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특강 16 -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 (15-16장)
로마서 15장 28절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아멘.
드디어 로마서가 오늘로 마지막입니다. 15장과 16장을 공부하고 마치는 날입니다. 지금까지 로마서를 공부하시면서 무척 어렵다고 생각하셨는데, 막상 해보니까 할 만하다고 느끼셨다면 성공하신 것입니다. 다 기억나지는 않더라도 다음에 다시 한번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셨어도 이번 학기는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신학을 로마서를 통해 집대성했습니다. 로마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으면 바울 서신 어디를 읽어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15장과 16장을 다루는 오늘, 사실 15장은 로마서 1장 앞부분에 자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이 15장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을 15장 뒤편에 두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바울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는 복음을 변증하는 일이 굉장히 긴급했고 그래서 첫 서두부터 복음으로 바로 들어가는 대담하고 급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1절에서 13절까지는 교회 공동체에 당부하는 내용인데, 사실 15장 1절에서 13절까지는 14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1. 성숙한 믿음의 정의
1-1.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삶
바울은 믿음이 강한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바울은 '믿음이 강하다'는 말을 14장에서도 하고 있고 15장에서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믿음이 강하다는 말을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믿음이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곤란합니다. 이는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를 뜻합니다. 여러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넓은 마음을 가진 믿음의 어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성숙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면 누구를 기쁘게 하는 것일까요? 위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변으로는 성도들과 이웃과 타인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위로는 하나님을, 아래로는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바울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이것이 바울의 생각일까요, 아니면 성경에 기초를 둔 말씀일까요? 바울은 자기 생각을 기록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님으로부터, 구약으로부터, 성경의 여러 가르침으로부터 가져와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웃을 기쁘게 하는 자라는 것도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다.
1-2.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이유는 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믿음이 성숙한 우리도 자기를 기쁘게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인데, 예수님의 일평생 이 땅에서 살아가신 삶이나 공생애를 보면 예수님도 자기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주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2-1. 받을 수 없는 자를 받아들임
그리스도께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받다'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셨는데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받으라'는 말을 헬라어로 '프로스람바노'(προσλαμβάνω)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합성어입니다. '프로스'(πρός)라는 말과 '람바노'(λαμβάνω)라는 말이 더해졌는데, '프로스'는 '곁에'라는 뜻입니다. 곁에 두고 함께 먹는다는 뜻입니다. 곁에 두고 함께 다니고, 함께 섬기고, 함께 돌보고, 곁에 두고 함께 먹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당시 주변의 여러 사람들을 프로스람바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여러 사역들을 보면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이 땅에서 사람들을 함께 살피고 함께 먹이고 함께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사람들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함께 받고 수용하신 것처럼 너희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함께 받고 수용하라고 바울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2-2.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마음 되기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5절과 6절 말씀입니다.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5절에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문맥에 의하면 예수님의 무엇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입니까? 예수님이 받을 수 없는 사람을 함께 받아서 곁에 두고 함께 먹고 마신 모습을 본받아야 하고, 예수님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않고 이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신 모습을 본받으라는 뜻입니다.
6절 말씀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 어떤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그런 말씀 많이 하지 않습니까? 내 삶의 목적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게 아니고, 내가 영광을 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 것 같습니까?
스포츠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메달을 목에 걸고 "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립니다"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이 문맥에 의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받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는 것,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그냥 개념적으로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며, 돈을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고 교회에서 기뻐하는 일에 많은 것을 헌신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겠거니 어렴풋이 그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문맥을 통해서 깊이 있게 하나하나 살펴보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의 의미가 명확해졌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나를 기쁘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며 받을 수 없는 사람을 함께 받아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바울이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2-3. 세리와 죄인의 친구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예수님의 별명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지어준 별명입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에 보면 예수님의 별명이 이렇게 나옵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예수님을 조롱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비방하고 비아냥거리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역설적으로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훈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항상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자주 하셨습니다. 식탁 교제를 항상 가까이하셨는데, 예수님이 돈이 많아서 식탁 교제를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들과 주님은 그 자리에 함께 계셨다는 뜻입니다.
