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전체녹취

데살로니가전후서 특강 7 -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2장)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후서 2:16-17)

오늘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데살로니가전후서론 일곱 번째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기록 연대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바로 이어서 기록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간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전서와 후서 사이에는 크게 이질감이 없고, 문체나 문법, 내용의 변화도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조금 더 압축적으로, 더 중요한 것을 추려서 한 번 더 요약하고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가 어찌 보면 전서의 압축판이니, 이것을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전서까지 이해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1장에서는 고난에 대처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오늘 2장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말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좀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 후서 2장의 종말 이야기는 계시록을 보는 것처럼 아주 특별하고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1. 종말의 징조

1-1. 거짓 가르침의 유형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하게 고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것은 재림의 날 아닙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다른 말로 하면 종말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우리가 그 앞에 모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영접하러 가야 할 것 아닙니까?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나팔 소리로 이 땅에 재림하시는 예수님, 그분을 영접하기 위해 성도들이 그 앞에 모일 것 아닙니까? 지금 그래서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하여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교회에 그릇된 종말론을 유포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부류가 "예수님이 이미 재림하셨다던데, 너 그거 몰랐냐? 지금 재림주가 나타나셨다는데 왜 그거 아직까지 모르고 있냐?"라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주로 어떤 식으로 거짓말합니까? 첫째는 영으로, 두 번째는 말로, 세 번째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입니다. 영으로는 무엇입니까? "내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는데"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말로 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누가 이런 말을 했다는데, 예를 들어 바울이, 디모데가, 혹은 실라가 이렇게 말했다는데"라고 합니다. 그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요즘 같으면 삼자대면하자, 전화해볼까 할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바울이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쓰고 있고,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곧 마게도냐에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을 찾아와서 만나서 삼자대면하고 확인합니까? 그런 거짓 정보를,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지도 않았는데 "예수께서 이미 재림하셨다는 편지를 바울이 썼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뒤의 두 가지는 사실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도 미혹되는 것 중에 하나가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 육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하루 세 끼 먹어야 살고, 잠을 자야 살고, 항상 우리는 영보다는 육에 가까운 삶을 삽니다. 그런데 어떤 누군가가 "내가 계시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하면 일단은 기가 한번 팍 죽고 시작합니다. "그런가? 저 사람이 되게 영적이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맞춰보는 구조입니다. "저 사람 기도할 때 보니까 그래도 방언으로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할 때도 막 우는 거 내가 봤어." 이렇게 사람들이 뭔가 영적이라는 말에 약합니다. 나는 육적인데 저 사람은 영적이고 하나님의 음성까지 들었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재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까, 거기에 한 코가 팍 죽고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검증이 필요한데, 무엇에 검증받아야 됩니까? 말씀에 검증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것을 맞춰봐야 합니다. 일치가 중요합니다. 모든 성령의 음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꿈으로 말씀하셨다, 무엇을 이야기하셨다" 하면,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맞춰보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모르겠으면 입 밖으로 내지 말고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살다 보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말씀이 나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막 떠들고 다니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셨다고요? 예수님의 재림을 누가 압니까?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맞추어 보면 이것이 다 가짜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소위 이 시대도 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영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 성령께서 나에게 직접 계시하셨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러면 그것을 본인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으로 검증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전부 다 사이비이고 가짜입니다. 그래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나는 그런 것이 없는데 막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지요. "예수님 오셨다며? 그럼 나는 왜 못 만났지? 그러면 지금부터 환란이 시작되는 건가?" 이런 것 겁내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의 일치가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으면 말씀으로 일치되면 흔들리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영이지, 절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두렵게 하는 영이 아닙니다. 이 영 분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평안의 영이지 두려움의 영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고 불안감을 조성해서 사람들을 끌고 갑니다.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보이스피싱 하는 것들, 전부 다 사탄이 하는 짓 아닙니까? 전부 다 얼마나 두렵게 합니까?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고 겁을 내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시야가 좁아져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두렵게 하거나 마음을 흔드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2. 배교하는 일

또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징조가 두 가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몰라요.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른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징조는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가지 징조입니다.

