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특강 17강 - 복과 저주 그리고 서원 (레26-27장)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레위기 26:12)
레위기 특강 열일곱 번째 시간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레위기를 이렇게 열심히, 이렇게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달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사실 이번 학기의 소득은 레위기가 재미없는 책이 아니라는 것, 읽고 공부하니까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고 따라갈 만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셨다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레위기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고, 레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1장에서 16장까지는 예배와 제사에 대한 거룩을 다루고 17장부터 27장까지는 일상의 거룩을 다루며, 그 안에 제사의 어떤 것들이 있었고 일상에는 어떤 주제들이 있었는지 그 정도만 기억하셔도 굉장히 훌륭한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마지막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26장은 레위기의 결론입니다. 레위기가 이렇게 흘러와서 마지막 결론은 복과 저주입니다. 복과 저주를 가늠하는 갈림길이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하나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는데 이 말씀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저주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의 갈림길이 26장의 핵심입니다.
27장은 서원에 대한 말씀인데 사실 부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서원, 곧 기도를 하겠지요. 너희들이 서원 기도를 하고 간절한 소원이 있어서 기도할 텐데 이러한 기준 안에서 서원을 하라 하시는 부록에 가까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과 저주 그리고 서원에 대해서 함께 공부해 보려고 합니다.
1. 복 받을 전제조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을 전제조건이 무엇입니까? 1절과 2절인데 전제조건이 두 가지입니다.
1-1.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
1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조각한 것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1절을 읽더라도 이 1절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훈련입니다. 지금 여기서 1절에서 정말 중요한 한 단어를 꼽으라면 '자기를 위하여'라는 말입니다.
우상의 본질을 다루고 있는데 우상은 우리가 생각할 때 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다른 종교에 가면 볼 수 있는 거대한 형상, 나무로 깎아 만든 것, 금붙이 쇠붙이로 만든 것 등을 우리가 우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물론 우상이지요. 그런데 보다 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우상의 핵심이 무엇이냐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우상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자기를 위한 우상, 그렇게 따져본다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성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만들어내고 추구하고 따라가는 모든 것은 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만약 생각 없이 그냥 세상 풍조 흘러가는 대로 막 살다 보면 다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중심적으로 움직이니까요. 돈을 쓰더라도 혹은 돈을 벌더라도 자기 중심적으로 돈을 벌면 우리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고. 개같이 버는 것,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대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개같이 번 자들의 소득은 성전에 가지고 오지 말라고 그대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물질을 버는 것도 방법이 있고 정상적인 절차와 정상적인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기준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하여 물질 생활을 하지 말고, 버는 것도 쓰는 것도 자녀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것도 부모가 자기 영광 받으려고 자녀를 키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이 자식 키워 가지고 결국은 내 영광 받으려고 좋은 학교 보내고 좋은 직장에 취직시키고, 세상이 볼 때 좋은 혼처에 시집장가 보내고, 그러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기쁘지 않습니까. 결국은 자기를 위하여 하는 모든 행위는 전부 다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우상의 본질이 곧 자기 중심성이요 우상숭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이 레위기 말씀을 언제 어디에서 듣고 있습니까? 출애굽한 이후에 3개월이 지나고 시내산 아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와 있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십계명 주시고 성막 지으라 하시고 율법 주시고, 너희들이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언약 백성으로 이렇게 살아라 하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이 조상 때부터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종살이하고 살아왔는데 너희들이 430년 동안 살아왔던 그 삶은 자기를 위한 삶이다. 하나님을 위한 삶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인 삶입니다.
그래서 우린 생각하고 살아야 됩니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돈을 벌거나 돈을 쓸 때도, 자녀를 양육하거나 키울 때도, 아 이게 정말 나를 위한 건가, 내 중심적인 건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건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사건 때 금 신상 만든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도 이 말씀이 그대로 나옵니다. 출애굽기 32장 1절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입니다.
