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교 8강 - 교회에 대해서 2
마태복음 5장 15-16절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은 교회에 대해서 두 번째로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교회에 대해서 절반을 공부했는데, 기억이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문장으로 교회는 어떤 곳인가를 분명히 입에 넣고 가슴에 새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입니다. 하나님이 왜 부르십니까? 훈련하시려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훈련하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의 훈련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훈련의 목적은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원래는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었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훈련을 다 받고 나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닌 주님이 되고 하나님이 됩니다. 그래서 쉽게 내려놓으면, 빨리 내려놓으면 이 훈련은 빨리 끝이 납니다. 훈련하고 나서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을 신앙고백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되고 나서 그다음에 하나님은 그냥 교회 안에 가두어 두지 않으시고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세상에 무엇으로 보내십니까? 빛으로, 소금으로 보내십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훈련시키고 주인을 바꿔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라고 내보내는 곳, 이것이 교회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렇게 말씀드렸고, 그런 교회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또 교회 공동체가 그런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주의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 인생이 교회론적인 모델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부르자마자 훈련시켰고, 그 훈련은 주인 바꾸기의 훈련이었습니다. 그 훈련이 끝날 때쯤 되니까 아브라함은 이제 자기도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고 살아가며, 그렇게 따라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다는 말씀까지 나누었습니다.
1. 교회를 통한 훈련
오늘은 이 가운데서 훈련에 대해서 집중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다음 훈련을 시키는데, 이 훈련에는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훈련, 즉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훈련이 있고, 우리들끼리 자기들끼리 받는 훈련이 있습니다. 우리들끼리 받는 훈련은 사람들끼리 이렇게 많이 모아 놓으면 난 사람도 있고, 풍문 사람도 있고, 별 모양 사람도 있고, 네모난 사람도 있어서, 자기들끼리 서로 부딪치다 보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깎여지고 연단되고 훈련이 됩니다. 그래서 다들 둥글게 둥글게 되어갑니다. 이것을 우리 스스로 받는 훈련이라고 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직접 하시는 훈련이 있습니다.
교회를 통한 훈련이라는 제목으로 훈련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가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두 번째는 말씀 교육, 세 번째는 복음 전파, 네 번째는 교제와 친교, 다섯 번째가 봉사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직접 하시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이 다섯 가지 훈련을 제대로 받아야 주인 바꾸기에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하나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이 훈련의 목적, 최종 목적은 주인을 바꾸는 것인데, 이 주인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섯 가지 중에 한번 이렇게 쓱 훑어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대체로 성도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사람마다 성향은 다 다른데 대체로 좀 내성적이고 조용한 분들은 교제와 친교를 불편해 합니다. 그리고 그냥 예배 드리는 것, 당연히 교회 왔으니까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봉사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는 한 가지 정도는 봉사를 하려고 하는데 나머지는 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에 좀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또 다른 것들은 잘하려고 하지 않는 성향이 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기질적으로 다 다르긴 하지만,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1-1. 예배
