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1) / 전체녹취

교리학교 5강 -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1)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들어가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 공부했고, 이어서 예수님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 또 우리가 아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고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알아왔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는 기쁨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시간으로 끝내면 안 되고, 마음에 새기시고 계속 되뇌이시면 좋겠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도 계속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하고 쭉 설명할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에 걸쳐 함께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삼위일체의 동등성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아버지 하나님은 1등, 아들 그리스도는 2등, 성령님은 3등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대한 이런 이해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교회 시대의 주역이시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각 사람의 마음 깊이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바른 방향을 알려 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올바른 성령 이해가 필요합니다. 은사주의 운동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가는 이 시대에, 말씀에 근거한 성령 이해를 통해서 인격적인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 그리고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기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 중에 한두 가지가 아주 중요한데, 첫 번째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 이 순서가 등수가 정해져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어떠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시고, 성령은 예수님께서 "내가 보혜사 곧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하셨으니까 예수님이 보내야 올 수 있는 분이고, 예수님의 심부름꾼쯤 되니까 조금 더 하등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자리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해부터 일단 불식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다 동등하시다는 것을 먼저 계속해서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령에 대한 이해를 굉장히 저급하게 갖게 됩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 예수님과 똑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령님, 하나님, 예수님은 다 동등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출발이거든요. 이것을 먼저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1-1. 은사주의 운동의 문제

두 번째로 은사주의 운동이라고 되어 있는데, 요즘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신사도운동, 직접 계시, 직통 계시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방언을 강조하고 예언하기를 즐겨하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은사를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배제하고 은사가 가장 신앙생활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말하는 은사주의 운동, 예를 들면 아말감 이빨이 금니로 된다거나, 기도해서 밀면 넘어진다거나 하는 것, 이런 것이 은사주의 운동의 하나의 일면이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아말감이 금이 된다 한들, 능력 있는 목회자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내가 뒤로 넘어간다 한들,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최종 목적은 내 삶의 변화에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최종 목적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내 삶의 더러운 부분이 다시 깨끗해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그 은사를 체험했다고 해서, 아말감 이빨이 금니가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변화되었는가? 나는 과연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은사주의 운동의 가장 심각한 오류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은사에는 열광하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따라가고 추종하고 쫓아가는데, 그런데 그분의 삶이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삶인가? 지난 시간에 예수님 공부할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배웠습니다. 질 만한 십자가, 정말 무거운 십자가를 져서 "이건 참 무겁다" 하는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고 있는가? 과연 도덕적인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저 사람은 도덕성이 괜찮은 사람인가?" 이 문제에 은사주의 운동가들이 걸려서 대부분 다 넘어지십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성령은 절대로 3등이 아니다, 그리고 성령을 공부하는 것은 은사주의 운동을 추종하고 따라가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을 먼저 기억하시고 그다음 공부를 하겠습니다.

1. 구약에 나타난 성령

성령이라고 하면 구약하고 성령하고는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계가 굉장히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사의 연표를 가지고 세계사의 큰 흐름을 나누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크게 3등분으로 역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과 예수님 오시고 난 이후, 이렇게 일단 2등분으로 나눌 수 있고, 예수님 오시고 난 이후도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과 승천하시고 난 이후, 그러면 크게 역사는 3등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역사를 우리는 구약이라고 부릅니다. 오래된 약속, 구약이라고 하죠. 그 구약에는 하나님만 계셨습니까? 예수님도 계셨습니까? 성령님도 계셨습니까? 다 계셨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다 계셨는데 두드러지게 활동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죠.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3년을 보내셨고 이 땅에 33년을 사셨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동안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까? 계셨죠. 성령도 계셨죠. 그러나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 활동하신 분이 누구시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교회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그 교회 시대는 하나님,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계시고 지금도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교회 시대의 주된 사역의 흐름을 끌고 가시는 분은 누구시다? 성령님이시다.

이쯤 되면 우리는 종말이 가까이 왔나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셨고, 예수께서 오셨고,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 예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성령이 오셔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영적인 느낌을 가지고는 계셔야 됩니다.

