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강 - 일상의 거룩, 음식 / 전체녹취

레위기 특강 10강 - 일상의 거룩 음식 (레17장)

레위기 17장 3-4절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진영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우리가 레위기 말씀을 공부하고 있는데, 오늘부터 레위기의 새로운 분기점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아홉 번에 걸쳐 16장까지 나누었고, 오늘부터 마지막까지 17장부터 27장까지를 함께 다룹니다.

1. 레위기의 두 기둥

레위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장에서 16장, 그리고 17장에서 27장까지입니다. 1장에서 16장까지는 예배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다루고, 17장부터 마지막까지는 예배드린 사람의 삶과 실천에 대해서 다룹니다.

사실 신앙생활은 항상 이렇게 두 가지 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리가 앞에 나왔고 삶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배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은혜받은 자가 세상에서,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이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질 때 올바른 신앙생활, 균형 잡힌 믿음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기가 쉽습니다.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든지, 아니면 여기에 한 발을 두고 마음은 계속 세상에만 가 있든지. 그런데 하나님 믿는 사람은 둘 다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쪽에 한 발, 저쪽에 한 발 두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둘 다를 하나님께서 잘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1. 1장에서 16장까지의 요약

1장에서 16장까지의 내용을 한 번 더 정리하면, 전체가 예배에 관한 것이지만 1장에서 7장까지는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 제사를 다루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그리고 이 예배를 집례할 제사장이 중요하니까 8장과 9장은 제사장의 위임식을 다룹니다.

10장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아론의 네 아들 중에 첫째와 둘째인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집례했는데,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거기에서 불이 나와 그 자리에서 타 죽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본보기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려야 되겠구나, 이건 죽고 사는 문제로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1장부터 15장까지는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정결한 삶에 대해서 다룹니다. 16장,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은 전체를 다 집대성하는 대속죄일 규례와 아사셀 염소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1-2. 시내산에서 주신 이유

이렇게 해서 예배적인 부분을 다루고 삶에 대한 부분으로 들어가는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마음에 새겨야 될 사실은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이 말씀을 어디에서 선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루었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1차 기착지로 삼으신 곳이 시내산입니다. 급하게 휘몰아쳐 달려왔습니다. 시내산에 일단 여장을 풀게 하시고 거기에서 멈추게 하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의 대표적인 것이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성막이 만들어지고 이 안에 들어가서 예배드릴 규정과 규례를 설명하신 것이 이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나,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빨리 가는 것입니다. 빨리 가나안 땅에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정 중에 있는 과정입니다.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라도 빨리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예배 드려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너무너무 세세합니다. 너무너무 세밀하고 세세한 말씀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리 펴고, 거기에서 가나안 일곱 족속 다 내쫓고, 그러고 나서 주시면 이제는 정신 차리고 알아듣고 그대로 할 텐데, 왜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것도 시내산에서,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한 이 시점에 말씀하시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좀 편안해지면 하나님 말씀이 더 잘 들어올 텐데, 나는 지금 돈 문제도 있고 자식 문제도 있고 몸도 불편하고 여러 가지가 복잡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꾸 나에게 예배를 말씀하십니다. 자꾸 나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지금 내가 급한 것은 이게 아닌데, 지금 내 인생에 급한 것은 빨리 이 광야 생활을 종지부 찍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인데, 하나님은 거기에 별로 관심이 없으십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이 주시려고 작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나안 땅은 보장된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없으시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다가 중간에 마무리할 거면, 그냥 말 거면, 하나님은 확실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집어넣으시려고 출애굽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보장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될 사람들의 내면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만 급합니까? 우리 눈에는 빨리 광야를 벗어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은 것입니다. 내 인생에 원하는 게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네가 얼마나 바른 마음으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고 자꾸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이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셔도 귀에 안 들어오는 사람은 안 들어옵니다. 안 듣습니다. 못 듣습니다. 불편하고 짜증나고 말이 많다 생각하고 빨리 들어가고 싶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인생에 걱정이 많고 염려가 많으면 예배가 제대로 안 됩니다. 봉사나 섬김이나 하나님께서 먼저 하라고 하신 우선순위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먼저 하라고 하십니다. 이 순서가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역시 그 순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일상의 거룩, 먹는 것. 이 순서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핵심적으로 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예배를 위한 도축

