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특강 1 - 아하수에로 왕 (에스더 1장)
에스더 1장 1절에서 4절까지 말씀입니다.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그가 도성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 왕위에 있은 지 제삼 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아멘.
1. 여성이 주인공인 성경
이번 학기 우리가 룻기와 에스더를 공부하고 있는데, 룻기와 에스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드러나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주인공이 여성입니다. 성경의 주인공이 여성인 책들로 룻기와 에스더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그냥 이름만 여성이 주인공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룻이 룻기의 진짜 주인공이고, 에스더서도 에스더가 진짜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남녀를 차별하셨다거나 하나님은 남성 중심적인 분이시라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합니다.
사실 사무엘상하를 보면 사무엘상하의 주인공이 누굽니까? 사무엘입니까? 그렇게 되면 섭섭하지요. 우리가 사무엘상하 공부를 1년을 했는데, 사무엘상하의 주인공은 다윗 아닙니까? 성경의 이름과 실제 주인공이 다른 예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룻기의 주인공은 룻이고, 에스더서의 주인공은 에스더입니다.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그냥 어디 한쪽 구석에 있으나 마나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역사를 바꾼 주인공입니다. 룻기를 공부했지 않습니까? 만약에 룻이라는 여성이 없었다면 다윗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사시대가 얼마나 악한 시대인지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모두가 다 타락하고 모두가 다 썩어 문드러져 가는 그 사사시대에 룻이라는 한 모압 여인, 이방 여인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주 미세하고 세미한 하나님 나라의 불꽃을 계속해서 이어가십니다. 그래서 그 역사가 큰 불꽃이 되고, 나중에는 그 역사가 다윗까지 이어지고, 다윗의 후손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룻기는 진짜 책 중에 아주 뜨겁고 열정적이고 귀한 책입니다.
2. 에스더서의 역사적 배경
2-1. 포로기 이후의 이야기
에스더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부터 8주 동안 살펴볼 에스더서도 그런 맥락 가운데 있습니다. 우선 에스더서를 우리는 그냥 피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어떤 여인입니까? 왕후. 그냥 보잘것없는 한 계집아이였는데 팔자 고쳐서 왕후가 된 정말 억세게 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룻기도 남편 잘 만나서 팔자 고친 여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에스더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더가 기록된 배경, 에스더서가 나오게 된 역사의 삶의 자리는 포로기 이후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나라다운 모습을 갖춥니다. 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전성기가 언제입니까? 다윗과 솔로몬 시대입니다. 그때가 기원전 천 년경입니다. 그때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최고의 전성기입니다.
그런데 이 전성기가 오래가지 못합니다. 솔로몬 사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집니다. 갈라지는 건 둘째치고, 갈라졌다면 하나님 뜻대로 말씀대로 잘 살면 두 나라가 다 부국강병할 텐데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북이스라엘은 타락에 타락을 거듭하다가 기원전 721년에 망합니다. 어느 나라에 의해서? 앗시리아에 의해서입니다. 그리고 남유다도 북이스라엘 멸망 후 오래가지 못합니다. 기원전 586년에 망합니다. 어느 나라에 의해서? 바벨론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면 이 제국이라는 역사가 있습니다. 티그리스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흥한 제국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삼켰습니다. 그러면 앗시리아를 삼킨 나라가 바벨론인데, 바벨론은 남유다를 삼켰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역사도 마찬가지로 삼국시대가 끝나고 고려시대, 그리고 고려시대가 끝나고 조선시대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이런 식으로 오는데 나라가 끝나면 그 나라의 역사는 끝납니다. 망하면 끝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는 기원전 586년에 끝난 것입니다. 기원전 586년에 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금 분쟁하고 있는 저 팔레스타인 지역에 다시 세워집니다. 2500년 동안 나라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나라는 이런 식으로 나라가 망하고 나면 없어져야 정상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열왕기하에서 끝나버려야 됩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예언했던 선지자가 누굽니까? 슬퍼하며 애가를 지어 불렀던 선지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입니다. 그러면 선지서는 예레미야서에서 끝나야 됩니다.
