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8강 - 정결규례와 회복 (레 11-15장)
레위기 11장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육지의 모든 짐승 중 너희가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오늘은 레위기 공부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교재를 보시면 38쪽에 있는 주제로, 정결규례와 회복에 대해서 함께 나누겠습니다. 레위기는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당히 정교하고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10장까지 공부했던 것을 한번 반추해서 떠올려 보시면, 첫째로 1장에서 7장까지는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 제사 예배에 대해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다섯 가지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였습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예배 형식이 있었는데, 예배 형식을 정해주시면서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배를 집례하고 인도하며 이끌어가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8장과 9장에서는 이 예배를 집례할 제사장의 위임식을 진행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 네 명에 대한 위임식을 진행하고, 제사장은 이런 직무와 직책을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백성들 앞에 공적으로 공포하셨습니다.
그리고 10장에는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여호와의 불이 나와서 타 죽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 앞에 하나의 본보기를 보이고 경고하신 내용입니다. 이제 제사 다섯 가지를 다 설명했고, 예배를 집례할 제사장의 직무를 말씀하셨으며, 본보기까지 말씀하셨으니 이제 순서상 누가 나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배 형식이 있고 예배를 집례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배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성도가 어떠해야 되는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한마디로 말하면 11장부터 15장까지 우리가 오늘 배우는 내용은 정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결에 대해서 율법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몇 가지로 함께 나누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레위기 큰 그림을 그리고 생각하면 레위기는 상당히 조직적이고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배, 예배를 집례할 제사장, 예배드리는 성도. 오늘은 성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1.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먼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이 교재 38쪽에 나오는데 먹는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먹는 것을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먹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따지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먹는 것도 다 지정해 주셨습니다. 먹어야 될 것이 있고 먹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육지 짐승, 날짐승, 그리고 물에 있는 것 이 세 가지를 규정하셨습니다.
1-1. 육지 생물
먼저 육지 생물 중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1장 3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모든 짐승 중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우리는 이제 문구에 굉장히 많이 집착합니다. 새김질하는 것은 왜 새김질하는 것을 먹으라 했을까? 굽이 갈라졌는데 왜 굽이 갈라진 것을 먹으라 했을까? 이것을 고대부터 시작해서 현대까지 해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알레고리적 해석 곧 풍유적 해석이라 해서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굽이 하나의 통굽이 아니고 갈라졌는데, 이 굽이 갈라진 것을 신약과 구약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정도까지 해석해 나가도 될까요? 사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너무 비약해서 해석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조금 후에 세 가지 정도로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을까 하는 것을 보려고 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육지 짐승 중에도 먹어야 될 것과 먹지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하셨는데, 11장 4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교재에는 나와 있지 않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이 '부정하고'라는 말을 보려고 이 본문을 읽은 것입니다. 부정하다. 여기 교재에 나와 있는데 히브리어로 타메(טָמֵ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타메는 종교적인 의미로 부정한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은 부정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불쾌하지요. "넌 부정한 사람이야"라고 하면 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히브리어의 타메라는 말은 제사에 쓰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좀 더 넓은 의미로 보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즉 이런 음식을 먹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예를 들어 내가 몸이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다면, 걸어서 자기 발로 어떻게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겠습니까? 몸이 아파서 사지가 병들어 누워 있으면 그 사람은 예배드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부정하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즉 이런 음식을 먹어서 예배드릴 수 없다는 의미도 있고, 이 사람이 몸이 아파서 성전에 나올 수 없다는 의미도 부정하다고 말하며, 어떤 일 때문에 멀리 출장 가서 저기 멀리 있어서 예배드릴 수 없는 것도 타메,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옮겨 놓으니까 굉장히 부정하게 들리는데, 그런데 이것은 그렇게 부정한 말이 아니라고 보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뒤에 또 나오기 때문입니다. 뒤에 나올 때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이를 낳은 여인을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아이 낳은 여인이 부정합니까? 생명을 출산했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이 타메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를 못하면 레위기는 성차별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를 낳은 여인을 부정하다고 말하다니! 그런데 아이를 낳으면 예배당에 나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전에 못 나옵니다. 번제, 소제 이런 것 못 드립니다. 아이를 낳고 피를 많이 흘렸는데 어떻게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성막에 나와서 번제 드리고 소제 드리겠습니까?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을 부정하다, 타메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그래서 지금 육지 생물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짐승들은 먹으면 너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기에는 부적합하다고 규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 이유를 학자들이 밝히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지 않는 것은 위생상 안 좋은 것인가? 아니면 건강에 나쁜 것인가? 그런 말 많이 들어보셨지요? 그런데 이렇다 할 해답을 찾을 길이 별로 없습니다. 조금 후에 또 설명하겠습니다.
