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 화목제 / 전체녹취

레위기 3 - 화목제 (레3장, 7:11-34)

레위기 3장 1-2절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명절 연휴를 보내다 보면 여러 분주한 일도 많고 복잡한 일도 많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예배드리는 자리에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 이 자리에서 주시는 말씀으로 새롭게 중심을 잡아가면 좋겠습니다.

1. 화목제의 의미

레위기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신 예배의 다섯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첫 번째가 번제이고, 두 번째가 지난주에 살펴본 소제입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가 화목제입니다. 그다음 속죄제, 속건제까지 레위기에서 말하는 5대 제사가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마다 방법이 다르고, 어떨 때 이런 예배를 드리라는 규정이 다 다릅니다. 그냥 읽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왜 이런 의미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살펴보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오늘은 화목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1. 히브리어 명칭

화목제는 지난주에 살펴본 소제처럼, 성경을 번역하신 분들이 굉장히 심사숙고해서 옮긴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단어로 화목제는 '제바흐 쉘라밈(זֶבַח שְׁלָמִים)'이라고 합니다. 제바흐 쉘라밈은 문자 그대로 말하면 '짐승 감사 제사'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별로 의미가 살지 않습니다. 짐승을 감사하는 의미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는 'Fellowship Offering' 혹은 'Peace Offering'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Fellowship Offering'이라는 것은 친교의 예배라는 뜻이고, 'Peace Offering'이라는 것은 평화의 예배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옮기면 그 내용이 조금 더 되살아납니다. 짐승감사제사, 동물감사제사라고 하면 별로 의미가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로 '화목제'라고 옮긴 것은 이 예배의 속성과 의미를 잘 파악하고 번역한 단어입니다.

1-2. 친교와 화목

친교 예배, 펠로우십 오퍼링이라는 의미를 보면, 누구와 누구의 친교입니까? 예배를 드리는 우리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의 친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예배를 서로 드리는 나와 이웃과의 친교로도 나아갑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 화목제를 'Fellowship Offering'이라고 번역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친교, 나와 이웃 간의 친교를 의미합니다.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평화, 나와 이웃 간의 평화입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오면 화목제는 나와 하나님과의 화목, 나와 이웃과의 화목입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통해서는 예배드리는 자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사이의 화목이 가장 주된 목적입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나서는 나와 이웃 간의 화목이 또 중요한 목적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화목제라는 뜻만 알아도 내용의 거의 절반 이상이 우리에게 들어온 것입니다.

1-3. 화목의 전제 조건

그러면 여기서 내용을 보지 않아도, 지금까지 우리가 번제와 소제를 공부했기 때문에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평화, 친교, 화목이 가능하려면 내가 어떤 상태여야 합니까?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우리가 나올 때도 죄를 한가득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죄 많은 인간이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죄를 해결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예배를 통해서는 죄가 해결되는 매개체가 바로 짐승입니다.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친교도 되고, 평화도 되고, 화목도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죄가 해결되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와 평화와 화목이 이루어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목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이것이 화목제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 화목제의 제물과 절차

2-1. 수컷이나 암컷이나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제물을 예물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수컷이나 암컷이나, 이것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이미 번제도 공부했고 소제도 공부했기 때문에, 번제와 이것이 무엇이 다른가를 보셔야 합니다. 번제에는 암컷이 없었습니다. 수컷으로만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에는 암컷이 여기 추가되어 있습니다.

암컷과 수컷이 아니고, 수컷이나 암컷이나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에게 선택권을 주었다는 뜻입니다. 예배드리는 자가 수컷으로 드리건 암컷으로 드리건, 어떤 것이든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흠 없는 것으로"입니다. 수컷이나 암컷이나 이것은 뒤에 가서 더 설명을 드리겠지만, 예배드리는 자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권한은 부여했으나,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은 '흠 없는 것으로'입니다.

