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특강 8 - 우상숭배 (고전10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특강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제목이 우상숭배인데, 오늘 내용은 우상숭배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우상숭배라고 하면 신상이 하나 있고 그 신상 앞에서 절을 하거나 기타의 행위를 하는 것만을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어떤 형태, 또 어떤 다양한 식의 우상숭배가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리가 이전까지 다루었던 내용들을 되짚어보면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분열도 있었고, 음행도 있었고, 교회 안의 문제를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 법정에서 송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결혼의 문제도 있었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문제들, 이런 엄청나게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해결책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는 각자가 자기 모양의 자기 형식대로 자기 방식대로 해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에는, 하나님의 방식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정답이 있고 말씀 안에 정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고, 그 해결책이 예수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나를 본받기 바랍니다"라고 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복음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목적은, 핵심은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방향이, 이 성도들의 방향이 복음이 되어야 함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우상숭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고린도전서를 쭉 살펴보면 교회 문제만 계속 지적하는 게 아니고 중간중간 가르쳐야 할 것, 꼭 필요한 것들도 계속 하나하나씩 넣어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 또 그다음 시간이 되면 성만찬의 문제, 은사에 대한 문제, 고린도 교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또 다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상숭배 문제를 다루는데, 바울이 아주 탁월하고 특별한 예를 가지고 옵니다. 과거의 예를, 과거 공동체의 예를 가지고 와서 오늘의 교회에 적용을 시킵니다.
1. 출애굽 공동체와 교회
출애굽 공동체가 갑자기 왜 나올까요? 10장에는 출애굽 공동체가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잘 나가다가 9장까지 잘 나가다가 10장에 와서는 출애굽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출애굽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헬라어로 원래 원어적인 의미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입니다. 부르다, 부르심을 받은 무리들이라는 뜻이지요. 여기서 에크(ἐκ)라는 접두어가 중요한데, 분리시키다라는 뜻입니다. 분리시키다, 끊어내다.
출애굽 공동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에서부터 분리시켰습니까?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분리시키셨습니다. 그 이집트는 죄악 천지 아닙니까? 죄가 관영하고 사람들이 정말 그 안에서 악한 일을 행하고 살아가는 이 죄악된 공동체, 그 자리에서 분리하셨습니다. 분리해서 어디로?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목적지로 가는 여정 가운데 반드시 거쳐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광야입니다. 단순합니다. 죄에서 분리시켜서 광야에서 훈련시키고 깨끗하게 만들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출애굽 공동체 곧 교회입니다.
그러면 교회라는 공간은 주로 어디에 있어야 됩니까? 출애굽 공동체가 40년 동안 머문 곳이 광야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정체성은 광야인 것입니다. 광야 교회. 그리고 가나안 땅은 우리가 들어가야 할 천국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이 출애굽 공동체가 교회의 원형입니다. 이제 그것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1. 은혜 입은 공동체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고전 10:1) 우리 조상들, 유대인들 조상들이지요.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고전 10:1) 구름 아래, 여기 구름 아래가 무엇입니까? 구름기둥입니다. 또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 이 바다가 무엇입니까? 홍해입니다. 구름기둥과 홍해는 이스라엘 출애굽 공동체에게 한마디로 말하면 은혜입니다. 사막을 가는데 구름이 기둥처럼 해서 해를 가려줍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바다가 앞에 놓여있고 뒤에 이집트 군대가 따라오는데 홍해 바다가 갈라졌습니다. 동풍이 불었습니다. 바다 바닥을 다 말렸습니다. 마른 땅같이 건넜습니다. 은혜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입니다. 구름과 바다는 은혜를 말하지요. 그래서 출애굽 교회 공동체는 은혜 입은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뒤에 또 나오지요.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 은혜의 체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고전 10:3) 성도들이 다 같은 신령한 음식, 무엇을 먹었습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지요.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며"(고전 10:4) 음료가 무엇입니까? 반석에서부터 나오는 물입니다. 그런데 그 반석을 무엇이라고 표현했습니까?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결국 지금 바울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너희 조상들 출애굽 공동체, 그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이 그들을 죄에서 끊어내서 분리시켜서 공동체로 만들어서 광야에서 교회 체험을 하게 했는데, 그 교회 생활 하는 것 자체가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나온 옷이 없지 않습니까? 신고 나온 신발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옷이 해어지지 않고 신발도 뜯어지지 않고 그냥 그렇게 40년을 다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에서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고, 반석에서 주시는 물을 마셨고, 그런데 그 자체가 결국은 나중에 신약 시대 우리가 와서 보니 결국은 그분이 그리스도셨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다 은혜 입은 공동체 아닙니까? 그런데 은혜 입은 공동체에 죄가 없을까요? 아무리 교회 공동체가 은혜를 입었다 해도 거기에 죄가 없을까요? 당연히 죄가 있지요.