1-2. 수중 생물
두 번째로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수중 생물 중에 먹을 수 있는 것은 지느러미 있는 것과 비늘이 있는 것입니다. 9절 말씀입니다.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10절에 보니까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아까 육지 생물은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부정은 이것 먹으면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기에 부적합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증하다고 했습니다. 부정보다 가증이 더 센 말입니다. 가증하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쉐케츠(שֶׁקֶץ)라고 합니다. 쉐케츠는 우상숭배의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즉 이방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지느러미가 없고 비늘이 없는 수중 생물을 우상으로 섬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너희는 입에도 대지 말라, 그런 것을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3. 날짐승
그리고 또 날짐승 중에 레위기 11장 20절에 보면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이 나옵니다. 날개도 있고 네 발도 있어서 날기도 하고 땅에 기어 다니기도 합니다. 이것은 너희가 혐오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혐오하다라는 단어도 역시 똑같은 쉐케츠라는 단어입니다. 이것도 역시 우상숭배 대상입니다. 날개 있고 네 발 가진 곤충을 이방인들이 우상으로 섬겼으므로 그런 것을 너희는 입에도 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정리해 보면 먹지 말아야 될 것으로 육지 생물, 수중 생물, 날짐승이 정리가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 들어가서 왜 그런가 하기보다도 세 가지 정도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4. 음식 규정의 의미
첫째는 창세기 1장을 중심으로 한번 정리를 해보면,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늘, 땅, 바다 공간을 이렇게 나누셨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짐승은 날짐승입니다. 날짐승은 하늘을 나는 데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날개가 있어야 됩니다. 당연히. 그리고 날짐승이 나무에도 앉고 땅에도 잠시 앉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날짐승에게는 일반적으로 다리 두 개 정도만 필요하지 네 개까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것은 육지 생물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의 섭리대로 날짐승이면 날개 두 개, 그리고 허락한다 해도 다리 정도 두 개, 이 정도는 너희가 먹어서 그 종류대로 창조한 것 종류대로 너희에게 유익한 것을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육지 생물은 무엇입니까? 육지 생물은 짐승을 잡아먹고 피 흘리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되새김질하는 것은 주로 초식동물입니다. 초식동물은 너희의 먹거리로 삼아도 좋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물속에 있는 수중 생물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어야 앞으로 직진하고 나갈 수 있습니다. 물에 살려면 그것이 적합합니다. 즉 창세기 1장을 기준으로 하나님이 이것을 나눈 기준은 종류대로 창조하셨는데 그 종류에 가장 합당한 짐승만 너희의 먹거리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른 생물들도 다 창조하셨지만 말입니다.