이 말씀 자세히 보십시오. 굉장히 무서운 말인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오던 모세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대신할,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다른 신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들은 모세를 뭘로 본 것입니까? 신으로 본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에겐 하나님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모세가 곧 우상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우상일 수가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하고 너무너무 무서운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내 부모가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내 자식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그 어떤 것이든 조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32장 8절입니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여기도 나오지요.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 그것이 다 우상입니다.
그래서 가끔 뉴스에 보면 다른 종교 장소에 가서 신상 때려 부수고 거기서 할렐루야 찬양하고 막 그런 것 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우상을 때려 부숴야 합니다. 내가 다 자기 중심적인데, 자기 고집에 똘똘 뭉쳐 있고,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말이 통하지 않고 고집으로 똘똘 뭉쳐 있고, 자식들 말은 아예 귓전으로도 듣지 않고, 누구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고, 외골수가 되고 옹고집이 되고 정말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어떻게 그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복 받는 비결, 여기서 지금 말씀하셨습니다. 복 받을 전제조건 첫 번째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면 사람이 여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집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거울에 자기를 계속 비추어 보고, 아 이게 내가 틀렸구나, 아 지금까지 내가 잘못 살았구나, 회개하고 돌이키고, 매일매일 부서지고 또 부서지다 보면 사람이 굉장히 부드러워집니다.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와도 다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완고한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한 사람이 대체적으로 그렇습니다.
1-2. 안식일을 지키라
두 번째 복 받을 비결이 2절에 나옵니다. "너희는 내 안식일을 지키며 내 성소를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복 받을 전제조건을 지금 결론으로 26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성을 가지라. 두 번째는 안식일을 기억하라.
안식일의 의미를 지금까지 계속 설명했습니다. 23장에서 절기 할 때 다루었지요. 이스라엘에 크게 보면 7가지 7대 절기가 있는데 그 7대 절기의 핵심 베이스, 기본이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안식일입니다. 지난주에 공부했던 안식년, 희년의 기본 베이스가 무엇입니까? 안식일입니다.
왜 그러냐면 안식년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7년째 씨도 뿌리지 않고 경작하지 않고 내버려 놓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7년째 그것을 못하면 8년째도 못 먹습니다. 그러면 7년, 8년, 3년치 먹을 것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안식년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 전날 2배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성실하게 드리고 7일째 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한 쉼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신뢰하라. 내 말을 믿고 한번 쉬어 봐라. 내 말을 믿고 안식년을 지키고 희년을 지켜 봐라.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안식일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크게 복 받을 전제조건을 정리하면 첫째는 하나님 중심성을 가지라, 두 번째는 믿음을 가지라입니다. 이 두 가지만 전제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다 부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를 한번 적용시켜 보십시오. 나는 과연 하나님 중심적인가, 자기 중심적인가? 나는 과연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와 믿음이 있는가? 내 미래에 대한, 내 앞날에 대한 하나님이 나를 채우시고 인도하시고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가? 헌금하는 것, 안식일을 지키는 것, 이런 것 다 그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을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고 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그 다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 약속하신 복의 내용
3절을 한번 보십시오. "너희가 내 규례를 준행하며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규례와 계명, 앞에서 수백 가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딱 두 가지로 정리하면 하나님 중심과 믿음, 신뢰입니다. 1절과 2절입니다. 여기서 '준행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히브리어로 '할라크(הלך)'입니다. 할라크(הלך)는 '준행하다, 함께 걷다'라는 뜻입니다. 같이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같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준행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면서 지키고 또 지키고 순종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여정입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삶의 여정을 걸어가면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 가는 것이 할라크(הלך)입니다. 그것을 지키면, 준행하면 어떤 복을 주시는가?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5절,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풍성한 축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4절과 5절은 풍성함입니다. 풍성함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지키면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6절에서 8절입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평화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풍성함을 주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너희가 누울 때에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가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지리라." 평화와 승리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 다음 페이지를 보시면 9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번성의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0절,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항상 새로운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입니다. 두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그 두 가지가 하나님 중심성입니다.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자기 중심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참 믿음을 회복하라. 안식일은 믿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데 이것을 지키라. 그러면 하나님이 평화도 주시고 풍성함도 주시고 풍요로움 주시고 번성함도 주시고 새로움도 부어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우리를 이 말씀에 한번 대보시면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가를 계속해서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그다음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을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11절에 보니까 이것이 1절 2절과 계속 연결됩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너희와 함께하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임마누엘 하겠다.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겠다. 이것이 복 중에 제일 큰 복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큼 좋은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두 가지, 하나님 중심성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을 철저하게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복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3. 저주의 단계
그런데 성경은 항상 치우치지 않습니다. 새가 두 날개가 있는 것처럼 복을 말씀하셨으면 저주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회자가 설교할 때 맨날 "복받을 것입니다, 복받을 것입니다" 이것만 설교하면 한쪽 날개 자르고 가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성경에서 복과 저주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을 얘기하면 지옥도 얘기해야 됩니다. 구원을 얘기하면 심판도 얘기해야 되고, 복을 얘기하면 저주도 얘기하고, 지키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이런 큰 복을 주시는데 지키지 않는 자는 어떻게 하시는가? 복이 많을까요, 저주가 많을까요? 저주가 훨씬 깁니다. 그런데 저주에는 또 단계가 있습니다.
