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 안식년과 희년 / 전체녹취

레위기 16 - 안식년과 희년 (레25장)

본문: 레위기 25: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레위기가 이제 열여섯 번째 시간을 맞이합니다. 오늘과 다음 주까지 하면 17번의 레위기 특강을 모두 마칩니다. 재미없다고 여겨지는 레위기를 이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잘 들어 주시고 감당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이번 학기 공부하면서 얻은 소득이 있다면 '레위기가 그렇게 재미없는 책은 아니구나, 할 만하구나,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도 여전히 유익하구나' 정도만 느끼셨어도 충분한 소득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제가 서두에 시작할 때마다 항상 한 번 짚고 가는데, 레위기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1장에서 16장까지는 제사와 예배를 통한 거룩을 말하고, 17장부터 27장까지는 우리 삶을 통한 거룩, 삶을 통한 성결과 신실을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후반부를 다루고 있는데, 삶을 통한 거룩, 일상의 거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상의 거룩에는 여러 가지 주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음식이었고, 두 번째가 성생활이었으며, 세 번째가 거룩의 개념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모델이 필요한데 그 모델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어떻게 일상에서 거룩을 본으로 보여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다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로 표현되는 시간의 거룩, 그리고 여섯 번째로는 성막과 성전으로 대표되는 공간의 거룩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안식년과 희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한마디로 말하면,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천국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거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주제입니다. 사실 거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스스로 '나는 참 거룩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그분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천국 소망은 전혀 없고, 이 땅에서 누리고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까 하며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거룩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년 제도와 희년 제도를 통해서 이 땅에는 소망이 없다, 오로지 너희들의 유일한 소망은 저 천국에 있다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일상의 거룩에서 땅에 썩어 없어질 것을 쌓아 두고 살지 말고 저 천국을 소망하고 천국의 거룩을 꿈꾸라는 말씀입니다.

절기를 공부할 때도 살펴보았는데, 이스라엘의 절기는 작게 말하면 3대 절기가 있었고, 조금 폭을 넓히면 7대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7가지 절기의 가장 베이스가 되는 것, 밑바탕이 되는 것은 안식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식년, 희년의 베이스가 되는 것,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레위기 25장에서는 안식일을 다루지 않습니다. 왜 다루지 않을까요? 이미 앞에서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해서만 다룹니다.

1. 안식년의 규례

안식년에 대한 일반적인 규례가 어떠합니까? 2절을 우리가 조금 전에 읽었습니다. 다시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 무엇이 전제가 되어 있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기 말씀을 받는 자리는 시내산 아래입니다. 출애굽에서 석 달 만에 시내산까지 허겁지겁 왔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하나님이 십계명도 주시고 성막도 주시고 레위기 법전도 주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막 3개월밖에 달려오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갈 길이 구만 리처럼 굉장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주려고 한 땅에 들어간 후에"라고 하셨습니다. 이 전제는 가나안 땅을 반드시 너희에게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정도로 말씀하시면 이 말씀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구나,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당연히 주시려고 계획하고 이미 마음먹고 계시는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 가 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지 안 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말이 통하지를 않습니다. "너희에게 주시려고 하는 땅에 들어가거든"이라는 말은 땅을 반드시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천국과 지옥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 인생이 끝나면 양과 염소로 나뉘어지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은 천국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던 사람은 영원한 형벌로 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죽어 봐야 안다'고 말하는데, 그것만큼 바보 같고 어리석은 말은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이라고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가나안 땅이 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된 것처럼 우리가 이 땅을 떠나고 나면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죽어 봐야 안다, 잘 모르겠다, 그냥 성경에서 하는 소리지' 이렇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 믿음 생활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1-1. 여호와를 위한 안식

