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특강 6 - 우상에게 바친 제물 (고전 8장)
오늘 고린도전서 특강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 시대의 지역 교회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비교도 안 될 만큼 정말 힘든 교회였고 골치 아픈 교회였고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을 바울은 회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냥 교회를 때려치워라, 없애버려라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많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문제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를 보면 이런 문제도 있고 저런 문제도 있고, 이런 갈등 저런 갈등 가운데 사는데 "너 이제 안 되겠다. 집어치워라" 하고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 문제를 찾아내고 분석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하나님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지 마라. 이 문제를 풀어 가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문제 해결을 주셨는데, 그 다음 이것을 취하고 혹은 취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취하면 회복되고 살아날 것이고, 하나님의 처방전을 버리고 그대로 살면 망하는 것이고, 아주 간단합니다. 아주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 교회만의 문제도 아니고, 역사상 모든 교회의 문제이고 앞으로 오고 올 모든 인류의,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당면하고 직면하고 있는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런 측면으로 보셔야 됩니다.
1.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
1-1. 세 가지 문제와 처방전
고린도 교회에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첫째 문제가 분열입니다. 그런데 이 분열이 그냥 보통 분열이 아니고 사람을 중심으로 한 분열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개척 목사인 바울, 두 번째 목사인 아볼로, 이 두 패거리로 나뉘어져서 굉장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툼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처방전이 있지 않습니까. 분열의 문제에 처방전은 바울이 한 말씀 중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고, 너희들이 우리를 따를 만큼 우린 그렇게 뛰어나거나 탁월하거나 영웅적이거나 신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여러분들을 이렇게까지 성장하고 자라나게 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사람에게 줄 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문제가 음행의 문제입니다. 음란의 문제.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 그런 한 가지 사건이 문제가 아니고, 전체적인 고린도의 문화가, 음란의 문화가 교회 안으로 이렇게 쑥 밀려 들어온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처방전, 우리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라." 굉장히 각인되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세 번째가 결혼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결혼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부르신 그대로 부름 받은 그곳에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름 받았으면 굳이 할례받을 필요가 없고, 할례받은 자로 부름 받았으면 그냥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면 됩니다.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결혼 제도가 깨지고 결혼 제도에서 뛰쳐나오고 이혼하고 갈등이 있는 인간의 이 추악하고 깨어진 현실도 하나님은 그대로 인정하십니다. 그 인정하시는 하나님, 그 부르신 자리에서 그대로 하나님께 순종하라, 누가 누구를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1-2. 대안을 제시하라
그래서 바울은 항상 책망하고 대안을 제시해 줍니다. 책망하고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 이것은 진짜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 언론을 보면 언론이 정치권을 굉장히 책망합니다. 굉장히 강하게 책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 알맹이란 대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 대안이 없습니다. 정치인들 싸움하는 것을 보면 서로 잘못한 것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고 기가 막히게 비판하는데, 자 그러면 그 다음 어떻게 할 것이냐, 대안이 무엇이냐 이렇게 물으면 대안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의 사람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가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우리는 대안 공동체입니다"라는 표현을 가졌던 것 기억하십니까? 요셉 이야기를 가지고 시작을 했었는데, 요셉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흉년이 옵니다. 풍년도 오고 흉년도 옵니다. 그러면 그 흉년이 올 때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창고를 지었지 않습니까? 그것이 대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안을 제시하셔야 됩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가 난 곳에서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대안을 찾아서 제시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흉은 잘 보고 욕은 잘하는데 대안이 없으면 정말 공허한 것입니다. 공중에 붕 떠버리는 것입니다.