교회를 통한 가장 중요한 훈련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셨습니까? 일주일에 우리가 예배를 몇 번 드리는지 말입니다. 교회에서 주일 예배가 있고 저녁 예배가 있는데, 그것 빼고 내가 혼자 드리는 예배, 교회 와서 드리는 주일 저녁 예배를 아끼면서 일주일에 주일날 한 번 예배 드립니다. 한 번입니다. 그리고 수요 예배 한 번, 금요일 예배 한 번, 그래서 세 번입니다. 새벽기도가 일주일에 우리 교회는 토요일 빼고 주일부터 금요일까지 있으니 여섯 번입니다. 그러면 주일, 수요일, 금요일, 새벽기도 여섯 번 하면 아홉 번입니다. 52주를 아홉 번씩 곱해지면 빨리 계산해 보시면 468번입니다. 468번. 그중에 좀 열심히 있는 분들이 저녁 예배까지 다 하면, 더하면 우리 교회가 저녁 예배를 한 달에 마지막 주는 드리지 않으니까 12번을 빼면 40번이 됩니다. 그러면 총 508회입니다. 일 년의 모든 예배를 다 드리면 일 년에 내가 드릴 수 있는 예배는 일 년에 508회 교회 출석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예배가 많을까요? 왜 이렇게 예배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다 드리면 못해도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온다고 하면 1년이면 52번 오는데, 왜 이렇게 예배가 많을까요? 예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예배가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너무너무 중요하니까 예배가 많은 것이고, 그리고 우리 표어처럼 '예배 드림이 기쁨이 됩니다'라는 표어처럼 예배가 정말 중요하니까 이런 표현까지 우리가 붙들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출애굽기 20장 8절에서 10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은 다른 날과는 좀 다르게 구별되어 지켰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날도 구별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 자신도 구별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날은 다른 날과는 좀 다르게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여느 날과 똑같이 살면 그것은 구별하는 안식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하는 것, 구체적으로 우리의 믿음의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 구절에 보니까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6일 동안은 우리 생업을 위해서 힘써 모든 일을 하고, 일곱째 날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0절 끝에 보니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랬으면 우리는 여기서 물음표가 하나 생깁니다.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이렇게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 내가 책임진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에는 하나님의 책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자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이끌고 나오셨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남자만 60만 명이나 이끌고 나왔습니다. 여자, 어린아이, 노인까지 하면 엄청난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끌고 나왔으면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으면 "그래, 내가 너 책임진다" 하는 책임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성경에 보면 병자들을 고쳐 주실 때, 죽은 자를 살리실 때도 자주 하셨던 말씀이 있는데 "울지 말라" 하셨습니다. "울지마라, 울지마라" 하셨으면 우리 예수님의 그 말씀 속에는 "그래, 내가 너 대신, 울지 않게 해 주마. 네 눈에 흐르는 눈물의 근원을 없애 주마" 하는 주님의 자신감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 그렇게 지키면 나머지는 주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배가 주인 바꾸기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왜 중요하냐 하면 이렇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가운데서 하루를 쉬어야 됩니다. 예배를 드리려면 일단은 끊고 해야 되잖아요. 오늘 수요일 내려오셨는데, 계속해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데서 한번 딱 쉬고 저녁에 이 자리에 오셔야 됩니다. 여기 와서 예배드리는 시간은 1시간이지만, 집에서 출발하고 직장에서 출발하고 밥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고 생활의 리듬이 깨집니다. 집에 돌아가면 야식을 먹어야 되고, 목요일 아침이 되면 얼굴이 붓고 피곤하고, 이렇게 계속 리듬이 깨어져야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뭔가 희생이 따라야 됩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이렇게 하면서 내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고, 예배는 주인 바꾸기에 아주 중요한 훈련입니다. 예배드리러 오기 싫을 때 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훈련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한 훈련의 첫 번째 자리로 갖다 놓으실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는 훈련이다, 이것을 잘 기억을 하셔야 됩니다. 처음에는 훈련이어서 부담스럽고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훈련은 몸에 익숙하게 됩니다. 몸에 익숙하게 되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예배드리는 것이 여기 있는 표어처럼 기쁨이 됩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행복해지고 와서 말씀 듣는 것이 힘이 나고, 이 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지 않으면 계속 우리는 훈련 받다가 그만하고, 훈련 받다가 그만하고, 이렇게 끝나 버립니다. 이 단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훈련을 충실히 받아야 됩니다. 그 단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1-2. 말씀 교육
두 번째, 교회를 통한 훈련의 두 번째는 말씀 교육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이 어디에서부터 납니까? 들으면서 납니다. 무엇을 들어야 됩니까?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됩니다. 교회 와서 들어야 될 것들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교회에 오면 사람들의 말도 많거든요. 처음에 교회에 오면 사람들이 교회생활은 이렇게 해야 된다, 교회생활은 이렇게 해야 실수하지 않는다, 사람들 말이 참 많은데 그 사람들 말보다 가장 중요한 말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교회 와서는 사람 따라다니면 곤란하고 말씀을 쫓아다녀야 됩니다.
