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 풍성한 연보 / 전체녹취

고린도후서 특강 8 - 풍성한 연보 (고후 8-9장)

본문: 고린도후서 8장 1-2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오늘은 고린도후서 공부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풍성한 연보"입니다. 옛날 우리 어른 세대들이 신앙생활하실 때는 "연보 드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연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고 헌금이라는 말을 쓰지만, 옛날에는 연보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연보라는 말이 상당히 정겨운데, 오늘은 이 풍성한 연보에 대해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7장의 주제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었습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아주 중요한 것,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회개입니다. 눈물이 있어야 되고, 그 눈물은 그냥 눈물로 그치면 안 되고 반드시 삶의 돌이킴으로, 열매로 나타나야 됩니다. 결국 그것은 영혼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어떻게 하면 영혼 구원을 행할까, 우리가 영혼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근심하고 고민해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의 근심이 있는데 세상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세상 근심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심이 곧 물질로 인한 근심 아니겠습니까? 물질로 인한 근심은 결국 자기를 찌른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찌르는 것은 결국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근심 말고, 물질로 인한 근심은 접어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해보자, 믿음의 사람들은 반드시 그 길을 걸어가 보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오늘 8장과 9장을 다루는데, 이제 우리가 물질과 영혼 구원 사이에서 무엇을 위해서 근심해야 되느냐, 즉 영혼 구원을 위해서 근심하자 하고 그다음 풍성한 연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논리적으로 연관이 좀 되지 않습니까? 풍성한 연보는 결국 내가 물질을 따라 살지 않겠습니다라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나의 관심과 나의 근심은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라는 것을 삶으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8장과 9장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의 실천편으로 이제 너희가 풍성한 연보를 한번 드려 보자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요즘 우리 현대 교회의 분위기는, 우리 교회를 포함해서 모든 교회의 분위기는, 헌금을 교회에서 공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별로 덕스럽지 않다, 별로 은혜롭지 않다고 금기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대놓고 헌금하라고 얘기합니다. 연보를. 2천 년 전은 되고 지금은 안 되느냐? 그게 아니라 바울이 이렇게 강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연보 말씀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울은 텐트메이커였습니다. 전도 열심히 했고, 그는 고린도 교회에 한 푼의 짐도 지우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너희는 뭘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는 달라고 한 적이 없으나 구제를 위해서 연보는 하라고 교회들마다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게 힘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역설적으로 헌금 설교를, 연보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없는 이유가 그동안 성도들이 많이 속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좀 더 대놓고 말하면, 교회에서 쓰는 줄 알고, 진짜 하나님 사역인 줄 알고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에 상처를 받고 거기에 낙심하고, 교회가 성도들이 피땀 흘려 낸 연보를, 그 헌금을 가지고 엉뚱한 데 쓰니까 저항이 생기고 문제가 생겨서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걸 다시 복원시키려면, 다시 원위치시키려면 정직을 회복하면 됩니다. 헌금을 헌금답게 쓰면 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니까 하나님 앞에 제대로 공동체가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시는 대로 공동체 합의를 따라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데 물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힘을 모아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원리 아니겠습니까? 바울이 얘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1.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

1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바울 서신에서 마게도냐 교회라고 하면 그냥 우리 입에는 세 교회가 나와야 됩니다. 세 교회가 어느 교회입니까?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입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에게 바다를 중심으로 두고 우리가 지도에서 볼 때 오른쪽 즉 동쪽은 터키 지역입니다.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입니다. 에게 바다를 건너오면 서쪽 지역이 지금의 그리스 지역입니다. 그리스 지역의 북쪽 지역을 가리켜 마게도냐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그 북쪽의 마게도냐 지역에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가서 개척한 교회가 세 교회입니다. 바울이 그래서 마게도냐라고 말할 때는 그 세 교회를 한꺼번에 일컫는 말입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1-1. 환난 속의 기쁨