2-2. 흠 없는 제물

예물이 곧 누구입니까? 번제 예배드릴 때 나 자신이었습니다. 내가 죽고 내 피가 쏟아지고 내가 태워지는 것이니까요. 여기 예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모든 제사의 예물은 곧 예배드리는 사람 그 자신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흠 있는 상태로 나와서는 안 됩니다. 흠 없는 상태로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예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집에 소가 여러 마리 있습니다. 수컷도 있고 암컷도 있습니다. 그런데 수컷이건 암컷이건 그중에 흠 없는 것을 찾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습니다. 흠 없는 것은 가치가 높습니다. 가격이 비쌉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까요. 그런데 흠 있는 것은 가치도 낮고 가격도 떨어져 있습니다. 다리를 저는 놈이라든지, 눈이 찔려서 한쪽 눈을 못 뜨는 놈이라든지, 병에 걸린 놈이라든지, 자꾸 시름시름 앓고 뭔가 문제가 있는 놈이라든지, 그런 것을 빨리 처분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드릴 때는 그런 것을 가져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흠 없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흠 없는 것은 번제나 화목제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이 되려면 내가 흠이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흠이 없다는 말은, 우리 인간이 인간적으로 볼 때는 흠이 많지만, 죄를 회개하고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2-3. 안수와 죄의 전가

그 흠 없는 제물에 예배드리는 자가 어떻게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문에서 잡을 것이요." 번제와 똑같습니다. 안수를 통해서 죄의 전가가 이루어집니다. 내 죄가 흠 없는 제물의 머리로 그대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손만 얹고 가만히 있습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거기에다 다 고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목제가 하나님과 나와의 친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죄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과 친목 도모가 불가능합니다. 화목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 죄를 다 해결하고,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 죄가 그곳으로 다 가는 것입니다. 전부 다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합니까? 회막문에서 잡는 것입니다. 누가 잡습니까? 내가 잡습니까, 제사장이 대신 잡아줍니까? 내가 잡아야 합니다. 이것도 번제와 똑같습니다. 번제도 내가 잡는 것이지 제사장이 대신 잡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번제할 때 공부했습니다. 소를 잡을 때 피가 튀고, 땀이 흐르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 시간을 통해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사실은 내가 죽어야 하는데 이 짐승을 내가 죽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죄가 짐승에게로 그대로 옮겨갔기 때문에, 짐승을 죽여서 내 죄를 깨끗하게 하고, 나와 하나님 사이가 친교가 되고 화목이 되고 평화가 그 사이에 세워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꼭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땅에서 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예배도, 예배를 통해서 우리 죄를 누구에게 고백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제일 마지막에 가서 공부할 텐데, 예수님께서 진정한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님께서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내 죄를 다 쏟아 넣는 것입니다. 전부 다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정결해지고,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상에서 내 죄를 지고 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서는 우리가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진정한 영원한 화목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죄를 다 쏟아놓고 정결함을 입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짐승을 잡습니다. 짐승이 죽으면서 내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무엇을 합니까? 2절 중간을 보시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제사장들은 피 뿌리는 일만 하는 것입니다. 피를 받아서 피를 뿌리고, 예배를 가이드해 주는 것입니다.

2-4. 기름과 콩팥

3절을 보십시오. 여기 '그'가 누굽니까? 성경을 보실 때 단수와 복수를 잘 보셔야 합니다. 2절에 보면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이라고 복수 형태로 나옵니다. 두 사람 이상입니다. 그런데 여기 3절의 '그는' 단수로 나옵니다. 짐승을 가지고 나온 예배자,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은 그 예배자입니다. "그는 그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여기서 번제와 화목제가 또 다른 점이 하나 나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낼 것이요." 한마디로 말하면, 짐승을 죽이고 번제는 각을 떠서 다 태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화목제는 어떻게 합니까? 두 가지를 떼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지만, 첫째는 기름, 두 번째는 콩팥입니다. 기름과 콩팥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름과 콩팥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중에 우리가 공부하겠지만, 화목제는 하나님께 드리고 난 다음에 기름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고기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바꿔서 하라고 하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고기는 태워서 나에게 다 드리고, 기름은 너희가 다 나눠 먹어라. 우리가 기름을 먹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 건강에 좋겠습니까? 그것이 정말 친교와 성도들을 위한 유익한 교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름을 태워서 나에게 가지고 오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너희들이 먹도록, 너희들이 고기를 먹어서 친교하라고, 나에게는 기름을 태워서 그 향기를 나에게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콩팥은 구약성경에서 인간의 감정과 생각이 만들어지는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의 사상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사람의 내장은 곧 심장과 콩팥이라고 생각했고, 심장과 콩팥에서 감정과 생각이 만들어지는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예배자가 짐승의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있는 죄가 짐승에게 다 옮겨졌습니다. 그러면 그 죄가 어디로 가 있겠습니까? 내가 만약 죄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죄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됩니까? 행동으로 나오는 것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고, 생각으로 심장으로 마음으로 내면에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콩팥을 다 태우라는 말은 죄를 다 태워버리라는 뜻입니다. 죄를 다 내면에 있는 죄를 다 씻어내고 태워버리라, 완전히 다 태워버리라는 뜻입니다. 그 히브리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구절이 시편 7편 9절에 있습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내장입니다. 시편 139편 13절입니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장을 지으셨다는 말이 두 가지 의미입니다. 실제로 나의 장기를 지으셨다는 의미이고, 내 생각을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주장하시는데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짐승을 태울 때 콩팥, 생각과 감정이 만들어지는 자리를 제거해서 태워버리라는 것입니다. 죄를 완전히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것을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기름을 태우라는 의미는 고기는 너희들끼리 먹으라는 뜻이고, 하나님이 고기 태워서 가지고 오고 기름 너희 먹으라고 하셨으면 히브리 민족은 다 단명해서 일찍 죽었을 것입니다. 기름을 먹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기름을 태우고 고기는 너희들끼리 나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콩팥을 태우라는 것은 죄를 다 불사르고 태우라는 의미입니다.

