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 레위기 서론과 번제 / 전체녹취

레위기 서론과 번제 (레 1장, 6:8-13)

레위기 1장 1-2절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오늘부터 시작하여 열일곱 번에 걸쳐 레위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니 이러한 방식으로 수요사경회를 진행한 지 어느덧 만 5년이 지나고 6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열 과목을 다루었는데, 그중 다섯 과목은 정교인 양육 과정의 필수 과목으로, 나머지 다섯 과목은 선택 과목으로 진행했습니다.

처음에 우리 교회가 양육 과정을 그렇게 정한 이유는 5년 주기로 필수 과정을 한 번씩 더 듣게 하려는 취지였습니다. 처음에 정한 필수 과정 다섯 과목은 구약, 신약, 기도학교, 예배학교, 교리학교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성도들의 필요와 교회 상황,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제 한 바퀴 돌아서 구약을 다시 공부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미 다룬 내용들은 유튜브에 모두 올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교육 차원에서 구약과 신약을 다시 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나 온라인으로 공부하시는 분들은 모두 하나님 말씀에 열정이 있으신 분들인데, 그런 분들에게는 새로운 것을 함께 연구하고 배우는 편이 훨씬 유익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레위기를 준비했습니다.

1. 레위기를 공부하는 이유

왜 레위기인가 하고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왜 하필 레위기인가? 창세기와 출애굽기까지는 그나마 읽겠는데, 레위기에 가면 복잡하고 힘든 규정이 많은데 왜 이 아까운 시간에 지루한 레위기를 다루느냐고 하실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오늘 우리 시대가 예배에 있어서 비정상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자칫하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예배를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세류에 떠맡긴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배를 말씀하신 가장 중심적이고 가장 엄격한 규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알고 행하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레위기 말씀을 통해 예배의 깊고 숭고한 의미를 알려주셨는데, 이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예배 회복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구약적 의미에서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함께 배우려는 것이 첫 번째 목적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둘째, 레위기가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는 것을 함께 느껴보고 싶습니다. 지난 학기에 계시록을 공부했는데, 지금 계시록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사실 누가 이야기하면 '아, 그랬는가 보다' 할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도 마음에 남은 것이 있다면 '무서운 책이 아니구나, 계시록은 은혜가 넘치는 책이었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말씀이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만 가슴에 남아도 성공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이번 레위기도 졸리는 책이 아니고, 어려운 책이 아니고, 읽다가 짜증 나는 책이 아니라 재미있고 즐겁고 깊은 의미가 있는 책이라는 것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깊은 맛이 있다는 것을 한 학기 동안 경험하셨으면 합니다.

2. 레위기는 모세오경의 핵심

2-1. 시내산 도착

레위기가 모세오경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19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성경 읽기 수준이 조금 높아지면 성경을 읽을 때 숫자나 날짜, 대명사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됩니다. 지금 19장 1절에서 중요한 말씀은 '삼 개월'이라는 표현입니다. 시내 광야에 이르렀는데, 언제부터 삼 개월입니까? 이집트에서 출애굽한 지 삼 개월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실 때 일차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원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지만, 가나안은 멀었습니다. 가나안까지 가기 전에 일차 목적지가 있었는데, 그곳이 시내산이었습니다. 시내산은 시내 광야에 있었고, 삼 개월 동안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서 도착한 곳이 시내 광야, 시내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을까요? 무엇을 주시려고 그러셨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구약 개론할 때 다 다루었는데, 첫째는 성막이요, 둘째는 율법입니다. 성막과 율법을 주시려고 그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2-2. 성막 건설 기간

하나님께서 성막을 주시는 것은 말씀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라" 하시면 만드는 것은 누가 해야 합니까? 백성들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공부할 때도 살펴보았지만,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 방주 만드는 것은 노아의 몫입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어야 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성막을 이렇게 만들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그것을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몫입니다.

성막 만드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겠습니까?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요? 성경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출애굽기 40장 17절을 보겠습니다.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제가 날짜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날짜가 어떻게 나옵니까? '둘째 해 첫째 달 그 달 초하루'라고 했습니다. '둘째 해'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둘째 해입니까? 출애굽하고 둘째 해, 첫째 달, 그 달 초하루에 성막 만들기가 끝난 것입니다.

