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 - 소제 (레2장, 6:14-23)
레위기 2장 1-2절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아멘)
우리가 레위기를 시작하고 첫 번째는 레위기 서론에 대해서 공부했고, 또 번제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냥 레위기를 읽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무슨 의미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석도 해야 되고 적용도 해야 되고, 또 오늘에 맞게 우리에게 비추어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한번 공부하고 지나치지 마시고 복습도 하고 살펴보시며, 중요한 의미는 되새겨 보시면 기억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은 소제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1. 소제의 의미
보통 성경을 읽으실 때 성경에 한자어가 많습니다. 소제도 한자어로 되어 있습니다. 한자로 찾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궁금해서 찾아보신 적이 있는지, 번제의 '번(燔)' 자는 무엇인지, 소제의 '소(素)' 자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제(祭)는 알겠는데 '소' 자가 무엇인지 아마 찾아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면 '소(素)' 자가 '본디 소' 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디, 본래라는 뜻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어떻게 어떻게 한다고 하면 일상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소제라는 말의 보통의 의미는 일상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을 보면 소제는 'grain offering'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은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라 하여 우리가 읽고 알고 있는 소제의 의미에 아주 합당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말 성경은 한자로 '소제', 일상에서 드리는 제사라고 했을까요? 저는 이 우리말 성경 번역이 훨씬 더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소제의 의미를 우리가 다 알고 나면, 공부하고 나면 "아, 정말 번역을 잘했구나"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번역한 분이 성경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고 레위기 제사의 본 의미를 잘 알고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소제를 조금 다른 의미, '들여진 것', '선물' 이런 의미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과 우리말 성경과 히브리어 성경은 조금씩 다른데, 저는 사실 이 의미를 잘 해석해서 가지고 온 우리말 성경에 '평소에 드리는 일상적인 예배'라는 의미가 훨씬 더 와닿습니다. 간단하게만 말씀드리면, 곡식으로 드리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늘 먹는 것,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그 당시 사람들이 밀이나 보리를 늘 수확하고 가지고 있는 것, 이것으로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나중에 보면 아시겠지만 익혀서 드리기도 하고 삶아서 드리기도 하고 구워서 드리기도 합니다. 아낙네들이, 부녀자들이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굽고 부치고 삶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 일상의 음식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평소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라 하여 소제라고 부른 것입니다. 내용을 뒤에 보시면 훨씬 더 잘 와닿습니다.
2. 고운 가루 소제
2-1. 누구든지
하나하나 보겠습니다. 우리는 소제를 사실 이렇게 구분해서 공부해 본 적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첫 번째 소제의 기본적인 소제는 이렇게 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입니다. 1절에서 3절까지인데 1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누구든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번제를 드릴 때도 '누구든지'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번제에서 '누구든지' 하고 소제에서 '누구든지' 하고는 우리말 성경은 똑같은데, 히브리어 성경은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번제에서 '누구든지'라고 할 때는 '아담(אָדָם)'을 썼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람이라는 보편적인 의미의 '아담'을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 소제에서 '누구든지'라고 쓸 때는 '네페쉬(נֶפֶשׁ)'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네페쉬'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어디에서 보았느냐 하면,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그가 생령이 된지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때 생령이라고 하는 것을 '네페쉬'라고 합니다. 즉 더 쉽게 말하면 호흡하는 생명을 '네페쉬'라고 불렀습니다. '아담'은 티끌입니다. 티끌, 먼지. 사람의 존재가 티끌 먼지라는 의미이고, 지금 여기 '네페쉬'는 호흡하는 모든 존재를 '네페쉬'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라는 말은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라는 뜻입니다. 호흡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에 대한 의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호흡이 붙어 있는 사람은, '네페쉬'가, 숨 쉬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예배드려야 합니다. 의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아니, 교회는 돈 있는 사람만 오는 것 아닙니까? 교회에 오면 돈 낼 데가 얼마나 많은데요. 헌금도 내야 되고, 봉투가 여러 종류가 있어서 이것 다 채우려면 먹고 살 수가 없는데, 이것이 어떻게 나같이 가난한 사람이 교회 와서 신앙생활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읽어 봐도 옛날 사람들이 와서 예배드릴 때 소도 가지고 오고 양도 가지고 오고 염소도 가지고 오는데, '누구든지'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 아닙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정신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할 때 말씀드렸습니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도 산비둘기라도 가서 잡아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산에 가서 산비둘기라도 잡아서 드리면 됩니다. 부자나 좀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축 중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정말 가난한 사람은 산비둘기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 소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 그 '누구든지'라는 의미가 하나님께서 정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를 꼭 기억하시고,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무엇을 예물로 삼으라 했습니까? 고운 가루입니다. 이것에 밑줄 치셔야 합니다. 소제에서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고운 가루.
