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특강 1: 그리스도와 복음(1장)
로마서 1장 17절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오늘부터 로마서 특강이 시작됩니다. 이번 로마서 특강은 교재를 중심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교재에는 "복음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로마 교회에 어떤 청을 합니까?" 등의 질문이 적혀 있습니다. 그 질문과 함께 말씀을 같이 살펴보는 과정이기 때문에 교재가 있으면 무척 좋습니다. 혹시 지금 교재를 가지고 계시지 못한 분들은 로마서 1장을 펴시고 잘 따라오시면 됩니다.
로마서는 총 16장까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16주에 걸쳐 로마서를 살펴볼 텐데, 마지막 15장과 16장은 한 번에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8장은 2주에 나누어서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총 16주 동안 함께 로마서를 공부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1장을 볼 텐데, 아마 눈치 있으신 분들이나 이미 우리와 함께 오래 공부하신 분들은 로마서 1장을 여러 번 읽어오셨을 줄로 믿습니다. 매일 한 장씩 나가기 때문에 그다음은 2장, 그다음은 3장 해서 한 장을 여러 번 읽고 오셔야 됩니다. 읽으실 때 줄도 치고, 물음표도 하고, 질문을 가지고 함께 공부에 참여하시면 좋습니다. 질문을 가지고 공부에 참여해서 질문이 해소되면 제일 좋고, 해소되지 않으면 저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목사님, 저는 이런 질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번 공부에서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질문에 답을 주십시오." 이렇게 물어보면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서가 사실 공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굉장히 딱딱합니다. 껍질이 굉장히 딱딱한데 열매도 그렇지 않습니까? 껍질이 딱딱하면 그 안에 아주 좋은 내용물이 있습니다. 그 딱딱한 껍질을 깨고 들어가 보면 그 안에 보배로운 보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기 힘들다 하더라도 껍질을 깨는 수고를 함께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대로 열심히 노력할 테니 여러분들도 열심히 읽고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할 때 굉장히 체계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리고 헬라어 문법에 맞추어서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다 보면 오늘도 몇 단어를 볼 텐데, 헬라어가 자주 나옵니다. 헬라어는 원문을 제가 적어놓지 않고 발음 나는 대로 한글 발음을 적어 놓습니다. 읽기라도 하시라고요. 우리가 헬라어 시험 칠 것도 아니지만, 그 단어가 의미하는 뜻을 제가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문법도 가끔씩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원문에서 어떤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지를 함께 잘 살피고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1. 자기 정체성과 복음
이제 로마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 오늘은 크게 세 꼭지를 볼 텐데, 첫째가 자기 정체성과 복음, 둘째가 로마서를 쓴 동기와 하나님의 의, 셋째가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1-1. 바울의 자기소개
먼저 자기 정체성과 복음입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합니까? 바울이 자기를 왜 소개할까요? 로마서를 쓰면서 로마서는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편지를 쓸 때 여러분들은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편지를 써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편지 쓰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에 펜팔이 유행할 때, 아주 몇십 년 전에 그때야 얼굴도 모르는 누구누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다" 이렇게 소개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다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 SNS도 주고받고 편지도 씁니다.
그런데 바울은 한 번도 로마 교회에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 중에 아는 사람도 몇몇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게 나중에 16장에 나오지만, 바울은 기본적으로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로마서를 왜 썼느냐? 나중에 15장에 나오겠지만,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다 끝내고 이제 여기에 전도할 곳이 없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나를 파송해서 이곳을 다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다가 편지를 써서 나를 이제 스페인으로 보내 달라는 청원을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바울은 로마 교회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교리를 아주 정교하게 기록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복음은 어떤 것이며,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로마 교회에다가 상세하게 성경 공부를 편지로 우편 교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다가 자기를 소개할 때 이렇게 소개합니다. 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짧은 한 구절에 바울의 자기 정체성 고백이 세 단어로 나옵니다. 제가 세 단어를 얘기했는데, 이 말을 들으면 여러분은 성경을 가지고 바울이 자기를 어떻게 소개했을까 찾아보셔야 됩니다.
어떻게 소개했습니까? 첫 번째, 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두 번째, 사도라고 소개했습니다. 세 번째, 택정함을 입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δοῦλος)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그다음에 택정함을 입었으니는 아포리스메노스(ἀφωρισμένος)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걸 왜 설명드리느냐 하면, 종은 우리 식으로 생각하는 종이 아닙니다. 바울이 얘기하는 둘로스는 로마 시대 자유가 완전히 빼앗긴 억압된 노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의지나 자기 주장은 하나도 없는 노예, 그게 둘로스입니다.