시내산까지 가는 데 몇 개월 걸렸습니까? 삼 개월입니다. 그렇다면 성막 만드는 데 몇 개월 걸렸습니까? 구 개월 동안 만든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올리시고 십계명 주시고 성막 만들라고 하신 기간도 있지만, 어쨌든 총 기간은 구 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성막을 왜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성막 만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막 안에서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듯이, 옛날에 그 모형은 성막이었습니다. 성막 안에서 한 가장 중요한 일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2-3. 레위기 율법 선포

레위기 율법은 결국 예배에 대한 규정입니다. 성막을 만들라고 해 놓고, 그다음에 하나님은 성막이 만들어졌으니 성막 안에서 행할 일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것이 레위기 율법입니다. 성막에서는 이러이러한 행동과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을 채우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 율법은 얼마 동안 주셨을까요? 하루에 끝내셨을까요? 아닙니다. 그것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성경이 알려줍니다. 민수기 10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 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올랐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제 출발이라는 뜻입니다. 구름 기둥이 움직였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날짜를 잘 보십시오. 언제입니까? '둘째 해 둘째 달 스무 날'입니다. 아까 성막 완성된 것이 언제라고 했습니까?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루'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의 기간이 지났습니까? 한 달 이십 일, 곧 오십 일입니다.

오십 일 동안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만들고 그 안에서의 예배 규정을 상세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체하지 않도록 하루아침에 쏟아붓지 않으시고, 한 달 이십 일 동안 레위기 율법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한 번 더 복습하겠습니다. 출애굽했습니다. 삼 개월 동안 광야를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어디까지 왔습니까? 시내산까지 왔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두 가지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성막, 둘째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성막은 하루아침에 만드는 것이 아니므로 이렇게 지으라 하시고 만드는 데까지 걸린 총 기간은 구 개월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성막 안에서 드릴 예배 규정을 말씀하시는데, 그 예배 규정을 말씀하시고 레위기 법전이 완성되고 선포된 기간은 오십 일입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레위기 1장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것이 레위기 1장 1절입니다. 성막이 완성되었으니까 그 성막,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제 이곳에서 이렇게 예배드리라고 하나님이 설명하신 것이 레위기 전체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레위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태어났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니까 레위기는 모세오경의 핵심인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언약 체결과 성막 건설을 다룹니다. 언약을 체결하고 열 가지 재앙도 나오고 성막을 건설하는 것이 나옵니다. 민수기는 인구 조사를 하고 광야로 떠날 준비를 다룹니다. 그 가운데 있는 레위기는 성막 안에서 벌어질 예배 행위를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사백삼십 년 동안 종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사는데 무슨 예배를 제대로 드렸겠습니까? 이제 너희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나와 만나려면 이 성막에서 예배하는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데 예배가 너무너무 중요하다, 이런 규정과 이런 절차와 이런 방식으로 예배드리라고 하나님이 상세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십 년 출애굽 여정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머무른 기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배가 너무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을 불러서 성막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껍데기 성막만 있으면 무엇합니까? 그 안에 예배가 채워져야 합니다.

오늘의 개념으로 이것을 가져와 보십시오. 건물로서의 교회만 있으면 무엇합니까?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건물만 아무리 멋지게 짓고 덩그러니 지어놓으면 무엇합니까? 그 안에 말씀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성도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가 우리에게는 너무 가슴 아픈 시대입니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고 예배드리기를 힘써야 하는데, 주일날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물리적으로 힘든 분이라면 평일에 예배당 문이 다 열려 있습니다. 오셔서 기도하시고 찬양도 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리셔야 합니다. 건물로서의 공간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성도가 예배드리는 공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전부터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곳에서 만나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껍데기 성막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예배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성막과 예배는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3. 레위기와 그리스도의 대속

3-1. 동물 제사와 예수님

레위기는 그리스도의 대속을 보여줍니다. 레위기는 구약이고 그리스도는 신약에 오셨는데, 레위기와 그리스도의 대속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동물 제사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동물을 잡아서 제사하는 것이 계속 나옵니다. 읽다 보면 피 비린내가 납니다. 나도 모르게 동물 잡았을 때 그 피 냄새가 날 정도로 동물을 많이 잡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율법에는 동물을 잡아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인간을 죽이지 않고 나 대신에 동물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리고 그 짐승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드림 바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동물 대신에, 인간 대신에 스스로 제물이 되신 분이십니다.