그래서 이 전제를 잘 기억하시고 그다음 하는 말을 보시면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땅이 여호와 앞에 안식한다. 도대체 이 말이 무엇일까요? 그 말이 그다음에 또 반복됩니다. 3절을 보시면 "너는 6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여 6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농사지을 것 아닙니까? 목축하는 사람도 있고 농사짓는 사람도 있을 텐데, 농사를 짓고 과수를 할 때 6년 동안은 파종도 하고 포도원에서 농사지어서 소출을 거둘 것입니다. 그런데 7년째는 어떠합니까? 4절을 보면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을 원어에 좀 더 충실하게 말을 바꾸어 보면 '여호와를 위한 안식'이라는 뜻이 됩니다. 자, 땅이 7년째 쉬는 것이 어떻게 여호와를 위한 안식이 되느냐, 이상하지 않습니까? 6년 동안 열심히 농사짓다가 하나는 무조건 쉬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안식이 됩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땅이 쉬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할 일이 없습니다. 쉬어야 됩니다. 그러면 땅이 너무 많았을 때, 예를 들어 농사지을 땅이 너무 많으면 6년 동안 정신없이 일하고 정신없이 돌아가고 바쁘게 살다가 7년째 안식합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농사가 잘 되고 소출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 많이 벌면 좋을 것 같은데, 너무 돈이 많이 들어오면 그 돈 버느라 정신이 없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소홀해집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험거리이고 문젯거리입니다.

그런데 6년 동안 열심히 일하느라고 물론 일주일에 한 번씩 안식일을 지키고 쉬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내적인 경건 훈련과 묵상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7년째 땅이 쉬면 사람도 쉽니다. 그러면 그냥 마냥 놀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위한 안식'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사람이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친밀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냥 무작정 땅만 쉬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땅의 지력을 위해서 땅을 그냥 농사짓지 않고 쉬게 해 주면 그다음에 땅이 스스로 회복합니다. 버려진 땅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 땅의 소출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땅을 쉬게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안식'이라는 말은 땅이 쉬어서 농사짓는 사람도 쉬고 하나님과 새로운 영적 관계를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안식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1-2.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 안식

두 번째 의미가 그다음에 나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6년 동안 열심히 농사지으면 소출이 나옵니다. 그런데 7년째는 딱 쉽니다. 7년째 농사짓지 않고 파종하지 않고 그냥 던져 두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농사지어 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스스로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거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6년 동안 거둔 후에 7년 안식년째 던져 두고 내버려 두는 것이 성장하고 자라면 아무것도 손대지 말라,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을 안 거두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 먹습니까? 자기가 농사짓지 않은 것을 안 거두면 누가 거둡니까? 뒤에 나옵니다. 6절을 보면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고 합니다. 아니, 주인보고 거두지 말라 했는데 여기에는 너희가 거둔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누굽니까? 뒤에 나옵니다.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즉 이 말씀은 땅을 가진 사람이 그 땅에서 나오는 모든 소유물을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우리는 사실 땅을 가지고 있으면 그 땅에서 나오는 모든 소유가 주인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년 때는 그것을 농사짓지 않고 노동하지 않았는데 땅이 스스로 소출을 냅니다. 그러면 그것을 주인 것으로 돌리지 말고 남종이나 여종이나 거류민이나 객이나 품꾼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다 나누어 먹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위한 안식'의 두 번째 의미는 여호와의 영광을 위한 안식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은 독점하지 말고 분배를 하고 나누어 주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잘 나누고 함께 베풀어 주면 그것이 결국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를 위한 안식'에 두 가지 의미를 다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땅이 쉬면 사람도 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서 예배드리는 것이고, 둘째는 땅이 쉬는데 거기서 나오는 소출을 주변 이웃들과 다 나누어 먹고 공동 소유를 하게 되니까 그분들이 이 법을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 아닙니까? 그러면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안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1-3. 노동과 불로소득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서 보셔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소유 개념입니다. 노동을 한 소유는 자기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안식년에는 땀 흘리지 않았습니다. 씨 뿌리지도 않았고 김매기도 안 하고 그냥 던져 놓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열매가 났습니다.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 함께 나누는 공동 소유라고 했습니다.