예배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수요 예배, 수요 성경 공부에도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들어야 여기에서 믿음이 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곧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는 아주 귀한 동력이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기초 성경공부 과정을 다섯 과정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리학교가 필수 과정 다섯 번째 과목입니다. 벌써 첫 번째 신약 공부 시작했고, 두 번째 구약을 했고, 세 번째 기도학교, 네 번째 예배학교, 지금 다섯 번째가 교리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가 우리 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다 배우고 익혀야 될 기초 양육 과정입니다. 이것을 열심히 들어야 그 들음 가운데 믿음이 자라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는 과정은 장작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장작은 왜 필요합니까? 장작은 불 땔 때 필요하잖아요. 이미 불이 붙어 있는 분에게 장작은 계속해서 불이 꺼지지 않도록 공급하는 재료가 됩니다.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될 이유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학교에서 굳이 성경까지 가르쳐야 되나, 그냥 놀이만 하면 된다, 교회에 오는 것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면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장작을 많이 쌓아 둬야 됩니다.
바울처럼 바울이 열심히 말씀을 공부해 놨잖아요. 열심히 장작을 쌓아 놓으니까 때가 되니까 하나님께서 거기에다가 불을 확 붙여 주시는데 이게 놀라운 폭발력이 있는 것입니다. 엄청나게 타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장작이 없으면 됩니까?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셨는데 장작이 요만큼밖에 없으면 금방 타버리고 끝나 버립니다. 금방 소진되어 버리고 그다음에는 장작을 계속 공급해 줘야 하는데 그 이후에 공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배우면 우리도 지난 주에 배운 것 하나도 기억 안 나지요? 하나도 기억 안 나지요? 어릴 때 계속해서 공급해 주고 가르쳐 줘야 됩니다. 교회학교에서는 말씀을 열심히 공급하고 가르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되면 그 장작에다가 하나님의 성령의 불을 내려 주실 텐데 이 불을 받으면 그때부터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를 우리는 기다리고 기뻐할 뿐입니다. 이런 속에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교회학교에서 가르치고, 우리도 지금 은혜를 받고 있다면 그 은혜 가운데 장작을 계속 공급하고 넣어 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말씀 공부는 그런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3. 복음 전파
세 번째 복음 전파입니다. 교회를 통한 훈련에 복음 전파는 전도하는 것이지요, 선교 아닙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을 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하는 것, 선교하는 것, 이것은 너무너무 중요한 일인데, 이것은 우리가 지난번에도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어떤 사람이 전도할 자격이 있습니까? 권능을 받은 사람,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권능이라고 하는 것은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 사명 중에, 그리고 교회가 해야 될 일 중에, 우리가 훈련 받으면서 반드시 해야 될 일 중에,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면 권능을 받았다면 성령충만을 받았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때는 진짜 나가서 전도하고 복음 전하고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도행전 1장에서 8장, 그리고 9장 넘어갈 때까지 이야기는 초대교회의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하나님께서 1장 8절에서 이 사명을 주셨거든요. 너희가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그러면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임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을 다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교회가, 베드로가 한번 설교하면 3000명, 또 한번 설교하면 5000명, 대형교회가 됐습니다. 그러면 그다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제 나가서 전도하러 가야 되지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지요.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가지 않았습니다. 서로 떡을 떼며 교제하며 자기들끼리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거기에다가 폭탄 하나를 딱 던지셨습니다. 핍박을 주신 것입니다. 핍박에 누가 죽었습니까? 야고보가 죽었습니다. 사도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잡혔습니다. 그리고 나서 헤롯이 일대 검거령을 다 내립니다. 교회에 무지막지한 핍박이 일어났지요. 핍박이 일어나야 움직이니까, 박해가 일어나야 사람들이 다 흩어지니까, 억지로 흩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요.
