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속건제 / 전체녹취

레위기 5 - 속건제 (레 5:14-6:7, 7:1-10)

레위기 5장 15절과 16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오늘은 속건제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레위기에서 벌써 다섯 번째 제사에 대한 규정을 보는데, 첫째가 번제였고 둘째가 소제, 셋째가 화목제, 넷째가 속죄제였습니다. 각각 고유한 특징이 있고 규정이 있고 방법이 있으며 오늘에 적용할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속건제에 대해서 공부하는데, 속건제가 어떤 제사인지 그리고 무엇을 그 제사의 핵심으로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레위기 제사 규정은 사실 우리가 생각할 때 옛날 옛적 것이니까, 그 옛날 모세에게 주신 율법일 뿐이고 오늘날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고리타분하고 별로 적용할 가치가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레위기는 변함없는 하나님 말씀이요 살아 있는 말씀이고, 여전히 오늘도 우리에게 꼭 귀감이 되고 적용해 보아야 마땅한 말씀입니다.

1. 속건제의 의미

속건제라고 할 때 '건(愆)' 자가 중요한데, 건 자가 한자로 '허물 건' 자입니다. 허물을 속하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허물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허물이라고 말하면 사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사회적 풍조와 분위기를 따라 살다 보니, 나도 돈 벌어 먹고 살아야 하다 보니, 이렇게 악한 세상에 발을 딛고 살다 보니 살아가면서 켜켜이 쌓여지는 것을 허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 보면 '부지중에 범죄했다'는 말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 그런 인생의 허물을 속하는 예배를 여기서 속건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길트 오퍼링(guilt offering)'이라고 말하고 있고,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아샴(אָשָׁ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샴은 '배상' 혹은 '보상'이라는 뜻인데, 사실 속건제가 배상이다, 보상이다 하는 것이 의미가 굉장히 있습니다. 무엇을 보상할 것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보상할 것이냐, 또 누구에게 보상해 줄 것이냐, 이게 중요합니다. 보상을 한다고 하면 보상하는 사람이 있고 보상을 받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뭔가 내가 피해를 줬기 때문에 보상을 해야 되는 것이고, 나 때문에 피해를 입은 분이 보상을 받아야 됩니다. 무엇으로 보상할 것이냐, 그리고 왜 보상해 줘야 되느냐 하는 내용을 여기에 하나하나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보상해야 되는 대상이 두 가지 방향인데, 하나는 하나님께 대해서 보상을 해드려야 됩니다. 또 하나는 이웃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됩니다. 이웃에 대해서 보상한다는 말은 사실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웃과의 관계에서 잘못을 범할 수가 있으니까 이웃에게 보상할 수 있고 또 해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우리가 보상을 해야 된다고 하면 나와 하나님을 동등한 관계로 보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고, 하나님은 그 보상 받아 가지고, 코 묻은 돈 그 해물 받아 가지고 도대체 어디에 쓰시려고 그걸 보상 받으려고 하시는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결론을 얘기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에 상처를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으시고, 하나님도 우리 죄 때문에 영향을 받으시고 심하게 근심하시고 스트레스를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너 때문에 밤잠 자지 못하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데, 너 이거 나한테 보상해라" 하시는 것이 여기 속건제입니다. 사실 이런 하나님은 굉장히 인격적이지 않습니까. 굉장히 인격적이고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상하면 네가 지금까지 지은 허물 내가 다 기억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속건제의 세 가지 경우

그래서 오늘 이 본문에서는 그러면 언제 우리가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지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건제 일반 규정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패턴이 있었습니다. 일반 규정이 있고 또 특수 규정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반 규정이 중요합니다. 특수 규정은 예외 법칙이니까 일반 규정이 무척 중요합니다. 속건제를 드리는 것은 세 가지 경우에 드립니다.

첫째는 레위기 5장 15절에 보니까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하였습니다. 성물에 대해서 범죄했을 때입니다. 이 성물이 무엇인가는 좀 이따가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성물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옮기면 거룩한 예물입니다. 거룩한 예물에 대해서 부지중에 범죄했을 때, 이때 우리가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려야 됩니다.

둘째는 레위기 5장 17절 그 아래를 보면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라고 했습니다.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했을 때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맺은 약속이 계명입니다. 그런데 그 계명을 내가 부지중에 범했습니다. 약속을 깬 것입니다.