3절에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인간이 어떤 말을 해도, 난리굿을 쳐도, 절대로 거기에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마십시오. 배교하는 일이 먼저 있다고 했습니다. 배교가 무엇입니까? 요즘 이 배교라는 말을 신천지가 하도 써서 우리는 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배교는 원래 본뜻이 이것입니다. 아포스타시아(ἀποστασία), 진리를 저버린 상태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말씀이지요. 즉 배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배교도 못합니다. 처음부터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가 저버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배교하는 사람들은 알았다가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왔다가 가는 사람들, 어설프게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내성이 생겨서 훨씬 더 강력합니다. 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첫 번째 징조가 배교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저버리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이 세력화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없을까요? 교회 밖으로 나가야만, "나 이제 교회 왔다가 이제 교회 끊을래"라고 하는 사람들만 배교하는 사람들일까요? 진짜 심각한 종말의 문제는 교회 안에 몸뚱아리는 있으면서, 교회 안에 왔다 갔다 하긴 하는데 진리를 저버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임할 때, 주의 날이 임하는 첫 번째 징조가 교회 공동체가 배교하는 사람으로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인데, 이 교회 공동체의 상당수가 진리를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그 교회를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노아 시대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이 서로 통혼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담, 셋, 에노스의 예배 공동체 족보들 아닙니까?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족보 아닙니까? 예배 공동체 백성들이 예배 공동체를 떠나서 세상으로 세속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더 이상 하나님의 공동체에 더 이상 희망을 둘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쓸어버리셨잖아요. 그러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첫 번째 징조는 교회가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공동체에, 우리 공동체에 진리를 저버린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저버린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이것은 지도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성도들은 그렇잖아요. 그래서 영적인 지도자가, 말씀을 먹이는 저 같은 사람들이, 교회 장로님들, 중직들, 앞서 있는 분들이 진리를 저버리면 그 공동체는 급속도로 타락합니다. 순식간에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앞서 있는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종말이 다가온다, 주의 날이 임할 때가 다가온다 하면, 교회가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해 갑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이제 종말이 좀 가까이 온 것 같습니까? 이 시대가 두렵지 않습니까?

1-3. 불법의 사람

두 번째 징조입니다.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날이 이르지 아니하니."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면 종말이 가까이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이 불법의 사람을 사람들이 많이 유추했습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쓸 때 그 당시는 로마 치하였으니까, 사람들은 이 불법의 사람을 네로 황제였을 것이라고, 혹은 예루살렘 성을 주후 70년에 파괴한 디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디도는 나중에 황제가 됩니다. 또 디도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디도는 아들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 황제였을 것이라고, 등등 사람들이 시대를 쭉 거쳐가면서 불법의 사람이 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종말이 오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 시대로 넘어오면서 히틀러가 불법의 사람이라고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쭉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불법의 사람은 따지고 보면 아직까지 진짜 불법의 사람은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언젠가 정말 이 모든 인간들을 다 모아놓은 것보다 더 악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그 때와 시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진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은, 이 불법의 사람은 도미티아누스 황제나 네로 황제 같은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운데도 있다는 뜻입니다. 말을 한번 풀어보십시오. 불법이 무엇입니까? 법을 어기는 것 아닙니까? 법이 무엇입니까? 질서입니다. 법은 질서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질서는 무엇을 기준으로 합니까?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서 혼돈에서 질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깨뜨리는 것이 불법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하나님의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그 질서는 말씀의 질서입니다. 제가 전에 전서 말씀 드릴 때도 말씀을 드렸는데, 사람들은 교회에서 질서라고 하면 이 위계질서를 생각합니다. 위계질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이야기하면 무조건 들어야 하고, 장로님이 이야기하면 무조건 들어야 하고, 어른이 이야기하면 무조건 들어야 하는 그런 위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법, 그것이 질서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는 것이 불법입니다. 그 불법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지배하게 될 때, 그때 심판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언제 종말에만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 가정에도 지금 당장 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 교회에도 지금 당장 임할 수도 있습니다. 종말의 때로만 미룰 것이 아닙니다. "우린 아직까지 이런 악한 사람들을 다 모아놓은 것 같은 불법의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말씀드렸지요. 그 앞의 것, 배교하는 일. 교회를 따지고 보십시오. 배교, 하나님의 진리를 저버리는 일, 불법, 하나님의 법의 질서를 깨뜨리는 일, 이것이 교회 공동체에서 일어나면, 이것이 우리 가정에서 일어나면, 그때 종말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여러분, 창조 질서가 하나님 말씀의 질서 아닙니까? 창조 질서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남자와 여자요,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과 2장을 가정에 집중하셨습니다. 남자를 창조하시고 여자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가정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이 창조 질서입니다. 하나님 법 안에 있는 질서입니다. 그런데 그 질서가, 그 창조 질서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세워진 그 가정의 질서가 지금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통용되지 못하잖아요. 그 질서가 깨어지고 있잖아요. 그 질서를 깨뜨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이 생각하잖아요. 그러니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온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런 것을 인식하시고 보시면 됩니다.