오늘 바울이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너희를 받은 것처럼 너희도 피차 서로 받으라는 것인데, 주님은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받아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세리와 창기입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에 '죄인'이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죄인은 창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세리는 매국노 아닙니까? 세리와 늘 함께 다녔던 사람들이 창기들인데,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세리와 창기를 짐승보다 더 저급한 사람으로 취급했습니다. 받아주지 않습니다. 함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마시고, 그들과 함께 즐기고, 그들의 애환을 듣고, 그들의 삶을 나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이 평생 동안 하신 일이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을 받아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세리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바쁜 발걸음, 십자가로 가시는 바쁜 발걸음 가운데에도 주님이 여리고에 들어가셔서 지나가려고 하시다가 삭개오를 만나셨습니다. 삭개오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는데, 주님은 차마 그냥 갈 수 없어서 삭개오를 불러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수군거렸습니다. 예수님을 다 비방했습니다. 뭐라고 비방했을까요? '예수님도 별수없구나. 예수님도 삭개오의 돈에 결국 끌려서 들어가는구나.' 사람들은 숱한 여러 가지 비방거리로 예수님을 욕하고 뒤에서 비방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러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함께 받고 그들을 곁에 두고 함께 먹고 나누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별명입니다. 예수님의 평생 사역이 그러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주님은 십자가에서 한 강도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격이 다른 인간 아닙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들은 죽임당할 만한 죄를 짓고 십자가에 달렸는데, 주님은 그 순간에까지 그들을 받아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2절과 43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 사람이 딱 한마디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한 말은 딱 이 한마디입니다. '예수님,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 땅에서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이셨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을,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 받아들여 주시는 우리 주님, 이것이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리는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식으로 영광을 올리고 있습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헌금 많이 하면 영광을 올릴 것 같지만, 사실 말씀대로 성경대로 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방법은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나의 기쁨을 위해서 살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4. 바나바의 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그렇다 치고, 우리는 예수님 말고 사람에게서는 이런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프로스람바노하신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누가 기억나십니까? 성경의 대표적인 이런 모델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저는 사울 시절에 바울을 받아들여 주었던 바나바를 예로 들고 싶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이었던 사람을 받아들여 준 이 모습은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9장 26절과 27절에 보면 그 내용이 나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어떤 인간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옥에 넘겼고,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이 사람을 죽이십시오' 하고 죽이는 데 한 표를 던졌고, 성난 사람들이 돌을 들어서 스데반 집사님을 칠 때 사람들의 옷을 맡아주었던 사람이고,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을 조사해다가 잡아서 옥에 넘겨주는 인간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회심했습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저거 거짓말하는 거라고, 저건 분명히 덫이라고' 사람들은 그렇게 사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나바가 그를 프로스람바노해 주었습니다. 받아주었습니다. 그를 섬겨 주었습니다. 그를 제자들에게 소개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이 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이 말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앞으로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한번 계획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기쁨이 아니라 타인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 받을 수 없는 사람을 받아주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3. 바울의 자기 소개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사실 이 자기소개가 로마서 1장에 나와야 하는데, 바울은 자기소개를 1장에 하지 않고 15장 뒤쪽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 급했기 때문에 본론부터 먼저 다 전하고 15장에 와서야 자신을 소개합니다.
3-1. 이방인을 위한 제사장
16절 말씀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몇 가지 나오는데, 눈여겨봐야 할 것이 '제사장 직분'입니다. 사실 바울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기가 제사장 직분을 감당한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어떤 일을 합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그리스도는 삼중직을 가지고 계십니다. 첫째는 왕이고, 두 번째는 선지자이고, 세 번째는 제사장입니다. 옛날에 제사장이 했던 일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죄 지은 인간이 그냥 그대로 오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중간에 제사장을 세워서 인간을 대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짐승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면, 제사장 앞에서 인간이 짐승을 잡습니다. 제사장은 피를 받습니다. 그 피를 성전 제단에다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고 일곱 번 피 뿌림의 예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 사람의 죄를 전가하고 사해 줍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분이 바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고 나서는 예수님이 참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인간 제사장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교와 다리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16절을 보시면,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인데 누구를 위한 제사장입니까? 이방인을 위한 제사장입니다. 이 말은 이방인과 하나님 사이에 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예수님께서 바울을 만나주시고 처음에 그에게 하신 말씀 "이방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라는 말씀을 그가 지금도 굳게 붙잡고 사역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방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고, 이방인들이 바울에게 와서 자신의 삶을 나누고 자신의 고민을 나누고 기도 제목을 나누면 그것을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고, 하나님께서 이방을 위하여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시면 그 계획을 받아서 이방 교회에 다니며 증거하는 그 역할을 바울이 했던 것입니다.
