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교 1강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창세기 1장 31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들어가며
이번 학기 성경공부 주제는 교리 공부입니다. 교리라고 하면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까?",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염려하시는 분이 계실 텐데, 그렇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와서 앉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와서 1시간만 즐기시면 됩니다. 이해시키는 것은 저의 몫이고, 또 성령께서 우리를 이해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목차를 한번 보겠습니다. '교리학교'라는 제목이 있고, 그 아래 순서대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성령님, 교회, 인간, 죄, 성경, 믿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황금률과 십일조, 술과 시나, 종말과 영적 전쟁 등의 과목이 있습니다. 어떤 것부터 먼저 하고 싶으세요? 본인이 땡기는 것이 있을 텐데, 순서를 거슬러서 할 수는 없고 이렇게 순서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16주 동안 공부를 할 텐데, 과목은 지금 총 12주 치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 이유는 1과부터 4과까지는 두 번씩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교회에 대해서는 두 번씩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총 16주가 나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필수 과목 공부를 하기 전에 네 과목을 했습니다. 구약, 신약, 그리고 기도, 예배 이렇게 해서 네 과목을 했습니다. 그중에 구약과 신약은 성경을 읽어가면서 공부하는 것이고, 기도, 예배, 교리는 성경을 가로로 보는 내용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을 창세기 1장 1절부터 시작해서 계시록까지 계속 쭉 읽어가면서 공부하는 방법이 있고, 그다음에 주제를 하나 정해서 성경의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체를 통틀어서 그 주제의 관점으로 보는 공부가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지난번에 했던 예배학교 같은 것입니다. 예배라는 주제로 구약부터 신약까지의 예배라는 주제를 한꺼번에 과를 나누어서 훑어보았습니다. 기도학교도 마찬가지고, 교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교리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고, 성경을 통해서 "아, 하나님은 이런 이런 분이시구나" 하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살펴보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이렇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고, 하나님의 계획은 이렇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 전체를 통해서 추려낸 것입니다. 그래서 뼈를 발라내고 알맹이만, 살만 발라낸 주제별 공부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면, 우리가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가든 아니면 이렇게 주제별로 공부를 하든 어차피 텍스트는 성경입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 없이 인간의 생각대로 공부할 순 없고, 교회의 모든 성경공부는 말 그대로 성경공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도 공부하고 저렇게도 공부하고,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엮여야 옷이 짜이는 것처럼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가면서도 공부하고 주제도 함께 배워가고 공부할 때, 그때 성경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걸 이해하시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숙제도 있습니다. 숙제는 뭐 저거 오라 내라 이런 게 아니고 혼자 하는 것입니다. 혼자 묵상도 하고 생각도 하고 답도 달아보고, 중간중간에 제가 숙제도 공부하면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어떤 것도 논의할 수 없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만물이 시작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존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도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존재의 근원으로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우리 신앙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믿음이 깊어집니다.
교리학교 첫 번째 시간을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든 신앙 지식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하나님 지식을 배우겠습니다.