둘째는 땅과 관련해서 보면, 히브리 사람들 생각에서 땅은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니라"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땅은 곧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땅은 죽은 시체를 받아들입니다. 제가 여기 적어 두었는데, 출애굽기 15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 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땅이 그들을 삼켰다. 즉 죄인들을 하나님이 땅이 입을 벌려 삼키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뱀 같은 종류는 어떻게 됩니까? 배를 땅에 붙이고 항상 다니고 흙을 먹습니다. 미꾸라지는 어떻습니까? 물속에 살아도 항상 땅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런 것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땅에는 시체도 있고 위생상 좋지 않으니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가 제일 중요한데, 창세기 3장과 관련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선악과 사건이 나옵니다.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악과를 공부할 때 선악과 열매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까? 아니면 그것을 먹지 말라 한 하나님의 명령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어릴 때 교회학교 다닐 때 그림을 그려 가지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러면 선악과 열매가 항상 사과였습니다. 사과 먹으면 안 되는구나, 어릴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가 사과든 복숭아든 딸기든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먹지 말라 하신 명령에 대한 순종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창세기 3장을 기준으로 이 명령을 다시 조명해 보면, 이것을 먹고 먹지 않고, 이것을 왜 먹지 말라 하셨나 여기에 너무 깊숙이 집착하고 들어가고, 아까 말씀한 것처럼 굽이 갈라진 것 하나는 신약이고 하나는 구약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나간 해석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위생상의 문제라면,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지 않는 것을 먹으면 몸에 큰일 나는 것이라면, 신약 시대 때 오면 다 허락하시는데 그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신약 시대 때 와서는 다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것을 다 먹으라고 하셨겠습니까? 몸에 안 좋은 것은 아예 먹지 말라고 끝까지 먹지 말라고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섭리에 따라서 아까 말씀드린 창세기 1장 기준 혹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의 말씀과 그 명령과 그 깊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이해하셔야 됩니다. 가장 정확한 답은 나중에 우리가 천국 가서 하나님께 여쭤보는 것이 제일 좋은 정답입니다.
1-5. 신약의 전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신약에 가면 사도행전 10장에 가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신약 시대 때 가면 다 먹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기도하다가 하늘에서 보자기가, 광주리가 자꾸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0장 11절에서 13절을 읽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여기 보면 각종 땅에 있는 네 발 가진 짐승, 이 중에는 굽이 갈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는 것, 날개도 있고 네 발 가진 곤충도 있다는 것이고,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지금 여기 레위기에 금지된 것들이 여기 다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14절, 15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베드로는 이것을 다 지켰습니다. 지금까지 유대인이니까,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이 깨끗하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오면 다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제는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들어가고 세계적으로 복음이 뻗어나가야 되는데, 이 먹는 것 때문에 걸려서 복음이 뻗어나가지 못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제는 다 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13절 그리고 10장 31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되느냐 안 되느냐 이 논쟁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믿음이 어린 사람이 그것 먹는 것 보고 실족할까 봐, 그렇다면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10장 31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것이 결론입니다.
오늘날 그렇다면 다시 이 레위기로 돌아가면, 우리는 구약의 말씀을 신약의 복음에 비추어서 보셔야 됩니다. 성경을 구약 따로 신약 따로 보시면 안 되고 통으로 같이 보셔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왜 돼지는 먹지 말라 하시고 토끼도 먹지 말라 하시고 했는지, 그것이 위생상 나쁜 것인가? 몸에 나쁜 것인가? 미꾸라지 그렇게 맛있는데 왜 먹지 말라 하셨나 막 이렇게 들어갈 것이 아니라, 창세기 3장의 기준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명령이었구나 하고, 여기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것이 결국 바울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음식 문제는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셔야 됩니다. 정리가 되시지요?
2. 부정과 정결의 의미
자, 그런데 이제 무엇이 사람을 부정하게 합니까? 레위기 11장 24절에 보면 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죽은 것을 만지면" 죽은 것은 시체입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아까 금지된 날짐승, 들짐승, 수중 생물들입니다. 이것들의 사체를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저녁까지 너희는 예배드리러 못 나온다는 것입니다. 부정하다는 말이 네가 더럽다는 말이 아니라 저녁까지 예배드리러 못 나온다, 그 부정이 나에게 옮겨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으로 신약 시대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그대로 살았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이것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0장 30절에서 32절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남에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사람의 죽은 것과 짐승의 사체를 만지면 그 부정이 나에게 온다고 믿었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사람의 사체를 내가 만지면 내가 저녁까지 부정하니까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공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서 흔들어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누가복음 7장 14절을 보십시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메는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에"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때 일입니다. 여기 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유대인들은 관이 없습니다. 유대인들 장례하는 것 보셨습니까? 저 더운 지방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냥 널판지 같은 데 시신을 얹어 가지고 위에 꽃장식 약간 하고 그냥 메서 나갑니다. 관에 넣지 않습니다. 여기 관에 손을 댔다는 말은 시신에 손을 대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체가 거룩이십니다. 예수님 자체가 정결이십니다. 예수님이 만지면 더러운 것도 깨끗해지고 부정한 것도 정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병 환자도 직접 만지셨습니다. 나병이 나았습니다. 사람들은 피하는데 오늘 우리가 진정 예수님의 제자라면 피할 것이 아니라 가까이 가셔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피하는 것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피하는 것 말입니다. 이사할 때 무슨 날은 다 피하고 막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예수 믿는 사람들은 피할 일이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피하는 날 이삿짐 센터가 놀아서 그날 이사하는 비용도 더 싸게 나올 것이고, 집도 그렇습니다. 집도 피하는데 우리는 피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정을 입을 일이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가까이 가시고 만지시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내가 가서 만지는 것이 오히려 깨끗하게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셔야 됩니다. 구약과 신약의 반전입니다.
