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강 - 에스더, 왕후가 되다 / 전체녹취

에스더, 왕후가 되다 (에스더 2장)

에스더 2장 17-18절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오늘은 에스더 두 번째 시간으로 2장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에스더 이야기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고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에스더 이야기에는 잔치가 많이 나옵니다. 에스더서의 시작부터 잔치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에서 말하는, 인간이 베푼 잔치와 지난 시간 말미에 살펴보았던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중심이 되는 잔치는 마지막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어마어마하게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국 127도의 지방관과 관리들, 대단한 사람들을 다 모아서 180일 동안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은 엉망이 되고 맙니다. 왕후를 술 취한 자들 앞에 세우려 했고,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갈수록 엉망이 되는 잔치, 세상의 모든 인생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갈수록 엉망입니다. 한번 보십시오. 내 인생의 주인으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 갈수록 엉망 아닙니까? 겉으로는 돈을 많이 벌어서 성공했고 남들보다 뭔가 다른 것을 이루어서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갈수록 공허하고 문제 많은 인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를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 잔치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에 계셔도 사흘째 되던 날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사실 요한복음 2장의 그 잔치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이 되면 내 인생은 잔치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연회장이 마지막에 말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이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갈수록 더 좋아지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서가 이야기하는 잔치 모티브는 오늘 우리에게 굉장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에스더서를 볼 때 반드시 서두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항상 역사적 바탕 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 이야기를 역사와 연결 짓지 못하고, 또 시킬 생각도 잘 하지 않습니다. 마치 딴 나라 이야기처럼, 동화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스더 이야기는 아하수에로 왕, 곧 크세르크세스 1세 페르시아 대왕의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486년에 왕이 되고, 480년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지고, 기원전 479년 왕후를 새로 맞이하고, 그리고 기원전 465년에 죽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것이 분명히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역사 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역사적 지평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것 중에 현인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 아하수에로 왕 옆에 있었던 사람들을 성경은 현인이라고 말했는데 진짜 현인이었습니까? 진짜 현인은 왕을 그런 식으로 내버려 두지 않겠지요. 왕의 눈치를 보고 왕의 심기를 살피고, 자신의 목숨과 부귀영화를 부지하기 위해서 간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현자, 현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내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셔야 합니다. 내 옆에, 내 주변에, 우리 공동체에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그것이 지난 1강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오늘 2강의 주제는 '에스더, 왕후가 되다'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그냥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왕후가 되고 팔자 고친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치열한 이야기이고, 그 속에 하나님 이야기가 아주 상세하게 들어있습니다. 에스더서 1장부터 10장까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보아도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와 비슷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입에 올리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개입과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강하게 나타납니까? 에스더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일하셨던 하나님의 이야기가 여기에 굉장히 깊이 있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1. 술 깬 후의 후회

이제 2장 1절을 보십시오. 왕의 노여움이 그친 후에 왕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침에"

그 후는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술 깬 후입니다. 술 깬 후에 이분이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닐 때 몇 가지 일을 했습니다. 첫째가 왕후를 불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들 앞에서 왕후의 자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왕후가 거절합니다. 그런데 그 즉시 역사를 아는 사람들, 전례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왕후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회의하고, 그것을 결론 내고 도장을 찍어서 반포해 버렸습니다. 술이 깨기도 전에 말입니다.

술 취했을 때 했던 일 두 가지, 왕후를 불러오라 한 것과 왕후를 폐위시켜라 한 것을 일사천리로 해버렸습니다. 그 후에 술이 깼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의 노가 그쳤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

무슨 말입니까? 이것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후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왜 그랬지? 여러분, 술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줍니까? 술 취하면 감해 주어도 됩니까? 나 술 취하고 정신이 없어서 몰랐다고, 그리고 나서 나쁜 짓하고 범죄하고 막말하고 마구 행동하면 그것 다 넘어가도 됩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성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보십시오. 음행, 탐욕, 우상숭배.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무슨 말입니까?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라는 뜻입니다.