2-2. 인간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나라가 망했는데 계속해서 선지자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포로기 이후에 선지자들을 생각나는 대로 한번 얘기해 보십시오. 에스겔, 학개, 스가랴, 말라기. 그리고 또 성벽 재건한 사람이 누굽니까? 느헤미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에스더입니다. 나라가 망했는데 계속 이런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되고 또 기록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나라는 망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되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에 실패할 수도 있고, 젊은이들은 취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사업하다 보면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끝난 줄 압니다. 사람들은 내 인생 끝난 줄 압니다. 연애 실패하면 끝난 줄 알고, 뭐 하나 잘못되면 그냥 내 인생은 셔터 내리는 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들 아닙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살다가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그게 끝나는 인생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계속해서 예수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교훈을 이 성경의 거대한 흐름을 통해서 배워야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얼마나 대단한 선지자입니까? 포로기 이후의 선지자입니다. 포로기 이후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계속해서 메시지를 주시며 계속해서 예언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에스더서도 그런 맥락 가운데 있습니다.
2-3. 페르시아 시대의 유대인들
나라가 망했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 포로 몇 년 있었습니까? 70년입니다. 70년 포로 이후에 귀환합니다.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돌아가라 한다고 돌아가집니까? 70년 정도면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는다고 할 때, 한 세대라는 건 한 아이가 성장해서 자녀를 낳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청년이 되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면 한 서른 언저리가 되어서 자녀를 생산합니다. 그걸 1세대라고 부르면, 어린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 나이가 30대 초반 언저리 정도 된다고 본다면 70년 정도면 2세대가 넘어갑니다.
할아버지 세대 때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런데 손주가 태어났습니다. 이제 귀환하시오. 바벨론 시대가 끝나고 페르시아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이 이제 너희들은 돌아가도 좋다고 합니다. 돌아가지겠습니까? 3대가 살았는데, 거기에 이미 우리는 우리의 언어도 잃어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히브리어를 쓰지만 손주들은 집에서만 쓰고 밖에 나가면 다 페르시아어를 씁니다. 메대와 바사의 언어를 쓰고 바벨론 언어를 씁니다.
돌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그때 돌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전 재건을 위해서 돌아간 사람들, 좋은 말로 하면 믿음 좋은 사람들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독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일부는 돌아갔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 그냥 삽니다. 페르시아에서 살면서 이미 할아버지, 아버지, 그 아들 이렇게 내려오면서 자기 민족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그걸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냥 거기 섞여 삽니다. 무리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인들 아닙니까? 페르시아가 워낙 제국이니까 그냥 다민족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2-4.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시대
거기서 믿음을 지키고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서를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1장부터 10장까지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1장에서 10장까지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스더서를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지 못합니까? 강하게 느낍니다. 아주 강하게 느낍니다.
그런데 왜 에스더서를 기록한 저자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기록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까? 왜 그랬겠습니까? 그만큼 그 시대가 암울했던 시대라는 것입니다. 드러내놓고 신앙생활 할 수 없었던 시대입니다. 드러내놓고 옛날 성전 시대처럼 솔로몬 성전 시대처럼 마음껏 예배드리고 마음껏 제사하고 마음껏 찬양할 수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를 에스더서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래도 에스더서를 읽으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나님이 역사하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이 시대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사실 요즘 우리 시대,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저부터 60대, 70대 어른들은 교회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세대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좀 계몽된 사람 같고, 좀 깨어 있는 사람 같았던 세대 아닙니까? 교회 가면 앞선 문물을 배우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30대, 20대, 10대들은 어떻습니까? 교회 간다고 말을 못하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하도 사고를 쳐놔서 지난 몇십 년 동안 요즘 선 볼 때 교회 다닌다 그러면 거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느냐고요?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에스더서는 그런 시대, 그 암울한 시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그런데 거기서 승리한 한 여인과 모르드개와 그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에스더서의 또 다른 특징은 굉장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경을 읽을 때 마치 성경이 동화처럼 읽힙니다. 역사와 아무 상관없는 동화처럼 느껴집니다. 성경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의 지평 위에 기록되어 있고 서 있습니다.
3. 아하수에로 왕은 누구인가
3-1. 크세르크세스 1세
에스더서의 기록 배경은 언제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아하수에로가 누굽니까? 아하수에로가 바로 크세르크세스 1세입니다. 이분이 아하수에로 왕인데, 성경에는 아하수에로라고 표현했고 세계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 1세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분이 아하수에로 왕과 동일 인물입니다.
이분은 기원전 486년부터 465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이분이 에스더의 남편입니다. 그런데 이분을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고 계실 텐데, 영화 '300'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 물론 그 영화에 보면 역사와 좀 다르게 각색된 것도 많습니다. 오락 영화이니까, 헐리우드 영화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등장하는 왕이 크세르크세스 1세라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도 변함없습니다.