2-5. 번제가 우선이다

그것을 누가 합니까? 5절을 보십시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에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 그것이 무엇입니까? 기름과 콩팥입니다. 아론의 자손이, 즉 그것을 태우라는 뜻입니다. 짐승을 잡아서 기름과 콩팥을 분리하는 것은 누가 합니까? 예배자가 합니다. 분리해서 제사장에게 드리면, 그것을 태우는 일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합니다. 정리가 되시지요? 성경을 꼼꼼하게 읽어보시면 누가 이 동사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가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시 보시면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제단 위에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 번제물 위에서 살라" 번제물 위에서입니다. 기름과 콩팥을 태우는데, 이미 그 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번제물이 있었습니다. 번제물이 있었다는 것은 화목제를 드리기 전에 무엇이 먼저 드려졌다는 뜻입니까? 번제가 드려졌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나중에 나오는데 화목제를 드릴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세 가지 경우에 화목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감사할 때, 서원할 때, 자원할 일이 있을 때입니다. 다 좋은 일입니다. 다 기쁘고 좋은 일인데, 그때 화목제는 반드시 번제와 함께 가는 예배입니다. 번제물이 먼저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번제물이 위에 있고 그 위에 기름과 콩팥을 놓아서 태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번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나를 온전히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나를 완전히 다 태워서 나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우선이 되고, 예배의 가장 표본과 예배의 가장 기본은 나를 태우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화목제는 그다음입니다. 하나님과의 친교, 사람과의 교제와 친교도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태우고 난 이후에 친교가 있는 것이지, 내가 온전히 타지도 않고 내 욕심이 그대로 남아 있고, 내 죄가 그대로 남아 있고, 내 정과 내 자아와 욕망과 탐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과 친교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화목제의 전제는 번제입니다.

그러면 옛날 사람들, 히브리 민족들은 화목제 한 번 하려면 출혈이 얼마나 큽니까? 소가 두 마리 필요합니다. 좀 있는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는 새가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새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눠 먹어야 하니까 그렇습니다. 새 한 마리 잡아서 이웃과 어떻게 나눠 먹습니까? 나 혼자 먹어도 부족한데 말입니다. 그런데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이 번제가 우선해야 합니다. 새를 잡아오면 됩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면 산비둘기를 잡아와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고, 그 위에다가 기름과 내장을, 콩팥을 넣고, 그리고 화목제를 드리면 됩니다.

정리가 되시지요. 화목제는 일반적인 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화목제 일반 규정입니다. 일반적인 규정에다가 그다음 세부 항목이 더해집니다. 레위기가 좀 복잡한데, 왜 복잡하냐 하면 화목제가 3장에도 나오고 7장에도 나옵니다. 읽다 보면 화목제 했는데 7장 읽다 보면 또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공부할 때는 3장도 갔다가 7장도 갔다가, 교재에 3장과 7장을 함께 모아둔 것입니다.