2-2. 고운 가루의 의미
곡식 수확을 했습니다. 곡식 수확을 했는데 논 한 마지기를 벼를 다 베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쌀 한 가마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쌀 한 가마를 고운 가루로 만드려면 내 어깨가 어떻게 될까요? 옛날에는 기계도 없습니다. 쌀 한 가마를 고운 가루로 만든다는 말은 손에 알갱이가 잡히지 않을 정도의 고운 가루입니다. 기계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 인간의 노동력으로 이것을 빻고 갈아서 만져 보면 또 알갱이가 있으면 또 갈아야 되고, 만져 보고 또 알갱이가 있으면 또 빻아야 되고, 이래서 시간도 정말 오래 걸립니다.
사실 소 한 마리 가지고 나가서 소 한 마리 피 튀기면서 잡는 것이 낫지, 쌀 한 가마니 이것을 갈고 앉아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 제가 장가오기 전에는 어머니가 "마늘 빻아라" 하셔서 마늘을 공이에 빻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힘들고 팔도 아프고 못하겠더군요. 곡식, 그 단단한 곡식을 빻고 갈고 있으면 이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사실은 노동 중에 그런 노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고운 가루로 빻아서 다 갈아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느냐 하면, 번제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번제는 다 타야 번제로서의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쌀 알갱이 하나하나, 밀 알갱이, 보리 알갱이 하나하나는 곧 나라는 인간 자체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나는 다 갈아져서 하나도 없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전부 다 갈아지고 내 생각과 내 존재와 내 의지와 욕심과 욕망은 아예 아무것도 없고 다 사라져 버려야 된다는 뜻입니다. 다 갈아져서 예배의 정신을 번제에서는 '태워서 드린다' 했고, 소제는 '갈아서 드린다'고 했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복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 나는 이런 존재였는데 여기서 다 갈려져서 나갈 때는 아무것도 없어져야 합니다. 욕심도, 걱정도, 욕망도, 염려도 그냥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제의 제사와 소제의 제사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번제는 번제단 위에서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제는 가지고 나오기 전에 이미 다 갈아야 합니다. 가지고 나오기 전에 집에서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준비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내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부터 좋은 마음밭으로 나와야 합니다. 정신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분주한 상태에서 교회 와서 예배당에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 하나님 말씀이 내 귀에 들리기는 하는데 이쪽 귀로 들리고 이쪽 귀로 빠져나갈 것입니다. 가지고 와서 그대로 더 가중되어서 그대로 나갈 것입니다. 나올 때 이미 너 마음을 고운 가루로 정리하고 정돈하고 나오라는 뜻입니다.
고운 가루의 의미를 잘 기억하십시오. 나는 얼마나 빻아졌는가, 얼마나 고운 가루가 되어 있는가, 여전히 나는 아직 갈리지도 않고 빻아지지도 않고 알갱이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을 예배 때마다 생각하셔야 합니다.