이 불법의 사람들은 어떤 인간들입니까? 4절에 "그는 대적하는 자라"고 합니다. 누구를 대적할까요?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입니다.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를 받는 것에 대항하여" 대항한다는 말이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그 위를 넘어서서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하나님 성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 중요합니다. 성전에 있습니다. 성전에 자리 잡고 똬리 틀고 앉아 있습니다. 아예 성전 밖에 있으면 괜찮은데 성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고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면, 그것이 하나님 아닙니까? 자기가,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사는 것 아닙니까? 그런 자들, 그런 자들이 가까이 오면 심판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딴 것 볼 필요 없습니다. 이 종말의 때, 내가 그런 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야 합니다. 내가 배교하는 자가 되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불법의 사람이 되지 않기를, 내가 성전에 앉아서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자가 되지 않기를, 그것을 내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안전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3절에서 26절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면 믿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종말의 날에 어떻게 오신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나팔 소리로, 예수께서 재림하신 날은 모든 사람들이 믿는 자가 다 알아보도록, 알아듣도록 오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모르게 예수님이 오신다고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믿지 마라 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미혹되는 이유가 표적과 기사,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뒤에 가면 또 나옵니다. 이런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도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을 행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종말일 때에 능력을 행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능력 보는 것은 뒤에 가면 또 나오는데, 이것이 왜 무섭습니까? 왜 무섭겠습니까? 우리 능력을 사모하잖아요. 능력을 사모하는데 능력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조금 이따가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2. 참된 분별력

2-1. 영광의 귀속

계시록 13장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계시록 말씀을 우리가 이전에 공부했는데, 계시록에서 말하는 용은 사탄입니다. 짐승은 국가권력입니다. 사탄이 국가권력에게, 즉 로마 황제에게 권세를 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국가권력인 로마 황제는 사탄에게 받은 권세를 가지고 능력을 행합니다. 황제가 능력이 있습니다. 황제가 전쟁에 나가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누구에게 받은 권세로입니까? 사탄에게 받은 권세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능력만 보고 따라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출처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출처가 사탄 마귀에서 나온 것인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그 출처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도 조금 이따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다음, 막는 자와 막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바울이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함께 있을 때 이미 이 이야기를 다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하지요.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그의 때라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를 말합니다. 즉 이것을 쉽게 말씀드리면, 불법의 사람, 이 모든 세상의 권력과 세상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악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때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뜻입니다.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7절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하나님이 막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활동하지 못하도록 막고 계십니다.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그때는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입니다. 즉 공중의 권세자인 악한 영이 활동할 때도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뜻입니다. 사탄 마귀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계시록 19장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계시록 공부할 때 이미 다뤘지만 한 번 더 보겠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사도 요한이 하늘에 열린 환상을 봤습니다. 백마를 봤고요, 백마를 타고 계신 분을 봤습니다. 백마를 타고 계신 분이 누구일까요?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입니다.

여러분, 충신이라는 것은 누구에 대한 충성 아닙니까?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에 대해서 충성하시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입니다. 진실이라는 것은 누구에 대해서 진실하시겠습니까? 사람에 대해서입니다. 그래서 충신과 진실은, 예수님은 위로는 하나님에게 충성하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진실하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두 가지 이름입니다. 예수님의 양가적인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하셨기 때문에 명령에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사람에게 진실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릇되거나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님에 대해서는 충신이요, 사람에 대해서는 진실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에게 가져와 보면, 우리는 예수님 따르는 제자인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스러워야 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니까요.

13절을 보십시오.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백마를 타고 계신 예수님이 피 뿌린 옷을 입고 계셨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아닙니까? 예수님이 말씀이잖아요. 말씀이 곧 로고스(λόγος) 아닙니까?

14절,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하늘에 있는 군대는 누구입니까? 순교해서, 예수 잘 믿다가 이미 돌아가셔서 천국에 가 계신 우리 선배님들, 우리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그분들을 하늘에 있는 군대라 했습니다. 그분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순교하거나, 이 땅에서 예수 잘 믿다가 천국 가신 분들은 예수님처럼 백마 타고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천국의 그림을 한번 그려보십시오. 얼마나 영광됩니까?