3-2. 기업 무르기

둘째, 레위기에는 기업 무르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레위기 25장에 나오는데, 기업을 무른다는 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주 가까운 친족이 돈이 없어서 물질이 너무 없어서 가지고 있던 땅을 지킬 수가 없게 된 경우입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 땅을 빼앗깁니다.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되찾아 줍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요. 그것이 법적으로, 율법적으로 거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가까운 친족 중 한 분이 자녀 없이, 아들 없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과부가 남습니다. 그러면 친족 가까운 순서대로 그 과부를 취해서 자녀를 낳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법입니다. 그러면 그 자녀는 자기 자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자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그 죽은 자의 아들이 유산이 필요할 것 아닙니까? 먹고 살려면요. 그 유산은 누가 만들어 주어야 합니까? 내가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기업 무를 자는 얻는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중에 룻기에 보면 기업 무를 자가 "나는 포기한다"고 신을 벗어서 "나는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순서대로 해서 기업 무르는 순서가 보아스에게까지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레위기 율법은 기업을 무르는 것까지 나옵니다.

이것을 누가 하셨습니까? 아무런 득도 없고 손해만 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책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레위기는 복음적인 책이라는 뜻입니다.

4. 레위기라는 이름의 유래

레위기라는 책의 이름 때문에 오해가 많습니다. 레위기라는 이름을 보면 레위는 사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한 아들 이름이고, 레위 지파 중에 제사장이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레위기는 레위 지파에 대한 책이다, 제사장에 대한 책이다, 우리와는 상관없는 책이다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히브리어 성경의 레위기 책 이름은 레위기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성경 레위기 첫 단어는 '바이이크라(וַיִּקְרָא)'입니다. 바이이크라가 왜 중요하냐 하면, 거기에는 동사 원형 '카라(קרא)'라는 동사가 숨어 있습니다. 카라는 '외치다', '이르다',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아까 우리가 읽었는데, 레위기 1장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르시되'가 바이이크라입니다. 말씀하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지만, 모세를 통해서 사실은 누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까?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레위기는 레위 지파 제사장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배는 제사장만 드립니까? 아닙니다. 모든 백성이 다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것을 보면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고 했습니다. 레위 지파에게 말하라고 안 했습니다. 모든 자손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원어 이름으로 보면 바이이크라, 곧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입니다.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레위기라는 이름이 붙었느냐? 이것은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 70인 역이라고 하는데 헬라어로 '레비티콘(Λευιτικόν)'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영어로 Leviticus가 되고, 한글로 레위기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칠십인역이 레비티콘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제사장과 레위인의 업무를 규정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냥 다루는 내용 중심으로 제목을 붙인 것이지, 원래 히브리어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원래 제목인 것입니다.

5. 레위기의 구조

레위기 구조를 잠깐 살펴보면, 전체 27장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부분은 1장부터 16장까지인데, 흔히 '예배 규정'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느냐, 거룩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부분은 17장부터 27장까지인데, 흔히 '거룩법'이라고 합니다. 전반부는 제사법, 후반부는 거룩법 또는 성결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1장부터 16장까지를 좀 더 자세히 나누어 보면 1장부터 7장까지는 제사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번제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다음 8장부터 10장까지는 제사장 취임에 대한 것입니다. 11장에서 16장까지는 정결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구조 가운데 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것이 무엇입니까? 16장이 바로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16장은 대속죄일 규정입니다. 레위기 전체의 핵심은 대속죄일입니다.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집전하는 그 대속죄일이 레위기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앞에서 한 것은 전부 대속죄일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고, 대속죄일 이후에 한 것은 대속죄일의 의미를 실제 삶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6. 번제의 의미

6-1. 번제란 무엇인가

이제 오늘 본문인 번제 이야기로 들어가겠습니다. 레위기에 다섯 가지 제사가 나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것을 오제라고 합니다. 다섯 가지 제사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오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עֹלָה)'라고 합니다. 올라는 '올라가다'라는 뜻입니다. 번제물이 불에 타면서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Burnt Offering이라고 하는데, 태워서 드리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다른 제사는 제물의 일부를 제사장이 먹거나 제사 드리는 사람이 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번제는 전부 태웁니다. 아무것도 안 남깁니다. 가죽만 제사장에게 돌아가고 나머지는 전부 태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래서 번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다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자발적인 헌신과 예배의 제사입니다.