3. 화목제의 종류

3-1. 제물의 종류

화목제에 사용할 수 있는 짐승이 무엇입니까? 3장 1절에 보면 소로 드리려면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우리가 읽었습니다. 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6절에 보시면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제물이 양이면" 양도 드릴 수 있습니다. 형편에 따라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드릴 것입니다.

또 12절에 보시면 "만일 그의 예물이 염소이면 그것을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여기는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이 생략되었습니다. 생략되었다는 것은 앞에 소, 양 때 이야기했기 때문에 생략한 것입니다. 그래서 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컷이나 암컷이나 어쨌든 흠 없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흠 없는 것이 중요합니다. 드리는 사람이 자율적으로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 집에 암컷이 너무 많으면 암컷을 갖다 드릴 수 있습니다. 수컷이 너무 많으면 수컷을 갖다 드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흠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는 새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친교하고 백성들과도 나누어 먹어야 하니까요. 새는 나눌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 드리는 제사는 번제와 소제입니다. 화목제는 1년에 몇 번 정도 할 것 같습니까? 살다가 부유한 사람이라면 감사의 조건이 생길 때마다 화목제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화목제를 몇 번 드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고대하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10년 만에 하나님이 자녀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은 10년에 한 번 감사로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년에 한 번 드리는 것이니까 가난한 사람이라도 염소 한 마리쯤은 마련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양 한 마리쯤은 함께 나누고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니까요. 그런 의미의 화목제입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드리는 예배가 화목제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3-2. 감사제

화목제의 종류를 한번 보겠습니다. 7장 12절에 나옵니다.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제물과 함께 드리고" 감사함으로, 여기에 동그라미를 치십시오. 화목제의 첫 번째 종류가 감사제입니다.

감사할 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감사하고, 우리 식구 중에 누가 물에 빠져서 죽는 줄 알았는데 지나가던 누군가가 건져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면 화목제를 드릴 조건이 성립된 것입니다. 아주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가 나았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감사한 일이 많은 것입니다.

3-3. 서원제와 자원제

또 7장 16절을 보시면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서원제, 자원제 들어보셨습니다. 언제 서원합니까? 기도 제목이 있을 때,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이 기도를 하나님이 꼭 들어주셔야만 할 때, 그때 서원을 합니다. 그 서원할 때도 화목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자원제는 그런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전에서 섬기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민수기에 가면 나실인이 나옵니다. 나실인(נָזִיר)은 하나님께 드려진 자라는 뜻입니다. 나실인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삼손처럼 태어날 때부터 종신토록 나실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간을 정해서 하나님께 나는 이 기간 동안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드려지는 나실인이 있습니다. 1년이면 1년, 2년 혹은 3년 혹은 몇 개월,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나실인이 있습니다.

이것도 자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원해서 성전에서 수발 들고 청소하고 봉사하는 나실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이런 것입니다. 제가 내년에는 1년 동안 어느 한 장소를 성실하게 청소하겠습니다. 자원하는 것입니다. 그때 화목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3-4. 공동체적 서원

여기서 우리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감사제는 이해가 됩니다. 감사하니까,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집에 자녀가 태어나거나, 죽을 병에서 낫거나, 물에 빠졌는데 살아나거나, 돈을 떼일 뻔했는데 돈을 다시 찾거나, 감사한 일은 다 나눌 수 있습니다. 기쁘니까요.

그런데 왜 서원이나 자원제를 화목제를 드리라고 했을까요?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하나님과 친교하고 백성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했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서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입니다.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하나님이 이것을 이루어 주시면 제가 반드시 다음에 하나님께 이것을 드리겠다는 서원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서원이 공적인 서원이 되지 못하면, 이웃 사람이 다 아는 서원이 되지 못하고 나와 하나님과의 약속만 된다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서원을 어기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화목제를 드리면 동네 사람이 다 압니다. 이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제가 이런저런 제목으로 서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원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하나님께 갚겠습니다. 그러면 이 고기를 얻어먹은 사람들, 소고기 먹은 사람, 양고기, 염소고기 얻어먹은 사람, 이 사람들은 이 사람의 서원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도록 하나님께 함께 중보해야 할 동역의 공동체적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교회 공동체성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이 서원을 했으니까 응답받았습니다. 응답받은 것을 다 압니다. 하나님, 제가 병이 나으면, 심각한 중병에 걸렸는데 이 병이 나으면 제가 나실인이 되겠습니다. 3년 동안 성전에서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서원제입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다 압니다. 동네 사람들이 압니다. 그러면 3년 동안 가서 나실인으로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적으로 스스로의 약속에 묶이기 위해서 화목제를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서 오늘 우리도 자원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배드리면서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봉사하고 싶습니다. 성경일독 내년에 꼭 하겠습니다. 저는 내년에 이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나하고 하나님만 압니다. 한두 달 지나니까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면 그냥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함께 알리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으면 내 입이 부끄러워서라도 끝까지 할 것입니다. 끝까지 기도 제목을 적어내고 목사님한테도 부탁하고 구역장님한테도 부탁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렸으면 열심히 할 것입니다. 그런 취지에서 서원제와 자원제는 화목 제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공동체성이 구약 시대 교회부터 함께 공존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4. 감사제의 세부 규정