이 세 교회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2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이 교회들이 환난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넘치는 기쁨,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심한 가난이. 이 말이 되는지를 한번 보십시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즉 마게도냐 세 교회가 연보를 열심히 했습니다. 헌금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 헌금을 하게 한 동력이 무엇이냐?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째 환난의 많은 시련, 둘째 그들의 넘치는 기쁨, 셋째 극심한 가난. 말이 됩니까? 논리적으로 안 되잖아요. 말이 안 됩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을 성경에 왜 써두었습니까? 바울같이 똑똑한 사람이,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이 이 말이 안 되는 말을 쓴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 교회들이 마게도냐 지역 교회들이 환난의 시련을 겪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가 굉장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거기에서 복음 전하다가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베뢰아로 갔는데 베뢰아에서도 데살로니가에서 온 사람들 때문에 복음 전하지 못하고 밤에 배 타고 아덴으로 내려간 것 우리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기쁨이 있었습니다. 또 그런데 그들은 현실적으로는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보통 가난했던 게 아니라 극심한 가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넘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흘러넘치는 기쁨. 성도에게 있어서 흘러넘치는 기쁨이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기쁨이지요. 예수를 만난 기쁨이지요. 부활의 주님을 내가 영접한 기쁨. 내가 이 땅에서 눈 감아도 천국에서 눈 뜰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기쁨, 그런 넘치는 기쁨이 그 교회 성도들에게 있었습니다. 그 기쁨이 있으니 그다음 나누고 베풀 때 생기는 기쁨이 또 생기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기쁨이, 하나님께서 나를 건지시고 구원하셨다는 그 기쁨이 환난의 시련도 극복하게 하고, 극심한 가난도 극복하게 해서, 나누고 베푸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는 얘기입니다.

바울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받았지 않습니까? 거저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내가 거저 받았습니다. 돈 주고 산 게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은 거저 받았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일부를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기쁘다는 얘기입니다. 구원받아서 기쁘고, 받았으니 나누어 줘서 기쁘고, 그 기쁨이 극심한 가난도 극복하게 하고, 환난의 시련도 극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이게 말이 됩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이 안 되는데, 구원받은 은혜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말이 됩니다.

1-2. 한국 선교의 역사

올해 우리나라가 한국 선교 140주년입니다. 1885년 4월 2일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부산에 왔습니다. 그리고 3일 뒤 1885년 4월 5일에 부산에서 다시 배 타고 제물포항에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두 분이 그때부터 조선 선교를 시작합니다. 1885년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면 140년이 흘렀지 않습니까?

1885년 당시 이 나라의 상황이 어떻습니까? 지옥 같은 상황 아닙니까? 그냥 사람이 죽지 못해서 사는 거지요. 전 세계 열강들이 이 나라에, 이 작그마한 나라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다 달려들어 가지고 철도 부설권도 빼앗아 가고 광산 채굴권도 빼앗아 가고, 여기에서 전쟁도 일어나고 야단법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복음이 들어왔으니까 은혜를 받을 것 아닙니까?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왔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 조선 사람들이 교회를 짓습니다. 자기 집에 먹을 게 없는데 흙벽돌 지어 나르고 이어 나르면서 그것으로 예배당을 짓습니다. 교회를 짓는다고요. 환난의 시련과 극심한 가난이 있는데, 그들이 구원받은 은혜가 있으니까 그것을 가지고 나누고 베풀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전도하고 선교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최초의 선교사를 중국 산둥성에 보냅니다. 그 당시는 제주도도 선교지였으니까 제주도에도 목사님을 보내고, 극심한 가난인데, 그런데 선교도 하고 구제도 하고 예배당도 짓고 교인들도 살리고, 이것이 역사입니다.

지금 바울이 여기서 마게도냐 교회가 환난의 시련이 있고 극심한 가난이 있는데 그들이 얼마를 모았다는 얘기는 쓰지 않습니다. 액수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과부의 두 렙돈을 귀하게 보신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서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들이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환난의 시련 가운데서도, 그들은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나누고 베풀었다는 사실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지금 여기서 자랑스럽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연보

그런데 지금 이 편지는 누구에게 쓰고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리스 지역 남쪽에 아가야 지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유럽 선교를 했다 할 때 북쪽에 마게도냐 지역의 세 교회, 남쪽에 아가야 지역의 아테네와 고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린도 교회 편지를 쓰면서 북쪽 교회 얘기를 하면서 이 교회에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저 북쪽 교회는 이렇게 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래?" 지금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헌금 걷어서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입니까? 이 연보를 걷어서 예루살렘 교회가 그 당시 큰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우선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큰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세워진 첫 번째 교회 아닙니까? 모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성도들이 흩어져서 사마리아 교회가 생기고, 거기서 흩어져서 안디옥 교회가 생겼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파송받았습니다. 그들이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에서 전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따지고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교회 중에 어머니 교회입니다. 그들의 모태가 되는 교회 아닙니까?