그다음에 사도 아포스톨로스는 보내심을 입은 자,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내가 가고 싶어 가는 게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보냈다는 뜻이고, 나는 수동적으로, 피동적으로 보내심을 입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택정함을 입었다, 여기에 아포리스메노스도 이 문법에 의하면 완료 수동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가 헬라어 문법을 왜 설명드리느냐 하면, 완료라는 건 그냥 지금 이 순간 택해졌다 이 말이 아니고,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택함을 입어서 지금까지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바울이 어머니 뱃속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셔서 사도로 택하셔서 지금까지 그 택하심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다. 그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정체성을 종이요, 사도요, 택함 받은 사람, 이 세 가지로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쯤 되면 눈치 빠른 사람은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통점이 뭡니까? 사도나 종이나 택함을 입은 자나, 자기 의지가 없습니다. 자유의지가 없고 수동적입니다. 종도 노예 아닙니까? 시키는 대로 해야 되고, 사도도 보냄을 받았고, 택정함을 입은 것도 제가 손 들어서 "제가 하고 싶습니다"라고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택함을 하셔서 그는 택해짐을 받은 것입니다. 수동적입니다.
바울은 자기 인생의 고백을 "나는 하나님께 매인 사람이다, 수동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2. 매인 자의 열매
여기서 우리가 질문을 한번 해봅시다. 그러면 바울이 자기 주장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살아갈 때가 열매가 많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택함을 입어서 매인 바 된 종과 사도와 택정함을 입은 상태로 살 때 열매가 많았습니까?
바울이 택하심을 입기 전 자기 의지대로 자유인으로 살 때, 그때 그는 악마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죽이고, 스데반 같은 사람을 죽일 때 옷 맡아줬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열매 없는 사람, 만약 그대로 그가 죽었다면 지옥에 들어갈, 지옥의 왕 노릇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인생을 살게 되니까 열매가 있습니다. 교회를 얼마나 많이 개척했습니까? 1차, 2차, 3차 전도에 로마까지 그는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신약 성경 가운데 13권을 기록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굉장히 열매 맺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바울이 이렇게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된 이유는, 우리가 볼 때는 답답하겠다, 수동적으로 사니까 안됐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뿌리박은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편에 나오지 않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는 이유는 그 나무가 비록 자유는 없고, 자기 마음대로 바람에 나는 겨같이 날아다닐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서 그 뿌리를 통해서 양분을 공급받고, 그 양분이 줄기와 잎과 열매로 가기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건 우리가 복음에 매인 바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의지와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주장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끌고 가시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그렇게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누구에게 소개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소개하십니까? "저는 어느 어느 교회 다니는 아무개 집사입니다, 아무개 권사입니다" 이렇게 소개하시지 않겠습니까? 자연인으로 나를 소개하는 것 말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신앙의 고백으로 자신을 한번 소개해 보십시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자신을 한번 소개해보면, 과연 내가 자유롭게 바람에 나는 것처럼 훨훨 날아다니되 열매 없는 인생인가, 아니면 뿌리 박고 있어서 자유 없는 인생인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복음 안에서 진리 안에서 내가 자유로운 인생이 되고 많은 열매 맺고 있는 인생인가, 답이 나올 것입니다. 적어도 바울처럼 열매 맺는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3. 복음의 정의
2번 질문입니다. 복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복음을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우리가 이 성경을 읽을 때 그냥 읽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2절을 지금 보시는데 "이 복음은"이라고 나왔는데, 이 복음은 뒤에 주어를 찾아보십시오. 누가 주어입니까?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주어가 있으면 반드시 동사가 있습니다. 이 주어의 동사를 한번 찾아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떻게요?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게 문장의 뼈대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그러면 그 중간 거 다 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복음의 정의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다.