2-1. 두 가지 도축의 구분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을 잡을 때 유의할 점이 무엇입니까? 짐승을 어떨 때 잡습니까? 짐승을 잡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잡습니까? 먹으려고 잡습니까, 예배드리려고 잡습니까? 두 가지 용도로 잡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용도로도 도축을 하고, 식용으로도 도축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이 3절과 4절 말씀은 식용을 위한 도축의 말씀일까요, 아니면 제사를 위한 도축의 말씀일까요? 그것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3절과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모든 사람이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영 안에서 잡든지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회막 문 앞에서 잡지 않으면, 즉 번제단에서 잡지 않으면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했습니다. 아까 두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짐승을 도축하는 경우, 첫 번째는 예배를 위해서, 두 번째는 식용을 위해서입니다.

만약에 식용을 위해서 짐승을 잡는 것인데 회막 문 앞에 가서 잡지 않으면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면, 이런 하나님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번제단에서, 번제단은 하나님께 예배드려서 태워드리는 곳인데 거기서 잡으면 제사장도 줘야 되고 식구들하고도 나눠 먹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 정도로 백성들의 양식까지 가져가기를 원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은 제사를 위해서 도축하는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3절과 4절은 그렇습니다.

그러면 식용을 위한 도축은 어디에서 말씀하셨는가? 신명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2장 15-1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식용을 위해서 고기를 잡는, 짐승을 도축할 때 규정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피를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피를 먹지 말고 각 성 어디에서나 원하는 대로 잡아서 먹어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막 문 번제단 앞에서 와서 도축하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읽은 레위기 17장 3-4절 말씀의 이 규정은 제사를 위한 도축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2-2. 왜 이런 규정이 필요한가

그런데 또 한 가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사를 위한 도축은 당연히 회막 문 앞에 와서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예배를 위해서 짐승을 잡는데 아무 데서나 잡아도 됩니까? 안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사를 위한 도축인데 성막 안 번제단 앞에 와서 잡지 않고 다른 데서 잡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규정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런 규정이 왜 있었을까요? 그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기 예배를 위한 도축을 회막 문 앞에 와서 하라는 말씀도 다른 데서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디에서 했을까요? 17장 5절을 보면 "그런즉 이스라엘 자손이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들에서 잡던이라고 했습니다. 이 "잡던"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묘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에서 짐승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들에서 잡던 그들의 제물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가서 제사장에게 주어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려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들에서 잡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아무 데서나 잡아서 다른 이방 신에게 드렸다는 뜻입니다. 이방 신에게. 그래서 하나님이 정한 성막 안에 와서, 즉 번제단 앞에 와서 짐승을 잡으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되지만, 그냥 아무 데서나 짐승을 잡으면 그것은 이방 신들을 위한 제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자들이 그 당시에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3. 이방신 숭배의 경고

3-1. 숫염소 우상의 역사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전에 음란하게 섬기던 숫염소에게 다시 제사하지 말 것이니라 이는 그들이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음란하게 섬긴 숫염소, 들판에서 짐승을 잡아다가 숫염소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430년을 살았습니다. 이집트에서 430년 살다가 나와서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올라갔을 때 이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우상으로 금송아지 우상을.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들에서 송아지도 섬기고 들에서 숫염소도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제는 그런 것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다른 데서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고 다른 신상에게 엎드리지 말라. 성막 안에 그 뜰에 번제단을 만들어 두었으니 그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그 앞에 나와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대로 제사드리라. 이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맥락을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왜 이런 말씀을 굳이 하실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숫염소를 섬긴 역사가 어디까지 흘러가느냐? 이집트에서부터 그랬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출애굽하고 있는 여정의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3-2. 여로보암까지 이어진 죄악

나중에 다윗 시절, 솔로몬 시절을 지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갈라집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누구입니까?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 때까지 이것이 이어집니다. 역대하 11장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로보암이 여러 산당과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을 위하여 친히 제사장들을 세움이라"

뭐라고 했습니까? 숫염소 우상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 우상. 역사가 오래도록 내려갑니다. 역사가 오래도록 이 역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계속 계속 흘러가는 것입니다.