14절 15절을 보면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준행, 할라크(הלך)라 그랬지요. 함께 걷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북쪽으로 가시는데 너는 남쪽으로 가면 나와 함께, 말씀과 동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앞에 얘기했던 두 가지를 배반하면, 준행하지 아니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16절, 재앙입니다.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가 파종한 것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이며" 재앙으로 인한 질병 때문에 너희는 수고한 농사를 먹지 못하고 너희 대적들이 먹을 것입니다. 건강을 지켜 주지 않으십니다.
17절,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의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18절, "또 만일 너희가 그렇게까지 되어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어떻게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까지 되어서 돌이킨다면, 그렇게까지 되어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된다면 다시 회복시켜 주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되었는데도 청종하지 않으면 "너희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7배나 더 징벌하리라."
지금 여기 저주에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중간중간에 "7배나 더 징벌하리라" 이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이 나오는 이유는 이쯤 되면 돌이키지 않겠니, 이쯤 되면 이제 정신 차리고 돌아와야 되지 않겠니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할 때 같은 패턴입니다. 이제 좀 깨닫고 돌아와야 되는데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 7배의 내용을 봅시다. 19절 20절에 나오는데, "내가 너희의 세력으로 말미암은 교만을 꺾고 너희의 하늘을 쇠같게 하며 너희 땅을 놋과 같게 하리니" 하늘이 쇠가 되고 땅이 놋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쇠에서 비가 내립니까? 놋에서 농사 물이 잘 날 수 있습니까? "너희의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수고해도 농사가 안 됩니다.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의 자녀를 움키고 너희의 가축을 멸하며 너희의 수효를 줄이리니 너희의 길들이 황폐하리라." 들짐승까지 좋습니다. 농사도 안 되는데 이쯤 되면 돌이켜야 되지 않습니까?
또다시 말씀하십니다. 23절,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이제 좀 돌이키지 않겠니 하는 말씀입니다.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로 말미암아 너희를 7배나 더 치리라." 또 7배가 나옵니다. 이제 더 심한 징벌입니다.
26절, "내가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사람들이 양식을 의뢰합니다. 그것 먹고 사니까요.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이것을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10명의 여인이 화덕 하나를 쓰는데요. 어떤 상황일까요? 보통 한 가정에 여인 하나가 화덕 하나를 가지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 가정에서 밥하는 여인이 가정의 화덕 하나가 있어야 그 화덕으로 가정 식구들을 먹이고 돌볼 것 아닙니까? 그런데 10명의 여인이 화덕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10가정이 화덕 하나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됩니까? 이렇게 되면 굶어 죽습니다.
보십시오. "저울에 달아 주리니" 그것도 마음껏 못 먹습니다. 정해진 만큼 식량을 저울에 달아서 배급해서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릴 것입니다.