4-1. 함께 드리는 것들

이제 세부 항목이 또 나옵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와 서원이나 자원함으로 드리는 화목제의 차이가 있습니다.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시험 보는 것이 아니니까 외우려고 하지 마시고 오늘 이 시간에 의미를 잘 되새기시면 됩니다.

7장 12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그것을 감사함으로 드리려면" 감사제입니다. 화목제 중에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그중에 감사제입니다. "기름 섞은 무교병, 기름 바른 무교전병,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제물과 함께 드리고" 감사 제물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 중 하나입니다. 그것과 함께 이런 것들을 같이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교병, 무교전병, 기름 섞어 구운 과자, 이것도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이웃과 함께 나눌 때 이것도 함께 다 나누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것은 잔치입니다. 이웃과 함께 다 드리는 잔치입니다.

13절, "또 유교병을 화목제에 감사 제물과 함께 그 예물로 드릴지며" 특이합니다. 유교병에 줄을 치십시오. 유교병은 무엇입니까? 누룩이 들어간 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주에 소제할 때 공부했습니다. 소제물에 절대로 넣어서는 안 될 두 가지가 누룩과 꿀이었습니다. 왜입니까? 본질을 변화시키니까, 있는 그대로 나오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여기 화목 제물에는 누룩이 들어간 유교병을 감사 제물과 함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포인트가 어디에 있다는 뜻입니까? 이웃과 함께 나누는 공동체 즐거움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하는 동시에 이웃과도 함께 나누어 먹을 때 맛있는 떡을 먹으라고, 맛있는 빵을 먹으라고 유교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나눔의 기쁨이 있도록, 기름만 취하신 것도 고기 나눠 먹으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4-2. 거제로 드리고

그다음 14절입니다.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하나씩이라고 하면 지금 앞에 나온 것, 무교병, 무교전병, 구운 과자, 유교병 이것을 다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거제는 좀 이따가 나오는데요, 거제는 히브리어로 '트루마(תְּרוּמָה)'라고 하는데, 거(擧) 자가 무슨 자입니까? 한자로 거수경례할 때 들 거 자입니다. 들다, 들어 올리다입니다.

좀 있다가 요제와 거제를 분리해서 볼 텐데,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왜 들어 올릴까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가 높이 두 손을 들어서 하나님께 들어 올립니다. 하나씩, 이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께 들어 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에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지니라" 들어 올렸다가 계속 들고 있습니까? 이것을 다시 내려야 합니다. 내리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로 주신 것입니다. 그 도로 받은 것을 누구에게 드립니까? 아까 내가 소나 양이나 염소 잡을 때 옆에서 피 받아서 피 뿌렸던 제사장 있지요? 그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드시라고, 제사장이 먹으라고 말입니다.

감사제의 특징입니다. 화목제 중에 감사제의 특징으로 무엇이 있었습니까? 유교병이 있었습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유교병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우리를 위한 것, 이웃과 함께 나눔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무교병, 무교전병, 구운 과자, 유교병 이것 모두 다 하나씩 다 드는 것입니다. 하나씩이라고 했습니다. 전부 다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이 구워서 백성들과 나눠야 하니까요.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하나님은 받으시고, 다시 우리에게 주시고, 그것은 제사장에게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4-3. 당일에 먹으라

가장 중요한 것이 나옵니다. 15절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 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그날 다 먹으라고 했습니다. 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가 옛날 대가족 제도에서 한 10명이라고 칩시다. 기름 다 제거했습니다. 콩팥 제거했습니다. 그 소 한 마리를, 암소 한 마리를 열 명 식구가 하루에 다 먹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면 하루에 다 먹으려면 이웃과 다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전부 다 말입니다.