교리학교 공부할 때는 큰 제목과 작은 제목이 무척 중요합니다. 왜 그런지는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 넘겨가면서 한번 보십시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의 첫째 큰 제목이 무엇입니까? 창조주 하나님. 페이지를 넘기면 큰 3번 전능 전지하신 하나님, 4번 인도하시는 하나님, 5번 기다리시는 하나님, 6번 심판하시는 하나님, 7번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8번 사랑의 하나님. 이게 뭔가 연결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창조하시고, 그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걸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이끌어가시고, 인도하며 이끌어가며 인간이 더디 따라오니까 기다리시고 참아주시고 있네, 알기도 하시고, 그러다가 그 인내가 하나님의 임계점에 도달하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심판으로 끝내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그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시고, 그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전체를 통틀어볼 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공부 끝입니다. 오늘 공부, 다음 주까지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복습하실 때 제목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서 외우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야 라고 사람들에게 설명하시면 됩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는 신앙생활의 연륜이 해가 쌓이다 보면 우리는 설명도 할 수 있고 이야기도 하고 간증을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성경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제목만 잘 알고, 제목만 이해해도 우린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큰 제목을 한번 이렇게 쭉 훑어서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다음에 큰 제목 밑에 있는 작은 제목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창조주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부터 보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작은 제목을 봅시다. 1번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을 창조하시다. 그렇죠. 두 번째는요, 사람을 창조하시다. 세상만 창조하고 사람을 창조하지 않으면 오늘날의 우리라는 존재는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정말 중요한 건 세상의 창조와 더불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조만 하시고 하나님이 인간을 팽개쳐두셨습니까? 아니죠. 어떻게요? 간섭하셔요. 간섭한다는 말이 우리에게 좀 어감상 불편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간섭받기 싫은데 자꾸 부모가 간섭하고 이웃이 간섭하는 것이 싫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의 간섭은 그런 의미의 간섭이 아니라,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하셔서 개입하시고 돌보시고 어떻게 사는지 안부도 물어보시는 그런 의미에서의 간섭입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누구를?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냥 던져두지 않고 어떻게 해요? 간섭하신다. 이해가 되셨죠?
1-1. 세상을 창조하시다
이제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러면 우리가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근거가 성경 어디에 있느냐 하면, 창세기 1장 1절에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창세기 1장 1절은 유추가 아니고 논리가 아니고 선언입니다. 하나님이 어떠어떠해서 이렇게 이렇게 하셨다가 아니라 그냥 선언이에요. 태초에 누가? 하나님이. 무엇을?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의 주어가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특징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로부터, 인간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지혜나 지식이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고, 세상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걸 신앙 고백할 수 있어야 거기서부터 신앙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걸려 넘어지면, 이걸 고백할 수 없으면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창세기 1장 1절에서 이렇게 선언적인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건 하나님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시는 것이죠. 왜냐하면 태초에 그 어느 누구도 없었기 때문에, 태초에 하나님 이외에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그걸 설명한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말한들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한들 그게 납득이 되겠습니까? 이건 오로지 무엇에 몫이냐면, 믿음의 몫이에요. 이걸 우리가 납득하는 것, 내 논리나 내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고 이건 믿음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이 믿음 장 아닙니까?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에서 이걸 한 번 더 짚어주고 있습니다. 교재 71쪽을 보시면,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다룰 때 히브리서 11장을 아주 상세하게 다룰 텐데, 교재 71쪽에 큰 4번에 제목이 뭡니까? '가장 중요한 믿음'인데, 히브리서 11장 3절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라고 시작했죠. 믿음으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지식으로가 아니고 경험으로가 아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세계가 지어진 줄 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는 우리의 일반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성경은 믿음을 처음부터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고 읽으면서 받아들여지고 깨달아지는 것, 이미 우리에게 믿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 자신의 믿음을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주로 그런 얘기 많이 하시는데요.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부족합니다. 믿음이 잘 안 생깁니다." 그런 말씀 하시는데,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믿어지고 깨달아지고, 또 성경을 잘 알고 싶고 이러면 이미 우리는 믿음이 성장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성경 창세기 1장 1절도 넘어가지 못하니까요.
그다음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창세기 1장 3절, 6절, 9절을 한번 보니까 이렇게 얘기합니다. 공통점이 있어요. 하나님이 어떻게 해요? '이르시되'. 6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9절 끝에 보니까 어떻게 있습니까? '그대로 되니라'. 이르시되 이르시되 이르시되 그대로 되니라. 즉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무엇으로? 말씀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지창조, 하나님의 세상 창조는 말씀으로 인한 창조이고, 그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게 다 응답되고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아닙니까? 인간과 하나님은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굉장히 닮은 존재요.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이 가진 언어의 능력과 말씀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에요. 그럼 우리는 말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잘 해야 되고, 조심해야 되고, 그리고 말에 권세가 있다는 걸 분명히 깨닫고 이 말의 권세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됩니다.
