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 속죄제 / 전체녹취

레위기 4 - 속죄제 (레4:1-5:13, 6:24-30)

레위기 4장 13절에서 15절까지 말씀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멘.

오늘은 레위기 네 번째 시간으로 속죄제를 공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번제, 소제, 화목제를 공부했는데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하고 나서 기억나는 것이 사실 크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용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는 않은데 내용이 많고 또 살펴볼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뭐 기억나지 않는 것이야 나이 들어서 그런 것이고, 다시 살펴보고 또 듣고 또 읽어보면 충분히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주시는 은혜를 붙잡고 듣고 의미를 잘 새기면 좋겠습니다.

1. 속죄제의 의미

오늘도 속죄제에 대해서 함께 나눌 텐데 속죄제의 의미부터 한번 보겠습니다. 속죄제는 히브리어로 '하타트(חַטָּאת)'라고 하는데, 하타트는 사실 우리말로 옮기면 '속죄제'라는 의미보다 '정결제'라는 의미가 훨씬 더 큽니다. 누구를 정결하게 하고 무엇을 정결하게 하는가 하는 것은 오늘 본문을 계속 살펴보면서 뒤로 가면서 볼 것인데, 어쨌든 '속죄'라는 의미는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의미가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오늘 이 네 번째 예배인 속죄제에서 이 의미는 그런 의미보다는 무엇인가를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영어에서는 'Sin Offering'이라고 해서 '죄 예물'이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사실 영어 번역보다는 우리 번역이 훨씬 좋습니다. 어쨌든 '정결제'라고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잘 다가올 것입니다.

2. 속죄제 일반 규정

2-1. 자발적 예배와 의무적 예배

먼저 속죄제 일반 규정에 대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속죄제는 앞선 번제, 소제, 화목제와 어떤 점이 다릅니까? 번제, 소제, 화목제는 모든 사람이 다 자발적으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1장 2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레위기 1장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너희 중에 누구든지'라 그랬습니다. 예물을 드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번제를 드릴 때는 '아담(אָדָם)', 그리고 소제를 드릴 때는 '네페쉬(נֶפֶשׁ)'. 기억이 나실는지 모르겠는데, 호흡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예배를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고, 흙으로 빚어진 사람은, 먼지로 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의 공통점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누구든지 차별 없이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죄제는 좀 성격이 다릅니다. 언제 속죄제를 드립니까? 읽어보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죄 지었을 때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속죄제를 반드시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4장 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우리는 여기서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하나라도'란 말이 우리에게 목에 가시처럼 딱 걸립니다.

2-2. 의도하지 않은 죄

그런데 여기 '그릇 범하였다'는 말을 좀 이따가 또 볼 텐데, 히브리어 '하타(חָטָא)'라는 말입니다. 하타는 '의도하지 않게 범죄하다'라는 뜻입니다. 자기는 의도성이 없었습니다.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누가 나에게 알려줘서 "아, 이게 잘못된 것이로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그때 속죄제를 하나님께 의무적으로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속죄제의 본뜻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일단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의도하지 않은 것, 나도 모르게 죄를 지었는데 그때는 모르고 넘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알았습니다. 한 달 뒤, 1년 뒤, 혹은 10년 뒤에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생각나면 드리는 것입니다. 10가지를 모아다가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고, 속죄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가 생각나면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동네 이웃집 가게에서 뭔가를 사탕 하나 가져와서 먹는 것을 놀이로 생각했는데, 예수 믿고 나니까 "아, 이게 범죄더라." 마음에 자꾸 걸립니다. 한 30년 지난 것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예수 안 믿고 그냥 아이들 놀이처럼 그렇게 해서 잘 몰랐는데, 이제 시간이 한참 지나서 복음을 듣고 말씀이 나에게 들어와서 성숙하고 성장하고 나니 "아, 그건 범죄였구나.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었구나." 그런 것입니다. 속죄제는 일단 그것을 염두에 두고 넘어갑니다.