무섭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됩니까? 한 번 잘못 길들인 신앙생활은 대를 이어서, 또 그다음 대를 이어서, 또 그다음 대를 이어서 가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한 번 잘못 삐끗해서 나가면 이집트에서부터 이것이 들어왔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면서 이 사람들이 430년 동안 숫염소 우상을 섬기는 것을 배워서 왔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끊어내지 않으면, 이 광야에서 정리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들어가서 가나안 땅에서 그렇게 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말 이 사람들이 출애굽하는 여정에서 힘들지만 시내산 아래에서 이것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들이 이 배운 대로 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여기서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들판에서 예전에 하던 대로 숫염소 우상 섬기고 송아지 우상 섬기고, 그래서 그것이 왕정시대로 접어들어서 사울, 다윗, 솔로몬, 북왕국, 남왕국까지 계속 계속 흘러들어간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여호와 신앙에서 잠시 잠깐 빗나가 있는 잘못된 문제가 내가 하나님 부르심 받아 세상 떠나고 나면 우리 자식 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 자녀 때는, 그다음 그 자녀 때, 조금 더 빗나가면 그 자녀의 자녀 때에 가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점점 빗나갑니다. 각도가 여기서는 1도 정도 빗나가면 저기 가면 한 30도 정도 빗나가 있습니다. 이만큼 틀어져 있습니다. 줄을 잘못 긋기 시작하면.

그래서 하나님은 철저하게 예배에 대한 말씀과 규정을 우리에게 정확하게 일러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지 말라고.

4. 정해진 장소의 원리

4-1. 거류민도 예외가 아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다음 질문을 보십시오. 정해진 장소에서 짐승을 잡는 규례의 범위는 어디까지입니까? 이것은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해야 됩니다. 누구까지일까요? 8절과 9절을 보니까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혹은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번제나 제물을 드리되 회막 문으로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리지 아니하면 그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당연히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무조건 다 이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 출애굽하고 있는 여정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출애굽할 때 함께 나온 잡족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잡족이라고 그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 37-38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잡족이라고 하니까 뭔가 좀 하대하는 느낌이 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러 민족들을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열 가지 재앙을 행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집트에 있던 다른 소수민족들이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마지막 열 번째 장자 재앙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들도 두려워서 피를 발랐을 것입니다. 피를 바른 자는 그날 밤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고, 피 바르지 않은 사람은 그날 밤 그 집에서 다 곡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여러 민족이 함께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함께 나온 여러 타민족들도 이 규정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함께 모여 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영향력입니다. 가정에서 다섯 식구 혹은 네 식구가 있는데 한 사람, 부모가 예배를 제대로 안 드립니다. 그러면 그 영향력은 자녀에게 그대로 흘러갑니다. 온라인 예배 집에서 드립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제대로 안 합니다. 그러면 그 영향력은 온 가족에 그대로 미칩니다. 이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잡족들이나 거류민들이나 누구나 다 이 문제에서는 예외가 아닙니다. 예배에 대해서는 이 공동체에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하나님 앞에 정해진 대로 예배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2. 예배를 위한 도축이 먼저인 이유