그런데 그 교회가 지금 기근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또 예루살렘은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볼 때는 성지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 당국에서 볼 때는 그 지역은 항상 예수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요주의 지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 교회는 핍박의 대상이 됩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아 보십시오. 로마 당국에 의해서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 교회는 흉년에다가 핍박이 겹쳐서 성도들의 삶이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이것을 알고 자기가 개척한 모든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편지 쓰고 "제발 연보해라. 내가 그거 걷어다가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겠다"라고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한 푼도 모은 적이 없습니다. 자기는 천막 만들고, 그것 기워 가면서 밤새도록 잠 못 자면서 그것 해 가면서 먹고 살았지, 교인들에게 한 푼도 구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이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 일에 북쪽의 마게도냐 교회가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이것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지금 고린도 교회에 얘기하면서 "너희는 어떻게 할래? 지금 너희 먹고 살 만하잖아. 너희들은 항구가 두 개나 있고, 너희들은 지금 신전 창기들에게 쓸 돈은 다 가지고 있잖아. 그거 하지 말고 연보에 헌신해서 어려운 교회를 좀 돕자."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2. 연보의 정신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증언하노니" 나는 바울이지요. 바울이 증언했습니다. "그들이" 여기서 그들이 누굴까요? 마게도냐 교회입니다. 아까 바울이 1절에서 얘기했던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껏 했습니다. 연보를, 헌금을 힘껏 했습니다. 그런데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만큼인데 힘에 지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것을 강요한 게 아닙니다. 자원했다는 말입니다.

이 편지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받으면 얼마나 좀 부담이 되겠습니까? 저 교회는 이렇게 했다 하고 이렇게 얘기하니까요.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습니다. 이 은혜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는 바울을 비롯한 전도하는 일행들이지요. 사도들입니다. 그러니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이 일에 우리가 좀 참여하게 해 주세요. 우리가 연보 좀 많이 하게 해 주세요. 우리가 연보할 테니까 와서 가져가 주세요" 이렇게 구했다는 얘기입니다. 바울이 얘기하니까 진짜겠지요? 이것 믿어야 됩니다. 바울이 거짓말하겠습니까?

2-1. 먼저 자신을 드림

5절입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렇게 바랐는데 "그들이 먼저" 그랬습니다. 즉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먼저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잘 보십시오.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여러분 이것에 꼭 밑줄 쳐 놓으십시오. 이것이 헌금의 정신입니다. 이것이 진짜 은혜받은 자가 드리는 연보의 정신입니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주께 드려야 됩니다. 그다음에 물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 어디서 보셨지요? 창세기 4장 3절에서 5절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예물만 받은 게 아니라 아벨과 그의 예물을 받으셨습니다. 가인만 버린 게 아니라 가인과 그의 예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즉 헌금은, 물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선은 나를 드려야 됩니다. 나를, 내가 먼저 하나님께 드려지고 나를 드리는 그 표시로 물질을 드리는 것이지, 나는 빠지고 물질만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 물질의 정신, 그 헌금의 정신을 지금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했다는 뜻입니다. 옛날 그 옛날 아벨이, 아벨과 그의 예물을 드린 것처럼 그 옛날 그렇게 한 것처럼, 지금 이 교회 성도들도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도 주었다는 말입니다.

2-2. 드림의 바른 자세

여러분 이것이 왜 중요할까요? 우리가 헌금을 할 때, 물질을 드릴 때, 어떤 이들은 실컷 드리고 본전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드렸는데 왜 교회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나를 알아주지 않고" 그런 말 하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그것은 자신을 드린 게 아닙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그 물질은 그 드린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거든요. 자신을 완전히 드렸는데,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이 알아 주시면 되는 거지, 그다음 사람들이 알아 주고 말고 하는 것은 우리의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린 건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사람들 보라고 드렸기 때문에 섭섭함도 생기고 손해 의식도 생기고 본전 생각도 나는 것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으로 하는 봉사, 시간의 봉사들도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시간의 봉사, 몸의 봉사를 할 때도 나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고 나면 그다음 끝입니다. 그것이 끝인 거지요. 하나님께 드렸으니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제물이 됐으니까 끝난 건데, 그런데 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 하나님께 드렸는데 사람들이 알아 주고 알아 주지 않고가 뭐가 중요합니까?

그래서 이 정신이 헌금 드림의 정신입니다.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 교회들은 헌금만 드린 게 아니고 이 정신을 따라서 제대로 드렸다는 말을 바울이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발 너희도 그렇게 해라.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야. 제발 너희도 그렇게 예물을 드려다오." 그 부탁입니다.

