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교 16강 - 종말과 영적 전쟁
에베소서 6장 14-18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들어가며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교회는 항상 종말을 대비하며 살아왔습니다. 임박한 종말론을 내세워 주님 오실 날을 안다고 미혹하는 이단들과 싸우며 2천 년 이상을 기다려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핍박받는 성도들에게 보내기 위해 유대 묵시문학의 형식으로 기록되었기에, 해석상의 문제로 이단의 온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종말의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유혹이 많은 이 시대를 살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육체는 편안해졌는데 영혼이 미혹을 받습니다. 종말의 시간에 영혼을 무장하고 세상을 이길 길을 찾아가며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말세다"라고 말합니다. 우리 위 세대 어른들도 아이들 하는 것을 보고 "말세다, 말세다" 하셨고, 그 위 세대도, 그 윗 세대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우리는 항상 말세, 곧 종말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종말입니다.
이 종말의 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교단과 교파별로, 신학적 성향과 경향에 따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종말에 대한 태도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복잡하고 난해한 것들을 다 공부할 수도 없고, 다 공부한다고 해서 이해가 잘 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말은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기 때문에 반드시 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둘째,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과 역사적 배경을 들먹이며 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신줄 놓고 듣다가 그냥 따라가고 빠지게 됩니다. 사이비 종말론자들입니다. 어떤 이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은 알지 못합니다. 오시는데 아무도 모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버지만 아십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만약 어떤 사이비 종말론자가 매년, 매달, 매일 예수께서 오신다고 그냥 떠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마침 그날이 하나님이 마음속에 "이날 예수를 보내야지" 하고 생각하신 날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예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만 안다." 그랬는데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냥 막 던졌는데 그 날이 걸렸다면, 하나님 체면에 어떻게 그 날 그대로 하시겠습니까? 바꾸셔야지요. 그런 생각을 늘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생각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날을 맞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책임을 지셔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인간은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습니다.
셋째,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려면 한두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원수 맺고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우리가 지금 오늘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데 주님이 오십니다. 그런데 공부하기 전에 들어올 때 크게 대판 싸우고 들어왔다면, 이것을 풀고 들어왔어야 합니다. 그래서 원수 맺고 살아서는 곤란합니다. 항상 화해하고 화목하고, 언제 예수님 오실 그 날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 날이 도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와도 원수 맺지 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혹 내가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며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또 언제 주님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죄짓지 않고 성실하게,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했던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열심히 살아가던 삶의 현장에서 주님 오시면, 우리는 부름 받으면 그뿐입니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기 나오는 세대주의 종말론, 전천년설, 후천년설, 역사주의적 전천년설, 후천년설 등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다 공부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한다고 해서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특히 종말론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오신다는 것,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랑하고 살고 성실하게 살면 우리는 종말을 반드시, 그리고 행복하게, 하나님 원하시는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사이비 종말론자들에게 빠지지 않고 휘둘리지 않고 재산 강탈당하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1. 역사적 종말
이 제목이 '역사적 종말'인데, 역사적 종말이라고 적어 놓은 이유가 있습니다. 종말에는 항상 두 가지가 있다고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개인의 종말입니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 종말은 내가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고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종말입니다.