그 기준을 오늘 우리 기준으로 가지고 오면, 오늘 우리 시대에는 불로소득이 너무 많습니다. 요즘 부동산이 만들어 내는 불로소득이 있고, 여러 가지 자본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자본이 있고, 돈을 굴려서 돈이 돈을 낳는 또 다른 구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동하지 않은 수고가 과연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애초부터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리고 노동한 수고가 너희의 것이다, 나머지는 다 공동 소유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땅이 뒤에 가면 나오지요. 땅이 영속적으로 자기 것으로 계속해서 대물림되고 대물림되니까, 돈이 돈을 만들고 땅이 또 돈을 만들고 이런 구조가 과연 언제까지 갈지 모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정하신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일단 인식하고 계셔야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께 축복받았다, 하나님 나에게 복 주셨다' 하는 것은 성경을 모르는 부끄러운 소리입니다. 불로소득을 가지고 하나님이 나에게 복 주셨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복권 사도 안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로또 아무리 사 보십시오. 하나님 믿는 사람은 그것이 안 되어야 정상입니다. 만약에 덜컥 되고 나면 두려워하고 겁을 좀 내셔야 됩니다. 불로소득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동하고 땀 흘린 그 수고가 너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여기 보면 "가꾸지 아니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노동하지 아니한'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 '가꾸지 아니한'은 '나지르(נָזִיר)'라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지 않으십니까? 나지르. 나실인 할 때 나실이 여기서 왔습니다. 민수기 6장 2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이라고 합니다. 여기 나실인은 구별된 자입니다. 즉 부모가 부모라 하더라도 이 자녀가 나실인의 서원을 한 자녀면 부모가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따로 구별되었기 때문에, 부모가 가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직접 그 자녀를 공들여 가꾸고 '내 아이'라고 계속해서 돌보았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여기 '나지르(נָזִיר)', 가꾸지 아니한, 수고하고 땀 흘리지 아니한이라는 말은 다 하나님 것이라는 뜻입니다. 나실인도 부모가 아무리 수고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수고하신 것이니까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은 하나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4. 면제년의 의미

여기서 우리가 안식년 규정을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또 하나 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15장 1절과 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매 칠 년이 무엇입니까? 안식년입니다. 면제하라. 그래서 안식년을 다른 말로 면제년이라고도 했습니다. 무엇을 면제하라 했습니까?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 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빚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 꿔 간 사람은 복된 소식인데 꿔 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꿔 준 사람은 '세상에 이런 공산당 같은 법이 있나?' 기분 나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조금 이따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실 매 7년 안식년 때마다 꿔 가고 꿔 준 것을 다 없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그냥 빌려 가고 도둑놈 심보로 '배 째라' 갚지 않고 이런 말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최선을 다해서 갚다가 남은 것이 있고 또 이자가 있는데, 그런 것 받지 말고 다 면제해 주라는 뜻입니다. 열심히 갚았는데, 열심히 내가 갚고 갚고 또 노력하고 수고했는데 안식년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것은 없던 것으로 하고 그냥 그 빚에 대한 심적 부담에서 자유하십시오 하고 선포해 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번 계산해 보십시오. 사람은 안식일을 지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명하신 것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며칠에 한 번 쉽니까? 7일마다 하루씩 쉽니다. 1년에 주일이 몇 번 돌아옵니까? 일반적이면 52주입니다. 52 곱하기 7 해 보십시오. 얼마 나오는지 빨리 계산해 보십시오. 364가 나옵니다. 거의 1년이지요. 땅은 6년 동안 일하고 1년을 통째로 쉽니다. 365일을 사람은 7일에 한 번씩 쉬는데, 7년이 딱 가면 똑같이 맞아 들어갑니다. 신기하지요. 사람이나 땅이나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사람은 짧은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쉼을 명하셨고, 7일마다 하루씩의 쉼입니다. 그런데 그 쉼의 기준도 똑같습니다. '여호와를 위한 안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상식이고, 쉬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굶기시겠습니까?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책임에 대한 이야기도 살펴볼 것입니다.

2. 희년의 규례

이제 희년을 한번 보겠습니다. 희년의 일반 규례에 대하여 희년의 말부터 한번 봅시다. 희년이라고 하면 우리는 이 '희(禧)' 자가 한자로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쁠 희(喜)'라고 생각하는데, 사전을 다시 찾아보시면 그렇지 않습니다. '복될 희(禧)' 자입니다. 복된 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번역한 우리 조상들이 굉장히 뛰어난 번역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희년은 '요벨(יוֹבֵל)'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왔습니다. 즉 이 요벨(יוֹבֵל)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숫양의 뿔입니다. 숫양의 뿔이 희년입니다. 그런데 숫양의 뿔이라는 요벨(יוֹבֵל)을 왜 우리 조상들이 한글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희년'이라고 했을까요? 이 내용을 잘 읽어 보고 살펴보니까 기쁜 날이고 복된 날입니다. 다 면제하고 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복된 날입니다. 그래서 의미를 생각하고 번역한 단어가 희년입니다. 원래의 의미는 요벨(יוֹבֵל), 즉 숫양의 뿔이라는 뜻입니다.

