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6 - 제사장의 위임식 (레8-9장)
레위기 8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숫양 두 마리와 무교병 한 광주리를 가지고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 문에 모인지라" 아멘.
오늘은 레위기 여섯 번째 시간으로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해서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위임식이라고 하면 경험해 보신 분도 계시고, 한 번도 위임식을 본 적이 없는 분도 계실 텐데, 위임이라는 말의 본래적인 성경적 뜻도 뒤에 원어를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레위기를 보고 있는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한 번씩 숲을 이루듯 전체적으로 조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출애굽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430년 동안 종살이하는 데 두셨다가 그들을 꺼내셔서 홍해를 건너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그냥 줄기차게 가나안으로 이끌지 않으시고 중간 기착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시내산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한 일 년 정도 머무르게 하시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두 가지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첫째는 성막이요, 둘째는 율법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삶에 대한 계명도 있고 예배에 대한 규정도 있습니다. 성막은 예배를 드리기 위한 하드웨어입니다. 성막이 없으면 그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예배를 위한 하나의 전 단계라고 생각하시면 되고, 성막 안에 들어가서 너희는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면서 예배 같은 것과는 별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노예가, 종이 무슨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채찍질당하니까 맞지 않으려고, 먹고 살려고 일하고 살았지, 그들은 예배와는 별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상태 그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막 이야기를 하시고 성막 다음에 이 안에 들어가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다섯 가지 제사 형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각각의 내용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어떠한지, 의미는 어떠한지, 그리고 오늘 이 시대 우리는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볼 것은 제사장의 위임식입니다. 이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이 제사장에게 예배를 이렇게 집례하라고 가르쳐야 되는데 제사장을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제사장은 당연히 레위 지파 가운데 세우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제사장의 직무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냥 아무렇게나 너희들이 해, 이렇게 하신 게 아닙니다. 공적인 예식을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사장의 위임식을 어떻게 준비하는지, 그리고 제사장의 위임식의 절차는 어떤지, 위임식이 끝났으면 아론이 직접 예배를 드려 봐야 되니까 그 과정까지 세 가지를 한꺼번에 다 볼 것입니다. 위임식 준비, 위임식 절차, 그리고 아론이 예배를 진행하는 과정, 이것을 함께 살펴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해서 살펴보는데, 참 성경이 보면 아주 체계적이고 조직적입니다. 다섯 가지 제사의 이야기를 하고, 이 제사를 집례할 제사장을 세우십니다.
1. 위임식의 준비
1-1. 온 회중의 소집
오늘 우리가 시작할 때 읽었던 8장 1절에서 4절까지는 하나님이 소집하시는 것입니다. 소집을 하시는데 보십시오.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 보면 준비물이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의복, 관유, 속죄제 수송아지, 숫양 두 마리, 무교병 한 광주리. 이것은 하나님이 왜 이것을 준비하라고 하셨는지, 그리고 이것이 쓰이는 것은 그 뒤에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게 3절입니다.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온 회중이 중요합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에 하나님은 온 회중을 다 보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성경을 읽을 때는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계속 질문해 보셔야 됩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사실 하나님이 제사장의 위임식을 자기네들끼리 해도 됩니다. 레위 지파, 그리고 아론, 아론의 아들들만 모여서 자기들끼리 그냥 이렇게 모여 가지고 하면 간단합니다. 아주 빨리 끝납니다. 그리고 거창하게 하지 않아서 돈도 별로 안 들고 물품도 별로 안 들고 사람들도 덜 피곤하고, 그리고 이 사람이 이제 제사장이야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회중을 다 모으라고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얼마나 많이 나왔겠습니까?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그러면 여자, 어린아이, 노인까지 하면 200만 명이 넘는 백성들을 다 모아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제사장의 위임식을 시작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제사장은 앞으로 예배를 진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온 회중을 모은 이유는 예배가 공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절대 사적인 게 아닙니다. 예배가 공적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배는 철저하게 질서에 의거한 것이다, 예배는 사적인 것이 아니고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 중심이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배가 사적으로 흐르는 것은 어떨 때입니까? 여러분들 예배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배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은 우리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 예배와 모든 예배는 1시간을 넘지 않습니다. 경험해 보셨겠지만, 주일날 찬양대가 찬양이 있거나 아니면 특별한 순서가 있으면 설교 시간이 조금 짧아집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기도자가 오늘 기분이 좀 좋습니다. 갑자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한 30분 하셨습니다. 내가 강단에 올라와서 갑자기 뭔가 받았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을 기도로 하라 하는데 이게 왜, 이건 사적입니까? 공적입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설교자가 설교하다가 갑자기 막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그래 가지고 설교를 한 20분 하던 분이 갑자기 2시간을 했습니다. 