2-3. 기름과 유향
그 위에 무엇을 붓습니까? 두 가지가 더해집니다. 기름과 유향입니다. 기름도 귀한 것이고, 유향은 더 귀한 것입니다. 기름과 유향은 귀한 것입니다. 고운 가루 위에다가 기름과 유향을 더하는 이유는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예배는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바빠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없습니다. 교회 봉사할 수 없습니다." 바쁘니까 시간이 가장 귀합니다. 바쁜 분들은 시간이 금보다 더 귀합니다. 그래서 그 바쁜 중에도 시간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여기에 몰두해 있어서 다른 것에 마음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몰두하면 이것이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먼저 섬기라고,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기름과 유향이 주는 성경의 상징이 있습니다. 상징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구약에서 신약에서 기름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과 연관시킵니까? 성령과 연관시킵니다. 나중에 제사장의 위임식이 나오는데 제사장 위임식 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그 기름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신약에서도, 구약의 선지자들도 성령이 기름 붓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헌신하되 그 헌신이 성령의 포함 아래 없으면, 성령의 지배 아래 헌신이 포함되지 않으면, 성령께서 우리의 헌신을 간섭하고 돌봐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헌신하고 섬기고 봉사하다가 어떻게 됩니까? 자기 교만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얼마나 이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는데, 내가 얼마나 여기에다가 청춘을 불살랐는데, 내가 여기에 얼마나 은혜를 많이 끼쳤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데." 봉사가 성령으로 이렇게 그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헌신과 봉사는 자기 교만, 자기 잘남, 자기 자랑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이것을 잘 통제하라는 뜻입니다. 의미를 거기에 부여하면 됩니다.
그다음 유향은 무엇입니까? 계시록에 보면 우리가 지난 학기 계시록 공부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성도들의 기도가 금 향로에 담겨서 하나님께 향기로 올려 드려진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입니다. 헌신하고 봉사하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를 주장하고 가장 귀한 것을 들이고 물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고 정열과 달란트를 다 들였는데 그것이 기도의 무릎과 함께 가지 않으면 그 봉사와 헌신은 나중에 괴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되 그 예배 안에 헌신이 있어야 되고, 헌신은 성령의 통제 아래 기도 아래 있는 것이 좋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1절의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이니까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2-4. 대표성의 원리
그다음 2절을 보겠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집에서 밀 한 가마를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왔습니다. 그랬더니 제사장이 여기 2절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고운 가루 한 움큼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 움큼. 한 가마를 가지고 왔는데 한 움큼과 기름과 유향을 그 위에 불살라 드립니다. 나머지는 어떻게 됩니까? 3절에 보면 나머지는 제사장이 가져갑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한 움큼'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왜 한 움큼만 드리는 것일까요?
내가 이렇게 뼈 빠지게 어깨 아프고 팔꿈치 아프고 손목 아프게 겨우겨우 갈아서 고운 가루 만들어서 왔는데 하나님은 왜 한 움큼만 가져가시는 것일까요? 2절에 나옵니다.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기념물'이라는 의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즉 이것이 구약에서 나오는, 신약에도 나오는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대표성의 원리. 성경은 대표성의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니까 처음 듣는 말 같은데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그 범죄가 인간에게 흘러흘러 들어온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원죄라고 합니다.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모든 죄와 죽음의 권세를 담당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다 예수님을 따라 속죄함 받고 우리도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그다음 열매가 된 것입니다. 이것도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예수님 한 분이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대표성의 원리. 십일조. 모든 물질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을 하나님께 다 드립니까? 하나님은 그것 다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만? 십분의 일만 가지고 오라 하셨습니다.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십분의 일만 가지고 오면 너 모든 것 다 받은 것으로 하자. 나머지는 너의 생활과 가정과 자녀들과 너 삶을 위해서 마음껏 써라. 원래는 내 것인데 십분의 일만 가져오면 너 모든 것 다 드린 것으로 할 테니 나머지는 다 사용하라.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지금 여기 한 움큼만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념으로 받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받으신 것입니다. 이미 다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경우에는 대표성의 원리 없이 다 가지고 오라 하신 때도 있습니다. 번제가 그렇습니다. 번제는 제사장과 나누지 않습니다. 다 태워야 합니다. 그냥 다 태워서 그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져오면 말입니다.
그리고 제가 지난주에 설교 때 잠깐 언급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첫 번째 성이 여리고성입니다. 여리고성 전투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 명령이 무엇입니까? 이른바 '헤렘(חֵרֶם)' 명령입니다. 다 처단하고 다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보통 하나님은 그런 명령이 없으면 전쟁하면 전리품을 다 나눠 가집니다. 그냥 십분의 일만 드리고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전쟁하고 돌아올 때 십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그때부터 기념해서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다 가집니다. 전리품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48개 성읍 가운데 첫 번째 성 여리고성 전투에서는 다 가지고 오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대표성의 원리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는 다 갖다 드려야 합니다. 특별한 명령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명령이라서 제사 중에도 번제는 대표성의 원리를 적용하지 않으셨고, 소제는 기념물 대표성 원리를 적용해서 한 움큼만 태웠습니다.
