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 공동체의 거룩함 / 전체녹취

고린도전서 특강 4 - 공동체의 거룩함 (고전 5-6장)

고린도 교회는 사실 문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오늘날 교회는 정말 괜찮은 교회라고 할 정도로 고린도 교회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많았던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분열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분열한 것이 아니고,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분열이었습니다. 바울이 그 교회를 개척한 목회자였고, 아볼로가 후임 목회자였는데, 바울을 중심으로 한 바울파와 아볼로를 중심으로 한 아볼로파, 크게 이 두 파가 나뉘어져서 굉장히 갈등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기까지 오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요 하나님의 일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옮기면 "우리는 하나님의 시종들이요 하나님의 종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종인데 어떻게 영광을 받겠느냐고 하면서 사역자의 본질, 목회하는 사람들의 중심을 쭉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문제가 사역자를 왕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 스스로가 왕이 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사람이 왕이 되면 이런 교회는 끝난 교회입니다. 진짜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는, 자신을 왕 삼고 하나님을 내려놓는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함께 공부했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기 때문에, 정말 하나님의 교회가 되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신앙고백이 확실해야 되고, 그 신앙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물질로 짓는 것도 아니고, 땅이 있어서 넓은 지역 위에 짓는 것도 아닙니다. 진짜 교회는 내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1장부터 4장까지 아주 길게, 세세하게 잘 설명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교회의 분열을 치유하고, 교회 분열이 해결되어야 함을 말씀했습니다.

이제 오늘은 교회 안에 음행의 문제와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송사의 문제를 가지고 함께 바울이 나눕니다.

1. 교회 안의 음행 문제

1-1. 음란 문화의 침투

5장 1절을 보시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어떤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런데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듣는다." 여기서 '너희'는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행은 포르네아(πορνεία), 즉 음란과 음란물, 문화적 성적 타락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음행이라는 것은 그냥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문화적인 음란한 문화 전체를 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지금 들고 있습니다.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이 사람을 바울이 아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지금 사람들에게 고린도 교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이 사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문화와 이런 분위기 자체가 교회로 들어와 있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지역은 굉장히 음란한 지역이었습니다. 이방인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전도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음란한데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교회는 거룩해야 됩니다. 세상은 세속의 문화가 활기차게, 자기들 표현으로 활기차게 세속의 문화가 활발하게 움직여지지만,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숨쉬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고린도 교회는 세상이나 교회나 구별이 안 되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문화적인 성적 타락이 그냥 교회 안에 다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가지 예로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인 것이지, 하나의 현상인 것이지, 문제는 그 뿌리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별별 인간들이 다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인간 군상들이 있습니까? 그런데 정말 특별한, 정말 이상하고 유별난 하나의 인간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또 별 문제입니다. 그 사람 하나만 끊어내면 되니까요. 문제는 문화적인 전체적인 타락상이, 성적인 타락상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것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동성애 문제가 지금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안에 동성애 문제가 목회자들 중에도, 그리고 성도들 중에도 이것을 별로 문제시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세상이 그러니까,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니까 뭐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의 문화적인 상황을 교회 안에 그냥 그대로 물밀듯이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화가 아닙니까? 지금 그런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교만의 문제