저주하는 말, 남을 비방하는 말, 남을 축복하지 않는 말은 그 말이 권세가 있어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이루어지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한테 저주를 그렇게 퍼붓고 하면 그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축복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말이 너무너무 중요하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도 듣고 계시고 탄원도 듣고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우리와 하나님은 굉장히 닮아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1-2. 사람을 창조하시다
그다음 '사람을 창조하시다'로 가보겠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말씀으로 아니면 흙으로? 어떻게요? 흙으로. 흙으로 창조하셨어요. 인간 창조의 재료는 흙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성경에서 기록한 흙은 우리가 자주 보는, 우리가 항상 밟고 다니는 이런 흙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 땅에서 아주 질고 찰진 진흙이라기보다는 먼지, 티끌이라고 보셔야 됩니다. 히브리어 개념에 의하면 먼지, 티끌입니다.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티끌 있잖아요. 날아다니는 티끌, 먼지입니다. 화장해서 한 줌의 흙을 손에 잡아보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쥐어지지 않고,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가버리죠. 그래서 이 화장은 흙을 잡는 순간 "아, 이건 정말 인간이 흙이로구나, 먼지로구나" 하는 걸 알게 되죠.
하나님이 왜 인간을 먼지, 티끌로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이 인간의 유한함과 인간의 연약함과 인간의 본질을 살면서 항상 깨닫고 보라고 우리 인간을 흙으로 만드신 거죠. 원재료가 그건데, 흙의 특징이 어떻습니까? 아주 찰기가 있고 근기가 있을 때는 찰흙을 이렇게 만들어서 사람 모양으로 해놓으면 그럴듯하고 아주 볼품이 있는데, 그게 해서 물기가 빠져나가고 바짝 마르고 나면 잡는 순간 바스러집니다. 흙이 떨어지고 팍 부서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액이 빠져나가면, 우리 몸의 진액이 빠져나가면 앉고 일어설 때 나도 모르게 한번 퍼억 외고 하잖아요. "다 죽겠다"는 말이 항상 있고 "아이고 아이고" 하게 되고, 이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만국 공통인 것 같아요. 미국 할머니도 그렇고, 대한민국 할아버지도 그렇고, 누구나 다 진액이 빠져나가서 우리가 다 흙으로 만들어진 먼지 같은, 그런 티끌 같은 존재라서 인간이 그렇다는 거죠.
만약에 우리 인간이 그냥 흙으로만 만드셨다면 우리 인간은 굉장히 불행하고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여기서 가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 먼지 티끌로 이렇게 큰 걸 크게 이렇게 주물주물하시고, 그다음에 거기에다가 무엇을 불어넣으셨어요?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생기, 하나님의 영이죠. 하나님의 창조는 흙과 하나님의 영의 결합입니다. 인간의 창조가 인간을 창조한 건 먼지 티끌로부터 재료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호흡이 그 속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창조가 이루어진 거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건 내가 먼지 흙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생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생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생기가 사라지고 거두어져 가면 우린 다시 원래 재료인 어떤 것으로 돌아가게 되겠죠.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죽음은 이와 반대입니다. 이 생명의 창조가 흙과 하나님의 생기의 결합이라면, 죽음은 생기와 흙의 분리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내가 주었던 하나님의 생기를 다시 거둬가시는 거예요. 호흡을.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고, 이게 거두어져 가고 나면 인간은 그냥 티끌만 남습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래서 참 지혜로운 인간은 살아갈 때마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아, 나는 먼지로구나, 티끌이로구나, 하나님이 호흡을 거두시면 나는 언제든지 먼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로구나, 하나님 덕분에 산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셔야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에 이제 여자를 창조하신 걸 보겠습니다. 결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창세기 2:21-22)
청년 분들, 어른들이 좋아하는 이런 얘기죠. 남자를 하나님이 왜 깊이 잠들게 하셨을까요? 깨어 있으면 하나님의 창조를 방해하기 때문이에요. 자기 마음대로 "이 여자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이 여자 날씬하게 해주세요, 코는 이렇게 세워주세요" 이러니까, 그냥 눈 감고 입 닫고 빨리 자라고. 잠들어 있으면 자고 나면 내가 완벽한 너의 아내를 만들어주마. 남자들이 생각 없고 단순한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요. 짝만 보더라도 굉장히 까다롭고 굉장히 복잡한 존재가 남자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남자라는 존재를 잘 아시니까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궁금해하는 건, 왜 하나님이 남자는 흙에서 만드시고 여자는 그 원재료를 남자의 갈빗대로부터 가져오셨을까입니다. 똑같이 평등하게 흙으로부터 남자도 여자도 만드시지 않고, 왜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부터 취하셨을까요?
