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 전체녹취

레위기 7 -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레10장)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위기 10:1-2)

오늘은 레위기 공부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레위기 공부가 상당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해보니 할 만하시지요? 그렇게 어렵지 않고 충분히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으며, 오늘 우리에게도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으로 계속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1. 시내산의 예배 규범

레위기가 선포된 자리는 시내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종살이하다가 출애굽 하여 가나안까지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들은 혈통상으로는 유대인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내용적으로는, 그들의 속사람은 전혀 하나님 백성답지 않은 삶을 430년 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내산에 정착하게 하시고 그곳에서 잠깐 멈추게 하시어 율법도 주시고 성막도 주셨습니다. 성막은 하나의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날 수 있도록 예배 규범을 정하셨습니다. 이전까지 그들은 이집트에서 살면서 예배라고는 제대로 드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나와 너희들은 이렇게 교제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방법과 이들의 인생과 삶의 여러 가지 방향이 될 지침들을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다 주셨습니다. 먼저 예배에 대한 지침을 주셨는데, 다섯 가지 제사 종류가 있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건제, 속죄제. 그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계속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를 앞에서 인도하고 진행해야 할 사람이 중요합니다. 바로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우리는 제사장의 위임식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임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배를 너희들이 이렇게 하라고 하시며, 그 위임식이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말씀대로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도장을 찍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불이 내린 사건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번제물을 다 태우고, 이것은 앞으로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권위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경외와 두려움, 그리고 확실히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는 것을 동시에 느꼈을 것입니다.

1-1. 위임식 이후의 위기

이제 앞으로는 어떤 일만 펼쳐질까요? 하늘에서 불까지 내렸고, 아론과 아론의 네 아들에게는 요즘 말로 꽃길만 펼쳐질 것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 주셨으니, 이제 하늘에서 불이 내린 정도의 권위인데 백성들 중에 누가 감히 함부로 대들겠습니까? 모세나 아론이나 다 그들의 권위가 하늘 끝까지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상태에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 있다가 우리가 볼 텐데,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럴 때 정말 조심해야 하는데, 오늘 읽은 말씀은 그 비극을 이야기합니다. 아론의 아들이 네 명 있는데, 그중에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동시에 죽었습니다. 왜 죽었는가? 읽었지만 한번 더 보겠습니다.

제사장의 위임식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각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아주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2. 나답과 아비후의 지위

나답과 아비후가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진 사람이냐를 우리가 좀 봐야 합니다. 단순히 이 사람들이 아론의 아들들이라는 것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데, 대단한 권위를 가진 사람입니다. 출애굽기 24장 9절에서 11절을 보면 이 표현이 나옵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서열을 보십시오. 성경은 사람 순서를 쓸 때 서열대로 씁니다.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 나답과 아비후는 서열이 3위와 4위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 중에, 이스라엘 장로 70인은 이 사람들 뒤에 있습니다.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은 이름도 없습니다. 그 동생 두 사람은 이름조차 여기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 70인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이 어떤 배경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을 주십니다. 십계명에 이어서 율법을 쭉 주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이 체결되었음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언약을 체결할 때 일방적으로 하지 않고, 너와 나는 동등하다 하시며 언약 체결식을 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도장 찍고 나면 밥 먹지 않습니까? 서로 만찬하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초대하신 것입니다.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 70인 장로들을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로 불러다가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언약 체결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답과 아비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이 사람들이 각광받고 기대받는 사람들입니까? 단순히 아론의 아들들이라는 이유가 아니고, 이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그냥 보통 사람을 불러 올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언약을 맺을 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자리에 하나님이 그들을 동석시킬 만큼 그들은 탁월한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충격이 어땠을까요? 얼마 전에, 조금 전에 제사장 위임식이 끝났습니다. 제사장 위임식이 끝나고 이제는 위임받은 제사장이 하나님께 일상적인 예배를 드리고 일상적인 성전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2. 분향 규례와 순종