그다음, "그의 입에서" 즉 백마 타고 계신 예수님 입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예리한 검입니다. 예리한 검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검입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6장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은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은 충신과 진실이다. 이름이 예수님은 그 입에 예리한 검, 말씀을 갖고 계신다. 우리는 예수 따르는 제자다.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스럽고, 이웃에 대해서 진실해야 하고, 우리도 입에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있어야 이 세상에 악한 권세를 치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든지 말든지, 불법한 사람이 나타나든지 말든지, 세상에 종말이 곧 내일 닥치든지 말든지,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거기에 흔들리거나 거기에 속거나, 그것 때문에 따라다니거나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거나, 매일 뉴스 24시간 틀어놓고 그것 보고, 주가는 왜 이렇게 떨어지나 그거 걱정하지 말고,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하고, 사람에 대해서 진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면 됩니다. 그러면 끝나는 것입니다. 종말을 살아가는 자의 자세를 이렇게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두려워하거나 흔들리거나 겁내지 말고, 세상에 어떤 난리가 일어나도 고통이 있겠지요. 육체의 고통, 잠시 잠깐의 고통이 있고, 또 우리 자녀들이 당하는 고통, 우리 일가가 당하는 고통, 우리 공동체가 당하는 고통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 땅에서 흐르는 눈물은 잠시요, 이 고통은 잠깐이요, 백마 타고 가시는 우리 예수님의 뒤를 우리가 백마 타고 따른다고 했는데, 그 천국 소망 가지고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이것입니다. 예수님 따르는 제자로 하나님에 대해서 충성하고, 사람들에 대해서 진실하고, 거짓말 좀 하지 말고, 제발 거짓을 말하지 말고, 그리고 입에 말씀 가지고 그렇게 살면 됩니다. 다른 것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종말을 사는 사람의 자세는 단순해야 합니다. 단순해야 합니다.

바울이 그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혹은 이 말하고 저 말하고 복잡하게 했는데, 아까 제가 뒤에 말씀드린다고 한 것을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9절을 보시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사람입니다.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의 말을 빼버리고 보면, 능력과 표적과 거짓이라는 말을 빼보십시오. 다시 읽어볼게요. "모든 능력과 표적과 기적과." 여기까지만 보면 사모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능력과 표적과 기적 다 사모하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악한 자들이 활동해서, 사탄의 활동을 따라서 거짓 기적이 나타나는지, 아니면 이것이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아까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도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사탄도 능력을 줍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줍니다. 그런데 이 본질적인 차이를 어떻게 분별하느냐가 중요한데, 이 분별은 간단합니다. 누구에게 영광이 돌아가느냐를 보시면 됩니다. 누가 영광을 받느냐를 보시면 됩니다.

출애굽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를 만나면 지팡이를 던지라 하셨습니다. 손을 여기 넣었다가 빼면 나병이 있을 것이고, 다시 넣었다가 빼면 깨끗해질 것이고, 지팡이 던지면 뱀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 딱 믿고 바로에게 가서 "자, 보세요" 하고 지팡이 던졌습니다. 뱀이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비웃습니다. 옆에 마술사들, 이집트의 술객들에게 던져보라 합니다. 던지니까 그들의 것도 뱀이 됩니다. 그때 아론과 모세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민망하고 부끄럽고.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이, 모세와 아론이 던진 지팡이의 뱀이 그들의 뱀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행하신 기적은 궁극적으로 누가 영광받습니까? 하나님이 영광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술객들도 기적과 이적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를 위한 기적입니까? 바로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의 왕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그 영광이 세상의 영광을 삼켜버립니다. 결국은 사람들 눈으로 볼 때는 바로가 더 대단한 것 같지요. 왕관 쓰고 앉아 있고, 거기서 생사여탈권 다 가지고 있고, 한마디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궁극적 최후 승리자입니다.

능력과 기적을 세상의 사탄 마귀도 다 행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교회 안에서 기적 사모하지 마십시오. 표적 사모하지 마십시오. 사람 병 낫는 것, 죽었다가 살아나고, 병 고침 받고, 짧은 다리 똑바로 서고, 팔 길이 다른 것 팔 고치고, 아말감이 금니 되고, 뒤로 자빠지고,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눈이 안 보이던 사람 갑자기 눈이 좀 잘 보이고.