2. 우상에게 바친 제물
2-1. 고린도의 신전 문화
이제 오늘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 이야기입니다. 이제 한 가지를 좀 기억을 하고 들어가야 되는데, 고린도라는 도시 문화를 설명드렸습니다. 고린도는 철저하게 이방인 지역입니다. 이방인 지역에 마치 섬 같이 하나의 교회가 딱 있는 곳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은 교회 오면 교회 문화가 있고 교회 문턱만 넘어서면 세상의 문화가 있습니다. 고린도라는 이방 문화에서는 신전이 굉장히 많습니다. 온갖 잡신들. 로마에 가면 만신전이라고 있습니다. 만신전. 신이 얼마나 많으면 만신이라고 그랬겠습니까. 만신전, 신의 개수가 한 신을 어떻게 셉니까. 많은 분이라고 하나, 만 명이라고 하나, 만신. 어쨌든 신이 한 만 개 정도, 만 개라고 합시다. 우리는 신의 아이템 그 정도 된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신을 다 모아 놓은 것이 만신전입니다. 그러니 온갖 잡신을 고린도 사람들이 다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전에서 제사 드리는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빠지면 안 되는 것이 고기하고 술입니다. 제물입니다. 신전 제사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고기와 술입니다. 그래서 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지금 얘기하는데, 크게 두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는 신전 제사가 막 열립니다. 신전 제사가 굉장한 규모로 열리는데, 사실은 볼거리도 좀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 굿 구경 많이 했습니다. 굿판 벌이는데 굿 끝나고 나면 돼지머리도 좀 얻어먹고 떡도 좀 얻어먹고, 그런데 먹거리가 생기기도 하지만 이 화려한 춤솜씨, 때로는 무당이 작두 타는 것도 보고 그런 것도 볼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신전 제사에 가서 눈요기도 하고 볼거리도 보고 배고픔도 해결하고 그리고 오는 것입니다. 신전 제사에서, 그 당시에는 TV가 있습니까,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니 신전 제사, 거대한 신전에서 신전 제사가 열리면 거기 가서 그 제사에 참석해서 그냥 즐기고 먹고 마시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입니까? 죄가 아닙니까?
과거에 신전 제사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그 신에게 예배를 한 자에게만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과거에는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가 있었던 시대쯤 되면 이것이 문화적으로 너무너무 퍼져 가버리니까 굳이 거기 와서 뭐 절하거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온 사람들에게 다 주는 것입니다. 그냥 적극적으로 자기 발로 신전 제사 찾아다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교회 권사님, 장로님, 집사님, 목사들이 신전 제사에 가서 소일거리 하고 거기 가서 먹고 마시고 놀고 시간 보내고, "야 우리 오늘 저 북쪽에 어느 신전에서 제사한다는데 고기 얻어먹으러 가자" 하고 갔다 옵니다. 초파일에 "저 절에 절밥이 맛있다더라, 우리 가서 먹고 오자" 하고 간다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얘기입니다. 그렇게 자기 발로 가는 사람, 첫째 부류. 좀 심각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신전이 워낙 많으니까 거기에서 제사 드리고 나서 나오는 고기들을 그 안에서 다 소화시킬 수 없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나와서 파는 것입니다. 시장에서요. 그러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들은 거의 대부분 신전 제사에서 물려낸 고기인 것입니다. 자, 그것을 먹어도 된다, 먹으면 안 된다, 이 문제 가지고 다투는 것입니다. 첫 번째 부류는 신전 제사가 있는 데마다 찾아가도 된다, 안 된다. 이것, 우리는 어떻습니까?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발로 직접 찾아가서 그러면 됩니까? 그런 얘기가 나중에 나옵니다.
그런데 시장에 막 유통되는 고기가, 나이 들수록 단백질 먹어야 된다는데, 지금 고린도에서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고기가 다 신전에서 물려내는 고기인데 이것 어떻게 합니까? 이것 먹어도 된다, 안 된다. 된다 하려니까 조금 찝찝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이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어도 돼", 어떤 사람은 찝찝한 것입니다. 그것이 불편하고 불편해 죽겠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유대적인 전통적인 관습에 의하면 이것을 먹으면 큰일 날 것 같은 것입니다. 근처에도 못 가겠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는 먹어야 되고, 생선이나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부류들. 그것 가지고 교회가 다투고 정죄하고 싸우니까 바울이 먹는 것에 대해 지금 이 성경에 적어 놓은 것입니다.
2-2. 지식과 사랑
이렇게 아주 고급스러운 언어로 봅시다.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자, 이제 우상의 제물이라고 나오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됩니까? 이방 신전에 드려진 제물, 고기입니다.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어떤 지식이 있는가, 이 지식이 무엇입니까? 먹어도 된다는 지식입니다. 먹어도 된다. 결론은 바울이 나중에 얘기합니다. 먹어도 된다고요. 이방인 신전에 드렸다가 물려내서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모든 고기, 그것 먹어도 됩니다. 우리가 다 먹어도 되는 지식이 있는 것입니다.