1-1. 창조 시의 성령

구약에서 성령께서 활동하셨던 자리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이 성령님이시겠죠. 구약에서 성령을 표현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영', '여호와의 영',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성령은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영' 혹은 '여호와의 영'이라는 용어로 불렸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1장은 천지창조인데, 그러면 천지창조 때부터 성령께서는 함께 하셨다, 함께 하시지 않았다? 함께 하셨다. 천지창조 때부터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6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우리, 우리, 우리'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할까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 삼위 하나님을 한꺼번에 같이 통칭하는 말씀이겠죠. 그래서 성령께서는 사람의 창조에도 관여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관여하셨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가 창조될 때부터 우리의 속사람과 생각과 하나님의 솜씨를 다 보고 계셨고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나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2. 여호와의 영

이제 '여호와의 영'이라는 말이 나오죠. 사사기 3장 10절에 보니까 이런 말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여기서 '그'는 옷니엘입니다. 옷니엘, 우리가 주일날 설교 들을 때 들어 봤죠. 옷니엘은 누구의 사위입니까? 갈렙의 사위죠. 갈렙의 딸은 누굽니까? 악사이고, 악사의 남편이고,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사사 중에 첫 번째 사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사로 기름부음 받아서 일하기 직전에 일어났던 일이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습니다. 즉 구약 시대 때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증거와 외적인 증거가 확실해야 되는데, 그 증거가 무엇이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궁금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영이 나에게 임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영을 받은 나는 알 수 있는데 다른 사람도 알까? 내가 나서서 '나 여호와의 영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알아줄까?" 이것을 궁금하게 여기실 수 있습니다. 사사기를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사사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한 외적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아주 뛰어난 싸움의 능력을 허락해 주시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저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외적인 증거를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구약 시대에는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1-3. 성령의 임함과 떠남

사무엘상 16장 13절, 14절에도 다윗이 기름부음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어요. 무엇 하라고요? 왕이 되라고 기름을 부었는데, 왕은 정말 이때 기름부음 받고 나서 십 수 년이 지나서 진짜 왕이 됐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게 하신 이후에, 기름을 부으시고 난 이후에 그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왕업을 수행하는 내적인 왕이 된 겁니다.

여기 나오죠.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마자 이제는 왕으로서의 사역을 감당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이 있으면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누구에게서 떠났습니까? 사울에게서. 사울에게서 떠나니까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내면이 그릇과 같다는 겁니다. 그릇과 같아서 뭔가로 채워져야 되겠죠. 뭔가로 가득 차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나면 여기에 악한 영이 들어오는데, 악한 영이 들어오고 나면 그때부터 인생은 굉장히 번뇌하고 고민하고 괴로워지고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사울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의 영을 가득 받아서 충만했던 사람인데, 도대체 그가 왜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람이 되었느냐? 우리가 사울의 사역 때를 보면 그가 여러 번 실수하고 실패한 적이 있는데, 첫 번째는 순종을 안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셨죠. 아말렉을 어떻게 하라고요? 진멸하라. 짐승이나 사람이나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진멸하라. 그런데 사울은 쓸만한 짐승들은 다 자기가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또 포로로 데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말씀대로 순종해야 되는데,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은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사울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사무엘이 "내가 와서 제사 드리고 번제 드림이 합당하다" 했는데, 사무엘이 기한을 넘겼어요.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그냥 번제 드리고 전장에 나갑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하나님이 택한 왕이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하나님,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온다고 약속한 사무엘은 오지 않고, 블레셋은 지금 코앞에 와 있고, 백성들은 흩어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서 머물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그리고 다윗을 질투했습니다. 자기 밑에 있는 사람들, 함께하는 공동체 사람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 줘야 되는데, 얼마나 미워하고 얼마나 질투했는지 모릅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지니까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있지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거하고 충만하기 위해서는 사울과 반대로 하면 되겠죠. 어떻게 해요? 순종하고, 기도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을 품어 주고, 나보다 잘하는 게 있으면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품어주고, 잘하는 것을 그 사람한테 부탁하고, 내가 좀 못하면 가서 배우기도 하고, 그래야 되겠죠. 그런데 그런 모습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숨결한 영이거든요. 하나님의 영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 기도하는 자,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는 영이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질투하는 자와 어떻게 함께 하겠습니까? 떠나는 게 당연하죠. 사울은 하나님의 영을 잃어버린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1-4. 성령의 임재와 사역