나가는 사람 막 이름 불러 가지고 못 나가게 하고 뒷문 잠그고, 오늘 여기서 끝내봐 은혜받지 못하면 아무도 못 나간다 하고 화장실도 가지 말라 하고, 이게 사적인 예배입니까? 공적인 예배입니까? 찬양대가 찬양을 준비하는데 오늘은 우리가 30분 해버리자 약속도 하지 않고 그냥 해버리면, 이건 사적인 것입니까? 공적인 것입니까? 이것은 예배가 질서 있는 예배를 할 수 없고 공적인 예배를 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철저하게 질서 안에서 공적으로 하나님께 질서 있게 드려야 되는 게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의 위임식을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하게 하셨습니다. 예배의 모든 것은 공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새벽기도 말씀 때 제가 말씀드렸지요. 족장들이 자녀들에게 축복하는 것은 공적인 축복의 선언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삭이 야곱에게, 야곱이 열두 아들들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축복을 어떻게 하려 그랬습니까? 고기 잡아 와라, 사냥해 와라, 음식 만들어 와라, 둘이만 하자 그랬습니다. 안수식을 목사 안수식을 담임 목사하고 안수받는 사람 두 사람이 밀실에서 해도 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장로 임직식을 밀실에서 해도 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온 회중을 다 회막 문 앞에 모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가, 예배를 집례하는 제사장도 공적이고 모든 예배는 다 공적으로 질서 있게 드려지는 것이다, 이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이 혼자 하루 종일 찬양을 하시고 본당에 나오셔서 하루 종일 방언 기도를 하시고, 누가 뭐라 합니까? 아무도 그것을 뭐랄 사람은 없습니다. 더 기뻐하실 테니 그렇게 하시라고 하지요. 그런데 공적인 예배는 질서에 의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1-2. 성결의 요구
위임식을 시작하기 전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시킨 것입니다. 모세가 임의로 명령한 게 아닙니다. 8장 6절을 보시면,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지금 위임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세가 위임받습니까? 아닙니다. 아론이 대제사장이 되고 아론의 자녀들이 제사장으로 지금 위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오늘 위임을 받는 자들을 가장 먼저 어떻게 하라 그랬습니까? 씻기라 그랬습니다. 물로 씻으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더러워서 때가 눈물이 꾀죄죄하게 해서 깨끗하게 씻으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성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공적인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깨끗하게 씻어서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자, 제사장이 되는 데 어떤 자격이 필요합니까? 좋은 대학 나오고, 학력이 필요하고, 많이 배우고, 선재주가 있고, 언변이 좋고? 하나님 그런 것을 요구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제사장 위임식에 첫 번째로 요구하신 것이 성결입니다. 물로 씻으라. 그 단계, 성결을 먼저 요구하셨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거룩과 성결.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목회자를 볼 때 "아, 우리 목사님 좀 문제가 있어도 실행력이 있잖아"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결과 거룩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들과의, 세상적인 관계에서 깨끗하고 성결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요구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여기 깨끗하고 성결하라고 물로 씻으라고 그랬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만 요구하신 게 아닙니다. 출애굽기 19장 10절과 11절을 한번 볼까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성결하게 하며,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시내산에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백성들을 만나기 전에 백성들에게 준비시킨 게 무엇입니까? 성결입니다. 옷을 빨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존전에 설 때도 하나님은 성결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만날 때도 성결을 요구하셨습니다.
또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이 그때는 창일했습니다. 물살이 거세고 강 건너기가 힘들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요단강 도하를 앞두고 백성들에게 요구한 게 있습니다. 여호수아 3장 5절을 한번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을 행하시리라" 성결. 하나님 만나기 전에 백성들 성결, 제사장의 직무 수행하기 전에 성결, 놀라운 일을 기적 같은 일을 기대하면서 우린 무엇을 해야 됩니까? 성결.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요구하신 적도, 물질을 요구하신 적도, 소 잡아 와라 양 잡아 와라 이런 것 요구하신 적도 없고, 하나님은 성결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거룩한 것, 깨끗한 것, 죄짓지 않은 것, 죄 짓고 해결하고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나오라는 것, 이게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일날 예배 드리러 교회에 나오고, 오늘도 수요 사경회에 나오면서, 주일날 나오려면 어떻게 합니까? 옷도 준비하고 향수도 준비하고 나오는데, 나 자신의 영적 성결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준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서기 전에 하나님, 제가 일주일 동안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고 지난 길을 돌아보셔야 됩니다. 돌아보고 회개하고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건 일반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누구나 다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하셨습니다.
1-3. 제사장의 의복
이제 위임식을 행하는 제사장이 입을 의복, 아까 8장 2절에 보면 의복을 준비하라 그랬지요. 그런데 그 의복이 순서가 이렇게 있습니다. 7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오지요. 아론에게 무엇부터 입힙니까? 그렇지요. 당연합니다. 우리가 속옷을 안 입는 사람 혹 있을지 몰라도 거의 없습니다. 속옷을 입히는데 이 속옷이 여기서는 쓰여져 있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입는 속옷이 무엇입니까? 세마포입니다. 세마포가 무엇입니까? 깨끗하고 흰색입니다. 아, 야한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내적인 성결입니다. 속옷에 야하고 깨끗하고 청결한 세마포 속옷을 입는다. 나중에 우리가 지난 하계 계시록 살펴봤지만 종말에 어린양의 신부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릴 때 그때 우리는, 신부는 세마포 흰 옷을 입는다 그랬습니다. 성결입니다. 내적인 성결.