2-5. 향기로운 냄새
나머지는 어떻게 했느냐, 3절을 보기 전에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했습니다. 이것 우리 번제 할 때도 보았습니다. 향기로운 냄새. 언제 향기로운 냄새가 됩니까? 자기 희생이 있을 때, 자기 부인이 있을 때입니다. 번제 다 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면서 십자가 지고, 자기 십자가 지고 따라가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 때, 그때 자기 부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 완전히 태워질 때 그것이 향기로운 제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고운 가루로 다 갈아왔을 때, 그때 거기에다가 헌신, 유향과 기름을 부어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로 드릴 때 그때 이것이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다 갈리지 않으면, 우리 인격이 다 태워지지 않고, 우리 인격이 다 가루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2-6. 제사장의 책임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하느냐. 3절을 보겠습니다.
"그 소제물에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그러면 아론과 그의 제사장들은 소제를 바라고 있겠습니다. 아론과 그의 제사장은 번제 가지고 와 봐야 떨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실 자기에게 소제물을 가지고 오면 한 움큼 집어서 드리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법도가 있습니다. 소제는 제사장들과 함께, 제사장들의 삶을 생활을 책임지는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소제를 가지고 온 사람은 먹을 수 없습니다. 이 법도가 6장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장 1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되"
'먹되'라고 했습니다. '먹되'는 무엇입니까? 먹는데 조건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먹어라. 한 움큼 빼고 말입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누룩을 넣지 말고, 이것은 좀 이따 설명할 것입니다.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한 뜰,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거룩한 곳. 즉 이 말은 제사장들이 이것을 먹기는 하는데 집에 못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밖에 못 들고 나갑니다. 집에 가서 자기 자녀들과 가족과 먹고 자기 이웃들에게 인심 쓰고 나눠 주고 자기 멋대로 못 한다는 뜻입니다.
누룩을 넣지 말라는 것은 뒤에 나오는데, 소제물에 못 넣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누룩과 꿀입니다. 누룩 넣지 말라는 말은 꿀도 넣지 말라는 뜻이 여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이 말을 한마디로 말하면, 소제물을 가지고 나온 사람은 소제에 합당한 재산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상징적으로 하나님은 한 움큼만 받으시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을 소제물 들인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소제물에 합당하게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먹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들고 나가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싶다 하더라도 그 밖을 들고 나가면 안 됩니다. 자기 집에 굶고 있는 자식이 있다 하더라도 가서 먹여서는 안 됩니다. 안 됩니다. 합당하게 들인 재산은 그 용도와 내용에 맞게 사용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우리 교인들이 교회 헌금을 합니다. 십일조도 하고 감사헌금도 하고 건축헌금도 하고 선교헌금도 하고 구제헌금도 합니다. 그러면 드린 헌금의 용도에 맞게 교회는 써야 합니까, 마음대로 써도 됩니까? 목적에 맞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성도가 목사에게 와서 "목사님, 이것 정말 가난한 사람 위해서 써 주세요" 하고 주었습니다. 누구누구 위해서 쓸까요? "목사님 보시고 정말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써 주세요." 목사가 생각하니까 내가 제일 가난합니다. 나를 위해 써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성도가 와서 "어떻게 사용하셨습니까?" "제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썼습니다." 말이 됩니까? 안 됩니까?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 교인들이 헌금을 합니다. 선교헌금 마음대로 씁니다. 그냥 재직회 몇 명 모아놓고 결의해 놓고 그냥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드린 분은 그 용도와 목적에 맞게 기도하면서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소제물을 드린 분들의 그 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팔 빠져라 갈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팔 빠져라, 팔 빠져라 갈고 헌신하고 수고해서 이것을 들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마음을 다 받으시고 원래 다 받으셨는데 상징적으로 기념물로 한 움큼만 받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고 이 용도와 의도대로 쓰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로 써야 합니다. 교회는 여기 돈을 여기 빼다가 저기 쓰고, 저기 돈 여기 빼다가 저기 쓰고,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어차피 한 주머니 돈, 쌈짓돈이니까 이 돈 빼서 저기 쓰고 저 돈 빼서 여기 쓰고, 자기 판단에 가난한 사람이 이 사람이니까 이 사람 주고 저 사람 주고. 이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철저하게 질서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헌금을 사용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쓰는 공적인 책임을 규정하신 말씀입니다.