3-2. 전쟁 준비와 잔치
이 성경, 이 이야기는 크세르크세스 1세 때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다리우스 왕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리스 정복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스 정복을 못했습니다. 에게해의 해상권을 가져오고 그리스를 정복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왕이 되고 난 이후에 나는 정복 군주가 되겠다, 지금도 제국인데 그리스 전 지역을 한번 통치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입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왕위에 있은 지 제삼 년에"라고 합니다. 그러면 계산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기원전 486년에 왕이 됐습니다. 그러면 왕위에 있은 지 제3년이면 언제입니까? 기원전 483년입니다. 기원전이니까 빼야 됩니다. 기원전 483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왜 잔치를 베풀었을까요? 왕이 착해서? 왕이 할 일이 없어서? 돈이 넘쳐나서? 세상의 왕들은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손해 보는 일을 하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뭔가를 뿌렸다면 반드시 거두려고 합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이분이 왕이 되고 나서 전쟁 준비를 3년을 했습니다. 그 전쟁 준비 3년이 기원전 483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입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무지무지한 전쟁 준비를 합니다. 전쟁 준비를 할 때 제일 필요한 게 무엇입니까? 돈입니다. 돈이 있어야 무기도 만들고 칼도 만들고, 병사들 군량미도 비축하고 할 것 아닙니까? 이 사람이 전 세계, 인도로부터 구스 곧 지금의 에티오피아까지를 통치하는 제국의 대왕이었지만 대규모 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배도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니 각 지방 127도를 다스리는 지방 관료들을 다 불러다가 일단 마시게 하고, 일단 먹이고, 그리고 나서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먼저 전쟁 준비 3년의 첫 시작을 사람들을 모아서 잔치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3-3. 살라미스 해전과 패배
기원전 480년이 살라미스 전투입니다. 3년 동안 준비해서 기원전 483년부터 481년까지 3년 준비하고, 기원전 480년에 출정합니다. 그러면 그 전쟁에서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영화 300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죽음을 각오한 그리스 연합군의 장수들이 거기서 막아냅니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라미스 해전으로 가는데 이길 수 있겠습니까? 전투력 상당 부분을 손실하고 집니다. 전쟁에서 대패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온 연도가 기원전 479년입니다.
그리고 나서 2장 16절을 보십시오.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 년"이라 그랬습니다. 계산해 봅시다. 그가 왕이 된 지, 크세르크세스가 왕이 된 해가 기원전 486년입니다. 왕이 되고 나서 7년입니다. 그러면 언제입니까? 기원전 479년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이 전쟁에서 이기고 온 때입니까, 지고 온 때입니까? 지고 온 것입니다. 전쟁에서 지고 심기가 어떨까요? 심기가 상당히 불편합니다. 전쟁에서 지고 와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시월 곧 데벳월에 에스더가 왕궁에 인도되어 들어가서 왕 앞에 나가니"라고 합니다. 다시 왕후를 간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 1장과 2장 사이에 전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기념비 같은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얘기를 왜 장황하게 드리느냐 하면, 우리가 지금 세계사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그거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걸 알아가지고 어디 남들한테 연도 이름 이런 거 지금 아무리 적어도 기억도 안 날 텐데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성경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3-4. 역사 위에 선 성경
성경은 옛날이야기나 동화가 아닙니다. 절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해줄 때 마치 옛날이야기 동화처럼, 금도끼 은도끼나 달나라에서 방아 찧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들려주면 안 됩니다. 살라미스 해전도 있었고, 테르모필레 전투도 있었고, 우리가 영화를 볼 때는 그렇게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성경은 왜 자꾸 역사적 사실과 분리하고 구분해서 읽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에스더 이야기는 한 여인의 없던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지평 위에서 우리가 이것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왕이 된 지 몇 년, 몇 년, 몇 년 이것을 다 밝힙니다. 그것을 밝히는 것을 짚어봐야 합니다. 이게 몇 년이지? 도대체 이게 언제지? 그러면 이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것을 짚어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짚고 이것을 찾아내고 그렇게 해야 우리가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을 반석 위에 세우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특히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안 믿습니다. 말씀을 말씀 그대로 안 믿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입니다. 그냥 에스더가 용모 예쁘게 잘 꾸미고 와서 왕한테 선택받아서 팔자 고친 한 여자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아주 치열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로 가면 진짜 여성을 상품화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안 됩니다.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우리도 다시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됩니다.