그래서 제사장은 겉으로 드러난 죄, 그것도 문제인데 내적으로 하나님 앞에 성결해야 됩니다. 내적으로 제사장만이 알겠지요. 하나님만이 아시겠지요. 그래서 깨끗한 속옷인 세마포 속옷을 입혀라, 이 말은 내적인 성결을 보장하고 이것이 유지된 자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서 띠를 띠우지요. 상상을 해 보세요. 세마포 속옷이고 그 띠를 띠고 그 위에 겉옷을 입히고, 에봇을 걸칩니다. 겉옷은 조끼 같은 것인데, 거기 보석 장식들을 띄워서 에봇을 몸에 맵니다. 8절에 보니까 흉배를 붙이고, 흉배에 우림(אוּרִים)과 둠밈(תֻּמִּים)을 넣습니다.
전신 그림을 한번 봅시다. 제사장의 의복 전신, 우리가 예배 학교 할 때 이 그림 봤는데 흐릿하게 되어서 기억이 안 날 것 같은데, 이렇게 보니까 제사장 파랗게 된 것 아래 흰 속옷이 보이십니까? 흰 속옷 위에 겉옷이 있고, 겉옷 위에 앞치마 같은 것이 있지요. 이것이 에봇입니다. 앞치마 같은 에봇을 걸치고 그리고 거기 허리띠를 다시 띱니다. 자 이제 상반신만 보시지요. 자 지금 보니까 에봇 위에 무엇이 붙어 있습니까? 흉배가 보이세요. 흉배가 붙어 있는데 거기에 몇 개의 보석이 붙어 있습니까? 열두 개입니다. 흉패에 보석 열두 개가 있다는 말은 이 열두 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두 지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열두 지파인데 열두 지파를 제사장은 가슴에 안고 열두 지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제사장의 직무는 제사도 직무고 가르침도 직무고 기도하는 것도 직무입니다. 가슴에 품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차내지 말고, 무든지 성도를 너가 싸안고 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제사장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속이 상해도 차내지 않고 잘라내지 않고 싸우지 않고 분쟁하지 않고 다 껴안고 함께 가는 존재입니다. 그게 제사장입니다.
자 그런데 거기에 우림과 둠밈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얘기 8절에 보니까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우림과 둠밈, 흉패 안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보이질 않지요. 우림(אוּרִים)은 '빛'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둠밈(תֻּמִּים)은 '완전함'이라는 뜻입니다. 빛과 완전, 이것을 우림과 둠밈이라 하고 이것을 넣었습니다. 이게 무엇이냐, 사실 이것을 성경이 설명하고 있는 구절은 딱 두 구절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 민수기 27장 21절 한번 볼게요. 제가 읽겠습니다.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우림의 판결이라고 그랬습니다.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이것을 보면 어떤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판결할 때 우림 혹은 둠밈으로 하나님께 여쭈어 구합니다.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즉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께 어떤 결론을 내릴 때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의 흉패 안에, 우림과 둠밈 이 두 가지가, 빛과 완전함이라는 의미를 가진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사무엘상에 더 나옵니다. 28장 6절과 7절 한번 볼게요. 제가 읽겠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 오되" 사울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왕이지요. 그런데 제사장이 흉패 안에 우림 같은 비물을 넣어 뒀는데 왕인 사울이 이렇게 얘기하네요.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심으로" 이미 사울이 물어본 것입니다.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께 물어봤으니까요. 그럼 하나님이 대답하실까요, 안 하실까요? 그건 하나님만 아십니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자, 그러면 우림과 둠밈의 역할을 이 두 구절에서 미루어 짐작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질문하고 여쭙는 것입니다. 그 이상은 성경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의 두 돌을 가슴에 넣고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전쟁 할까요, 말까요? 그럼 하나님이 이 돌이 빛나게 하시든지 진동을 시켜 주시든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흉패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또 9절을 한번 보세요. 8장 9절.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 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곧 거룩한 관이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과 같았더라" 그럼 다시 상반신 그림을 한번 보시면 제사장 이마에 금패가 있다 했습니다. 보이세요. 금패가 제사장 이마에, 금패가 지금부터 있는데 여기에 무엇이 쓰여져 있을까요? 여기에 쓰여져 있는 것은 오늘 레위기 말씀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8장 36절에서 38절까지 나옵니다.