2-3. 속죄제 드리는 자

다음 질문을 보시면, 속죄제를 드리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 자체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쓰고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을 이제 봤는데, 속죄제를 받는 분은 하나님이시죠. "속죄제는 누가 드리니까?"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질문이 "그 속죄제는 누가 하나님께 드리는가?" 여기 보면 네 부류를 적어 놓았습니다.

볼까요? 레위기 4장 3절에 보면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누가 범죄합니까? 제사장이 범죄합니다. 두 번째는 13절을 보니까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이스라엘 온 회중이'라 그랬습니다. '온 회중이'라는 것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까? 있지요. 어떨 때입니까?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는데 그 결정이 하나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했을 때, 그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지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 첫 번째는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대상은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세 번째, 22절에 보니까 "만일 족장이" 그랬습니다. 여기서 '족장'이라는 것은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 족장은 행정 단위의 족장입니다. 천부장 들어보셨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정 단위 중에, 군대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민수기에 가면 군대가 되는데, 제일 큰 단위가 천부장, 그다음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그 단위의 어른을 '족장'이라고 합니다. 또는 여기서 족장은 집안의 어른을 '족장'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레위 지파의 어른, 요셉 지파의 어른, 유다 지파의 어른, 어쨌든 백성의 리더가 되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무엇입니까? 4장 27절,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우리 얘기입니다. 평민입니다. 우리 한 사람. 즉 네 가지 계층을 얘기했습니다. 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 그러면 이 네 계층을 나란히 모아 놓고 생각하니까 속죄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입니까? 누구나 다 죄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사장이라고 죄 짓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장도 죄 짓습니다. 그리고 온 회중, 백성들이 많이 모이면, 간혹 이제 뉴스에서 그런 얘기하지요, 시사 프로그램에서 "집단지성의 논리를 믿습니다" 이런 얘기하지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면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고, 두 사람보다 열 사람, 열 사람보다 백 사람이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결정하면 이 결정이 한 사람의 결정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는, 뭐 이런 것이 집단지성입니다. 그런데 그 집단지성은 죄를 안 짓습니까? 짓지요.

일제를 보십시오. 히틀러를 보십시오. 독일을 보십시오. 2차 세계대전 일으킬 때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 열광했고 일본이 일본 천황에 열광했잖아요. 죄 짓습니다. 집단지성도 이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과거에 동구권이 공산화될 때 그때 보십시오. 중국이 공산화로 넘어가고 러시아가, 소련이 자유화로 넘어갈 때 그들은 다 공산주의의 망령이 온 세계를 다 휩쓸어갔습니다. 그런 것은 집단지성을 믿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자, 그래서 또 족장은 죄를 안 짓습니까? 짓지요. 오래 산 어른이라고, 우리 가문에 오랫동안 살고 책도 많이 읽고 인품도 좋고 신앙도 깊고, 그렇다고 죄 안 짓습니까? 그런 것 아닙니다. 평민 중 한 사람, 당연히 죄 짓지요. 죄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크고 작을 따름이지, 많고 적을 따름이지,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2-4. 공통된 표현

또 우리가 이 네 부류를 읽었는데 여기에 공통점이 나옵니다. 다시 볼게요. 4장 3절,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이 '범죄하다'라는 단어가meaning 히브리어 '하타(חָטָ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의도하지 않게 범죄하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지요. 여기 속죄제는 의도성이 없는 죄를 나중에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사죄하는 것이 속죄제입니다. 여기 '범죄하다'는 '하타'입니다.

13절에 보니까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부지중에 범하다.' 이건 또 '비쉬가가(בִּשְׁגָגָה)'라고 나옵니다. 비쉬가가는 무엇이냐 하면 '실수로'라는 뜻입니다. 고의가 아니고 실수로. 이스라엘 온 회중이 잘 몰라서 실수로, 무지해서. 세 번째 족장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이것도 '하타'와 같이 의도하지 않게 범죄한 것입니다.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여기는 '하타'와 '비쉬가가'를 동시에 두 단어를 함께 다 쓰고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범죄하고, 실수로 범죄하는 것을 다 함께 말입니다. 그러면 공통적으로 무엇입니까? 우리 모든 사람은 의도하지 않게 죄를 짓기도 하고, 실수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의 허물을 들추고 "넌 그건 잘못된 거야,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나를 봐"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다 오십보 백보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자, 이것 기억나십니까? 이해가 되시지요?