3-5. 에스더서와 포로 귀환
바벨론 포로 귀환과 에스더서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연도를 다 적어뒀는데 이 연도 정도는 좀 외우셔야 됩니다. 바벨론 1차 포로 때 다니엘이 잡혀갔는데 이것이 기원전 605년이고, 에스겔이 잡혀간 2차 포로가 기원전 597년이고, 남유다 멸망이 기원전 586년입니다. 그리고 고레스 칙령과 1차 포로 귀환이 538년입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이 516년입니다. 이 정도는 우리가 좀 어느 정도 알고 계시면 좋습니다.
기원전 458년에 에스라가 율법 재건하기 위해서 포로 귀환하고, 445년에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하러 옵니다. 그러면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해가 언제였습니까? 기원전 479년입니다. 기원전 479년은 무엇과 무엇 사이에 있습니까? 성전 재건과 에스라, 느헤미야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라는 그리고 느헤미야는 에스더를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알았습니다. 당연히 후대 사람인데 역사의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에스더, 에스라, 느헤미야 이렇게 가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을 아시고 에스더가 포로 이후에, 포로 귀환 사이에 어디쯤 있구나 하는 것을 좌표를 잡으시면 됩니다.
3-6. 수산궁의 의미
에스더서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2절을 보니까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도성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라 합니다. 수산궁에 동그라미 쳐 보십시오. 페르시아에는 궁전이 4개 있었습니다. 궁전이 4개 있는데 언제 언제 옮겨 다녔을까요? 계절별로 옮겨 다녔습니다. 왕이. 수산궁은 겨울 궁전입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거기 못 있습니다. 그래서 수산궁에서 즉위하고라고 한 것입니다.
느헤미야 1장 1절을 보면,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 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궁에 있더니"라 합니다. 여기도 수산궁이 나옵니다. 느헤미야도 수산궁이 나오고, 에스더 1장 2절에도 수산궁에서 즉위했다고 나옵니다. 이 수산궁과 이 수산궁이 같은 수산궁 아닙니까?
그러면 느헤미야가 수산궁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되어서 그 자리에서 왕에게 왕의 술을 담그고 왕과 함께 식탁 자리에 있을 때 그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우리 조상 중에 에스더가 왕후로 계셨는데 여기 계셨던 자리, 하만의 모함을 이겨내고 모르드개가 승리한 이 자리,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역사성이 느헤미야에게 그대로 있었던 자리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 수산궁이 같은 수산궁입니다.
4. 아하수에로의 잔치
4-1. 180일의 투자 설명회
여기까지가 배경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면, 아하수에로 왕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가 베푼 잔치의 규모가 어떠합니까? 아하수에로가 어떤 사람 같습니까?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 3년째부터 전쟁을 준비합니다. 전쟁 준비하는 그 첫 시작이 각 지방관들을 다 모아서 잔치를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동안이냐고요?
4절을 보십시오. "왕이 여러 날 곧 백팔십 일 동안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 180일이 며칠입니까? 6개월입니다. 6개월 동안 잔치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상상이 되십니까? 결혼식 가서 피로연 한 2시간만 하고 가도 집에 가서 누워 자야 되는데, 피곤해서 180일을 부어라 마셔라 잔치하고 그랬습니다.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러면 왕이 지방관들에게서 돈 뽑아내려고 180일 동안 갖다 부은 돈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것이 그냥 공짜입니까? 절대 공짜가 아닙니다.
그 세상은 이런 가치로 돌아갑니다. 투자하면 끌어내야 되고, 갖다 부었으면 얻어내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 온 지방 관리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왔을까요? 이 중에 대접만 받고 가겠다고 온 바보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면 여기 온 지방 관료들은 계산을 하고 오는 것입니다. 내가 왕이 돈을 달라 하니까 투자를 하고 돈을 주는데, 그건 그냥 주는 게 아니라 투자의 개념입니다. 그리스를 정복하러 갑니다. 그리스를 정복하러 가면 그리스를 정복하고 나서 에게 해상의 무역권을 가져올 것 아닙니까? 그러면 거기에서 나에게는 얼마나 떨어질까, 거기에서 나에게는 얼마의 돈이 떨어질까, 이것을 계산하고 오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이 6개월 동안은 투자 설명회 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의 느낌이 오십니까? 왕은 그냥 그 자리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굉장히 설계하는 설계자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신하들이 당신들이 여기에 돈을 이만큼 투자하면 금덩이를 얼마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제국 아닙니까? 우리가 이만한 군사력으로 이만한 엄청난 돈으로 여기 가서 승리하고 돌아오면 여러분이 이제 돈방석에 앉는 것입니다. 이러면서 이제 계속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낮에는 투자 설명회를 하고 저녁에는 술을 마십니다. 술만 마십니까? 온갖 퇴폐적이고 온갖 음란한 짓을 다 합니다. 그 자리에서. 그것이 6개월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은 계산합니다. 얼마를 갖다 부었으니 저 인간들에게 얼마를 갖고 오라고.