그런데 왜 죽었는가 하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왜 죽었습니까?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아니한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습니다. 분향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많이 보았습니다. 성막 전체 그림을 보시면 단순합니다. 여러분이 이 그림은 머릿속에 쏙 넣고 계셔야 합니다. 들어오면 제일 먼저 무엇을 만납니까? 번제단을 만납니다. 번제단 보이시지요? 번제단에 불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번제단을 지나면 이제 성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성막 안에 들어가면 그 안에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소 안에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은 이 안에 있습니다. 분향단도 있고, 떡상도 있고, 등잔대도 있습니다. 그중에 분향단입니다. 분향단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향단 위에 보니까 분향하는 향로가 있습니다. 향로가 있어 이것을 향로라고 하는데, 이 향로에는 향이 타고 있어야 합니다. 이 향이 타고 있는데, 향을 태울 불이 어디에서 와야 되느냐, 향을 태울 불을 어디에서 가지고 와야 되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어디에서 가져와야 될까요? 번제단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저 밖에 있는 번제단에서 가져와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번제단의 불은 사람이 피운 불입니까, 하늘에서 내린 불입니까? 하늘에서 내린 불입니다. 이 번제단의 불은 사람이 어디 가서 비벼 가지고 만든 불이 아니고 하늘에서 내린 불이니까, 이 불을 가지고 향로에 불을 붙여서 향을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을 쓰지 않고 다른 불을 갖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레위기 16장 12절과 13절 말씀을 제가 먼저 읽어 보겠습니다.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채우고…" 향로는 분향단의 향로입니다. 이것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이 제단은 번제단입니다—"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왜 그렇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니까 그렇습니다.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이렇게 죽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다른 불을 갖고 와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번제단의 불을 가져와서 향을 피우는 불로 사용해야 합니다.

2-1. 하나님이 지정하신 향

불은 번제단의 불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향은 어떻게 만듭니까? 향 만드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0장 7절에서 9절을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또 저녁때 등불을 켤 때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라." 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라 하셨으니까 끊으면 안 됩니다. 향은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백성들의 기도이니까요. 9절,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하셨습니다.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정하신 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향이 무엇이냐 하면 30장 34절에서 38절을 보시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같은 분량으로 하고…" 우리가 이것들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정하신 향품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정해서, 35절,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셨습니다.

36절, "그 향 얼마를 곱게 찧어 내가 너와 만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 이 향은 너희에게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이 향이 좋아서 너희 집에서 너희도 여의 집에서 이 향 만들어 가지고 향 피우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소 안에서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냄새를 맡으려고 이 같은 것을 만드는 모든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분향단을 우리가 그림을 생각해 보시면, 그 분향단의 향로에 들어갈 불은 하나님이 지정하셨습니다. 번제단에서 불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불로 피울 향은 하나님이 그 향도 만드는 법을 지정해 주셨습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아무거나 갖고 오면 됩니까? 안 됩니다. 아무 불이나 가지고 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2. 다른 불의 의미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철저하게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지정하고 정하신 것 그대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질문입니까? 나답과 아비후가 왜 하나님이 지정하신 번제단의 불을 갖고 오지 않고 다른 불을 갖고 왔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우리가 묵상을 깊이 해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번제단에는 아침저녁으로 양이 탑니다. 백성들이 가지고 온 제물이 번제를 드리며 그것이 계속 탑니다. 그러면 거기서 기름이 떨어집니다. 그 기름이 불 위에 떨어집니다. 불을 태우는 타고 있는 목재는 기름으로 시커멓게 얼룩이 져 있습니다. 거기서 불을 취해서 가는 것이, 나답과 아비후에게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리는 향을 만들어서 향을 피워 드리는 것으로는 이것은 너무 더럽지 않은가, 이것은 너무 좀 추하지 않은가 싶었을 것입니다. 맨날 불태워 가지고 기름이 뚝뚝 떨어져 가지고 맨날 탄 냄새 나고, 이런 것 말고 어디서 깨끗하게 불을 만들어서 내가 깨끗한 불을 가져다가 하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 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라도 우리가 흔히 교회 생활할 때, 믿음 생활할 때, 성경에서 기록된 것보다 내 생각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합의해서 정해진 규약과 규정보다 그건 불편하고 내가 편하고 내가 보기에 아름답고 내가 보기에 귀한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생각보다 그런 오류에 굉장히 많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는 굉장히 편의주의인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이 지정한 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불편하더라도,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내가 그것이 싫더라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정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내 생각에 옳고 내 생각에 예쁘고 내 생각에 바르면 그냥 해버립니다. "이거 되게 이쁜데" 하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절대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는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냥 한 가지 예를 들면, 목회자인 제가 강단에 올라올 때 시계를 차지 않습니다. 시계를 차지 않을까요? 시계가 없어서 차지 않을까요? 시계가 많은데 차지 않는 이유는 빛 반사 때문에 불편하실까 봐입니다. 반짝이 넥타이를 하지 않습니다. 넥타이 핀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혹시 그것 보시다가 설교 말씀 한 말씀도 놓치실까 봐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 배려하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하나님 말씀을 먼저 우선시하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그 불이 기름이 떨어져서 시커멓게 되고 얼룩이 지고 더럽고 냄새나는데, 이 불보다 더 좋고 깨끗한 불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되겠다 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말씀보다 앞서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로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 말씀을 먼저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불편하더라도 내가 그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불, 하나님이 내리신 불, 그 질적 차이를 그것을 우리가 인간이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리신 불인데, 그 불을 꺼뜨리면 안 되고 그 불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려야 하는데, 나답과 아비후가 죽었습니다.