1-2. 인정받지 못한 다수
지금 고린도 교회에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입니까? 너희들도 역시 은혜 입은 공동체다, 너희들도 역시 은혜 입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역시 다 은혜 입은 공동체고 백성들인데 너희들 안에 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하고 싶은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고전 10:5) 여기 기뻐하다라는 뜻이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유도케오(εὐδοκέω), 헬라어 유도케오라는 단어인데, 이것이 인정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은 너희 중에 다수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 중에 다수를, 출애굽 공동체 성도들 중에 다수를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인정받지 못했습니까? 죄 때문에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공동체에 속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인정받느냐?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죄 짓고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멸망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5-6) 본보기라는 말이지요. 이것이 너희에게 본보기가 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지금 들려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것이, 반면교사가 되는 것이 출애굽 교회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는 교회가 어디가 되어야 됩니까? 바울이 지금 이야기하는 고린도 교회, 또 출애굽 교회가 우리에게는 반면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 교회 성도들이 왜 망했는지를 보고, 그 성도들이 왜 멸망당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사실 출애굽 교회는 얼마나 대단한 은혜입니까? 아침에 눈 뜨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립니다. 외출하기가 느긋합니다. 물 없고 목마르다 그러면 모세 할아버지가 한번 딱 말씀하면 반석에서 물이 콸콸 나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우리를 가려줍니다. 은혜 아닙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데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각자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2박 3일 새도 끝이 없을 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참 놀랍습니다. 제가 심방 가서 이야기 듣다 보면 제가 하는 말보다 듣고 오는 말이 훨씬 많습니다. 전부 다 자기 간증하신다고요. 그런데 그런 은혜가 굉장한데, 그 은혜가 엄청나게 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2. 멸망의 네 가지 이유
그런데 그 죄의 종류를 지금 네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2-1. 우상숭배
그들이 멸망당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7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10:7) 첫 번째, 그들이 멸망당한 이유, 그 공동체에 죄가 들어온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지금 그들이 먹고 마시며 뛰논다고 했는데, 무엇이 생각납니까?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 사건이 생각나야 됩니다. 출애굽기 32장 3절과 4절을 보면,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3-4)
이 사건, 우리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아론에게 막 야단을 칩니다. 난리를 칩니다. 아론이 금붙이 다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붙이 가지고 와서 만든 것이 송아지 형상이었습니다.
이 송아지를 어디에서 본 것입니까? 이집트에서 본 것이지요. 그래서 출애굽해서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 전에, 즉 내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전에, 내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하기 전에 했던 경험들, 그쪽으로 한 발짝만 가버리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송아지 형상 만든 것, 이 사람들이 본 것이 그것이 다였으니까, 지금까지 이집트에서 살면서 430년 동안 대대손손이 보고 그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고 예배한 것이 그것이 다였으니까, 위기 상황이 오니까 결정적인 상황이 오니까 그쪽으로 휙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것이 별것입니까? 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사마리아 성의 교회가 세워지고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는데, 거기에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시몬이 베드로가 성령의 역사를 행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가서 무엇을 부탁합니까? 당신의 능력을 내가 돈을 많이 드릴 테니 나에게도 달라고 합니다. 돈을 줘서 능력을 사려고 합니다. 시몬도 지금은 성도입니다. 사마리아 교회의 성도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자기가 옛날에 했던 짓거리가, 돈으로 무엇을 주고 사고 팔고 하는 것이 그의 원래 행동이고 그의 짓거리였으니까, 그것이 그의 우상이었던 것입니다. 금송아지가 이 사람의 우상이고, 과거에 그렇게 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습관을 끊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이 이야기를 왜 하겠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처해 있는 위치가 이방인 공동체입니다. 고린도라는 지역이 얼마나 우상이 관영하고 죄가 많은 곳입니까? 나가면 전부 다 우상 천지인데, 나가면 전부 다 우상이고 전부 다 신전인데, 그 신전에서 굿하는 것 보고 그 신전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거기 성도들이 앉아 있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너희는 과거에 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그 행실들, 그것이 우상이 되어서 너희도 자칫 잘못하면 너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우상숭배의 죄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습관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습관은 아주 잘 잡아내고 끊어내야 합니다. 그런 것이 보이려고 할 때마다, 그런 것이 나타나려고 할 때마다, 말의 습관, 행동의 습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끊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우상이 아닙니다.