그다음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서원제나 자원제의 예물일 때는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그 이튿날에도 먹되" 이틀까지는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에는 17절,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다 태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틀까지만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감사제의 제물은 그날, 서원제와 자원제의 제물은 그 이튿날, 3일까지 남으면 어떻게 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 화목 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도리어 화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사는 무효가 되고, 먹는 자는 화를 입습니다. 이틀 안에 무조건 다 처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하니까, 우리 가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니까 다 나눠 먹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만약에 우리 집이 감사한 일이 있어서 소를 잡았습니다. 화목 제물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웃과 다 나누는데 그 전날 옆집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아주 심각하게 다투었습니다. 이제 다시는 얼굴 안 보겠다 싶을 정도로 크게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도 줘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다 줘야 합니다. 이것을 다 나눠 먹으려면 이 마을 사람들이, 이 공동체 사람들이 다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집 사람이 만약 받았는데 억울한 마음이 있어서 기분 나빠서 그냥 버려버립니다. 안 먹습니다. 나는 당신들 주는 것 절대 안 먹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예배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화목제는 말 그대로 진짜 화목입니다. 영어로 Fellowship과 Peace, 그리고 우리말의 화목이 말 그대로입니다. 백성들 사이의 화목, 먹는 것으로서 서로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 마음이 상한 자도 고기를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공동체를 이루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화목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 그리고 백성과 백성 사이의 화목을 아주 중점되는 목적으로 합니다. 예배의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5. 오늘의 적용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이 화목제를 우리의 예배로 가져온다면 어떻습니까? 번제는 잘 드리는데, 나를 태우는 것까지는 잘하는데, 소제도 고운 가루로 다 갈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까지는 잘하는데, 이웃 간의 관계가 문제인 분들이 많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문제입니다.

교회도 자기 교회는 부흥하는데, 교회는 날이 갈수록 행복하고, 교회는 건물이 올라가고 땅이 넓어지는데, 동네에는 굶는 사람이 있고 이웃들은 교회에 대해서 손가락질합니다. 화목제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교회이고, 화목 예배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하는 성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죄가 해결되어서 하나님과 친교가 있고 화목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이웃과의 백성들과의 친교와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못하면 반쪽짜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데 교회는 부르는 공동체입니다. 불렀습니다. 왜 불렀습니까? 훈련시키려고 불렀습니다. 열심히 훈련시켰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선교와 친교와 봉사를 통해서 열심히 훈련시켰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종을 만드려고 훈련시킵니까? 성도들을 그렇게 만드려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의 종을 만드려고 훈련시킵니까? 그런 교회는 나쁜 교회입니다. 진짜 좋은 교회는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세상 속으로 내보내는 교회입니다. 자꾸 내보내야 합니다. 세상에 내보내서 빛으로 소금으로 사십시오 하고 자꾸 말씀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가라, 제자 삼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가서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교회도 세상과 소통하고 세상으로 성도들을 자꾸 내보내야 합니다. 화목제의 정신은 바로 그 정신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6. 거제와 요제

이제 레위기 7장 30절에서 34절까지가 거제와 요제를 다룹니다. 여러분 거제와 요제 들어보셨지요?

7장 30절입니다. "여호와의 화제물은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가져올지니 곧 그 제물의 기름과 가슴을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가슴을" 즉 제물의 가슴입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가슴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요(搖) 자가 무엇입니까? 흔들 요 자입니다. 요람 들어보셨지요? 아이들 태우는 요람, 요람이 흔드는 것입니다. 요제는 앞뒤로 흔드는 것입니다. 앞뒤 혹은 양옆으로 흔드는 것을 요제라 합니다.