이사야 61장 1절을 보면 이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왜 유명하냐면, 예수님께서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고 사역을 시작하셨거든요. 예수님의 출정식 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이제 앞으로 이렇게 사역을 감당하겠다" 하고 예수님이 첫발을 떼는 장면으로 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시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주셔야 그다음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기름을 부어 주시고 성령의 은혜를 주셔야, 그래야 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성령의 능력과 은혜 없이 일을 한다고 하면 그 일이 너무너무 고됩니다.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 보면 "나, 저 사람은 대단히 많은 사역을 하는구나. 어떻게 일도 하고 저것도 하고, 어떻게 저렇게 기쁨으로 인상 하나 쓰지 않고 할까?" 그런 궁금한 의문이 드시지 않습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기름을 부어 주셔서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니까 그 일을 감당하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인간적인 생각만 남고 나면, 인간의 죄와 인간의 능력으로 도무지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재능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옵니다. 예를 들어 노래 잘하는 사람, 노래 잘하는 것하고 찬양하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노래는 잘하는데 찬양대 여기에 앉혀 놓으면 찬양이 되질 않아요. 노래를 잘하려고 해서, 세상에서 목소리 좋고 노래는 잘하는데, 그런데 내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되지 않습니다.

그 미묘한 차이는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아 보아야, 성령으로 찬양하는 것, 그 기쁨을 느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없으면 노래만 하는 거죠. 노래를 하면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옆에서 이상한 소리 내는 사람이 거슬리고, 저 사람 때문에 하모니가 깨지고, 내 인상은 돌아가고,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자기 중심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너무너무 힘이 듭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혜를 입어야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사역을 처음 시작하실 때 주 여호와의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 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것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정리하면, 구약에 나타난 성령은 창조 시에 함께 계셨고, 그 성령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할 때부터 함께 관여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우리의 연약한 것, 우리의 약점, 강점, 단점까지 모두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두 번째,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는 성령의 은혜를 덧입지 않고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사로서 세움을 받을 때도 그랬고, 왕으로서 기름을 부을 때도 그랬고, 훗날 예수께서 세움을 받을 때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성령이 임할 때도 있고 떠날 때도 있는데, 순종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사람을 품지 못하면 여호와의 영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2. 복음서에 나타난 성령

복음서에는 어떤 성령을 우리가 볼 수 있느냐? 먼저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하고 있는 것이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먼저 보겠습니다.

2-1. 예수님의 세례와 성령

마태복음 3장 16절과 17절에는 예수님의 세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것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위에는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죠. 즉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는 물에서 예수께서 세례 받고 올라오셨죠. 아들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에는 누가 계셨습니까? 성령이 비둘기같이 계셨습니다. 즉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칭찬하셨죠.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하셨던 이유는 예수님의 순종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가서 "나에게 세례를 베풀라" 말씀하셨거든요. 세례 요한이 꺼려합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주님께 세례를 줄 수 있겠습니까?" 죄 없는 분에게, 세례 요한은 주님을 알았으니까요. 그런데 예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세례를 청합니다. 그래서 "이 세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를 원한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겸손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겸손이 떠나고 교만하게 되고 순종이 사라지면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사울에 의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2-2. 성령과 시험

그런데 마태복음 4장 1절을 보시면요, 성령의 또 다른 사역이 나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면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데, 예수께서 성령을 받고 충만했는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러 갔어요. 성령 받은 자도, 성령으로 충만한 자도 시험을 받을 수 있는가 질문하면,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자는 시험도 받지 않는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가 성령 받으면 성령이 직접 우리를 이끌어서 시험의 자리에 밀어 넣기도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내가 이렇게 충만한데, 내가 이렇게 말씀으로 충만하고 은혜가 가득한데, 왜 내 인생에 연이어 시험 거리들이 닥쳐올까? 이 시험이 없어야 되는데, 내가 혹시 충만하지 않은 건 아닌가? 내가 받은 성령이 가짜 성령이 아닌가?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도 사탄에게 세 번이나 시험 받으신 것은 성령이 직접 예수를 이끌고 사탄에게 시험 받으러 끌고 가셨습니다.