셋째는 레위기 6장 2절을 보시면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여기까지는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를 보십시오. 그 뒤가 중요합니다.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했는데 누구를 속였습니까. 이웃을 속인 것입니다. 이것은 좀 이따가 또 설명을 드리겠는데, 셋째로 속건제를 드릴 경우는 이웃에 대해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입니다. 이웃과 하나님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2-1. 속죄제와 속건제의 차이

그런데 여기서 속죄제하고 속건제는 무엇이 차이가 있는가 하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원어를 가지고 제가 설명을 해야 되는데, 다시 5장 15절을 보십시오. "부지중에 범죄하였다"고 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속죄제를 했는데 하타(חָטָא) 비쉐가가(בִּשְׁגָגָה)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타는 의도하지 않게 범죄하는 것입니다. 비쉐가가는 실수로, 실수로 범죄하는 것입니다. 잘 몰라서, 내가 무식해서, 율법을 몰라서, 못 배워서, 깨닫지 못해서, 내가 미처 그걸 기억하지 못해서, 이것이 비쉐가가이고, 하타는 의도하지 않게 범죄한 것입니다. 그것은 속죄제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속건제는 하타 비쉐가가와 더불어 마알(מָעַל)이라는 동사가 함께 씁니다. 마알이라는 동사의 뜻은 '신뢰를 깨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신뢰를 깨다라는 뜻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깨다라는 뜻도 됩니다. 하타 비쉐가가와 마알이 함께 쓰일 때는 속건제를 드려야 되는 경우입니다. 하타 비쉐가가는 의도하지 않게 실수로 죄를 범하는 것인데, 마알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신뢰가 깨지고 그것 때문에 나와 이웃과의 신뢰가 깨질 때, 그때는 속건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2. 성물에 대한 범죄

이제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갑니다. 속건제 세 가지 경우 중 첫째가 뭐라 그랬습니까. 성물에 대해서 부지중에 범죄했을 때입니다. 그러면 성물이 무엇입니까. 성물에 대하여 범죄한 속건제 규정을 보겠습니다. 레위기 5장 15절입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

그러면 성물이 무엇이냐 하면, 성물은 마땅히 여호와께 드려야 될 예물이 성물입니다. 마땅히 여호와께 드려야 될 성물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구약적 의미에서 보면, 출애굽기 13장 10-12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은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처음 난 것은 다 하나님 것입니다.

이 규정을 하나님이 언제 말씀하셨느냐 하면 출애굽 직전에 말씀하셨습니다. 열 번째 재앙이 무슨 재앙입니까. 장자 죽음입니다. 이집트에서 장자가 다 죽었습니다. 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장자 죽음이 없었습니다. 피를 안 발랐다면 장자가 죽었겠지요. 그 말은 장자는 다 하나님 것이라는 뜻입니다. 짐승의 첫 것이나 사람의 첫 것이나 다 하나님 것인데, 지금 죽지 않고 너희 것이 되어서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 중에 짐승의 첫 것이나 사람의 첫 것은 다 나에게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기 율법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목축을 합니다. 양을 기릅니다. 양이 첫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그 첫 새끼는 누구에게 가져와야 됩니까.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소가 첫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가져와야 됩니다. 이것이 마땅히 드려야 될 성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지금 짐승만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곡식의 처음 익은 것도 하나님께 가져 나와야 됩니다. 레위기 23장 10절 그리고 14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이란 뜻이지요,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4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 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먼저 먹지 말라 했습니다. 어떻게든지 먹지 말고, 곡식의 먹지 말고, 생 것도 먹지 말라 했습니다.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규정입니다. 그러면 첫 번째 것은 짐승이든지 곡식이든지 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성물 아닙니까. 십일조, 하나님께 갖고 와서 드려야 될 거룩한 성물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을 마땅히 드릴 성물을 드리지 않으면, 그런데 이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부지중에 범죄한다고 했습니다.

부지중에 범죄한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양 열 마리 중에 한 마리를 드리는 것이요, 눈에 보이니까 부지중이 아닙니다. 양이 500마리, 1000마리가 됩니다. 엄청나게 많은 양들 중에 십일조를 갖고 드리는 것, 그들 중에 처음 새끼 낳은 것 드리는 것, 이것은 부지중에 내가 잊어버릴 수도 있고 빼먹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기억났을 때 혹은 마음이 불편할 때, 여기 속죄제하고 속건제하고 차이 중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봤을 때 속죄제는 '누가 깨우쳐 주거든'이라는 말이 계속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누가 깨우쳐 준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스스로 깨우쳐야 됩니다.