3. 지도자의 책임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하셔야 할 것은, 너무하시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합니까? 하나님이 이런 정도의 일로 사람을 둘이나 그 자리에서 죽게 하시다니, 너무하시지 않는가 하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 왜 이런 정도로 아론의 두 아들을 동시에 사망하게 이렇게 하셨는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지도자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지도자를 하나님은 아주 엄격하게 대하십니다.

백성의 지도자들, 아까 보셨지요, 서열이 모세, 아론, 그다음입니다. 나답, 아비후가 70인 장로보다 앞서 있습니다.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이 위임식을 받고 처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하는 첫 단추부터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예배를 자기 마음대로 이끌어 가면 앞으로 예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문제가 됩니다.

모세 보십시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그것은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해서 "네가 말로 반석에게 명령해서 물을 내라 하라" 그랬는데, 모세가 화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도 모세를 괴롭히니까 명령하지 않고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 쳐버렸습니다. 그런데 원망했던 백성들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반석에서 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명령하지 않고 두 번 쳐버린 모세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갑니다. 이중 잣대 아닙니까? 사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헌신했는데,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가?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백성들 앞에 있는 영적 지도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시는 것입니다.

지도자, 야고보가 그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야고보서 3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더 큰 심판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생 된 우리가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지도자 자리에 있으면, 교회 중직의 자리에 있으면 그만큼 영적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생각하지 않고 자꾸 군림하려고 하고 인사 받으려고 하고 결정하는 자리에 서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책임을 항상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 책임이 중하구나, 이 책임이 무겁구나, 이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를 그 자리에서 데려가 버리신 것입니다.

철저하게 이것을 보고 백성들이 무엇을 느꼈을까요? 철저하게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구나. 예배가 굉장히 중요하지만 또한 무서운 것이로구나. 하나님께서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데 이 질서대로 행하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이것을 백성들이 깨닫는 것입니다.

3-1. 다른 복음의 경고

또 한 가지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신약 시대로 넘어옵니다. 지금 여기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타 죽었습니다.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 이것이 어떤 단어로 바뀌느냐? "다른 복음"이라는 단어로 바뀝니다. 들어보셨습니까? 다른 복음. 갈라디아서 1장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 보시면 "다른 복음"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반대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이고 다른 복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전한 복음이 그리스도의 복음인데,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 교회를 다니면서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옳은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느끼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방인이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았습니다. 구원은 공로로 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은혜로 받았습니다 하고 이렇게 전했습니다. 할례 받지 않아도 우리는 다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고 그렇게 전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까?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는 것이 복음의 본질인데, 그리고 나서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개척하고 다른 데 갔습니다. 유대인들이 와서 다른 복음을 전합니다. 가짜입니다.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할례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할례 받았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 받았는데 너희들 할례 받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불로 분향한 사람을 하나님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도 영적 죽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다른 불로 분향하는 것, 다른 복음을 혹시 내가 받아들이고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적용해 보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 다른 복음이 무엇입니까? 물질이 나를 구원한다, 돈 복음, 권력 복음, 명예 복음, 자식 복음, 얼마 많습니까? 다 예수 그리스도만 믿는 것이 아니고 다른 세상의 온갖 가지 혼합적인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다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는 도무지 아무 이름이 없습니다. 구원에 쓸 이름을 주신 이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없습니다. 성경은 구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오신 메시아 이야기이고, 사도행전 이후부터는 오신 메시아가 활동하신 교회의 역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른 복음도 없고 다른 불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세상에 아무리 물질주의로 세속화되어 간다 해도 교회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 간다 하더라도 교회 공동체는 거룩한 공동체, 그리스도의 복음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참된 불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굉장한 경각심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혹시 나는 다른 불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매일같이 말입니다.