1-1. 세대주의 종말론
역사적 종말을 다룰 때 반드시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이 세대주의 종말론입니다. 여기에 제목만 써 놓고 내용을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써 놓으면 "이게 뭐지?" 할 수 있는데, 예전에 유행했던 『휴거』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저는 어릴 때 『휴거』를 읽으면서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새벽에 잠이 깼는데 부모님, 할머니 다 새벽기도 가셨고 저 혼자 있으면, 다 휴거당하고 나 혼자 남은 줄 알고 마루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얼마나 공포스럽고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이 세대주의적 종말론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예수님께서 공중 재림하시고, 공중 재림하시면서 휴거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때 들림 받은 성도들이 공중에서 7년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지상에서는 지옥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상에서는 7년을 반으로 나눠서 3년 반, 3년 반 전(前) 환란, 후(後) 환란이 벌어지는데, 그때 이 7년의 시간들을 견디고 이긴 자는 마지막에 예수께서 지상 재림하실 때 다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가지고 소설로 만든 것이 『휴거』라는 책인데, 여기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어떤 오류냐 하면,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께서 두 번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공중 재림, 지상 재림. 그래서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께서 두 번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까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세대주의 종말론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시고, 종말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 세 가지만 명확하게 마음에 새기고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1-2. 666과 144,000
다음 페이지를 넘기시면 우리가 자주 들어봤던 666과 144,000이 나옵니다. 이것은 신약 공부할 때도 말씀드렸고 자주 말씀드리는 내용인데, 666은 요한계시록에 나오고, 144,000도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이 숫자에 대한 해석 문제 때문에 이단 사이비들이 많았고, 그에 미혹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는 항상 두 가지 렌즈를 같이 봐야 합니다. 렌즈에는 오목렌즈가 있고 볼록렌즈가 있습니다. 첫째, 요한계시록을 볼 때는 역사적 지평에서 봐야 합니다. 이 말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저자가 기록한 역사적 상황을 빼버리면, 성경을 그냥 공중에 붕 띄워 놓은 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정치적 맥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문을 읽어 보면 신문에서 이렇게 말하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정치적 맥락이 있습니다. 나중에 한 백 년쯤 지나면 우리 후손들이 신문 텍스트만 읽고 그 맥락을 빼버리고 보면, 그냥 사실로서 내용만 읽게 됩니다. 그러면 진짜 진실은 가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볼 때는 항상 역사적 맥락, 정황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 역사적 정황이란 무엇이냐 하면, 핍박받고 있던 당시 상황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거의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지하 카타콤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믿는다는 것이 발각되면 그냥 죽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했던 현실 속에서 교회가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어 보내진 편지의 수신자들이 있습니다.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등의 일곱 교회들입니다. 이 교회들이 신앙생활하면서 견디고 또 견디고 또 견뎌야 했던 이유는, 예수의 십자가가 결국은 그들에게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 성도들에게 소망과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런데 편지를 쓰면서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는 나쁜 놈입니다"라고 써서 편지를 보내다가 들키면 어떻게 됩니까? 나도 죽고 그 편지를 받는 사람도 함께 죽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가 자기들끼리만 아는, 유대인들끼리만 아는 묵시문학의 형태, 곧 그들끼리만 아는 역사적 배경을 아는 사람만 아는 암호 형태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내용들을 먼저 기억하셔야 하고, 두 번째로 요한계시록은 역사적인 사실만 보여주는 책이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도, 오늘 이 시대에도 적용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같은 악랄한 사람은 사라졌지만, 사탄은 또 다른 형태로 우리의 신앙을 공격합니다. 예수 잘 믿지 못하도록 돈을 많이 준다거나, 시간을 많이 준다거나, 세상의 많은 놀 것, 즐길 것, 행복한 것들을 많이 줘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박해이고, 또 다른 형태의 교회에 대한 핍박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견디고 승리하고 이겨 나가야 할 것인가, 요한계시록의 배경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시고 666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5-18절을 보면, 16절에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표 받는다고 하면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짐승의 표입니다. 여기서 '그'가 누구냐 하면 짐승입니다. 우리가 아는 짐승은 개나 소나 말이나 하는 짐승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가지 중요한 상징이 있는데, 첫째는 용이고, 두 번째는 짐승입니다. 용은 사탄을 상징하고, 짐승은 사탄에게 권세를 받은 국가 권력, 곧 로마 황제를 말합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황제라고 쓸 수 없습니다. 이것을 돌려보다가 잡히면 안 되니까, 황제는 짐승이라고 쓰고, 황제에게 권세를 준 것은 사탄, 곧 용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유대 묵시문학 전통에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렇게 읽어 보겠습니다. 15절을 읽어 보면, "짐승 곧 황제가 권세를 받아 그 황제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황제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황제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황제 우상들이 다 있었습니다. 황제의 신상들, 황제 흉상, 동상들이 다 있었는데, 거기에 경배하거나 그 황제의 형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 자는 다 죽였습니다. 경배하는 자에게는 무엇을 줍니까? 표를 줍니다. 이마나 손에 표를 주었습니다.