27절 28절,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의 죄로 말미암아 7배나 더 징벌하리니" 제발 좀 돌이켜라. 이쯤 되면! 그래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29절, "너희가 아들의 살을 먹을 것이요 딸의 살을 먹을 것이며" 이쯤 되면 이제는 죄악의 극상황입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민족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한마디로 말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37절 38절,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서같이 서로 쳐서 엎드러지리니 너희가 원수들을 맞설 힘이 없을 것이요 너희가 여러 민족 중에서 망하리니 너희의 원수들의 땅이 너희를 삼킬 것이라." 망할 것입니다. 너희가 여러 민족 중에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두 가지, 아까 얘기했던 그 두 가지 핵심입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사는 자 즉 우상을 숭배하는 자,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믿음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 그런 자들이 이런 화를 당할 것입니다. 이쯤 되면 돌이켜라, 이쯤 되면 돌이켜라 이렇게 계속 말씀하시는데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마지막에 가면 패망하고 패망할 것입니다.
4. 회개와 회복
그런데 또 반전이 있습니다. 40절에서 42절입니다.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 대적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벌을 기쁘게 받으면, 돌이키고 기쁘게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44절, "그런즉 그들이 그들의 원수들의 땅에 있을 때에 내가 그들을 내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맺은 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니라."
이 말씀을 가지고 포로로 끌려갔을 때 선지자들이 이 말씀을 계속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돌이키면 용서하신다. 너희들이 돌이키기만 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너희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라.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기부터 시작해서 구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신약 전체까지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약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 기다리고 또 참아 주십니다. 이렇게 복과 저주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무엇입니까? 돌이키면 받아 줄게. 회개만 하면 내가 용서할게. 그 말씀입니다. 화를 말씀하시다가 중간중간에 이쯤 해도 안 돌아올래, 이쯤 해도 안 돌아올래, 계속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읽다가 저주가 나오는 데는 건너갑니다. 무섭기도 하고 나하고 상관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저주가 기록된 장으로 들어가면 더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더 많이, 더 크게 녹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6절, 이제 26장의 결론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를 통하여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 지금까지 한 말씀, 이것은 레위기 전체 말씀입니다. 장소가 나옵니다. 시내산에서. 대상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누구를 통해서? 모세를 통해서. 그래서 26장은 레위기 전체의 결론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동 중에 받은 말씀입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받은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레위기를 읽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간단하지 않습니다. 내용이 굉장히 방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것을 시내산에서 이렇게 이동 중에 주셨을까요?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인데.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미리 준비시켜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 백성으로 예배의 거룩을 나와 함께 지켜라. 생활의 거룩, 일상의 거룩을 나에게 보여 달라. 그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레위기 말씀을 읽어보면 우리는 전제가 딱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전제는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반드시 분명히 확실하게 주실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리석게도 이 말씀을 받아 놓고도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안 믿었습니다. 믿다가 안 믿다가, 이랬다 저랬다, 손바닥을 뒤집듯이 계속 불신과 신뢰 사이를 오갔습니다. 어리석지요.