그래서 그런 역사가 사도행전에 나타나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훈련 받는 것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고 또 성장하면, 우리 교회만 사람들을 다 가둬 가지고 교회당 크게 짓고 그리고 나서 교회당 멋지게 꾸미고, 이렇게만 교회가 자꾸 안으로 안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흩어 버리실 것입니다. 그 교회를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의 관심은 흩어져서 나가서 복음 전하는 데 있는 것이거든요. 성령의 은혜를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셨다면, 그래서 그 시기를 영적으로 잘 분별해야 됩니다. 이제 우리가 은혜를 받은 시기가 되었으면 나가야 될 시기를, 나가고 흩어지고 복음 전할 시기가 되었음을 잘 분별하셔야 됩니다. 교회 목회자나 리더십들은 이 시기를 분별하는 영적 감각들이 있어야 됩니다. 누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야 이 시기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 가운데 선교 훈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1-4. 교제와 친교
네 번째 교제와 친교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9절과 10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대접은 서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로라는 것은 나이 불문하고, 직분 불문하고, 학벌 불문, 남녀 상별을 불문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대접받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이라고 대접만 받기만 하는 것 아닙니다. 장로님들이라고 대접만 받기만 하는 것 아닙니다. 어르신들, 장로님들, 교회 새신자들, 다 대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온 가족 새벽기도회를 할 때 식당에서 봉사할 때 장로님들도 하시고, 일 년에 한 번씩 교회에 그해 처음 등록한 새가족들도 앞치마 두르고 봉사하고 대접하지 않습니까? 처음 교회 등록해서 이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 잘 모른다고 나는 계속 대접만 받는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대접은 서로 대접하는 것이고, 내가 걸을 수 있는 힘이 있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으면 서로 교제하고 친교하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대접해야 되고, 어른들도 충분히 고개 숙이고 대접할 수 있고, 그리고 젊은이들도 어른을 공경할 수 있고, 이런 교회 공동체가 천국 같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누구나 다 대접받고 대접하고.
10절에 보니까 봉사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서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10절에 보니까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봉사도 서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봉사는 받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친교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각 남녀선교회나 또 각 기관들, 또 구역이나 공동체에서 친교를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 자리에 왜 앉아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친교는 굉장히 중요한데, 왜 중요하냐 하면 나와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이런 분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남자분인데, 남자끼리 대화를 하려면 술을 한 잔 먹어야 되잖아요. 세상의 남자들은 맨정신에 남자끼리 3분 이상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맨정신에요. 근데 교회 오니까 이 남자들이 술도 안 먹었는데 3시간, 4시간씩 계속 얘기하고 집에 갈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깜짝 놀라서 보니까, 그래서 자기도 이 모임이 궁금해서 계속 나와서 함께 교제를 하다 보니까 자기도 그 모임에 중독이 되더라, 그런 얘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교제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으로는 항상 교제에는 술이 빠지면 안 되었는데, 교회 공동체는 술 없어도, 물 한 잔만 마셔도,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얼마든지 하루 종일, 1박 2일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삶의 공동체거든요. 그래서 친교를 하면 서로 간에 다른 삶의 양태를 접할 수 있습니다. 친교하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분도 만나고, 아, 나도 저 분처럼 신앙생활 하고 싶다는 것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1-5. 봉사
그다음 봉사입니다. 교회를 통한 훈련에 중요한 것, 봉사입니다. 봉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누구의 마음입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빌립보서 2장 7절에 보니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에 보니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진짜 십자가에서 죽어버리셨습니다. 봉사를 하려면 이렇게 봉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봉사는,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자아가 살아있어서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혈기가 막 나잖아요. 내 말을 안 들어 주니까, 봉사는 하는데 나를 알아 주지 않으니까 자꾸만 불쑥불쑥 솟아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예수의 마음으로 십자가에 죽어버려야 됩니다. 