3. 의도하지 않은 죄의 예

자, 그러면 예가 필요한데요. 성경에 보면, 알고 있습니다. 이게 죄인 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 살인은 죄입니다. 살인은 죄인데 의도하지 않게 사람을 죽일 때가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게. 우리나라 형법에도 사람을 죽였는데 여기에 의도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형량이 달라지잖아요. 그렇잖아요. 우발적이냐 아니면 계획적이냐.

그래서 뉴스에 보면 "흉기를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범행을 연습을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이건 거기에 형량이 굉장히 많이 가해지고 더해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욱해서 옆에 있는 무엇을 들고 사람을 때렸는데 죽였다, 물론 살인한 것은 큰 범죄지만 거기에는 정상이 참작되는 범죄입니다. 그런데 친구들끼리 장난치다가 이렇게 살짝 밀었는데 아, 갑자기 그 사람이 넘어져 가지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정말 의도성과 고의성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성경에서 예를 들어 놓았습니다.

민수기 35장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제가 읽을게요. "악의가 없이." 중요합니다. "악의가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이 없이." '기회를 엿봄이 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의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저놈 죽여야지' 하고 기회를 엿봄이 없이 "무엇을 던지거나." 그냥 그렇게 그냥 던진 것입니다. "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던져서 죽였을 때는 이는 악의도 없고 해하려 한 것도 아닌즉."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려서 하나님과 화해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살펴볼 속건제는 이럴 경우에 인간과 인간이 해결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속죄제는 하나님과의 해결입니다. 사람과 해결한 뒤에 또 남아 있습니다. 그건 속건제에서 또 다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정상참작을 너에게 해 주마 하는 뜻입니다. 자, 이것 이해되시지요?

또 두 번째, 아까 '실수로', '비쉬가가'라는 말을 썼는데, 이건 내가 무지해서 잘 몰라서라는 뜻입니다. 잘 몰라서, 못 배워 가지고, 잘 그것을 깨닫지 못해 가지고. 그것이 사무엘상에 나오는데요. 사무엘상 14장 32절에서 34절, 일단 제가 읽어볼게요. "백성이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으니." 여기서 여러분 걸리는 게 무엇입니까? 피째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째 먹으라 그랬습니까? 먹지 말라 그랬습니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건 지금 사울 왕 때에 백성들이 전쟁하다가 전리품을 잡아다가 피째 먹어버린 것입니다.

"자,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여기서 '믿음 없이 행하였다'라는 말은요, 나중에 우리가 히브리어를 찾아보면 그런 뜻입니다. '실수로 했다, 모르겠다, 이 백성이 안 가르쳐서 그렇다.'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먹되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함에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은지라."

이것 이해되시지요? 그러니까 몰라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믿음 없이 하였다'는 말은 실수로, 비쉬가가,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다 받아주시고 용납하고 이해하신다는 뜻입니다.

3-1. 고의로 범한 죄

그런데 만약 여기서 이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기지 않으세요? 고의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알고 하고, 고의로 하고, 못된 마음을 먹고, 그래 놓고 발뺌하는 것입니다. "나 몰랐어."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재판해야 되는 것이지요. 거기에서 이제 고의성 여부를 가리는 것이지요.