제가 읽어 볼게요.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여호와께 성결, 그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요.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아까 청색 끈으로 매어져 있었습니까? 조금 있다 다시 확인할게요.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그림 다시 보여주세요.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이 히브리어로 쓰여 있고 청색 끈으로 이를 두르고 있지요. 요렇게 됩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자 그러면 제사장의 의복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속옷이 무엇입니까? 성결입니다. 그리고 이마에 처음과 끝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성결입니다. 자 여기서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정말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결입니다. 물로 씻을 때부터, 세마포 속옷을 입힐 때부터,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띠를 두르게 할 때까지 하나님은 정말 제사장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것 하나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성결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왜 성결을 요구하셨을까요? 이토록 제사장은 자기주도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굉장히 수동적인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제사도 자기 맘대로 못 드립니다. 성경에 기록된 법대로 해야 됩니다. 시키는 대로 해야 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 역할을 할 뿐입니다. 통로의 역할입니다. 통로가 깨끗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길을 가는데 교회에서 나와서 집까지 가는 길에 오물이 있으면 그 길로 가고 싶습니까? 가고 싶지 않습니다. 한번 가다가 오물을 밟았습니다. 뒤집어썼습니다. 절대 나는 그 길로 안 갑니다. 안 갑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이어주고 연결해 주는 통로가 성결하고 깨끗해야 그 통로가 통로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것은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결하라 이것만 요구하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씀을 들으면, 이 성결은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다, 그냥 목사님하고만 상관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과 자녀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가정의 제사장은 부모입니다. 부모가 성결해야, 부모가 깨끗해야, 매일 회개하고 매일 깨끗한 내적 정결을 입고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띠를 두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자녀들에게 역사를 하실 것 아닙니까? 내가 교회 공동체에서 크고 작은 공동체를 맡고 있는데 내 공동체가 궁핍하지 않고 영향력 있고 하나님 앞에 쓰임받으려면 내가 성결해야, 그래야 내가 그 통로의 역할을 할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쓰시겠습니까? 나를 버리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조건은 절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물질이 많거나 돈이 있거나 많이 배우거나 그런 것, 하나님 원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결하냐 그렇지 않느냐, 깨끗하냐 그렇지 않느냐입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주인의 집에는 그릇이 참 많은데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는데, 그 중에 하나님께서 정말 좋아하는 것은 주인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래서 자기를 비워서 깨끗하게 하는 그릇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좋은 통로가 되고 깨끗한 통로가 되셔야 됩니다. 물론 죄를 안 지을 수 없으니까 살다 보면 방에도 먼지가 앉고 때가 타니까 회개하는 생활을 자주 하셔야 된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혼자서 안 됩니다. 무엇과 함께할 때? 말씀과 함께할 때 회개가 되지요. 말씀의 거울에 나를 비추어 봅니다. 회개가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위임식을 준비하면서 계속 성결 이야기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위임식 준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성결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성결, 이것만 딱 생각하시면 됩니다.
1-4. 관유의 용도
관유의 용도를 볼게요. 8장 10절과 11절을 보면, "모세가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또 제단에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관유를 여러분 사전에서 한번 찾아보면 '관(灌)' 자가 '물 댈 관' 자입니다. 물 대다, 물이 마르면 계속 댑니다. 물이 흘러넘칩니다. 그래서 이 '관' 자가 모자 '관' 자, 이런 게 아닙니다. 관을 쓰다 할 때 그런 '관' 자가 아니고, 영어로 하면 어노인팅 오일입니다. 흘러넘치게 하는 것, 흘러넘치는 기름입니다. 발라서 듬뿍 발라주는 것입니다.
자 관유를 바른 것을 보세요.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합니다. 자 제사장이 위임받고 나면 제사장이 직접 성막 안에 있는 것을 다 만질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제사장이 만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기름을 발라서 다 거룩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만져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이 기름 발라서 다 거룩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8장 12절에 보면, "또 관유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 거룩하게 하고" 아론도 제사장도 하나님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도 하나님 것,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도 다 하나님 것입니다. 기름을 발랐다는 것은 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 옛날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아무리 낡아도 성전 안에 있는 것, 성막 안에 있는 것은 아무리 낡고 오래되고 못쓰게 되어도 하나님 것이니까 개인적인 용도로 집에 못 가져옵니다. 가져오면 큰일납니다. 하나님 것인데, 기름 발라서 다 관유 발라서 다 거룩하게 해 놓은 것인데 구별된 것인데 어디 자기 마음대로 임의로 처분합니까? 심하면 큰일납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개념 자체가 너무 없어서 문제이지요.
1-5. 속죄제와 번제
위임식 준비를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라 그랬습니다. 그 다음 번제를 또 드리라 그랬습니다. 볼까요. 8장 14절에 보면, "모세가 또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끌어오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속죄제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매" 속죄제를 왜 드리라 그랬을까요? 위임식 하기 전에, 위임받기 전에 왜 속죄제 드리라 그랬을까요? 부지중에 지은 죄가 속죄제입니다. 그렇지요. 위임받기 전에 부지중에 지은 죄가 있으면 안 되니까 속죄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 문제 깨끗이 해결하고. 지금 여기 보세요. 그 전에 물로 씻었지요. 깨끗한 옷을 입혔지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이마에 이것을 썼지요. 그리고 나서 또 하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하나님은 거듭거듭거듭 성결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속죄제까지도 한 번 더 해서 안전장치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임식 준비에 계속해서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성결입니다.