내가 스스로라는 말 속에는 어떤 말이 내포되어 있느냐 하면, 너희 마음에 양심의 가책이 되거든이란 뜻입니다. 마음 중심에 '아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것이면서도 계산하고 따질 때가 있습니다. 세전으로 할까, 세후로 할까, 이것 어떻게 하면 조금 덜 드릴까, 적을 때는 상관없는데 많아지면 마음에 막 갈등이 되고, 그때부터 망설여지게 되고, 오그라든 손이 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다 어찌어찌해서 드렸습니다. 드리긴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마음이 찔림이 오고 가책이 옵니다.

그래서 여기 부지중에 범죄했다는 말은, 시간이 지나서 누가 나를 깨우쳐 주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마음의 찔림과 가책이 와서 그런 마음이 생기거든 속건제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 앞에 드릴 때 너무 많은 규정이나 절차나, 오늘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이 절차를 따진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그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절차를 따지지 않습니다. 사실 오히려 더 마음의 중심이나 상황을 더 폭넓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냥 드립니다. 당연히 드려야 될 성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양심의 가책도 찔림도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앞에 십일조 드릴 때나 감사의 물질을 드릴 때나 뭔가 자꾸 드릴 때, 그때 아까운 마음이 들고 또 주의하지 못해서 부주의해서 잘 못 챙긴 것, 그런 것들 돌이켜서 마음이 찔리면 속건제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과 해결하라는 뜻입니다. 그 불편한 상태 그대로 살지 말고 해결하고 넘어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굉장히 귀한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드려야 되느냐, 어떻게 드려야 되느냐 하면, 여기 보면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했습니다. 이 율법을 받는 사람 대표로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모세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그런데 이것은 모세에게 전적으로 위임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것은 그 당시에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인데, 시세대로 정한 바대로라는 뜻입니다. 시세대로 정한 바대로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흠 없는 숫양을 드리는데요, 이것을 고를 때도 우리 마음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최상품 숫양을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여기에도 자발성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시세대로, 그 당시 시세대로라고 하면 드리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맡겨 둔 것입니다. 흠 없는 숫양을 드리는데 우리 집에 있는 흠 없는 숫양 중에도 자기 나름대로 등급이 있을 것 아닙니까. 좀 덜 좋은 것이 있고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은 정말 드리는 사람이 전심으로 드리면 가장 좋은 것을 데려와서 드릴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하고 드리는데도 양 중에 가장 등급 낮은 양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에 드리는 사람의 자발성을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흠 없는 숫양을 성소의 세겔대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드리라 했습니다. 양 한 마리 드린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니까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또 16절을 보면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해야 됩니다. 아까 제가 속건제는 보상이라고 했습니다. 배상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줘야 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것을 갖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전의 제반 사무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만 원을 떼먹었습니다. 이전에 가져와야 되는 게 양 만 원어치가 왔습니다. 그러면 그것 못 드렸습니다. 떼먹은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 양 한 마리 하나님께 드리고 그 다음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12,000원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오분의 일을 더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그 속건제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러면 원래 정상적으로 드렸으면 그냥 만 원으로 끝날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에 2천 원 더 붙여서 나중에 드리고 양도 한 마리 또 드려야 되고, 이제 이런 불편함과 이런 손해를 감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건제는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라는 말씀입니다.

2-3. 알고 지은 죄의 경우

그런데 부지중에 범죄한 것은 이렇게 해결할 수 있는데, 알고 지은 죄는 어떻게 됩니까. 알고 떼먹은 것, 완전히 도둑놈 심보로 알고 떼먹은 것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속죄제도 부지중에 범죄한 것은 하나님이 속죄제를 받으시고 해결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범죄한 것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아간이 그랬습니다. 여호수아 7장 1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헤렘 명령이라 했습니다. 다 태워서 하나님 창고에 드리라고 했는데 여리고성 전체에서 아간이 원래 도둑질 했습니다. 알고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몇 번이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번 전투에서는 어떤 것이든지 다 하나님의 창고에 드려라, 너희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알고도 아간이 숨겼습니다. 자기 장막 밑에 숨겨 두었습니다. 아간이 어떻게 됩니까. 탄로 나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것은 속건제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이 알면 아는 대로 행동할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많이 알면서 우리가 비쉐가가, 실수로 율법을 몰라서, 못 배워서 그런 것은 용납이 되고 이해가 되는데, 배우고 알았으면 그 다음은 실천해야 그것이 나한테 복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배우고 깨달았는데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 다음은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2-4. 계명을 어긴 자