5. 서원에 대하여
이제 서원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서원할 때 '서(誓)' 자가 맹세하다 할 때 '서' 자입니다. '원(願)' 자는 바라다 할 때 '원' 자입니다. 무언가를 너무 바라니까 정말 이것을 바라니까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입니다. 맹세할 때 우리는 무엇을 걸고 합니다. 그렇지요? 내가 이것을 약속 지키지 않으면 내가 이것을 내어 줄게, 뭐 이렇게 무엇을 걸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무언가를 걸고 소원을 기도하고 바라는 것을 서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5-1. 사람의 서원
서원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반적 서원 기준이 어떠한가, 27장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려고 서원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그 당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다가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성막이 그대로 있을 것 아닙니까? 성막이 그들의 삶의 중심이 됩니다. 그런데 성막, 성막 밖에서 성막 전체를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지파 중에 레위 지파입니다. 레위 지파 외에는 성막 안에서 일하는 직책을 맡은 사람이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서원을 드린다, 내가 무언가를 서원한다 하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면 목사가 될 수 있고 전도사가 될 수 있고 또 교회에 와서 그냥 열심히 무급으로 봉사하고 성실하게 일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 당시 율법이 제정될 당시에는 레위인 외에는 성막에 와서 봉사, 일하는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돈으로 대신하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서원을 하면 그래서 사람마다 그 값을 매겨라 하는 뜻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값을 매겼을까요? 만약 누군가가 정말 급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을 이루어 주시면 제가 서원하고 반드시 그 값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제사장 앞에 나가서 제사장에게 확인받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기도 부탁을 하고 제사장도 그 기도를 같이 하고, 그래서 응답이 됐습니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약속한 대로 그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3절 4절을 보시면 "네가 정한 값은 스무 살로부터 예순 살까지는" 20세에서 60세까지입니다. "남자면 성소에 세겔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여자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20세에서 60세가 노동할 수 있는 나이 아닙니까? 왕성하게 노동이 가능한 나이, 은 50세겔을 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50세겔은 얼마 정도의 값이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의 그 당시에 통용된 화폐로 보면 남자의, 성인 남자의 한 달 품삯입니다. 그러면 50세겔이다, 4년하고 2개월을 몽땅 벌어 다 갖다 바쳐야 됩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겠지요.
어떤 의미냐 하면 첫째는 서원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함부로 하면 엄청난 값입니다. 4년하고 두 달, 온 가족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 되는데 서원이 남발되는 것, 이것을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이 기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것을 이렇게 정해 놓음으로써 말미암아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상대적인 결핍을 느끼지 않도록 기준, 가이드라인, 상한선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가난한 것은 어떻게 했는지 뒤에 또 나옵니다.
5절을 보시면 "다섯 살로부터 스무 살까지는 남자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여자면 십 세겔로, 일 개월로부터 다섯 살까지는 남자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여자면 은 삼 세겔로, 육십 세 이상은 남자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여자는 십 세겔로" 이것으로 얘기하면 남녀노소가 다 서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에게 서원은 다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동하는 노동의 정도에 따라서 값을 매겨 놓은 것입니다. 아무래도 그 당시 여성보다 남자들이 훨씬 노동력이 더 강하니까 그래서 이렇게 정해 놓은 것입니다.
서원의 예외규정도 있습니다. 8절을 보시면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네가 정한 값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급해서 서원 기도는 했습니다. 제사장의 배 앞에 가서 간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루어졌습니다. 50세겔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를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이렇게 기준은 있습니다. 통용되는 기본 기준은 있는데 서원자의 형편을 살펴서 제사장이 너 1세겔만 내, 아니면 2분의 1 반 세겔만 내,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3장 21절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말씀인데 이 말씀을 기준으로 50세겔 다 채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외규정으로 그 사람의 형편을 따라 제사장이 정해주는 값을 따라 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한선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20세겔은 내,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충분히 그 사람들의 형편과 처지를 고려한 기준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서원 기도 함부로 하면 되느냐, 안 됩니다. 서원 기도 함부로 하지 말고 만약 했으면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부담이라는 것이. 내가 서원 기도 했으니까 한 그대로 다 드려야 된다는 그런 부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이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당장. 그런데 하나님이 그 당시 구약 시대 때도 이것을 이렇게 다 융통성 있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꽉 막힌 하나님이 아닙니다.
5-2. 가축의 서원
그 다음 사람을 서원할 때 그렇고, 이제 가축을 서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9절, "사람이 서원하는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가축이면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13절,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가축이면" 이 무슨 말이냐 하면 가축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태중에 있는 상태에서 우리 가정에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어서 제사장에게 가서 나와서 이 소가 새끼를 낳으면 이 소 뱃속에 있는 새끼를 드릴게요 하고 서원을 합니다. 그런데 태어났습니다. 상태가 안 좋습니다. 새끼가 한쪽 눈이 안 보이거나 다리 두 다리로 일어서지도 못하거나 뭐 상태가 안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것 흠정 있는 것 드릴 수 없지 않습니까.