여기 술 취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술 취한다는 것은 상당히 일상적인 이야기입니다. 고린도전서가 기록되었을 때 고린도 사회에서도 고기와 술은 항상 같이 갔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고 항상 이방 신전에 가면 고기가 있는데, 그 고기를 그냥 먹을 수 있습니까? 포도주와 같이 먹습니다. 그 포도주가 지나치면 독주가 됩니다. 항상 고기와 술이 같이 가서 술에 취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상숭배와 같은 맥락으로 놓습니다. 음행, 탐욕, 속여 빼앗는 것, 우상숭배와 술 취하는 것을 동급으로 놓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과 사귀지도 말고 함께하지도 말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그만큼 술 취하는 것을 강하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술에 대해서 굉장히 관대합니다. 성도라도 "아이 뭐 그건 뭐" 하며 굉장히 관대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서 줄타기도 합니다. 어떻게 말합니까? "목사님, 취하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상당히 줄타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궤변입니다. 입에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 사람을 보십시오. 아하수에로 왕이 자기가 술 취하고 나서 술이 깨고 난 이후에 그 이전의 행위를 이렇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있습니까? 도장을 찍어버렸는데요. 인생이 항상 이런 식의 후회가 반복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손해 보는 일이 많겠습니까?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나가지 못합니다. 일을 해야 되는데 일을 못합니다. 항상 술 취하고 나서 술 취했을 때 했던 행동들을, 사고 친 것들을 수습하느라고, 그것도 자기가 수습합니까? 집안 식구들이 수습합니다. 그것을 수습하느라 인생이 항상 진흙탕입니다. 인생을 왜 그렇게 삽니까? 이것은 종교적인 이유로 금하라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가지고 한번 생각해 보셔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사람, 술 깨고 나서 자기가 한 짓을 생각하니까 후회막급입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합니다. 심지어 왕인데 말입니다.

1-1. 간신들의 제안

2절을 보십시오. 왕의 생각을 읽은 측근 신하들이 제안하는 것이 있습니다.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이렇게 나옵니다. 왕의 심기를 읽은 것입니다. 측근 신하들이 만약 이 왕이 상당히 변덕이 심하거든요. "내가 도장을 찍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찢어버려라. 심신미약 상태에서 한 것이니까. 이건 없던 걸로 하자. 다시 와스디를 불러와라. 복권시켜라." 만약 그런 말이 왕의 입에서 나와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와스디가 다시 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자칭 현자라고 말했던 왕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목이 온전하겠습니까? 와스디가 다시 자리에 왔는데 "너희들이 나를 폐위시켰다"고 왕후가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왕의 심기를 읽었으니까 이분들은 급한 것입니다. 뭔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입에서 나오는 말이 무엇입니까? "왕을 위하여." 간신들입니다.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전국 각 지방의 관리를 명령하여 아리따운 처녀를 다 도성 수산으로 모아 후궁으로 들여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가이의 손에 맡겨 그 몸을 정결하게 하는 물품을 주게 하시고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여러분, 이것은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것입니다. 오디션을 하자는 것입니다. 대단위 오디션 이벤트를 한번 해보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제국의 왕비가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딱 정해놓고 합니다. 좋은 집안에, 왕과 사돈을 맺을 만한 자리에 있는 집안의 딸들 중에서 몇 명을 추려서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신하들은 상황이 좀 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전국 단위로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을 한번 진행해 봅시다고 한 것입니다.