둘째, 계명을 어긴 자에 대해 보겠습니다. 레위기 5장 17절,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 있어 벌을 당할 것이니" 계명을 어겼습니다. 이것은 어떤 물건을 떼먹거나 돈을 떼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에 오분의 일을 더해서 주는 배상 규정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것은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께 속건제물을 가지고 나와서 속죄를 드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5장 18-19절, "그는 네가 지정한 값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 이해가 되시지요. 하나님은 참 합리적인 분이십니다. 이것은 너하고 나하고의 문제이지 이웃과의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너하고 나는 율법을 통해서 약속하고 맺은 언약이 있는데 너는 왜 그것 어기고 까먹고 사느냐, 난 그것 때문에 불편해 죽겠는데, 널 볼 때마다 마음이 상하고 기분이 나쁜데 넌 왜 모른 척하고 살아가느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상처를 누가 받습니까. 하나님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불쾌하시고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친구와, 아 인간관계 가운데 사는데 그 친구가 나를 기분 나쁘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를 기분 나쁘게 한 것도 자기는 까맣게 모릅니다. 그러면 약 오르지 않습니까. 차라리 이 친구가 자기 잘못을 알고 날 피해 다니기라도 하면 '아, 저 친구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구나' 이렇게 알 텐데, 그런데 그 친구가 나에게 피해를 줬습니다. 날 기분 나쁘게 하고 약 오르게 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과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혀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조금조금씩 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2천 원, 1만 2천 원, 나중에 줄게 그래 놓고 감감무소식입니다. 그것 가지고 치사하게 계속 달라고 따라다닐 수도 없고, 그런데 그 친구는 그것 뭐 친구 사이에 빌려 줄 수도 있고 그냥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불쾌하고 기분 나쁘고 약이 오르는데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뭘 그런 것 가지고, 통 크신 하나님이 기분 나빠하실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맺은 계명, 이것은 약속인데 너는 그것을 부지중에 기억하지 못하고 모르고 있다가 네 맘대로 행해서 깨뜨리느냐 그것 기분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크신 분으로만 압니다. 하나님을 크고 통 크신 분으로 알지요. 크신 분이시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디테일과 스케일을 함께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스케일이 크신데 아주 섬세하셔서 디테일도 포기하지 않고 갖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은 계명 중의 하나를 어겨도 속건제 드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한테 배상해라, 나도 그것 때문에 불쾌하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속건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의미는 어떤 말씀입니까. 내가 부지중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약속을 나 마음대로 깨뜨리고 그리고 나의 멋대로 기분 좋게 행복하게 그냥 희희덕거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기를 잡고 돌아봐야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자꾸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매일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고 나는 내 직무를 다하고 있는지, 말씀대로 살고 있는지, 그래서 하나님께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배상을 드려야 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그렇게 안 하겠습니다' 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래서 매일 우리가 경건 생활하고 기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고 필요한 것 아닙니까.

할 일 없이 매일 경건의 시간 갖고, 할 일 없이 매일 새벽기도 하고 매일 성경 보고 기도 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부지중에 우리가 허물이 쌓이고 쌓이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매일 돌아보셔야 됩니다. 매 순간 자신을 돌아보셔야 됩니다. 속건제 정신은 이렇게 율법에도 우리에게 지금도 녹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2-5. 이웃과의 관계

속건제 세 번째는 누구와의 관계입니까.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6장 2절,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아까도 이것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했는데요, 그 다음 나오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전당물을 속이는 것 이해되고 도둑질하는 것 이해됩니다. 그리고 착취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착취가 무엇입니까. 정당한 대가를 치불하지 않는 것이 착취입니다.

누군가가 일을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 그러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내가 지불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불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게 범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과 하나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웃과 하나님은 연동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웃에게 잘하는 것이 하나님께 잘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잘하는 것은 곧 이웃에게 잘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에게는 굉장히 잘합니다. 매일 자신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서 자기도 모르게 범죄한 것이 없는지 속건제 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신실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웃과의 관계가 엉망입니다. 정당한 노임을 지불하지 않고 함부로 돈을 떼먹기도 하고, 일 시켜 놓고도 모른 척하기도 하고, 이런 그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디 가서 예수 믿는다고 절대로 말해서는 안 될 분들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공사를 줬습니다. 그러면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 드려야지요. 당연히. 교회 공동체가 후려치고 깎고 날림하고, 그것이 무슨 교회입니까. 교회는 착취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베풀고 나누고 더 많이 주는 공동체입니다.