3-2. 그리스도의 도구
바울이 자기를 소개하는 두 번째 표현은 18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여기서 뼈대를 좀 추려야 하는데, 18절의 뼈대를 한번 추려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이렇게 읽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누구를 통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셨다. 이것이 왜 바울이 자기를 소개하는 말이 되느냐 하면, 여기 주어가 누굽니까? 바울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이십니까? 그리스도가 주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라고 소개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셨다'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도구됨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도구였다. 나는 수단이었다. 내가 주어가 되어서 이 많은 일을 한 것이 아니고, 나는 그저 주님 손에 붙잡힌 도구에 불과한 하나의 인간이었을 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바울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나는 만물의 찌꺼기 같은 존재다. 나는 죄인의 괴수다. 나는 작은 자 중에 가장 작은 자다. 이 말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울의 이 고백을 보면 사실 일평생 신앙생활을 쭉 하다 보면 자랑하고 싶은 것이 좀 있습니다. 남들은 인정하건 안 하건 나는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잘했다, 그래도 나는 이 일은 정말 잘했다고 말입니다. 한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서 수십 년 동안 오랫동안 사역하고 봉사하다 보면 내가 이 교회에서 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셀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이라고 해야 정상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하나의 도구일 뿐, 내가 주어가 되고 내가 주체가 되어서 일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됨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구됨을 인정하게 되면 그다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느냐 하면, 나를 정결하게 만들게 됩니다. 악기를 연주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텐데, 울림통이 있는 악기를 연주해 보면 만약 울림통에 미세한 균열이 가 있으면 절대로 좋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미세한 균열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균열이 가 있어도 울림통이 크게 울리지 않고 소리가 멀리 뻗어나가지 않습니다. 깨졌기 때문입니다. 울림통이 깨끗해야 소리가 멀리 가고 맑은 소리가 나는 법입니다.
우리는 도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기에 좋도록 나를 깨끗하게 비워놔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이 나를 쓰시기 좋도록 말입니다.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으면 나는 도구됨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겠다고 하시는데 더러워져 있으면 어떻게 쓰시겠습니까? 주인의 집에 금 그릇도 있고 은 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고 나무 그릇도 있는데, 주인이 쓰시기에 좋은 그릇이 어떤 그릇이라 했습니까? 깨끗하게 자기를 비워서 깨끗한 그릇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금 그릇도 은 그릇도 필요 없고 깨끗한 그릇이 주인 쓰시기에 좋은 그릇입니다.
목회자가 항상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붙들고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이 도구 된 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는 자기를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영적으로 그리고 육적으로도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구 된 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평신도들도 교회에서 맡은 크고 작은 사명들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도구 된 자로서 자기를 정결하게 비워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그릇에 하나님께서 어떤 것도 담지 않으십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3-3.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 자
바울이 자기를 도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누군가가 교회를 세웠으면 거기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이미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선교 원칙입니다. 이런 선교 원칙을 따라서 선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오늘날 선교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옛날에 한 10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이 처음 전파되고 들어올 때는 이런 원칙이 지켜졌습니다. 미국에서 북장로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남장로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캐나다 장로교회가 파송하고, 호주 장로교회가 파송하는 등 세계 각 교단들이 여러 선교사님들을 이 땅에 파송했을 때, 우리나라 땅은 아주 좁디좁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님들이 다 한자리에 모여서 이 나라의 선교지를 분할했습니다. 호주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은 부산과 경남 지역을 선교했고, 북장로교회 선교사님들은 저 북쪽 지역을 선교했습니다. 여러 교단과 교파들이 이 나라 땅을 다 나눠 가지고 서로 신사협정을 맺어 열심히 선교 사역을 하자 하고 다 나눠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렇게 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나는 남이 먼저 지어놓은 터 위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했다'는 것이 바울의 선교의 핵심적인 전략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오늘날 선교 현장도 바울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부끄럽고 낯 뜨거운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자기가 도구로 쓰임받겠다는 것, 바울이 말한 이런 위대한 선교 전략을 가지고 선교 정책을 수립한 것은 바울의 자기 확신과 자기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을 보면 자기 고백을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이 이 고백을 왜 했을까요? 바울 마음속에 항상 인간적이고 이기적인 욕심이 계속해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도 남의 터 위에 집 짓고 싶은 욕심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리고 바울 자신도 내가 도구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한번 크게 휘저어 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영광 위에서 살기 위해서는 자기 죽음을 매일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말씀대로 살아서, 나는 날마다 나의 자아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매일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두면 이 욕심이 자라서 끝간 데 모르는 욕심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버릴 것입니다.