누룩 넣지 말라 했습니다. 누룩 넣어야 사실 맛있습니다. 누룩 안 넣은 것은 맛이 없습니다. 누룩 넣어야지 부풀어 올라서 맛있습니다. 꿀도 넣어야 맛있습니다. 가루를 가지고 왔습니다. 재료입니다. 제사장이 보니까 너무 좋습니다. 곡식도 고급입니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고 싶습니다. 누룩도 넣고 빵 만들고 거기에 꿀 넣고 맛있게 먹고 싶습니다. 동네방네 갈라 주고 싶고 사돈의 팔촌 다 나눠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원래 의도대로 들여졌으니까 말입니다.
오늘 교회가 본질을 모르니까, 말씀의 본질과 그 기본을 모르니까 제멋대로 합니다. 다 그래 놓고 성도들은 들인 헌금에 대해서 말하지 마라, 하나님께 드렸으면 끝이지 하면서 그것을 자꾸 말하는 사람을 가지고 믿음 없다 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잘은 모르는데 이것이 뭔가 잘못된 것 같기는 합니다. 잘은 모르는데 이것이 아닌 것 같기는 한데 명확한 것을 몰라서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알려 드렸으니까 이것 가지고 따지십시오. 이것 가지고 하나님 말씀은 분명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그것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없습니다. 소제의 기본적인 의미가 1절에서 3절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이것만 잘 기억해도 소제는 이런 것이구나 알 수 있습니다.
3. 익힌 것으로 드리는 소제
그다음 두 번째입니다. 익힌 것으로 드리는 소제에는 어떤 종류가 있습니까? 고운 가루는 익힌 것입니까, 익힌 것이 아닙니까? 익힌 것이 아닙니다. 그냥 가루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실생활입니다. 진짜 실생활 세 가지가 있는데, 4절을 한번 볼까요?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화덕에 구운 것. 요리하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이제 음식을 구운 것입니다. "고운 가루에" 여기 고운 가루는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 전병을 드릴 것이요." 누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교병이니까 누룩은 없습니다. 고운 가루와 기름만 있습니다. 일단 구운 것입니다.
또 두 번째 익힌 것 중에 무엇이 있느냐. 5절을 보십시오.
"철판에 부친 것으로"
전 부치듯이 철판에 부친 것도 소제로 드릴 수 있습니다.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고운 가루와 기름은 같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누룩은 들어가면 안 됩니다.
7절.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냄비의 것은 삶는 것입니다. 삶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고운 가루와 기름은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정리하면 익혀서 드리는 것 세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구운 것, 부친 것, 삶은 것입니다. 오늘도 집에서 굽고 부치고 삶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일상적입니까? 내가 집에서 항상 아침, 점심, 저녁에 만들어 먹는 음식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특징이 있습니다. 아까 전에 고운 가루로 드리는 것하고 익힌 것으로 드리는 것하고 빠진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빠졌습니까? 유향이 빠졌습니다. 왜 빠졌을까요? 비싸니까 빠진 것입니다. 비싸니까. 그러면 집에서 굽고 부치고 삶는 사람은 누가 합니까? 그것은 여자들이 할 것입니다. 요즘도 집에서 남자들이 잘 안 하는데, 옛날에는 대부분 거의 대부분 여자들이 다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없습니다. 과부입니다. 아들과 둘이만 삽니다.