이 문장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복음의 주체에는 사람이 개입되지 못합니다. 복음에는 절대로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지, 사람이 약속하거나 사람이 주인 되는 건 결코 복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결정체가 어디입니까? 교회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여기 이 교회공동체, 교회공동체는 복음으로 세워진 곳이고, 복음이 자리 잡는 곳이고, 복음이 선포되는 곳이고, 복음이 열매 맺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가끔 교회 안에 보면 사람이 주인 노릇하고, 사람이 머리 노릇하려고 하는 교회가 있는데, 엉터리 교회입니다. 이단 사이비입니다. 왜 신천지가 이단입니까? 이만희가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사람이 주인 노릇하고, 사람이 약속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단입니다. 복음에는 절대로 사람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사람이 끼어들면 이미 복음이 아닙니다. 그건 복음이 아니라 인간의 사술에 불과합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어떤 행위에도 현혹되시면 안 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 하나님의 아들
3번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3절과 4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3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그리스도 주 아들이죠. 아들에 관하여 두 가지를 얘기합니다. 그 밑에 줄을 한번 쳐보십시오. "육신으로는", 그다음 4절에 보니까 "성결의 영으로는"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바울은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첫째는 육체로 설명하고 둘째는 영으로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완전한 육체로 오신 인간이면서 성결의 영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구비되어야 우리는 이걸 참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느냐 하면, 그 당시에 이단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단들이 있었느냐 하면, 한 부류의 이단은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걸 못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이 사람이야,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참 하나님이시지, 그분은 신이지 사람이 아니다." 어떤 부류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어떤 부류는 "아니야, 내가 예수님을 만나봤는데 그분은 잠도 주무시고, 밥도 드시고, 화도 내시고, 혈기도 있고, 성전을 뒤집어엎기도 하고, 완전한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야." 그런 부류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초대 교회에 크게 두 교회가 있었는데, 첫 번째 모교회는 예루살렘교회, 두 번째 교회는 안디옥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님을 직접 공생애를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서 세운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그 교회 사람들을 통해서 생겨난 이단은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많았습니다. 직접 경험해 보니까 나와 똑같기 때문입니다. 살도 있고, 피곤해 하시기도 하고, 화도 내시고, 눈물도 흘리시고. 예루살렘 교회 중심에서, 거기서 흘러나온 이단의 분파는 신성을 부인합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를 세운 사람은 바나바 그리고 바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공생애로 활동하실 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들은 예수님을 영으로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그 교회에서 흘러나갔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예수님은 육체도 직접 입고 오셨고, 예수님은 성결의 영으로도 오신 분이시다. 이걸 분명히 증언하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실까요?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3절입니다. "육신으로는 누구에게서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분명하죠.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다윗의 혈통에서 난 족보가 그대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4절에 보니까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 보이지 않으나 헬라어 문법에 보면 아주 재미난 표현이 있는데,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자들", 우리 성경에도 복수로 되어 있죠. 죽은 자들, 여럿이 있죠. 모든 죽은 자들, 복수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사", 이 부활하셨다라는 단어는 단수로 쓰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은 단 한 분밖에 없다는 바울의 신앙 고백입니다. 바울은 헬라어 문법에서도 부활하셨다라는 이 단어는 단수로 표현하고 있어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영 아들이시다 이걸 분명히 표현하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는 것이 있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누가 최초로 했습니까?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베드로가 처음 했습니다. 예수는 인간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건 원래 문장이었죠. "예수님,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인간 예수,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고, 그리스도는 성결의 영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것은 예수님의 육체와 예수님의 영을 한꺼번에 고백하는 최초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이 고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로마서를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하면 재미있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꼭꼭 씹어서 드셔야 복음이 무엇인지 잘 깨닫습니다.
1-5. 로마 교회 성도
4번 질문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정의하고 있는데, 5절에서 7절까지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모든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 되었느니라."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여기에 정의하고 있는 것이 세 가지 나옵니다.
첫째, 은혜를 받았다. 둘째, 직분을 받았다. 셋째, 부르심을 받았다. 은혜와 직분과 부르심, 이 세 가지가 로마 교회 성도의 정체성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 직분을 받았다, 부르심을 받았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참 감동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부르심을 받았다라는 표현은 많이 들었죠. 예수 믿으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거룩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뭐 이런 말씀 많이 들었죠.
그런데 직분을 받았다, 이건 어디서 들은 적 있습니까? 제가 어떤 집회에서 이런 간증을 하시는 분을 봤습니다. "목사님, 저는 1년간 기도하다가 권사 임직을 받았습니다." 제가 들었습니다. "권사 임직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축하드려요." 그리고 저는 마음으로 많이 아팠습니다. 아이고, 직분을 하나님께 구해야지 왜 사람에게 구하고 있을까.