또 6절을 보십시오. 출애굽기 32장 6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6) 번제와 화목제는 무엇입니까? 누구에게 드리는 제사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지금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이것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내적으로 혼합주의라고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뒤섞여 가지고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우상숭배를 하려면 그냥 깔끔하게 우상숭배를 하든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신전에서 뛰어노는 방식으로 하든가,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려면 제대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든가 해야 하는데, 금송아지 앞에 놔두고 거기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혼합주의가, 지금 고린도 교회가 그런 형국입니다. 교회 안에 우상이 들어와 있고, 교회 안에 세상의 문화가 들어와 있고, 교회 안에 음란이 들어와 있고, 교회 안에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한 문제가 교인들을 시험에 들게 만들고 있고, 이런 것들이 혼합주의입니다. 이것을 끊어내라,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한국 이 땅의 불교가 순수한 불교인 것 같습니까? 이 땅의 불교는 순수 불교가 아닙니다. 대승불교도 아니고 소승불교도 아니고 순수 불교가 아니고, 이 땅의 불교는 기복신앙과 결합된 불교입니다. 이 땅의 불교가 그렇다면, 이 땅의 기독교는 순수한 기독교입니까? 순수한 우리가 크리스천이라고 정말 자부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기복주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안에 봉사 열심히 하고 헌금 열심히 하고 많이 드리면 복 받는다는 기복 사상이 우리 안에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그것이 우리에게 쓴 뿌리가 되었고 그것이 우리 안에 가라지가 되어서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잘못 뿌려놓은, 누군가가 잘못 던져놓은 기복주의의 쓴 뿌리가 우리 안에 계속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끊임없이 끊어내지 않으면, 끊임없이 파내지 않으면, 교회도 노력하고 성도도 노력하고, 그것을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매한 것이 얼마나 헷갈리는지 아십니까? 지금 이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나중에 여로보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질 때,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만들고 "이 금송아지가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출애굽시킨 하나님이다" 그리고 거기서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았지요, 레위인이 아닌 사람을. 그리고 절기를 애매하게 만들었지요, 날짜만 조금 바꿨지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혼합주의입니다. 그 혼합주의가 북이스라엘 끝까지 갔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그래서 우리가 자녀들에게도 예수 믿으려면 제대로 믿는 것 보여줘야 되고, 끊어낼 것은 확실하게 끊어줘야 합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하면 안 됩니다. 지금 여기서 우상숭배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2. 음행
그다음, 그들이 멸망당한 두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8절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고전 10:8) 지금 계속 출애굽 교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고전 10:8)
음행, 남녀죄 아닙니까? 지금 우상숭배 이야기했고 그다음 음행 이야기하는데, 이미 음행에 대해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한번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출애굽 교회를 끌고 와서 음행의 죄를 한 번 더 짚어줍니다.
보십시오. 음행의 죄로 23,000명이 죽었던 예를 민수기 25장에서 가지고 왔는데요.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민 25:1)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민 25:1) '머물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는 여정에서 머무를 때는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없습니다. 언제? 구름기둥이 멈출 때입니다. 그러면 가고 싶어도 무조건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머물고 싶어도 무조건 가야 합니다. 구름기둥이 신호입니다. 멈추고 가고 하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지금 싯딤에 머물렀습니다. 여기에는 구름기둥의 신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호가 없습니다. 멈추어라, 가라, 이런 신호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멈췄습니다. 멈췄더니 어떻게 됩니까? 여기서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누가 생각나십니까? 다윗이 생각나야 합니다. 다윗이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다윗은 요압을 내보내고 자기는 그냥 머물러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다 나갔는데, 자기는 백성들 내보내고 자기는 그냥 왕궁 옥상을 거닐고 실컷 낮잠 자고 해 거름에 그냥 올라가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혹이 오고 음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음행의 죄가, 해야 할 것 하지 않고 머무를 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음행 그 자체가 큰 죄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시작되는 방식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음행이라는 우상숭배, 이 방식이 시작되는 그 첫 시작이,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것, 머무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머물러야 할 자리는 하나님 말씀과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멈추고, 주께서 우리에게 시키시고 맡겨주신 일을 멈추고, 구름기둥이 가라고 한 그 방향을 따르지 않고, 내 임의로 그냥 멈춰버리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 눈에 다른 것이 들어오면 위험합니다. 내 눈에 다른 것이 들어오면 그 눈을 따라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음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성도들이여, 멈추지 말라. 