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면서 내 섬김을 받는 분들이 나를 어떻게 대해도 나는 없다, 내 이름 석 자는 이미 죽었다, 내가 예수의 마음으로 봉사한다, 이 마음으로 봉사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봉사가 되질 않아요. 그렇지 않으면 봉사를 하면서 자꾸 사람을 나무랍니다. 자꾸 혼을 냅니다. 봉사하면서 가르치려 듭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봉사는 항상 내가 예수님처럼 달려 죽어버리고 없어져 버려야 됩니다. 그러면 시간이 한참 지나면 그 섬김과 봉사를 받는 분이 진심을 알아 줍니다. 그리고 정말 이것이 훌륭한 봉사였구나 깨닫게 됩니다. 나를 다 없애버려야 됩니다. 이렇게 하려면 내가 주인 되면 안 되고 예수께서 내 마음 중심에 자리 잡아야 이런 봉사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는 데 첫 번째 예배, 두 번째 말씀 교육, 세 번째 복음 전파, 네 번째 교제와 친교, 다섯 번째 봉사,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러면 지난주에 공부했던 것과 오늘 공부한 것을 연결해서 우리 한 목소리로, 한 문장으로 제가 한번 얘기해 볼게요.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공동체인데, 왜 부르십니까? 훈련시키려고.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훈련시키십니까? 예배와 말씀 교육과 복음 전파와 교제와 친교, 봉사를 통해 훈련시켜서, 목적은 주인을 바꾸고 신앙고백하게 하고 그리고 세상으로 내어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이제 이해되십니까? 지난주에 우리가 부족했던 것까지 보충했으니까 이것을 한 문장으로 잘 외우시기를 바랍니다. 암기하시고, 그냥 외우려면 안 됩니다. 연습장에 100번 써도 안 외워집니다. 옆에 사람 한 사람 앉혀 놓고 이야기를 계속 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짜증을 내겠지요. 계속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은혜를 받을 때까지 서로 계속 이야기를 하시면서 외우시기를 바랍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5가지 내용으로 훈련한 후에 어떤 목적을 추구합니까? 교회가 훈련시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주인을 바꾸어 세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인을 바꾸었는데 세상으로 보내지 않고 교회 안에 가둬 놓는다면 그것은 사이비 교회요, 잘못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 빛과 소금으로 내보내기 위해서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사의 제자, 교회의 종으로 성도를 성도들을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 하나님의 종으로 훈련시켜서 세상 가운데 나가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세요 하고 보내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밝아질 것 아닙니까? 그래야 세상이 좋아질 것 아닙니까?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2. 현대 교회론
2-1.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몇 가지를 말씀드릴 텐데 현대 교회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옛날에는 모이는 교회만 강조했는데 이제는 더 성경적인 것은 정말 성경적인 것은 흩어지는 교회입니다. 모이는 교회는 우리 눈에 보이는 이런 교회이고, 흩어지는 교회는 내가 흩어지잖아요, 내가 곧 교회인 것입니다. 신앙고백하면 내가 교회가 되는 것이지요. 신앙고백하면 내 머리 위에 뭐가 생긴다고 했습니까? 십자가가 붙잖아요. 나는 흩어져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을 보면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었습니다." 왜 박해가 있었을까요? 흩어지지 않으니까! 성령 받고 권능을 받았는데도 흩어지지 않으니까, 자기들끼리 모여서 떡을 떼고 우리 교회 성도 수 자랑하고 예루살렘 교회 규모 자랑하고 앉아 있으니까, 성령께서 어떻게 하시겠어요? 박해를 일으켜서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렇게 인위적으로 흩어 심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알아서 흩어져 가야 됩니다. 알아서, 알아서 복음 전하러 가야 됩니다. 안 그러면 큰일 납니다. 안 그러면 한 대 맞고, 뒤통수 한 대 맞고, 엉덩이 걷어차이고 그리고 흩어져야 됩니다. 그런 교회는 미련한 교회가 되겠지요.
2-2. 공적 교회
그다음 페이지에 가시면 공적 교회입니다. 공적 교회라는 교회의 개념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너무너무 중요한 교회인데, 지난주에도 우리 한번 나누어 봤습니다. 공적 교회 반대말은 뭘까요? 사적 교회지요. 사유화 된 교회입니다. 사유화 된 교회 많이 보셨지요?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 사유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대물림을 하는 교회라든가, 아니면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교회 의사결정이 거의 다 좌우되는 교회, 사적인 교회입니다. 교회를 사유하는 것,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왜냐? 교회의 머리는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36절과 37절에 보면 예수께서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마지막 말씀이지요. "내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 세 사람은 누굴까요? 첫 번째 제사장, 두 번째 레위인, 세 번째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강도 만나 가지고 거반 죽게 되어 가지고 숨만 붙어 있는데 제사장 지나가 버리고 레위인 지나가 버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가서 들쳐업고 주막에 와서 자기 돈 들여가며 이 사람 고쳐달라고 하고 나중에 돈이 더 들면 내가 와서 돈을 주겠습니다 하고 갔잖아요. 예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하시니, 사람들이 당연히 말하겠지요. 세 번째 사람입니다. 그러면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세상에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이웃으로 여겨야 됩니다.