2절을 보시면 바울이 음행과 함께 심각하게 지적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교만하다는 말을 합니다. 바울이 왜 교만하다는 말을 할까요?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 성도들이, 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 정도 상황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정도의 사람,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정도의 사람은 우리가 회복시킬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받아들여서 잘 가르치고 잘 타일러서 다시 회복시켜서 사람 만들고 인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세상이 이런데 이것을 교회가 받아들여야 교회도 앞서가는 교회가 아닌가" 이렇게 교만해진 것입니다. 요즘 어떤 교회들은 세상 풍조를 교회가 더 빨리 따라갑니다. 세상 풍조를 꼭 음행이 아니라도 세상에 흘러가는 많은 문화들, 이런 것을 교회가 더 빨리 따라갑니다. 그러면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가 하는 것인지,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이것이 진짜 진리 위에 기초한 것인지 그것을 고민해 보지도 않고, 그것을 가지고 기도해 보지도 않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함께 애통해 보지도 않고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앞서가는 것인 줄 압니다. 그런데 나중에 가보면 그 길 끝에 벼랑이 있고, 그 벼랑 끝에 낭떠러지가 있고, 거기가 사망의 골짜기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교만해지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 한 사람이 드러난 것은 한 사람일 뿐이고, 교회 안에 저변에 깔려 있는 그 음란한 고린도 지역의 문화가 교회 안에 다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보기로 이 사람을 끊어내야 되는데, 왜 너희는 교만하여져서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가 이것을 끌어안고 가고 있느냐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챗GPT 이런 얘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신문만 열면 지금 난리입니다. 인공지능 얘기가 넘쳐납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교회가 수용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 또 어린아이들 신앙 교육에서 메타버스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 이것을 신학적으로 신앙적으로 검토해 보지도 않고 그냥 무분별하게 막 가지고 들어옵니다. 굉장히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우선이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으라" 하셨지 "보라" 하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마라 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도 만들지 마라 하셨습니다. 듣는 것이 우선인데, 우리 교회 학교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보여줍니다. 전부 다 보여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듣는 것을 잘 못합니다. 아이들이 듣는 것을 지루하게 생각하고, 힘들어하고, 재미없어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 말을 잘하면,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재미있게 들려줄까를 연구하고 노력하고, 교회는 오히려 스토리텔링에 집중해서 나가야 합니다. 정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줘야 됩니다. 아이들 보세요. 아이들이 보는 것은 굉장히 빨리 습관이 됩니다. 보다가 재미없으면 넘기고 또 딴 것 보고 딴 것 보고, 애들 유튜브 하는 것 보셨나요? 손가락이 얼마나 빨리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옛날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아이들이 진짜 좋아합니다. 생각보다 재밌는 옛날 이야기 잘 들려주면, 재밌게 잘 들려주면 정말 잘 듣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라서 듣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세상 따라가서 자꾸 보여주는 것만 그렇게 집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풍조 따라가는 것은 교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기, 그것 가지고 목회자도 잘 들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애를 써야 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여러분들처럼 수요일 저녁에 여기 앉아서 1시간 설교 듣는 사람,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고, 요즘 휙휙 지나가는 세상에 누가 설교를 1시간씩 듣고 성경 공부하고 앉아 있겠습니까? 그런데 "들으라"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이 달고 귀하고 오묘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 풍조 따라가지 않고 듣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교만해졌습니다. 그냥 전부 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심각하게 지적합니다.

1-3. 출교의 이유

음행을 행한 자를 출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을 보십시오.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아버지의 아내를 자기가 취하였다는 것,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라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고린도 지역에 음란한 문화가 그 교회에 들어와 있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를 왜 출교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것은 뭐 세상에서 보면 별것 아닌 문제이기 때문에 그랬느냐고 바울은 말합니다.

여기 나오지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쫓아내야 이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교회에서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육신은 멸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교적을 파서, 교회에서 치리해서 내쫓아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육신은 멸한다"는 얘기가 그 사람의 이름 석 자를, 교회에서 호적 파듯이 파서 내쫓아야, 그래야 이 사람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말입니다. 그냥 그 공동체 안에 그대로 두면 자기 잘못을 몰라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세속적인 문화를 교회에 그대로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를 얼마나 혼탁하게 만들었는지 이 사람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해서, 이 사람을 위해서 출교하라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진짜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냥 끌어안고 있는 것이 사랑입니까? 그냥 그대로 저 사람 지은 죄, 아 얘기하면 기분 나빠 하니까, 교회 성도 하나가 귀한데, 저 사람이 내는 헌금이 얼마인데 하면서, 진짜 명백하게 잘못했는데, 그 명백한 잘못이 음란한데, 그것이 목회자건, 그것이 중직자건, 그것이 누구건 간에, 그것을 교회에서 치리하지 못하면 그것이 교회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교회 공동체는 지금 뒤에 나오는데,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져서" 다 죽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면 이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가는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몇 대를 걸쳐서 갑니다. 그것을 빨리 끊어내야 됩니다. 두 가지 다를 위해서입니다. 첫째는 그 사람을 위해서, 두 번째는 공동체를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람도 살리고 공동체도 살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요. 뭐 다윗도 죄를 지었는데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얘기이고, 바울은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수호하는 교회의 수호자 입장에서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어린 성도들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누룩의 영향력