그런데 31절, "그 기름은 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가슴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 것이며" 요제는 가슴 고기입니다. 가슴 고기를 흔들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고 아론과 그 제사장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다음 32절입니다. "또 너희는 그 화목 제물의 오른쪽 뒷다리" 오른쪽 뒷다리는 무엇이 됩니까? "제사장에게 주어 거제를 삼을지니" 거(擧) 자가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들 거 자입니다. 들다,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하나님께 다시 받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오른쪽 뒷다리를 들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면, 하나님이 다시 우리에게 주시면, "아론의 자손 중에서 화목 제물의 피와 기름을 드리는 자는 그 오른쪽 뒷다리를 자기의 소득으로 삼을 것이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요제는 앞뒤 좌우로 흔드는 것인데, 이것도 하나님께 드렸다가 다시 받는 것이고, 그것은 가슴 고기인데 그것도 제사장에게 주는 것입니다. 거제는 오른쪽 뒷다리인데 들었다가 다시 받는 것이고, 역시 하나님께 드렸다가 받는 것인데 그것도 다시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34절입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 제물 중에서 그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 흔든 가슴은 요제의 가슴이고, 든 뒷다리는 거제의 오른쪽 뒷다리입니다. "제사장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주었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을 영원한 소득이니라" 그러면 제사장은 자신의 생활을 화목제가 있을 때 그때 요제와 거제로 먹고사는 것입니다.

6-1. 분리의 의미

거제는 히브리어로 '트루마(תְּרוּמָה)'라고 합니다. 들어올리다, 분리시키다라는 뜻이고, 여호와 앞에서 드리고 다시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요제는 히브리어로 '트누파(תְּנוּפָה)'입니다. 비슷합니다. 앞뒤로 흔들다, 분리시키다입니다. 항상 여호와 앞에서 다시 제사장에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트루마, 트누파의 '룸(רום)' 동사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룸은 분리하다, 떼어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거제와 요제는 떼어내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흔히 이것을 오해하면, 짐승의 한 큰 덩어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가슴을 떼냈다, 짐승의 큰 몸 중에 오른쪽 뒷다리를 떼냈다, 이렇게 오해하시는데 말 그대로 오해입니다. 여기서 룸 동사, 분리시키다 떼냈다라는 것은 예물을 드리는 사람에게서 분리시켰다라는 뜻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자, 이제는 네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물을 드리는 자가 거제와 요제로 드리면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앞뒤로 흔들어서 요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시고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제사장에게 주셨습니다. 거제, 그것도 룸 동사, 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하나님 받으시고 그것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다시 제사장에게 주셨습니다.

6-2. 잘못된 주인 의식

그런데 예물 드리는 사람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먼저처럼 다 타고 사라져 버리면 하나님이 향기로 받으셨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남아 있습니다.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가 내 눈이 보는 데서 제사장에게 갑니다.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내가 주었구나, 내가 이 제사장에게 드렸구나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 부유한 사람들이 화목제를 자주 합니다. 감사한 일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제사장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가질까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자기가 갑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본인이 자주 가지고 나오니까요.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너희들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추호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분리시키다, 트루마, 트누파, 룸 동사, 이것은 네 것이 아니다, 너에게서 이미 떼어서 나 여호와께 드렸고, 하나님 나 여호와는 내 종 제사장들에게 준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이 종종 있습니다. 교회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에서 급여 받고 일하시는 직원들을, 내가 드린 헌금으로 내가 너희들 먹여 살리는데,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생각만 갖고 계시면 하나님만 아실 텐데 가끔 그 생각이 입으로 나옵니다. 가끔 그 생각이 입으로 나오고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눈빛으로도 나옵니다. 철저하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 종들을 먹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다 분리된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 그 헌금으로 교회가 운영된다, 내가 십일조를 얼마 하는데, 내가 이 교회에 지금까지 얼마를 드렸는데,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왜 내 말을 안 들어? 목사가 왜 내 말을 안 듣느냐고, 내가 이렇게 교회에 이야기하는데 왜 내 말을 안 듣고 다른 사람 말만 듣느냐고 수 틀려서 헌금 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제가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다. 나 지금 이 교회 떠날 테니까, 지금까지 내가 낸 헌금 다 정산해서 다시 돌려달라고 합니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닙니까? 제대로 못 배워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거제와 요제는 이미 분리된 것입니다. 나하고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제사장을 먹여 살리시건 성전을 수리하는 데 쓰시건 성전 공사를 하시건 하나님 뜻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들 중에도 교회가 나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로님들이 나에게 급여를 주어서 교회가 나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비루해지고 비굴해집니다. 돈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면 나가서 노동하고 일하지, 왜 목회직을 합니까? 하나님이 거제의 예물과 요제의 예물을 가지고 목회자를 먹여 살리시는 것입니다. 굶겨도 굶을 만하니까 굶기시는 것이고, 먹이면 먹일 만하니까 먹이시는 것입니다.