17절에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을 황제라고 했으니, 황제의 이름이나 황제 이름의 숫자라고 한 것입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666이니라." 곧 황제 이름이 666이라는 뜻입니다.
그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네로 황제의 판박이라고 할 만큼 악질이었습니다. 네로 황제를 로마식 이름으로 풀어서 음가를 적어 보면 다 더해서 666이 나옵니다. 그래서 666은 네로 황제, 곧 황제의 이름입니다. 이것이 역사적 정황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 정황을 무시하고 요한계시록의 666을 그냥 오늘날로 그대로 가져와 버리면, 내 전화번호에 666이 들어갔다고 "이건 짐승의 표니까 번호 바꿔주세요" 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진짜 이 시대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좀 더 다른 렌즈를 끼우고 요한계시록을 살펴본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짐승의 표를 받는다 하는 것은 신앙생활, 곧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랑하는 것, 곧 우상을 내 마음에 두고 사랑하는 것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매매를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이마나 손에 황제 숭배를 하고 표를 받지 않으면 경제활동을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도 내가 신앙 양심을 팔아먹고 돈 많이 벌고, 하나님을 팔아먹고 그 이름을 저버리고 부자로 사는 것, 이것이 짐승의 표 받는 것입니다.
숫자 666이 내 집 전화번호에 있는 것, 이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아무 문제 없습니다. 바코드가 666이다, 이것도 전부 다 헛소리입니다. 다 바꿔도 씁니까? 지금 다 쓰지 않습니까? 신용카드가 666이다, 다 쓰지 않습니까? 신용카드 다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이 그런 식으로 요한계시록을 다 변질시켜 놓고 변형시켜 놓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장난질해 놓은 것입니다.
144,000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4절을 보니까,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신천지도 그렇고 여호와의 증인도 그렇고 144,000을 문자 그대로의 숫자로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144,000명만 구원받는다, 문자 그대로 144,000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엄청나게 많은 수를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144,000은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입니다. 12라는 수는 유대인들 생각에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가 곱해진 수입니다. 12 곱하기 12, 하늘과 땅의 수가 곱해졌는데 그 두 수가 다시 곱해졌습니다. 그리고 1,000이라는 수는 군대의 단위입니다. 천부장, 백부장 할 때 강력한 군대의 단위가 1,000입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군대 조직을 144,000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재해석이 아니고 성경이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7장 9-10절에 보니까,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옵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그래서 144,000은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엄청나게 많은, 각 나라와 민족과 족속과 방언 거기에서 나온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이비 종말론자들, 이단들이 말하는 "144,000은 한정된 숫자다"라고 말하는 것도 그들의 거짓된 속임입니다. 두 가지를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3. 요한계시록의 올바른 이해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에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시는 어떤 의미입니까? 요한계시록은 계시라 했는데, 계시는 드러내는 것입니다. 숨겨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숨겨진 책이라고 오해했고,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도 불편해했고, 배우는 것도 금기시했습니다. 이것 몰라도 구원받고 천당 가는 데 아무런 문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로 인한 폐해가 있었습니다. 이단들이 집중적으로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잘못된 연구를 통해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 가르침을 받아서 잘못 배워서 오늘 교회 안에, 오늘 이 시대 안에 왜곡된 신앙이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드러내는 책입니다. 드러내고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11절을 보시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라고 합니다. 성령에 감동되어, 성령은 어떤 영입니까? 일체의 영입니다. 드러내는데 이 사람한테는 다르게, 저 사람한테는 또 다르게가 아니라, 공통된 영으로 진리의 성령은 나와 너가 함께 공유하도록 가르칩니다. 고넬료에게, 베드로에게 성령께서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 성령은 원래 그렇게 한 가지로 역사하시고 계시하십니다.
11절을 보시면,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를" 교회에 다 계시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요한계시록을 배워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위한 책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정상적인 교회를 위한 책이지, 요한계시록은 이단 대비를 위한 책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종말에 대해서 꼭 필요한 내용들을 살펴본 것입니다.