우리도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 우리가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을 때도 항상 우리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령 충만한 상태에 있을 때 사탄의 시험을 이기셨죠. 어떻게 했습니까? 지난번에 우리가 본 것처럼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사탄의 시험은 언제든 올 수 있는데,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말씀이고, 그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에게 말씀에 상승 효과가 있어서 사탄의 시험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2-3. 성령과 복음 전파

누가복음 4장 18절, 19절 말씀이 나오는데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아까 우리가 읽었던 이사야 61장 말씀을 예수께서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셔야 주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장 8절과도 굉장히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이 뭐라고 말합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여기서 전제가 뭡니까?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으로 나가는 전제가 "오직 성령이 임하셔야" 권능을 받고 나갈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진짜 복음 전도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제대로 된 복음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복음 전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조차 성령으로 충만할 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너무 쉽게 전도 대원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때 전도할 수 있거든요. 교회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은 최고의, 양질의, 가장 훈련되고, 가장 충실하고, 가장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이제 전도하셔도 됩니다. 이제 나가셔서 복음을 전하셔도 됩니다" 그런 일종의 라이센스가 부여되는 겁니다.

그 전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2명 제자나 70명 제자나 둘씩 둘씩 짝지어서 나가서 실습하라고 보내셨죠. 성령 받기 전까지는 예수님이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예수님이 직접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제는 되었다" 할 때쯤 되어서, "이제는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서 전해도 좋다."

오늘 우리가 제자를 삼는 것, 전도하는 것은 가서 값싼 싸구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복 받으십시오, 예수 믿고 돈 많이 버십시오, 예수 믿고 병 나음을 받으십시오" 이것은 복음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내가 정말 거듭나고, 내가 정말 복음의 역군이 되고,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되었을 때, 그때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데, 내가 전하는 복음이, 구원이 과연 제대로 먹히기나 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가 너무 예배당을 크게 지어 놓고, "가서 다 데려오라, 아무나 다 데려오라" 하니까 아무나 전도하게 되었고, 아무나 들어오게 되었고, 그 아무나 들어오게 된 교회에서 싸구려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고, 싸구려 복음, 값싼 복음을 받은 사람이 아무나 세례 받고, 아무나 집사, 장로, 권사, 목사가 되어서, 교회가 악취처럼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품이 더 빠져야 될 것 같습니다. 더 많이 거품이 빠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 나가도, 정말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 말씀과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야 힘 있는 복음이 됩니다. 예수께서 11명의 복음의 역군을 길러내기 위해서 3년이나 공을 들였는데, 교회는 진짜 전도자를 길러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가? 이 부분은 제가 반성해야 하고, 우리 교회도 지금 고민해야 될 부분이고, 우리도 역시 "나는 참된 전도자인가" 고민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4. 인격적인 성령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성령은 인격적인 분으로 나타납니다. 복음서에서 성령을 '인격적'이라고 표현할 때는 지정의를 함께 갖추신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지정의는 뭡니까? 지성, 감정, 의지를 한꺼번에 같이 가지신 분이시다.

지성

요한복음 14장 26절을 보시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리라." 이것을 거꾸로 하면, "나는 배우고 싶고 알고 싶다", 그러면 내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감성적인 부분만 이해합니다. 찬양할 때 마음이 뜨겁고 눈물이 나고, 기도할 때 간절하게 부르짖고, 주여 삼창 할 때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올 때 "나는 성령 충만했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성령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함께 이끌어가는 분이십니다.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리라." 오늘 이 자리에 오실 때 "아, 나는 오늘 성령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 오늘 성령에 대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떻게 알려주실까?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고 알고 싶어서" 오셨다면, 내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대한 이해를 감정에 치우쳐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성령이 이 은혜주의, 기복주의, 은사주의 운동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이성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래서 부모에게 자꾸 묻죠. 교회 와서 선생님에게 묻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에게 묻는 아이들도 있죠.