자, 먹어도 됩니다. 그런데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교인들 가운데 마음이 여리고 약하고 혹은 우리가 3대째 4대째 5대째 전통적인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서 "우리 조상들은 이런 것 보면 기겁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런 것 보면 펄쩍 뛰었는데, 나는 이것 먹어도 돼?" 이런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먹어도 되나 그러나 이런 사람들을 정죄하고 "야, 너는 왜 그렇게 담력이 약하니? 넌 왜 그렇게 믿음이 약하니? 이것 다 그냥 하나님이 주신 것이야.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니까 무조건 먹어라"고 하면서 교회를 갈등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자, 보신탕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보신탕. 목사님이 보신탕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강아지를 키우는 성도 앞에서, 집에 강아지를 막 키우는 성도 앞에서 목사님이 "우리 여름에 몸보신하게 개나 한 마리 잡아 가지고 우리 신나게 한번 먹어 봅시다. 그것 먹어도 돼요. 그것 걔는 그냥 마당에서 키우는 것이지" 이렇게 하면, 이렇게 하면 강아지는 가족인데, 지금 사랑하는 내 아들이고 사랑하는 내 딸인데, 걔가 아프면 목사님한테 안수기도 받으러 올 판인데, 개 장례식까지 지금 해 달라고 할 판인데, 그렇게 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목사님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먹어도 되지만 먹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먹어도 된다고 불러 앉혀서 "이건 다 하나님이 주신 식물입니다. 음식입니다." 그것이 교만이라 그랬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
아니, 할머니 한 분이 자식들 다 떠나고 다 외국에 살고 서울에 살고 멀리 살고, 그 예쁜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사는데, 할머니한테 "우리 오늘 보신하러 보신탕 먹으러 갑시다." 삼계탕 먹으면 되지, 굳이 그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지금 바울이 교회 공동체 안에 그런 갈등들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2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는 것이 많은 것입니다. 먹어도 된다고 그렇게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 진짜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그 성도의 상태, 그분의 마음 상태, 그분의 상태를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 상태에 그분의 약한 것, 그분의 부족한 것, 이것을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 상태.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분의 마음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십일조 마땅히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상태가, 성도의 마음 상태가, 성도의 가정 상태가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좀 믿음 좋은 권사님, 믿음 좋은 장로님이 막 책망하고 뭐라 하면 됩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의 삶의 자리와 그분의 상태인 것입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 우리가 지식은 다 알고 있습니다. 전부 다 아는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나와 지금 대화하고 나와 상대하고 나와 함께 교제하는 우리 성도들의 삶의 자리와 그분의 상태들입니다. 약한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을 만한 담력이 있는가? 아니면 그것만 보면 울렁증이 생기고 불편한가? 그 상태를 아는 것, 그것이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뜻입니다. 그것 모르면 우리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3절,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이것이 생략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빠졌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그 사람을 우리가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알아 준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 아들 독생자를 주신 그 대상인 사람을 살피고 그 사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그냥 막 던지고 마구잡이로 얘기하고 "헌금 하세요" 얘기하고 "이것 먹어도 됩니다" 얘기하고 그러면 그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고 영혼을 병들게 하고 큰일 나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이 오늘 우리 교회에, 또 우리 신앙생활에 굉장한 지혜를 주는 말씀입니다.
3. 우상에 대한 성경적 정의
3-1. 우상의 본질
이제 우상 얘기가 나왔으니까 우상 얘기 한번 하고 가야 됩니다. 4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이 뭐라 그랬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랬습니다.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그래서 없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 그 없는 것에게 드린 것 먹어도 됩니까, 안 됩니까?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하면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자, 이제 우상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볼게요. 시편 115편 4절에서 8절이 우상에 대한 것을 굉장히 잘 정의해 두었습니다. 잘 보십시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돈이 우상이 된다 합시다. 돈 말할 수 있습니까? 들을 수 있습니까? 볼 수 있습니까? 돈이 우상이 되면 우리 눈이 봐도 제대로 된 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되면 진짜 들어야 할 것을 못 듣고, 사람들이 "야, 돈 된다더라, 저기 한번 투자해 봐" 그런 것만, 이상한 소리만 자꾸 듣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되면 가야 할 데를 못 가고, 내 발이 이상한 데로만 자꾸 다니게 됩니다. 정욕이 우상이 되고 음란이 우상이 되어 보십시오. 이상한 것만 자꾸 보게 됩니다. 이상한 것만 듣게 되고, 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희한합니다. 우상은 똑같이 이렇게 됩니다. 너무너무 신기한 말씀입니다.