우리만 좋아서 우리끼리, 우리만, 우리 주변 사람들이 우리 소리 얘기를 하면 안 되고, 진짜 이 교회가 세상 속에 있는 교회이어야 할 때는 우리 교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보고, 아, 우리 양산중앙교회는 우리 이 동네에, 양산 지역의 이웃이다 이렇게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요. 그래야 이 교회가 공적인 교회인 것입니다. 만약에 그럴 경우에 교회에 어려움이 닥치면 누가 나서서 해결해 주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이 해결해 주겠지요. 지역사회가요. 지역사회가 볼 때 지역사회에 교회가 물과 기름처럼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리고 지역사회에 교회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면, 교회가 지역사회에 여러 가지 줄을 대어서 선하지 않은 일에 발을 붙이고 있다면, 각종 공공 기관의 위원이 되어서 각종 정보를 먼저 알아서 교회가 그 일을 선점하고 있다면, 이것은 교회가 해야 될 일이 아닙니다.
손해를 봐야 합니다. 교회 앞에 길이 좀 늦게 나면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수준 있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는 이익에는 느리고 손해 보는 데는 빨라야 됩니다. 이것이 공적 교회입니다. 그래야 지역사회 주민들이 교회를 인정해 줍니다. 자꾸만 교회가 뭔가를 할 때 뒤로 손 쓰려고 하고 높은 사람 만나가지고 청탁하려고 하고, 이거 잡고 부탁하려고 하고 그러면 교회는 지역사회의 유지들과 결탁합니다. 아주 좋지 않은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정말 교회가 이 지역사회에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강도 만난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 줘야 되겠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교회가 되어야지,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줄이 보이고 그런 선이 보여도 눈 딱 감고 지나가셔야 됩니다. 아예 입을 닫고 계셔야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5절과 16절을 보면,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착한 행실'이라 할 때 '착한'이라는 말이 '칼로스'(καλός)라는 헬라어인데, 정직하고 충직하다는 뜻입니다. 어디에 정직합니까? 말씀에 정직합니다. 어디에 충직합니까? 그리스도에게 충직합니다. 우리 행실이 말씀에 충직하고 그리스도에게 충실하면,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 행실을 보고, 우리 교회 하는 모든 모습을 보고,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개의 성경이 있다고 하잖아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처음 펼치는 성경은 믿는 사람들의 행실입니다. 두 번째 성경이 이 성경책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성경부터 펴서 창세기부터 읽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우리 행실이 그들에게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의 행동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고 내 행실이 성경이 되어야 된다는 사실, 바른 행실을 가져야 됩니다. 착한 행실, 정직하고 충직한 행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3. 치유와 회복의 교회
세 번째 현대 교회론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들을 보면, 마태복음 9장 35절을 보면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을 하셨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고치셨습니다. 그래서 현대 교회는 치유하는 교회입니다. 마음의 병이 많잖아요. 요즘 우리가 그래서 교회에서는 상담 사역도 하고 심방도 하고 그렇게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회는 상담과 치유만이 교회의 본질이 아닙니다. 교회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불러서 훈련시키고 내보내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되면 치유받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교회론도 있다는 것이지 교회의 본질과 뼈대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아래 네 가지 목적을 지향합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 되신 분과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분의 뒤를 따르며, 변화되어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이것이 우리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목적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아, 이런 이유에서 우리 교회가 이 네 가지 목적을 지향하는구나 기억하시고 머릿속에 넣어 두시면 좋겠습니다.