이건 결론부터 말하면 남자와 여자는,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다는 걸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너와 남편은 떨어져 있지 않고, 남편과 아내는 원래부터 한 몸이었다. 너의 갈빗대, 너의 갈빗대를 주어서 아내가 나왔고, 아내 너는 혼자 난 것 같지만 남편의 갈빗대로부터 말미암은 존재다. 내가 배고프면 당신도 배가 고프고, 내가 피곤하면 당신도 피곤하다. 이걸 항상 인식하고 공유하는 존재로 살아가라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려고 남자와 여자를 같은 존재로, 그 몸에서 함께 취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이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결혼의 원리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결혼이죠. 하나님이 하와를 데리고 아담에게 이끌어오셨습니다. 아담은 이 결혼 생활에서 주체적인 행동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찾지도 않았죠. 가만히 있었죠. 하나님이 데리고 왔죠. 만났죠.
그리고 주체적인 행동은 딱 한 번 했는데, 그때 고백했습니다. 고백만 할 수 있어요. 남자는 주도적인 걸 뭔가를 할 수 없어요. 그냥 "너는, 당신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이 고백만 한 것이지 아무것도 주체적인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평생 동안 남자는 주도적인 일을 하지 않고 주는 법 얻어먹고 살지 않습니까? 그저 그렇게 해서 아담도 그렇게 하와와 결혼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또 알 수 있는 것은 그래서 부모가 주도하는 결혼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거죠. 하나님이 이끌어주셔야 되고, 내가 찾아다녀 봐야 별 소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그래서 결혼이 목마르고 빨리 가정을 이루어야 되겠다, 빨리 자녀들 가정을 이루어야 되겠다면 하나님을 괴롭히셔야 되요. 자녀들을 볶아봐야 답이 없습니다. 자녀들을 볶아봐야 힘들게만 해요. 하나님을 계속 괴롭히셔야 됩니다.
"하나님 저 녀석 좀 잠들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저 녀석 눈을 좀 감게 하셔서 여자를 데려다가 그 앞에 세워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결혼을 이끌어가도록 계속 하나님께 간구하고 청원하셔야 됩니다.
1-3. 간섭하시다
이제 사람을 창조하셨구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냥 던져두는 분이 아니시고, 그다음에 간섭하십니다. 어디에 간섭하시는지 봅시다.