2-1. 악한 누룩의 위험

바울은 음행의 악한 영향력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6절입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무엇을 자랑할까요? "우리 교회는 앞서가는 교회야, 우리는 저런 사람도 회복시킬 수 있어" 뭐 이렇게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룩, 영향력입니다. 음행의 영향력이 온 교회를 다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8장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경고하셨습니다.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이 두 가지 누룩을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위선입니다. 뒤에 나옵니다. 외식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바리새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좋은 옷 입고 사거리에 서서 하루 세 번씩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그분들이 어떻게 보일까요?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지요.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좋으나 무덤 안은 뼈가 썩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체가 썩어가고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니까 회칠한 무덤이 되는 것입니다. 회개해서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내야 되는데, 울며불며 눈물 흘리고 토해내야 되는데, 회개해야 되는데,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외식, 위선, 이것이 누룩입니다.

그런데 이 누룩은 영향력이라 했습니다. 위선은 영향력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겉모습만 보고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 저 사람 대단하구나, 엄청나구나, 헌금 많이 하고, 좋은 옷 입고, 기도 열심히 하고, 교회 봉사 잘하고." 그런데 그 속을 누가 압니까?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밖에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위선의 누룩은 영향력이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니까요.

또 하나의 누룩, 예수님이 주의하라고 한 것은 헤롯의 누룩입니다. 헤롯이 어떤 인간입니까?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해서 자기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헤로디아입니다. 이것이 음란의 누룩입니다. 음란, 몸으로 짓는 죄입니다. 이것은 감각적인 것입니다. 꼭 음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인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체는 감각적인 것입니다. 만지고 보고, 촉감과 시각이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생 아내입니다. 그런 것 개의치 않습니다. 이런 인간은 그냥 데리고 와서 자기 아내로 삼아 버렸습니다.

"그런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예수님이 이런 악한 누룩들을 말씀하셨는데, 그 두 가지 대표적인 것이 위선의 누룩과 음란의 누룩입니다. 이것은 아주 빨리 퍼집니다. 위선을 깨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회개해야 됩니다. 열심히 회개해야 됩니다. 기도하고 토해내고, 기도할 때마다 예배 드릴 때마다 계속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내 안에 썩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다 토설해 내야 됩니다. 그다음 이 음란의 누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뒤에 나옵니다. 지금 이 문제가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2-2. 선한 누룩의 역할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좋은 누룩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3절에 보니까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가루 서 말이 따로 있고, 누룩도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가루 서 말과 누룩이 따로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루 서 말을 빵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누룩을 집어넣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선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아무리 많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그 성도들을 부풀어 오르게 해서 빵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빵을 공급해 주는 누룩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입니다. "우리 한번 해보자, 우리 봉사 한번 해보자, 교회에 이 틈 저 틈이 비어 있는데 우리가 한번 이 틈 저 틈을 한번 메워 보자." 이것이 선한 영향력의 누룩 아닙니까? 가루 서 말 같은 수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그 성도들에게 선한 영향력의 누룩을 자꾸 집어넣어 주는 사람이 있고, 악한 영향력을 집어넣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는 척하고, 폼만 잡고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고, 그런 누룩 말고 진짜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누룩을 가져야, 크게 천국이라는 말씀입니다.