멈추라고 할 때 멈추고 가라고 할 때 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은 쉬운 것 같은데, 쉽습니까? 주식 투자로 사람들이 왜 망합니까? 못 멈추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계속 가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으로 왜 망합니까? 못 멈추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죄 짓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가라 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춰야 되는데, 그 말씀에 민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의 죄만 짓습니까? 그다음 보십시오.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함에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민 25:2)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멈추었지요? 음행에 범했지요? 그 여자들과 관계가 생긴 것입니다. 그냥 하룻밤의 일시적인 성관계로 끝난 것이 아니고 서로 간의 관계가 생긴 것입니다. 친밀함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 머문 시간이 얼마나, 하루 이틀이 아닌 것입니다. 머물러 있어버린 것입니다. 그냥 방향을 잃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되는데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잘 오다가 싯딤에서 방향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가는 나그네들 아닙니까? 천국을 향해서 가는 나그네고, 목적지가 분명하고, 복음이 우리의 목표가 되고 복음이 우리의 최고의 목적인데, 그것을 가다가 그냥 멈춰버린 것입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죄 짓고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생기니까 "우리 신전에 한번 놀러 가실래요?" 갔더니 거기서 그냥 "여기 들어오면 다 하는 것이니까, 다른 것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허리만 한번 숙여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냥 술 마시고 술 취한 김에 그냥 허리 한번 숙이고,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고 그렇게 산 것입니다. 그냥 거기서 "그것이 무엇이 죄가 돼? 다 그러는데,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 믿음 좋아 보이는 저 사람, 또 저 사람, 저 집사님, 저 권사님, 저 장로님 다 그러고 사는데 무엇이 문제예요? 목사님도 저러는데."
그래서 방향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자기가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헌신하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싯딤에서 머무른 것은 길을 잃은 것 아닙니까? 이때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지도자가 강하게 책망하고 끌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한 것이지요.
그래서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이때 어디까지 막장이냐 하면, 6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민 25:6)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방 여인 데리고 왔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민 25:7-8)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제 막 음행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막장입니다. 그래서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두 사람을 한 창에 꿰어서 죽인 것이지요. 이것이 충격요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멈춘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상숭배 두 가지 유형을 말씀하셨습니다.
2-3. 시험과 의심
그다음 세 번째입니다. 9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 문제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 또 나옵니다.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고전 10:9)
여기 '시험하다'는 페이라조(πειράζω)라는 헬라어 동사인데, 페이라조는 의심하다라는 뜻입니다. 믿지 못하고 의심하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무엇이 생각납니까? 불뱀 사건이 생각나지요. 민수기 21장의 불뱀 사건입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이 의심이라는 말을 전제로 하고 이 본문을 보셔야 합니다. 민수기 21장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민 21:4)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때가 출애굽한 지 40년째 되는 해입니다. 지금 딱 한 해만 지나면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마지막 해입니다, 거의 마지막 해입니다. 그런데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했습니다. 길 때문에. 자꾸 우회해서 돌리니까, 자꾸 빙빙이 돌리니까 길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는 말은 길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의심이 들까요? "우리를 영영이 가나안 땅에 인도하지 않는 걸까? 우리를 이 광야에서 다 죽게 만드는 걸까?" 의심이 막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시험하다'라고 표현했고, '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우상숭배라는 뜻입니다.
우리 안에 의심이 생기면 우리 안에는 어떤 생각이 날까요? 마음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는데, 그냥 우리 중에 두 친구가 있다고 생각합시다. 나에게 한 사람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우리 생각에는 이 한 사람은 버리고 또 다른 사람을 신뢰하겠지요. 둘 중에 "나 이 사람 못 믿겠어." 그러면 저 사람을 신뢰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을 따라가다가 광야길 가다가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 생기면 다른 대안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대안을. 광야길 걸어가다가 의심이 생기면 다른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대안이, 하나님 아닌 다른 대안. "아 이거 하나님 믿고 있다가 망하겠는데, 하나님 따라가다가 완전 쫄딱 망하겠네." 그러면 다른 대안이 생각나지요? 다른 대안을 하고 싶고 찾고 싶고 붙들고 싶고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우상 아닙니까?
그래서 백성이 거기서 나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함에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 21:5-6) 여기 이제 불뱀 사건이 나오지요.