4-2. 천국잔치와 세상잔치
에스더서에서는 잔치가 많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읽어 살펴볼 본문 제일 마지막에 요한복음 2장 얘기가 나옵니다.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잔치와 사람이 주인 되는 잔치가 이렇게 다릅니다. 천국잔치는 어떤 자리입니까? 투자하는 자리입니까? 천국잔치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자리입니다. 매주 우리가 예배드립니다. 매주 예배드리는 자리가 바로 천국잔치 자리입니다. 투자하고 뽑아가는 자리가 아니고, 하나님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까 복 주세요 하는 자리가 아니고, 너 헌금 얼마 하면 내가 너에게 얼마의 복 줄게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교회는 천국 투자 설명회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를 그런 식으로 상업화시키고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각한 일 아닙니까? 지금 이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아주 전형적인 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쟁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입니다. 명분이 있는 전쟁도 아닙니다. 이것은 약탈하는 전쟁입니다. 이미 돈 많고 이미 제국입니다. 그런데 투자를 받아서 배를 건조하고 무기를 만들어서 다시 약탈하러 가는 전쟁입니다. 거기에 투자받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6개월 동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까?
그런데 세상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참 이 세속화라는 것이 무서운 게 교회가 세상을 닮아서 교회도 그렇게 갑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헌금 많이 하시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거라고 말하는 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헌금은 내가 봉사하고 섬기고 헌신하고 드리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전적인 감사의 표현이지 이것 하고 내가 받겠다고 투자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절대로 우리가 지금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다면 신앙생활 잘못한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지방관들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4-3. 교만과 패망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잠언 16장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입니다. 지금 이미 다 가지고 있는데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내가 더 큰 제국의 왕이 되겠다고, 대왕이 되겠다고 하는 이 교만은 결국 패망합니다. 망해버립니다.
졌습니다. 지고 돌아오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왕이 내려와야지요. 왕의 자리에서 왕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투자받았는데 못 돌려줬으니까, 알거지가 돼서 돌아왔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5절을 보면, "이 날이 지남에"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다. "왕이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각 지방의 지방관들을 다 불러서 6개월 동안 잔치하면 그 뒤치다꺼리를 누가 합니까? 수산궁, 수산 도성에 있는 백성들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7일 동안 또 하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리고 6절, 7절, 8절을 보면 거기에 왕의 위엄과 그 궁전의 화려함을 다 설명해 둔 것입니다.
5. 왕후 와스디의 거부
5-1. 술 취한 왕의 명령
또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이제 9절을 보시면 "왕후 와스디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이제 여성들이 잔치에서 소외됩니다. 왕후는 여인들을 다 불러다가, 관리의 부인들, 신하의 부인들, 여성들을 불러다가 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술을 먹이고 잔치하고,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치하하고 하는 자리로 이제 잔치가 끝물로 갑니다.
여러분 잔치 끝이 어떻습니까? 세상 잔치 가보셨지요? 술로 시작하는 잔치의 끝이 어떻게 됩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엉망진창 아닙니까? 싸우고, 마음에 담아둔 얘기 해서, 그래 니가 옛날에 그랬어 이래 가지고 싸우고, 빌려간 돈 갚아라부터 시작해서 옛날에 서운하게 했던 것 들추고. 결국 술로 시작한 잔치의 끝은 엉망진창입니다. 이 잔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치 마지막 날 왕이 어떤 명령을 내렸습니까? 10절을 보면, "제칠 일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어전 내시 무후만과 비스다와 하르보나와 빅다와 아박다와 세달과 가르가스 일곱 사람을 명령하여" 주흥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점잖게 표현해서 그렇습니다. 성경이니까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어떻습니까? 술이 취해서, 술이 떡이 돼서 그런 뜻입니다.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 왕후의 관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오게 하여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이것이 정당한 명령입니까? 이렇게 해도 됩니까? 왕후는 어떤 자리입니까? 왕후는 백성들이 볼 때 제국의 왕후입니다. 왕비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비입니다. 그런데 왕이 술자리에 불러냈습니다. 술 취한 자리에 술이 떡이 돼서 왕비 불러내서 한번 돌아봐라, 우리 왕비 예쁘지, 얼마나 몸매가 좋아,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왕비가 나오면 됩니까? 부르면 나가야 됩니까? 인간 말종인 것입니다. 이 왕이 사람이 왕이면 무엇합니까?