4. 바울의 로마 방문 계획
4-1.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2절에서 24절까지 나옵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귀므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 주기를 바람이라."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했던 계획들이 여러 번 있었는데 여러 번 막혔습니다. 바울이 지금 로마서를 언제 기록하고 있을까요? 바울이 로마서를 3차 선교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쯤 고린도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여기 '이 지방'이라고 하는 것은 바울이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을 했던 이 지방으로, 여기는 일할 곳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 파송을 받았습니다. 1차 선교여행을 힘차게 다녔고, 2차 선교여행은 유럽으로 다녔습니다. 3차 선교여행은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 에베소에서 선교했습니다. 이제는 유럽이나 아시아나 내가 복음을 전할 곳이 없다. 다 전했다. 충실하게 복음을 전했다. 이제는 이 지방에서 일할 곳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서바나로 가고 싶다. 서바나는 오늘날의 스페인입니다.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스페인으로 갈 때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4절에 '너희가 그리로 나를 보내 달라'는 이 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이제 로마 교회가 나를 파송해 달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1차, 2차, 3차 선교여행 때 파송한 교회가 어딥니까?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을 1차, 2차, 3차 선교여행 때 파송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배가 있긴 했지만 가끔 타고 다녔고,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배 아니면 걸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파송을 받으면 한 바퀴 돌고 파송한 교회에 가서 다시 선교 보고하는 거리가 너무 멀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쪽에 복음을 다 전했으니까 서쪽으로 서쪽으로 더 옮겨가서 로마 교회가 나를 파송해 주면 로마보다 더 서쪽에 있는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파송해 줄 수 있겠느냐. 사실은 이 속내를 지금에서야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목적을 1장에다가 얘기했다면, 선교 편지를 써서 '여러분들이요, 나는 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데 여러분 교회가 나를 후원해 주십시오. 선교비도 걷어서 보내 주고 나의 먹을 것과 쓸 것도 후원해 주십시오'라고 했다면 편지 읽어보지도 않고 사람들은 아마 그냥 버려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복음이 1장부터 11장까지 교리적인 부분이 있고, 12장부터 쭉 이어서 은혜로운 말씀이 있고, 그러고 나서 바울이 이 말씀을 전하고 있으니까 '이 정도 사람이라면, 이 정도 진리 위에 복음 위에 굳게 선 분이라면 우리 로마 교회가 이분을 파송해서 얼마든지 선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드려야 되지 않겠는가' 하고 사람들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읽어야 합니다. 사실 그가 멈춰도 됩니다. 이제 이 정도 했으면 됩니다. 그가 이룬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로마 교회에 파송을 받아서 스페인으로 가서도 다시 한번 복음을 전하고 싶다. 그는 복음 전하다가 죽더라도 그렇게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죽음인 것을 고백하고 깨닫고, 그렇게 살다가 죽으려고 결단한 사람이었습니다.