3. 산모의 정결 규례
자, 그다음 산모의 정결 규례를 보겠습니다. 먹는 것을 이야기했고요. 자 여자가 출산할 경우에는 어떤 규례를 따라야 합니까? 좀 복잡한데요. 레위기 12장 2절에서 4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이레 동안 부정하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일주일 동안 성전에 못 간다는 뜻입니다. 일주일 동안 더럽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예배드리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또 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할례하라는 말입니다. "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나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즉 이 말은 40일 동안, 앞에 7일 했고 그리고 뒤에 33일 다 합해서 40일입니다. 40일 동안 성물을 만지지 말고 성소에 들어가지 말고 나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과연 여성에게 벌입니까? 축복입니까? 아이 낳으신 분들 생각해 보세요. 평생 동안 성전에 가서 소제물 할 때는, 소제 드릴 때는 이것 빻아야 됩니다. 그리고 또 굽기도 하고 튀기기도 하고 볶기도 합니다. 그것 안 해도 됩니다. 아이 낳고 40일 동안 공식적으로 쉬는 것입니다. 그냥 누워서 산혈이 깨끗해진다. 피를 많이 쏟았기 때문에 피가 다시 정상으로 몸에 차오를 때까지 40일 동안 공식적으로 너 교회 나오지 마. 너 예배드리지 않아도 돼. 사회가 공식적으로 여성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부정이라는 말에 취해서 아이 낳고 부정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 여자가 낳은 아들은 왜 그렇게 좋아합니까? 그래서 이것은 그렇게 보셔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딸 낳았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12장 5절 "여자를 낳으면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4일입니다.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66일. 14일 더하기 66일 해 보세요. 며칠입니까? 80일입니다. 아들 낳았을 때 딱 곱절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보면 그 당시도 숫자 셀 때 여자 세지 않았습니다. 아이 세지 않고 노인들 세지 않고 장정만 셉니다. 그러면 여성은 딸을 낳는 것을 상실감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옛날에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옛날에 우리 며느리들이, 여기 계신 분들 어머니 정도 되는 세대에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면 시어머니 보기 미안해서 애 낳고 이틀도 안 되어서 밭에 일하러 나가고 막 그러셨습니다. 미안해서요. 죄인도 아닌데요.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딸 낳았으니까 더 상실감이 있으니까 남자아이 낳을 때의 2배인 80일 동안 너는 쉬어도 돼, 아무것도 하지 마, 산혈이 깨끗해지고 마음의 상실감이 위로받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여성을 차별하는 것입니까? 여성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입니까? 후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생각 그 이상으로 훨씬 더 하나님이 인격적이고 사람을 존중하시고 사랑하시고 배려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코 성차별적인 책이 아닙니다. 딸을 낳으면 딸 낳은 그 상실감과 마음의 상처가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80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소제물 받지 않아도 되고 성전에조차 나오지 않아도 되고, 이런 일생에 이런 휴가가 어디 있습니까? 일하지 않아도 되고요.
정해진 기간이 지난 후에 어떤 제사를 드립니까?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자녀를 출산한 여인은 두 가지 제사를 드립니다. 무엇과 무엇입니까? 번제, 속죄제. 우리가 번제, 속죄제의 정신을 압니다.