5-2. 소유물이 아닌 배우자
술 먹고 이런 식으로 자기 부인을 이런 식으로 자기 소모품처럼 다루는데 이것이 정당한 상황이 아닙니다. 자기 부인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데 정당한 상황입니까? 성경은 남자와 여자, 남성과 여성의 아주 친밀하고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얘기합니다. 그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성경이 무엇입니까? 아가서 아닙니까?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노래가 있는 아가서입니다.
아가서 2장 16절, 7장 10절과 11절 말씀을 같이 한번 봅시다. 잘 보셔야 됩니다. 먼저 16절을 보시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이것을 누가 말하는 것이냐 하면 솔로몬이 노래하는 자리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곧 나의 사랑하는 자가 누굽니까? 술람미 여인은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이것이 원래 솔로몬의 노래였습니다. 2장 16절에서 그런데 3장, 4장, 5장 가면서 서로 갈등하고 문제가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막 합니다. 서로 그러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7장에 가서 변합니다. 7장 10절을 보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무엇이 변했습니까? 2장 16절에서 이 여성을 자기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풍파를 겪고 결혼생활을 하고 인생이 깊어지면서 삶이 바뀝니다. 고백이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역설입니다. 그가 나를 사모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속한 것이지요. 그런데 솔로몬이 고백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 이것이 사랑이 깊어지면 이렇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정상적인 가정이면 그렇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11절이 나옵니다. 11절을 봅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나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이래야 함께 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5-3. 참된 부부의 관계
그런데 사람이 항상 그런 것이 있습니다. 남성성이 좀 강하신 분들, 그것을 남성성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너는 내 거야. 내가 그냥 짜장면 먹으라 한번 먹고, 짬뽕 먹으라 한번 먹고, 그냥 내가 시키는 거 다 하고, 그냥 내 취미는 TV 보는 거고, 특기도 TV 보는 거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너는 원래 이렇게 설거지하는 걸로 태어났으니까 죽을 때까지 설거지하고, 너는 나에게 속하였다.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믿음이 깊어지고 진짜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가 한 몸이 되고 가정을 이루어 가면 나는 너에게 속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보십시오. 아하수에로를 보십시오. 술이 떡이 되어서 위엄 있고 체통이 있는 제국의 왕후를 술 취한 취객들 앞에 불러냅니다. 이것이 할 짓입니까?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절대로.
5-4. 와스디의 거절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의 잔치를 보십시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잔치입니다. 자기가 주인 아닙니까? 자기가 주인입니다. 자기가 주인인 잔치 자리에서는 제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 멋대로 6개월 동안 온갖 퇴폐적이고 음란한 짓 다 하고, 술 다 먹고, 투자 설명회 하고, 왕후 불러다가 앞에 세우려고 하고. 그런데 이 와스디가 참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12절을 보면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하더라." "싫어하다"라는 말, 싫어하다.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마엔'(מָאֵן)입니다. 거절하다라는 뜻입니다. 명확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못 간다고 전해라. 가기 싫다고 전해라.
그러니까 왕이 어떻게 합니까? 진노합니다. '갈라지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차프'(קָצַף)입니다. 마음이 쪼개어지는 것같이 화가 나는 것입니다. 열이 받아서. 그래서 "불붙는 듯하더라." '바아르'(בָּעַר)는 태워 없애다, 먹어치우다라는 뜻입니다. 화가 나서 없앨 만큼 화가 난 것입니다.
6. 눈치 보는 현자들
6-1. 왕의 기색을 살핌
그러니까 이제 왕이 그다음에 어떻게 합니까? 바로 지금 술이 덜 깼습니다. 술 취한 상황에서 이제 보십시오. 13절, "왕이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현자가 문자 그대로 하면 어떤 사람들입니까? 지혜로운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진짜 이 사람들이 지혜로운가요? "사례를 아는 현자들에게 묻되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자에게 묻는 전례가 있는데" 사례를 아는 현자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럴 때 과거의 법에 판례가 있느냐, 과거에 이 왕실에 이런 예가 또 있었느냐, 너희는 현자인데 너희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진짜 현자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왕이 잘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목이 날아가는 것입니다. 일단 술 깨고 얘기하시지요? 그러면 재떨이가 날아가든지 어떻게 되겠지요. 뭐 당장 칼을 빼서 저놈 끌고 가라 하든지. 그런데 이 현자가 하는 짓을 보십시오.