3. 사랑의 증명

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지금 이 우리가 삶의 자리를 좀 알아야 되는데, 디도가 눈물로 쓴 편지를 가지고 갔잖아요. 디도가 좋은 소식 가지고 왔지요. "아, 해결됐습니다. 그 교회가, 고린도 교회가 바울 선생님과의 오해가 있었다는 것 다 풀고 왔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제 다시 디도를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헌금 준비하라고. 그래서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이 은혜가 무엇입니까? 연보하는 은혜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나누고 베푸는 은혜를 기도를 통해서 하겠다는 뜻입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이 은혜, 연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연보를 은혜라고 얘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거저 받았잖아요. 우리가 은혜를, 구원의 은혜를 거저 받았습니다. 그래서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나누는 것이니까 은혜를 베푸는 것이지요. 그래서 연보는 곧 은혜입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3-1. 하나님 사랑의 표현

8절입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명령이 되겠습니까? 억지로 권해서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하나님 사랑한다고 했지 않느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러면 그것을 증명해 보라.

요한일서 4장 20절과 21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그 형제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지금 큰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너희가 어찌하든지 이 연보, 이 은혜에 동참해서 나누어 주어야 너희가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진실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입증할 것 아니냐. 굉장한 심적 부담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것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맞는 말입니다.

3-2. 은혜의 자발성

여러분 우리가 연보, 헌금하는 것을 누군가 강요해서 할 수 있습니까? 절대 강요해서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하십시오" 하고 봉투 돌리고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됩니다. 어떻게 자연스러워야 되느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으면, 내가 구원받은 은혜가 있으면, 그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이 내 속에 차고 넘치면 흘러나오게 되어 있거든요.

흘러나오는 것이 다양합니다. 찬양이 흘러나오고, 감사가 흘러나오고, 내가 시간이 있으면 시간의 봉사가 흘러나오고, 힘이 있으면 육체적 봉사와 섬김이 흘러나옵니다. 주머니에 물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것 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나누라고 그것이 또 흘러나옵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 은혜를 받지 못하고 기쁨이 충만하지 않은 분들에게 연보와 헌금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면, 은혜가 없는데 어떻게 흘러나오겠습니까? 그것은 쥐어짜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한 교회가, 공동체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창고의 곳간을 가득 채워 주시고 선교하고 구제하고 나누고 베풀고 우리 교회학교 아이들 키우고 먹이고 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 모자람이 없다. 이것은 교회 성도들이 부자가 많고 적고가 아닙니다. 은혜가 많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교회 은혜가 있고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에 이것이 흘러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선행되어야 됩니다.

바울이 그래서 연보를 은혜라고 바꾸어서 말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은혜입니다. 은혜받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받지 않은 자는 아무리 얘기해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 은혜받았다, 그러면 그것이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가 강요하거나 누가 쥐어짜거나 누가 협박해서 절대로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다 은혜 공동체고, 교회 공동체는 은혜받고 성령받은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발성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4. 연보의 유익

바울의 진심을 한번 봅시다. 10절입니다. "이 일에 관하여" 이 일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연보를 거두는 일입니다. "이 일에 관하여 나의 뜻을 알리노니" 아, 중요하지요. 바울의 뜻입니다. "이 일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왜 유익할까요? 이 연보에 참여하는 것이 왜 유익할까요? 나에게 돈이 나가는데, 생명처럼 소중한 물질이 나가는데 왜 유익할까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말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그 말은 거꾸로 바꾸어 생각하면 그 당시 예수님 시절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섬기는 또 다른 대상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재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물질은 하나님 반열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하나님과 물질이 동시에 있었는데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한다는 신앙 고백 아닙니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 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은 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혀서 네가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4-1. 뿌리를 기억함

동시에 너희에게 유익하다는 말은 뿌리와 근본을 기억하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뿌리 아닙니까? 모교회 아닙니까? 그 교회가 없었으면 지금 이 교회도 없습니다. 그 교회에서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를 세웠고,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실라를 파송해서 2차 선교 여행 때 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이 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베풀고 나면 나중에 내가 어려울 때 다시 하나님이 내 곳간을 채워 줍니다.

"너희가 1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년 전에 이것을 하려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단됐습니다. 왜요?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 문제가 해소되고 나니까 바울이 다시 이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공부할 때 살펴봤습니다. 바울이 연보 얘기하는 것 봤습니다. 그런데 중단됐습니다. 회복되니까 다시 말합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을 보십시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것은 누가 하신 말씀입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베푸면, 나누어 주면, 도로 받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받습니까? 후히 되어서, 흔들어서 눌러서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가난한 자를 헤아리면 내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나도 나중에 그 헤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나중에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유익한 것입니다.