2-3. 무교병의 의미

"너희는 누룩 없는 자라"는 표현에 대해서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12장 18절에서 20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주 엄중하게 명령하신 것이 있습니다. "무교병만 먹으라" 하셨습니다. "네 집안에서 누룩을 다 제거하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무교병만 먹어라, 이것이 나옵니다.

19절에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즉 누룩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한한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출애굽은 구원입니다. 구원에는 첨가물을 넣지 말라는 뜻입니다. 누룩을 넣으면 부풀어 오릅니다. 선한 누룩이든 나쁜 누룩이든 부풀어 오릅니다. 그런데 무교병, 누룩을 넣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첨가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은 누가 이끌어 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너희가 물 타기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이끌어 가는 것이니, 인간이 구원에 숟가락 얹지 마라, 너희가 물 타기 하지 마라,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구원을 위해서 너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면서 한 것처럼 생색내지 마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데려다 놓는 것은 했다 치고, 아무리 데려다 놓으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마음 바꾸시고, 은혜 주시고, 고백하게 하고, 신앙인이 되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심히 사람을 바꾸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우리가 괜히 누룩 같은 것을 넣지 말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레위기 2장 11절을 보시면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우리 레위기 공부할 때 했습니다. 소제물에 넣지 말아야 될 것 두 가지, 누룩과 꿀입니다. 이것은 예배입니다. 예배에 불순물 넣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배를 포장하지 마라, 예배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라, 하나님 앞에 위선 덩어리가 되어서 나오지 말고, 달지 않은데 단 것처럼 꿀 바르지 말고, 그냥 그대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면 그대로 나와서 울고, 화가 나 있으면 하나님 앞에 금요일 날 와서 하나님께 따지고 기도하고 울고불고 하라, 있는 것 그대로 가지고 나오라고 예배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문제와 예배에는 불순물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 때 남들 의식하지 말고, 예배 때 남한테 뭐 보이려고 하지 말고, 잘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이면 됩니다. 그냥 그대로 나오면 됩니다. 그런데 나쁜 교회는 성도들끼리의 경쟁을 막 유발시킵니다. 진짜 나쁜 것입니다. 성도들끼리의 경쟁을 막 유발시키면 사람들은 막 보이려고 합니다. 열심히 헌금이나 봉사나 뭐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있는 모습 그대로 해야 됩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은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날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가 감사하면 뭐든지 합니다. 목숨인들 못 내놓겠습니까? 뭐든지 합니다.

3. 교회 안 성도의 삶

3-1. 세상과의 관계

교회 안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5장 10절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니라."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말은 아니라고 바울이 얘기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런 이런 종류의 사람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말라 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분별하라는 뜻입니다. 나를 지키고, 내가 이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오히려 내가 좋은 누룩이 되어서 이분들을 잘 섬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사회 안의 관계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오히려 이분들에게 물들어서, 그 물든 내가 교회를 물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든 내가 세상에서 물들어 와서 교회를 물들입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아서 세상을 물들여야 되는데, 거꾸로 세상에서 물들어 와서 교회를 물들이니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바울이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2. 교회 안의 원칙

11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요? 그런데 앞뒤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11절 앞에 보니까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형제는 교회 안 사람일까요, 교회 밖 사람일까요? 교회 안 사람입니다. 아무개 집사님이, 아무개 장로님이, 그런 뜻입니다.

즉 아무개 장로님이라 하는 분이, 아무개 집사님이라 하는 분이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완전히 고립시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까 10절에 말하는 자들은 세상 밖 사람들입니다. 교회 밖 사람들입니다. 성도도 사회생활해야 될 것 아닙니까? 성도도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사람에게도 우리가 영향력을 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형제라 하는 사람 중에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마라, 내쫓아 버리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밖에 있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누가 심판하십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상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영향력을 주려고 노력하되 너희가 별로 상관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 악한 사람은 교회 안에 형제라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바울의 말이 명확하지요? 교회 안에서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고 속여 빼앗고 이런 인간과는 사귀지 마십시오. 어떻게 그래요?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정신 차립니다.