먹고 사는데 고운 가루 빻아 가지고, 거기다가 기름하고 유향하고 넣어서 드릴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너희 먹는 음식 중에 굽든지 부치든지 삶든지 그중에 하나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드려라. 거기에 드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소제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누구든지 호흡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오늘 이것을 우리 시대에 적용하면 예배 시간에 기름 냄새가 진동할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 드릴 헌금이 없어서 집에서 전 부쳐 왔습니다. 빵 구워 왔습니다." 다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가 일상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아주 평소에 드리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
평소 먹는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 우리 성경을 번역한 우리 시대 선교사들, 그리고 그 선교사 밑에서 조사로서 성서 번역에 도움을 준 분들의 탁월한 통찰력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소제'로 번역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이 소제는 여기에서 가난한 자건 부자건 상관없이, 돈 좀 있는 사람은 거기다가 기름과 유향을 해서 다 드릴 수 있고, 정말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번제를 드릴 때 산에 가서 비둘기 잡아서 드렸던 것처럼 이 사람들도 자기 먹는 음식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재물의 많고 적음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많고 적음 가지고 절대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먹던 것 가지고 와서 드리라 했습니다. 자기가 먹는 음식 가지고 나와서 드리라 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왜 그 금액과 액수를 가지고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규정상 그렇게 해 놓으셨습니다. 율법 그렇게 좋아하고 말씀 그렇게 좋아하는데, 가난한 사람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4. 소제의 유의사항
4-1. 누룩과 꿀
세 번째, 소제를 드릴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아주 조심해야 될 것, 여기는 넣어야 될 것이 있고 넣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무엇을 넣지 못합니까? 누룩과 꿀입니다. 왜 누룩과 꿀을 넣지 말라 했을까요? 누룩은 부풀리는 것입니다. 들어가면 이것이 엄청나게 부풀어 오릅니다. 누룩은, 예배는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배는 있는 그대로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예배는 포장하고 치장하고 아닌데 그런 척하고 없는데 있는 척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상하면 상한 대로, 울고 싶으면 울고 싶은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하나님께 자기의 감정과 현 상황을 그대로 아뢰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누룩을 가지고 자꾸 부풀리지 말라,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출애굽 할 때도 하나님이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7절에 있습니다.
"칠 일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누룩 보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 규정입니다. 그런데 누룩이 왜 이렇게 하나님은 보이지 말라 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절을 볼까요?
"그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누룩이 곧 무엇입니까? 외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누룩이 좋은 의미로 쓰인 성경 구절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예배와 누룩은 상극입니다. 예배에는 누룩이 절대 쓰여서는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 예배 얼마나 잘 드립니까? 좋은 옷 입고 와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기도할 때마다 사거리 모퉁이 어귀에 나가서 손 들고 기도합니다. 하루 세 번 금식하고 계속 금식하고 하루 세 번 기도하고, 일주일에 몇 번씩 금식하고 그렇게 하나님께 자기의 경건을 보입니다. 그것은 다 외식입니다. 있는 것 그대로 하라. 하기 싫은데 자꾸 하고 기도하고 싶지도 않은데 사람들에게 자기의 옳음을 보이려고 기도하는 것은 그런 짓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룩은 외식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드릴 때는 있는 것 그대로 가지고 나오시면 됩니다. 오늘 집에 돈이 없습니다. 헌금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너무 힘듭니다. 교회 와서 울고 싶습니다. 울다 가면 됩니다. 뭐 어떻습니까? 그런 것 저런 것 하나님 앞에는 있는 것 그대로 가지고 나오라는 뜻입니다.
꿀은 달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 맛도 없는 것을 꿀맛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냥 다니까 예배를 그렇게 만들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배에 뭔가를 자꾸 꿀을 바르고 뭘 칠해서 만들지 말고 그냥 담백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사람들이 예배 와서 재미없다고 말하는데 재미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실 재미없어야 정상입니다. 사실 뭐가 재미있겠습니까? 이렇게 와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 거듭난 자가 예배를 통해서 느끼고 말씀을 통해서 느끼는 그 영적 희열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세상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꿀을 바르려고 하는데, 그런 짓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들 예배는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도입이나 내용이나 찬양이나 이런 것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의 본질은 누룩도 넣지 말고 꿀도 바르지 마라, 그냥 그대로 드려라, 이것입니다.
4-2. 소금
그런데 넣으라는 것도 있습니다. 추가하라는 것도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금을 치라 했습니다. 소금은 왜 치라 했을까요? 소금은 무엇입니까? 소금은 자기가 녹아서 맛을 냅니다. 그래서 예배의 본질과 소금이 너무 닮아 있습니다. 지금 이 소제도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번제도 다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고, 소금도 다 녹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를 다 녹이는 것입니다.
