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교 11강 - 성경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장 3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오늘 우리 교재 60쪽입니다. 성경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인데 성경을 펴지 않고 교재를 펴니 좀 이상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지금 펴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볼 수는 없으니, 오늘은 이 교재를 통해서 성경이 어떤 책인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손에 들려지게 되었는지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의 주가 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 구약입니다. 신약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신 내용과 교회가 세워진 과정과 성령의 일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이 기록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성경을 읽는 자들에게 감동을 주시고 회개하게 도우시며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지 않고, 배우지 않고, 전하지 않으며, 기록된 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책이지만 글자가 책 밖으로 나와서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을 걸어 다녀야 합니다. 그때 성경은 진짜 성경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여기에 다 적어 두었습니다. 사실 성경은 사탄의 결박을 끊고 사탄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동의하시죠?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고, 배우지 않고, 또 배운 대로 살지 않고, 살아 보니 정말 이 말씀이 진리더라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마음이 되십니까? 처음 예수 믿어서 사람들이 성경을 읽어야 된다고 하니까 교회에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고 성경을 꼭 읽어야 된다고 해서 읽기는 했는데, 읽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포기하고 또 읽다가 포기하기를 여러 번 하다가 나중에 성경을 그냥 읽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배워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또 배우게 되면 깨닫게 됩니다. 길이 이렇게 보이기 시작하면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배운 대로 깨달은 대로 한번 살아보겠다 하는 마음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깁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성경을 공부하다 보면 나도 한번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다 보면 이렇게 하니까 진짜 되는구나 하고 사람들에게 기뻐서 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이고, 또 이렇게 복된 소식을 전하다 보면 이 복된 소식이 널리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읽고 배우는 것입니다. 읽고 배우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전할 수 없습니다. 이 귀한 성경을 우리는 어떻게 지금 읽고 배우고 있는지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고, 오늘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성경의 구조부터 한번 보겠습니다.
1. 성경의 구조
1-1. 구약성경의 구분
이 성경의 구조, 우리 교재에도 있고 화면에도 보이시는 것처럼 제가 성경의 구조를 한번 적어 두었습니다. 보시면 구약성경인데요. 구약성경은 전통적으로 이렇게 구분합니다. 이걸 외우라고 하면 이때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내가 신학교 갈 것도 아니고 시험 볼 것도 아닌데 이걸 외울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우리가 교양인이고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성경 공부도 하는데, 성경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율법서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율법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서 곁에다가 한 글자 좀 유식한 말을 적어 놨습니다. 토라(תּוֹרָה)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사서입니다. 역사서는 글자 그대로 역사의 흐름입니다. 히스토리아(ἱστορία)라고 하죠.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가 역사서입니다.
성문서는 케투빔(כְּתוּבִים)이라고 합니다. 시편 같은 시가서 그리고 지혜서인 전도서, 잠언, 아가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절기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낭독하고 읽는 책들이 있습니다. 예레미야애가, 룻기, 아가서, 에스더가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선지서는 네비임(נְבִיאִים)이라고 합니다. 네비임이 원래 선지자라는 뜻인데 선지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이 선지서는 문서 기록 예언자들, 즉 예언자들 중에 글을 쓴 선지자도 있지만 글을 쓰지 않은 선지자도 있습니다. 엘리사, 엘리야 같은 분들은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선지서를 남긴 사람들은 문서를 기록한 선지자들입니다.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학개, 스가랴, 말라기, 하박국 등 많습니다.
이렇게 해서 구약성경이 크게 네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토라, 히스토리아, 케투빔, 네비임 곧 율법서, 역사서, 성문서, 선지서 이렇게 나눕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구분하면 성경을 읽어 가다 보면 굉장히 힘이 듭니다. 우리는 사실 창세기도 역사이고 출애굽기도 역사로 봅니다. 그런데 성경의 구분은 학자들이 구별할 때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율법서의 범주에 넣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나한테 묻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그렇게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사실 이런 구조로 읽어 가기는 어렵습니다.