결국 백성들이 멸망당하는 이유는 의심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심으로 그냥 끝나지 않고 의심하면서 마음속에 또 다른 대안을 만들고, 그것이 우상숭배로 넘어가니까 "하나님 믿고 있다가 큰일 나겠다. 결국 돈이 최고구나. 결국은 사람 붙잡아야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우상숭배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어떤 의심이 있습니까? 지금 여기 고린도 교회 성도들 믿음 생활하는데 이 길이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이 길이 답답하기도 하고 만만치 않고 이 길이 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 걸어가다가, 그 길 달려가다가 보니까, 결국은 그 길 걸어가다가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지요. 결국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에게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 7절에서 9절을 보니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대안을 주시지요. 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민 21:9)
이 불뱀과 놋뱀 사건을 보면 우리는 여러 가지를 지금 생각을 해야 되는데, 사람들은 그때 어떤 것을 느꼈을까요? 놋뱀을 만들어서 모세가 장대 위에 높이 매달았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신기하게 다 살았습니다. 뱀에게 물려서 독이 막 퍼져가는데 숨이 넘어가는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사람들 마음속에는 어떤 인식이 들어오겠습니까? "놋뱀이 신통력이 있구나."
거기서 진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야 되는데 "이 놋뱀이 신통력이 있구나." 그래서 그때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놋뱀을 만드는 것입니다. 손재주 있는 사람이 놋쇠로 뱀을 만들어 가지고 큰 것은 비싸게 팔고, 주머니에 넣어 다닐 수 있는 조그만한 것, 놋뱀 목걸이로 만들어 가지고 목에 매달고 있는 것, 이런 것을 가지고 놋쇠로 뱀 모양을 만들어 가지고 막 파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이것 사서 "아픈 사람, 특히 이것은 뱀에게 물린 사람에게 특효약이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놋뱀을 매달아 가지고 자기 집에 만들어 둬라." 이제 이런 신화가 사람들에게 막 퍼져나갈 것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웃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웃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그런 분들 많았습니다. 옛날에 저도 어릴 때 많이 봤습니다. 어느 기도원에 가서 성수라고 그 물 받아가지고 갖고 오는 것. 여름에 더워 죽겠는데 3박 4일씩 걸려가지고, 옛날에 자가용도 없는데 버스 타고 그것 갖고 오면 물이 다 상해 있는데, 그 물 먹으면 어떻게 돼요? 배 아파가지고 난리인데, 배 아파가지고 설사하면 "몸속에서 나쁜 것 다 나온다"고 막 그러는데, 그 물이 성수입니까? 아니면 그들의 믿음이 그의 병을 고친 것입니까?
믿음이 고친 것이고, 그 믿음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그를 불쌍히 여겨서 그에게 병 고침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기도원에서 나오는 물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물통도 기도원에서 파는 물통만 효력이 있다고 그 물통 사 갖고 오고, 물도 비싸게 주고 사 갖고 오고, 정신 나간 사람들입니다 전부 다. 그런데 또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물 먹고 나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믿음을 보시고 치료해 주신 것이지요.
이것이 언제 깨집니까? 놋뱀이 히스기야에게서 깨집니다. 자그마치 히스기야 때, 히스기야가 놋뱀 다 박살을 내고 "야, 이건 놋조각이야, 이건 그냥 느후스단이야, 놋조각이야" 다 부순 것입니다. 저는 히스기야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산당을 없앤 것도 우상을 깬 것도 아니고 놋뱀 부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놋뱀은 그야말로 신화입니다. 놋뱀이 곧 모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권위입니까? 대단한 권위 아닙니까? 하나님 다음입니다. 출애굽의 영도자, 모세오경을 기록한 사람. 모세의 시신을 아직까지 발견도 못했습니다. 모세의 무덤도 모릅니다. 엘리야처럼 승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모세가 만들어서 매달아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다고 여겨지는 놋뱀, 집집마다 있는 놋뱀을 다 박살을 낸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대단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가 엄청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불필요한 전통들, 이런 우상들이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이것 다 박살내야 합니다. 전부 다. 지금 그런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보라는 것은 안 보고 안 봐도 될 것은 봅니다.
2-4. 원망
그들이 멸망당한 네 번째 이유가 무엇입니까? 10절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10)
이 '원망하다'는 헬라어 공귀조(γογγύζω)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공귀조는 의태어입니다. 의태어가 무엇입니까? 토끼가 깡충깡충, 이것이 의태어이지요. 아기가 엄마를 어떻게 따라다닙니까? 졸졸. 그런 것이 의태어입니다. 공귀조는 원망하는 사람의 입술을 보고, 입술이 삐죽이 나와서 원망하는 사람의 입술을 보고 그 당시 그리스 사람들이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공귀조. 이렇게 입술 한번 내밀어 보십시오. 공귀조. 입이 이렇게 튀어나옵니다. 예쁜 입술이 아닙니다. 이것이 입술이 삐죽 나와가지고 입이 튀어나와 가지고 공귀조 하는 것입니다. 의태어, 원망하는 사람의 입술을 빗대어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원망이라는 말은 출애굽 공동체의 원망은 민수기 13장입니다. 민수기 13장 사건, 14장 사건 잘 아시지요? 12명의 정탐꾼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서 각 지파별로 1명씩 12명의 정탐꾼을 모으셨지요. 그리고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오라 하셨지요.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이 어떻게 했습니까?