또 소금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상하지 않고 변치 않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예배드리는 예배자와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변합니까, 변치 않습니까? 인간은 변해도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변치 않으시니 예배드리는 너희여 변치 마라, 변하지 마라, 이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보셨습니까? '소금 언약'이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소금 언약. 찾아보겠습니다. 역대하 13장 5절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유다 왕 아비야가 전쟁하러 나갈 때 한 말입니다. 여기 나옵니다. '소금 언약으로'.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소금 언약이 무엇입니까? 변치 않는 언약, 세월이 지났다고 맛이 변치 않는 언약, 약속이 사라지지 않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 모든 나라를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영원히 너 이 왕국을 영원하도록 하겠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 중에 누가 태어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십니다. 그의 나라가 영원합니다. 인간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했습니다.
그래서 소금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은혜 받아서 약속한 것이 있으면 그것이 변하시면 안 됩니다. 예배는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좋았다가 내일 싫어지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약속 변치 않고 지키고 항상 신실하게 예배 자리 지키고, 그 예배를 통해서 내 믿음을 하나님께 보이고 은혜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4-3. 성도의 정체성
누룩에 대해서 바울이 한 말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6절에서 8절, 하나하나 읽어 보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성도의 정체성을 무엇이라 했습니까? 누룩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성도는 부풀리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매사에 부풀리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 있는 그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냥 거짓말하지 마라, 담백하게 살아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습니까? 서로 분열하고 다투고, 음행의 문제, 우상 숭배의 문제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 것 다 걷어내고 순전함과 진실함, 거짓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믿음 생활하라. 우리 정체성이 누룩 없는 떡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 첫 이삭의 소제
5-1. 구원의 기억
이제 세 번째 소제가 나옵니다. 첫 번째 소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익히지 않은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소제였습니다. 기억나시겠습니다. 두 번째 소제는 굽고 부치고 삶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첫 번째 소제에서는 기름과 유향을 거기에 더하는 것이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는 가난한 분들은 굽거나 부치거나 삶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거기는 유향이 필요 없으니까 그냥 내가 먹는 음식 지어서 하나님께 드리면 됩니다.
세 번째 소제가 또 나옵니다. '첫 이삭의 소제'라 했습니다. 첫 이삭의 소제. 이것은 무엇이냐, 14절 15절을 보십시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볶아 찧은 것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볶아서 찧어서 가루가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그런데 '첫 이삭의 소제'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 이삭'을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아빕(אָבִיב)'이라고 나옵니다. 첫 이삭을 '아빕'이라고 했습니다. '아빕' 들어 본 적 없으십니까? 들어 보셨습니다. 많이 들어 보셨습니다. 출애굽기 13장 3절과 4절에 나옵니다.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했던 그 달을 '아빕월'이라고 합니다. 아빕월. 그런데 이 '첫 이삭'을 '아빕'이라고 했습니다. 이 첫 이삭 '아빕'에서 아빕월을 가져온 것입니다. 같은 뜻입니다. '아빕'이라는 것의 원래 뜻은 곡식이 완전히 다 자라기 전의 상태를 '아빕'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첫 이삭이 무엇이었느냐, 밀이냐, 쌀보리냐, 보리냐, 쌀이냐, 또 다른 곡식이냐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 할 과제입니다. 제가 이제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전에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주셨습니다. 순서 아십니까? 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우박하고 메뚜기입니다. 우박이 일곱 번째 재앙이고 메뚜기가 여덟 번째 재앙입니다. 우박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 땅에는 없었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살던 땅에만 있었습니다. 볼까요? 출애굽기 9장 26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있는 그 곳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우박이 고센 땅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있었습니다. 9장 31절 32절입니다.
"그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쌀보리는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을 잘 보십시오.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살던 곳에 밀과 쌀보리는 아직 자라지도 않았습니다.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박이 내려도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리는 이삭이 나왔습니다. 삼은 꽃이 피었습니다. 삼과 보리는 다 상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 땅에는 보리 이삭이 피었을까요, 안 피었을까요? 피었겠습니다. 당연히 우박이 안 내렸으니까요.