4-2. 있는 대로 하라

11절입니다. "이제는 하던 일을 성취할지니" 잠깐 중단되었던 그 일을 진짜 완성해 보자.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완성하되 있는 대로 하라." 있는 대로 하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가진 것 안에서 하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가진 것 안에서 하라. 즉 연보하라고 해서, 내가 지금 마게도냐 교회 얘기 막 하고 했다고 해서 어디 가서 꿔서 하지 말고, 빚내서 하지 말고, 너희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라 그 말입니다. 합리적이지요.

여러분 교회 헌금하려고 은행 대출받아 본 적 있습니까? 비정상입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여기 지금 "있는 대로 하라. 너희가 가진 것에서 하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 여기 있습니다. 있는 것에서 하라고 했습니다. 있는 것에서 말씀대로 잘하셔야 됩니다.

4-3. 성숙한 신앙의 표현

우리가 지금 이 과정을 쭉 살펴본다면, 예루살렘 교회 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한 교회를 두고 바울이 지금껏 개척한 모든 교회에 편지 쓰고 직접 가서 "이것 돕자" 그래요.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얘기하는 그 배경을 우리가 보면, 이 교회가 모든 교회 성도들이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지 못했는데, 성령 충만하지 않았는데 이 자발성이 나오지가 않잖아요.

그런 것을 보면 바울은 교회를 개척한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자발적으로 연보를 할 수 있을 만한 영적 수준에까지 이르도록 돌봤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그만큼 성숙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기독교 신앙에서 연보는 아주 성숙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것, 헌금하는 것 지금 그래서 이것은 억지로 할 수 없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5. 균등의 원리

12절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그렇지요. 너희가 가진 것에서 하나님은 받습니다.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없는 것, 어디 가서 꿔다 하는 것은 하나님 받지 않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이것 오해하면 안 됩니다. 그다음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즉 나중에 너희가 힘들 때 그들이 또 너희를 도울 것이다 그 말입니다.

5-1. 자발적 나눔

이것은 기계적인 균등이 아닙니다. 이것을 공산주의자들은 기계적인 균등으로 봅니다. 모든 것을 다 평등하게 맞춰야 된다. 그래서 지주들의 땅을 빼앗아서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되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공장을 빼앗아서 근로자들에게 돌려 주어야 되고. 그래서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런 구절에서 가져옵니다.

실제로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공산주의 그들이 말하는 혁명, 우리가 말할 때는 이것은 폭동인데,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혁명과 기독교 나눔의 정신이 무엇이 다릅니까? 성령이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은혜받은 자가 자발적으로 나누는 것이 그것이 연보고 그것이 헌금입니다. 내가 조금 더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많지 않으나 내가 은혜받아서 그래도 우리는 자녀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은 할 수 있으니까, 그것조차 못하는 자들에게 베풀고 나눠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울은 균등하게 한다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기계적인 균등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전부 다 하루에 100급 받아서 살아가라 그게 공산주의 아닙니까? 그런 식의 기계적 균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누고 베풀고, 자발적으로 은혜받은 자들이 나누는 것, 그것이 연보입니다.

5-2. 만나와 메추라기의 교훈

그다음 "기록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출애굽기 16장 17절 18절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이것은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입니다.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막 내려 주십니다. 메추라기가 떨어집니다. 사람들이 욕심이 나니까 자기 식구 생각하지 않고 일단은 거뒀습니다. 가져갔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썩습니다. 이틀 치 막 걷어갔는데 썩어서 냄새 나서 먹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안 썩는 날이 있는데 안식일 전날입니다. 안식일 날은 하나님이 일하지 말라 하셨으니까.

그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열심히 벌었습니다. 우리 가족 내 식구 먹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참고해 뒀습니다. 그런데 나누지 않고 가만히 두면 그것이 썩어 버립니다. 썩어서 냄새납니다. 나누지 않고 베풀지 않으면.