인간들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이 내가 배고플 때, 목마를 때, 가난할 때 개입하셨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때도 물론 개입하시지만 창세기 4장 7절과 9절에 보면 이럴 때 개입하셨어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창세기 4:7)
누구에게 말씀하신 겁니까? 가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가인이 어떨 때요? 아벨을 죽이고 싶을 때, 아벨을 때려죽이고 싶을 때, 마음속에 살인의 충동이 마구마구 일어날 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나타나셔서 가인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언제 인간의 삶에 개입하십니까? 갈등 상황 가운데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죄로 들어가고요, 여기서 한 발짝을 멈추면 죄를 짓지 않는 그런 갈등 상황. 할까 말까 망설이는 갈등 상황에 하나님은 반드시 개입해 계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찾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갈등 상황이 있을 때, 그때 잠깐만 호흡을 멈추고, 발걸음을 멈추고, 내 마음속에 개입해 계신 하나님을 찾아보십시오.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건 하지 마, 이제 여기서 멈춰야 돼, 너 그렇게 하면 나중에 막을 수 없는 큰 일이 생겨"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 들릴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갈등 상황에 언제나 간섭하시고, 언제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처럼 죄를 미워하는 분이 없고, 하나님처럼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 없습니다. 인간이 죄 짓는 대로 막 달려갔는데 그걸 내버려두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막으시죠.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또 어디까지 개입하시는지 9절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4:9)
이건 언제 하신 말씀입니까? 아벨을 죽이고 난 뒤예요. 왜 아벨을 때려죽였어요, 가인이. 그러면 하나님은 "넌 죽였으니 끝장이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죄 지은 이후에도 개입하십니다. 죄를 지었어도 돌아오라고 한 번의 기회를 주시는 분이세요. 돌아오라고.
우리가 내 갈등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고 지나쳐서 한 걸음 나아가서 죄를 지었습니다. 죄를 지었어요. 그러면 그때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죄 지은 이후에도 개입하시니까. 그때라도 개입하신 하나님의 손 붙들고 돌아가야 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그걸 잘 했죠. 다윗이 죄 짓고 나서 돌아갔잖아요. 하나님이 개입하셨을 때, 만약 다윗이 나단이 와가지고 한소리 했을 때 "저놈의 목을 쳐라" 이랬으면 끝장이에요. 다윗은. 그때부터 이제는 다윗이다운 다윗일 수가 없어요. 성경의 가장 악한 왕으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돌아왔어요. 개입하시는 하나님, 갈등 상황에서, 죄 지은 이후에도 반드시 개입하신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연 만물에도 개입하세요. 창조하시고 그냥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어오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예레미야 5:22)
무슨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바다를 지으시고 모래를 경계로 정하셔서 바다가 모래를 넘지 못하게 하셨다. 자연 만물에 개입하셨어요. 만약에 하나님이 이 개입을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맨날 쓰나미만 맞아야 돼요. 하나님이 쓰나미를 허락하시는 것, 하나님의 개입의 손길을 잠깐 살짝 놓으실 때 그때 쓰나미가 밀려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만 창조하시고 자연 만물에도 개입하신다. 우리 인생에도 개입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질문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기 전 세상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성경이 이렇게 얘기했죠. 혼돈, 공허, 흑암. 그렇죠. 창조하신 후에 우리가 배웠잖아요. 창세기 공부할 때. 혼돈에서 질서가 생겼고, 또 공허에서 채움이 생겼고, 흑암에서는 빛이 생겼습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사람의 창조와 자연의 창조가 다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말씀드렸죠. 인간의 연약함, 약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 전능 전지하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 보통 대표 기도하시는 장로님들이 이렇게 얘기하시잖아요.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말이 어렵다고 이렇게 흘려들으시는데,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전능과 전지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왜 전능하시고 전지하신지 보겠습니다.
2-1. 창조와 종말의 능력자
이 무슨 말이냐 하면요,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님이 첫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하나님은 모든 세상 만물과 인간까지 다 창조하셨습니다. 시작을 누가 하셨어요? 하나님이 하셨어요. 시작하신 분은 끝낼 권리도 갖고 계십니다. 창조하신 분이 종말의 권리도 갖고 계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우리 집에 가구를 샀어요. 내가 샀어요, 내 돈 주고. 금, 이 가구의 처분권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옆집 아저씨가 갖고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샀는데 내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그걸 팔아먹거나 치워버리면 그때는 집이 어떻게 됩니까? 전쟁이 나죠. 전쟁이. 그 집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아이고 무서워라. 아내가 사서 거기 나둔 것은 가만히 놔둬야 돼요. 그거 함부로 이제 옮겨서도 안 돼요. 저는 그럴 권한이 집에서 하나도 없습니다. 엄두도 내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면 하나님의 창조 이후에 종말도 하나님의 몫이다. 그래서 창세기 19장 24절, 25절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멸한다는 것도 하나님 뜻이에요. "왜 하나님 멸하십니까?" 라고 따질 수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창조주이십니까?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 가장 많은 애정을 갖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물건 하나를 사도 이 물건을 산 내가 이 물건에 대한 가장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과 세상에 대한 모든 애정은 하나님보다 큰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오죽하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고, 오죽하면 홍수를 일으켜서 전 세계를 멸하셨습니까? 오죽하면. 하나님의 무서움에 대해서 이걸 하나님이 무자비하다, 잔인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왜냐 우린 하나님만큼 세상을 사랑하지 않거든요. 우린 하나님만큼 피조물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분이 그걸 멸하신다는데 거기 토달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이라는 건 창조의 권능과 멸하심의 권능까지 하나님이 갖고 계시다. 그걸 기억하셔야 됩니다.