14절, "그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이것이 현자입니까? 이것이 현자입니까?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기색을 살피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 우리가 지혜롭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이 지혜롭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거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아닙니까? 그 분위기와 상황을 따라서 결정하면 그것이 무슨 지혜입니까? 눈치만 늘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날 때 혹은 어떤 공동체 어떤 자리에서 회의하거나 대화하거나 할 때 그 사람 귀에 쏙쏙 들어가는 말, 그 사람 입맛에 맞는 말 하기 쉽습니다. 눈치 딱 보면 압니다. 지금 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이 분위기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다 압니다. 그것 모르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이만큼 살았는데, 이만큼 사회생활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현자가 아닙니다. 왕의 기색을 살피고 분위기를 살피고 주변을 보고 내 입신양명을 도모하고, 그것이 현자가 아닙니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 진짜 현자는 하나님의 기색을 살펴야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6-2. 바로의 현자들
출애굽기 7장 11절에서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로도 현자들과" 여기도 현자들이 나옵니다. "마술사들을 부름에 그 애굽 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이집트에도 현자들이 있었습니다. 요술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진짜 바로의 마음을 돌렸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의 기색을 살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라가 다 망해 나갈 때까지, 결국 마지막 열 번째 재앙으로 그 이집트에서 태어난 짐승부터 사람까지 첫 번째 난 것을 다 치실 때까지 현자들은 입도 뻥끗 못했습니다.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눈치 본다고. 그것이 무슨 현자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색을 먼저 살필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을 보고 잘 기억하십시오.
7. 와스디의 폐위
7-1.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왕의 기색을 살피며 하는 말을 한번 보십시오. 15절, "왕후 와스디가 내시가 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니 규례대로 하면 어떻게 처치할까?" 왕이 한 번 더 묻습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대답을 잘 못하고 머뭇거리고 왕의 기색을 살피니까 왕이 명확하게 한 번 더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왕의 명령, 이 왕이 말하는 것 한번 보십시오.
"무무간이 왕과 지방관 앞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무무간이라는 현자라고 말하는 사람의 대표격입니다. 이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이제 명분을 만드는 것입니다. 명분을.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논리학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전제를 딱 깔고 말합니다. 왕비가 잘못했다는 전제를. 왕이 불렀는데 안 왔다는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청하여도 오지 아니하였다 하는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여인들에게 전파되면 그들도 그들의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이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아닙니까? 그렇게 딱 규정을 하는 것입니다.
7-2. 폐위 명령
"그래서 오늘이라도 바사와 메대의 귀부인들이 왕후의 행위를 듣고 왕의 모든 지방관들에게 그렇게 말하리니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실진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무슨 말입니까? 폐위 명령의 조서를 내리라는 말입니다. "바사와 메대의 법률에 기록하여 변개함이 없게 하고 그 왕후의 자리를 그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법으로 폐위시키라는 것입니다.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여인들이 그들의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한 가지 사건으로 페르시아 전체 127도의 전체 부부 사이를 상하 주종 관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정을 이런 식으로 만들다니요. 이것이 현인들이 하는 짓입니까? 이것이 현인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조금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살펴보도록 했어야 될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페르시아의 모든 가정을 주종 관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7-3. 정상적인 공동체
지금 이런 상황이니까 이 상황에서 전쟁해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나라 꼴이 이 꼴인데, 여기 지금 올바른 토론과 대화가 오가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정상적인 공동체는 토론이 있고 서로 대화가 있고 건전한 비판이 살아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왕이 결정하면 무조건 하는 것입니다. 그냥.
21절, "왕과 지방관들이 그 말을 옳게 여긴지라 왕이 무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각 지방, 각 백성의 문자와 언어로 모든 지방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남편이 자기의 집을 주관하게 하라." 남편의 말이 법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어기면 어떻게 됩니까? 왕이 왕후를 폐위시킨 것처럼 이혼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여성을 갖다 버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자기 민족의 언어로 말하게 하라 하였더라."
그런데 여러분 이 1장 사건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한 나라의 왕실, 그래도 제국의 핵심 심장 아닙니까? 여기가 페르시아라는 제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정신 상태로, 이런 토론 문화로, 이런 현인들의 사고방식으로 전쟁하러 갑니다. 그 전쟁 이기겠습니까? 전쟁 준비하는 3년의 첫머리가 이 지경인데 당연히 지는 전쟁입니다.