3-2. 섬기는 것을 닮아가다
그리고 또 사람들은 자기가 섬기는 것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우상이 돼서 돈을 섬겨 보십시오. 돈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냄새납니다. 더럽습니다. 그것에 피가 있습니다. 그것에 살인도 있고, 돈이 매개가 돼서 사람을 죽이고, 냄새나고, 탐욕이 되고, 그것이 썩고. 돈이 우상이 되는 사람들 더러운 일을 하게 됩니다. 그 사람도 더러워집니다. 그 영혼이 더러워집니다. 삶이 깨끗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더러운지 모릅니다. 뒤로 하는 짓들이, 그 생각들이, 그 행위들이 돈을 따라가니까요. 내가 섬기는 것을 따라가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하나님은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보십시오. 해 달 별 딱 만들고 어둠이 딱 물러가고 빛이 딱 오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사람이 규모가 있습니다. 깨끗하고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은 성실하시거든요. 창조하시고 지금도 매일같이 해를 띄우십니다. 하나님이 까먹고 하루만 해 안 띄우면 어떻게 됩니까. "미안" 이러면 어떻게 됩니까. 하루만 하나님이 하루 게으르면 어떻게 됩니까. 다 죽습니다. 그냥 하루에 안 되면. 그런데 하나님은 성실하신데 우리가 하나님 잘 섬기고 따르면 정말 나는 게을렀는데 성실하게 됩니다. 새벽에도 나오고 수요일 날 이 시간에 이 자리에도 앉아 있고, 공부 정말 싫어했는데 성경 공부하게 되고,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내가 섬기는 대상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 섬기면 우상 따라가게 되어 있고, 하나님 섬기면 하나님 따라가게 되어 있고, 그것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많은 인간 군상들을 한번 보십시오. 저 인간이 지금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우상을 섬기는지, 하나님 따라가고 있는지 잘 보십시오. 이런 눈으로 보면 다 보입니다. 안 보일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4. 에스겔의 성전 환상
4-1. 성전 안의 우상
그 다음 에스겔 8장 이야기를 제가 길게 적어 주었습니다. 왜 적어 두었냐면 너무 충격적인 것이라서 적어 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언제 예언했습니까? 나라가 망하기 전입니까, 망한 후입니까? 망한 후에 예언했습니다. 남유다가 망해서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다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이 예언자 에스겔에게 말씀을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말씀이 그렇게 길게 기록된 것입니다. 에스겔 후반부는 하나님의 새로운 성전의 조감도입니다. 하나님이 남유다를 멸망시키실 때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썩어빠진 성전 불타버려라 하고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포로 70년 지나고 돌아올 때 이 성전의 조감도, 설계도를 가지고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라 그러면서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에스겔서 후반에 나오는 성전 조감도입니다. 그 조감도를 들고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와서 성전을 재건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얘기 하기 전에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내가 유다 땅에 있는 너희 옛날 성전을 멸망시키고 불태운 이유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8장이 너희들 옛날에 포로로 잡혀오기 전 그 예루살렘 성전이 왜 망했는지, 왜 불탔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5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질투의 우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는 우상, 하나님을 질투 나게 하는 우상입니다.