그 목회자는 그런 데서 당당해져야 하고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성도들도 거기에 대해서 깔끔하고 깨끗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 거제와 요제를 통해서 분리시켰다는 의미는 오늘 우리가 적용하면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7. 화목제의 정리

화목제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위해서 나는 기름을 달라, 너희들은 고기를 먹어라 하셨습니다. 하루 만에 다 먹으려면 다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또 기쁨이 있고 사귐이 있고 나눔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에 농경민족이고 목축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레위기 율법은 주어진 당시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가서 정착했습니다. 정착해서 살면서 농사짓고 목축하고 사는데 재산이 곧 소나 양이나 염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함부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 화목제 예배가 있을 때 잡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동네 잔치입니다. 얼마나 행복한 잔치이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과정에 감사한 일이 있으면 함께 축복하고, 서원한 일이 있으면 함께 기도해 주고, 자원하는 일이 있으면 그 자원을 지킬 수 있도록 함께 중보해 주고, 공동체성이 화목제 예배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 화목제와 그리스도

서두에 짧게 말씀드렸는데, 예수님이 곧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 나옵니다.

8-1. 향기로운 제물

먼저 에베소서 5장 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의미하는 것이 예수님 당신이 직접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8-2. 화목 제물 되신 예수

보다 더 확실한 구절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습니다. 누구를? 예수를. 예수님이 곧 화목 제물이 되십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화목제 공부를 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화목 제물이 되신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실 죄 있는 우리가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과 친교하고 평화를 맺고 화목하려면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짐승을 가지고 나서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이 죄를 다 그쪽으로 전가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짐승을 죽이고 그 짐승에게서 기름과 내장을 제거했습니다. 모든 죄가 모여 있는 콩팥을 다 태웠습니다.

그런데 그 제물이 곧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짐승이 중재의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예수님이 중재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다시 회복되게 된 것입니다.

이 죄 많은 인간이, 내가 예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우리 마지막에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합니까? 다 기도해 놓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합니다. 그것은 화목 제물 대신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 죄를 다 예수님께 쏟아놓고,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지금 다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오고 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신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친히 화목 제물이 되셔서 나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죄라도 화목 제물 대신 예수님을 통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화목 제물 대신 예수님을 통하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이 주는 죄의 정죄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화목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아 주셨는데, 왜 우리가 자꾸 정죄 의식에 사로잡힙니까?

8-3. 복음 전파의 사명

또 한 가지, 화목 제물은 나와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지만 동시에 나와 이웃 사이도 화목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의미는, 우리는 이 예수님을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루 혹은 이틀, 기간이 긴박합니다. 사흘째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음 전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화목 제물 대신 예수님, 이 좋은 예수님, 우리는 먹고 있는 고기는 이웃과 막 나누고 싶은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지 않습니까? 나만 독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사흘째 되는 날까지 남겨두면 내가 화를 입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사명이고 의무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화목 제물의 고기 되신 예수님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빨리빨리 긴급하게 말입니다. 감사제는 하루에, 서원제와 자원제는 그 이튿날에 다 나누어야 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고 계십니까?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친히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을 잘 나누시고 전하셔야 합니다. 그런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화목 제물 되신 예수님도 기억하고, 화목제에 대해서 오늘 공부했으니까 궁금한 것은 영상이 올라오면 다시 한 번 더 살펴보시고, 다음 시간에 속죄제에 대해서 공부해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화목 제물 대신 예수님을 깨닫고 배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죄 많은 인간이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소나 양이나 염소를 통해서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 제물이 되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화목하게 되었으니, 이제 우리 이웃들에게 화목 제물 대신 예수님을 나누는 자 되게 하옵소서. 전도하고 나누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온전히 하나님께 나누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거제와 요제를 통해서 하나님께 드린 것, 깨끗하게 드린 것으로 분리시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된 주인 노릇 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교회를 혹은 사람을 우리가 함부로 좌우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드린 것,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도록 위하여 기도하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모든 삶의 자리에 넘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화목제의 정신을 우리 삶에서 실천하기 원하오니, 우리 생각과 마음도 주장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