그런데 나는 내 힘이 부족합니다. 연약합니다. 나도 열심히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둔 것은 요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했으나 이것밖에 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힘 있고 능력 있는 자가 많이 거두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나누고 베풀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사상하고는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많이 가진 사람 빼앗아 가지고 주는 것. 그래서 오늘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지요. 왜요? 안 나누니까. 쌓아 놓고 계속해서 그 창고만 자꾸 늘려 가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것 때려 부수어 가지고 빼앗아야 됩니까? 전도해야지요. 복음 전해야지요. 이 나라가 복음화되어야지요. 그래서 많이 가진 사람들이 복음의 정신을 알고, 하나님 마음을 알고 깨달아 알고, 그래서 자발적으로 나눠야지요. 그래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억지로 빼앗아 가지고 억지로 균등하게 하고, 그래서 됩니까?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전도하고 복음 전하고 우리 스스로도 나누고 베풀고, 그래야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지요. 폭력은 절대 안 됩니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6. 물질과 사람의 나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될 것이 과연 나누고 베푸는 것이 물질만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예루살렘 교회를 돕잖아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에 물질을 준 적 있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 교회에 헌금 보냈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떨어졌고 성도들이 각지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사람 중에 빌립 집사님이 사마리아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 교회가 은혜가 넘쳐난다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살펴보러 갔을 뿐입니다. 그때 헌금 걷어서 간 적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흩어지면서 안디옥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는 연보가 아닌 헌금이 아닌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사람을 개척 멤버들을 보낸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개척 멤버들, 사마리아 교회의 개척 멤버들,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사람이 일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기둥 같은 일꾼이었던 바나바 선생님과 바울 선생님을 보내 버리잖아요. 선교사로.

여러분 우리가 물질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까요? 사람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할까요? 둘 다입니까? 다 못 놓겠습니까? 물질도 놓을 수 없고 사람도 놓을 수 없고. 굳이 놔야 된다면 무엇을 놓겠습니까? 사람이 좀 더 아쉽지 않으세요? 그런데 지금 여기 보면 예루살렘 교회는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빚 갚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이 은혜를 예루살렘 교회가 힘드니까.

6-1. 모교회에 대한 빚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지난해 감사주일 때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많은 성도들 중에 사실 우리 교회에서 처음부터 신앙생활해서 은혜받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세례받고 성장한 분들도 계시지만, 다른 저 시골 교회에서, 우리 각자의 모교회에서,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올 때까지 나를 위해서 피땀 눈물 흘려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사람 만들어 주신 분들 옛날에 계셨는데, 그런데 내가 정말 속썩이고 사람 같지 않은 인간으로 굴었는데 그것 다 참아 주고 견뎌 주신 전도사님, 목사님, 교회학교 선생님들 계시지요? 다 그렇지요. 그분들이 날 위해서 눈물로 헌신하고 기도해서 내가 이만큼 돼서 이 자리에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의 역사를 따라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에 대한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교회에 있습니까? 담임 목사에게 있습니까? 우리 당회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 대한 권리는 담임 목사가 주장할 수 없습니다.

6-2. 초대교회의 정신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파송하고 보내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입니다. 그 교회를 세우라고. 바울 선생님, 바나바 선생님, 안디옥 교회가 키웠습니까? 그 일꾼들을, 바울을 안디옥 교회가 키웠느냐고요? 키운 적 없잖아요.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가 키운 적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지도자 일꾼들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씀하셔서 "그 두 사람 따로 보내라" 그래요. "우리 교회 지도자니까 못 보냅니다"가 아니라 보냅니다. 우리가 키운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 쓰시겠다는데 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 정신이었습니다.

물질도 보내고 사람도 보내고, 그래서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 그런 정신이 완벽하게 사라져 버렸지요. 이것이 마치 교인이 이 교회의 소유물인 것처럼, 어느 한 목회자의 소유물인 것처럼. 그래서 굉장히 마음의 답답함과 거기에 대해서 갈등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도 우리 성도들의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우리는 예수의 소유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의 소유 된 백성들이지, 누구에게 소속된 자, 소유된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거기에 발목 잡혀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복음에 빚진 자들이지요. 그래서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도 사람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정신입니다.

7. 헌금 관리의 조심

16절을 보시면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이 이제 연보를 걷기 위해서 디도를 보내겠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아직까지 보낸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제 보냈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제 디도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을 같이 보냅니다. 이 연보를 걷는 데. 그 형제는 누군지는 모릅니다. 바울이 말을 안 하니까.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복음으로써 교회에 칭찬을 받는 공인된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이것이 디모데인지 누군지, 실라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디도 혼자 헌금 걷는 데 보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 사람을 같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을 또 보냅니다. 22절입니다.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그들이 누굽니까? 디도와 한 사람이었지요. 우리의 한 형제 또 보냈습니다. 지금 바울은 몇 명 보냅니까? 세 명입니다. 세 명을 고린도 교회에 연보 걷는 데 보냅니다.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음으로 더욱 간절하니라."