여기 부정하다는 것, 제사에 쓰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부정이라 그랬습니다. 배웠습니다. 우리가 그런 상태가 됐을 때 어떻게 하느냐? "그 가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 갈 것이요 제사장은 우열간에 값을 정할지니 제사장이 값을 정하는가요. 그냥 그 값이 제사장이 정한 대로 될 것이며" 그러면 그 정한 값을 그냥 돈으로 내는 것입니다.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 짐승은 그냥 가져가고. "만일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네가 정한 값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할지니라." 그래서 제사장이 그 값을 정하고 거기에 20%를 더 붙여서 내고 서원을 다 이룬 것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굉장히 권한이 있었고 융통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5-3. 부동산의 서원
그 다음 페이지를 보시면 집을 서원했을 때 기준을 말해봅시다. 부동산도 서원했습니다. 부동산도 집터, 너무 급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제가 사는 집을 제가 드릴게요 뭐 이렇게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을 성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 하면 제사장이 그 우열을 따라 값을 정할지니 그 값은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 것이며" 서원하겠다고 왔습니다. 제사장에게. 그러면 제사장이 가서 그 집을 봅니다. 제사장이 그 집의 값을 일단 정합니다. 그리고 돈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은 정해 놓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보셔야 됩니다. 정해 놓고 그 집을 바치면 성전에서 그 집을 그냥 쓰면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쉼터로 쓰든지 아니면 성전에서 그 성, 제사장이 필요해서 그 집을 팔아 가지고 성전의 돈으로 사용하든지 쓰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누군가를 살게 하거나 뭐 이렇게 했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서원을 무르고 싶은 상황이 생깁니다. 서원을 무르고 싶다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면 이미 처음에 정한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돈을 주면 그 집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서원이 절대적인 것입니까, 상대적인 것입니까? 이것을 보면 상대적인 것입니다. 아까 우리가 사람 값을 정하는 서원에는 무르는 것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내가 헌신하겠습니다 하는 서원에는 무르는 것이 없었고, 다만 그 사람의 형편과 처지를 따라서 제사장이 값을 낮춰 주는 것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짐승을 정했는데 태중에 있는 짐승이 태어나서 부정합니다. 예물로 바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가, 흠정 없는 것을 바쳐야 했는데, 그럴 경우에는 얼마든지 그 값에, 정한 값의 오분의 일을 더해서 해결할 수 있었고, 집이라는 것은 사람의 주거입니다. 아무리 급해서 내가 그 집을 드려도 시간이 지나서 집을 내가 되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한 값을 받고 다시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집값을 이미 드렸으니까 나중에 손해를 본 것입니다. 사는 쪽은 돌려받으니까 이해가 되시지요. 이렇게 융통성 있게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동산 중에 땅이 있습니다. 일단 밭을 서원했을 때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좀 복잡합니다. 왜 복잡하냐 하면 우리가 지난 시간에 안식년 그리고 희년 얘기할 때 살펴봤지만 땅은 원래 누구의 소유입니까?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땅을 사고팔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고팔 수 있는데 그 산다는 개념은 경작권을 산다는 개념입니다. 그렇지요. 땅 자체를 영구히 사는 개념이 아니라 경작권을 가져오는 개념입니다. 그 개념을 염두에 두고 보십시오.
16절,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성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 하면 마지기 수대로 네가 값을 정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 제사장에게 왔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서원을 하는데 제 땅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갑니다. 그 땅을 보고 거기서 소출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보고 일단 값을 다 정합니다. 그 돈을 찍어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그냥 일상적인 경우라면 그 땅을 서원했으니까 기도가 응답되고 나면 그 땅을 성전에서 가져갑니다. 제사장이. 제사장이 가져가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이 농사 지어서 나오는 소출을 성전 소유로 가져 하겠지요.
그런데 보십시오 19절, "만일 밭을 성별하여 드린 자가" 시간이 좀 지나서 그것을 무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래 정해 놓은 값이 있습니다. 소출되는 가 그 값에다가 20%, 오분의 일을 더해서 다시 돈을 받고 땅을 돌려주면 됩니다. 경작권을. 아까 집하고 똑같지요.