그러면 그때 "야, 그냥 따지지 말고 믿어라. 그거하고 구원 받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런 거 몰라도 나중에 천국에서 직접 만나니까 따지지 마라. 어디서 그런 것만 배워 가지고, 머리에 이상한 물이 들어가서" 가르치면 안 된다고 이렇게 혼내면, 성령의 역사를 우리가 방해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가로막는 거예요.

내가 알면 아는 대로 가르쳐 주고, 모르면 아이 손을 붙잡고 그 부서를 맡고 있는 전도사님이나 목사님에게 데리고 와서 "가르쳐 주라" 그래야 되요. 전도사님, 목사님이 모르면 담임목사님한테 데리고 와야 되고, 그렇게 자꾸 질문하고 물어보고 궁금하고 알고 싶어져야 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일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알고 싶고 깨닫고 싶으면 내 속에 성령께서 일하고 계신다, 이해하시면 됩니다.

감정

에베소서 4장 30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성령이 근심한다? 마치 사람 같죠. 감정을 가지고 근심도 하시고 기뻐하시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시고, 성령도 인간처럼 희노애락을 다 느끼시는 분입니다. 성령이 감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의지

고린도전서 12장 11절에 보니까,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그'는 누구입니까? 성령이죠. 성령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의지를 말하는 겁니다.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내가 "오늘 담배 끊겠다, 난 오늘부터 담배를 끊겠다" 하고 끊어 버렸어요. 그러면 그 속에 누가 역사하셨다?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난 오늘부터 술 끊는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신 겁니다.

술 끊고 담배 끊기를 원하시는 분들, 좋지 않은 습관들을 끊내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성령께 구하셔야 됩니다. 성령은 의지의 영이시기 때문에, "나는 의지가 약합니다. 나는 의지가 약해서 3일도 이틀도 일주일도 견디지 못하는데, 성령께서 내 의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구하고, 성령의 의지를 기대해야 됩니다.

성경통독 하겠다고 생각하고 레위기에서 맨날 멈추시는 분들은 성령께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 이번에는 제발 레위기를 좀 넘어가게 해주십시오." 성령께서 나를 강하게 인도하셔서 레위기를 극복하고 민수기로 넘어가고, 그다음 계속 넘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그의 의지로 끌고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지정의를 함께 갖추신 인격적인 분이시다. 그런데 어떤 이에게는 성령이 지성적으로 먼저 활동하시고, 어떤 이에게는 성령이 감정적으로 활동하십니다. 바울 같은 경우를 보면 바울에게는 성령께서 지성으로 먼저 역사하셨습니다. 베드로를 보면 성령께서 감정으로 먼저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유형일까요? 여러분은 어떤 유형입니까?

신앙생활은 한쪽으로 치우치면 계속 한쪽 방향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돌아가서 앞으로 전진해 갈 수 없습니다. 균형을 잡아야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이 감정적인 부분, 의지적인 부분, 지성적인 부분, 이 세 가지를 함께 끌고 나가야 우리가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취약한 부분을 극복하고 돌아오고 또 건너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3. 그리스도가 보내시는 성령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3-1. 보혜사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니까,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여기서 '보혜사'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한자로 이 보혜사는 '보존하다, 은혜를' 이런 뜻입니다. 은혜를 보존하다,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성령께서는 잘 보존해 주시고, 잊지 않게 하시고, 흘러가지 않도록 우리 속에 꼭 붙잡도록 해 주시는 분이 보혜사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헬라어로 보혜사를 보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라고 되어 있는데, '파라'라는 말은 전치사로 '곁에, 옆에, 함께'라는 뜻입니다. 나와 함께 계신 분. 그래서 영어로 보면 보혜사를 'Counselor'라고 되어 있습니다. 상담자, 위로자, 도움을 주는 분. 항상 내 곁에 계셔서 내가 궁금할 때 물어보기도 하고, 슬플 때 나를 위로해 주시기도 하고, 주께 받은 은혜를 흘러가지 않도록 보존해 주시는 분이기도 하고, 그분이 바로 성령님, 보혜사입니다.