2. 영적 전쟁
영적 전쟁에 대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영적 전쟁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지 않습니까? 전쟁이라고 하면 일단은 마음을 다잡아야 되고, 전쟁이라고 하면 무기도 챙겨야 하는데, 거기에 영적이라는 말이 붙으니까 엄청난 규모의 대단한 전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대단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합니다.
무엇이 영적 전쟁입니까? 요한일서 3장 8절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영적 전쟁의 정의가 나옵니다. 마귀와 하나님의 아들, 마귀와 하나님의 아들의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편에 속해서 마귀를 상대하는 것이니까, 이 영적 전쟁은 불리합니까, 유리합니까? 유리하다고 말씀하시면 안 되고, 무조건 이겨 놓은 싸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편에서 마귀를 상대하기 때문에, 영적 전쟁은 이길까 질까, 과연 이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미 이겨 놓은 승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다만 소속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디에 속해야 하느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했습니다. 내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죄 지으면 안 됩니다. 정결하고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유지해야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지는 것은 100퍼센트 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예수님이 나에게 손을 거두셔서가 아니라 내가 거룩하지 않고, 내가 죄 짓고, 내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서 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속이 어디냐에 따라서 이 전쟁은 무조건 이겨 놓은 전쟁입니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2-1. 영적 전쟁의 전장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마음이고, 두 번째는 입술입니다. 마귀의 특징이 있는데, 마귀는 모방의 천재입니다. 굉장히 모방을 잘합니다. 똑같이 따라옵니다. 마치 거울 속에 있는 내가 내 모습을 흉내 내는 것처럼 막 똑같이 따라옵니다.
이 제목을 한번 바꿔 볼까요?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 마음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 마음입니다. 그리고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곳, 입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 어딥니까? 입술입니다. 곧 이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 그리고 입술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은 사탄이나 하나님이나 똑같이 마음과 입술을 통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먼저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내 마음속에, 내 영혼 속에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도 우리 마음을 먼저 지배합니다. 마음을 옆 사람은 잘 모릅니다. 가족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나만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 마음속에 악한 영이 틈타고 있는지 나만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마음속에 틈타고 있는 악한 영을 붙잡고 죄의 쾌락을 즐겨야 합니까, 아니면 쫓아내야 합니까? 쫓아내야 합니다. 쫓아내기 위해서 영적 전쟁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합니다. 마귀가 생각을 넣었습니다.
잠언 4장 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합니다.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마음을 지키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고, 내 마음을 성령으로 매일 가득 채워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빈 마음이 되면 빈 마음속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성령이 되도록 항상 성령 충만하게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 파트 공부할 때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 영적인 기본 생활인데, 영적인 기본 생활은 말씀과 기도와 예배 생활을 성실하게 하면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라도 빠뜨리고 모자라게 되면 내 마음은 성령이 점점점점 말라가고, 빠져나가고, 방전되게 됩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두 번째는 입술입니다. 곧 말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입술은 마음을 다스리면, 마음을 잘 관리하면, 마음에 성령으로 가득 차면 입술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됩니다. 이 입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하고 다르게 말이 그렇게 나와 버려서"라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순전히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은 그렇게 변명 안 하지만, 저도 저희 집사람에게 변명을 그렇게 했고, 그렇게 변명을 하지만 사실은 마음에 있는 말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지, 마음에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나옵니까? 입으로? 생각했으니까 나오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 없이 나옵니까? 사람은 마음을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입으로 나오게 됩니다.
입에서 그냥 나오는 것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마음에 품고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죄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내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고 나면, 원망이나 불평이나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하는 말은 사라지고, 우리 마음속에 축복과 행복과 찬양하는 말이 넘쳐 나오게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 15절을 보시면,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합니다. 사람 안에서, 마음속에서 어디를 통해서? 입으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2.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
그렇다면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다섯 가지를 적어 두었는데, 각각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첫째,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습니다. 내가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마귀, 사탄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하는데, 마귀가 어떤 존재냐 하면 마태복음 4장 10-11절에 보면, 마태복음 4장에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이 시험당하실 때 그때 영적 상태가 최악이었습니까, 아니면 최고였습니까?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금식 기도 하고 예수님은 영적으로 굉장히 대단한 상태, 금식 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주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사탄은 이런 존재입니다. 예수님도 시험하고, 영적으로 충만한 자들도 시험하는데 우리를 시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성경 읽기도 하고 1년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매일 내가 새벽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행위를 한다고 사탄이 나를 시험하지 않을까요? 천만에요. 예수님도 시험 받으시는데,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시고 사탄에게 시험당했는데 우리를 시험하지 않겠습니까?