4-2.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질투가 낭만적입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까? 질투의 감정을 느껴 보셨습니까? 혹시 아직도 질투하고 계십니까? 여전히 젊고 건강하시군요. 질투의 감정은 늙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질투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면 뼈가 마릅니다. 피가 마릅니다. 사람이 얼마나 비루해지는지 모릅니다. 질투의 감정을 제대로 한번 느끼기 시작하면 인간성 저 밑바닥까지 내려갑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이 굉장히 재밌는 분이신데,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는 이 질투의 감정을 그대로 당신이 느낀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할 때요. 그래서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얘기를 성경 여러 군데서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말씀과 신명기 말씀 보시겠습니다. 34장 14절, 4장 24절,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 그랬습니다. 자, 신명기 읽어 볼게요.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자, 질투하는데 그 질투의 끝이 무엇입니까? 소멸하는 불. 다 태워 죽이겠다, 내가 다 태워버리겠다. 하나님 질투의 끝은 무엇입니까? 용서가 없습니다. 하나님 질투의 끝은요.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면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스바냐 말씀에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3장 8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질투의 불에 어디 갑니까? 온 땅이, 온 세계가 하나님의 질투의 불은 온 세계를 다 소멸시킵니다. 다 태워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질투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 질투에 대한 얘기를 굉장히 자주 합니다.
4-3. 성전을 떠나시는 하나님
자, 질투의 우상, 즉 하나님을 질투 나게 하는 우상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제단문 어귀 북쪽. 제단이 어디에 있는 제단입니까? 성전입니다. 성전에 우상이 서 있었다 그랬습니다. 너무 황당하지 않습니까? 성전에 우상이 있다고요.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중요한 것, 성전 안에 우상이 있으면 하나님이 성소를 떠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소를 떠난 줄 모릅니다. 그 성소에 와서 그냥 예배 드립니다. 하나님 없는데요. 하나님 없는데요.
여러분 이것 잘 생각하셔야 됩니다. 이 제단이 하나님이 계신 제단인가, 하나님이 떠난 제단인가. 이 제단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인가, 사람이 적게 모이는 곳인가를 볼 것이 아니고 이 제단이 하나님이 계신 곳인가, 하나님이 떠난 곳인가를 봐야 합니다. 그것이 분별력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계신 곳인가, 하나님이 떠난 곳인가, 이것은 매일 질문해야 됩니다. 매일 목회자인 저부터 매일같이 매일같이 "내가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그랬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떠난 사람인가,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인가. 하나님이 계시면 나는 성도이고, 하나님이 떠나면 나는 종교인입니다.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남유다가 망하기 전에 그때 성소는 하나님이 떠난 곳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다 태워버렸습니다. 왜 떠났을까요. 우상이 있으니까요.
4-4. 탐욕의 우상
그런데 진짜 성전 안에 거대한 우상을, 불상 같은 것을 세워 놨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7절, "그가 나를 이끌고 뜰문에 이르시기로 성전 뜰문에 이르니까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구멍이 났습니다. 담에 구멍이 있으면 그리로 무엇이 다닙니까? 구멍이 작으면 쥐새끼가 기어다니고 구멍이 크면 들짐승이 지나다닙니다. 도둑놈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전 안에 도둑놈들이.
그래서 이 성전에 탐욕의 우상이 거대하게 서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 도둑놈들이 누구입니까? 성소에 있었던 그 죽어 마땅한 도둑놈들이 누굽니까? 제사장, 종교 지도자들. 그놈들이 도둑놈 아닙니까?
십일조를 가져왔습니다. 성도들이 십일조를 구약에서 세 가지 정신을 얘기했는데, 첫째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생활로 씁니다. 3분의 1은. 제사장과 레위인은 땅이 없습니다. 전업으로 거기서 성전에서 일하고 말씀 전하고 예배 집례하고 하니까요. 3분의 1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을 위해서, 3분의 1은 성전 보수를 위해서 여기저기 구멍 나오고 비 세고 문제 있으면 그것 고치고 하는 것, 또 3분의 1은 구제를 위해서 가난한 자 병든 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서. 그것이 십일조 정신입니다.