"남이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속건제를 드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요, 우리의 습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돌이켜야 됩니다.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아, 내가 오늘도 잘못했구나, 그 동네에 푼돈 아끼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게 살았구나, 남의 것을 정당하게 치불하지 못했구나, 그렇게 못했구나' 그것을 돌이키면 즉시 속건제를 드려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6장 4절을 보면, "이렇게 인한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훔친 것이나 착취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잃은 물건을 주운 것이나 그 거짓 맹세한 모든 물건을 돌려보내되 그 본래 물건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보내라" 했습니다. 만 원 떼먹었으면 12,000원 줘야 되고요, 10만 원 떼먹었으면 12만 원 줘야 돼서 돌려보내야 됩니다. "그것이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이것이 드러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들키는 날에는'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여기 드러난다는 말은 양심이 나를 비출 때, 성령께서 나를 비춰서 내가 깨달았을 때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냥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것 다 알고 있으면서 꽁꽁 숨기고 있다가 나한테 피해 본 사람이 법정에 가서 고발해 가지고 그것이 정말 실정법에 위배된 것으로 문제가 생겨서 그때 드러나게 될 때 오분의 일을 주라는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기도해 보고 내 양심과 신앙의 양심과 말씀의 거울에 비춰서 깨달음이 드러나는 그날, 바로 그 시간에 주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 그 속건제물을 여호와께 가져갈지니" 이러고 나서 또 하나님께 가져가야 됩니다. 이중과세입니다. "네가 지정한 값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고 갈 것이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속건제 먼저 드리고 이웃의 문제를 해결해 주라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웃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께 속건제를 드리라 했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배는 수도 없이 많이 드리는데, 이웃과의 관계에서 내가 사고 치고 그 사람 착취하고 그 사람 압제하고 그 사람 가슴 아프게 한 것, 그것 해결하지 않고 예배만 주구장창 드립니다. 그리고 경건한 척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저는 괜찮은 사람 아닙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순서를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한 것, 곧 이웃에게 범죄한 것이다, 그러니 이웃과 관계를 해결하고 그리고 나에게 나오라, 그래야 내가 너의 예배를 진실하게 받아줄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요즘 그리스찬들이, 요즘 이 시대 그리스찬들이 사람들에게, 이 시대 사람들에게 지탄받는 이유, 손가락질 받는 이유가 이것 때문 아닙니까.

예배는 잘 드리는데, 주일날 가방 들고 예배당은 열심히 가는데, 교회 버스가 온 동네를 휩쓸어서 불법 주차하고 사람들 태워 가지고 막 돌아다니는데, 그런데 저 예배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일까, 어떻게 사람들과의 관계가 저 모양일까, 말도 함부로 하고, 금전 거래 엉망이고 신뢰도 없고, 교회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예수쟁이들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속건제 정신을 제대로 이행하면, 속건제 정신을 제대로 살아가면 전도가 저절로 됩니다. 전도는 다른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웃들에게 전하는 것이니까요. 속건제 정신이 제대로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런 정신이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정신과 함께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죄를 다루실 때 회개하면, 우리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회개하면 회개 받으십니다. 그런데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인간이 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죄를 얻지 않았습니까. 다윗이 침상을 눈물로 띄울 만큼 회개 많이 했습니다. 그만큼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 다 받아 주셨습니다. 내가 오늘 네 죄를 사한다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 그것은 져야 됐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의 아기가 죽었습니다. 그 집에서 칼이 떠나지 않겠다 했습니다. 다윗의 후궁들이 대낮에 욕보이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다 자기의 죄를 그대로 지고 가는 것입니다. 사고 치고 잘못한 것, 오늘 이 속건제 정신은 오늘 이 시대에도 우리 그리스찬들이 뻔뻔하지 않게 세상을 향하여 체면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그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3. 속건제의 특수 규정

속건제 절차를 보겠습니다. 절차는 똑같습니다. 7장 2절을 보면,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건제물을 잡을 것이요" 번제물을 잡고, 7장 4절을 보면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거름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고" 기름을 하나님께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고기는 어떻게 합니까. 7장 6절, "제사장의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속건제의 고기는 제사장에게 돌려서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 성전에서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3-1. 나병에서 나은 자