3-2. 진리의 영

요한복음 14장 17절에 보면,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당연하죠. 세상은 진리가 없으니까요. 세상에 진리가 있습니까? 진리가 무엇입니까? 어제 이랬다가 오늘 저런 것은 진리입니까, 거짓입니까? 거짓이죠.

어제는 이 사람이 최고의 권력이어서 그 앞에 가서 온갖 아부를 다 부리는데, 오늘이 되니까 그의 권력은 사라져서 다른 권력에 가서 아첨하고 아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권세는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의 영은 세상과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신 진리의 영이십니다.

자연과학적 지식도 진리라 할 수 없습니다. 가설일 뿐이죠.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 진리인 것 같지만, 진리가 아니기도 합니다. 산꼭대기 해발 1,000m 고지에서 물을 끓여 보면 끓는점이 100도보다 낮지 않습니까? 자연과학적 진리를 진리라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알아왔을 뿐이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밖에 온전한 진리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를 증거하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을 믿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3-3. 깨닫게 하시는 영

아까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봤죠. 성령의 지성적인 영역입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할 때,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깨닫지 못할까요? 계속해서 예배도 드리고 말씀도 듣고 성경암송도 하는데, 왜 이렇게 깨달음이 더딜까요?" 그럼 성령께 구하십시오. 성령은 깨닫게 하시는 영이니까요.

"주여, 저를 깨닫게 해 주시고 분별력을 갖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를 깨닫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4. 평안의 영

요한복음 14장 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평안합니까? 가져야 평안하죠. 가져야, 그리고 부족한 것을 채워야 평안합니다. 가지고 채울 때 든든하고 편안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가지지 않아도, 채워지지 않아도, 십 원도 아무것도 없어도 평안합니다. 그래서 표현합니다. 이 평화 누려 보셨습니까? 이 평안 경험해 보셨습니까? 이 평안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바울이 표현을 했는데, 이 신앙생활 하다 보면 비밀이 많습니다. 왜 비밀이 많으냐?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니까요. 어떻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를 모르는 거죠. 가지지 않았는데, 부족한데, 사람들이 볼 때는 좀 미친 사람 같은데, 그런데 평안하거든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주신 평화, 성령께서 내 마음에 "걱정하지 말라, 평안하라" 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누리는 평안입니다. 성령이 내 속에 들어오면 우리는 이런 평안을 얻습니다.

3-5. 성령 충만의 참된 증거

정리를 한번 해보면, 은사주의 운동가들은 성령을 받은 증거를 "방언을 한다, 예언을 한다, 병을 고친다, 썩은 이빨이 금니가 된다, 밀면 넘어진다" 이런 증거들을 쭉 대는데, 그런 증거 말고 오늘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증거들, 우리가 몇 가지 찾아봤지 않습니까?

알고 싶고, 하나님에 대해서 궁금하고, 깨닫고 싶고, 자꾸만 더 배우고 싶고, 그러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찬양할 때 눈물이 나오고, 찬양할 때 기쁨이 넘치고, 내 감정적인 은혜가 차고 넘칠 때 성령께서 함께 하고 계신 것이다. 나는 원래 의지가 약했는데, 그런데 성령께 구하고 기도했더니 성령 하나님께서 나를 이끌어 가시고, 의지력 있게 끌고 가시는 은혜를 느끼고 있다, 그러면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얘기도 나오죠. "진리의 영"이라 했는데,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분별력이 나에게 생긴다, 그러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깨닫게 하시는 영"이라 했는데, 난 예전에는 말씀을 잘 깨닫지 못했는데, 이제는 잘 깨달아진다. 사람도 내가 정말 잘 살펴봤는데, 이제는 저 사람이 나를 속일 사람인지 믿어도 될 사람인지 좀 알만하다, 그러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는 쥐뿔도 가진 것도 없는데, 그런데 평안하다, 그러면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확실한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증거를 가지고 있으면 나는 성령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4. 성령의 사역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은 책망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즉 혼내는 사역이에요. 성령은 우리를 때로 꾸짖기도 하고 혼내시기도 하거든요. '인격적이다' 할 때는 그저 "아이고 잘한다, 잘했다, 그래 그래야지" 부추겨 주는 것만 인격이 아니잖아요. 잘못하면 화내기도 하고 매질하기도 해야죠. 그것이 인격이죠. 부모의 인격이 자식들에게 미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4-1. 죄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오시면 어느 것이 죄이고 어떤 것이 죄가 아닌지를 분별하게 됩니다. 내가 죄 짓고 나면 마음에 찔려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죄 짓고 나면 내 속에 계신 성령이 나를 얼마나 책망하는지 모릅니다. 죄 짓고 나서 기도할 때 눈물이 홍수를 이룹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에 나단이 와서 책망하고 기도할 때 얼마나 많이 울었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죄를 굉장히 많이 책망합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나를 책망하고, 혹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 지은 죄를 회개하도록 계속 내 마음을 두드립니다. 그러면 그때 성령께서 나에게 주신 음성에 순종해서 회개해야 되죠. 그래야 성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죠.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4-2. 의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다시 보지 못함이라"