1-2. 신약성경의 구분
신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약을 한번 보시면 복음서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있습니다. 알고 계시죠? 역사서는 사도행전입니다. 그리고 서신은 바울이 쓴 편지도 있고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쓴 편지도 있습니다. 일반 서신이라고 합니다. 예언서는 요한계시록입니다. 간단하죠?
그런데 복음서가 왜 똑같은 이야기가, 예수님 복음 이야기가 네 번이나 비슷비슷하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성경을 읽어 가다 보면 마태복음을 다 읽었는데 마가복음을 읽으니 또 있고, 누가복음을 읽으니까 또 있습니다. 그래서 짜증이 납니다. 한 번만 하지 이거 세 번 네 번씩이나 자꾸 이런 식으로 한다고 사람들이 짜증을 냅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게 볼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사건을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였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각자가 그 은혜 받은 것이 다 다릅니다. 그렇겠죠? 어떤 분은 제 넥타이에 은혜 받은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제가 시간을 짧게 마치는 데 은혜 받은 분들 계시고, 또 어떤 분은 아주 독특하게도 아까 좀 전에 했던 구약성경을 네 덩어리로 나눈 것이 굉장히 학문적이라 거기에 크게 은혜 받은 분도 계시고, 우린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여러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떤 행동을 하셨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보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행하실 때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걸 아주 집중적으로 기록해 놓은 제자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어떤 한 어린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갖다 준 데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걸 기록해 놓은 제자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빌립에게 예수님께서 시험하려고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얼마만큼의 떡이 필요할까?" 하고 물었던 질문에 은혜 받은 사람도 있어서 그걸 적었습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은 빌립에게 물었던 것, 어린아이가 도시락 갖고 온 것, 이건 자기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예수께서 떡을 높이 들고 축사하신 것, 그것만 관심사입니다. 그것만 적었습니다.
만약에 복음서가 한 개만 있다면 우리는 축사하신 것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도시락 갖고 온 것도, 빌립에게 물어보신 것도,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한 것도 다 빠지고 그냥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만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건 하나를 입체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서가 네 권이나 있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다. 한 가지 사건을 동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때로는 하늘에서도 들여다보며 이렇게 굽어보면 시각이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으실 때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사건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나오면 옆에 괄호 해서 병행구를 적어 두었습니다. 그곳을 찾아서 함께 읽어 보셔야 합니다. 이 본문이 여기는 이렇게 쓰여져 있구나 하면 훨씬 더 은혜가 됩니다.
1-3. 시간순으로 읽기
아무튼 신약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요즘은 우리 교회에서 주일날 오후 3시부터 시작해서 성경 읽기를 합니다. "성경이 읽어지네"라는 책도 있고 "통큰 성경 91통"도 이런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에서 핵심적으로 하는 것이 뭐냐면 성경을 시간 순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통적인 구별을 다 내려놓고 구약을 시간의 흐름으로 한번 보자 하는 시도입니다. 보시면 먼저 역사서를 이렇게 흘려놓습니다. 아까 우리가 학자들이 기록한 역사서에는 창세기와 출애굽기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율법서, 토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건 무시합니다. 그냥 역사의 기록이 있으면 다 역사입니다. 창출레민신(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수삿삼왕(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하고 슬래시를 쳤습니다. 왜냐하면 열왕기하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끝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부터 시작된 역사가 열왕기상하까지 흘러가다가 열왕기하에 가면 막내버립니다. 그렇죠?
인간의 역사는 나라가 망하면 끝납니다. 뭐 나라가 망했는데 희한하게 하나님 나라는 망했는데 계속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망하고 나서 기록된 것들이 역대기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입니다. 역사서가 망하기 전의 역사서는 창출레민신 수삿삼왕이고, 그리고 망하고 난 뒤의 역사서는 역대기와 에스라, 느헤미야입니다. 이렇게 망하고 난 이후의 역사입니다.
이 역사서를 뼈대로 세웁니다. 사람에게 척추가 중요한 것처럼 이 척추의 뼈대를 세우고 이 사이에 역사서 아닌 것들을 끼워 넣습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끼워 읽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기에는 성막 만드는 것 나오고, 제사장의 의복 만드는 것 나옵니다. 레위기에도 똑같이 성막과 제사장의 의복 만드는 것이 나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함께 읽어야 된다는 뜻이고, 민수기와 신명기도 같이 읽어 버립니다.