왜 번제를 드려야 했을까요? 아이를 낳고 나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이 아이의 존재가 곧 나입니다. 특히 아들 낳고 나면 아들 낳은 여인의 위세가, 3대 독자 낳아 보세요, 하늘을 찌릅니다. 이 아이가 곧 나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자신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니까요. 아이는 아이고 너는 나에게 헌신해라. 번제는 헌신입니다. 자녀 출산하고 자녀에게 매이지 말고 자식 새끼 따라다닌다고, 너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 그것 잊지 말라, 그 말씀인 것입니다. 번제를 먼저 드리라는 것.
속죄제는 왜 드립니까? 속죄제는 부지중에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깨달아졌을 때 드리는 것입니다. 자, 아이 낳을 때 어떻게 합니까? 온갖 욕을 다 합니다. 막 온갖 욕. 남편 욕도 했다가 하나님 욕도 했다가. 그래서 하나님이 속죄제를, 자녀 출산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는 그 기간 동안 자신이 가졌던 여러 부정한 생각들, 출산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다 정리하고 깨끗하게 하라,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논리적인 분이십니다.
산모의 정결 규례를 정하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 여성을 절대로 차별하는 분이 아닙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여성을 대우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단은 그렇지 않은데, 여성 안수를 하지 않는 교단들이 많습니다. 여자는 목사가 될 수 없다. 여성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수 없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나님조차 여성을 다 배려하시고 사랑하시고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하셨는데 말입니다.
4. 나병에 대하여
4-1. 나병의 의미와 진단
나병을 히브리어로 보면 짜라아트(צָרַעַת)라고 합니다. 이것은 보면 광범위한 피부병을 이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한센병 나병 이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의 나병입니다. 과거에는 과학적 지식, 의학적 지식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이 안에는 진짜 나병도 있고 피부병도 있고 건선도 있고 요즘 아이들 아토피 같은 것도 있고 이제 그런 것을 다 통틀어서, 그런데 살이 썩어가고 문드러지는 것을 거기에 공통점인 것으로 다 넣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짜라아트라고 합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을 한번 보겠습니다. "피부에 색점이 희나 우묵하지 아니하고 그 털이 희지 아니하면 제사장은 그 환자를 이레 동안 가두어 둘 것이며" 이레 동안 따로 격리시켜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따로 격리시켜서 성급하게 이 사람은 나병이다, 이 사람은 아니다 이렇게 판단하지 않고 이레 동안 따로 두고 격리해서 관찰합니다.
"이레 만에 제사장이 그를 진찰할지니 그가 보기에 그 환부가 변하지 아니하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제사장이 그를 또 이레 동안을 가두어 둘 것이며" 그러면 합쳐서 14일입니다. 14일 동안 계속 보는 것입니다. 요즘 2주간 격리하는 것처럼 2주 동안 지금 격리해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레 만에 제사장이 또 진찰할지니 그 환부가 옅어졌고 병색이 피부에 퍼지지 아니하였으면" 피부병이라, 이것은 일반 피부병인 것입니다. 그러면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를 정하다 할 것이요 그는 옷을 빨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왜 제사장이 이것을 판단해 주느냐 하면, 제사장이 그 당시에 사회적인 규약의 선언을 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4-2. 확진자의 삶
나병으로 확진된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레위기 13장 45절과 46절을 보면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여기도 부정도 역시 예배드리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나병을 죄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조금 후에 뒤에 가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옷을 찢습니다. 머리를 풉니다. 윗입술을 가립니다. 멀리서 보면 표시가 금방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큰 소리로 부정하다 부정하다 계속 외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나병은 전염성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사람들은 어디에 가서 살아야 됩니까? 진 밖에 나가서 살아야 됩니다. 공동체가 많이 밀집해 있는 곳에 살지 못하고 진 밖에 나가서 살아야 됩니다.
자, 그렇게 나병 환자로 확진된 사람은 예배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런데 이 부정은 죄로 인한 부정입니까? 아니면 예배에 합당하지 않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병이 죄로 인해서 나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예를 우리 조금 후에 살펴볼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나병 환자가 다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무조건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나병 환자에게 내가 옮았을 수도 있고, 그 당시 불결한 사회 경제적 상황 그리고 영양 섭취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병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꼭 죄 때문에 나병이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다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만약에 모든 것이 죄 때문에 온 것이라면 표현이 다시 달라졌겠지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예배에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면 이 사람이 오면 공동체 전체에 나병이 다 퍼질 수 있으니까요. 나병이 발병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13장 10절에 보면 피부에, 29절에 보면 남자나 여자의 머리에나 수염에, 13장 47절, 48절에 보면 의복이나 또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나병이 있다고 나옵니다. 의복이나 가죽으로 만든 모든 것에 나병이 있다는 것은 그것은 곰팡이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집에도 나병이 있다고 나옵니다.