여기까지 우리가 한번 해보고 그다음 생각을 한번 하셔야 됩니다. 성경 공부를 할 때나 읽을 때는, 제가 서두에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레위기가 1장에서 16장까지는 예배에 대한 것이고, 17장부터 그다음부터는 생활에 대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목이 "일상의 거룩 음식"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짐승을 도축하는 두 가지, 예배를 위한 도축과 식용을 위한 도축이 있다면 이것은 식용을 위한 도축에 대한 말씀이 나와야 되는데, 왜 예배에 대한 도축에 대한 말씀만 계속 나오는 것입니까? 식용을 위한 도축은 왜 신명기에다 던져두고 왜 여기서 자꾸 예배에 대한 도축, 짐승을 잡는 규정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왜"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셔야 됩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같은 짐승입니다. 똑같은 소나 양이나 염소가 예배를 위해서 드리면 예배를 위한 짐승이 되고,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 도축하면 내가 먹는 짐승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똑같은 짐승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다는 말씀입니까? 너에게 있는 게 아니라, 너 먹고 마시라고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가지고 나와서 예배드리는 데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인본주의가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배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물질을 쓸 때도 나부터 먼저 쓰는 것입니다. 시간을 쓸 때도 내가 필요한 것부터 먼저 쓰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나부터 먼저 먹고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신본주의, 하나님 중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부터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쓰는 것도, 시간을 쓰는 것도, 건강을 쓰는 것도, 내가 마음을 쓰는 것도 모든 것을 다 하나님부터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양이고 똑같은 소고 똑같은 염소인데, 가만히 내버려 두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악한 본성에 사로잡혀 있는 나라는 존재가 먼저 떠올리는 것은 "배고픈데 저것 먼저 잡아먹어야 되겠다" 이것부터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너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것을 먼저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짐승을 도축하는데 예배를 위한 도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 일상생활의 거룩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시간도, 여기는 음식이 먼저 나와 있지만, 음식도 건강도 물질도 다 신본주의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일단 배제해버립니다. 그다음에 인간으로 옵니다. 우리부터, 우리가 먹어야지. 그런데 그다음 어떻게 될까요? 인간 중심으로 오면 그다음은 자기 중심으로 갑니다. 나부터. 이것은 부모도 필요 없고 형제도 필요 없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 돈 문제가 얽혀서 얼굴 안 보는 집안 많이 보셨습니다. 형제자매 간에도 역시 그런 집안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넘어온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들이고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면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면 사람끼리 싸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나면.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서도 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3. 홉니와 비느하스의 교훈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살았다가 망한 인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사무엘상 2장 12-17절까지 보면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장 아들 아닙니까? 여호와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요즘으로 치면 목사 아들들인데 어떻게 여호와를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그 내용이 나옵니다.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이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데 고기를 삶고 있습니다. 그것을 멀리서 세 살 갈고리로 찍어다가 걸려 나오는 것은 우선 자기부터 먹고 보는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그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우리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름을 받으시는 제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름 다 타고 나서 그다음에 고기는 제사장의 몫으로 돌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삶은 고기 별로 좋지 않다, 고기가 구워 먹으면 맛있으니까 그것 달라, 구이용 고기를 달라.

"그 사람이 이르되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그 사람은 성도입니다. 성도가 제사장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고 합니다. 그런 것 없습니다. 억지로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것입니다. 이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가 무엇입니까? 죄가 무엇입니까? 똑같은 짐승입니다. 이것이 소인지 양인지 염소인지 모르나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자기가 먼저 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규정은 어떻습니까? 일상의 거룩의 첫 번째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짐승의 도축 규정을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명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질을 쓰기 전에 하나님의 것을 먼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 시간을 쓰기 전에 하나님의 시간을 기억하라. 너 건강을 가지고 너 몸을 쓰기 전에 하나님의 몸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섬김과 봉사를 기억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의 삶의 영역에서 그것 다 빼먹고 삽니다. 가끔씩 생각할 뿐입니다. 그것은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다고 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러분들 다 아시는 결말 그대로입니다. 제사장의 아들들이라고 여호와를 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아까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 보니까 예배 드리러 나온 성도가 더 잘 압니다. 기름 다 태워드리고 그리고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그런 것 없습니다. 억지로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4-4. 여로보암의 세 가지 죄

이 우선순위의 문제, 오늘 우리가 여기까지 읽고 나서 또 기억해야 되고 깨달아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규정대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아까 그랬습니다. 들판에서 하던 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레위기 규정을 보면 복잡합니다. 그런데 이 복잡한 것을 그대로 잘 지켜가면 네 마음대로 예배 드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회막 문 앞에 와서 짐승을 잡아라. 아무 데서나 잡지 마라. 너희 먹는 것은 아무 데서나 잡아도 되나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너희 마음대로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우리에게 예배를 방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너희 원하는 대로 예배드려라 해버리면 시간도 안 지킵니다. 마음도 흐트러집니다. 영적인 기도와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대로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식대로 예배드리라고 규정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긴 인간이 있습니다.