3-2. 고라 일당의 교훈

민수기 16장 말씀도 두 구절을 적어 두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지금 여기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서 두 사람 나답과 아비후를 태워 죽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는 두 사람이 죽었는데, 민수기 16장에 보면 250명이 죽습니다. 어떤 사건이냐? 들어보셨습니까? 고라 일당 사건입니다. 고라 일당이 누구냐면, 출애굽하던 중에 모세의 영적 지도력에 반기를 든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과만 소통하시느냐? 하나님은 우리와도 말씀하실 수 있다. 왜 당신이 하나님을 독점하느냐?" 이래서 고라 일당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포섭했습니다. 고라, 다단, 아비람 같은 일당들이 그때 포섭된 이스라엘의 백성의 지도자가 250명이나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 하셔서, 고라 일당 거기에 주동자들을 가족과 함께 따로 모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250명의 지도자들에게 향로 하나씩을 가슴에 안으라 하셨습니다. 따로 이렇게 떼어 놓으시고, 갑자기 땅이 갈라집니다. 고라 일당은 땅속에 빠져서 죽습니다.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켰습니다. 250명에게는 갑자기 하나님께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다 태워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불이 이렇게 무섭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민수기 16장 3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250명을 불살랐더라." 이렇게 하나님이 그들을 태워 죽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위임식 받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꽃길을 마음껏 걸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고 우리 삶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4. 하나님의 불의 두 측면

레위기 9장 24절과 10장 2절 말씀을 한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레위기 9장 24절을 보시면,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에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는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이것은 제사장의 위임식 끝나고 나서 하늘에서 불이 내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서 번제물을 태우고 백성들을 기쁘게 하고 경외감을 가지게 하는 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장 2절의 불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입니다. 10장 2절의 불은 사람을 죽이는 불입니다. 너무 무섭지 않으십니까? 너무 두렵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행하면, 그 불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내려서 우리 인생을 새롭게 불붙여 주는 불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이 불은 나중에 우리가 지옥 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은 자가 당할 둘째 사망의 해인 불이 됩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타 죽었지만, 오늘 이 시대 사람들은 이 안에서 같은 교회 다니고 같은 가방 들고 같은 신앙생활 하는 것 같지만, 양과 염소를 분리하실 그때가 되면 나중에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해서 영혼이 꺼지지 않는 그 지옥 불에서 고통당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불이 너무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말씀보다 앞서시면 안 됩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나하고 정말 친한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나 너 따라가다가 나까지 죽을 순 없으니까,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4-1. 거룩과 영광의 의미

이 사건이 있고 난 후에,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후에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0장 3절을 보시면,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아론은 지금 아들을 잃었습니다. 순식간에 두 아들을 한순간에 잃었습니다. 충격받고 슬픈데, 너무 충격을 받으면 슬픔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아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라." 아론이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거룩"과 "영광"이라는 단어를 제가 적어 두었는데, 거룩은 우리가 잘 압니다. 카도쉬(קָדוֹשׁ) 혹은 카다쉬(קָדַשׁ), 거룩하게 하다. 그것이 너무 많이 들어서 구별하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광"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동사가 카베드(כָּבֵד)입니다. "무겁게 하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출세해서, 내 이름으로 내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하고 언론 인터뷰에 한번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돈 많이 벌어서 하나님께 헌금 많이 하는 것 뭐 그런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부수적인 것이고, 정말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카베드 하는 것입니다.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무겁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대로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무겁게 받아들여서 그대로 따르고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까?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그냥 다른 불로 분향하고 이런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기 카베드,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지 않은 죄를 하나님이 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 말씀을 받아서 실천하고 살아가고 적용하는 데 얼마나 무겁게 여기고 계십니까? 그것을 무겁게 여기면 여길수록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헌금이나 내가 시간에 봉사나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는 것으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께 제가 영광 올려 드리게 하옵소서 하고 그렇게 기도하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하나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무겁게 여기고 따라가고 순종하셔야 합니다.