여러분, 그것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잖아요. 영생하셨습니까? 나사로가 영생하셨다는 것 보셨습니까? 또 죽습니다. 나사로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냥 한 번 죽게 냅두지. 이미 장례 다 했는데. 그냥 나 천국 갔는데 그냥 거기서 영원히 살고 싶은데, 예수님이 부활의 능력자인 것을 보이시려고 나를 무덤에서 불러내는 바람에 나타났는데 또 죽어야 되잖아요."

그렇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기적을 사모하는 것,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최후 영광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나타나는 모든 놀라운 일들, 내 힘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일들에서 일어나는 기적의 최후 영광은 하나님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이름 새기는 것 하지 마라고. 그것이 금송아지라고. 그것은 불법의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바로를 섬기는 사람들, 세상에 권세 잡은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누가 영광받느냐, 이것 잘 보셔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목사가 영광 받으면 그것이 악한 사탄이 기적을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교회 공동체에서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도록, 우리는 그냥 그 전달자 역할이고, 가정에서도 부모가 영광 받으면 그것이 악한 일들입니다. 전부 다 하나님이 하신 일로, 그렇게 우리가 다 영광 올려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공로 없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는 것이라고, 사람이 그것이 뭔데요?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야 악한 자와 선한 자가 구별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불법의 자리에 앉아 있고, 나도 모르게 질서를 깨는 자리에 앉아버립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주변에서 자꾸 부추기니까 그런 것입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잘한다고 자꾸 부추기니까. 그래서 적은 제일 가까운 데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자기가 영광받느냐, 하나님이 영광받느냐.

2-2. 유기의 심판

거짓을 따르는 자들의 마지막은 어떻게 됩니까? 11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아니,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셨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내가 아는 하나님이 이러실 수 있습니까? 거짓 것을 믿게 하셨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것 전부 다 짜고 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보내고 거짓 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고, 하나님은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오해하면, "하나님이 함정을 파놓고 사람들이 거기에 빠지게 하는구나. 나쁜 하나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어 놓고 인간이 따먹을 것 다 아시면서 인간을 함정에 빠뜨렸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을 정말 오해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전형적인 표현들, 바울의 표현들을 보셔야 합니다.

로마서 1장 24절에서 28절을 보겠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하나님은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셔서 그들을 거짓으로 빠져들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표현을 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또 28절을 보십시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내버려 둔다는 말을 한자어로 쓰면 무엇입니까? 유기 아닙니까? 유기. 버리는 것입니다. 유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심판 중에 제일 심한 심판, 제일 강력한 심판이 유기의 심판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으면 그때그때 하나님이 딱딱 드셔서 우리 발목도 좀 부러뜨리고 손목도 좀 아프게 하고 이렇게 하시면, 하나님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무척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매우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던져두시면 그것이 유기입니다. 그것이 유기입니다. 그 유기의 심판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셨다. 미혹의 역사가 나에게 옵니다. 거짓 것을 내가 믿습니다. 그래도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왜 내버려 두실까요? 왜 하나님이 포기하셔서 내버려 두는 데까지 가는 것일까요? 여러분, 한번 보십시오. 자녀들과 부모의 관계를 한번 따져보면, 오죽하면 자식을 내버려 두겠습니까? 부모가? 웬만하면 내버려 두는 데까지 안 가잖아요. 간섭하고 혼내고 때리기도 하고 온만 가지 일을 다 하다가 마지막에 안 되면 포기. 그런데 내버려 두는 그 심정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심정은 어떨까요? 하나님이 미치시지요. 너무 가슴 아프고. 이것이 가장 강력한 심판인데 모른 척하는 심판입니다.

그래서 이 내버려 두시는 데까지 가는 과정을 보셔야 합니다.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징계하시고 혼내시고 온만 가지 방법을 다 하시다가 마지막에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역사가 와서 그들을 유혹하고 거짓 영으로 그를 끌고 가도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 하나님이 별의별 방법 다 하셨는데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것이 이렇게까지 갈 때는 우리 마음이 이미 사탄이 우리 속에 쑥 들어와서 마음을 다 지배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매일매일 예민해져야 합니다. 아주 예민해져야 합니다.