8. 하나님의 역사
8-1. 건강한 공동체
그래서 우리가 가정도 마찬가지고 나 자신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건강해야 일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그다음이 됩니다. 교회가 싸우지 않고 교회가 나누어지지 않고 교회가 화목해야 그다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안 되는데 교회가 엉망인데 자꾸 일하자 하고, 가정이 엉망인데 자꾸 딴 거 하라고 하면 마음이 시끄러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 꼴이 이 꼴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실수와 실패와 문제를 하나의 고리로 삼아서 에스더를 준비시키신다는 것입니다. 페르시아가 엉망진창입니다. 와스디라는 왕비가 폐위됐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의 역사는 유대인들을 건져내고 구원하고 살리기 위해서 에스더에게 집중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8-2.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눈에 보이는 역사를 우리도 지금 봅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나라에 마음에 드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까? 별로 없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돌아가는 경제도 그렇고 다 엉망이고 전부 다 마음 상합니다. 그런데 내가 못 보는 하나님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못 보는 하나님의 역사.
사사시대 혼란기에도 룻이 출현했고, 지금 포로기 때 페르시아 왕실의 이 혼란기에 와스디가 폐위되는 상황을 통해서 에스더가 등장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드는 아하수에로 왕 크세르크세스 1세, 우리 정치 지도자들, 그들을 원망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이 나라를 긍휼히 여겨 달라고, 지금도 에스더 같은 사람을 준비시켜 달라고.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신데 그 역사를 이끌어가시지 않겠습니까?
9.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9-1. 잔치의 참 주인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를 마지막 본문으로 적어뒀는데 잘 아시는 본문입니다. 지금 이들의 잔치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가 너무너무 다릅니다. 왜 다릅니까? 크세르크세스 1세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의 주인공은 자기입니다. 제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전쟁 준비하고 투자 설명회 하고 난리입니다. 왕후 불러오라 그러고.
그런데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의 주인은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여기 혼주가 있고, 가나에 이 집에 혼주가 있고 연회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 연회장이나 혼주가 혼인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인들이 순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잔치의 주인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가 되셔야 됩니까? 예수님이 되어야 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어야 내 인생이 진짜 좋은 잔치, 행복한 잔치 같은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어버리면 마지막이 아하수에로같이 되어버립니다.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가 주인 되어서 내 가정도 내가 다스리고 내 아이들도 내 남편도 내 부인도 내 돈도 내 멋대로 한다 그러면 엉망 되어 버립니다. 내가 무엇을 안다고 내가 주인 노릇 하겠습니까?
9-2. 위기 때 주인께 나아감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자리에 위기가 없습니까? 위기가 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위기가 찾아올 때 중요합니다. 위기가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인이니까, 잔치의 주인이 예수님이니까, 예수님께 나가야 됩니다. 주님이 해결해 달라고, 주님 풀어 달라고.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의 180일간의 잔치에서는 현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 사람이 주인이니까. 그러니까 엉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문제가 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이 답을 알려주십니다.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 이제는 떠서 갖다 주라. 어떻게 됐습니까?
9-3.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인생
9절과 10절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여러분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잔치 자리의 특징은 처음은 미약하게 시작하는데 나중이 어마어마하게 좋아집니다. 처음에는 이 집 사람이 만든 포도주를 맛봤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이 직접 담그신 포도주를 맛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그 맛이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런데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를 보십시오. 마지막 어떻게 됐습니까? 엉망됐습니다. 술 취해서 엉망 되어 버렸습니다. 내 인생 내가 주인 되면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갈수록 엉망입니다. 그런데 예수 잘 믿는 사람들 보십시오. 갈수록 갈수록 행복합니다. 갈수록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뭐 좋은 데 취직하고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주인 되시니까 갈수록 행복합니다. 예수님 담그신 포도주를 내가 매일 맛보고 사니까 그 잔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에스더 1장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한번 잘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의 진리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과 지혜와 능력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옛날 포로기 때 숨쉬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유대인으로 사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통해서 모르드개를 통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신 장면들을 봅니다.
주여, 우리가 우리 인생 잔치의 주인공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아하수에로 왕처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 할 때, 그때 결국 패망하고 망하고 쓰러지고 마지막이 최악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처럼 예수님이 주인 되는 인생 되게 하시고, 인생의 주도권을 주님께 넘기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 인생의 주인 되어 일하여 주시옵소서. 처음보다 나중이 나은 인생, 내 인생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이 가장 복된 인생 되기에 부족함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