6-2. 번제물의 조건

1장 3절을 보면 번제물의 조건이 나옵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시도록 드릴지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이 '흠 없는 수컷'입니다. 왜 흠이 없어야 합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흠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번제물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축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생 짐승은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야생 짐승은 공짜이기 때문입니다. 가축은 내가 키운 것입니다. 내가 품을 들이고 내가 먹이고 내가 정성을 쏟은 것입니다. 야생 짐승은 그냥 잡아오면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수고한 것, 내가 정성을 들인 것으로 예배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공짜로 아무 정성 없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정성을 쏟고 내가 수고한 것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가축으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6-3. 안수의 의미

4절을 보면 안수가 나옵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시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하리라"

안수가 무슨 뜻입니까? 내 죄를 이 짐승에게 전가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지은 죄가 있습니다. 그 죄 때문에 사실은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대신 이 짐승이 죽습니다. 내 죄를 이 짐승에게 넘기는 행위가 안수입니다.

그래서 안수할 때 가만히 손만 얹는 것이 아닙니다. 속으로 자기가 지은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죄를 지었고, 이런 잘못을 했고, 이런 죄악이 있었다고 고백하면서 그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이 시간이 중요합니다. 주일 예배 가운데 참회의 기도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가 한 주간 지은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교만함, 나의 미움, 나의 분노, 나의 탐욕, 나의 시기, 나의 거짓말, 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 시간은 나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하는 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죄를 우리 속으로, 우리 마음으로 다 도살해야 합니다. 우리 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 죄를 그대로 가져가시고 받아 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예배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서는 제물을 드리는 자와 안수받는 그 짐승이 대치되고 동일시되는 과정입니다.

6-4. 도살의 의미

5절을 보면 도살이 나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여기서 '그가'는 누구입니까? 제사장입니까,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까?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직접 소를 잡아야 합니다. 직접.

우리는 많이 오해한 것이 있습니다. 가지고 오기만 하면 제사장이 알아서 다 잡아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지고 온 사람이 직접 소를 잡습니다. 짐승을 잡습니다. 아론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제사장은 가만히 있다가 피만 받아서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 짐승을 잡는 것은 가지고 온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과정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피가 온몸에 다 튀겠죠. 그 당시 비닐 옷도 없는데 피가 눈에 튀고 얼굴에 튀고 입에 들어가고 귀에 들어가고 야단법석입니다. 소 한 마리 잡다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는 곧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그러면 그 과정은 무엇입니까? 내가 나를 죽이는 과정입니다. 사실은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데, 내가 나를 죽이면서 결단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가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 내가 다시는 이 죄를 지어서 이렇게 비참하게 죽임당하지 않겠다고요. 만약 내가 앞으로 이 죄 짓고 계속 그렇게 살면 나는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비참하게 피 흘리며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나를 죽이면서 그 죽음의 현장을 직접 목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것이 치열하고 현장감 있고 리얼합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비교해서 구약 레위기 시대의 예배를 보면 살아 있습니다. 진짜 리얼합니다. 기진맥진하지 않겠습니까? 소 한 마리 잡고 나면요.

6-5. 가죽 벗기기와 각 뜨기

6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소를 잡았습니다. 소 잡고 나서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제 번제물의 가죽을 벗깁니다. 각을 떠야 합니다. 가죽을 벗긴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껍질을 벗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너 껍질을 벗어라. 하나님 앞에 위선의 탈을 벗고, 예배드리면서 아닌데 그런 척하고, 그런데 아닌 척하고 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순전하고 순결하고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나오라. 껍질을 벗어라. 그런 뜻입니다. 껍질도 벗기고 각도 떠야 합니다. 이쯤 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아마 서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다음 뒷처리는 제사장들이 합니다.

6-6. 완전히 태움

그다음 중요한 것이 나옵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번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가 의미 있는 예배가 되려면 다 타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중간에서 타다 만 번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 규정에는 어떻게 이해했느냐? 이 사람에게 아직까지 쏟아놓지 않은 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할 때 죄를 다 토설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 타다 만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효입니다.