그리고 열왕기상하에 보면 왕들의 이야기가 쭉 나옵니다. 북왕국의 왕들, 남왕국의 왕들이 나오는데 왕들이 잘하면 선지자가 말을 합니까? 안 합니다. 왕들이 악한 행동을 하면 선지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겠죠. 선지자들이 많이 활동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정치가 엉망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상하를 읽어 가면서 왕들의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선지자들을 함께 읽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어 가지 않으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통째로 계속 같이 읽어 버리면 이사야가 어느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와 이사야를 같이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히스기야가 앗수르 침입 때 너무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어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로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없으니까 그 당시 예언했던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너에게 대답하시던가?" 하고 물어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히스기야에게 전달합니다. 그렇게 이해한다면 히스기야를 열왕기상하에서 읽다가 이사야를 펴봐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끼워 읽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성경 읽기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읽는 것이 훨씬 더 시대와 역사를 알기에 좋습니다.
신약도 역시 그런 식의 읽기를 시도합니다. 복음서를 보면요, 예수님의 행적을 시간순으로 흘려놓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시간의 좌표대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다 흘려놓는데 예수님의 행적에 시간의 좌표에 포인트가 되는 것이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절기 때마다 어디로 갔습니까? 예루살렘을 가야 했습니다. 원래 예수님이 사셨던 삶의 반경은 저 북쪽 갈릴리입니다. 나사렛,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늘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절기 때마다 남쪽으로 내려가셔서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남쪽에 가실 때마다 사건이 일어납니다. 죽은 자도 살리고, 병든 자도 고치고, 그리고 유대인들과 문답도 하고, 그래서 절기를 기준으로 시간을 흘려봅니다. 이것이 복음서의 성경 읽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해서 예전에 신약도 공부했고 구약도 공부를 했습니다. 다 잊어버리셨죠? 잘하셨습니다. 이제 다음번에 다시 우리가 또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부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함께 읽어야 하는데, 사도행전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다닌 역사의 기록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를 들어 사도행전 18장 23절에서 21장 16절까지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있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베소를 중심으로요. 그런데 바울이 서신을 열세 권을 썼는데 그 중에 고린도전서, 후서, 로마서를 3차 전도여행 기간 전후에 썼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8장 23절에서 21장 16절까지를 읽을 때는 고린도전서, 후서, 또 로마서를 함께 펴봐야 합니다. 그래야 이해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바울서신만 통째로 계속 읽고 있으면 도대체 이 편지를 어디서 누가 왜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간의 흐름을 따라 역사를 흘린다는 사실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2. 성경이 오기까지
2-1. 구약성경의 형성
이제 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를 보겠습니다. 우리 교재는 61쪽입니다. 오늘날의 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우리는 지금 이 한 권으로 된 가죽으로 된 이 성경, 장을 넘길 때 손가락에 침을 발라 이렇게 넘어가는 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 성경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남유다가 멸망합니다. 언제요? 기원전 587년, 586년쯤에 멸망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남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경전이 있었겠죠? 그 당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경전은 모세오경입니다. 모세오경이라는 경전을 그들은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여러 글들도 막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역사가 있었으니까 그 역사도 여기저기 찔끔찔끔 기록되어서 돌아다니고 있었겠죠. 그러다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고 망합니다. 페르시아 시기를 거칩니다.
이제 나라를 잃고 헤매고 다닙니다. 나라를 잃고 헤매고 다니면서 이들은 믿음이 더 견고해집니다. 믿음이 견고해지면서 이들은 하나님 말씀에 의지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면서 하나님 말씀이 정경화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역사는 역사대로 정경화되고, 그리고 선지자들의 말씀은 선지자들의 하나의 말씀으로 두루마리로 남아서 전수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 시대가 지나가고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망하게 하고 본격적으로 그리스 시대가 도래합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은 알다시피 오래 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중의 한 사람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사람이 왕이 됩니다. 이 사람은 굉장히 착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팔레스타인 그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서 이 지역의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번역해 주기로 결정합니다. 그때 이 사람이 번역해 준 성경이 구약성경인데,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국제어는 그리스어였습니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은 지금의 모국어를 잃어버린 유대인들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유대인들이 쓰고 있는 말, 국제어, 헬라어 곧 그리스어로 번역해 줍니다. 이것을 칠십인역이라고 합니다. 칠십 명이 번역을 했다고 해서 칠십인역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성경이 쓰이기 전에 구약성경이 번역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이 쓰이기 전에 칠십인역이라는 번역본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기원전 270년쯤입니다.