2-2. 생명의 능력자
그렇다면 세상은 이렇게 하시는데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이잖아요. 여기 보십시오. 사무엘상 1장 19절과 20절에 보면 한나가 나와요. 한나가 아들을 갖고 싶어서 그렇게 울고 그렇게 통곡했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았어요. 근데 19절 끝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있어요. '생각하셨다'는 하나님이 돌아보셨다라는 뜻이거든요. 하나님이 돌아보시니까 20절에 어떻게 됐습니까? 한나가 임신했어요. 생명을 누가 주셨어요? 하나님이. 생명의 시작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럼 생명을 거두어가시는 것도 누가 거둬가세요? 하나님. 그 뒤에 봅시다. 역대상 10장 13절과 14절에 보니까요, 사울의 죽음을 말하고 있어요. 14절 중간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누가 죽이셨어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셨어요. 사람을 데려가는 것도 누가 데려가 하신다?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우리는 죽을 자격도 없어요. 내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내 목숨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니까요.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야 할 권리, 살 수 있는 의무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면서 이걸 꼭 기억하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이 땅에 나게 하셨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이 땅을 살아갈 만한 것도 하나님이 주신다. 옛 어른들 말씀하셨잖아요. 지 먹을 복이 가지고 난다고. 이 말 너무 신앙적인 말이에요. 우리가 그걸 찾지 않아서 그렇지 달란트도 주시고, 우리에게 재능도 주시고, 여러 가지 환경과 여건 다 주셨어요. 그걸 발견하고 믿음의 눈으로 찾아야 되겠죠. 생명을 주신 이도 하나님, 거두어가시는 이도 하나님. 그래서 나는 내 생명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2-3. 마음까지 아시는 하나님
그다음 이게 전능이구요. 전지입니다. 전지가 뭡니까? 모든 걸 아신다. 모든 걸 아신다 할 때 하나님이 미래도 아시고 과거도 아시고 이 세상 만물을 운행도 하신다. 이건 아닥지 않아요. 근데 모든 것 중에 가장 궁금한 게 뭐예요? 사람의 마음이죠. 저분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남편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 아들이 지금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게 궁금하잖아요. 사람은 알 수 없어요.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게 전지예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중심, 생각, 계획, 마음속 깊은 곳 말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계획과 생각까지 보고 계십니다. 그 유명한 사무엘의 선택 다윗. 이새의 집에 가서 아들들을 볼 때 그 중심과 생각이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근데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전능과 전지를 정리하면,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주가 되시고 세상을 마지막에 심판하신 심판주도 되신다. 그게 하나님의 전능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도 창조하셨고, 인간의 생명도 거두어갈 수 있는 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이다. 또 하나님은 전지하신데 어디까지 알고 계신다? 인간의 속 마음 깊은 것까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속이려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우리가 숨기는 것 없이 다 가지고 나와야 됩니다. 다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다 토설하고 알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걸 원하시거든요.