4-3. 회복과 정결 예식
그런데 나병 환자가 회복되었을 때는 그러면 규정이 어떻게 됩니까? 14장 4절에 보면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정결하게 되면 정결 예식을 치르는데 준비물이 있습니다. 그 준비물이 무엇입니까? 새 두 마리, 백향목, 그리고 또 홍색 실, 그리고 또 우슬초입니다.
보시면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합니다. 새를 잡습니다.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습니다. 그림이 그려지십니까? 두 마리 새를 가져와서 한 마리는 잡고 한 마리는 그 피를, 잡은 새의 피를 찍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살아 있는 새를 들에 놓으면 새가 어떻게 됩니까? 날아갑니다.
새를 왜 날릴까요?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세요. 병이 멀리 떠나가라고 새를 잡아서 새를 날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슬초는 그 피를 찍어서 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우슬초는 나병에서 나은 사람에게 뿌립니다. 그런데 백향목이 여기서 왜 나오느냐 하면, 백향목 큰 나무 하나를 베어오라는 말이 아니고 여기는 백향목 한 조각을 갖고 오라는 뜻인데, 백향목 색깔이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보시기에 붉은 빛을 띱니다.
그러면 여기 백향목이 붉은 빛을 띠고 홍색 실이라 했습니다. 새를 잡아서 피가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에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다 피입니다. 피. 네가 나병에서 나은 것은 피로 인해서 나은 것이다. 즉 이 피는 신약에 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정결의 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 그리고 14장 8절에 보시면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다 나았는데 식구들에게 합류하기 전에 일주일간 또 격리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조심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그의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로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이것이 이제 나병에서 나은 사람의 정결 예식입니다.
4-4. 네 가지 제사
그리고 나서 나병에서 나은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됩니까, 안 드려야 됩니까? 드려야 됩니다. 드려야 되는데 예배를 네 번이나 드려야 됩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부담입니다. 아기 낳은 여성은 번제와 속죄제 둘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병에서 나은 사람이 공식적으로 정상적인 사회 생활과 활동을 하려면 네 번의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그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14장 12절에 보면 "어린 수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더불어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속건제를 먼저 드려야 됩니다. 여러분 속건제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속건제는 위로 하나님과 좌우로는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속건제를 드리는 이유는 내가 나병에 걸림으로 인해서 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웃에게 폐를 끼쳤다는 뜻입니다. 이웃에게 나 때문에 나병에 옮을까 봐 저 사람이 얼마나 많이 노심초사했을까? 내 이웃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했을까? 내가 나병에 걸린 줄 모르고 내가 그냥 막 돌아다니고 놀러 다녔을 때 그때 나와 만났던 사람들이, 내 동선과 겹친 사람들이 얼마나 걱정했을까? 이것 때문에 속건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폐를 끼쳤으니까요.
두 번째 19절에 보면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립니다. 두 번째는 무엇입니까? 나병에서 나은 사람이 속죄제를 드려야 됩니다. 왜 속죄제를 드리느냐 하면, 나병에 걸려서 낫기까지 얼마나 많이 원망했겠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했을 수도 있고 나에게 나병을 옮긴 사람을 원망했을 수도 있고, 입으로 죄 짓고 손으로도 짓고 몸으로도 죄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것 다 부지중에 지은 죄를 여기서 다 씻고 가라, 그래서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무엇을 드려야 됩니까? 20절에 보면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립니다. 번제와 소제를 또 드려야 됩니다. 왜 번제를 드립니까? 왜 소제를 드립니까? 번제와 소제는, 번제는 다 태워서, 소제는 다 빻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 것입니다. 제가 죽을 병에서 나았으니 이제는 저를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다 태워서 저를 하나님께 드리고 다 빻아서 드리겠습니다. 이 결단입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나병에서 나은 사람은 네 가지 제사를 다 드려야 됩니다. 화목제 하나 빼고요. 순서가 중요합니다. 순서가. 하나님은 속건제를 먼저 드리라고 했습니다. 너 이웃을 먼저 배려해라. 그다음 속죄제 드리고 그다음 번제 소제 드려라. 먼저 번제 소제 드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정신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이웃을 먼저 배려해야 됩니다. 교회가 이웃 주민들을 먼저 섬기고 먼저 배려해야 됩니다. 나와 함께 관계 맺고 있는 이웃 사람들에게 내가 혹시 폐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을 먼저 살피고 돌보라는 뜻입니다.