2-2. 신약성경의 형성
그다음에 시간이 흘러갑니다. 예수님이 오셨고, 예수님이 돌아가셨고,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전파만 했지 기록은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오실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오시면 뭐 하러 기록을 합니까? 금방 다시 오시니까 기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록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안 오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이 안 오십니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본 증인,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이가 들어서 죽어갑니다. 야고보가 죽어버렸습니다. 누가 죽고, 누가 죽고, 이렇게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자꾸 죽어나갑니다. 예수님은 언제 오실지 모르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은 죽어나가고. 하루는 바울이 생각합니다. "야, 이거 큰일이다. 누가 좀 기록해야겠다. 누구 기록할 만한 사람 없나? 의사가 기록하면 정확하게 잘 기록하겠지." 그래서 의사인 누가에게 기록하라고 시킵니다.
누가는 직접 예수님을 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기록합니다. 기록한 책이 누가복음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장 서문에 보면 무슨 말이 나오냐면 나는 직접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직접 본 사람들에게 다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차례대로 기록하기로 했다, 데오빌로 각하여, 이렇게 됩니다. 누가복음을 이렇게 기록해놓고, 이게 누가복음의 시작이고 복음서의 시작입니다.
그 이전에 바울은 서신을 썼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쓴 서신이 정경의 목적으로 쓴 것은 아닙니다. 테살로니가에 있는 교회가 자기가 갔는데 고민이 있어서 바울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십니까?" 그 답장을 쓴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러니까 서신이 먼저 쓰여지긴 했지만 정경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가 쓰여지기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쓰여집니다.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것은 요한계시록인데 요한계시록은 주후 90년쯤에 쓰여졌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한 60년쯤 지나서 최종적인 신약의 책인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27권이 정경화되는 것은 주후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입니다. 카르타고 회의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27권 이것이 정경이라고 결정되었습니다.
2-3. 우리말 성경의 역사
이제 우리말 성경 번역의 역사를 보겠습니다. 62쪽입니다. 우리말 성경의 역사,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한글 성경이 어떻게 번역되어 왔는지 보려면 이 사람을 보지 않고는 안 됩니다. 화면을 보여주세요. 존 로스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 선교사입니다. 이분이 중국 선양에 가서 선교를 하셨습니다. 거기서 조선 사람들을 만납니다. 조선 사람들 중에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분들은 상인들이었습니다. 무역상들이었습니다. 국경을 넘어서 중국에 와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를 전하고 그들을 도와서 같이 한글 성경 번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존 로스 선교사, 이 한 사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존 로스 선교사가 처음 번역한 것은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을 번역해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라고 했습니다. 1882년입니다. 참고로 아까 보여드린 사진이 있습니다. 밑에 글씨가 영어로 쓰여져 있는데 그 영어의 한자를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예수셩교, 셩교는 거룩할 성(聖) 자에 가르칠 교(敎) 자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글자로 번역한 책입니다. 그래서 개역 누가복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펜젤러 아시죠? 감리교회 최초의 선교사 아펜젤러가 서경조라는 사람과 함께 번역한 개역 성경입니다.
다시 우리 교재를 보시면 1900년에 신약 전서 완역본이 나오고, 그리고 1911년에 구약이 나옵니다. 구약이 우리나라 성경이 굉장히 빨리 번역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보시면 그 이전에 1898년에 시편이 나옵니다. 다시 사진 보여주세요. 시편 촬영, 1898년에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피터스라는 미국 사람입니다. 이분이 시편 1편에서 150편까지를 다 우리말로 번역했습니다. 이분은 언어적인 감각이 아주 특별한 분입니다. 지금 이제 끝나고 나가시다가 최초의 성경, 이응찬이 번역한 성경, 아펜젤러가 다시 개역한 성경, 세 권이 있습니다. 살펴보시고 구경하시고 하시면 됩니다.