더러운 집에 사는 사람들, 더러운 쓰레기와 구더기에 사는 사람들, 더럽다고 느낍니까? 못 느끼잖아요. 내 몸을 씻지 않은 사람들, 내 몸에 냄새 난다고 느낍니까? 못 느끼잖아요. 항상 내가 나를 관리하지 않는 사람들은 못 느낍니다.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쓸고 닦고 치우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은 요만큼만 먼지가 있어도 느끼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예민해야 합니다. 이 지경 오기 전에 예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기도하고, 매일매일 자신을 돌아보는 생활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래서 한 방에 크게 가려고 하시면 안 됩니다. 조금 조금씩 매일 기도하고, 매일 큐티하고, 매일 새벽 기도하고, 매일 성경 보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왜요? 조그마한 것에도 예민하기 때문에 감동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눈물 나게 하십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이것은 대단히 성경적인 속담입니다. 양심에 화인 맞아버리면 그다음에는 가책이 없습니다. 그냥 조그마한 도둑질 하다가 나중에 큰 도둑으로 갑니다. 다 이것 잘 기억하십시오.

출애굽기 9장 12절도 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 보낸 것이 바로의 죄가 아니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의 표현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바로에게 이미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모세에게 가서 말씀하게 하고, 첫 번째 때부터 장자가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에 지팡이 던져서 뱀 되게 한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나일강 피가 된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가는데 계속 안 들으니까 마지막에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장자가 죽을 때까지.

그래서 잘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유기하시는 사람은 그 전에 사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사인 알아듣고 딱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민하게.

3. 감사의 이유

3-1. 구원의 순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제 감사의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참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너무너무 사랑했는데, 매 장마다 감사의 조건이 나옵니다. 느끼셨습니까? 항상 감사하다 했습니다. 책망은 없고 감사한 것만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좀 특이합니다. 이 감사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여기에 다섯 가지 순서가 나옵니다. 순서가 중요한데, 순서가 좀 뒤죽박죽 되어 있습니다.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처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만세 전부터, 어머니께서 나를 태중에 가지기 전부터 하나님 우리를 택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택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도 하나님이 택하셨기 때문에 있는 것이지, 내가 하나님께 저 택해주세요라고 손든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택하심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 14절에 나오지요.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의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전한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택하신 너희를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가 이 사람들을 불렀습니까? 하나님이 불렀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야, 내가 너 전도했잖아. 너 나한테 잘해. 너 내가 전도했고 내가 양육했고 내가 길렀고 내가 키웠고 내가 당신 가정에 구원을 뭘 했고." 이런 식으로 해서 평생 동안 갑질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그들을 부르신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택하셨고, 택하신 자를 하나님이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사용해서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것이 두 번째입니다.

이제 부르셨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다시 13절, "진리를 믿음으로"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진리를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아니니까, 택한 자에게 진리를 막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막 주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깨달음이 옵니다. 들으므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듣다 보면, 믿음은 들으면서 나니까 계속 듣다가 진리의 말씀을 들어서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생긴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지요. 그래서 그다음 무엇이 됩니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네 번째입니다. 세 번째가 진리를 믿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네 번째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시지요?

이 순서가, 하나님이 택하셨고, 그다음 우리를 사용하셔서 부르셨고, 말씀을 먹이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셔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했습니까? 하나님이 구원하셨습니다. 지금 여기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됐을 뿐입니다. 그들은 도구로 사용됐지, 그들이 여기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렇잖아요. 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절대 나는 사용되는 사람일 뿐입니다.

마지막에 14절 끝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원래 우리 주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영광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에게 그 영광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다시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택하셨습니다. 두 번째, 부르셨습니다. 세 번째, 진리의 말씀으로 믿게 하셨고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네 번째, 구원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 영광, 우리 예수님이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나누어 주십니다. 이런 단계를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이 다 밟아왔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자녀들, 우리 피붙이들, 그들을 보면 뭐가 감사하십니까? 그들이 좋은 데 취직해서, 집 사서 잘 살아서, 요즘 이혼이 너무 많은데 이혼 안 하고 잘 살아줘서, 애기 낳아서, 그런 것도 감사한데 그것은 그다음 그다음이고, 본질적인 감사 아닙니까? 이것이 본질적인 감사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저는 목사잖아요. 우리 성도들을 보고 감사한 것이 우리 성도들이 목사 말을 잘 순종해줘서, 헌금 많이 해서, 그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되어서, 하나님이 택하셔서 여기 있고, 누군가를 통해서 복음을 들어서 이 자리에 왔을 것 아닙니까? 누군가를 통해서. 거기에 우리가 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한 것이 없습니다. 오셨는데 진리의 말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구원받으셨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계시고, 그것이 감사한 것이지요.