4. 성도들간의 소송

4-1. 세상 법정의 문제

이제 성도들 간에 소송입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책망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6장으로 가는데요. 5장은 음행의 문제가 나왔고, 6장은 소송의 문제가 나왔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 가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불의한 자들'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가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는 말은, 교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그것을 꼭 세상 법정으로 끌고 나가야 속이 풀리겠느냐는 말입니다.

요즘 교회가 세상 법정으로 많이 끌고 갑니다. 교회에서 목사 장로 간 다툼, 성도 간 다툼, 뭐 이런 분쟁, 예를 들어 교회가 다투어 가지고 교회 재산권 문제, 성도들이 이제 서로 절반 절반 찢어지는데 이 건물은 누가 가질 것이냐 하는 문제, 그런 것 가지고 분쟁이 막 일어나다가 교회 안에서 해결이 안 되어서 세상 법정으로 갑니다. 세상 법정으로 가는 것 그 자체가 지금 바울에게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런 것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가 훨씬 더 고차원적인데, 세상 법정에서 어떻게 고차원적인 하나님의 법정을 재판할 수 있느냐, 이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6장 2절을 보십시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성도 우리가 세상을 판단해야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우리가 세상을 심판하고, 세상이 잘못됐다고 지적해야 되는데, 오히려 세상이 우리를 재판하고 있습니다.

정말 웃긴 것은요, 요즘 교회들이 분쟁하고 법정으로 갑니다. 그러면 세상 법정에서 제일 좋은 판결이 무엇일까요? 판결하기 전에 조정하는 것입니다. 그 판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 아무개 교회 목사님, 아무개 교회 장로님, 서로 화해하십시오." 그런 얘기를 판사한테 들어야 되겠습니까? 서로 싸워 가지고 이것이 1심 2심 3심까지 가면 서로 돈만 날리고 마음만 상하고 서로 지루하고 교회 성도도 다 떨어지니까, "이제 여기서 끝내세요"라고 판사가 말합니다. 판사가 그런 얘기를 교회가 어떻게 세상 법정에서 듣고 있습니까? 교회가 얼마나 교회답지 못하면, 교회가 얼마나 자정 능력이 없으면 그렇겠습니까?

교회 문제 해결하는 것은 한쪽이 손해 보면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억울해도 그냥 참고 넘어가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뒤에 나옵니다.

4-2. 차라리 손해 보라

바울은 교인들 간의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지 말라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강하게 합니까? 6장 7절입니다. "너희가 피차 고발하므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고발하는 것 자체가 허물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왜요?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차라리 내가 한 대 맞고 말고, 차라리 손해 보고, 분명히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이 맞아요, 내가 억울한 것이 맞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가지고 세상 법정으로 가요, 이 문제를 가지고 목소리 높여 싸워요, 이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서 목회자 장로님 성도들이 재직회에서 공동의회에서 싸워요. 그래 가지고 믿음이 어린 성도들이 상처받고, "교회가 왜 이래" 이러면서 떠나고, "다시는 내가 교회를 향해서는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 이런 지경까지 가버린다면, 차라리 손해 보고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내가 떳떳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십자가 아닙니까?

성도들 간에 제일 해서는 안 될 일이 3자 대면입니다. 억울해 가지고 목사님 앞에 가서 3자 대면 하자고 합니다. 뭐 때문에 앞에 왜 옵니까? 하나님 앞에 가야지요. 그냥 억울하면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고, 다윗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저 사람 밟아 주세요. 그냥 밟아 주세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리고 그냥 탁 털어버려야지요. 그것을 가지고 죽어라고 싸우고, 싸우는 동안 대다수의 교인들은 다 어디 가고 없어요. 싸우는 것 좋아하는 교인이 어디 있습니까? 싸우는 공동체 절대 안 좋아합니다.