다시 우리 교재를 보시면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 전쟁이 끝나고 1961년에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옛날 성경, 이제 옛날 성경, 우리 부모님들이 보시던 옛날 성경, 세로로 이렇게 막 내려오던 성경, 그 성경이 1961년에 신구약 합본으로 우리에게 들려졌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이 1998년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 나옵니다. 개역개정을 왜 했느냐 하면 이제 시간이 지나니까 신세대들이 생겨나고 젊은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성경의 고어체 표현들이 많았습니다. 1961년도 성경은 그리고 번역이 급하게 하다 보니까 오역도 있고 좀 잘못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걸 개역개정을 했습니다. 다시 새 판으로 바꾼 번역입니다.
이것이 1998년에 나왔고, 지금 우리가 여러분들이 정상적으로 아주 옛날 성경을 보고 있지 않다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개역개정 4판입니다. 2014년도에 나온 책입니다. 성경 나중에 앞뒤에 이렇게 출판사 페이지 넘겨 보시면 4판이라고 나옵니다. 개역개정 4판, 2014년도에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개역개정 4판을 보고 있고, 우리말 성경 번역의 역사는 그러므로 1882년부터 시작해서 현재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금 성경 번역의 역사는 계속해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2-4. 존 로스 선교사의 유산
이제 우리가 존 로스 선교사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를 하려면 존 로스 선교사가 중국 선양에 세운 교회를 한번 보셔야 됩니다. 사진 한번 보여주십시오. 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선양에 가면 있는 동관교회입니다. 선양에 서탑 거리에 가면 이 동관교회가 있는데, 지금 여기는 보시면 헛간도 아닌 것 같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 팻말을 확대해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팻말에는 "조선 성경번역 역사박물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가 조선 성경 번역에 대한 자료들이 여기에 다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사진 보여주세요. 보시면 여기 동관교회 내부입니다. 이렇게 동관교회가 지금도 예배 드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다음 여기 보면 지금까지 동관교회를 목회했던 목사님들 역대 담임 목사님들의 사진이 있습니다. 제일 왼쪽에 수염 난 할아버지 머리 벗겨지고 보이십니까? 그분이 존 로스 선교사입니다. 그분이 존 로스. 그래서 동관교회 가서 처음 교회를 세우시고 목회를 하시고 우리말 성경 번역의 기지로 이 자리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중국 가시면 저기 맛있는 거 먹으러만 하지 마시고 이런 데도 좀 보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동관, 선양에 가셔서 서탑에 가서 동관교회를 보자 해서 한번 보시고 여기서 사진도 찍고 오시면 됩니다. 거기 가면 한글로도 다 되어 있습니다. 한글로도 존 로스 선교사에 대해서 이렇게 다 써놨습니다. 교회도 예배당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습니다. 가서 앉아서 느껴보시고 기도도 하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약도 신약도 어떻게 성경이 번역되어 왔는지, 이 성경 번역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잘 기억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존 로스 선교사가 가졌던 모토는 딱 한 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훌륭한 선교사는 말씀이다." 이것이 이 사람의 유일한 선교의 모토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죽을 때까지 말씀만 번역했습니다. 성경 번역하다가 부인도 죽었습니다. 자녀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뭐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적인 슬픔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계속해서 성경 번역에 전력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성경이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선교사가 오기 전에 성경 번역이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아주 독특한 역사를 가진 한국 선교 역사입니다. 나중에 다음 학기에 한국 교회사를 공부할 때에 그때 조금 더 자세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3. 말씀의 능력
63쪽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3-1. 악과 싸우는 힘
말씀은 먼저 악과 싸워 이기는 힘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사탄과 맞서 싸우실 때 이렇게 싸우셨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께서 사탄이 시험할 때 세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습니다. 기록되었다는 말은 구약의 성경을 인용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7절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고, 10절에도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구약에 기록된 말씀을 가지고 와서 말씀으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우리가 자꾸만 죄의 유혹에 굴복하고 넘어지고 쓰러지고 자꾸 우리가 연약하다고 느끼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외우고 마음속에 많이 담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의 시험이 올 때 이 말씀을 그때그때 끄집어내서 그 말씀이 검이 되어서 사탄과 맞서 싸울 수가 있습니다. 창고가 텅텅 비어있고 아무것도 없으면 사탄이 유혹할 때 그런가 보다 하고 끌려가고, 그런가 보다 하고 이리 넘어가고 저리 넘어가고 나중에 정신 차려 보면 다 끌려가서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말씀을 많이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3-2. 사탄을 이기는 무기
그다음 나오죠. 말씀은 사탄을 이기는 공격 무기가 됩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보면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여기 "가지라"고 했는데 이 가지라는 말이 데코마이(δέχομαι)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데코마이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총 57번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거의 다 "영접하다"라는 뜻입니다.