이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은혜를 먼저 주십니다. 은혜를 먼저 경험하면, 은혜를 경험한 자를 불러다가 직분을 주십니다. 직분을 주셔서 그에 맞는 사명을 부여하셔서 부르십니다. 그래서 직분은 우리가 어떤 대의원에게 표를 몇 표씩 뿌려서 얻어오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런 교회는 안 계시겠지만. 직분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와 직분과 부르심, 이 세 가지가 로마 교회의 성도의 정체성이고, 이것이 우리들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2. 로마서의 동기와 하나님의 의
2-1. 복음의 빚진 자
두 번째, 로마서를 쓴 동기와 하나님의 의를 살펴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에 어떤 청을 합니까? 한번 보시겠습니다. 10절에서 12절까지입니다.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이 열리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받으려 함이라."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하면서 얘기하기를 "내가 기도 중에 너희를 기억하면서 내가 로마로 가고 싶다"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고 싶어하는 거죠. 바울이 로마로 왜 가고 싶습니까? 예를 들어보면 제가 부산에 살고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고 싶어요. 왜 가고 싶을까요? 저는 미국 LA에 가 본 적도 없는데 왜 가고 싶을까요?
흔히 버킷리스트를 생각합니다. LA 한번 가봐야지, 가서 뭐 할 건데요? 뭐 하긴요, 그냥 가봐야지요. 이게 버킷리스트입니다. 할 것도 없이 어딘가를 방문해 보고 싶은 것이 버킷리스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버킷리스트가 아닙니다. 바울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어떻게든 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14절에서 16절 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이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내가 빚진 자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했죠? 사도의 뜻이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씀드렸죠. 보냄을 받은 자이기에 바울은 복음을 전하러 가야 되는 사명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빚을 갚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빚진 자로서 로마에 가고 싶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복음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2-2. 구원의 의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구원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구원이라는 말의 뜻은 건져 올린다는 뜻입니다. 건져 올리는 거예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올리는 것, 불에 타고 있는 사람을 건져내는 것, 화재 속에서 어린 양을 건져내는 것, 구덩이에 빠진 자녀를 건져내는 것, 건져내다, 건져 올리다, 이게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말을 할 때는 전제가 어디에 구속되어져 있다,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어디에 묶여 있을까요? 인간이 본성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묶여있는 자리가 있는데, 첫째는 죄요, 둘째는 죽음입니다. 우리 인간은 죄와 죽음의 권세에 원래부터 묶여 있었습니다. 그게 우리 인간입니다.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인간을 죄의 권세에서부터 죽음의 권세에서부터 건져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어떻게요? 사건이죠. 구약의 사건, 출애굽 할 때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피 바르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우리는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죽음의 사자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떤 죄인이든지 그거 상관하지 않고 다 지나갑니다. 그래서 죄로부터 구원받습니다. 그 피는 신약에 누구의 피를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말하죠.
민수기에 보면 불뱀에게 물려서 다 죽어갑니다. 죽음의 권세가 우리 눈앞까지 왔습니다. 죽어갑니다. 그런데 모세가 놋뱀을 매달아서 높이 들었습니다. 그걸 본 자마다 살리라. 장대에 매달린 놋뱀이 상징하는 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만 하면 우리는 죽음에서 구원받습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해방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피와 예수의 십자가의 권능, 그래서 이걸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3. 하나님의 능력
그래서 복음의 내용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능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δύναμις)라고 적혀 있죠. 뒤나미스는 영어에서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입니다. 다이너마이트는 뭘 하는 데 사용됩니까? 폭발하는데, 폭파시키는 데 사용되죠.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죄에서, 우리를 죽음에서 묶고 있었던 이 사슬을 폭파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건져올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다이너마이트처럼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의 손과 발과 우리의 모든 육체와 영혼을 묶고 있었던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폭발시켜서 폭파시키시고 우리를 건져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이 순서상 먼저 선민 유대인을 택하시고, 그다음 헬라인을 택하셨습니다.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용어입니다.
2-4. 하나님의 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뭘까요? 하나님의 의가 가장 잘 나타난 자리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입니다. 이 용어를 기억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인데,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의가 두 가지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사랑으로, 둘째는 공의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미워하십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차마 하나님은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못하고, 단 한 분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다 쏟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묻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사랑과 공의,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자리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사건입니다.
2-5. 믿음으로 믿음에
여기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그다음을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앞의 믿음은 뭐고 도대체 뒤의 믿음은 뭘까요?
원문에 의하면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 말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연약한 믿음으로부터 견고한 믿음까지, 작은 믿음으로부터 큰 믿음까지 이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아니, 목사님 작은 믿음도 있고 큰 믿음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마태복음 6장 30절 한번 보겠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어떤 자들이라고요? 작은 자들. 하나님은 어떤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인데요, 예수님이 어떤 자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셨느냐? 먹을 것 입을 것 자는 것, 의식주 걱정하는 사람들. 그런 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참 다행스러운 것은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셨으니까, "나 뭐 먹고 살지" 이거 걱정하는 자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거죠.