4-2. 예루살렘 성도 섬김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후에 가진 계획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로마에 가기 전에 편지부터 먼저 보냈습니다. 편지가 먼저 갔습니다. 그다음에 바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로마에 가고 싶겠지요. 이제 그런 계획을 여기서 얘기합니다. 25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예루살렘에 간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로? 성도를 섬기는 일로. 성도 섬기는 일이 무엇일까요? 예루살렘 교회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첫 번째 교회, 어머니 교회, 모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를 개척했고, 안디옥 교회가 바울을 파송해서 이렇게 복음이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모교회에 기근이 들어서 내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헌금을 거두어서 예루살렘에 가서 전달하고, 그다음에 너희에게 가겠다는 것입니다.
26절과 27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무엇을 빚졌을까요?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을 빚졌습니다. 첫 번째 교회이니까요.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이 일은 헌금 전달하는 일입니다. 헌금 전달하는 일을 예루살렘에 가서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로마에) 들렀다가 서바나(스페인)로 가겠다는 아주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4-3. 로마를 향한 꿈
바울은 이런 계획을 세웠던 배경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대한 꿈을 언제부터 가졌을까요? 바울이 로마에 대한 원대한 꿈을 사실은 에베소를 선교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바울이 정말 가고 싶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사역이 가장 정점에 이르렀을 때,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사역이 망한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니라 사역이 너무너무 왕성해서 에베소 시 전체가 다 복음에 사로잡혔을 때, 그때 바울은 로마의 꿈을 꾸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1절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예루살렘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로 가는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합니다. 바울이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바울을 잡으려고 하는 무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령이 이미 바울에게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헌금 전달하러 갔습니다. 헌금 전달한 후에 거기서 체포당합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니까 천부장은 총독에게 넘기고, 총독은 자기 임기를 넘기고 재판해 주지 않습니다. 2년이나 넘게 바울은 그냥 가이사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서 한마디 합니다.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로마에 가서 재판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군인들의 호송을 받아 아드라뮤떼노의 배를 타고 로마에 와서 재판받습니다. 사도행전 28장 16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왜 바울을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뒀을까요? 아직 미결수 신분이니까요. 바울을 군인이 지키는데 따로 둬서 가택연금을 해둔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사도행전 28장 30절과 31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만 2년입니다. 2년 동안 바울은 그 상태에 머물면서 로마에서 여러 사람들을 접견했습니다. 이제 바울의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먼저 보냈고, 그러고 나서 예루살렘에 갔고, 거기서 2년 동안 잡혀 있었고, 죽을 고생 다해서 배 타고 배가 난파할 뻔한 이 모든 고통을 다 딛고 로마에 갔습니다. 로마에 가서 자기가 편지를 써서 보낸 그 성도들과 함께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2년 동안 교제합니다. 자기 셋집에서 머물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나누고 성경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과 함께 귀한 교제를 나누었다는 얘기입니다.
5. 바울이 문안하는 성도들
이제 16장으로 넘어갑니다. 16장 말씀은 바울이 여러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하는 마지막 장입니다.
5-1. 뵈뵈의 헌신
바울은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뵈뵈를 어떻게 소개합니까? 그녀가 어떤 인물로서 로마 교회를 방문했습니까? 16장 1절과 2절입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이 말로 미루어 보면 로마서를 가지고 가서 로마 교회에 전달한 사람이 뵈뵈라는 여성 성도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3차 선교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쯤 고린도에서 기록했습니다. 고린도와 겐그레아 교회를 같은 곳으로 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일꾼이었던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들려서 이 편지를 가지고 가서 로마 교회에 전달하라 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여성이 여자의 몸으로 편지를 가지고 로마까지 가서 이 편지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뵈뵈라는 여성을 소개할 때 '그는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고 했습니다. 뵈뵈라는 이름을 읽어보면서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얼굴을 가진 여성이었을까요? 마르고 가냘픈 여성이었을까요? 아니면 몸집이 좀 있고 우락부락하고 힘이 좀 센 그런 여성이었을까요? 상상하기 나름입니다만, 중요한 사실은 뵈뵈라는 여성이 여러 사람들을 돌보는 여성이었고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던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 중요한 로마서라는 편지를 그녀의 손에 들려서 로마 교회에 전달하라고 할 만큼 바울이 확실하게 신뢰하고 믿음을 주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정도의 신뢰받는 사람입니까? 교회 공동체에서 여러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믿어주고 신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심부름을 시키실까요?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사명을 주실까요?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뵈뵈라는 여성은 아주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분에게 맡기면 일이 확실해. 이분에게 맡기면 안 되는 일도 되고. 이분에게 맡기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그런 확실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뵈뵈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신뢰를 주는 여인이었습니다.