고의로 할 경우에 어떻게 하느냐, 민수기 15장 30절에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이게 중요하지요. 의도성을 가지고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고의로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을 비방한다 그랬습니다. 왜요? 이미 성경 말씀에 고의로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율법에 말입니다.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이건 속죄제 가지고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의도성을 가지고 사람을 죽였다, 의도성을 가지고 도둑질을 했다, 그러면 이건 속죄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3-2.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깨닫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약의 예수님은 인간의 형편과 속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약의 하나님은 나쁘고 무섭고 다가가기 어렵고, 신약의 예수님은 내 마음 다 알아줄 것 같고. 구약과 신약에 건너가지 못할 벽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오해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이나 신약의 하나님이 같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속죄제 계명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이지요. 마음의 중심. 죄를 지을 때도 의도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의도하지 않고 했느냐 실수로 했느냐, 아니면 의도성을 갖추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했느냐, 거기에 따라서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의 범위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가야 됩니까? 마음의 중심을 보시잖아요. 판사는 속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 중심을 보십니까? 내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서 중심이 똑바르게 서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의도하고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나님은 그것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이것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속죄제는 의도하지 않고, 곧 율법을 몰라서, 성경을 몰라서, 내가 배우지 못해서 실수로 한 것, 그것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뜻입니다. 자, 여기까지 이해가 되시지요?

4. 속죄제의 네 계층

자, 그 다음 이제 아까 우리가 속죄제를 드리는 네 부류를 봤지요. 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 이렇게 봤지요.

4-1. 제사장의 속죄제

첫 번째 제사장이 드리는 속죄제를 보겠습니다. 레위기 4장 3절에서 12절. 제사장, 여기서는 어떤 제사장을 말합니까?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 그랬는데,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은 대제사장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전 백성의 대표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인 대통령입니다. 군사적인 대통령은 왕이지요. 근데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대통령은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이 영적인 최고 권위자입니다.

그 대제사장이 부지중에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됩니까?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율법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제물은 무엇입니까? 수송아지입니다. 왜 제사장의 속죄 제물은 수송아지입니까? 수송아지가 일단 제일 비싸고 제일 큽니다. 왜 제일 비싸고 제일 큰 것을 드립니까? 제사장의 죄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향력이 있습니까? 제사장이 죄를 지어버리면 백성들에게 그 죄가 미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 담임목사가 범죄해서 뉴스에 나오면 어떻습니까? 그 죄가 그 개인의 죄로만 끝납니까? 그 교단 전체의 죄가 됩니다. 그 교회 전체의 죄가 됩니다. 개신교 전체의 죄가 됩니다. 불신자들이 보기에 그래 보이잖아요. 어느 큰 교회 담임목사가 범죄했다고 하면 그 교회 교인들도 다 사람들 눈치 보고 막 그렇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영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속죄제 제물은 수송아지입니다.

여기서 절차를 한번 보면요. 제사장이 수송아지를 끌고 들어옵니다. 어디로요? 성막 안으로. 성막 회막 앞에 번제단 있지요. 번제단 앞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제물의 머리에 무엇을 합니까? 안수합니다. 안수하면 무엇이 전이됩니까? 제사장의 죄가 수송아지에게로 전이되지요. 그리고 나서 수송아지를 잡습니다. 피가 흐릅니다. 그 피를 가지고 어디로 갑니까? 성소 안에 있는 등잔대와 떡상, 그 맞은편에 분향단이 있지요. 분향단에 있는 그 뿔에 피를 바릅니다. 그리고 휘장에다가 피를 일곱 번 뿌립니다. 이렇게 해서 속죄제의 핵심적인 것을 마칩니다.

그리고 나서 고기는 어떻게 합니까? 번제는 다 불살랐습니다. 소제는 기념물만 불사르고 제사장 먹었지요. 화목제는 기념물도 불사르고 제사장과 예배자가 함께 먹었지요. 속죄제에서 제사장의 속죄제 고기는 누가 먹습니까? 아무도 못 먹습니다. 왜요? 자기 죄 때문에 죽은 제물이기 때문에 못 먹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전부 다 불사릅니다. 어디에서요? 진영 밖에서. 진영 밖에서 전부 다 불사릅니다.

여기서 6장을 한번 보시면요. 6장 29절 "제사장 중 모든 남자는 그것을 먹을지니 이는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30절, "그러나 성소에 속하려고 회막에 피를 가져온 속죄제물의 고기는 먹지 못할지니 불사를지니라." 회막 안에 피를 가지고 간다? 이건 제사장의 속죄제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속죄제 고기는 먹지 못하고 진영 밖에서 다 불사릅니다.