왜 숫양의 뿔이 되었습니까? 이유가 나옵니다. 8절을 보면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그러면 몇 년이 갑니까? 49년 갑니다. "이는 7년이 7번인즉 안식년 7번 동안 곧 49년이라." 49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이듬해가 됩니다. "일곱째 달 열흘 날은 속죄일이니" 여기서 일곱째 달은 종교력으로 일곱째 달입니다. 그러면 일반 달력으로는 신년입니다. 지난번에 한번 했지요. 신년 열흘째 날이 대속죄일입니다. 그래서 종교력으로 일곱째 달, 일반 달력으로 신년 10일은 대속죄일입니다. "이날 뿔나팔 소리를 내되" 여기서 요벨(יוֹבֵל), 숫양의 뿔을 부는 것입니다. 50년에 한 번, 50년째를 맞이하는 신년 1월 10일에 숫양의 뿔을 부는 것입니다.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러 치면 그 해는 희년입니다.

2-1. 자유의 선포

그러면 희년에는 어떤 규정이 있습니까? 내용을 보시면 이렇게 나옵니다. 10절에 "너희는 50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라고 합니다. 여기 이 '자유'라고 되어 있는 말이 '데로르(דְּרוֹר)'라는 히브리어입니다. 이것은 해방,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희년에 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까? 사람이 살다 보면 땅을 팔아먹을 때도 있습니다. 일이 망해서 잘 안 되어서 땅을 팔고, 그다음 파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지고 있는 전답도 팔고, 그다음에 팔 것이 없으니까 자기 노동력을 팔게 됩니다. 노동력을 판다는 말은 종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50년째 희년이 되면 땅도 다시 돌아오고, 자기 노동력을 팔았던 종에서도 해방되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그 해를 희년이라고 말했습니다. 50년에 한 번, 안식년 일곱 번 지내고 그다음 해가 되면 희년입니다.

희년의 규례가 또 나옵니다. 11절을 보면 "그 50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고 합니다. 희년에도 씨 뿌리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2-2. 믿음이 필요한 희년

그러면 이 희년을 지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곱째 안식년 지나고 그 이듬해가 희년입니다. 안식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안식년 한 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살았습니다. 그다음에 50년째가 또 희년입니다. 그러면 사람 걱정이 어떻게 될까요? '뭘 먹고 살지?' 뭘 먹고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희년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희년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내가 너희 3년 치, 4년 치 먹을 것 다 책임지마' 이 뜻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데도 무엇이 필요합니까?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믿음이 없습니다. 나를 보면 압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도 내려 주시고 메추라기도 내려 주셨는데, 6일째 되던 날, 여섯째 날에는 2배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다른 날은 2배를 거두면 다 썩고 냄새나서 먹을 수가 없었는데 6일째 되는 날은 2배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유는 안식일에 아무것도 못하게 하려고, 예배만 제대로 드리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누리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안식일 규정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누적되면서 안식일 그 전날은 2배를 거두게 하시고, 안식년 그전에 몇 배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년 그다음에 희년이 와도 걱정할 것 없이 다 먹고 살게끔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희년을 제대로 지키려면 사람들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안식하려면 믿음이 필요하고, 목사도 안식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요즘 일중독이라고 합니다. 일중독은 다른 말로 옮기면 '믿음 없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안 돌아갈 것 같고, 내가 이것을 쉬면 망할 것 같고, 굶을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그런데 놓아 보고 쉬어 보면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가 다시 회복되고, 하나님은 희년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고 안식년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우리 자녀들이 살 것도 풍성하게 공급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희년에 복된 것입니다.