그래서 다 타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타고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번제가 효력이 있고 끝난 번제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제대로 드려진 번제. 다 타버려야 무엇이 된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향기롭게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 예배에 적용해 보십시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와서 공부합니다. 성경공부하고 주일날 예배드립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행위는 나를 태우는 행위입니다. 내가 사라지고 내가 없어지고 내가 가루가 되고 내가 먼지가 되어서 하나도 없어져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가 되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주일 예배당에 나왔습니다. 예배 끝나고 나갔는데 그 미워하는 마음이 아직 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돈 욕심이 가득한 상태에서, 탐욕이 가득한 상태에서 교회 왔습니다. 예배드렸습니다. 그리고 갔는데 그것이 더 증폭됐습니다. 예배드리면서 증시 어디에 투자하지? 내일 증시가 열리면 내일 증권 어디에 투자할까? 이것을 주보에 낙서하다가 그것만 생각하다가 돌아가면 그것은 내가 탐욕의 파이를 더 키운 것입니다. 하나도 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향기롭게 받으시는 번제가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향기롭게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도 안 탔는데요. 욕심도 있고 미움도 있고 탐욕도 있고 그대론데요.

그래서 예배는 나를 다 태워버리는 행위입니다. 내가 없어져야 합니다. 매순간 결단하고 오셔야 합니다. 예배는 오늘 내가 들어갈 때는 이런 모양으로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다 태우고 나오리라, 나올 때는 다 태우고 하나도 없이 그냥 나라는 존재 없이 나오리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예배드리라는 뜻입니다.

7. 번제와 자기 부인

번제의 의미를 신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입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향기가 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 스스로를 다 태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한 자기 부인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향기로 받으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을 보겠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부인이 향기입니다. 자기가 없어져야 합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내 욕심과 내 정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 하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불태우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자기 부인이 되어야 그제서야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가 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기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왜 교회를 손가락질할까요? 교회가 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탈 생각이 추호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다 자기 욕망으로만 똘똘 뭉쳐져서 아무도 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악취가 풍기는 것입니다.

다 타고 없어져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향기가 됩니다. 욕심도 자기 욕망도 다 타고 없어지면 하나님도 향기로 받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향기가 됩니다. 자기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나는 악취를 풍기는 사람인가? 나는 향기를 풍기는 사람인가? 향수 바른다고, 향수 뿌린다고, 좋은 화장품을 쓴다고 그것이 향기가 아닙니다. 자기를 다 태워서 자기 부인을 해야 그제서야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마디부터 성막 안에서 예배드릴 때 너희를 다 태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짐승을 잡으면서 네가 죽는다 생각하고, 그 짐승의 목에 칼을 꽂으면서 네 목에 칼을 꽂는다고 생각하고, 피가 튀기면서 그 피가 죄 때문에 네가 죽는 것이라고 생각하라. 그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8. 번제물의 종류

8-1. 양과 염소

번제에 사용하는 다른 짐승도 있습니다. 소 말고 또 다른 짐승도 있습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그 예물이 가축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양과 염소도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소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을 위한 규정입니다.

8-2. 새

그다음 중요한 것이 나옵니다. 14절입니다.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새를 드릴 정도라면 이 사람의 경제 상황이 어떻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입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입니다. 아까 짐승으로 드릴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가축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야생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를 드리는 사람은 산비둘기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뜻입니까? 너무 돈이 없어서 집에 집비둘기조차 없습니다. 길들인 비둘기조차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길들인 비둘기조차 없다면 그 사람은 산에 가서 산비둘기라도 잡아와 가지고 예배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주는 의미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형편이든,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예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제적인 형편을 고려해서 새 번제를 드리는 자에게는 야생 새까지도 허락하셨습니다.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가 염치가 있는 사람은 남의 집에 갈 때도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들고 갑니다. 음료수 하나라도 가지고 갑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칩니다. 어른에게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요. 하물며 하나님의 제단에 나오는데 어떻게 빈손으로 나오느냐, 그것을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가진 자도 생길 것이고 가난한 자도 있을 것인데, 가난한 자는 산에 가서 산비둘기라도 잡아오라.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자가 산비둘기 잡아서 예배드려도 됩니까? 부자가요? 그 사회적인 공동체에서는 저 사람의 경제력이 어느 정도인지 다 압니다. 그리고 규정상 사람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나 요즘 형편이 별로 안 좋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가장된 예배입니다. 안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자기 형편에 따라 소의 번제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소를 드리고, 양과 염소, 정말 가난한 사람은 산에 가서 새라도 잡아오라.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8-3. 수컷의 의미