7-1. 선한 일의 조심

이 세 사람을 왜 보내는 걸까요? 디도를 못 믿어서요? 디도를 의심해서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조심함은" 조심한다고 했습니다. 왜요? 돈이니까. 돈이니까.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트집 달까 그랬습니다. 이 문제가 사탄이 틈타기 아주 좋거든요. 디도 혼자 갔다가 디도의 마음에 사탄이 틈타 가지고 디도가 잠적하면 어디서 찾아요? 요즘같이 핸드폰도 없고 어디서 찾습니까 이 인간을. 혹은 디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21절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여러분 이 말이 중요합니다. 선한 일에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아휴 선한 일이니까, 좋은 일이니까. 야, 너희 디도 몰라? 디도가 너희에게 눈물로 쓴 편지 갔잖아. 그냥 걔 믿고 보내 줘." 이게 아닙니다. 두 사람을 더 붙여 보낸 것입니다. 선한 일에 조심하려고.

이것이 바울이 조심하고 또 조심한 것입니다. 특히 물질 문제 너무 중요합니다. 이것 진짜 중요합니다. 사탄이 정말 딱 틈타기 좋거든요, 돈 문제는. 그래서 이 일은 교회 공동체가 반드시 기억해야 되고 지켜야 될 점입니다.

7-2. 일곱 집사의 유래

초대교회가 예루살렘 교회가 제일 처음에 교회에 문제가 생긴 게 무엇 때문입니까? 헬라파 과부, 히브리파 과부들 구제 문제 때문 아닙니까? 구제를 하려면 돈을 만져야 되잖아요. 사도들이 그 돈을 만지다가 자꾸 히브리파 과부들이 구제에 빠지는 일이 벌어졌잖아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그 과부들이 구제에 빠지는 일이 자꾸 벌어지니까 일곱 집사들을 세운 것 아닙니까? 사도들이 돈 만지지 않으려고.

집사님 한 분 세웠습니까? 일곱 분이나 세웠습니다. 일곱 분이 예루살렘 교회 재정을 관할하라고. 그것이 초대교회 일곱 집사님의 시작입니다. 그 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것 잘 기억하십시오.

8. 준비하는 연보

9장을 보시면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너희 고린도 교회가 성도 섬기는 것을 원하고 있는 것을 나도 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이제 마게도냐인들에게는 뭐라고 했는지 바울이 얘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마게도냐 세 교회에 대해서는 "아가야에서는" 아가야는 어느 교회입니까? 고린도 교회와 아테네 교회입니다. 그중에 아테네 교회는 아주 미미하니까. "고린도 교회는 1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이것이 바울이 이중플레이한 것입니다. 저 북쪽의 마게도냐 교회에게는 "야 고린도 교회는 이미 1년 전부터 준비했어"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그래 놓고 다시 고린도 교회에는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의 시련과 극심한 가난에서도 넘치는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에 지나도록 열심히 연보했다." 양쪽에 되고 계속 지금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선한 일은 경쟁을 붙이는 것이지요. 좋은 일은 계속해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에 마게도냐 교회가 분발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런 사람입니다. 거짓말은 아닌데, 그런데 이쪽에서는 이쪽 교회가 잘한다, 저쪽에서는 저쪽 교회가 잘한다, 이렇게 해서 서로를 선한 일에 서로 경쟁시켰다는 뜻입니다.

8-1. 기도로 준비함

그리고 3절입니다.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형제들이 누굽니까? 디도를 비롯한 두 명의 형제들입니다. 세 명이지요. "이 세 명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미리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먼저 세 명의 형제를 보내서 너희들이 미리 준비하면 내가 갈 때 그때 다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러 가겠다는 말입니다.

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여기서 준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기도. 바울이 이렇게 미리 얘기하는 것은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준비하라는 것이 어디 가서 돈 꿔 오라는 말이 아니고요. 돈 마련할 준비를 하라는 게 아니라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또 베풀 은혜를 생각해야 되니까, 기도로 준비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기도해야 됩니다. 그 기도하면서 내가 먼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먼저 내가 헌신되는 것이지, 기도하지 않고 그냥 주머니에 있는 것만 꺼내서 드리는 것, 그것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기도하고 드리라는 뜻입니다.

8-2. 마음에 정한 대로

그 얘기를 이어서 하는데요. 7절을 보십시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정하다"라는 말이 밑에 나오지요. 헬라어로 프로아이레오(προαιρέω)인데요. 미리 결정한, 목적을 정한이라는 뜻입니다. 즉 어떻게 해야 미리 정할 수 있습니까? 기도해야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기도해야 마음에 확정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냥 정할 수 없잖아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단하고. 그래서 "각각 그 마음에" 기도한 대로,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겨"라는 말이 헬라어로 힐라로스(ἱλαρός)입니다. 밝은, 명랑한, 즐겨라는 말입니다. 많이, 자주, 이런 뜻이 아닙니다. 밝게, 즐겁게, 행복하게. 왜요?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이니까. 기도하고 내가 결단한 것을 나누는 것이니까 밝고 명랑한 것이지요.