2-3. 토지 매매의 원칙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이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다가 이런저런 이유에서 땅을 팔았습니다. 그러면 산 사람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은 희년이 되면 다 돌려주어야 합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요. 7년째마다 면제년이 되어서 다 면제해 주면 면제받는 사람은 복되지만 면제해 주는 사람은 피눈물 날 것 아니냐고. 지금 여기 땅도 내 소유였는데 희년이 되면 다 돌려주어야 합니다. 전부 다시 원점으로 딱 리셋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12지파가 땅 분배했습니다. 땅 분배한 그 경계대로 50년에 한 번씩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희년입니다.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땅 팔고 다른 지파가 사는 땅에 가서 얹혀 살고 거기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희년이 되면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원천적으로 하나님은 토지 매매 자체를 못하게 하셨는가, 토지 매매가 아예 금지되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토지 매매의 기준은 희년입니다. 땅값의 호가가 희년이 얼마 남았느냐에 따라서 정해집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올해가 희년이었습니다. 올해가 50년째입니다. 그러면 내년이 되었습니다. 내년은 이제 희년 끝나고 다시 1년째입니다. 그러면 이 희년이 다시 돌아오려면 몇 년이 남았습니까? 50년 남은 것 아닙니까? 49년 지나고 오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살다가 다시 땅을 받았는데 1년 만에 망해 버렸습니다. 땅을 팔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땅을 산 사람은 50년 동안 자기 소유로 가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 땅값이 비쌀까요 쌀까요? 비쌉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해가 희년입니다. 희년. 1년 남았습니다. 그런데 망했습니다. 땅을 팔아야 됩니다. 그다음 해에 다시 땅을 다시 돌려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땅값은 비쌀까요 쌀까요? 쌉니다. 아주 헐값이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토지 매매의 호가는 희년이 얼마 남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기 나와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 희년 후의 연수를 따라서" '희년 후의 연수'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희년 후 몇 년 남았느냐, 다음 희년까지. "너는 이웃에게서 살 것이요 그도 소출을 얻을 연수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인즉" 그 땅에서 얼마의 소출이 나오느냐, 밀이 얼마 수확되느냐, 보리가 얼마 수확되느냐 그 기준으로 땅값을 정하는 것입니다. "연수가 많으면" 즉 희년까지 남은 시간이 많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많이 매기고 연수가 적으면" 즉 희년까지 남은 연수가 적으면 "너는 그것의 값을 적게 매길지니 곧 그가 소출의 다소를 따라서 네게 팔 것이라" 합리적이지요. 합리적인 것입니다.

17절에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합니다. 왜 갑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우리 땅에서 밀 백 석이 나옵니다, 백 섬이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속이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냥 원래 소출되는 그대로 이웃에게 정직하게 팔고 하나님께도 정직하게, 그래서 속이지 말고 사고팔고 거래하라는 뜻입니다. 거래 자체를 하나님이 막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거래하되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서 거래하고, 50년이 되면 반드시 다시 원위치. 그러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합리적이지 않습니까? 합리적입니다. 그렇게 해서 땅값을 매기라는 뜻입니다.

2-4. 희년을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

희년에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희년은 믿음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희년이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 믿음을 따라서 희년을 잘 지킨 자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복입니까? 18절에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즉 희년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안전을 약속하셨습니다. 안전이라는 말은 전쟁이 없게 하겠다,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너희를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희년을 지키면 안전을 보장받습니다.

또 "땅은 그것의 열매를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하게 거주하리라"고 합니다. 희년을 지키면 죽을 것 같은데, 땅이 알아서 소출을 해서 너희가 배불리 먹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즉 먹고 살 걱정 없이 책임져 주겠다는 뜻입니다. 안전도 또다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똑같습니다. 일을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성실하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안전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고 사는 것 걱정 없이 배불리 먹게 하겠다고 책임진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까 해 보시는 것입니다. 해 보고 하나님께 따지고 '하나님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배불리 먹고 안전하게 책임져 주십시오' 구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현실적인 걱정을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20절에 "만일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일 일곱째 해에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면" 즉 안식년을 지킬 때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할 것 아닙니까? 일곱째 해에 "우리가 무엇을 먹으리요 하겠으나 내가 명령하여 여섯째 해에 내 복을 너희에게 주어" '내 복'이 누구 복입니까? 하나님 복입니다. 하나님이 가진 복을 직접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소출이 3년 동안 쓰기에 족하게 하리라"고 합니다.