큰 믿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 8절입니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어떤 상황입니까? 이방인 백부장이 하인이 병들었다고 예수님께 갔어요. 근데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가자, 내가 고쳐주마." 근데 백부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낫습니다. 주님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걸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주님이 깜짝 놀랐어요. 옆에 있는 사람도 다 놀랐어요. 모든 사람들은 다 예수님 데리고 자기 집에 모셔가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달랐습니다.
8장 10절, 예수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어떤 믿음이라고요? 큰 믿음이죠. 대단한 믿음이죠. 예수님 오지 않아도 말씀만 하셔도 믿는 믿음, 이게 큰 믿음입니다.
그래서 작은 믿음은 부끄러운 믿음이고 큰 믿음은 자랑스러운 믿음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예수 믿으면 돈 많이 번다" 하고 "예수 믿으면 병 낫는다" 하고 교회 왔어요. 그것도 믿음입니다.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 바르고 그 안에 들어가 있을 때 그들이 믿음이 있었습니까? 소위 말하는 믿음이? 그 앞에 9가지 재앙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너무 무서워 가지고, 이거 피 바르고 이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 오늘 밤 우리 집 큰아들이 죽는다 하니까, 애들 안 죽이려고 피 바르고 그 안에 들어가서 달달 떨고 있는 거죠. 그게 무슨 믿음이 있어요.
그런데 죽음의 사자는 그날 밤 피만 보고 지나갔습니다. 피 바르는 행위 자체가 믿음입니다. 내면은 100% 변화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피만 바르고 그 안에 앉아 있기만 해도 그게 믿음이죠. 그게 칭의의 차원의 믿음입니다. 연약합니다. 작은 믿음.
그런데 하나님의 의,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선택해 주셨구나, 하나님이 이 미천한 나에게 직분을 주셨구나" 이걸 느끼고 경험하고 경험하고 경험하면 할수록 자꾸 내 믿음이 성장하는 거예요. 큰 믿음으로. 이제는 "주님, 우리 집에 오지 않아도 말씀만 하셔도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성장하고 자라가는 겁니다. 큰 믿음이 되는 거죠.
그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16절로 올라가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 "모든 믿는 자"는 어떤 뜻일까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걱정하는 믿음이 작은 자부터요, "주님 우리 집에 오시지 않아도 말씀만 하셔도 낫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큰 믿음 가진 사람까지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바울이 가르치기 위해서 "내가 로마에 가겠다" 이렇게 말한 거죠.
3. 하나님의 진노
3-1. 진노의 대상
이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다루겠습니다.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은 어떤 자들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심판하실까요? 하나님이 어떤 자들을 대상으로 진노하실까요?
18절 보십시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좀 어렵긴 한데요. 쉽게 말해서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 요것만 줄치셔도 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자, 첫째 경건하지 않고 불의한 자.
그럼 경건하지 않다는 말이 뭘까요? 바울이 말하는 경건은 대부분 예배드리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배드리는 행위. 나중에 12장에 가면 바울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그랬거든요. 예배는 그냥 예배당에 앉아있는 예배가 아니고 영혼과 우리 육체가 함께하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이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즉 하나님에 대하여 예배하지 않는 사람. 또한 불의한 자는 사람에 대하여 악을 행하는 자가 불의한 자죠.
즉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 진노의 대상은 첫째, 하나님에 대해서 예배 제대로 드리지 않고, 이웃에 대해서 악을 행하는 자,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말씀에 나를 대입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내 육체로 내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예배 드리고 계십니까? 또한 이웃에 대해서 악을 행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고 계십니까? 그러면 우리는 심판 걱정할 이유 없습니다.
둘째 21절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두 번째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건요, "알되 아니하며 아니하고" 이게 중요하죠. 하나님은 알되 아니하고 아니하며.
하나님을 알긴 알아요. 지식으로 어릴 때부터 교회 다녔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열심히 교회 다녔어요. 성경도 여러 번 읽었어요. 하나님을 잘 알아요. 성경 퀴즈 대회하면 항상 1등 합니다. 너무너무 잘 알아요. 성경 다 알아요.