십일조를 다 거둡니다. 열심히 십일조 좀 하라 그랬습니다. 그래 놓고 그렇게 안 쓰는 것입니다. 3분의 1은 나눠주고 3분의 1은 성전 재건을 위해서 써야 되는데 자기네들이 다 먹는 것입니다. 그냥 그리고 왕하고 결탁해 가지고 왕한테 좀 드리고 갖다 바치고 자기네들이 다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은 맨날 문제가 생기고 담에 구멍이 납니다. 성전 보수를 못해가지고 담에 구멍이 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 구제도 안 하고 돕지도 않고 자기만 배불리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와 똑같지 않습니까? 오늘 교회가 헌금은 어마어마하게 강조합니다. 십일조 하라고 계속 강조합니다. 그런데 헌금은 강조하는데 십일조 정신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정말 3분의 1을 구제를 위해서 썼느냐, 3분의 1을 성전의 보수와 성전 재건으로 해서 썼느냐, 3분의 1을 목회자들 또 교회 여러 필요한데 정말 제대로 우리가 급여를 주고 쓰느냐. 이것 제대로 합니까? 안 합니다. 다 십일조는 강조하는데 십일조 정신대로 교회가 살아가지 않으면, 전부 다 한 사람이 다 독점하고 목회자 한 사람의 말로 교회의 모든 재정이 다 왔다 갔다 하고, 그것이 정상적인 교회입니까? 도둑놈입니다. 그러니까 담에 구멍이 나는 것입니다. 거기에 큰 우상이 서 있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우상이. 탐욕의 우상이. 그러니까 하나님이 질투하신다 그랬습니다. 질투의 우상이 거기 서 있다고, 가만히 두겠습니까?
4-5. 가증한 예배
그 다음 10절,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다 그리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성도들이 낸 십일조 가지고 나는 이것 사먹고 나는 이 집 짓고 나는 이런 차 뽑아 가지고 쓰고 막 이런 것을 거기다가 다 그려놓는 것입니다. 자기 탐욕의 그림들을 성전 벽에다가 이놈의 제사장들이 다.
그 다음 보십시오.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70명이", 12지파의 대표들입니다, "그 앞에 서 있으며 사반의 아들 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거룩한 척 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향연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계시록에 보면요. 그 향로 들고 막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 기도하는 내용이 뭘까요. "하나님 더 부자 되게 해주세요. 백성들 더 괴롭혀 가지고 수탈해 가지고 더 많은 돈을 걷어 가지고 우리도 부자 되게 해주세요." 뭐 이런 기도 하고 있었겠습니다. 이 인간들이. 지도자들이. 교회 지도자라는 것들이.
15절 보십시오.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볼 것이라." 와, 여기까지도 충격적인데 더 가증한 일을 본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좀 그만 보여주시면 좋겠는데.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등지고 그랬습니다, 성전을 등지고 "낯을 어디를 향해서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성전 안에서요. 성전을 등지고 동쪽 태양을 향하여 예배한다니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동쪽 태양이 진짜 물리적으로 동쪽 태양, 동쪽이라는 나라. 예루살렘에서 동쪽은 어디입니까? 지금 이 당시 바벨론입니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예루살렘에서 동쪽 강대국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또 태양신,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가 이집트입니다. 파라오 태양신의 아들. 태양신에게 경배하고 권력에게 경배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성이, 그러니 이 예배당이 불타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냥 처참하게 다 심판해 버리셨습니다.
4-6. 교회 재정의 청지기 의식
그래서 여러분, 교회 안에 교회 안에 탐욕의 우상, 도둑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생각보다 많다니까요. 그래서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셔야 됩니다. 죄짓게 꼭 오시고 감시하시고 다 보여달라고 하고 물어보고 어떻게 쓰였느냐고 얘기해 달라고 하고 그래야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다 건강한 교회, 그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다 서로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별난 것이 아니고, 교회는 제도적으로 모든 것이 다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어떻게 하신다 그랬습니까. 18절,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기도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 왜 기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가? 자기를 돌아보면 됩니다. 내가 하나님 성전에 구멍을 내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 성전에 구멍을 내서 그리로 쥐새끼가 드나들고 거기로 곡식을 축내고, 교회 재정을 함부로 다 누가 먹도록 그냥 나는 방치하고 있고 그러고 살았다면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진짜 반성으로 그칠 일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에 목회자, 중직들부터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세워 나가고 탐욕의 우상을 없애야 됩니다. 그 당시 유다가 망한 이유가 바로 이것, 이 내용입니다.
우상 얘기를 하다가 이제 충격적인 에스겔 8장 얘기를 했습니다.