왜 3년 동안 쓰기에 족할까요? 안식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7년째에 파종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합니다. 그러면 8년째, 그다음 해 되는 8년째 이제 씨 뿌립니다. 그때도 못 먹습니다. 그러면 진짜 먹는 것은 몇 년째입니까? 9년째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6년째 몇 배를 주셔야 됩니까? 3배를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 말입니다. "너희가 여덟째 해에는 파종하려니와 묵은 소출을 먹을 것이며" 왜 묵은 소출을 먹습니까? 6년째 3배 받은 것을 묵혀 놓았다가 그것 먹는 것입니다. "아홉째 해에 그 땅에 소출이 들어오기까지 너희는 묵은 것을 먹으리라" 3배를 미리 받았으니까 그것을 잘 묵혀 놓았다가 먹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자, 희년 그리고 안식년을 잘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3. 희년의 세부 규정

이제 희년의 세부 규정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3-1. 토지는 하나님의 것

희년과 관련한 토지에 대한 두 가지 원칙 중에 첫 번째가 23절입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영구히 팔지 말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희년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사고팔되 50년째는 반드시 되돌려 주라, 주인에게로 다시 돌려주라, 원위치시키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토지는 다 누구 것이라고요?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얹혀 사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이 땅을 보시는 관점입니다. 땅은 전부 다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거류하고 동거하는 동거인입니다. 하나님이 잠깐 이 땅에서 살도록, 길어 봐야 100년 살도록 그냥 거기 머물러 살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땅이라고 대물림하고 손자의 손자, 또 손자의 손자까지 주려고 땅값을 부풀리고 투기를 하고 그것 가지고 몇 대가 먹을 것을 쌓아 놓고 삽니까?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땅은 다 하나님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50년마다 얹혀 살다가 다시 돌려주고 다시 돌려주고, 다 하나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거류민이요 동거인입니다.

그래서 안식년과 희년의 규정은 우리 일상의 거룩 가운데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라, 너희들이 땅을 소유한다 해 봐야 길어야 50년이다, 50년도 소유하지 못할 땅에 목숨 걸지 말라, 너희의 영원한 영토는 어디에 있느냐, 저 천국입니다. 영원한 천국이 너희에게 정말 좋은 천국이 있는데, 왜 이 땅에 그렇게 목숨 걸고 살아가느냐, 50년밖에 못 가지고 있을 땅을 그렇게 목숨 걸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과 14절을 한번 읽어 봅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중요한 단어 세 단어가 나옵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 외국인과 나그네, 그리고 '본향'. 본향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국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조상들의 삶을 히브리서 기자가 정리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사라 등등의 모든 믿음의 조상들이 이 땅에 살면서 외국인처럼 나그네처럼 살았다는 뜻입니다. 이 땅의 주인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산 이유는 외국인과 나그네였으니까, 참된 본향이 저 천국에 있으니까, 기껏해야 땅 소유해 봐야 50년도 못 가지고 있을 거기에 목숨 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가, 특히 이 땅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닙니까?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을 직접 한번 들어 봅시다. 창세기 23장 4절을 보면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했습니다. 헷 족속에게 한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와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땅 한 평 없었습니다. 아내 사라가 죽었습니다. 장사할 매장지가 없습니다. 헷 족속에게 땅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이라고 말하면서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라고 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아브라함이 이렇게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 잠시 왔다가 갈 사람입니다. 나의 영원한 본향은 저 천국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우리 성도의 정체성을 뭐라고 합니까? 거류민과 나그네, 잠깐 왔다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열왕기상 21장 3절 4절을 인용해 두었는데, 이것은 악한 왕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입니다. 나봇이 자기 포도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땅입니다. 그런데 왕이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50년 동안만 내가 너에게 사겠다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내가 소유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봇이 거절한 것입니다. 거절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이세벨이 "왕이 그런 것 가지고 걱정하십니까?" 하고, 거짓 증인 두 사람을 세워 가지고 '나봇이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봇을 죽여 버립니다. 땅을 영원히 자기 소유로 삼아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굉장히 악하게 보시고 그것 때문에 아합과 이세벨을 죽이시고 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땅은 하나님 것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 것이고, 우리는 거기 얹혀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땅을 보고 명하시는 대로 해야 됩니다. 투기하면 안 되고, 그냥 살면서 이 땅을 잘 보존해야 되고, 자연 보호해야 되고, 함부로 플라스틱 이런 것 막 만들어서 버리면 안 됩니다. 다 하나님 것인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이고 우리는 거기에 얹혀 사는 거류민과 나그네인데 마음대로 개발하고 마음대로 쓰고 그래서 되겠습니까? 산에 나무 함부로 막 벌목하고 그런 이야기가 여기에 뿌리를 둔 신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자연 보호하고 플라스틱 버리면 안 되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땅이 하나님 것이니까 우리는 잠깐 왔다가 얹혀 살다가 가는 존재이니까 그런 마음을 늘 가지고, 이 땅에 큰 소망 두지 마십시오. 천국 소망 두고, 그리고 영원히 돌아갈 본향 두고, 그것 기억하고 사시면 자유롭고 행복할 것입니다. 남들이 무엇을 하든 크게 우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3-2. 무르기 원칙