질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왜 우리 인생에 자주 개입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하나님은 힘이 있다면서, 나같이 이런 비참하고 힘든 인생에 왜 개입하지 않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이야기해도 할 말이 너무 많아요. 이걸 한 주 동안 생각해 보십시오. 묵상해 보십시오.
또 하나, 하나님은 나의 미래까지도 다 알고 계시는가? 한 가지 이야기를 해드리면요. 12정탐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각 지파당 1명씩 뽑아서 12명의 정탐꾼을 모았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이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정탐 보고를 했는데 10명의 정탐꾼은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단 두 명 갈렙과 여호수아만 하나님 앞에 합한 정탐 보고를 했습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님은 그럼 갈렙과 여호수아가 긍정적인 보고를 할 줄 만세 전부터 알고 계셨을까요?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할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을까요? 여기서 질문, 답은 스스로 일주일 동안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은요, 하나님과 인간은 동역을 하시는데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예요.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셨거든요. 동역자로 세우셨으니까 저를 목사로, 우리를 장로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집사로, 성도로,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맡은 자로 다 주셨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만약 우리 인간을 동역자로 세우지 않았더라면 직분이 무엇이 필요하고, 이 세상에 인간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인간은 타락하고 인간은 넘어지고 죄가 많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우셔서 이 악한 세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희망을 두고 이끌어가시거든요. 12명의 정탐꾼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회를 주신 것이죠. 그 기회를 가지고 12명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기회를 찾아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겁니다. 여기까지 제가 말씀드렸으니까 그다음은 묵상하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3.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기까지 정리하면,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인생에 간섭하고 계신 하나님. 그리고 또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신데 창조주, 심판주가 되시고 인간에게도 역시 그러시고, 그리고 또 인간의 속마음까지 알고 계시고. 그런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인도해 가십니다. 근데 인도하실 때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보겠습니다.
3-1. 앞서 가시는 하나님
먼저 어떻게 해요? 앞서 가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출애굽기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어디에 계신다? 앞에 계신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가 이제 막 출애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광야 길을 한 번도 걸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험한 길을, 걸어가고 난생처음 걸어가는 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낯설고 두려울 수 있다는 걸 하나님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먼저 걸어가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오해하죠.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곁에 있어서 손잡고 걸어가야 되고, 나를 껴안고 가야 되는데 하나님이 껴안고 가지도 않고 손잡아 인도하지도 않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원망하는 거죠.
앞서 가시는 하나님. 우리가 뒤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도하실 때 성미가 급하세요. 하나님 성격이 굉장히 급하거든요. 우리보다 백배는 더 급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뒤에 계시지도 못하고, 옆에 계시지도 못하고, 앞장서서 인도하고 계신다.
위험한 일을 만날 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겪을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이 어려운 일일수록, 난이도가 높은 일일수록 하나님이 앞서 가고 계십니다. 앞서 가시면서 하나님은 거리가 있으니까, 예수님이 양들을 인도할 때 어떻게 하신다고요? "내 양은 내 음성을 안다" 그랬어요. 말씀하십니다. 계속 큰 소리로 말씀하세요. 그 말씀을 듣고 우린 따라가면 됩니다. 내가 그 말씀을 듣고 안 따라가면 광야에서 길을 잃는 거죠.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따라가다가 40년 동안 헤맨 것 아닙니까? 사십 년도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3-2. 돌려 인도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때로는 이렇게도 인도하세요. 지름길로 인도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근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지름길은 한 번도 간 적이 없어요. 한번 보세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인도하실 때 지름길로 인도하셨는가. 예수님도 좁은 길을 말씀하셨구요. 하나님도 이렇게 돌아가게 하십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출애굽기 13:17)
가까우면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가까운데 인도하지 않았어요. 왜요? 블레셋 사람들이 호전적이니까. 가다가 전쟁을 만나면 빨리 이집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영원히 못 돌아오게 하려고. 한번 건너간 바다, 건너갈 때는 바닷길이 열리는데 돌아오려고 다시 막대기 아무리 때려 봐야 안 열려요. "나 돌아갈래" 하고 아무리 외쳐봐야 안 열리니까요. 그래서 그냥 기왕 들어섰으니 이 광야 길 빨리 통과해서 가나안 빨리 가는 게 나아요. 빨리 하나님 백성 되는 게 나아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심애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왔더라" (출애굽기 13:18)
홍해를 건너게 되면 길은 돌아갔지만,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하나님의 기적을 봤습니다. 바다가 열리는 걸 봤잖아요. 생각지도 않았던. 우리가 때로는 둘러가는 길이라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하나님께 원망도 하지만, 그 둘러가는 길을 가다 보면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돼요. 우리 인생에 야, 이런 것도 있구나, 이런 기적이 있구나, 이런 역사가 있구나,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친밀해집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 때문에 둘러둘러, 깨닫게 하시려고 인도하시는 것이죠.