교회 전체가 그렇고요, 교회 안에 작은 기관들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안 모이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싸우니까 안 모이는 것입니다. 갈등하니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싸웁니다. 그런데 즐겁고 행복하고 모여서 기쁘고 유익 되면 왜 안 오겠습니까? 재밌으면 옵니다. 그런데 싸우는 분들은 자기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5. 하나님 나라의 유업

5-1. 미혹을 경계하라

그 안을 들여다보면 썩어서 냄새나는 시체 같은 것이 내 속에 다 있는데, 털어서 다 먼지가 나는 인간들인데, 자기 스스로 정의롭다고 생각하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까? 9절을 보시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쭉 나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이 우리 착하고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요즘 미혹이라는 말을 들으면 신천지가 바로 떠오르는데요. 그런데 성경에서 아주 미혹을 잘한 한 인물이 있습니다. 사무엘하 15장 4절과 6절을 보면 압살롬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자기가 정의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이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이것이 미혹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미혹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 줄 아십니까? 사람의 마음은 사실 누구에게 향해야 됩니까? 하나님께 향해야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야 될 마음을 내가 훔쳐 온다는 것이 진짜 무서운 죄입니다. 죄 중에 너무너무 무서운 죄입니다. 압살롬이 자기가 성 앞에 텐트 하나 딱 치고 거기 터를 잡고, 올라오는 백성들의 송사를 다 들어 줍니다. "내가 왕자이니까 당신의 억울함을 내가 다 해소해 주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무려 4년 동안 했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다 훔쳤습니다. 그리고 반역한 것입니다.

여기 지금 미혹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미혹은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신천지는 비유 풀이라는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지금도 훔치고 있고요. 그것은 기성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존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말씀 공부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하늘에서 폭탄 떨어지듯이 계속해서 던져 줘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조금씩 성장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머리 굵어지면 반항한다"고 하고, "가르쳐 놓으면 대든다"고 하고, "그냥 구원받는데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고, "그냥 배우고 익히고 이런 것 하지 말고, 그냥 믿고 구원받고, 돈 있으면 헌금하고, 힘이 있으면 봉사하고, 시간 있으면 전도하고" 그렇게 무식하게 하니까 신천지가 와 가지고 성도들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성도들은 궁금한 것만 자꾸 마음에 쌓이는데, 그때 신천지라는 것이 딱 들어와 가지고 질문합니다. "뱀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십니까?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인류일까요, 다른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노아의 방주 이후에 사람들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것 알고 계세요? 당신들 교회는 그것 가르쳐 줍니까?" 솔깃해집니다.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따라가고, 거기서 빠져서 못 나오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여기 나오지요. 음란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나쁜 누룩을 자꾸 펼쳐 주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분명히 음행을 하는 것을 내가 알아요. 그런데 복을 받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데, "음행하는 자"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십계명에 나옵니다. 간음하면 죽을 것 같은데 저 사람은 돈 더 잘 법니다. 음행을 하는데 잘 먹고 잘 삽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나도 한번 해볼까? 괜찮네" 그러고요. "그렇게 거짓말 밥 먹듯이 하는데 그 거짓말로 돈 너무 잘 벌고 잘 삽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런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 미혹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의 마음을 훔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목회자는 성도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자꾸 향하게 해 줘야 됩니다. 자꾸만 하나님 바라보게 하고, 말씀 바라보게 하고, 자기는 빠지고 그래야 됩니다. 우리가 영적 지도자가 된다는 것, 교회 중직자가 된다는 것, 자기 이름을 자꾸 지우고, 성도들의 마음을 훔치면 안 됩니다. 자꾸 하나님께 향하게 해 주고, 자기는 이름이 없어지고 빠지고,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이름에 새겨질 것 아닙니까?