자, 두 번째, 희년과 관련한 토지에 대한 두 번째 원칙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르기 원칙입니다. 물러주는 것입니다. 우리 친구들끼리 "야, 이것 나 물러 줘" 이런 이야기 합니다. "이것 물을 테야" 그러면 애들이 "한 번 한 건 못 물러, 안 돼" 합니다. 그런데 땅은 무르는 법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르는 것을 꼭 법칙에 넣어 두셨습니다.

25장 24절을 보시면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라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토지 무르기를 나는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망했습니다.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땅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정말 가까운 친척이 보니까 딱합니다. 저 땅을 일구기 위해서 수고한 조상들의 수고를 아니까 친척이 땅 산 사람에게 찾아가서 땅을 자기 돈을 주고 다시 돌려받았습니다. 그러면 무조건 물러 주어야 합니다. '한 번 판 것 못 물러 줍니다' 이것이 아니라 가까운 친족이 와서 '땅을 다시 되파십시오' 하면 물러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이 사람은 자기 돈으로 땅을 사서 자기 친척에게 그냥 주는 것입니다. 자기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업 무르기입니다. 그것을 허락하라는 뜻입니다.

원칙이 나옵니다. 25절에서 27절에 있습니다.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제가 사업이 힘들어 땅을 팔았는데 친척 중에는 땅을 다시 물러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다시 일어났습니다.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땅을 판 사람한테 가 가지고 '다시 땅을 제가 사겠습니다' 하면 희년에서부터 마이너스 될 것입니다. 시간이. 그러면 그 시간을 제외하고 그 나머지 시간대로 돈을 주고 사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업 무르기입니다.