5. 장례 절차와 제사장의 구별

아직까지 두 사람의 시신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두 사람 시신 처리는 어떻게 할까요?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지금 이 사람 미사엘과 엘사반은 죽은 나답과 아비후하고는 사촌 사이입니다. 아론과 사촌 사이입니다. 아론의 삼촌의 아들들이니까 아론과 사촌 사이니까, 죽은 나답과 아비후하고는 오촌입니다. 오촌쯤 되면 슬픔이 좀 어떻습니까? 오촌쯤 되면 오촌 아저씨가 돌아가셨는데 가서 3박 4일 동안 계속 통곡하고 그러십니까? 애도를 표하고 그냥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이 장례 못하겠습니다. 두 동생 이다말과 엘르아살이 장례 못하겠습니다. 모세가 오촌 둘을 불러서 장례를 진행합니다.

그러면 배려 한 가지가 있고, 또 한 가지는 지금 아론과 이다말, 엘르아살, 이 사람들은 제사장의 위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성별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장례 진행하러 가버리면 시체를 가까이 하게 되니까 성물을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함에…" 오촌 아저씨뻘 되는 사람을 불러서 그랬습니다.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라."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옷이 죽은 나답과 아비후가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오촌 아저씨뻘 되는 시체 처리하는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발가벗고 장례 진행합니까? 그것을 여기에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당연히 옷 입고 장례 절차 진행하는데, 여기에 이것을 기록해 둔 이유는 죽은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의 의복을 입은 그대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옷 입은 채"를 왜 여기에 두었을까요? 보통 불이 나와서 타서 죽었으면 옷이 어떻게 됩니까? 옷이 어떻게 됩니까? 옷부터 탑니다. 닫아 버리니 옷부터 타고 그다음 시신이 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옷 입은 채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상한 죽음이지 않으십니까?

이것을 여기 적어 둔 이유는, 이 죽음이 자연 화재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방화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 죽음은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다, 이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옷은 멀쩡하고 두 사람 나답과 아비후는 그 자리에서 죽은 것입니다. 이 두 분의 시신을 진영 밖으로 메어 갑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는 백성들은 어떤 마음이 들까요? 어떤 마음이 들까요? 두렵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았으니까, 하나님이 직접 하신 일이니까, 옷이 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지금 여기 나옵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셋째 아들 넷째 아들입니다.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즉 지금 아론도 제사장이고 엘르아살, 이다말도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해야 하니까, 머리 풀거나 슬픔을 표현하지 말라는 얘기를 한 것입니다.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누가 슬퍼해 준다는 말입니까?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위해서 누가 대신 울어준다는 뜻입니까? 백성들이 대신 울어준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시신을 진영 밖으로 메어 가면 너의 형 나답과 아비후의 장례는 백성들이 슬퍼하고 울어 주며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줄 터이니 너희는 이 일에 전념하라, 그 말씀입니다.