5-2.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또 이어서 아주 훌륭한 인물이 나옵니다. 3절에서 5절을 보시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나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저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에 와서 자기 가정교회를 세웠다는 뜻입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세운 가정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언제 로마로 가서 로마 교회를 개척했을까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바울과 만났던 인연은 2차 선교여행으로 올라갑니다. 바울이 사실 1차 선교여행을 끝내고 2차 선교여행을 갈 때 그는 에베소를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아로 가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환상 중에 꿈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손짓합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바울이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제가 성령께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유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유럽 선교 중에 일생의 동역자를 만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천막을 만드는 텐트메이커였습니다. 바울과 생업이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울과 만나서 의기투합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들이 새로운 세계를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믿고 내 일생을 맡겨도 될 만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이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때 결단했습니다. 이분과 함께 끝까지 동행하겠다고.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이 끝나고 3차 선교여행을 준비하기 위해서 안디옥에 선교 보고하러 갈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딱 떨어뜨려 놓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3차 선교여행을 에베소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에베소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바울이 오기 전에 개척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놀라운 사역을 감당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볼로를 만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8장 24절에서 26절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에베소에서 미리 가서 열심히 복음의 터전을 닦고 바울 선생님이 오시면 이곳에서 열심히 복음 전하시도록 미리 터전을 다 닦아 놓고 있는데, 아볼로라는 사람이 왔습니다. 이 사람은 요즘으로 얘기하면 신학교를 갓 졸업한 사람입니다. 언변이 좋습니다. 말을 아주 잘합니다. 말씀에 능합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얕은 수준의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듣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이분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볼로를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26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요즘으로 말하면 평신도 집사님이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님을 자기 집에 데려다가 깊이 있는 말씀을 전해서 그를 새롭게 했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이분들이 에베소를 하나님의 은혜와 바울의 능력을 따라서 그 자리에서 교회를 아주 부흥시켰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서 결단을 합니다. 에베소가 한창 흥왕했을 때 "내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그 결단을 듣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때 로마로 간 것입니다. 그때 로마로 가서 그 로마에서 자기 가정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개척하고 교인들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로마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거기에 편지를 쓰면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도 문안하라, 그는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은 사람들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목회를 하면서 목회자인 제가 간절하게 바라고 간절하게 소원하는 바가 있다면, '하나님, 목회하면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동역자를 허락해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을 허락해 주시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서로 의기투합해서 함께 세워 나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가 함께 믿음생활을 한다는 것이, 부부로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가정에서 부부가 함께 산다는 것이 그저 자녀 낳고 가정생활하고 돈 많이 모아서 자녀들에게 유산 물려주고 그리고 나는 할 것 다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 제가 복음을 위해서 이 정도로 헌신하고 이 정도로 도구가 되어서 살다 왔습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이렇게 헌신하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부부로서 평신도 사역자로서 여느 목회자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사역자가 바울에게 있었다는 것은 바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위대한 축복입니다. 혼자서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먼저 가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개척 사역을 하고, 로마 교회에 먼저 가서 이 위대한 사역을 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이요 바울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입니다. 바울이 유럽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2차 선교여행 때 그렇게 거부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 봤더니 이런 위대한 선물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여기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순종하니까 하나님은 이런 훌륭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5-3. 에배네도의 첫사랑
5절을 보겠습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바울이 아시아라고 말하는 것은 무조건 에베소입니다. 여기 에배네도라는 사람은 에베소의 첫 번째 열매입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바울이 에베소에서 이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성경은 자세한 것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시 에베소에서 첫 번째 구원받은 이 사람도 지금 로마에 와 있습니다. 에베소 사역을 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로마에 와 있고, 에배네도도 로마에 와 있습니다.
바울이 여러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왜 에배네도를 언급하고 있을까요? 첫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전도했던 사람, 바울이 에베소에서 첫 번째 회심시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인간적으로 사랑했던 첫사랑을 기억하실 테지만, 내가 은혜를 받았던 예배당도 기억하실 테고, 복음을 전해서 첫 번째 회심시킨 첫 번째 믿음의 열매도 아마 기억하실 것입니다.