그리고 또 속죄제 드리고 나면 그 다음 무엇을 해야 됩니까? 18절, 8장 18절. "또 번제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번제를 드려야 됩니다. 여러분 번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온전히 태우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자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번제를 받으시는 전제는 무엇입니까? 죄가 없어야 됩니다. 먼저 속죄제로 죄를 사함받고, 그 다음 제사장이 자신을 헌신하겠습니다 하고, 이제 제가 위임하고 나면 나를 온전히 태워서 완전히 하나님의 제단에 나를 다 불태워 버리겠습니다, 이것이 번제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서 위임식 준비도 중요한데 그 준비의 과정에서의 핵심은 성결이었다, 성결하게 하고 난 다음에 헌신을 하나님은 요구하셨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2. 위임식의 절차
2-1. 위임의 의미
자 그 다음 이제 제사장의 위임식 본편입니다. 진짜 위임식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위임식을 위하여 드리는 제물이 무엇입니까? 자, 위임식에도 제물이 있습니다. 자 위임식 하기 전에 드렸던 제물인 속죄제 그리고 번제는 고기를 못 먹었습니다. 다 태워서 하나님께 다 드리면 끝입니다. 그런데 위임식 때 드리는 고기는 어떻게 될까요? 제사장들끼리 나누어 먹습니다.
자 위임식을 위하여 드리는 제물이 무엇이냐. 8장 22절, "또 다른 숫양 곧 위임식의 숫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숫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여기 위임이라는 말이 처음 나옵니다. 그런데 위임이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밀루(מִלֻּאִים)'라고 합니다. 밀루가 무슨 뜻이냐, 뜻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봉헌하다' 혹은 '바치다'라는 뜻입니다. 봉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위임에서 하나님께, 레위 지파 제사장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냥 제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목사의 위임식하고는 의미가 좀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목사 위임식은 목사가 교회에 바쳐진다고 생각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봉헌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두 번째 뜻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 뜻은 '박다'입니다. '박다'라는 말은 보석을 장신구에 박다라는 뜻입니다. 보석이 장신구에 박힐 때 어떻게 박혀야 됩니까? 어설프게 박히면 보석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강하게 부착되어야 됩니다. 강하게 떨어지지 않게. 그래서 이 말은 제사장이 공동체에 강하게 부착되어서 공동체를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위임이라는 말,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 드려지고 공동체와 함께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서약을 레위 지파가 잘 지켰습니까? 나중에 사사기에 가면 사사기 17장 이후를 읽어 보면 어떻습니까? 잘 지켰습니까? 안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왕을 두지 않았습니다. 지파별로 땅을 다 나누고 레위 지파는 땅이 없었습니다. 뭉텅이 땅이 없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48개 성읍으로 다 갔습니다. 각 열두 지파 자리에 들어가서 제사와 재판, 성경 교육 업무를 담당하라 하고 다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께 봉헌되고 백성들에게 박혀서 그 자리를 잘 지켰느냐,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괜찮은 게 있고 손에 익숙한 게 있는 것입니다. 나는 왜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이 고생을 해야 되느냐, 떠나버립니다. 그냥 야반도주해 버립니다. 하나님께 봉헌된 것도 잊어버리고 백성들과 공동체에 박힌 것도 잊어버립니다. 돈 따라 갑니다. 그 다음에 여색 따라 갑니다. 돈과 여색이 그들을 '밀루'하게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제사장들이 거기서 타락해서 제사장 집단이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사기를 통해서 세운 사람들이 평신도 지도자들입니다. 평신도 지도자 중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끌고 일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사사기입니다. 어쨌든 위임식의 의미는 '밀루', 하나님께 봉헌하고 공동체에 잘 박힌 보석처럼 박혀 있다, 이런 뜻입니다.
2-2. 피를 바르는 예식
자 양을 잡았습니다. 양의 피를 바릅니다. 이제 위임식이 지금 드려지고 있습니다. 상상을 해 보세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위임을 받는데 온 이스라엘 회중이 다 있습니다. 다 보는데 높은 단상에 올라가서 위임식을 하는데 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양의 피를 바릅니다. 23절, "모세가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불과 그의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그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바르고" 어디어디 발랐습니까? 다 오른쪽입니다. 귀,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 또 24절에 보니까,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모세가 그 오른쪽 귓불과 그들의 손의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그들의 발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했습니다.
자 귀와 손가락, 발가락에 발랐습니다. 피를 왜 그랬을까요? 귀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항상 나쁜 소리도 듣고 좋지 않은 소리도 듣고 사람들의 원망도 듣고 성결하지 않은 소리도 듣지 않습니까? 그래서 양의 피를 발랐다는 말은 정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듣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소리만 듣도록 해라, 깨끗하게 발라서 성결하게 하라. 손과 발은 무엇입니까? 행동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듣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듣고 행동하는 것. 행동도 피를 바른 손, 피를 바른 발처럼, 피 바른 손으로 더러운 이를 탐하지 말고 피 바른 발로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곳에 가지 말고, 제사장이 가야 할 곳에 가고 제사장이 만져야 될 것을 만지고 제사장이 해야 될 것을 하고 들어야 될 것을 듣고 그렇게 살라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세요? 이렇게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제사장 입장이 되어 보세요. 이게 좋은지 나쁜지.