여기 나옵니다. 31절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민 13:31) 여기까지야 그럴 수 있습니다. 자기들 의견이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선을 넘었습니다. 32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민 13:32)
여기서 이들이 정말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악평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땅은 누가 주신 땅입니까? 하나님 주신 땅이지요. 우리가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내 딴에는 맛있게 만들어 가지고 공을 들이고 좋은 재료 써 가지고 열심히 만들어서 누구에겐가 줬습니다. "이거 드시라고."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는 악평입니다. "사람 먹지도 못할 것을 줬다고. 난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딴 거 줬다고." 그러면 우리 마음이 어떻습니까? 크게 섭섭하지요. 크게 상처가 되지요. 그리고 그 사람과는 다시는 말도 하기 싫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려고 준비한 땅입니다, 가나안 땅은. 그리고 그 땅을 주시려고 하나님은 굉장히 오랫동안 공을 들이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 땅에서, 그 땅으로 불러서 거기서 훈련시켰고, 그 땅에서 가나안 땅에서 이집트로 보내서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이제는 그 땅으로 인도해 들이는데, 아니 이것들이 그 땅을 가서 살펴보고 돌아보더니 그 땅을 악평하는 것입니다. 악평하는 것입니다.
악평하다는 말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경험들 있지 않습니까? 나는 정말 좋아서, 나는 정말 괜찮아서 권했는데 상대방이 그 이야기를 가지고 악평을 하고 하면 너무너무 화가 나는 것이지요.
하나님 입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우리 가정, 내 입으로 맨날 악평합니다. "이놈의 남편 왜 이렇게 오래 사냐고" 막 "이놈의 남편 왜 이렇게 많이 먹냐고 그것도 먹냐고" 말하면 괜찮은데 그 앞에 접두어를 붙여가지고 더 세게 이야기하고, "먹는데 왜 이렇게 흘리냐고" 악평하고 막 그렇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람을 악평하고, 내 자식 악평하고 미워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일터 악평하고. 그 악평할 시간에 기도해야지요. 변화시켜 달라고 바꿔 달라고 기도하고 마음을 쓰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 많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면 못 가는 나라가 없습니다. 여권의 파워가, 제가 얼마 전에 우리 튀르키예에서 오신 선교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튀르키예로 유학 오는 것은 굉장히 경쟁력이 있다. 왜냐하면 한 달에 학비 포함 생활비가 50만 원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경제적인 경쟁력이 있고, 두 번째는 튀르키예에서 공부하고 유럽으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왜?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본국 학생들은 유럽에서 받아주질 않는다. 같은 EU 연합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받아주질 않는다. 유럽연합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직업이 없으니까."
그러면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데, 우리는 우리 입으로 이 나라를 얼마나 비난하고 어쩌고저쩌고, 참담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우리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들,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 좀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좀 있고, 좋은 미담들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그런데 그것을 악평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인데, 우리 조상들이 불과 한 세대 전의 어른들이 피땀 흘려 지킨 그야말로 목숨 걸고 지킨 죽어가며 지킨 이 나라 대한민국인데, 그렇게 악평해서 되겠습니까? 사랑하고 축복하고 격려하고 고쳐가고 그렇게 살아가야지요.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악평하니까 하나님이 "악평해? 그럼 들어오지 마" 그러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첫 번째 문제이지요. 또 거기서 33절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3) 스스로 보기에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메뚜기는 어떤 존재입니까? 메뚜기가 풀숲에서 풀 먹고 있으면 사람이 가면 도망갑니다. 이렇게 뛰어서 날아갑니다. 또 가면 또 날아가고. 자기 비하입니다. 자기비하.
하나님은 사람을, 우리를 메뚜기로 창조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하셨지, 우리를 메뚜기로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출애굽시킨 것이 메뚜기들을 출애굽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메뚜기라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화가 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고 자기를 제대로 모르는 것. 그러면 그 사이에 우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악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나를 감히 내가 나를 저주하는 것도 하나님을 욕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인데, 나는 내가 나를 메뚜기라고 스스로 자기 비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어떻게 합니까? "그래 네가 메뚜기야. 그럼 너 40년 동안 뛰어다녀."