3-3.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런데 이 기업 무르기가 이제 신약에 와서는 어떤 형식으로 신약적 의미로 변화가 되는지 볼까요? 마가복음 10장 45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이것이 기업 무르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땅을 판 사람들의 사연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어떤 경우에 땅을 팝니까? 정말 열심히 일하다가 피치 못한 경우에 땅을 기업을 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입니다. 기본적으로 땅을 파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래를 허락해 놓으셨다 하더라도 술 먹고 노름하고 허랑방탕하게 쓰다가 망해서 땅을 팔 수도 있습니다. 자기 죄 때문에, 자기 잘못으로. 그리고 호기 부리다가 땅을 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땅을 기업을 넘기는 이유 중에 아주 굉장히 많은 부류가 자기 죄 때문에 땅을 파는 것입니다. 땅 팔고 그다음 무엇 팝니까? 노동력 판다고 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업을 다 나누어 주셨는데, 가나안 땅 정복하고 열두 지파에게 충분히 먹고살 만한 땅과 기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농사짓고 열심히 목축해서 살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혹은 게으르게 있다가 게을러서 땅을 파는 사람, 일확천금을 꿈꾸다가 땅을 파는 사람, 그래서 자기가 남의 종이 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영적 의미로 보면 죄 지어서 사탄의 종 노릇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죄 지어 보십시오. 처음에는 자기가 죄를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해서 죄를 짓는 것 같지만 사탄의 유혹에 내가 넘어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던진 미끼를 내가 덥석 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미끼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요만한 죄가 이만한 죄가 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만들어 낸 죄들을 보면 처음에는 태만, 나태로부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전쟁하러 가는데 요압과 자기 군대들 다 내보내 놓고 자기는 늘어지게 낮잠 자고 있었습니다. 태만의 죄입니다. 게으름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늦게까지 잠자다가 일어나서 왕궁 옥상 거닐다가 건너편에 보니까 한 여인이 목욕합니다. 안목의 정욕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작은 죄들이 쌓여서 간음의 죄가 되고, 살인의 죄가 되고, 십계명 중에 또 그다음 죄 이웃의 아내를 탐한 죄가 되고, 자그마치 십계명 중에 세 가지 계명이나 한꺼번에 범해 버렸습니다.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그 죄가 또 다른 죄를 부르고, 이제 죄의 종 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속절없이 끌려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해결해 주셨습니까? 예수께서 오셔서 기업을 물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내어 주시고 속전을 지불하신 것입니다. 대속의 돈을, 속전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다시 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핏값으로. 예수님이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법과 이웃이 되셔서 우리의 영혼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다시 되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시는 죄의 종 노릇하면 안 됩니다. 다시는 예수께서 우리를 예수님 당신의 몸과 피와 모든 것을 다 쏟아내시고 우리를 건져 주시고 속전을 지불하시고 기업을 물러 주셨는데, 우리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까맣게 잊고 다시 스스로 자기 발로 걸어가서 죄 종 노릇 하고, 자기 발로 걸어가서 죄를 벗하고 아닌 척하고 살면 하나님이 통곡하실 노릇 아닙니까? 예수님을 우리가 두 번이나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똑같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속전으로 건져 받은 자입니다. 구약 시대 이런 인간들 없었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이웃이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자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노름을 해 가지고 기업을 잃었습니다. '한 번만 내가 가서 기업을 물러 주자.' 자기 돈으로 가서 다시 사서 되찾아 왔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 집안 어른들 앞에서 서약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래 놓고 또 그 짓 합니다. 또다시 전답이 또 넘어갑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런 인간들, 그런 구제 불능 인간들이 없었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물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셔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빼 오시고 건져 오셨습니다. 속전을 지불하시고. 그런데 자기 발로 걸어가서 또 죄 종 노릇하고 사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이 기업 무르는 것은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구원과 연결시켜 생각하셔야 됩니다. 한 번 그렇게 했으면 두 번 다시 죄는 쳐다보지도 않아야 됩니다. 두 번 다시 십자가 붙잡고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투쟁하고 '다시는 제가 죄 짓지 않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던져 가며 나를 다시 되찾아 오셨는데 저는 다시는 내 발로 죄를 향하여 걸어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 희년의 법은 천국을 소망하는, 천국을 소망하고 나아가는 순례자가 기억해야 될 것이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가장 중요한 레위기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4. 예수님의 희년 선포

예수님이 출정식을 하신 장면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이제 공생애를 딱 시작하시면서 '내가 이렇게 사역하겠다' 하시는데,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딱 희년에 대한 선포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에서 2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어디에 포로 되었습니까? 우리가 죄에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자유가 두 번이나 나옵니다. 죄에 눌려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고 합니다.

은혜의 해가 무엇입니까? 희년 아닙니까? 희년. 예수께서 출정식 하시는 그 장면,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그 장면에서 '나는 희년을 선포하기 위해서 너희에게 왔노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날이 너희에게는 가장 복된 날이요. 뿔나팔을 불어서 너희를 죄에서 구속하는 날이니 다시는 죄의 종 노릇을 하지 말라. 두 번 다시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가슴에 새겨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살아갈 때 자기 정체성을 딱 기억하셔야 되는데,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려면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핏값으로 우리는 죄에서 건져 받은 자입니다. 팔려 갔다가 다시 되찾아 온 사람입니다. 자기 발로 다시 종 노릇하러 가는 그런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음 주 한 주 마지막은 복과 저주 그리고 서원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사실 신앙생활 하시면서 많이 궁금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서원에 대한 것인데, 다음 주에 서원에 대해서 다루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일상의 거룩을 말씀하시면서 안식년과 희년을 말씀하시고, 우리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땅을 소유하는 데 목숨 걸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고 걸어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천국 소망 가슴에 부여잡고 이 땅의 가치에 두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본향 찾는 나그네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스스로 죄의 종 노릇 하며 살고 죄가 우리를 지배하며 다스렸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고 자기 몸을 대속물로 내어 주시고 속전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 놀라운 은혜와 기업을 물러 주시는 놀라운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련하게 스스로 자기 발로 다시 죄의 종 노릇 하고 걸어가는 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는 두 번 다시 죄악 길로 걸어가지 않도록 도우시고, 오로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 구원받은 자의 길을 걷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