"가지다"라는 말을 우리는 가지다 이러면 막 쟁취해야 되고 가서 빼앗아야 되고 그런 느낌이지 않습니까? 그런 뜻이 데코마이에는 그런 뜻이 아니고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쟁취하는 것하고 영접하는 것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영접은 어떤 느낌입니까? 마음 활짝 열고 무장 해제하고 말씀이 오십시오 저는 있는 그대로 받겠습니다 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받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을 의심 없이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주의 말씀을 영접하고 받고 그 말씀을 내 인생의 새로운 양분으로 섭취할 때 그때 우리는 이것이 유일한 사탄을 이기는 공격 무기가 됩니다. 주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에게 권세가 있습니다. 영접하지 않으면, 받지 않으면, 이걸 내가 가지지 않으면 이 말씀을 가지고 힘내어서 싸울 수가 없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주의 말씀은 말씀 그대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3. 복의 근원
복의 근원이 됩니다. 신명기 28장 1절에 보면 후반절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능 시험 때 이거 가지고 삼 년 동안 기도하신 부모님들도 많이 계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서 뛰어나게 하신다 그랬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까요?
그 앞에 말씀이 중요합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삼가, 삼가는 무엇입니까?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영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경청하고 듣고 오늘 이제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듣고 어떻게 해요? 지켜 행하면, 듣고 지키면 모든 복은 따라올 것입니다.
복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복은 나를 따라올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쫓아갑니다. 복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고 이게 복이라고 생각하면 그 복을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쟁취하려고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을 살지 마십시오. 말씀을 따라가면 복이 너를 따라올 것입니다. 오지 말라 그래도 복이 무조건 너를 따라옵니다. 이 원리를 잊으시면 안 됩니다. 말씀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행하려고 애쓰십시오. 어떻게든 하나라도 해보려고 발버둥 쳐 보십시오. 투쟁해 보십시오. 유치하더라도 말씀 붙들고 한번 살아 보려고 애쓰고 노력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복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수많은 간증들을 우리는 알고, 우리도 경험했고, 그런 역사가 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4. 복 있는 사람
그다음 복 있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 1절에서 3절을 보면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동사 세 가지를 한번 잘 보십시오. 악인들에게 따라가다 보면요, 따르는 건 쫓아가는 것입니다. 열심히 열심히 쫓아가다 보면 나중에 자리를 잡고 떡하니 서게 됩니다. 그 자리에 처음에는 이리저리 다니다가 나중에는 자리를 잡고 서고, 서 있다 보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앉아 버립니다. 주저앉아 버립니다. 일어나지 못합니다.