지금 이 이야기는 지금 여기 민수기 13장과 14장의 이야기는 출애굽하고 나서 1년 미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40년 동안 광야 빙빙이 돈 이유는 이들의 메뚜기 정체성 때문에 메뚜기처럼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계속해서 다니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 입에 뱉은 말 그대로 책임지라고.
그래서 우리가 말 조심해야 되고, 그 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생각을 항상, 자기 정체성을 잘 갖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메뚜기인가? 난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메뚜기가 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그런 이야기를 바울이 했습니다. 너희 조상들이 그랬다고.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아직까지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입니다. 그러면 로마 당국에서 체포하러 나오면 잡혀서 죽을 수 있습니다. 똑같이 과거 그들의 조상들처럼 자기들도 메뚜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 가고 저기 가고 도망가는데, 그런 정체성 가지지 마라.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다.
너희에게 주신 이 교회 사랑하고, 비록 문제 많은 교회지만, 비록 썩어빠진 교회지만, 비록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는 교회지만 악평하지 마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 고쳐보자.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회복시켜 달라고 했지요. 모세가 기도하고 회복시켜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다 죽여버리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그런데 하나님이 용서는 하시지만 죄에 대한 책임은 묻는 분입니다. 40일 정탐하고 와서 그랬으니까 하루를 1년으로 쳐서 40년 동안 광야 생활해라 하셨습니다. 34절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 14:34)
이 네 가지 어떤 사람들, 우상숭배 유형을 설명하셨습니다.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나는 다 괜찮아, 나는 다 문제없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우상숭배가 나에게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과거에 내 습관이 들어올 수도 있고, 혼합주의가 들어올 수도 있고, 가다가 길을 멈추어 가지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러다가 음행의 죄가 들어오고 우상숭배로 넘어갈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고, 의심할 수도 있고, 불신할 수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조심하라 했습니다. "난 이제 이 훈련 다 받았어, 이제 괜찮아"라고 하는 순간 항상 조심하라.
3. 바울이 정의하는 우상숭배
14절 바울이 정의하는 우상숭배 범주를 보십시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전 10:14) 그러면 여기서 바울이 '그런즉'이라고 그랬으니까 이것이 결론입니다. 앞에 이야기 다 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야기하는 우상은 어디까지입니까? 형상을 만든 것도 우상입니다.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도 우상이지요. 혼합주의도 우상이고, 멈추는 것도, 거기서 들어온 것 다 우상이지요. 의심하는 것, 그래서 대안 찾는 것, 불평하는 것, 공귀조 하는 것, 이것 다 우상인 것입니다. 이런 식의 모든 것을 다 우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형상 만들고 거기 절하는 것뿐만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우상숭배의 범주가 얼마나 넓습니까?
3-1. 성찬과 우상제사
그다음 갑자기 성찬 이야기를 하는데요.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과거의 성만찬은 그냥 애찬이었습니다. 식사였습니다. 성경은 떡이라고 번역해서 우리는 맨날 무슨 수수팥떡 이런 것 생각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빵이지요. 큰 빵이 있는데, 그 빵 한 덩이를 서로 이렇게 떼가지고 먹으니까 한 교회 공동체는 한 빵을 먹는 공동체입니다. 하나의 빵.
우리 성금요일에 애찬 했습니다. 제가 빵 열심히 뜯어서 막 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너무 많이 주셔가지고 "예수님 몸을 이렇게 씹어 먹어도 되나?" 그런데 이 포도즙에는 너무 적게 찍어가지고 목 막혀 죽을 뻔했다고 하시는 분도 계신데, 뭐 드시면 어떻습니까? 많이 드시면 되지요. 비율을 좀 앞으로는 제가 잘 해서 드리면 되는데, 과거의 성찬은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이 또 이방 신전 제사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18절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고전 10:18-19) 18절에 제물을 먹는 자들,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 이것은 이방 신전 제사에 가서 거기 앉아가지고, 거기서 자기가 적극적으로 거기 참여해서 이방 신전 제사에 참여해서 거기서 제물을 먹는 자들입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우상의 제물을 공부할 때 나왔습니다. 적극적으로 이방 신전에 직접 참여해서 거기서 제물을 얻어먹고 오는 사람도 있고, 거기서 나온 고기가 시중에 유통되는데 그것 먹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후자는 바울이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시중에 유통되는 고기 먹어야지요,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바울은 혹시라도 그것이 믿음 어린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적극적으로 그 신전 제사에 참여하는 나쁜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20절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가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초파일에 절밥 얻어먹으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 이야기입니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고전 10:21) 분명히 말씀하셨지요.