자 이렇게 제사장의 위임식에서 손과 발에 피를 바르는 이 언약이 아주 하이라이트입니다. 자 그러면 이때 피를 바를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느낌이 어땠을까요? 야, 이제 나는 온전히 내 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만 듣고 내 손은, 내 발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만 가겠다. 성도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부지런한 손과 발이 듣고 행합니다.
2-3. 제물의 분배
이제 고기가 남았습니다. 고기는 어떻게 합니까? 29절, "이에 모세가 그 가슴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았으니 이는 위임식에서 잡은 숫양 중 모세의 몫이라" 자 위임식 진행을 한 사람이 모세이지요. 모세가 먹었습니다. 또 31절 보니까,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되 내게 이미 명령하시기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먹으라 하셨으니 너희는 회막 문에서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에 떡과 아울러 그곳에서 먹고" 그랬습니다. 자 아론과 아론의 자손들이 역시 그 고기를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2-4. 칠 일의 거함
자 그런데 또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제 위임식 행사가 이렇게 해서 대충 정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어지는 기간이 7일 동안 이어집니다. 자 33절 보니까, "위임식은 이레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끝나는 날까지 이레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회막 문 밖으로 나가지 말라 그랬습니다. 위임식이 행해지는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과 일주일 동안은 하나님 앞에서 지내라는 뜻입니다. 이런 행사를 하고, 이 행사하는 데 몇 분 걸리겠습니까? 양 잡아 가지고 피 바르고 백성들 다 보는 앞에서 하고 이것 얼마 걸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7일 동안 회막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7이라는 숫자가 계시록에 갈 때 배웠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에게 7이라는 숫자의 상징은 완전함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 가운데 살라라는 뜻입니다. 35절을 보면, "너희는 칠 주야를 회막 문에 머물면서" 칠 주야, 7일 낮과 밤을 회막 안에 머물면서 "여호와께서 지키라고 하신 것을 지키라" 무엇을 지켜야 됩니까? 지키라고 하시는 것을 지켜야 됩니다. 마음도 지키고 생각도 지키고 말씀도 지키고. "그리하면 사망을 면하리라"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자 이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뜻입니다. 자 제사장들은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이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공동체 백성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사람들입니다. 대충 해도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하고 싶으면 해도 되고 이런 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것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면 칭찬받고 안 하면 다음에 더 잘해, 이게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다음 시간에 볼 텐데 이것을 제대로 안 해서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불타서 죽습니다. 제대로 해야 본전입니다. 제대로 해야 합니다.
위임식이 끝났습니다. 여러분, 위임식 핵심은 무엇이었습니까? 고기 먹는 것입니까? 7일 동안 여기서 지키는 것입니까? 위임식의 핵심은 피 바르는 것입니다. 귀와 손과 발에 듣고 행하는 것. 거듭난 귀와 거듭난 손, 거듭난 발로 듣고 행하겠습니다. 세상적인 것,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것, 이런 것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 교회 목사만 해당됩니까? 가정의 제사장들이 계십니다. 부모들, 공동체 리더들.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무엇인가 책임질 자리가 됐다, 그러면 나도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고 나이가 60이 되고 70이 되는데 언제까지 자꾸 세상적인 것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손길 가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곳에 발길 닿고, 어떻게 그렇게 살겠습니까? 평생을 이제는 귀와 손과 발에 피를 바르고 살아야지요. 이제는 책임질 나이가 됐으니까요.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3. 아론의 첫 예배
3-1. 여덟째 날의 의미
위임식이 끝났습니다. 무엇이 남았습니까? 위임받은 제사장의 첫 예배가 있지요. 얼마나 떨릴까요. 이제 첫 번째 예배를 아론이 집례합니다. 볼까요. 자 9장 1절, "여덟째 날에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다가" 팔 일째 날의 의미가, 의미 부여하려면 큽니다. 왜냐하면 8자, 아, 7이라는 숫자 아시지요? 완전이라는 숫자입니다. 7일 동안 회막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가졌습니다. 8일째 날은 이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끝나고 백성 앞에서 하는 날입니다.
할례를 왜 7일 만에 했을까요? 8일 만에 할례가 나옵니다. 볼까요. 레위기 12장 2절과 3절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8일째 하라 그랬습니다. 자 7이라는 숫자는 이제 깨끗함을 입는 데 완전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여덟째 되는 날, 새롭게 7이 시작되는 그 첫날에 할례를 행하라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7이라는 숫자로 완전해지는 의미의 뜻으로 주셨고, 그 다음 8이라는 것은 새롭게 시작하는 출발의 의미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뭐 중국 사람들은 이런 것 아무 상관없이 8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우리는 7이라는 완전함이 하나님 앞에서 채워졌을 때 그때 그 다음 8일째 될 때 아론이 첫 제사를 지냅니다.