속건제를 드려야 되는 다른 상황도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특별한 규정인데요, 속건제는 세 가지 경우에 드린다고 했습니다. 성물에 대해서 부지중에 범죄했을 때, 여호와의 계명을 부지중에 어겼을 때, 셋째 이웃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입니다. 그런데 또 특별한 규정이 또 있습니다. 이른바 예외 규정인데, 14장 7절을 보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즉 나병에 걸렸다가 나은 자가 제사장에게 자기 몸을 보입니다. '저는 나았어요' 하면 제사장이 이렇게 눈으로 보고 확인해 줍니다. 그러면 그때 확인받고 속건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14장 12절을 보니까,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더불어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나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이 왜 속건제를 드려야만 했을까요. 속건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백성에 대해서 신뢰를 다시 쌓아가는 것입니다. 아까 우리가 마알(מָעַל)이라는 단어가 '신뢰를 깨다'라는 단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신뢰를 깨고 사람에 대해서 신뢰를 깬 것입니다. 그런데 속건제를 드리면 신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마알이 다시 회복되어서 신뢰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나병을 내가 앓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건 의도했건 간에 이웃과 가족과 공동체에게 불편함을 줬습니다. 내가 나병에 걸리므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전염될까 봐 불안해했습니다. 그것이 옮겨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다 회복되면 자신의 잘못을, 내가 부주의해서 이렇게 의도적이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이 병에 걸렸다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과의 신뢰도 회복하고 이웃과의 신뢰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이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3-2. 나실인의 서약

또 두 번째는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입니다.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 가까이 하면 안 되고요, 시체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머리를 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나실인이 시체를 가까이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시 더러워져서, '저는 3년 동안만 나실인으로 하나님 성전에서 섬기겠습니다' 했는데 2년을 섬겼습니다. 3년째 되던 날 시체를 가까이했습니다. 그러면 그 2년은 무효입니다. 다시 3년. 그것을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6장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 하면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하지 말 것이요." 그런데 시체를 가까이해서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민수기 6장 12절,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해야 해요. 다시 일 년 된 숫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물로 드릴지니라 자기의 몸을 구별한 때에 그의 몸을 더럽혔은즉 지나간 기간은 무효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실인의 서약을 하고 자기 몸을 드린 사람은 왜 속건제물을 드릴까요.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드렸으니까 이 몸이 성물이 된 것입니다. 성물을 부지중에 범죄하면 속건제를 드리라 했습니다. 이 몸이 성물인 것입니다. 이 몸이.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서 이 몸이 성물이 됐기 때문에 이 몸을 내가 부주의하게 다루어서 시체를 가까이 했으니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신뢰를 깨뜨렸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서 속건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정신은 우리 몸을 항상 조심하고 정결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앞에 드려진 나실인 아닙니까. 우리는 서리집사님들은 일 년 동안 하나님 앞에 서리집사로 봉사하겠다고 서약한 분들입니다. 항존직은 내가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맡겨 주신 어떤 일이든지 하겠습니다라고 서약한 항존직들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내가 항존직의 사역을 맡았는데, 하나님 앞에 제대로 거룩하게 구별되어서 나실인으로 살아야 되는데, 목사가, 장로가, 안수집사가, 권사가, 항존직의 서약을 어기고 자기 몸을 함부로 굴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지금까지 지나간 것은 무효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결단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속건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깨어진 것이니까 그 신뢰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속건제물로 나가라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속건제는 일반적인 규정은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성물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을 부지중에 어겼을 때, 두 번째 계명을 어겼을 때, 세 번째 이웃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특수 규정은 나병에 걸렸다가 나왔을 때, 나실인의 서약을 어겼을 때입니다.

4. 꺼뜨리지 말아야 할 불

레위기는 5가지 제사를 마무리하면서 여기에 덧붙이는 부록, 7장에서 추가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중에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적었습니다.