3-2. 남의 덕을 세우라
23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무슨 말입니까? 여기 남이란 누구입니까? 성도, 타인, 교회, 나보다 믿음이 어린 사람. "나는 이방 신전 제사에 가서 절 안 했고 그냥 거기 앉아 있기만 했고 거기서 나오는 고기 얻어먹으려고 그냥 간 것이지. 그 자유까지 너희가 나를 간섭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너는 그것이 괜찮다고 생각해서 거기 가지만, 그러나 그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특히 너는 신앙생활 수십 년 한 장로요, 권사요, 안수 집사요, 목회자 아니냐. 그러니 너는 그런 짓 하지 마라. 남의 덕을 위해서 일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일해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식이 아니고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을. 27절 보십시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 10:27) 불신자가 우리를 청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것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거 어디에서 사 왔습니까? 이것 혹시 우상에게 바친 제물입니까?" 그런 것 묻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고전 10:28) 먼저 말했습니다. 그것이 내 귀에 들렸습니다. 그러면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전 10:28) "목사님, 이거 신전에서 바쳐놓은 제물인데, 목사님 뭐 괜찮죠? 드시겠어요?" 이제 이러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이거 고기 드시는데 포도주 한 잔은 괜찮아요? 드세요?" 먹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먹지 말라고. "목사님이 회 드실 때는 이건 뭐라 그래요? 그거 소독이라고 괜찮아요?" 먹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것 먹지 말라고요. 그런 이야기이지요.
그다음 중요한 말이 나오지요.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고전 10:29) 이 말이 중요합니다. 여기 이 양심이 무엇입니까? 신앙양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양심은 내 것이 아닙니다. 누구 것입니까? 남의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가진 자유는 내 것이 아니고 누구 것입니까? 남의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오래될수록, 신앙생활 오래 할수록, 그래서 우리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 매여 있을 때 진짜 자유입니다. 이것이 너무 신비하지요. 자유롭지 않은데 자유롭습니다. 먹고 싶은데 못 먹는데 그것이 자유롭습니다. 신기합니다. 양심이 내 것이 아니라 하고 남의 것이라 했습니다.
4.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래서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모든 일을 할 때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내 영광도 아니고 타인의 영광도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을 항상 따져봐야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고전 10:32) 무엇이 생략됐습니까? 복음의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복음의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자기 성질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성질 난다고 자기 성질대로 해버리고, 그냥 하고 싶은 말 다 해버리고, 하고 싶은 행동 다 해버리고, 하고 싶은 표정 다 지어버리고, 그러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예수 믿는 사람이 뭐 저래? 저 사람 어느 교회 직분자라며? 예수 믿는 사람 왜 저래?"
그것은 가정에서도 아이들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까지 믿음이 어리니까, 아직까지 하나님을 못 만난 아이들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성질 다 내버리면 "저러고 교회 가서 기도하고 있네. 수요일날 성경 공부 실컷 하고 와가지고 저러고 목사님하네" 이런 이야기 듣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초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5장 5절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노니"(왕상 5:5)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출사표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삶은,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영광, 여호와의 영광, 복음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이것이 10장의 내용입니다.
우상 이야기했고, 그리고 10장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이 말씀들 잘 기억하시고, 우리에게는 어떤 우상이 들어올 수 있는지를 먼저 잘 살피고, 그것을 미연에 잘 방지하시고, 또 기도생활도 성실하게,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상숭배자들은 별다른 자들이 아니라 과거의 습관을 끊어내지 못한 자라고 하셨고, 혼합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주여, 우리를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길 가다가 멈추어 방향을 잃어버리면 음행하고 우상숭배하기 쉬사오니, 주여 우리가 가던 길 계속 가게 하시고 믿음의 길에서 복음을 향한 목적을 잃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의심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의심의 싹이 피고 그 자리에 하나님 아닌 다른 대안을 넣어두지 않도록 주여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주여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여러 가지 것들, 수많은 선물들을 악평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정체성을 잘 지키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는 성도들입니다. 교회 직분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영광, 그 어떤 것보다 가장 가치 있사오니 그 영광 위하여 일하고 오늘도 내일도 믿음으로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무궁하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역사, 교통, 위로하여 주심이,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않고 어떤 일에든지 모든 일을 할 때 내 양심이 내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든 주의 백성들 머리 위에, 가정 위에, 일터 위에, 우리가 살아나가는 삶의 여정, 하나님의 선물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