 유익해야 됩니까? 나에게 유익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지혜의 말씀은 나에게 유익하고 타인에게 유익하고 또 공동체에 유익합니다.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면 나에게, 우리 자녀에게, 공동체에 유익합니다. 믿음이 부요하면 우선 내가 유익하고, 나를 보는 사람에게 도전을 줍니다.

3-6. 외적 은사들

그다음 보십시오.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어떤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은사들입니다. 외적인 은사들입니다. 화려한 것들, 다 보여지는 은사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4. 은사의 출처와 목적

4-1. 성령이 주인

그다음 중요합니다. 은사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11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위에서 말한 것은 은사의 종류들을 열거한 것인데, 이 모든 일은 누가 행하신 것입니까? 성령이 행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은사받은 사람이 각종 능력을 행하고 각종 방언을 말하고 병 고침의 은사, 방언들을 통역하는 은사를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누가 하셨습니까? 성령이 하셨습니다.

바울이 계속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에 고린도교회의 방언 제일 잘하는 사람 아무개, 그런 말이 있습니까? 고린도교회의 병 고침에 탁월한 은사를 가진 사람 아무개, 그런 말이 없습니다. 사람은 철저하게 뒤로 숨기고 성령이 주셨다고 합니다.

또 "그의 뜻대로"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의지대로 누구에게,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각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성령이 나누어 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면 아까 우리가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보았는데 그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령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선물. 그래서 은사는 성령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4-2. 선물에 담긴 마음

여러분, 선물은 딱 받아보면 압니다. 내가 받아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그 선물에서 느낍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이 선물을 주었는지가 그 선물에 묻어 있습니다. 그런 것 느껴 보셨습니까?

요즘 왜 그런 것을 못 느끼느냐면, 자꾸 달라 달라 해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꾸 남편한테 달라 하고, 자녀들한테 "어버이날 현금이 최고다" 자꾸 이래 가지고, 그것 때문에 그것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제 달라 하지 말고 가만히 한번 있어 보십시오. 가만히 있어보면 그 주는 사람의 진심이 거기에 딱 느껴집니다. 저 사람이 여기에 진심을 담았구나, 저 사람이 그냥 의무 방어만 했구나, 그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갔구나, 마누라 생일도 모르고 지나가고, 결혼기념일도 모르고 지나가고, 지나가고... 그것은 논외고, 그것은 말할 자격이 없고.

그런데 선물을 줘도 진심을 담아서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액수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은사도 주셨습니다. 선물로. 여기 나옵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께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찬양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누구를 잘 섬기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나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을 하루에 100명 만나도 하나도 안 피곤합니다. 은사입니다. 그것이. 두 명만 만나도 진이 빠져가지고 드러누워야 되는 사람이 있고, 하루에 100명을 만나도 오히려 에너지가 막 생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껴야 됩니다. "아, 하나님이 이것을 가지고 교회에 유익을 세우라고, 덕을 세우라고 나에게 은사를 주셨구나."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섬기고 일해야 됩니다. 지혜의 말씀을 주셨으면,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면 말씀이 막 떠오르고 생각이 나고 머릿속이 막 컴퓨터처럼 막 돌아가고 움직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위로하는 사역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누어주고, 먹이고, 베풀고, 섬기고. 성령의 마음이 그것에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사의 주도권은 성령께서 가지고 계시는 것이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5. 한 몸의 지체

5-1. 그리스도의 몸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하나라는 말을 바울이 지금 계속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페이지를 보시면 우리가 너무너무 잘 아는 말씀입니다. 14절,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이렇게 쭉 나옵니다. 18절,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27절을 한번 보십시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5-2. 모든 지체가 소중하다

이 말씀을 가지고 제가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옛날에 교육 전도사 할 때 설교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비유를 들어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몸의 어떤 부분이 있는데, 우리가 그 부분을 깨끗하지 않다고 여깁니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말입니다. 그런데 몸이 그 부분을 따돌리는 것입니다. 냄새 난다고, 더럽다고, 저리 가라고. 손도, 눈도, 발도 다 무시합니다. "나는 눈인데 제일 높은 곳에 붙어 있어서 멀리 바라볼 수 있고, 귀는 높은 곳에 있고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입은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할 수 있는데, 저 부분은 뭐냐?"며 더럽다고 합니다.

그 부분이 너무너무 상처를 받아서 안 끼워 주니까 그날로 파업을 한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제 그날로 그 부분이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하니 난리가 나지요. 이제 그날 하루에 한 번씩 그 부분이 일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파업을 하니까, 눈이 이제 노랗게 되고, 귀는 안 들리고, 입맛은 없고, 먹고 싶은 음식은 있는데 안 넘어가고, 먹으면 큰일 날 것 같고, 배는 남산만 해지고, 그것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모든 지체가 그 부분에게 가서 빌어야지요. 미안하다고, 네가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지를 미처 몰랐다고, 다시는 널 구박하지 않을 테니 제발 일 좀 하라고, 미안하다고. 그 부분이 어떻게 했을까요? 원래 착하니까요. 그래서 그 부분이 이제 마음을 풀고 문을 열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 해결된 것입니다. 전부 다.

그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다른 이야기입니까? 교회 안에는 눈과 같은 존재도 있고, 그런 부분 같은 존재도 있고, 다 필요합니다. 전부 다.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지체가 있습니까? 누구 하나 없어도 되는 지체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별 볼 일 없고, 우리가 볼 때는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인가 싶어도, 다 소중합니다. 전부 다. 전부 소중하니까 우리는 다 유기체입니다. 협력해야 됩니다.

5-3. 서로 돌봄

그래서 25절을 보시면 그렇게 말합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온몸이 그 부분을 돌봐야 합니다. 돌아올 것입니다. 서로 다 같이 돌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협력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최고의 은사가 무슨 은사다, 이런 것을 이야기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고,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너에게는 이것을, 너에게는 저것을, 다른 것을 각각 다 주셨는데 그것 가지고 자랑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고상하게 무슨 일을 하고 너는 맨날 손에 물 담그고 설거지나 하고" 이런 이야기하면 곤란한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나 다 소중한 은사와 누구나 다 소중한 지체이기 때문에 서로 다 돌보게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입니다.

6. 더욱 큰 은사

그런데 3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사도요, 선지자요, 교사요, 능력 행하는 자, 병 고치는 은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각종 방언을 말하는 사람, 다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 어떤 은사를 가진 사람이라도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것이 12장 끝입니다.

그리고 13장이 시작됩니다. 13장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 그러면 바울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이 은사 중에 최고의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사랑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최고의 은사는, 조금 기다리셔야 하지만, 다음 한 주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했고, 은사 받은 나는 우쭐거리고 교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셨고, 직분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셨고, 우리를 사역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고백합니다.

거기에는 사역자도, 직분자도, 은사 받은 자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은사를 주시고 직분을 주시고 사역을 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만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주여, 사람은 뒤로 감추시고 하나님만 드러나시고, 모든 영광 하나님께 올려 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어떤 은사를 가졌든지 타인이 가진 은사를 존중하게 하옵시고, 우리 교회 공동체 모두가 다 하나 되어서 같은 은사를 가지고, 또 다른 은사를 가진 자들 함께 동역하며, 같은 지체, 온 마음 하나 되어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섬겨 가고, 서로 유익한 공동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