그런데 또 희한한 경우가 또 있습니다. 20절, "만일 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 하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서원과 땅을 파는 경우가 있는가? 있지요. 왜 그러냐 하면 서원은 기도입니다. 내가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이 서원 기도가 오늘 기도해서 내일 응답되는 것이 아닙니다. 3개월 뒤, 일 년 뒤일 수 있는데 그 사이에 땅을 팔아 버릴 수가 있습니다.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그러면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뒤에 나옵니다.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의 기업이 될 것이며" 희년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냥 희년까지, 남한테 소유권을 줬으니까 그 사람이 하도록, 희년이 되면 다시 돌아와야 되지 않습니까. 팔린 땅은. 그때 그 땅을 제사장이 가져 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해가 되시지요? 희년 때도 안 돌려주고 영원히 성전 소유로 귀속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경우가 있습니다. 22절, "만일 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성별하여 드렸으면" 이것은 무슨 일이냐 하면 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소유권을 살 수 있습니다. 경작권을. 경작권을 샀는데 그 산 경작권을 내가 서원해서 드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하느냐, 그러면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계산을 합니다. 그래서 서원이 딱 이루어진 그날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계산해서 희년까지 이 땅에서 나올 소출 돈을 계산해서 성전에 다 내어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좀 복잡하지요. 그리고 나서 희년이 됐다, 그러면 그 땅은 다시 누구에게 돌아갑니까? 원주인에게 돌아갑니다.
보십시오. "너는 값을 정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네가 값을 정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려 성물로 삼을지며 그가 산 밭은 희년에 그 판 사람 곧 그 땅의 원주인에게로 되돌아갈지니라."
좀 복잡한데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부동산도 서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집이나 땅은 서원이 딱 이루어지면, 이루어지기 전에 제사장에게 가서 일단 값을 정한다. 그리고 나서 서원이 응답을 받으면, 기도가 응답을 받으면 땅이나 집이든지 그대로 가져오고, 그것을 나중에 무르고 싶으면 20%를 더해서 주면 얼마든지 무를 수 있었다. 그것을 일단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5-4. 입다의 서원
우리가 서원을 가지고 공부를 하면 성경에 나오는 제일 유명한 서원을 한번 살피고 넘어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제일 슬프고 슬픈 서원이 누구의 서원입니까? 입다의 서원입니다. 사사기 11장에 나옵니다. 29절에서 31절 잘 보십시오.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입다에게 임했습니다.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바를 지나 길르앗 미스바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을 합니다." 성령이 임했는데 또 서원을 합니다.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아니, 누가 나옵니까? 제일 먼저 무남독녀 외동딸이 나옵니다. 그렇지요. 이 기사가 성경에 나오는 이 기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합니다. 서원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암몬 자손과 나가서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사사시대, 사사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다는 기조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면 나가서 싸워서 이기면 됩니다. 그런데 또 서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불신입니까?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 그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못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서원하는 것입니다. 이 서원도 이런 서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사사시대 같으면 이미 레위기 말씀이다, 전해진 이후입니다. 레위기에 서원의 기준들이 있지 않습니까? 레위기에 서원의 기준들이 있지 않습니까. 사람을 드릴 때 몇 세겔로 드린다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무모한 서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원 기도라는 것,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만큼 하나님이 무자비한 하나님이 아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서원 기도 자체를 굉장히 조심스럽게 제대로 알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서원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바꾸면, 그것을 가지고 대신 납부하면 됩니다. 또 돌려주고 밭도 돌려주고 가난하면 삶의 형편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값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서원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5-5. 처음 난 것과 십일조
처음 난 것에 대한 규례 한번 봅시다. 27장 26절, "오직 가축 중에 처음 난 것은 여호와께 드릴 첫 것이라." 이것은 그냥 원천징수입니다. 처음 난 것 무조건 하나님 것입니다. "소나 양은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 성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이것은 무슨 말이냐면 처음 난 것을 가지고 서원의 제물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처음 난 것은 그냥 무조건 하나님 것이니까 그것을 가지고 원래 드리는 건데 그것으로 또 너희들이 서원의 잣대로 삼지 말라는 뜻입니다.