그런데 뭘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도구가 뭡니까? 무엇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으로 영화롭게 합니까? 내 몸뚱아리로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까. 내 몸으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는데, 그런데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께 영화롭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욕먹는 거예요.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겁니다. 나로 인해서, 우리 교회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세간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 말하면서 진노의 대상, 심판의 대상입니다. 예수 거꾸로 믿는 사람들.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셋째 23절입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우상숭배하는 자들이죠. 오늘날 이 시대의 우상이 뭡니까? 물질이죠. 돈. 그깟 돈 몇 푼에 하나님의 영광을 팔아먹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말씀하셨습니다.
3-2. 내버려 두심의 심판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심판하신다고 했어요? 우리는 상상합니다. 지옥불에 집어던져서 혀바닥을 빼든지, 불고문을 하든지, 물고문을 하든지 그러시겠지. 근데 의외입니다.
24절 한번 보십시오. "내버려 두사" 줄 치세요. 26절 "내버려 두셨으니" 줄 치세요. 28절 "내버려 두사" 줄 치십시오. 다 "내버려 두사"라는 말이 있죠. 하나님이 이런 인간들 내버려 두신다고 하셨어요.
이게 유기입니다. 심판 중에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저는 제 언어로는 이렇게 표현하는데, 하나님의 인생 태클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나만 아는 죄가 있어요. 나만 아는 죄, 우리 가족도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알고 나만 아는 죄. 근데 하나님이 내 인생의 태클을 걸어 들어오세요. 그러면 기뻐해야 됩니다. 정말 기뻐해야 됩니다. 왜?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니까.
근데 반대로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죄가 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고, 돈은 더 잘 벌리고, 가족들 무사하고 평안하고. 그러면 섬뜩해야 됩니다. 내버려두셨구나. 나를 내버려두셨구나.
제일 심각한 죄입니다. 심각한 심판입니다. 사실 부모 입장에서 옆집 애가 어떤 짓을 하든지 간섭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애가 집에 안 들어가든, 밖에서 사고를 치든, 돈을 떼먹든, 부모에게 욕을 하고 대들든 관여할 일이 없잖아요. 남의 아이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의 집 자식 취급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내버려두다"라는 단어를요 헬라어 원문에 보면 파라디도미(παραδίδωμι)라고 표현했습니다. 파라디도미, 잘 기억하십시오. 이 파라디도미라는 말과 우리말이 너무 닮아 있어요. 재밌어요. "팔아치우다"라는 뜻입니다. 팔아치우다, 내버려두다.
파라디도미, 팔아치우다, 갖다버리다. 하나님께서 옆집 사람에게 팔아치우셨으니까 이제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섭하지 않고 "더 이상 나는 너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사사기 4장 1절에서 2절에 이 비슷한 구약의 단어가 나와요.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파셨다"는 말이 나오죠. 이 "파셨다"는 말, 이 말이 헬라어로 오면 파라디도미, 내버려 두셨다 이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유기의 심판입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맺는 말
이렇게 해서 오늘 우리가 로마서 1장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복습도 하시고 예습도 하셔야 되는데, 복습은요, 이제 여러분들이 교재도 보시고 성경도 보시면서 찬찬히 읽어가시면서 제가 설명한 부분을 다시 떠올리면서 한번 줄을 쳐보시고 메모도 한번 해보십시오.
로마서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번 그냥 듣고서 흘려버리면 뭘 들었는지 기억이 남지 않습니다. 한 번 더 다시 들으시면서 메모도 하시고 기록도 하시면서 그러면서 다시 기억하시고 떠올려 보십시오. 그러면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2장을 예습하실 때는 같은 한 장, 2장을 두 번 세 번 네 번 읽으면서 질문을 만들어 오십시오. 그리고 교재도 미리 한번 살펴보시고, 그럼 훨씬 더 이해도가 높아지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귀한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동적인 인생, 사로잡힌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인생이 오히려 열매 많이 맺는 복 되고 값진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힌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정의할 때 은혜를 받고 직분을 받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먼저 은혜받은 자로 하나님께 받은 직분 소중히 여기게 하여 주시고, 사람에게 직분을 구걸하지 않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언제나 성실하게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일하도록 주께서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하여 주셨사오니, 연약한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도우시고, 연약한 자나 믿음이 큰 자나 언제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의 가운데 품으시는 우리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 극진하신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 안에 온전히 우리 자신을 맡기며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내버려 두심에 유기를 당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자리에 서지 않도록 도우시며,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받은 은혜 기억하며 다시 또 되새기고 또 되새겨서, 이 악한 시절에 언제나 하나님 앞에 깨어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