사탄이 마음만 먹으면, 사탄이 뜻만 정하면, 아주 작정하고 나를 무너뜨리려고 작정하면 어찌 무너뜨리지 못하겠습니까?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가져야 합니다.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도 공격했습니다. 영적 상태가 좋은 상태의 예수님도 공격했습니다. 이런 놈입니다. 대단한 사탄입니다.
그리고 또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이 사탄이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가지고 대결을 합니다. 사탄이 시험을 하고 예수님이 말씀을 가지고 "기록되었으되" 하니까, 사탄도 "기록되었으되"라고 이야기합니다. 사탄이 말씀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탄의 정체는 말씀도 잘 알고 영적 상태가 좋을 때 공략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도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뒤에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 사탄이 어떤 존재냐 하면, 마가복음 5장 8절에 보니까,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고 합니다. 더럽다는 말이 뭘까요? 더러운 귀신, 인격을 파괴한다는 뜻입니다. 인격을 파괴합니다. 죄는 결국 흔적을 남깁니다. 죄가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까? 죄는 분명히 흔적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 흔적이, 그 죄의 결과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겹게 만듭니다. 더럽게 만듭니다.
다윗이 남긴 죄를 보십시오. 다윗이 남편이 있는 아내를 빼앗아 썼습니다. 남편을 죽였습니다. 간음하지 말 것, 살인하지 말 것,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 것, 더러운 죄 아닙니까?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럽게 만듭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내가 사탄에게 미혹되어 속아서 지었던 죄들을 보면 수치심을 견딜 수 없습니다. 너무 더러워서, 너무 더럽고 수치스러워서, 그것 때문에 죄 지은 사람은 또 괴로워합니다. 평생 동안 그 죄의 짐을 지고 또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탄은 평생 우리를 우려먹습니다. 죄의식을 가지고 또 공격하고 또 공격합니다. 사탄이 이런 놈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보니까,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꾄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속인다는 뜻입니다. 사탄은 속이는 놈입니다. 사탄은 절대로 바른 말을 해주지 않습니다. 속입니다. 속이되 어떻게 속일까요? 교묘하게 속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뱀에게 속아 넘어갈 때 교묘하게 넘어갔습니다. 어떻게 속입니까? 처음에 접근할 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이 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했습니다. 다 먹으라 했는데 한 가지만 금하셨는데 그렇게 불평불만을 이야기하고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갑니다. 마치 연체동물처럼, 마치 문어가 조만한 틈만 있으면 온 몸이 다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사탄에게는 틈을 주면 곤란합니다.
둘째, 상대를 바로 알았으면 이제 우리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내 자신이 치유받은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 죄의식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죄 지으면 수치스럽습니다. 더럽습니다. 그런데 먼저 내가 치유받은 영혼, 자유한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28-30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나오는데,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몇 명 있었습니까? 남편이 다섯 명 있었습니다. 지금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용서받고 치유를 받았습니다.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이야기하다가 대화하는 중에 말을 꺼내고 예수님과 이야기하다가 온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행동을 보십시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라고 합니다.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갔는데, 사람들 만나기 싫어서 정오에 물 길으러 나온 여인입니다. 이 여인이 남들 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서 쉬고 있을 때, 이 여인이 사람들 만나기 싫어서 물동이 지고 물 길러 나온 여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나니까, 치유받은 영혼이 되고 나니까 사람들을 만나러 동네로 들어가서 예수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내가 예수님 진짜 만나고 나면, 내 부끄러운 과거, 더럽고 죄 짓고 나서 그 더럽고 수치스러운 것, 다 잊어버리고 다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다 부어 버리고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자꾸 들먹입니다. "너 옛날에 그랬잖아, 너 옛날에 그랬잖아." 그런 죄의식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완전히 회개를 하고 난 이후에.