미혹하는 것,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주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됩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 잘생긴 분들, 또 미모가 아주 좋은 분들, 그런 분들은 화장 안 하고 다니시면 좋겠어요. 사람의 마음을 훔치면 안 됩니다.

6. 음행을 피하라

6-1. 자유와 유익

바울은 자유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12절입니다. 진짜 바울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기억해야 될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역자 아닙니까? 자기는 사역자로서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다 가합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습니다. 뒤에 8장에 보면 우상에게 바친 제물 얘기가 나옵니다. 먹어도 됩니다. 하나님이 다 되셨는데 다 먹어도 됩니다. 하나님 창조물이고 피조물인데 왜 못 먹습니까?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디에요? 교회에입니다. 지금 바울은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얘기입니다. 내가 사역자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해서 내가 그것 다 누려 버리면 그것이 교회에 과연 유익하냐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할 수 있는 것 다 해버리면 그것이 진짜 교회에 유익이냐, 이 교회 공동체에 진짜 유익하냐, 믿음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이제 막 초신자에게도, 어르신들에게도 이것이 진짜 유익하냐, 이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내가 목구멍까지 올라와요. 그런데 이 말을 내가 내뱉는 것이 해도 돼요. 그런데 그것이 진짜 유익하냐, 교회 공동체, 내가 속한 곳에 유익하냐, 이것을 따져봐야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항상 그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에이 뭔, 그것은 모르겠고, 나는 내가 하고 싶으면 다 질렀으니까 속은 시원하다." 이것은 진짜 믿음이 어린 사람들입니다.

6-2. 몸의 주인

13절을 보시면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주를 위하여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음란이라는 것은 주님 일 빼고 다른 모든 세상 일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내 몸의 주인이 누굽니까? 잘 헷갈리시면 이 몸을 누가 지었느냐를 생각하면 됩니다. 누가 지었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우리 그것은 믿습니다.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막 걸어다니게 했습니다. 그러면 내 몸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키는 것 해야 됩니다. 내 눈으로는 하나님 보라는 것 봐야 되고, 내 손으로는 아버지 원하는 것 해야 되고, 내 발로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곳에 가야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음란을 위해서 이 몸을 씁니까? 이 몸이 하나님 원치 않는 자리에 있고, 하나님 원치 않는 것 보고, 원치 않는 것 말하고, 이 입이 찬양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감사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는데, 이상한 말 많이 합니다. 다 그 말입니다.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주님이 나를 위하여 계신다는 말입니다. 14절입니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이 말씀은 굉장히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를 살리셨고, 주는 그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린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살리시는 분은 모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살립니까? 하나님의 백성만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마귀 자식인데, 마귀 자식을 왜 살리겠습니까? 마귀 자식에게 기회를 주고 그 기회를 지속적으로 부여받고 평생 동안 그 기회 가운데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거부하고 떠나서 마귀의 자녀가 되고, 자기 몸을 음란을 위하여 계속해서 내어주고 세상 가치를 위하여 내어주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을 하나님이 왜 살립니까? 우리 주님이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고 싶으면, 내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고 싶으면, 주인 잘 따라가야 됩니다. 내 몸의 주인이 원하는 것 해야 됩니다.

6-3. 그리스도의 지체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다. 이 말 너무 무겁지 않습니까?

눈부터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눈이 어디를 봤습니까? 낮은 데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항상 예루살렘 곁에 있는 어느 동네 베다니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지기 바로 직전에도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은 항상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눈은 한번 높은 곳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돌무화과나무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를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갈급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눈은 낮은 데, 갈급한 곳, 거기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도 그곳을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 눈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 눈은 항상 꼭대기에 가 있습니다. 나보다 잘 사는 사람, 나보다 행세하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봄 되니까 이제 유행 타서 이번 사순절인데 옷은 하나 사야 되겠고 뭐 그런 것들입니다.