악인들의 꾀는 말씀과는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들의 말, 진리의 말씀을 흐리는 것들, 이런 것들은 다 악인들의 꾀입니다. 이걸 여기 쫓아다니고 저기 쫓아다니다 보면 나중에 내 마음에 드는 데에 내가 서고 거기 앉고 나중에 들러붙습니다. 못 일어납니다. 떠나지 못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한 번 제대로 쳐야 그제서야 정신 차리고 일어납니다. 자리 털고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됩니다.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묵상은 무엇입니까? 먹고 되새김질하고 또 먹고 또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먹었던 걸 다시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 이 말씀이다. 다 아는 건데 이건 뭐 이거다 하는 건데 오늘 또 이번 뭔가 있겠도" 설교 안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묵상하라고 했기 때문에, 되새김질하라고 했기 때문에 한 말씀을 여러 번 읽고 곱씹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 그 말씀이 1년 365일 매일같이 다른 진리의 말씀으로 샘솟아서 나에게 다가옵니다.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똑같은 말씀이라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 하면 똑같은 말씀을 설교를 몇 번 듣습니다. 들을 때마다 다릅니다. 목회자는 할 때마다 다르고요.
그다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라고 했습니다. 심긴 나무는 불편하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되니까요. 그런데 그 나무는 결국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며 하는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형통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에 뿌리를 박아야 됩니다.
3-5. 예수님이 말씀
그다음 페이지 보시면 예수님이 말씀이십니다. 예수님 자체가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어떻게 되셨습니까? 1장 14절에 보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이었는데 사람이 되셔서 막 걸어 다녔습니다. 신기하죠? 하나님께서 메시아가 올 것이다, 임마누엘이 올 것이다 말씀을 했는데 그 말씀이 진짜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고 우리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육체가 되어서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몸이 되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이라는 걸 누구를 통해서 깨닫습니까?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깨닫습니다. 사랑은 성경에 적혀 있는 사랑으로 깨닫는 것이 아니고 사랑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사랑의 행위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깨닫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기를 십자가에 내어서 온전히 죽는 것,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야 사랑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사랑이 내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야 됩니다. 보여줘야 됩니다. 사람들의 손에 잡혀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주의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을 사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그냥 집어삼키고 있으면 안 되고, 그 말씀이 내 육신이 되어서 내 손으로, 내 발로, 내 행위로, 내 입술로, 내 모든 표정으로 드러나야 됩니다.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사랑이구나, 예수 믿는 이가 사랑이구나" 이걸 느껴야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만졌단 말입니까? 돌아가셨으니까요. 우리 주변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나를 보고 "당신이 말씀이군요, 당신이 성경이군요" 이런 찬사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 들으면 이제 신앙생활은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4. 성경을 대하는 자세
성경을 대하는 자세, 첫째 읽어야 되겠죠. 뭐니 뭐니 해도 읽어야 됩니다. 읽지 않으면 별 수가 없습니다.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들어야 되죠. 읽고 듣고, 듣는 건 어떤 자세로요? 마음을 열고, 아까 말했죠? 데코마이, 영접하는 자세로 말씀을 가지라, 영접하는 자세로 들어야 됩니다. "그래 한번 해 봐, 어떻게 하나 볼 테니" 이게 아니고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말씀하옵소서, 하시면 말씀하시면 제가 듣고 따라가겠습니다" 이런 자세로 들어야 됩니다.
그다음 듣고 나면 듣는 것으로 그냥 딱 귀를 닫고 마음을 닫으면 안 되고 그다음 행동으로 말씀이 드러나야 됩니다. 신명기 30장 14절에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행해야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자세는 읽고, 듣고, 행해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치며
오늘 공부한 내용을 한번 잘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좀 색다르게 여러 가지 보고 성경의 번역의 역사도 봤고 우리말 성경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된 과정도 봤는데, 이건 상식으로 그렇게 알아두시면 좋겠고, 많은 성경 번역가들이 그 당시에, 특별히 존 로스 선교사에게 우리는 빚지고 있는 바가 매우 큽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과제는 성경 읽기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반성과 다짐을 기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로 오늘 귀한 말씀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순간 의미 없이 생각 없이 뜻 없이 읽고 있는 이 성경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피와 땀과 수고의 결과임을 깨닫습니다. 그 옛날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해서 존 로스 선교사를 통해서, 또 수많은 목회자를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이 성경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많은 사람들의 피 값으로 우리 손에 들려졌는데, 우리는 이 진리의 말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을 읽지 않고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마음을 열고 영접하지 않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이 말씀을 제대로 읽고 듣고 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귀한 말씀 진리 앞에 서게 해 주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으로 새롭게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