이게 출애굽 1년 차거든요. 7일 곱해서 바로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가게 하셨는데, 출애굽 후 40년째 되던 해가 민수기 21장에 나옵니다. 그때도 하나님 이렇게 하셨어요.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로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수기 21: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는 길로 인도하시질 않으니까 그래서 백성들이 마음이 상해요. 우리가 내가 바라는 길이 있죠. 뻔한 길이니까. 이 길로 가면 빠르다, 이 길로 가면 정확하다 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로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을 때 위로받는 것은 "아, 내가 하나님 백성이 맞구나" 입니다. 돌려서 인도하시는 걸 보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맞구나. 너무 빨리 인도하시면 그때는 덜컥 겁을 해야 돼요. 혹시 내가 하나님 백성이 아닌가 겁을 내야 돼요. 그리고 그때는 잠깐 그 자리에 멈추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여쭤봐야 돼요. "정말 이 길로 가는 게 맞습니까? 혹시 이 길이 바닷길 아닙니까? 가다가 블레셋 만나는 거 아닙니까?" 물어봐요.
3-3. 책임지시는 하나님
세 번째입니다. 페이지를 넘기시면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책임지셔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이끌어내셨는데, 자신 없으시면 이끌어내시지를 않으셔야죠.
여호수아 1장 1절과 2절에 보면요, 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죽고 나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에요.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그랬어요. 이때만 해도 여호수아가 암담하겠죠. 내가 이 많은 백성을 이끌고 어떻게 가나안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요단강도 건너기 전인데요. 두렵죠. 모세가 죽었고, 물어볼 데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이 이루셨어요.
여호수아 11장 23절에 보니까,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이루셨어요. 이루셨다니까요. 인도하시는 하나님, 길을 둘러둘러 돌아가게 하셔도 반드시 어떻게? 이루십니다. 이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질문입니다.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을 언제까지 신뢰할 수 있습니까? 한 대여섯 번 돌아가게 하다 보면 "아 때려치웁시다" 이렇게 할 건지, 언제까지 신뢰하십니까? 여러분들, 될 때까지요. 대단하십니다. 한번 진지하게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이 땅에서 우리 인생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져야 됩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100년 남짓한 짧은 짧은 인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찰나로 지나고 나면 천국에서 영원한 삶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그래서 죽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죠. '사(死) 이후의 삶'이라고 표현합니다. 사(死) 이후의 삶. 앞에 삶은 순간적인 삶이고, 뒤에 삶은 영원한 삶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내 소원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셔서 이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우리가 바라는 것,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집에 가서 교리 공부하는 방법 아시겠죠? 큰 제목을 먼저 읽어보고 이걸 머리에 넣고, 그리고 작은 제목을 읽어서 다시 이걸 엮어가며 공부하시고, 질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주엔 '하나님 두 번째 시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로 이번 학기 교리학교를 시작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고, 구원의 진리에 대해서 깨달아 가고,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 깨닫지 못했던 것을 더 많이 배워가려고 합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능력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고, 깨닫게 하는 통찰력 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가고 배워가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씀 한 절 한 절 마음에 새기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주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