9. 나눔의 약속

나눔에 대한 잠언의 말씀을 한번 봅시다. 잠언 11장 24절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그랬습니다. 과도히 아끼는 것, 계속해서 아끼고 또 아끼는데 왜 가난해질까요? 지금 여기 나오지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고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그랬는데, 왜 아끼는데 가난하게 될까요? 자꾸 새니까 그런 것입니다. 새니까 자꾸 누수가 되니까, 아끼고 아꼈는데 딴 데 새니까 그런 것입니다. 아꼈는데 하나님께 아끼지 않는 자, 하나님이 그 산업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텐데, 과도히 아꼈는데 내가 내 인생 책임지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장막을 거두어 가시니까, 과도히 아껴도 자꾸 가난해지는 것이라고요. 그것이 잠언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9-1. 하나님께 빚 안기기

잠언 19장 17절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우리에게 꾸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게 하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이자를 받아먹을 수 있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는데, 여기 이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난한 자들이 있잖아요. 도와야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자를 적극적으로 도우면 하나님께 빚을 안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빚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자는 내셔야지, 그래도 원금도 좀 많이 갚아 주셔야지.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우리가 도와야 될 분들이 주변에 있으면 "아, 이것은 하나님께 꿔 드리는 거다. 이것 떼일 일은 없다. 절대. 게다가 많이 받을 거다. 이자도 아주 많이 받을 거다." 이것 생각하시면 아주 행복하게 드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 이것은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 주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꼭 기억하십시오.

10. 연보의 결과

연보가 봉사가 되고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렇습니다. 12절입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이 봉사는 무엇입니까? 연보하는 봉사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섬기고 나누는 봉사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합니다." 그렇지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가난을 채웁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습니다." 감사가 넘치니까 그 교회에 차고 넘치는 연보가 막 쌓이는 것입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진실히 믿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누어 주었는데 내가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베풀었는데 내가 더 복을 받습니다. 나누고 베풀었는데 아깝지 않습니다. 더 기쁨이 넘칩니다. 그래서 나누는 것이 더 복이 되는 것이 복음의 진리입니다. 그것을 너희가 느끼게 되고 누리게 될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10-1. 기도를 받는 복

그다음 "또 그들이" 그들은 누굽니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이만큼 헌금했는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한다." 고마워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날 큰 재난을 겪을 때 대구 경북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게 우리 교인들이 많은 헌금을 모아 주셔서 나눠 드렸거든요. 그런데 그 목사님들이 계속해서 기도 편지를 보내 주십니다. 저한테 문자도 주시고, 우리 교회 주보를 보시고 계속 기도하고 계신답니다. 그 교회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계신답니다. 홍수 입어서 홍수 피해 입은 교회들에도 우리가 헌금 걷어서 드렸거든요. 그런데 그 교회들도 계속 연락이 오십니다. 기도하고 계신답니다. 성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몇 명 없는 교회인데 매번 기도하고 계신답니다. 우리는 그 기도 받으며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을 드렸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기도로 우리에게 갚아 주잖아요. 기도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 돈이야 뭐 드릴 수 있는데, 물질이야 드릴 수 있는데, 그들이 계속해서 감사하고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절대로 공짜가 없습니다. 나누고 베풀고 우리는 기도받고, 그래서 열심히 베풀고 나누고 또 기도받고, 그런 은혜가 성령 충만한 자들에게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이 풍성한 연보는 나의 그리스도인 됨을 표현하는 것이고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진실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에 이른 자만이 할 수 있는 결단입니다. 이 결단이 우리 것이 되기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느니라" 이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물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한 이후로 우리에게 넘치는 기쁨, 구원의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 기쁨이 생긴 이후로부터는 물질은 한낱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되었습니다.

주여, 가난한 자들, 힘든 자들, 연약한 자들, 주께서 쓰시고자 할 때 나누고 베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나누고 베풀고 흘려보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고를 흔들어서 누르고 차고 넘치게 해 주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도 우리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주여 우리에게 그 복음의 진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베풀고 나누었지만 기도받는 자들이 됩니다. 주여 결국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나라, 우리 온 세상이 이 복음의 진리를 제대로 알고 깨닫게 하여 주시고, 모든 이 나라 백성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져서 자발적으로 베풀고 나누는 일에, 모든 일에 동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회가 물질을 나누고 사람을 나누고, 나누고 베풀고 흘려 보내서, 하나님께서 위로 붓으시는 복이 우리에게 또한 차고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