4-5. 나병과 죄의 관계
이제 나병과 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제가 세 가지 예를 들어 두었습니다. 첫 번째 예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미리암이 아론과 함께 모세를 뒷담화했습니다. 모세가 어떤 여인 하나, 구스 여인 하나를 취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아론과 함께 모세의 등 뒤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만 말씀하시느냐. 모세의 지도력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나병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여기 나옵니다. 민수기 12장 9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심에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이 나병은 죄로 인해서 걸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두 번째 열왕기하 5장 27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옴에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게하시가 누굽니까? 엘리사의 종입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서 병 낫기를 엘리사에게 구했습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했습니다. 못 미더워하다가 들어가서 씻고 나았습니다.
너무 고마우니까 엘리사에게 선물을 주려고 은 한 달란트와 여러 가지를 주려고 많이 갖고 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돌아가라. 한 푼도 안 받겠다. 돌아갑니다. 게하시가 이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허락도 안 받고 뒤쫓아갑니다. 가서 말합니다. 우리 주인이 저를 심부름 시켰습니다.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만 주십시오. 그러면 나아만이 어떻게 줍니까? 은 한 달란트가 아니라 거기 하나 더 얹어서 은 두 달란트를 줍니다. 그리고 옷 두 벌을 줍니다. 그것 받아온 대가가 나병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말합니다. 나아만에게 있던 나병이 너에게 갈지어다 해서 나병 걸린 것입니다. 심판받은 것입니다.
세 번째 예가 웃시야 왕입니다. 역대하 26장 19절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긴지라" 우리 지난주에도 보았습니다. 분향단 향 피우는 것 누가 해야 됩니까? 그것은 제사장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 왕이 자기가 제사장의 직무를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아사랴가 말립니다. 안 된다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그러니까 웃시야가 화를 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치셔서 나병에 임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세 예를 보면 나병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나병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마태복음 8장 2절과 3절을 보면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너 죄를 회개하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 죄로 인해서 나병이 걸린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죄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또 베다니의 나병 환자 시몬, 마태복음 26장 6절 "예수께서 베다니에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예수님이 베다니에 자주 가셨는데, 베다니는 예루살렘 진 밖입니다. 수도 밖입니다. 여기는 약한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습니다. 여기 예수님이 자주 가셨습니다. 여기도 예수님이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너 죄사함을 받아라, 너 죄를 지적하고 이런 말씀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면 나병은 죄로 인해서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급하게 일반화시켜서 나병은 다 천형이다, 한센인들은 다 죄 지어서 하나님께 벌받은 것이다, 이것이 확대되면 어떻게 됩니까? 오늘날 우리가 고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은 다 하나님이 벌 주신 것이라고 가게 됩니다. 이런 논리로 가니까 사람들이 내가 몸이 아프고 병에 걸려도 대놓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 부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런 눈으로 보니까요. 모든 것이 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고 계셔야 됩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들에게 이렇게 시켰던 것입니다. 옷을 찢고 머리 풀고 윗입술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이 부정은 무엇입니까? 타메. 예배에 합당하지 않다. 예배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지, 내가 병에 걸렸으니까 내가 오면 오염이 되고 전염이 되니까 그런 것이지, 이 사람이 정말 큰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격리시킨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5. 유출병에 대하여
유출병은 몸에서 무언가 자꾸 흐르는 것입니다. 남성 같은 경우 무분별한 성생활로 성병이 걸려서 유출병이 걸린 사람도 있고, 여성은 일반적인 생리 기간이 지나서도 하혈하는 경우가 있고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 레위기 15장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그의 몸에 유출병이 있으면 그 유출병으로 말미암아 부정한 자라" 자, 유출병이 나으면 그다음 규정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레위기 15장 13절에서 15절 "유출병이 있는 자는 그의 유출이 깨끗해지거든 그가 정결하게 되기 위하여 이레를 센 후에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그의 몸을 씻을 것이라 그러면 그가 정하리니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자기를 위하여 가져다가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한 마리는 속죄제, 한 마리는 번제. 이렇게 드리라고 했습니다. 번제나 속죄제 의미는 우리가 다 알고 있으니까 제가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유출, 일반적인 여성의 생리는 어떻게 정리합니까? 