3. 가톨릭 교회론
이제 페이지 넘겨서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도대체 어떤가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3-1. 교회론의 기초
첫 번째가 가톨릭 교회의 교회론의 기초입니다. 가톨릭의 교회론의 기초는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18절에 보면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한 것이 베드로 자신이냐, 아니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냐 하는 것이 가톨릭과 개신교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가톨릭에서는 교회를 세우겠다고 한 것이 베드로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의 교회론의 기초는 베드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 되고, 베드로가 순교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곳에 성당을 지었잖아요. 교회를요. 이것이 바티칸이 되고, 그곳이 베드로 대성당이 되었습니다. 교회론의 기초가 사람에게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굉장히 가톨릭 교회의 큰 교회론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3-2. 교황의 무오성
그러다 보니까 이번에 교황의 무오성입니다. 첫 번째 교황이 베드로가 되잖아요. 그 베드로는 예수님께 모든 권한을 전수받은 사람이 됐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 아주 기뻐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뭡니까?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 하셨습니다. 이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한 것을 교황의 수위권에 기본적인 근거로 삼았습니다.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을 열고 닫는 권한을 베드로가 부여받았고, 그래서 베드로 이후로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든 교황들은 이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의 무오성'이라고 하는 것은 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교황이 한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황이 사람 아닙니까? 교황이 사람인데 교황이 한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교회의 수위권이 뭡니까? 교회의 머리 되는 자리입니다. 교회 머리가 누구십니까? 그리스도이신데, 교회 머리를 교황으로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례로 과거에 어느 대통령이 바티칸을 순방하여 교황과 함께 미사도 드리고 직접 만나서 대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황의 통역을 맡았던 바티칸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신부가 대통령의 안보실장에게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선물이 뭐냐면 테레사 수녀가 죽기 전에 입었던 옷 조각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죽기 전에 입었던 옷을 조각 내어서 가지고 있다가 귀한 손님이 오면 선물로 주는 모양입니다. "앞으로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수많은 교리로 가톨릭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한 가지 사건이 훨씬 더 지금 현재 가톨릭의 신학적 수준과 그들의 믿음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옷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곳에 우리가 어디 가면 옛날에 유명한 목사님들 기념관도 있고 또 교회에 기념관을 해놓은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신격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기독교 역사 박물관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보고 몸으로 느끼고 후세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교육용입니다. 그것을 조각 내어 가지고 있으면서 여기에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 부적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부적이지요. 부적 써 가지고 주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 들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그것 들고 있으면 남북통일이 그냥 일어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 아닙니까? 이것이 오늘 그들의 현 주소입니다.
3-3. 마리아 숭배
그다음 마리아 숭배입니다. 마리아 숭배 사상을 정리를 좀 했는데 우리 한번 보시겠습니다. 다섯 가지를 보셔야 됩니다. 첫 번째는 가톨릭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가 마리아 숭배는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 이것은 성경의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의 형제들 이름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 이름이 나오는데, 그러면 그것을 가톨릭에서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면, 예수님의 친동생들이 아니고 예수님의 사촌이었다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렇게 설명할 수 있는 성서적 근거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원죄가 없었으며 평생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성경 어디에도 이런 이야기는 있지 않습니다.
셋째, 마리아는 육체로 승천했다. 성경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두 분 계신데, 에녹과 엘리야 두 분입니다. 마리아에 대해서 성경이 그 어디에도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다.
넷째,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다. 교회의 어머니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육체의 어머니였으니까요. 이 정도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한 발짝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해 버리니까, 하나님의 어머니 교회가 생겨나는 이유가 이것인데, 무섭지요.