27절, "만일 부정한 짐승이면 네가 정한 값에 그 오분의 일을 더하여 무를 것이요" 아까 우리가 한 것이지요.
그다음 28절,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이것은 '헤렘(חרם)'이라고 하는데요. 무르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무르지 말라 하고 완전히 그냥 바친 것, 그것을 헤렘(חרם)이라 그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헤렘(חרם)을 또 다르게 정의하신 것이 29절인데 보십시오.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갑자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 우리가 지금까지 그냥 서원 기도에서 바치고 드리고 하니까 자꾸 좋은 의미로 바쳐졌다는 것을 이해하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절대로 대속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 보면 구약의 율법에 보면 반드시 죽여야 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왔지요. 부모에게 욕을 하거나 부모를 구타하거나 우상숭배하거나 등등의 악한 행위를 한 사람, 레위기 율법에도 반드시 죽일지니라 반드시 죽일지니라, 간음한 자 간부나 음부는 반드시 죽을지니라 나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쳐진 헤렘(חרם)이라 그랬습니다. 그런 사람은 무를 수 없다. 그래서 다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렇게 나왔습니다.
30절,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땅은 원래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그래서 땅이 내는 것은 다 하나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분의 일은 반드시 바치라 그랬습니다. 이것은 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명령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라 그랬습니다.
"또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십일조를 무르려면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할 것이요." 십일조 무를 수 있나, 우리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당시에는요 이것이 그 먹는 것 즉 땅의 소산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의 소산의 십분의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렸는데 드리고 나서 보니까 아 이것이 별로 좋지 않은 것입니다. 상태가. 질이. 품질이. 그래서 그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린 것 갖고 오고 또 다른 것을 드리려니까 그 외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해서 가지고 오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 왜 그렇게 하셨느냐 하면 너희가 처음부터 제대로 구별하는 행위를 못한 것이다. 거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모든 소나 양의 십일조는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 번째 것마다 여호와의 성물이 되리라."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한다는 말은 저녁이 되어서 양이나 소를 방목하다가 마구간에 들일 때 지팡이에 딱 걸어 놓으면 그 아래로 지나갑니다. 그래서 이것은 관용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10마리 중의 하나는 다 하나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우열을 가리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 것 중에 사람의 욕심이 생겨서 좋은 것 드리기 싫고 별로 안 좋은 것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원래 이것을 드려야 되는 것을 드리지 않고 별로 안 좋은 것을 드리려고 마음먹으면 두 마리 다 내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바꾸면 둘 다 거룩할지니 무르지 못하리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다. 둘 다 내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습니다.
나가는 말
이제 오늘 레위기의 마지막 결론도 받고 레위기의 부록 같은 서원에 대한 말씀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사실 레위기가 복잡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우면 상당히 어려운데 열심히 한 학기 동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레위기를 시작한 목적과 이유는 어려운 상황에서 예배의 본질이 차츰 흐려지고 예배가 도대체 뭔가 하는 마음을 많이 가지는데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원래 말씀하신 예배의 본래 기준, 이것을 제대로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해서 레위기를 살펴봤습니다. 궁금하실 때마다 다시 들여다보시고 살펴보시고 예배의 본질이 우리 삶에 그대로 회복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한 학기 동안 은혜 받았습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에 멈추시고 예배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지, 하나님의 자녀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교제해야 하는지, 일상의 거룩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깨닫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예배드림이 기쁨이 되게 하시고 예배가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 되게 하시며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게 하시며 안식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헌신과 수고를 다 하며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고 의뢰하는 믿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땅의 소산 중에 십분의 일은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그중에 십분의 구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이제 우리가 믿음을 표현하게 하옵시고, 일주일에 하루를 쉬게 하시고 하루를 쉬고 온전히 예배 드려 너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깨달아 그것이 거룩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하신 복을 마음껏 누리게 하옵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도 누리며 느끼고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