그러면 진영 밖에 불사르는 곳이 어떤 곳인지 4장 12절에 보겠습니다. "그 수송아지의 나머지 전체 곧 그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을 가죽과 함께 재가 버려진 곳 진 영 밖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를지니 곧 재 버린 곳에서 사를 것이니라." 그 장소가 정결한 곳이라 그랬습니다.

성 밖은 정결한 곳입니까 부정한 곳입니까? 그 당시 유대인의 관습에서는 성 밖은 부정한 곳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 밖을 정결한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따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4-2. 온 회중의 속죄제

두 번째로 온 회중의 속죄제를 보겠습니다. 13절에서 21절입니다. 온 회중이 다 합심해서 죄를 지을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 우리가 출애굽기를 다 공부했는데요, 출애굽기 32장에 이런 예가 나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있는데 산 아래 백성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만든 것입니다. 한두 명 만든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전체가 합심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 지은 것입니다.

온 회중의 속죄 제물은 무엇입니까? 또 수송아지입니다. 왜요? 죄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안수는 누가 합니까? 온 회중이 다 할 수 있습니까? 온 회중이 다 할 수 없으니 회중의 장로들이 합니다. 회중을 대표해서 장로가 안수합니다. 온 회중의 죄가 장로의 손을 통해서 수송아지에게 전이되고, 그 수송아지가 도살됩니다. 피는 어디에 뿌립니까? 똑같습니다. 분향단의 뿔에 바르고 휘장에 일곱 번 뿌립니다. 그리고 고기는 어떻게 합니까? 진영 밖에서 다 불사릅니다.

4-3. 족장의 속죄제

세 번째 족장의 속죄제입니다. 22절에서 26절. 족장은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행정 단위의 리더입니다. 혹은 집안의 어른입니다. 족장의 속죄 제물은 무엇입니까? 순 수컷 염소입니다. 제사장, 온 회중보다 급이 낮습니다. 왜 수송아지가 아닙니까? 족장의 죄는 온 백성에게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문에 미칩니다. 자기 행정 단위에 미칩니다. 그래서 수컷 염소입니다. 똑같이 안수하고 잡고, 피는 어디에 바릅니까? 성소 안에 분향단이 아닙니다. 번제단의 뿔에 바릅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번제단의 뿔. 성소 안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기는 어떻게 합니까? 여기가 또 다릅니다.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습니다. 6장 25절에서 26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 제물을 잡을 것이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요." 여기서 거룩한 곳이란 성막 안입니다. 집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성막 안의 거룩한 곳에서 제사장이 먹습니다.

4-4. 평민의 속죄제

네 번째 평민의 속죄제입니다. 27절에서 35절. 평민이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속죄제를 드리는가 하면, 4장 27절을 보시면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면." '한 사람'이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네페쉬(נֶפֶשׁ)'입니다. 네페쉬가 무엇입니까? 영혼입니다. 한 영혼. 평민 중에 한 영혼이. 28절 "그가 깨닫게 되거든." 깨닫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의 범한 죄를 인하여 예물을 드리되 흠 없는 암컷 염소를 끌어다가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암컷 염소.

그러면 족장의 속죄제 제물은 수컷 염소, 평민의 속죄제 제물은 암컷 염소입니다. 암컷 염소는 수컷 염소보다 급이 낮습니다. 왜요? 평민의 죄는 자기 자신에게만 미칩니다. 자기 자신 이상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암컷 염소입니다.