4-1. 번제단의 불

번제에 대한 규정 중에 제사장이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이것은 속건제하고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제 추가된 부록입니다. 7장의 5가지 제사의 플러스 알파 부록입니다. 레위기 6장 9절을 보면,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번제단에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번제단 위에, 어디에 있습니까. 성막 성소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다. 뜰에. 뜰에 있는데 그 번제단의 불은 영원히 꺼뜨리지 말라 했습니다. 이동할 때는 물론 들고 가야 되지만 정착되어서 그 자리에 있을 때는 절대로 그것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민수기 28장 3-4절을 보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라" 화제는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 번제의 다른 말인데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두 마리씩 상번제로 드리되" 상번제, 상번제가 무엇이냐면 어린 양 한 마리는 아침에 드리고요, 어린 양 한 마리는 해질 때 드리고, 아침에 한 마리 태워 드리고 저녁에 한 마리 태웁니다. 이것을 상번제라 했습니다. 항상 있는 번제라는 뜻입니다.

한 마리 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아침에 태우면 다 타고 저녁에 또 태워 드려야 됩니다. 그러면 저녁에 태운 것이 저녁 밤새도록 타고, 그 아침에 그 불이 꺼지지 않고 또 태워 드려야 됩니다. 불을 꺼뜨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번제 규정에서 번제단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예배를 중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중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번제물을 가지고 나오기도 하지만, 공동체 전체가 하루에 두 번씩 늘 상번제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정체성이 예배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배 공동체입니다. 본당에 나와서 예배 드리거나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거나,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예배 드리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항상 하나님께 드려야 되고 그 예배 드리는 자에게 그 불을 꺼뜨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올려 드리는 예배의 불길은 절대로 꺼져서는 안 됩니다.

4-2. 등잔대의 불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또 한 가지 꺼뜨리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7장 20-21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바깥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이 등불이 무슨 등불입니까. 이 등불은 성소 안에 있는 등불입니다. 성소 안에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등잔대에 그 등잔대의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기름을 항상 공급하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의 직무 중에 아주 중요한 직무가 이 직무입니다. 등잔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등잔대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등잔대 불, 등불이 상징하고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시편 119편 105절 함께 읽을까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소 안에, 성막 안에 있는 등잔대의 등불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위해서 기름을 계속 공급해야 됩니다. 제사장의 직무가 그것입니다. 눈 뜨고 잠들 때까지 제사장이 해야 되는 일이 그 일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행여나 그 등불을 꺼뜨릴까 봐 성막 안에서 잠들고요, 쪽잠 자고, 기름 떨어뜨릴까 봐 그렇게 살았는데, 나중에 사무엘상을 보면 엘리 제사장은 자기 처소에서 큰 대자로 누워서 그냥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등불을 지킨 아이가 누굽니까.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성소 안에서 그 등불 지키고 그 불 안 꺼뜨리려고 그리고 자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누구를 이뻐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오늘 제사장 된, 말씀 맡은 목회자의 의무가 무엇입니까. 꺼지지 않게 말씀을 공급하는 것이 목회자의 직무입니다. 말씀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항상 말씀이 준비되어 있어야 되고 항상 말씀을 연구해야 되고, 시간 없다고요, 시간 돼야지요.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그것이 의무인데 그러라고 세워 났는데, 먹을 것 다 먹고 놀 것 다 놀고 언제 말씀 준비하겠습니까.

4-3. 분향단의 불

두 번째 꺼뜨리지 않아야 될 등불이고, 또 한 가지 꺼뜨리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7-8절입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이지 못할지니라." 어디입니까. 향입니다.

향단에서 불이 안 꺼지면 향이 계속 올라갈 것 아닙니까. 향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봤습니다. 기도입니다. 성도들의 기도. 성도들의 기도가 끊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말씀의 불을 꺼뜨리면 안 되고 성도는 기도의 불을 꺼뜨리면 안 되고 공동체는 예배의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 성전에서 항상 있어야 될 것들 세 가지, 불이 항상 있어야 됩니다. 절대로 꺼지면 안 되는 불, 기도의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절대 기도의 불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끊이면 안 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면 그 어른들에게 보양도 많이 채워 드리고 하셔야 됩니다. 어른들 오래 사셔서 날 위해서 기도 많이 해 달라고. 우리는 어른들이 유산 얼마 남길까 그것만 관심이 있지요. 그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데 그 돈 몇 푼이 그것이 무엇이 중요합니까. 어른들이 기도의 등불을 안 꺼뜨리고 계속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그것이 나에게 복인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기도하시는 분들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유도 사역자들에게 매달 책자 발송하는 것입니다. 계속 그것 붙들고 기도하시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고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 양산 땅과 세계 열방, 이 나라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 됩니다. 꺼뜨리지 말라 했으니까요. 절대로 끊이면 안 되니까요. 목회자는 말씀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예배 공동체는 예배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그러면 다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예배 규정 5가지 규정하시면서 마지막에 한번 더 언급해 주셨습니다. 꺼뜨리지 말라고.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이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엘리 같은 인간이 나타나서 그것 다 꺼뜨리고 자기 처소에서 편하게 누워 주무시고 계십니다. 엉망진창이 된 것입니다. 엉망진창이. 그러면 그 성전은 능력 없는 성전이 됩니다. 기도 없는 교회가 기도의 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말씀이 풍성하게 살아 있지 않은 교회를 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예배 엉망진창인데 그것을 어떻게 교회라 할 수 있습니까. 불이 다 꺼져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항상 교회가 교회답기 위해서는 이 불이 살아 있는 교회, 이것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 주셔야 됩니다.