5. 연약한 자를 위한 배려
5-1.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이제 그 다음 다시 돌아와서 6절, 하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 안에 있습니까 그랬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자, 만물이 그에게서 났다는 얘기를 한 이유는, 바울이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우상에게 바친 제물, 고기, 그것도 누구에게서 났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낫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즉 우리도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으니까, 모든 고기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니까, 하나님이 그 자녀인 우리에게 그것을 먹도록 허락하셨지 않겠느냐 이 말입니다. 먹어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그 말입니다.
5-2. 약한 양심을 배려하라
바울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런데 7절 보십시오. "그러나 이 지식은", 이 지식이 무엇입니까? 먹어도 된다는 지식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다는 지식.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에 대한 습관이 무엇입니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찝찝해서 못 먹는 것입니다. 그 습관.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것이라.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이것이 시험거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지식이 있는 너희가 덕을 세우고 사랑을 베풀어서 먹지 말라, 그것 그러면 되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8절,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 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먹는 것입니다. 목숨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즉 먹을 자유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을 자유가, 시중에 유통되는 고기를 먹어도 되는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이것이 바울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바울이 진짜 하고 싶은 말입니다.
우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자, 술 얘기해 볼까요. 술 먹으면 구원 못 받습니까? 술 마시면, 술하고 구원하고 상관관계가 있나요. 100% 밀접한 상관관계는 없습니다. 술로 인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심각하게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내가 장로입니다. 내가 안수집사입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다닌 권사고 내가 중직입니다. 그런데 "야 뭐 하나님이 뭐 오늘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기쁜 날 내가 마트에서 맥주 한 박스 사 갖고 집에 가서 우리 식구들하고 막 쉬는데 이게 뭐 이게 뭐 누가 집에서 그냥 우리 식구들 와가지고 마시는데." 그런데 저분을 아는 교회 처음 다니는 얼마 다니지 않은 분이 그것을 봤단 말입니다. 목격을 했단 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찾아가서, 차라리 목사를 찾아오든지 차라리 그분을 쫓아가서 "이래도 됩니까"라고 할 정도 되는 담력이 있는 분이라면 괜찮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오늘 저녁 우리 일가친척들이 와가지고 이것을 사 갖고 와서 한잔 마셔도 될 자유가 있으나, 그러나 이 자유가 믿음이 어린 자를 걸려 넘어지게 해서 그가 영원히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게 하는 실족하는 빌미가 되고 그 이유와 그 단초를 내가 제공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그 술 한 잔 마시다가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을 영원히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어떻게 됩니까? 내 영혼은요? 그 말입니다.
5-3. 신전 제사 참여 문제
자 그 다음 10절 보십시오. "지식이 있는 네가", 지식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먹어도 되는 지식을 가진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우상의 집이 무엇입니까? 아까 얘기했던 신전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큰 신전에서 굿판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 재미삼아 갔습니다. 재미삼아 교인들 다 태워 가지고 봉고차 한 대 태워 가지고 "우리 저기 구경 가자. 큰 무당이 와서 굿한단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갔습니다. 갔다고요. 그것이 사월 초파일에 큰 절에 가서 "우리 오늘 밥 한 그릇 얻어먹으러 가자" 하고 갔다고요. 갔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에라 나도 먹자. 뭐 나도 뭐 저분도 저렇게 하네. 나도 참고 있었는데 나도 먹자"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은 책임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책임, 영적 책임. 책임감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입니다. 부담감. 운전할 때도 조심조심해야 되고, 우리 성도하고 막 삿대질하고 싸우게 되죠. 어떻게 압니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좁은 바닥에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12절, "이같이 너희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8장 6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조심하라는 얘기입니다.
5-4.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사도행전 15장 37절에서 41절은요,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다투는 얘기입니다. 내용이 그렇습니다. 마가요한을 1차 선교 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가 데리고 갑니다. 그런데 마가요한은 아주 곱게 자란 도련님입니다. 도련님입니다.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그런데 엄마가 좀 뜨거운 분입니다. 엄마가 "바울 선생님 바나바 선생님 선교 여행 가시는데 제 아들 좀 데려가세요. 심부름도 시키고 고생도 좀 해봐야 되고, 얘 좀 데리고 가세요" 해서 데리고 갔다고요.