여기서 '깨닫게 되거든'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제사장이 깨달을 때가 있고 온 회중이 깨달을 때가 있고 족장도 깨달을 때가 있고 평민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에서 공통적으로 다 나옵니다. 우리가 무지해서, 의도하지 않아서 죄를 짓는데 '깨달았을 때'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깨닫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속죄제를 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닫습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을 연구해서입니다. 내가 하나님 말씀을 보다 보면 아, 이것이 죄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둘째, 누군가 알려줘서입니다. 예언자가 알려주든, 왕이 알려주든, 누가 알려줘서 '아, 이것이 잘못되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배웁니까? 목회자는, 제사장은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연구해야 자기 죄를 깨닫고, 말씀을 연구해야 백성들의 죄를 깨닫고 백성들에게 알려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않는 제사장은 어떻습니까? 자기도 깨닫지 못하고 백성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말씀 연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혹은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스스로 깨우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은혜받은 자만이 드릴 수 있는 예배입니다. 자, 제사장, 회중, 족장, 평민 공통점이 있지요. 깨우쳐야 속죄를 합니다. 그렇잖아요. 속죄 자체가 인식이 없다, 이런 사람 얼마나 많았을까요. 깨우치지 않으니까 돌이키지 않습니다. 돌이킨다는 것 자체가 이 사람들에게는 훌륭한 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돌이켰기 때문에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계속해서 자기 인생을 반추해 보았기 때문에 마음에 자꾸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훌륭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자기 회개하고 자기 죄를 내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분들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음이 나오는 것이 훌륭한 것입니다. 나를 더 알아보니까 너무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죄인입니다. 자꾸 나를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회개도 잘 하지 않으면 "별로 나는 지은 죄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그때부터 심각한 것입니다.

"사실 흠 없는 암컷 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똑같습니다. 족장이 드리는 예배나 평민이 드리는 예배나 똑같습니다. 족장이나 평민이나 똑같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족장이나 평민이나, 나이가 많아서 천부장이 되거나 일반 평민이거나,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것은 다 똑같다는 뜻입니다. 자, 순 염소, 암컷 염소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자, 그 다음 이제 좀 정리가 되시지요? 속죄제가. 자, 속죄제를 드리는 네 계층, 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 차이는 제물을 먹고 안 먹고의 차이, 또 회막 안에서 분향단에 피를 바르고 아니면 회막 밖 번제단에 피를 바르고 바르지 않고의 차이. 이해되시지요? 이것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5. 속죄제 특수 규정

그다음 속죄제 특수 규정을 보시겠습니다. 자, 특수 규정이란 예외 규정이라는 뜻입니다. 자, 볼까요?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가, 레위기 5장 1절에서 4절에 집중적으로 나오는데요.

5-1. 법정에서의 위증

1절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저주하는 소리.' 이게 무엇이냐면요, 이 원문을 이해하기에는 '법정에서'라는 이야기입니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어 선서를 나왔습니다. 여러분 법원에서 재판하는데 증인으로 나가본 적이 있으세요? 그런 경험 있으신 분 계세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인데 저는 한 번도 한 적이 없거든요. 살면서 그런 일이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증인으로 나가면 증인 선서 하잖아요. TV에서 보셨지 않아요? 그런데 사실 그 자리가 불편하고 힘든 자리입니다. 범죄자가 저기 앉아 있는데 내가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면 나중에 해코지당할까 봐 걱정되고 막 심장이 방망이질 치고 막 그런 것입니다. 마음이.

그런데 '저주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 말은 법정에서 재판하는 사람이 "이것이 사실이 아닐 때는 당신은 저주받는다"는 얘기입니다. 그 선서입니다. 자, 그런 얘기를 듣고 내가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안전이 걱정이 되고 내 안전이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게 자꾸 양심에 걸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자,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아까 속죄제 일반 규정에서 보면 사람을 밀었는데, 그냥 장난치다가 밀었는데 그 사람이 죽어버렸습니다. 살인은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줄 모르고 민 것입니다. 또 모르고 그랬습니다. 배우지 못해서. 그런데 이건 알고 범한 것입니다. 지금의 위증은 알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나님이 "너의 형편과 처지를 다 이해하마" 하시고 속죄제를 드리면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버리지 않고, 법정에서 일어나는 위증이나 혹은 입 다물고 있었던 죄에 대해서 나중에 "네가 나에게 나와서 회개하면 받아주마." 얼마나 하나님 좋은 분이십니까? 정상참작을 해주시니까요. 그런 예외 규정입니다.