5. 끊어짐에 대한 경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살펴봐야 될 것은 '끊어지리라'하는 말씀이 반복될 것입니다. 보겠습니다. 7장 20절을 보면,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요." 무섭습니다. 끊어진다고 했으니까요.

21절,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무슨 물건을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또 끊어진다 했습니다. 7장 25절,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7장 27절,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끊어지다' 히브리어로 카라트(כָּרַת)입니다. 카라트는 '자르다, 베다, 단절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은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고 규정대로 정해진 대로 예배를 성실하게 드리지 않는 자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히브리 사람들,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유대인인 줄 알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선민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도, 예배 대충 드려도, 엉망진창으로 살아도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답게 예배 드리려고 발버둥치고 노력하고 살아야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방 들고 예배 다녀왔다 갔다 한다고 하나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정확하게 예배 드리려고 노력하고 해야 하나님 자녀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모릅니다.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 자녀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어떻게 압니까. 심판 날,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알곡을 모아 곳간에 들인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 때부터 하나님 백성 된 자도 없고 날 때부터 악한 자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예배 규정을 잘 지키며 하나님과 깊은 예배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카라트 당하지 않습니다. 잘려 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제사장의 소득

세 번째 제사장이 받은 소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7장 36절, "곧 그들의 거기름 부은 날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라 하신 것이라 대대로 영원히 받을 소득이니라."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그들에게 돌리게 하셨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즉 제사장의 소득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백성들에게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번에도 제사장의 소득이 백성들에게서 오는데 사실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제사장들을 볼 때 내가 먹여 살린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한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니까요. 그러면 하나님은 백성들의 것을 받아서 제사장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제와 요제의 의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그냥 올려 드리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반면에 제사장은 또 어떤 이심전심의 마음을 가져야 될까요. 나는 이것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까 너희와 나는 아무런 상관없다, 그렇게 백성들에게 단절하고 꼿꼿하고 목에 기브스 한 것처럼 허리를 빳빳이 하고 목을 곧게 하고 하면 그것도 하나님 앞에 덕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야 됩니다. 양 떼에 마음을 두고 소 떼를 부지런히 살펴야 됩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들이 가난해서 굶어 죽지는 않았는지, 구약 시대 때 십일조 중에 3분의 1은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나누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가난한지 누가 병들어 있는지 알아야 될 것 아닙니까. 제사장들이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누가 가난한지 누가 병든지 모릅니다. 그냥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니까 너희는 상관하지 말라 그리고 그냥 목에 기브스 한 것처럼 뻣뻣하게 있으면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하고 제사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반면에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서 이들이 열심히 수고해서 거제와 요제를 가지고, 십일조를 가져오는 것을 가지고 나와 우리 가족이 먹고 사는구나 이 감사의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이심전심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교회에서도 목회자나 성도가 서로 이심전심의 마음이 되어야 그래야 그 교회가 복되고 행복한 교회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아주 작은 문제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레위기 규정은 이렇게 아주 섬세하게 오늘 우리 시대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5가지 제사를 한번 정리했는데 한번쯤은 복습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집에 가셔서 5가지 제사를 한번 살펴보시고 복습도 하시고, 다음 주는 제사장 위임식입니다. 이제 아론의 가문이 위임을 받고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워지게 되는 장면을 보는데 예습도 하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속건제에 대해서 배우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5가지 제사를 배우면서 하나님과 함께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관계를 원하시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배우고 깨달았다면 배우고 깨달은 대로 실천할 수 있는 결단도 용기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도우시고, 속건제 정신, 속죄제 정신, 화목제, 소제, 번제의 정신을 우리 삶에 온전히 실천하는 믿음의 백성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