3-2. 네 가지 제사
자 다시 9장 2절을 보면, "아론에게 이르되 속죄제를 위하여 흠 없는 송아지" 속죄제, 줄 치세요. 속죄제. 아론이 첫 번째 드린 제사, 제사를 지금 열거하는 것입니다. "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 속죄제, 번제 나왔지요. 3절에, "너희는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를 가져오고 또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고" 4절에, "화목제를 위하여" 화목제까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제사가 무엇입니까? 속죄제, 번제, 화목제 나왔습니다. 무엇 무엇 남았습니까? 소제하고 또 속건제, 봐 볼까요. 4절, "또 기름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 소제 나왔지요. 속건제 그 다음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아론이 제사장이 되고 첫 번째 임무를 부여받은 제사가 속죄제, 번제, 화목제, 소제입니다. 속건제는 왜 없을까요? 그러면 여러분 지난 시간에 우리가 속건제 살펴봤는데, 속건제를 드리는 세 가지 경우를 얘기했습니다. 첫째 성물에 대한 범죄, 두 번째 계명을 어겼을 때, 세 번째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런데 지금 이건 아론이 제사장 되고 첫 번째 지내는 제사입니다. 회막에, 제사직 음성도 저, 회막에 성도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속건제는 경우의 수가 있어야지 진행되는 제사입니다.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속죄제, 번제, 그리고 화목제, 소제까지는 드리라 하고 속건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니 살기니까 이건 언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굉장히 논리적이고 굉장히 과학적입니다.
3-3. 제사장의 속죄제
자 그 다음 9장 7절의 의미가 무엇이냐, 의미 두 가지를 또 봐야 되는데,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자 아론입니다. 첫 번째 제사. 백성들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 전에 또 자기를 위해서 먼저 무엇을 드려야 됩니까? 자기를 위해서 속죄제와 번제를 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습니다. 네 속죄제와 네 번제라 그랬지요. 그러면 아론을 위한 속죄제와 아론을 위한 번제입니다. 그런데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아론 자신을 위해서 속죄제와 번제를 드렸는데 그것이 아론에게도 효력이 있고 누구에게도요? 백성에게도 효력이 있다. 아, 너무 신비롭지요.
왜냐하면 제사장의 회개는 제사장 개인의 회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의 성결은 제사장 개인의 성결로 끝나지 않습니다. 백성의 성결로 이어집니다. 자 더러운 관을 청소했습니다. 그러면 그 관을 통해서 나오는 물을 마시는 사람이 깨끗하게,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제사장의 회개는 이처럼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을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3-4. 상번제의 의미
자 9장 17절의 의미가 무엇이냐. 9장 17절 보면요, "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그의 손에 한 움큼을 채워서 아침 번제물에 더하여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별 의미 없는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렇지요. 소제를 아침 번제물에 더해 제단 위에 불사르라 아, 그랬습니다. 아침 번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건 출애굽기 29장 말씀에서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9장 38절에서 42절을 제가 적어 두었는데 볼게요.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라" 매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 한 마리는 언제요? 지난주에 봤습니다. 아침에. 또 한 마리는 언제요? 저녁에. 자 39절을 보십시오.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릴지며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십분의 일 에바와 찧은 기름 사분의 일 힌을 더하고" 저 말이에요. 아침 번제물에 소제를 넣어서 함께 드리라는 뜻이지요. 저녁에 드리는 것도 됩니까? 41절,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에 한 것처럼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삼을지니" 계속 보세요. "너희가 대대로" 대대로 줄 치세요. "여호와 앞 회막 문에서 늘 드릴" 언제나 '늘' 드릴 줄 치세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 의미가 보입니까? 매일 대대로 늘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루에 두 번씩 아침 저녁으로 양을 한 마리씩 태워 드리면 그 사람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거기에 온전히 매여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다른 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것 못합니다. 그것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만. 이 말은 제사장 너는 지금 나에게 묶여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너는 다른 것 생각도 하지 말라. 아침 저녁으로 번제 드리고 그때마다 소제 넣고 드리고, 소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갈아서 가루로 해야 됩니다. 갈아서. 제사장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어깨 빠져라 힘 빠져라 매일 고운 가루로 갈고 양 잡고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매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대대로 늘 드릴. 그런데 제사장이 어디 딴 생각하고 어디 딴 짓 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제사장이 맨날 성경 공부 해야 되고 맨날 설교 준비 해야 된다고 핑계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이렇게 된 것인데 그게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하기 싫으면 진작에 옷을 벗어야지요. 진작에. 그래서 이건 성도님들이 여러분들이 목회자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힘드시지요? 힘들다 얘기할 수 있지요. 그냥 쉬었다 하세요. 뭐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지요, 그러면 안 됩니다. 목사님, 질문도 계속 하셔야 되고 어려운 것도 계속 물어보셔야 되고,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히. 옛날 제사장이 뭐 얼마나 편합니까? 자기 할 것 다 하고 자기 놀 것 다 놀고 세상 오락 다 하고, 그리고 언제 아침 저녁으로 양 잡고 소제 만들고 언제 하나님께 드립니까? 이것을 하든지 저것을 하든지 해야지요. 제사장에게 너는 나에게 매여 있는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3-5. 아론의 축복