마가요한의 집이 성령 받은 그 집입니다.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에 120명 들어가는 다락방 보셨습니까? 여러분, 저희 집도 어릴 때 다락이 있었는데 한 명 들어가서 겨우 누울 정도입니다. 120명이 들어가는 다락방은 2층집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이쪽에서 보면 2층 집이고 저기서 보면 1층이고, 아주 부잣집. 거기서 120명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기도회하게 할 만큼 이 집이 큰손인 집입니다. 그러니 이 마가요한이 얼마나 귀하게 자랐을까요. 그런데 얘가 고생도 한 번도 안 하고 그냥 자랐으니까 너무 갑갑하거든요 이 두 어르신하고. 밤에 가만히 생각하니까 내일은 저 토로스 산맥을 넘어야 된다 하니까 미치겠거든요. 엄마가 챙겨준 돈 챙겨서 도망갔습니다.
그러니까 2차 선교 여행 가는데 바나바는 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뭐. 애가 어린데 아직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데리고 가자." 바울은 죽어도 안 된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자 39절,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섰습니다. 성경이 심히 다투고 피차 갈라섰다. 어느 정도 다투었을까요. 바울과 바나바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한 분이 누가입니다. 누가가 기록할 만큼 두 분이 심하게 다투고 피차 갈라섰습니다.
성도들이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사님 두 분이 싸운 것 아닙니까? 대판 싸우고 서로 간 것입니다. 여기서 상처 받고 시험 드는 사람은 없었을까요. 이 갈등 관계에서 믿음이 어린 사람들, 교회 왔는데 뭐 회의만 하면 고성 지르고 싸우고 소리 지르고 서로가 막 죽일 듯이 달려들어 막 싸우고 자기는 의롭다고 얘기하는데, 그 싸움이 그것이 오면 이제 믿음이 막 연약하고 심장이 약하고 누가 소리지르면 깜짝깜짝 놀라고 이런 분들이 거기에서 시험 들지 않았을까요. 시험 듭니다. 바울과 바나바 무조건 잘못한 것입니다. 이건 특히 바울. 바나바한테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자기를 데려다 준 바나바한테.
우리의 혈기가 혹은 우리의 지식이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한다니까요. 내가 혈기 한번 부리고 싶어도, 한번 꾸짖고 싶어도, 내가 너무 잘 알아서 가르치고 싶어도, 이것이 과연 덕스러운가, 지금 내가 하는 행위가 공동체 덕을 세우고 사랑을 세우는 것인가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묵상하고 한 번 더 곱씹어보고 한 번 더 침을 꿀떡 삼키고 그래야 됩니다.
5-5. 바울의 결단
음식에 대한 바울 자신의 결단입니다. 13절,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이것이 결론입니다. 나는 안 먹겠다. 나는 보신탕 안 먹겠다. 나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 안 먹겠다. 한 영혼을 실족하게 한다면 아예 영원히 안 먹겠다. 먹어도 되나 안 먹겠다.
그래서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것이 목회적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 우상의 제물로 막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가만히 보니까 연약한 자, 그 연약한 자를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것입니다. 지식이 있고 열정적이고 강한 사람이 여기에 맞춰주고 여기에 너그러이 대해 주라 그 말입니다. 꼭 기억하시고,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풀어 봤다는 것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 문제가 되려면 얼마든지 문제가 될 수 있고, 교회 안에 이런 갈등이 커져서 교회가 갈라지고 상처가 되고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바울은 이 문제를 "만약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 결단한 이 결단 우리의 것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 공동체 덕을 세우도록 도우시고, 믿음이 연약하고 어린 자를 위해서 내가 가진 권리를 내려놓고 포기하는 믿음도 은혜도 능력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교회를 위해서 항상 섬기고 기도하는 자인데, 하나님 우리 교회가 이 제단이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제단인지 주께서 함께 머물러 계신 제단인지 매일같이 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탐욕이 우리 욕심이 우리의 잘못된 언행이 하나님을 실망시켜서 하나님이 이 안을 떠나는 일 없도록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을 지배하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잘못 살아서, 내가 곧 성전이라고 했는데 내 성전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야 되는데, 거룩한 하나님과 성령께서 떠나지 않도록 주여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주여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도우시고 죄에서 떠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도록 도와주옵소서. 우상을 좇아서 우상처럼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을 잘 섬겨서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고 본받는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