나중에 역사가 흘러가며 아까 우리가 보았던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여로보암이 이것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버립니다. 열왕기상 12장 28-29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사람이 아까 숫염소 우상도 섬겼습니다. 여로보암이 지금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지도를 보니까 저 꼭대기에 단이라는 도시가 보이고 가운데 벧엘이라는 도시가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왼쪽에 가니까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이후에 남왕국과 북왕국이 나뉘어지는데 여로보암은 북왕국의 왕입니다. 자기가 북왕국의 왕이 되고 보니까 예루살렘이 남유다의 영토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1년에 세 번 큰 명절에 모든 남자들은 다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기 나라에 속한 북왕국의 남자들이 1년에 세 번 남쪽에 가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다 보면 마음이 떠날까 봐, 그리고 남유다의 왕이 국경을 폐쇄하고 돌려보내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고 이 금송아지가 너희 조상을 이집트에서 건져 올린 하나님이다 그렇게 속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때부터 어리석게도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에 가서, 단에 가서 예배드린 것입니다. 거기서 엎드려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31-32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제사장은 레위 자손의 후손이 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원칙이고 법입니다. 아무나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비슷하게 했습니다. 절기도 자기 마음대로 바꿨습니다.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이 사람의 죄, 여로보암의 죄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고, 두 번째는 레위인 아닌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함부로 세웠고, 세 번째는 절기를 자기 마음대로 바꿨습니다. 비슷하게.

그러면 이 사람의 큰 죄는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이 세 가지 죄를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은 죄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으니 거기 가서 예배드리라 했는데 그 말씀 안 지켰습니다. 레위인이 제사장이 되어야 했는데 그것 안 지켰습니다. 정해진 절기에 날짜가 있는데 그것 무시했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여로보암의 죄는 북이스라엘 전체를 관통하는 죄악의 흐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 우리 조상들이 잘못하면 그 후손들까지 계속 내려가는 것입니다. 출애굽 이전에 이집트에서부터 숫염소를 섬긴 것이, 송아지를 섬긴 것이 출애굽하는 여정에도 그 잔재가 남아 있었고, 다윗, 솔로몬 그 이후에 여로보암 때까지 그대로 남아 있고, 그리고 그 북이스라엘이 망할 때까지 그 죄에서 떠나지 않은 이 심각한 죄악상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그래서 오늘 우리는 예배도 하나님 말씀대로 드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방법과 방향을 가지고 그 정신을 마음에 새기고 예배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하나님 중심 시대가 아닙니다. 모두가 다 인본주의로 다 넘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그런데 이때 다시 우리가 레위기 말씀을 보고 예배의 본질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서 공부하고 살펴보는 것은 너무너무 귀한 일입니다. 그 정신과 중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셔야 됩니다.

5. 피의 신학

5-1. 피를 먹지 말라

피에 대해서, 짐승을 잡을 때 피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하셨는가. 10-1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짐승의 피의 기능, 예배드릴 때 그 짐승을 잡을 때 나오는 그 피의 기능이 무엇입니까? 속죄의 기능입니다. 예배드릴 때 잡는 그 짐승의 피는 내 죄를 속해주는 속죄의 기능인데, 그 피를 너희가 먹지 말라. 그 피는 죄를 속하는 것이지 너희가 먹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규정하셨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고 했습니다. 또 14절에 보니까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피 흘리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이 근거가 창세기로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사건이 있고 난 후에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들판에 곡식, 식물들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방주 안에 있었던 짐승을 먹어서라도 생명을 유지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이 육식을 허용하셨습니다. 그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4-6절을 보면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을 죽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사람에게 있는데 그 사람의 피를 흘려서 그를 죽이게 되면 내가 반드시 너의 피도 흘리게 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피를 흘린 가인이 있습니다. 창세기 4장 8-11절을 보시면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나님은 피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짐승을 잡을 때도, 식용으로 먹을 때도, 피는 절대로 먹지 말라. 그 피는 너희의 죄를 사하는 생명의 피다,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5-2. 성만찬의 의미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또 질문거리가 하나 나오셔야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데 자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마지막 십자가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실 때 성만찬 제정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바울이 다시 요약하고 집대성해서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성만찬 제정의 말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4-26절을 보시면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여기 기념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기념은 기억이라는 뜻입니다. 나를 기억하라.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떡을 뗄 때도 기념, 잔을 마실 때도 기념.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성만찬의 핵심적인 의미는 기억입니다. 왜 기억일까요?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초대교회 공동체는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가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모일 때마다 주의 죽으심과 주님의 역사하심과 주님의 몸과 주님의 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피 흘리셨구나. 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 찢겨지셨구나. 이것을 매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1년에 서너 번 정도밖에 못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성도들은 매주 했습니다. 요즘도 이웃집 성당에서는 모일 때마다 성찬을 합니다.