5-1. 관유의 의미

왜 그렇게 하느냐? 우리가 생각할 때는 인간의 도리도 못하게 하는 것이냐고 이렇게 반문할 수 있는데,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서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관유가 무엇입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제사장의 위임식 할 때 관유를 바릅니다. 부어 드렸습니다. 관유는 구별, 성별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것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막 안에 있는 여러 성물에도 관유를 다 바릅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밖으로 반출하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하나님 것이니까. 아무리 좋아 보이고 혹은 아무리 낡아서 이것이 쓸모없다 하더라도 개인 집에 가져가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관유를 부었다, 성별했다, 구별했다는 뜻입니다. 즉 너희는 이제는 너희 형제의 것이 아니다, 부모의 자식이 아니다, 너희는 구별되고 성별되어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위임을 받았으니 이 일이 우선순위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너희는 관유를 부은 자다, 관유가 너희에게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21장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구약에서만 하나님이 이렇게 강력하게 구별하셨는가, 인간의 도리도 못하게 하셨는가 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8장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어떤 제자가 물어봅니다.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제가 어떻게 할까요?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우리 성경에 나오는 가르침은 철저하게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것입니다. 살아 계실 때, 살아 계실 때 효도하고, 살아 계실 때 잘하고, 세상 떠나고 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니, 이 땅에서 너희가 살아 계실 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공경"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면, 그 원어의 풀이를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우리가 조금 전에 해보았습니다. 카베드(כָּבֵד), 무겁게 여기다, 공경하다, 이것도 역시 그 단어입니다. 즉 부모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는 것을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서 뭘 그렇게 한다고 야단법석 떨고 막 그렇게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제사장 직무를 우선순위로 생각하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도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 같은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요즘은 이제 이것이 많이 희석되어서, 목사님도 가정이 있는데, 가정의 한 자녀의 아버지이고 한 여인의 남편이고 또 부모의 자식이고, 이런 얘기 하십니다. 가정 사역 얘기 많이 하십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목회자의 가정이 행복하고 목회자의 가정이 건강해야 교회 공동체도 잘 이끌고 잘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순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선순위. 이제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교회가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우선적으로 수행하고, 말씀 전하고 이 자리에서 있는 것이 그것이 우선순위입니다. 그 우선순위는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철저하게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사장에게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월이 간다고 말씀이 바뀌고, 세월이 21세기가 됐다고 가정이 더 중요하게 됐다고, 복음은 딴 데로 가고 그것 붙들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복음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우선순위의 선택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에게 강력하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같은 논리가 적용되고, 이것을 성도들이 목회자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맨날 옆에서 "아 제 아들인데, 가정 있잖아요. 목회가 있죠" 이런 얘기 하지 마십시오. 그런 얘기는 절대로 도움이 안 됩니다.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교회와 맡겨 주신 사명이 우선입니다. 그것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이 그다음은 아시고 책임지십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분명히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아니 지금 아론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순식간에 장대 같은 아들 둘을 잃었는데, 형님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잠깐도 못하고 시체에 손도 못 대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철저하게 하게 하십니다.

6. 분별의 명령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왜 중요하냐 하면 레위기 전체를 여러분들이 자세히 보시면, 하나님이 아론에게 말씀하실 때는 항상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그러면 이제 모세가 그 말씀 받아서 아론에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유일하게 하나님이 직접 아론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왜 특별하게 아론에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론에게 아들이 죽었습니다. 아들이 죽어서 하나님이 위로하는 말씀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다짐을 받는 말씀입니다.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는데, 하나님은 다른 얘기 하십니다. 불에 대해서 그 죽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시고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죽음을 면하리라 이는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분별'에 동그라미 치십시오.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즉 하나님이 지금 아론에게 명령하고 부탁하고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분별을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분별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나답과 아비후가 분별력이 없었다는 얘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명령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라." 분별. 그러면 제사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는 뜻입니까? 위임식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보았습니다. 성결이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이제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분별입니다.