다섯 번째, 마리아는 구원을 위한 중재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예수님께 나가기 전에 마리아에게 부탁해서 예수님께 기도 드려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기도의 순서를, 중재 순서를, 내가 마리아에게 기도하고 마리아는 아들 예수께 부탁하고 예수님이 그것을 다 들고 결재 서류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조입니다. 그렇게 마리아를 구원의 중재자로 격상시켜 놓았습니다. 이 다섯 가지가 심각한 마리아론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3-4. 연옥 교리
네 번째, 연옥 교리입니다. 연옥 들어보셨습니까? 연옥은 지옥입니까? 지옥 아닙니까? 지옥하고는 다릅니다. 지옥하고는 다른데 연옥에 있는 연(煉)자가 '단련하다', '달구다' 할 때 연 자거든요. 연옥을 정화의 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제가 한 말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이 땅에서 용서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 자기 죄가 많았는데 이 죄를 다 사함받고 다 풀고 다 정리하고 그리고 죽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연옥에 가서 일정 기간 정화의 불로 연단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때가 되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톨릭 기도문에 보면 연옥에 있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문이 있습니다. 면죄부를 팔 때 이렇게 팔았잖아요. 너희들이 이 면죄부를 사서 그 돈이 땅에 떨어지는 순간, 황금 통에 쨍 하고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는 네 조상들의 영혼이 바로 천국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팔지 않았습니까? 연옥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연옥 교리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은 지옥과 천국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연옥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고, 그리고 단테의 「신곡」에도 연옥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중세의 서양을 지내온 사람들은 연옥에 대해서 당연하게 있다고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3-5. 칠성사
다섯 번째, 칠성사입니다. 일곱 가지 성사인데 보시면 일곱 가지 성사가 이렇게 나옵니다. 가톨릭에서 하고 있는 드리고 있는 성사에요. 세례, 성만찬, 견진, 고해, 서품, 혼인, 종부, 여기 일곱 가지 성사 중에 어떤 사람이라도 일곱 가지를 다 하지 못합니다. 사제가 되면 뭘 못합니까? 혼인 성사를 못하지요. 근데 사제가 되지 않는 일반인들은 뭘 못합니까? 서품 성사를 못하지요. 그래서 칠(七)이라는 것은 완전한 숫자인데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함을 갖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해야 여섯 가지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입니다.
그런데 일곱 가지 중에 오늘 우리 개신교회에서 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앞에 있는 두 가지 세례와 성만찬, 두 가지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비성경적인 것이 있는데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가 고해입니다. 고해성사가 뭡니까? 내가 직접 하나님께 나가서 내 죄를 고백하지 않고 사제에게 가서 대신 얘기하잖아요. "제가 어쩌고저쩌고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제가 "그러면 이제 앞으로 이 죄를 구해서, 제가 하나님께 이 죄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이제 누구누구께서는 가서 앞으로 주기도문을 100번 쓰십시오" 이렇게 숙제를 주지요. 그리고 와서 "아주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고 사십시오, 봉사를 하십시오" 그러면서 이제 덕을 쌓으면 이 죄가 사해진다고 있지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둘째, 종부성사입니다. 종부성사는 죽을 때 하는 것인데, 종부성사를 받지 못하면 연옥에 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반드시 사제를 모시고 종부성사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아주 비성경적인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 교회론의 기초, 교황의 무오성, 교회 수위권, 마리아 숭배 사상, 연옥 교리, 칠성사를 살펴보았습니다. 터무니없다는 것, 그리고 한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습니다.
마무리
이제 교회에 대해서 마치겠습니다.
첫 번째 과제는 교회에 대해서 배운 내용을 잘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이런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계속 말씀하고 함께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시면서 나눠 보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이 시대가 바라는 교회상은 어떤 모습이며 우리 교회는 무엇이 부족합니까? 한번 써 보시기 바랍니다. 시대가 바라는 교회상, 그리고 우리 교회는 거기에서 뭐가 모자란다 써 보시고,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직접 말씀도 하시고 또 기도도 하시고, 그래서 보다 더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 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회에 대해서 함께 나누며 귀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런 곳이며 이렇게 영광된 곳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갖가지 방법으로 훈련시키셔서 주인을 바꾸게 하시고, 신앙고백 받으신 이후에 성령 충만하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세상 한가운데로 보내심을 믿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는 주의 백성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가 사적인 교회가 되지 않게 해 주시고, 우리 교회가 거룩한 공적 책임을 감당하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교회 되게 해 주시고 마리아 숭배 같은 어리석은 일에 빠지지 않는, 참으로 진리 위에 굳게 서는 교회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