기억하라고. 계속해서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일까요? 그런데 그 기억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과거에는 짐승의 피로 너희의 죄가 사함받았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너희 죄가 사함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래서 그것을 내가 먹고 마시면서 기억을 극대화시키는 것입니다. 빵을 먹고 잔을 마시면서 "아 내 몸에 예수님의 피가 내 혈관을 타고 도는 것을 느끼면서, 예수님의 살이 내 살이 됨을 느끼면서, 내가 이제는 죄에서 구원받았구나." 그러면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성만찬 하고 난 이후에는 죄 지으면 안 됩니다. 또 성만찬 하기 전에 어떻게 해야 됩니까? 회개하고 나와야 됩니다. 그것을 바울이 계속 이야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7-29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신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죄 지은 상태로 먹고 마시는 자.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만찬 하기 전후에는 자기를 살펴야 됩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 죄가 있으면 회개하고, 그리고 성만찬 하고 난 이후에는 항상 정결한 자신의 몸과 영혼과 마음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님의 몸과 예수님의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5-3. 그 외의 규정

그 외에 제사 규정을 말해보십시오. 17장 15-16절을 보니까 "또 스스로 죽은 것이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을 먹은 모든 자는 본토인이거나 거류민이거나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고 그 후에는 정하려니와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

스스로 죽은 것,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위생상의 전염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모여 사니까, 모여 사는데 이런 도축이 불확실한 것, 사유가 불확실하게 죽은 것, 사인이 불분명한 것을 먹었다가 나만 탈나는 게 아니라 전체가 다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말라 그런 것입니다.

6. 먹는 것의 우선순위

6-1. 선악과와 예수님의 시험

우리가 오늘 이 17장 말씀을 정리하면서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먹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 그런데 먹는 것은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치사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먹는 것 때문에 마음 상할 때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떡 조가리,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하고 속상하고 불쾌하고 불편하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이 먹는 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늘 우리와 함께하면서도 동시에 먹는 것을 잘 절제하는 것도 힘듭니다. 평생 다이어트 하십니다. 평생. "나는 평생 다이어트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사건에서 먹는 것이 그냥 치사하거나 그냥 넘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선악과 사건, 두 번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 시험 받으신 사건. 그것을 통해서 먹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그냥 넘어갈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7절, 마태복음 4장 3절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첫 번째 인류에게.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사탄이 예수님께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먹는 것으로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 하셨고, 사탄은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앞뒤 전후 문맥을 한번 잘 살펴보시고 생각해 보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선악과 금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먹지 말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을 따먹어버렸습니다. 뱀에게 유혹받은 하와가 먹고 남편에게 주고 같이 먹었습니다. 사람이 그것을 먹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먹는 것과 무엇이 우선되어 버렸습니까? 먹는 것이 우선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해야 되는데.

그래서 선악과 금지 명령은 우선순위를 따져보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욕망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깨달아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먹는 것으로 대표되어 있지만 우리 욕망들이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뒤로 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앞으로 옵니다. 그것이 선악과 문제입니다. 우리는 매일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존재입니다. 내 욕망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6-2. 말씀이 먼저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탄이 이렇게 시험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먹는 것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이 먼저이고 그다음 먹는 것이 있는 것이지, 그다음 우리 욕망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선악과 따먹고, 배고프다고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해서 그것 먹어버리고, 그렇게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 17장의 교훈 전체는 바로 그 문제입니다. 똑같은 짐승을 도축하는데 하나는 예배로, 하나는 식용으로 도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가지고 나온 예배를 먼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일상의 거룩의 첫 출발입니다. 일상의 거룩은 우리가 매일같이 살아가면서 먹는 것, 입는 것, 생각하는 것, 만나는 것, 이 모든 일상 중에 가장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부터 하고 그다음이 있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여호와를 모르는 자가 되고 예배를 멸시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일상의 거룩이 하나님의 말씀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항상 먹고 마셔야 되는 존재고, 언제나 이 땅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이 참 많은 존재입니다. 항상 부족해서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우선순위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선악과 금지 명령을 어기고 말씀보다 선악과를 먼저 먹어버린 아담과 하와처럼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을 가장 우선순위로 앞세우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출애굽 이전에 지었던 죄가, 숫염소 숭배가 훗날 시간이 지난 후에 북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이 된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중심 세워지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