저는 목회자가 되어서 첫 번째 전한 설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치부 아이들에게 설교를 했는데, 신학생이 되고 유치부 아이들에게 첫 설교를 했는데 요나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유치부 아이들이 한 30~40명 정도 되는데 한두 명 빼고는 다 뛰어다녔습니다. 서서 뛰어다니고 울고불고 그랬는데, 1월인가 2월인가 그랬는데 저는 온몸에 비 오듯이 땀이 흐르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이 아이들 통제를 어떻게 해야 되나 난감했습니다.
저는 요나 설교를 무척 사랑하는데 첫 번째 설교를 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유치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데 첫 번째 제 목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잊지 못합니다. 바울도 로마서를 기록하면서 자기가 에베소에서 첫 번째 맺었던 열매에게 문안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4.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정
여기 또 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 나오는데, 13절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가 누굽니까? 루포를 알려면 마가복음 15장 21절을 봐야 합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 루포입니다. 우리는 구레네 시몬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간 사람. 억지로 졌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진 십자가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그의 가정이 복음화됐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재수 없이 그냥 그 자리에 있다가 군인들에게 '야, 너 이리 나와. 십자가 져.' 이래서 십자가 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억지로 진 십자가의 능력이 그의 가정을 구원했습니다. 로마 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를 바울이 자기의 어머니라고 얘기합니다. 그 가정에 믿음이 얼마나 더 깊어졌던지요. 우리 가끔 이럽니다. '내가 그때 하필 그 전화 받아 가지고, 모르는 전화는 안 받는 게 상책인데 그 전화가 목사님 전화인지도 모르고 받아 가지고 내가 하필 이 일에 엮여 가지고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억지로 내가 몇 년째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런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는데 로마 교회에 기둥이 됐습니다. 그 가정이, 바울이 그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고백할 만큼 그 가정의 믿음이 대단한 믿음의 명문 가문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역사는 오늘도 이전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6. 마지막 당부
바울이 이제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7절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살피고 떠나라. 교회는 항상 진짜 복음이 아닌 거짓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자들이 있습니다. 할례받아야 구원받는다, 아브라함의 혈통만 구원받는다, 이것이 가짜 복음 아닙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단, 사이비, 가짜 복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식으로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라 하더라도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이 다 진리의 말씀, 진리의 복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어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살피라고 했습니다. 이 살피라고 하는 말씀은 면밀하게 제대로 보라는 뜻입니다. 살펴서 떠나라. 분쟁하지 말고 조용히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늘 우리가 배웠습니다. 악한 일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영광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선한 것이고, 사람 중심 되는 것이 악한 일입니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미련하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7. 축복의 송영
마지막 26절과 27절, 바울이 교회를 축복하는 말입니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로마서 공부하신다고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혹시 로마서를 공부하시면서 잘 이해가 안 되시거나 더 나누고 싶은 것이 있거나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 주셔도 되고 메일 주셔도 되고 찾아오셔도 되고 또 붙잡고 계속해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질문이 풀릴 때까지 저도 성심껏 준비하고 또 대답하겠습니다.
다음 학기는 요한계시록을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요즘 이 시대에 요한계시록을 바로 공부하고 바로 아는 것이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계시록에 대해서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혹시 겨울 긴긴 밤 별로 할 일이 없고 밤잠이 없으신 분들은 계시록을 미리 읽어 놓으시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여러 번 읽고 묵상해 놓으시면 함께 계시록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로마서 말씀을 함께 은혜 가운데 나누었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함께 맛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이 세상 만민들에게, 오늘 이 땅에서 복음 생활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진리의 말씀, 능력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 읽고 받았으니 다시 한번 묵상하고 깨닫게 하여 주시옵고, 깨달은 대로 실천하도록 주께서 허락해 주시옵고, 진리와 능력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도록 주께서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진리의 말씀에 뿌리 박고 그 자리에 굳게 서 있도록 도우시고, 사람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나를 기쁘게 하지 않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믿음의 백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아버지의 자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