예배 마지막에 아론이. 이제 아론이 첫 번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론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9장 22절,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며 내려오니" 다행스러운 게요. 하고 나더니 나 이거 못해먹겠다 이렇게 한 게 아닙니다. 아론이 난 이것이 평생 못한다, 난 내 자식에게 이것 도저히 못 물려준다 이것 뭐 다, 이렇게 한 게 아니고 아론이 백성을 축복했습니다. 아론이 백성에게 축복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이 일을 나는 기쁨으로 받았다는 뜻이지요. 기쁨으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기쁨이 넘쳐야 축복이 나가지요. 기쁨이 넘쳐야 축복할 것 아닙니까? 내가 행복하고 이 일이 즐겁고 기쁘고 보람되고 의미 있고, 그래야 백성들을 축복하는 데, 그렇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밖에 없습니다. 인상은 안 좋아지고 짜증나고 그런 것입니다.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
3-6. 하늘에서 내린 불
자 그 다음 이제 아론의 첫 번째 제사가 끝났습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참 잘했어요 도장을 딱 찍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동기부여가 됩니다. 자 하나님 어떻게 도장 찍어 주셨는데요? 23절과 24절 보시면,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났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낸 이유 무엇입니까?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요. 성결하게 했습니다. 내적 성결도 지켰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하나님과 교제도 했습니다. 귀에 피 바르고 손과 발에 피 바르고 양 잡고 아침 저녁 드리고 소제를 더하라 대로 다 했습니다. 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어떤 식으로 임했느냐? 24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에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는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성경에서요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신 불이 딱 세 번 나옵니다. 이야기가. 첫 번째 언제 불이 나왔습니까?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고 예배 드렸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두 번째 역대하 7장 1절에서 3절, 제가 읽어 볼게요. "솔로몬이 기도를 마침에" 솔로몬이 언제 기도했을까요? 이 기도는 성전 다 짓고 봉헌 기도한 것입니다. 이게 둘 "아침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으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위에 있는 것을 보고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볼까나. 언제 불이 내려왔습니까? 기도를 마쳤을 때. 지금 여기는 언제 불이 내려왔습니까? 예배를 제대로 질서 있게 공적으로 제대로 드렸을 때.
자 그 다음 세 번째 불이 나는 자리는 우리가 잘 압니다. 엘리야 갈멜산. 열왕기상 18장 37절 38절,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함에 예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엘리야가 어떻게 여호와께 부르고 있습니까? 제단이 다 무너졌습니다. 여기는 내용은 적어 놓지 않았는데, 번제단이 타고 무너졌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합과 이세벨 때 누가 하나님께 그 산꼭대기까지 올라와서 예배 드리겠습니까? 그 여호와의 제단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예배 드리기 전에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새로 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물을 벌여 놓고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예배를 제대로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때 여호와의 불이 난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불은 언제 임합니까? 제대로 예배 드릴 때, 기도할 때, 그때 하나님의 불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맨날 불로 불로 찬양 많이 했지요. 옛날에 부흥회 할 때 손뼉 치면서. 그런다고 불이 떨어집니까? 피곤하게 만들지요. 찬송 30분 부르고 설교 시작하면 잠만 오지요. 그래 봐야 피곤하게 만들지요.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 심령에 내리시는 불이 와서 내 인생에 불이 내려서 나를 다시 뜨겁게 하실 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정결하고 성결하게 드릴 때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백성들에게 위임식이 끝나고 제대로 된 예배를 드렸을 때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 주시면서 하늘의 불을 다 내려 주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놀라서 엎드렸지요. 그럼 그때부터 제사장에게 영적 권위가 야, 이 제사장은 정말 하나님이 세우셨구나, 하고 영적 권위가 다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공부한 그 핵심은 다시 또 거듭 거듭 말해도 성결입니다. 거룩함과 성결. 이것 잘 지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의 제사장들도 되시고, 또 저도 이 말씀대로 성결을 잘 지키는 교회 목사가 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제사장의 위임식을 공부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능력도 물질도 원치 않으시고 오직 성결한 것만 요구하셨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어찌 그리 더럽고 유치한지요. 아버지, 우리가 성결하게 되기 위하여 내적 성결의 세마포를 입게 하여 주시고, 물로 씻어 거룩함을 다하게 하시고, 우리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을 써 붙이고 다니면서도 하나님 앞에 성결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속죄제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하시고, 거룩한 헌신의 번제도 드리게 하시며, 아침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매인 바 된 인생을 거룩하고 복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제단에 하늘의 불을 내려 주시고, 우리 인생의 제단에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시고 기름 부어 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만 듣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손으로 일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우리 발 닿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여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기를 원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