우리가 성도들을 보고 감사한 것이 그것이 본질적인 감사입니다. 사람을 보고, 자녀들을 보고, 성도들을 보고 감사하실 때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감사를 하셔야 합니다. "야, 남의 집 애들은 멀쩡하게 돈만 잘 벌어준다더라. 나도 네 헌금과 네 준 용돈 가지고 감사헌금 한번 해보자." 그렇게 애들 갈구지 마시고 제발 괴롭히지 마시고, 지금 예수 잘 믿고 백수면 어떻습니까? 언젠가 취업할 텐데. 인구도 준다는데 취업하겠지요. 본질적으로 예수 잘 믿어주니까 감사하고, 그렇게 감사하셔요. 기본적으로 그것이 근본적인 감사입니다.

3-2. 말씀 위의 전통

그다음 중요한 이야기 또 합니다. 15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어디에 굳건하게 서라는 말입니까? 앞에 하도 이 말을 많이 해서 생략했는데, 말씀 위에 굳건하게 서라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여러분 이것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말씀 위에 굳건하게 서서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없이 전통을 지키면 그것이 뭐가 됩니까? 관행이 됩니다. 말씀이 없는 전통은 박살 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은 과감하게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뭔가를 새로운 것을 정하고 전통을 만들어 갈 때는 말씀과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 위에 세워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렸지요. 우리 교회 장로님들 은퇴할 때 금 10돈 드렸다고 했습니다. 말씀 위에 세운 것입니까? 그 전통, 안수 집사님 권사님들 은퇴하실 때 금 5돈 드렸다고 그랬는데, 그것 말씀 위에 세운 전통입니까? 말씀 위에서 중직들 은퇴할 때 금 받으라고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말씀 위에 세운 전통 아니잖아요.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런 것은 과감하게 없애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 위에 우리가 세워진 전통들이 있잖아요. 하나님 말씀이 있잖아요. 하나님 말씀에 서로 형제들끼리 우애하고 서로 사랑하고 떡을 떼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백성들 자기들끼리 진실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지난주에 성경 퀴즈대회 했는데, 하나님 말씀 위에 전통을 세워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 것들, 그런 것들은 세워가는 것이고, 어른들 공경하고, 말씀 위에 섬기고 대접하고 나누고 베풀고, 그런 전통은 아무리 세워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 돈 아까워하지 말고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말씀이잖아요. 그러면 교회는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는 전통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하지 않고 말씀 위에 세워지지 않은 전통을 만들어서 그것이 전통이라고, 그것 못 없앤다고 하면, 그것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 교회를요? 그래서 우리는 말씀 위에 전통을 세워야지, 말씀은 하나도 없고 전통만 있는 것, 그것은 껍데기이지요. 그것은 사람이 없애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없애버리십니다. 예배당이 텅텅 비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비지요. 뭐 출산율 저하되고 사람 없다고 예배당이 빕니까? 안 그렇습니다. 옛날에 그 박해 시절에도 교회가 가득 차고 사람들이 예수 믿으려고 몰려오는데, 말씀 위에 전통이 제대로 서 있으면 왜 안 옵니까? 왜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다음, 종말의 교훈을 가르친 후에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합니까? 바울이 장마다 빼놓지 않는 것이 첫째는 감사, 두 번째 기도입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잖아요. 아까 우리가 읽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마음을 위로해 달라고. 하나님이, 사람이 위로할 수 없으니까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무엇 위에 서 있을 때 굳건해집니까? 말씀입니다. 그 위에 전통 세울 때, 말에나 일에나 굳건하게 되어서, 그것이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 위에 전통을 세울 때 그것이 오래 가고 그것이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 꼭 기억하십시오.

이 종말의 시대, 복잡하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종말의 시대, 이 악한 시대를 살아갈수록 우리는 단순하게 예수 잘 믿고, 자기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백성들에게 진실하고, 내 입에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성실하게 살면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복잡한 우리 인생, 하나님의 영을 들었다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능력과 기적을 보여주는 악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영광받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진실한 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진리에서 벗어나는 배교하는 자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법, 질서를 깨뜨리는 불법 행하는 자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전통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가정의 전통을 말씀 위에 세워가게 하옵시고,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세워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일로 우리가 보람된 인생 살도록 도우시고,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말씀 위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자,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신다고 하셨사오니, 거룩한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토대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