그런데 여덟 번째 재앙이 무엇입니까? 메뚜기 재앙입니다. 메뚜기 재앙도 고센 땅에는 안 왔습니다. 이집트 사람들만 당했습니다. 아까 밀과 쌀보리는 나지도 않았다고 했는데, 밀과 쌀보리가 나고 그리고 메뚜기가 와서 그것까지 다 싹 먹고 가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출애굽기 10장 12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가 무엇입니까? 아까 보리 이삭은 다 상했고 삼 꽃은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밀과 쌀보리는 아직 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났습니다. 이제 메뚜기가 와서 다 먹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고센 땅에는 밀과 쌀보리도 이제 났을 것이고, 보리도 이제 다 자랐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고 나서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이고 열 번째가 장자 죽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그때 밀과 쌀보리 그리고 보리 이삭이, 첫 이삭이 막 피어나던 때였습니다.
이 말은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릴 때,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집트의 모든 이삭은 다 쓰러지고 메뚜기 재앙으로 쓰러지고 우박 재앙으로 다 쓰러지는데 하나님 백성 너희의 곡식은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돌보셨다.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가 먹는 것, 이 첫 이삭의 소제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것을 드린다고 아까워하지 마라. 너희 먹고 사는 모든 문제 하나님 앞으로 다 책임지신다. 과거 출애굽할 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밀과 쌀보리, 보리 이삭, 삼 꽃까지 다 쓸어버린 것 기억하라.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그것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해되십니까?
5-2. 구원의 감격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제를 드릴 때마다 구원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제를 드릴 때마다 출애굽했던 그 기쁨과 그 영광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고센 땅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밀도 있었고, 쌀보리도 있었고, 보리 이삭도 다 피고 삼도 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백성들은 다 쓰러지고 우박에 쓰러지고 메뚜기가 다 먹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굶기지 않으신다. 당신의 백성을 분명히 먹이고 책임지고 돌보신다. 이것을 소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표현하신 것입니다.
소제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앞으로 먹고 살 모든 문제, 우리가 비록 지금은 가난해서 기름과 유향으로 하나님께 드리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부쳐서 드리기도 하고 구워서 드리기도 하고 삶아서 드리기도 하고, 먹고 살게 하신 하나님 감사하다고 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는 구원의 예배입니다. 구원은 얼마나 기쁩니까? 구원은 감격스럽습니다. 죽을 뻔했는데 건져 주셨으니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 건데 감격하니까 그다음 무엇이 따라옵니까? 15절에 보니까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감격스러우니까 헌신이 막 따라가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은혜가 고마우니까 기름과 유향,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동이 되면 헌신은 저절로 됩니다. 감동이 되면, 구원받은 은혜가 있으면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은 저절로 됩니다. 구원에 대한 감사가 그다음 헌신을 만들어 냅니다.
5-3. 소제의 의미 정리
소제의 의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난한 자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가난한 자가 얼마든지 드릴 수 있는 예배입니다. 그것은 번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지은 곡식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여성의 노동력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남편 없는 사람도, 과부도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 가난한데 여성의 노동력이 이 소제에는 그대로 다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의 번제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의 소제, 사회적으로 약자인 자들의 예배도 다 받으십니다.
있는 그대로의 예배입니다. 말씀드렸습니다. 누룩과 꿀을 넣지 마라. 제사장을 책임지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지는 제사장, 가지고 나온 곡식을 먹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제사장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드린 규정대로 소제 정신대로 먹어야 합니다. 거기에 가감할 수 없습니다.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고 마음대로 가지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소제의 정신 함께 다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한 말씀 잘 기억하시고 복습도 한번 해 보시고, 다음 주는 화목제를 공부할 테니까 한번 예습도 하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 주시고 말씀 통해서 깨달음과 은혜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예배드리라 하시고 소제 드릴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을 주셨습니다. 주여, 우리가 고운 가루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려지는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유향과 기름을 하나님 앞에 함께 드리게 하옵시고, 예배를 누룩과 꿀로 포장하지 않도록 주께서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드릴 수 있는 자가 드린다고 하셨사오니, 여성도 노동력으로 얼마든지 드릴 수 있으며 가난한 자도 먹는 음식으로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 예배를 존귀히 여기게 하옵소서. 주여, 또한 소제는 구원의 감격을 기억하는 예배라 하셨으니, 우리가 구원받은 감격에, 그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일 예배드리는 믿음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