의로움이 무엇입니까? 도덕적 의가 진짜 의로움입니까? 그렇지 않죠. 내가 그 알량한 도덕적인 의를, 조금 행했다고 나는 의로운 사람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짜 의로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있을 때, 그것이 의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참된 의와 가짜 의를 구별하게 됩니다.

의로운 척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죠. 사두개인들이 있었죠. 서기관, 장로들이 있었죠. 그런 사람들을 예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없는 도덕적 행위의 의로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그런 의와 진짜 의를 구분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 참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4-3. 심판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께서 내 마음에 오시면 종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게 만들어 줍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합니다. 돈도 쌓아놓고, 권력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고, 가진 것 붙잡으려고 애쓰고,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은 심판이 반드시 있다, 세상의 종말은 언제든지 다가올 것이다, 이것을 분명히 기억하게 만들어 줍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므로 겸손하게 만듭니다. "너는 언젠가는 죽을 사람이다, 예수께서 지금 공중 나팔 소리로 재림하실지도 모른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게 만들어 줍니다.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책망하십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나가며: 삼위일체 이해

질문입니다. 구약과 복음서에 나타난 성령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공부를 통해서 살펴보았고요.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옛날 초대교회 때 삼위일체에 대한 이단들이 두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양식론(양태론) 이단입니다. 즉 하나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 하나님이 모양을 바꿔서 아들로, 모양을 바꿔서 성령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기를 이런 예를 들었죠. 태양이 있는데, 태양이 어떨 때는 빛으로, 어떨 때는 열로, 뜨거운 열이 되기도 하고 또 밝은 빛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태양은 하나인데 때로는 열, 때로는 빛. 아버지가 있는데, 아버지가 집에서는 가장이요 아버지인데, 밖에 나가면 자기 역할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게 되고, 또 그 아버지의 집에 가면 아들로 불리게 되잖아요. 그런 식으로 설명했는데, 이것은 양식론 이단입니다.

왜 양식론이 이단이냐?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원래 한 분이신데 모양이 변해서 예수님, 모양이 변해서 성령이라고 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을 때 그러면 하늘은 텅 비어져 있었느냐? 이런 문제가 생기잖아요. 양식론이라서 삼위일체 이단으로 정죄받았습니다.

또 삼신론 이단도 있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이 각자 다 따로 계신다, 그냥 다 따로 계신다. 그것만 말하면 그것은 또 삼신론 이단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에서 나왔죠.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요.

그래서 삼위일체는 많은 신학자들과 교부들이 설명하기를 굉장히 어려워했습니다. '신비'라고 말했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이시다." 이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 신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동시에 세 분이시다.

그런데 그 세 분이 연합을 하시는데, 한 분인 것처럼 연합을 하시는데, 언제 연합하실까요? 인간의 구원 사역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인간이 죄 짓지 않고 세상 가운데 살아가도록 성령을 보내셨고, 똑같은 동등됨을 취할 뿐인데, 똑같은 분인데 순종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하시고, 성령은 아들의 말씀에 순종하시고, 서로가 "내가 왜 가야 돼? 이것은 뭔데 나한테 명령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서로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로 연합하셨습니다.

이것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기까지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성령에 대해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