예수님의 손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손이 제자들의 발 씻었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그 더러운 발 씻고, 예수님의 손은 시체 만졌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 만지기 싫어합니다. 손잡기 싫어합니다. 예수님의 손은 나병 환자에게 손 얹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비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게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 싫어합니다. 너무너무 싫어합니다. 깨끗한 것만 만지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발 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 우리가 예수님의 지체라 했는데, 예수님의 지체라 했는데, 사실은 따져보니까 예수님 가신 곳에 가지도 않고, 예수님 보신 것도 보지 않고, 예수님 만지는 것도 만지지 않고, 그러고 우리가 무슨 예수님 지체입니까? 아닙니다.

6-4. 값으로 사신 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겠습니다.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며 음행을 피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7절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창녀와 합하지 말고 주와 합하라 했습니다. 창녀란 그냥 말 그대로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세상 문화, 세상의 모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과 하나 되지 말고 주와 합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어떻게 하나 됩니까? 앞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몸이 주님의 지체가 되면 우리가 주와 합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 내 마음이 되고, 주님의 눈 내 눈이 되고, 주님의 손과 발 내 손과 발이 되고, 그러면 그것이 합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배만 잘 드린다고, 주구장창 예배만 드린다고 그것이 주와 합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배 드린 후에, 예배는 물론 드리지요, 예배 드린 후에 주와 내 몸이 합해야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그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한 영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고린도전서는 몸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왜요? 19절에 나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옛날 유행가 가사 중에 "내 인생은 나의 것" 뭐 이런 노래 했었지요. 그런데 너희 몸은 네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주님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어봐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것 해도 됩니까?" 헷갈릴 때는 물어봐야 됩니다. 우리가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물어봅니다. "들어가도 됩니까?" 물어봅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몸이 내 것이 아닌데, "하나님, 오늘 술 한잔해도 됩니까?" 물어보셔야 됩니다. "하나님, 오늘 제 아내 아닌 다른 여자랑 손 좀 잡아도 됩니까?" 물어봐야 됩니다. 물어보면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안 된다고 하시지요. 당연히 눈앞이 번쩍 뜨이게 뭔가를 하나님이 보여주실 것입니다. 큰일 납니다.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라 했으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20절입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값이 무엇입니까? 피값입니다. 아들의 피,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나를 너무너무 비싸게 주고 산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전부를 다 주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소유입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소유 되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 발로 다시 걸어가서 죄의 종노릇하고 살고 있으면 하나님이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는 하나님 것이니까, 그 비싼 값 치르고 산, 피값으로 산 내 몸이니까, 물어봐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이것 먹어도 됩니까? 이것 해도 됩니까?" 안 되는 것 다 압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이만큼 했는데 그것 왜 모릅니까? 다 압니다. 안 가르쳐 줘도 알고 다 합니다. 그런데 모른 척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값을 우리가 죽음으로 치러야 됩니다. 죽음으로, 그냥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으로 치러야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지금 바울이 말하는 것, 단순한 음란 음행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몸은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정말 비싼 몸입니다. 내가 그래서 나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지 모릅니다. 내가 뭐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집에 살고, 돈 많이 벌고, 그것으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것만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진짜 허무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세상에는 돈으로 따지면 정말 부자도 많고, 좋은 집으로 따지면 너무너무 좋은 집에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가치로 따질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나를 사셨다면, 나는 진짜 존귀한 자입니다. 이 존귀함에 나를, 나도 존귀하게 여기셔야 됩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여기고,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고,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서 거룩한 병기로, 내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우리는 스스로 자기 발로 걸어가서 죄의 종노릇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너희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셨고, 너희는 하나님의 지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눈, 예수님의 손과 발, 예수님의 가슴 뜨거운 열정을 품지 못하고 마귀의 앞잡이 하고 사탄의 종노릇하고 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주와 합하여 한 영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저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도록 도우시고, 예배 드린 후에 우리의 온몸을 다해서 예수님의 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내 아들을 주고 산 너, 아깝지 않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깝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