셋째,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영적 전쟁이 일어나는 자리가 마음이고, 그 마음이 표현되는 곳이 입술이기 때문에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시편 51편 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에 나단에게 책망받고 나서 하나님께 노래하고 통회하면서 지은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여기 보니까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구하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있을 때 그때 자기의 영적 상태가 부정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습니다. 죄는 원래 힘을 가져서 관성을 가집니다. 작은 죄가 자라서 큰 인격이 됩니다. 씨앗이 있는데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죄도 역시 자라서 큰 인격이 됩니다. 나중에는 이 죄가 나를 끌고 다닙니다.
처음에 다윗이 밧세바를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봐라" 했을 때, 이것이 작은 죄였는데, "우리야의 아내라? 데려와라" 했을 때 좀 더 컸습니다. 동침했습니다. 엄청나게 컸습니다. 멈춰야 하는데 계속 진행됩니다. 계속 자랍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되느냐, 자기를 속입니다. "나는 왕이야, 이 정도는 괜찮아, 이웃 나라 왕들 보면 다 그렇게 하는데 나도 괜찮아." 그러면서 자기를 속입니다. 정직한 영이 스스로 없어집니다.
죄를 짓고 나면 먼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주변 사람들에게 정직하지 못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이 사람을 적진 제일 앞에다가 두고 용감하게 싸우게 하라." 주변 사람들에게 정직하지 못합니다. 세 번째, 하나님에게 정직하지 못합니다.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 죄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만들어서 자기 자신, 주변 사람, 하나님에게 정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윗이 죄를 회개할 때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호수아 1장 8절에 있습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항상 입에 말씀을 물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항상 말씀을 품고 있으면 내 안에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넷째,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이미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 권세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4장 3-4절을 보십시오. 사탄이 예수를 시험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이라는 권세를 이미 주셨습니다. 대단한 은혜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는데, 이 권세를 받아 누리고 이 권세를 가지고 사용해야 하는데 우리는 말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 사용하지 않습니까?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말씀을 갈고 닦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완성은 내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온전히 나에게 와서 육신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내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된 것입니다. 그쯤 되면 이제 말씀을 권세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 말씀대로 사용하지 않으니까 말씀이 나에게 와서 육신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그냥 죽어 나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와서 그 능력의 말씀이 나에게 와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살아 움직이게 되면, 그러면 우리는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권세가 있습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옛날 목사님들이요, 학력도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많이 가지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맨날 비슷하고 똑같은 설교 하시는데, 그 목사님들의 말씀이 권세 있고 능력 있고, 그 말씀을 들으면 마음에 깊이 찔림이 있는 이유는, 이 어른들이 말씀대로 사시기 때문에, 그 말씀 붙들고 살아내고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고 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이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권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진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무조건 이길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합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리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복종은 안 하고, 하나님께 막 대들고, 하나님께 딴죽 내밀고, 말씀대로 순종도 안 하고 마귀를 대적하면 백전백패입니다. 무조건 잡아먹힙니다. 마귀에게. 그런데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무조건 이깁니다.
다섯째,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 6:10-11). 전신갑주가 쭉 있는데요, 다 읽어 보면 전부 다 나를 방어하는 무기입니다. 유일한 한 가지 공격 무기는 17절에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한 가지의 공격 무기는 검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지기 위해서는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말씀대로 살아내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검이 힘이 있는 검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오늘 배운 내용을 잘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종말을 살아가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백성들이 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이 부족합니까? 깊이 생각하고 채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학기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가 학교를 많이 다녔습니다. 교리학교도 다녔고, 기도학교, 예배학교 다 다녔습니다. 학교를 처음 다니신 분들은 열심히 학교 다니셔서 여기서 졸업장도 받으시고, 열심히 공부하셔서 우등생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셔서 교리학교를 모두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의 울타리를 세워 주시고 말뚝을 박게 하시고, 깊이 있는 신앙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그 토대와 터전을 마련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함께 배우고 깨닫고 느끼고 익힌 것들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하시고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처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마귀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깨닫고,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나를 알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내어서 말씀이 나를 통해 육신이 되고 그 말씀대로 승리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