분별을 위해서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마라. 포도주 독주 마시면 어떻게 됩니까?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불로 분향하는지, 이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잊어버리고 합니다. 포도주나 독주만 문제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로 그대로 가져와 보시면, 포도주와 독주, 이것도 분별에 문제가 되고, 그다음에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요즘 이 시대가 지나치게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도 분별의 문제가 됩니다. 사람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고 어울려 다니고, 목회자가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사실은 분별력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운동 좋아하는 것, 기타 취미 좋아하는 것, 분별에 다 문제가 되고 걸림돌이 됩니다.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거룩함이고, 또 하나님께서 직무를 수행하기에 꼭 필요한 것은 분별인데, 이것을 하나님이 아론을 불러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지켜라, 가르쳐라, 그렇게 행하라. 우리는 가정의 제사장들이고, 가정에서 자녀들을 기르고 있고, 손주들에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알려줘야 할 거룩한 제사장, 왕 같은 제사장들 아닙니까? 오늘 이 시대 우리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포도주와 독주에 취했고, 세상 가치에 취했고, 다른 것들 여타에 취했으면 어떻게 분별이 됩니까? 무엇이 선한지 무엇이 악한지,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이 부동산을 사야 할지 팔아야 할지, 남들 다 하는 것을 나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 읽고 그리고 기도하고, 이것이 가장 우선이 되면 꼭 분별력이 없겠습니까? 그 위에서 판단하고 그 위에서 결정하는데, 하나님은 아론에게 이것을 철저하게 요구하셨습니다.

7. 하나님의 긍휼하심

이제 모세가 이런 얘기를 또 합니다.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인즉 내가 이같이 명령을 받았느니라."

즉 우리가 앞에서 다섯 가지 제사 볼 때 보았습니다. 번제물은 제사장이 먹을 수 없습니다. 다 태워서 드려야 합니다. 소제물은 제사장이 먹을 수 있습니다. 화목제물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제, 하나님께 올려 드린 것, 흔들어 드린 요제, 이것도 먹을 수 있습니다. 제사장의 몫이니까요. 그것을 지금 모세가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너희가 제사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으니까 거제나 요제나 소제나 이것을 먹으라고 해서 이것을 먹어야 제사가 완성이 되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엘르아살과 이다말, 그리고 아론이 아들이 죽고 형님이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앉아서 고기 뜯고 있고 싶겠습니까? 그럴 마음이 생깁니까? 그런 지금 마음 상태, 심리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다음 16절, "모세가 속죄제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더라." 속죄제물을 먹어야 합니다. 그 고기나 기름과 내장은 태워 드리고, 고기는 먹어야 합니다.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이렇게 모세가 노했습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 속죄 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을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에게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주신 것이니라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물은 마땅히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라." 모세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무섭게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아버지 아론이 이렇게 말합니다. 19절,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으나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이런 일'이 무엇입니까?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일입니다. "오늘 내가 속죄 제물을 먹었다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 우리가 먹어야 할 응당의 대가를 포기하면서 하나님께 사죄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는 얘기를 아론이 지혜롭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죽은 나답과 아비후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를 하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장례식도 참석 못하고, 나가서 시신도 정리 못하고, 머리를 풀고 한번 울어 주지도 못했는데, 거기서 고기 먹지 않고 우리가 지금 최소한의 애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하나님의 반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반응이 없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넘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은, 우리가 구약의 하나님은 굉장히 무서운 분이라고 여깁니다. 말씀 그대로 하지 않으면 다 태워 죽이고 뭐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아버지의 마음, 두 형제의 마음을 이해하고 넘어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태워 드리고, 아론의 이 마음을 하나님은 그대로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0장 말씀은 아주 짧은 말씀이지만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상당히 큽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움과 하나님의 긍휼하시는 사랑도 볼 수 있고, 어차피 결국은 이것도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제사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것을 먹어야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뭐 그것까지는 넘어가 주시는 것입니다. 불같이 화내시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리고 다른 불로 분향하는 것,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안 된다는 것, 제사장의 직무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이 말씀 잘 기억하시고, 오늘까지 레위기의 거의 한 단락이 끝납니다. 이제 다음 주에는 11장에서 15장까지 하나의 큰 덩어리가 정결 규례이고, 이 정결 규례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한번 공부하신 것도 살펴보시고, 예습도 복습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이렇게 적용된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말씀보다 내 생각과 내 논리를 앞세울 때가 많았습니다.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나답과 아비후처럼 살지 않도록, 주여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 붙들고 살게 하시며, 다른 복음은 없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 진리 앞에 살게 하옵소서. 물질이 복음이 되고 사람이 복음이 되는 악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이나 사람이나 인간관계 그 여타의 다른 것들에 취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임을 깨닫고 그 말씀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 지켜가며 그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시며, 언제나 우리가 가정의 영적 제사장, 우리 공동체의 제사장임을 깨닫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분별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