5-2. 부정한 것을 만진 경우

두 번째 2절 보시면,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3절,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즉 죽은 짐승의 사체나 사람의 시체를 내가 모르고 만졌을 때 그때 속죄제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또 이 부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 어떤 병에 걸렸거나 전염병에 걸려 있거나, 혹은 생리 중인 여성과 함께 부지중에 몸을 스쳤을 경우에 그때도, 혹은 유출병이 있는 여성, 이럴 경우에도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건 죄하고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때 속죄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3. 함부로 맹세한 경우

4절 보시면,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에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이것,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 기억나십니까? "맹세하지 말라." 맹세하면 나중에 돌아서서 반드시 속죄제를 드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맹세는 내가 지키지 못할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 볼까요? 마태복음 5장 34절에서 37절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맹세하지 마라. 사람은 맹세할 때 본성상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해야 합니다. 가장 권위 있는 분의 이름을 빌어와서 맹세합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십계명의 제3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이 죄를 범하게 되기 쉬우니까 그래서 맹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맹세한 자는 무조건 속죄제를 드려라. 속죄제의 예외 규정입니다.

5-4. 가난한 자를 위한 규정

속죄 제물은 무엇으로 드립니까? 아까 우리가 살펴봤지요. 제사장은 수송아지, 온 회중도 수송아지, 그리고 족장은 순 수컷 염소, 그리고 평민은 암컷 염소였지요. 그리고 또 나옵니다. 또 속죄제는 그것뿐만이 아니고요, 5장 6절에 보니까 양 떼의 암컷이건 어린 양이나 염소 중에도 해도 되고요. 7절에 보니까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하나는 속죄 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나가도 됩니다. 그것이 형편상 되지 않으면 양이나 염소나 이것 안 되면 말입니다. 그런데 온 회중은, 이스라엘 전 회중이면 송아지를 가져와야 되겠지요. 전 회중이 비둘기 두 마리 가지고 되겠습니까? 또 제사장도 그 죄가 백성에게 영향을 줬기 때문에 제사장도 당연히 수송아지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죄가 엄중하고 큰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속죄제 규정입니다.

그런데 더 있습니다. 5장 11절에 보니까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더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 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의 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고운 가루. 밀이든 쌀이든 뭐 어떤 것이든, 그것을 특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 한 에바가 22리터입니다. 십분의 일 에바, 2.2리터, 한 되가 1.8리터입니다. 한 되 조금 넘는 양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속죄하면 되더라.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요,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여러분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배웠습니까? 피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피가 죄를 속합니다. 지금까지는 다 피였습니다. 산비둘기든 집비둘기든 소든 양이든 염소든. 그런데 하나님은 아주 가난한 사람이 산비둘기 집비둘기도 못 가져올 것 같으면 고운 가루 가지고 와라. 가루에 피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이게 말씀하는 것이 무엇이냐, 피 자체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속죄는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는데, 죄 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시피를 보면 죄 사해주고, 너무 가난하고 힘들어서 피를 가지고 오지 못할 정도인데 가루 가져오면 안 됩니까? "넌 안 돼, 넌 죄 용서 못 받아." 이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죄의 주체는 누구이십니까? 예물을 가지고 나온 인간에게 사죄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가루를 가지고 나오거나 피를 가지고 나오거나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는 분이시지 사람이 거기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5. 속죄 제물의 처리

그다음 속죄 제물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아까 우리가 읽어봤지요. 아까 우리가 이건 읽지 않았는데 6장 26절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자, 제사장의 속죄 제물 고기는 먹을 수 있습니까? 못 먹지요. 온 회중의 속죄 제물도 못 먹습니다. 족장의 속죄 제물, 평민의 속죄 제물만 먹을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요?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니." 집에 못 가져갑니다. 우리 소제할 때 공부했지요. 그렇지요. 자기 마음대로 드린 예물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6장 29절에서 30절도 같은 얘기입니다.

6. 속죄제의 의미와 적용

자, 이제 속죄제 의미와 적용.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인 신약과의 연결을 말씀드릴 텐데, 사함과 회복을 공부했고요, 속죄제는 사해 주시는 것이지요. 내가 죄를 지었으니까 사해 주시고, 살려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지요. 정결하게 해주시는 것이지요. 나도 정결하게 해주시고, 죄 있는 상태에서 예배 드리면 분향단과 번제단도 하나님이 정결하게 해주십니다.