1장을 계속 읽고 나중에 2장, 3장 계속 가다 보면 암컷은 하나님이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제가 이런 이야기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만 좋아하신다. 남성 우월주의가 성경에 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말 오해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암컷으로 드릴지니라 하셨다면 짐승이 새끼를 어떻게 낳습니까? 젖을 어떻게 물립니까? 이것은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규정입니다. 수컷만 잡는 것입니다. 그냥 수컷만 잡아서 암컷은 생산을 해야 하니까요. 젖도 생산해야 하고 후손도 먹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해서 수컷으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여기에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9.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

번제 규정이 1장에도 나오고 6장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6장에 보면 아주 특별한 규정이 나옵니다. 6장 9절, 12절, 13절에 공통점이 나옵니다.

6장 9절,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6장 12절, "제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또 나옵니다.

6장 13절,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불 꺼뜨리면 큰일 납니다. 왜 그런가? 그 이유가 나옵니다. 이것은 규정인데 그 규정이 현실화된 것이 9장에 나옵니다. 9장 24절을 보겠습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이것은 아론 제사장의 제사장 위임식 이후에 아론이 첫 번째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첫 번째 예배를, 첫 예배를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직접 내려주셨습니다. 인간이 만든 불로 번제의 불을 삼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직접 불을 던져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불을 영원히 꺼뜨리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셨으니까요. 인간이 만든 불이라면 꺼뜨려도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하늘에서 내려주신 불이기 때문에 그 불은, 그 불씨를 받아다가 절대로 꺼뜨리지 말라. 이것은 누가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의 의무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번제 단에 불이 꺼지지 말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 영원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매번 우리가 예배드리면서 매순간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가루가 되고 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타다 말고 내일은 다 타버리고, 어제는 타다 말고 오늘은 하나도 안 타고, 그러지 말고 매순간 다 타라는 뜻입니다. 자기 부인은 계속 진행 중이라는 뜻입니다.

10. 번제와 그리스도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번제가 신약의 그리스도와는 어떻게 연결됩니까? 예수님은 번제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떤 연결이 있을까요?

마태복음 20장 28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비슷한 말씀이 마가복음 10장 45절에도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대속물이라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타다 말았습니까? 완전히 다 타셨습니까? 완전히 다 타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셨습니다. 창에 찔리고 못이 박히고 채찍에 맞고 자신의 몸이 찢기고 피가 쏟아지면서 우리 인생을 위하여 모든 것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히 십자가라는 제단 위에서 자신을 다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번제물은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때까지 어떤 짐승을 태워도 예수 그리스도만큼 완벽하게 탄 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주의 제자들 아닙니까? 예수 본받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왜 자기 부인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타지 않습니까? 우리는 왜 자꾸 자아가 갈수록 강해집니까?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강해지고, 나이가 들수록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나는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런 것은 안 된다." 그런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오늘 이랬다가 내일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유연하셔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정말 영적인 꼰대가 되시면 안 됩니다. 말씀 앞에서 항상 유연하고 자기를 다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그런 진정한 번제물이 되셔야 합니다.

오늘은 레위기 첫 번째 시간으로 서론과 번제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복습도 한번 하시고, 하실 수 있으면 다음 시간 공부할 것도 한번 읽어오시고, 소제에 대해서도 한번 살펴보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번 학기 레위기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옵소서. 이 악한 세대에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에게 힘겨운 세대가 되고, 오히려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에 굳어진 형태가 된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성막 안에서 예배의 원형을 세우신 그 말씀을 깨닫고 살펴보았습니다.

주여, 우리가 다시 고치게 하여 주옵소서. 새롭게 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통해 우리를 보았습니다. 온전한 번제물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자기 부인하고 온전한 번제물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삶의 형편과 삶의 자리에 따라서 온전한 번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 되도록 도우시고, 어떤 형편과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온전한 예배자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