보십시오. 레위기 15장 19절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의 몸에 그의 유출이 피이면 이레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마다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이렇게 규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성의 생리 기간 동안 여성을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그리고 여성을 격리하고 돌봐주는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여인과 동침하여 그의 불결함에 전염되면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라 그가 누운 침상은 다 부정하니라" 그런데 일반적인 생리 기간이 끝나고 나서 번제나 소제나 화목제나 속죄제 드리라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한 달에 한 번씩 매달 해야 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늘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유출이 아닐 경우가 있습니다. 15장 25절 "만일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의 불결기가 아닌데도" 정상적인 생리 기간이 아닌데도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그의 불결기를 지나도 계속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모든 날 동안은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이런 예가 어디에 나옵니까? 신약에 보면 혈루증 앓는 여인이 나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 그 여인을 제가 여기 적어 두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 25절에서 31절을 보면 우리는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열두 해를 혈루증을 앓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인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일단은 결혼했다면 이혼당하지 않았을까요?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아버지 집의 전 재산을 다 날리지 않았을까요? 만약 결혼해서 이혼당했다면 그러면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조금의 재산, 좋다는 의원 좋다는 병원 다 다니며 다 날리지 않았을까요? 빈털터리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기가 부정하기 때문에 자기 몸에 누가 손을 대면 안 됩니다. 자기도 누군가를 손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을. 그러면 율법의 정도를 넘어선 행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 갖고는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내 몸에서 능력이 나갔다. 누구냐? 그런데 여인은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율법을 어겼으니까요. 예수님이 그것을 아시고 나를 혼내려고 하시는가 보다. 그래서 여인이 망설이고 못 나가는 것입니다. 이 율법 때문에.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을 찾아내서 한 말씀도 거기에 대해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여인의 삶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다 나았음을.
왜 예수님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냥 여인이 나았으면 보내면 되는데 모른 척하고.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은 사회적인 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출병이 동네 사람들 다 압니다. 이혼당할 때 이혼 사유 동네 사람 다 압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진짜 나았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확인시켜 줘야 됩니다. 그래야 이 여인이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서 이 여인이 나았음을 확인시키고 인정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여인을 다시 살게끔 하기 위해서요. 그래서 구약의 유출병 이 규정이 신약까지 그대로 내려왔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고통받았겠습니까?
나가는 말
자, 그래서 오늘 우리가 제법 긴 내용이었습니다. 레위기 11장에서 15장까지를 한달음에 다 달렸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예배드리기에 적합한 성도의 삶, 성도의 자격, 성도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정이라는 말을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는 것만 다시 정상적으로 이해해도 오늘은 성공한 것입니다.
부정은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를 낳아서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생리를 해서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상황상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오늘 공부한 것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여성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 그것도 분명히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늘 이 귀한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깁니다. 예배드리는 자의 상태와 정결함을 요구하시고 원하시는 하나님을 배웁니다. 자녀를 낳은 여인에게 40일, 80일의 정결의 기간을 허락하시고 그들을 배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자녀에게 매이지 말라 하시고 번제를 먼저 드리라 하시고 속죄제를 드리라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습니다. 여러 가지 율법을 통해서 그 숨어 있는 하나님의 정신과 생각을 깨닫습니다. 깨닫고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깊이 임하고 있음을 더 깊이 깨닫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은즉 그 사랑 전하고 우리도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함께 느끼고 깨달은 대로 실천하고 베푸는 믿음의 백성 되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