히브리서 13장 10절에서 13절 보시면요. 자, 제가 읽을게요.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랬지요. 피는 성전 안에 가지고 들어갔지요. 분향단에 바르지요. 육체는 진영 밖에서 불사르지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는지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게 무슨 말씀이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곳이 골고다 언덕입니다. 골고다 언덕이 성 안입니까 성 밖입니까? 성 밖입니다. 예루살렘 성 밖.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신 성 밖, 원래는 성 밖은 나병 환자가 살고요, 병자들이 살고,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이 살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더러운 것이라 했습니다. 가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런데 그곳을 아까 우리가 읽었지요. '정결한 곳'이라 그랬습니다. 왜 정결한 곳이라 그랬을까요? 레위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밖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성 밖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성 밖의 상징적인 의미는 소외된 곳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항상 들린 시골 마을이 어디입니까? 베다니입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성 밖입니다. 거기에 나병 환자 시몬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거기에 나사로의 두 누이들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마리아도 성 밖입니다. 갈릴리도 성 밖입니다. 예루살렘에는 헤롯도 있었고요. 예루살렘에는 율법학자, 서기관들, 잘난 사람들 다 있었습니다. 로마의 총독도 잘난 사람들 다 성 안에 살았습니다. 성 밖에는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이런 자들만 살았습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부르주아'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들어보셨지요. 부르주아. 부르주아라는 말의 원뜻은 '성 안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 안에 있는 사람들, 부르주아.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삽니다. 도시 사람들 잘 먹고 잘 삽니다. 성 밖에 사람들은 어떻게 삽니까? 힘들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 밖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교회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그랬지요. "우리도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그랬습니다. 오늘 교회가 어디를 지향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손 내밀고 지향해야 될 곳이 성 밖이어야 합니다. 소외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그런데 오늘 기독교가 기득권의 권리만 너무 대변하고 있고, 가진 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기독교가 되어 있고, 오늘 기독교가 너무 이상하게 굳어지고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건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와 전혀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어려운 환경 때문에 힘든 성 밖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분들에게 나아가서 손을 내밀어야 됩니다. 자꾸 성 안에 있는 사람들, 잘난 사람, 가진 사람, 그런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다 보니까 오늘 교회가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 아닙니까?

옛날 우리 교회는 어땠습니까? 옛날 한국교회 초기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백정의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백정들이 와서 예배드렸습니다. 여인들의 교회였습니다. 여자들 사람 취급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또 아이들의 교회였습니다. 여자, 아이들, 다 성 밖 사람들입니다. 전부 다 성 안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자들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요즘 이 시대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항상 기억하고 계셔야 됩니다. 그곳을 레위기에서는 '정결한 곳'이라 그랬기 때문에, '정결하다'는 것으로, 왜 정결한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서 죽으시고 예수의 피가 흘렀기 때문이지요. 예수의 피가 흐른 곳은 다 정결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늘 속죄제가 그 의미를 우리에게 아주 강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꼭 기억하시고 속죄제 의미를 마음에 잘 새기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속죄제의 정신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누구나 죄 지을 수 있고 누구나 죄 앞에서 무력하고 연약함을 깨닫습니다. 말씀을 연구하지 않은 제사장처럼 되지 않도록 주여 도우시고, 항상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말씀을 깨닫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문 밖으로 나아가신 것처럼, 성 밖에서 피를 흘려 주셔서 그곳이 정결한 곳이 되었다 하셨으니, 우리가 그곳을 더럽다 하지 않고 우리가 그곳을 정결하다 하고 성 밖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가난한 자, 병든 자, 이 시대 소외된 자들의 손 잡아 주는 교회 되도록 도우시고, 이 시대 기득권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썩어빠진 교회가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이 시대 모든 연약한 자와 함께하는 이 시대 모든 교회가 되도록 주께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의 정신이 다시 불붙듯 일어나도록 도우시고, 오늘 이 시대 교회가 구약의 속죄제 정신을 회복해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