여기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왕을 위하여", 그리고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 이것이 핵심입니다.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 왕을 위하여 대단한 이벤트를 한번 해봅시다 하니 왕이 어떻게 됩니까?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

술 깨도 별수 없는 것 같습니다. 술 취하면 엉망인데 술 깨면 좀 그래도 제정신인 줄 알았더니, 술 깨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1-2. 하나님의 숨은 역사

그런데 이것을 보면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이면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이 엉망진창인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속에서 에스더를 준비시키고, 에스더를 제국의 왕후로 준비시켜 가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당시에 이 놀라운 사실을, 하나님의 놀랍고 원대한 계획을 지금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잠언 16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렇습니다. 왕은 제멋대로 할 수 있습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왕이 좋은 대로, 왕의 눈에 아름다운 사람을, 왕을 위하여 전국의 처녀들을 다 모아서 미모가 아름답다고 소문난 처녀들 다 모아서 왕이 마음대로 간택하십시오. 여기에 드는 모든 비용이 얼마나 들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왕보다 높이 계셔서 그 왕의 계획을 하나님의 손으로 이끌어 가시고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알지 못하지만 그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기도하고, 믿음의 백성으로서 삶의 자리를 잘 지키고 성실하게 자기 일을 잘 감당하면 됩니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 저 북한은 맨날 핵 만들고 맨날 미사일 쏘고, 우리나라 정치는 왜 이렇게 돌아가? 보면 한숨이 나고 한탄이 나고 엉망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스스로 자기 계획을 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일을 통해서 결국은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성취해 나가실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까지 이루어온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였지 않습니까? 그것을 우리가 다 경험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됩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기도하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됩니다. 내 자리에서 정직하게 내가 할 일 잘 감당하면 그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연도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하수에로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기원전 486년에 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왕이 된 지 3년 만에 전국 127도의 지방관들을 다 불러 모아서 전쟁 설명회를 했습니다. 투자 유치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 정벌에 대한 전쟁을 계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잔치 말미에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켰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비가 된 해는 기원전 479년입니다. 바로 그 한 해 전 기원전 480년도에 전쟁하러 갔다가 그리스와의 전쟁 살라미스 해전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왕비 오디션이 기원전 483년에 시작된 것이고,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이 기원전 479년입니다. 몇 년 동안 이것이 이루어졌습니까? 4년 동안입니다. 여러분, 우리 텔레비전을 보면 오디션 프로그램을 해서 1등 뽑을 때까지 대충 몇 개월 정도 합니까?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 1년 가는 것은 잘 없습니다. 흥미가 떨어지고 재미없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제국에서 왕비를 세우는 데 무려 4년이 걸린 것입니다.

4년 동안 이 대규모 이벤트를 진행하는 데 드는 비용, 거기에 동원된 처녀들, 그리고 거기에 헛물을 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것을 누가 주장해서 한 일입니까? 간신배들, 소위 말하는 현인들이 이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짓을 해서 국고를 탕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이면에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라가 엉망으로 돌아가도, 정치에 희망을 걸 일이 없어도, 우리는 그 이면에 지금은 알 수 없으나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이 신앙이고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2. 모르드개와 에스더

이제 모르드개가 소개됩니다. 5절입니다.

"도성 수산에 한 유다인이 있으니 이름은 모르드개라"

이 모르드개를 어떻게 소개합니까?

"그는 베냐민 자손이니 기스의 증손이요 시므이의 손자요 야일의 아들이라"

여기서 모르드개가 베냐민 자손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의 복선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중에 하만과의 관계에서 이 복선이 탁 드러납니다.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 자손이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6절에 "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고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문자 그대로 보시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로 유다 백성들을 잡아갈 때 그때 모르드개가 진짜 잡혀갔다면 지금 모르드개가 나이가 100살이 훨씬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드개가 잡혀갔다는 말이 아니라 모르드개의 집안이 그때 포로로 잡혀왔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2-1. 에스더의 정체성

이제 에스더가 어떤 사람인가 보겠습니다.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여기서 '그'가 누굽니까? 모르드개입니다.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 그렇다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사촌 관계입니다. 이 사촌인 것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사촌이고, 하닷사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식 이름입니다. 유대식 이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이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페르시아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페르시아식 이름입니다.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고아였습니다.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같이 양육하느니라"

나이 차이가 많은 사촌 오빠, 사촌 여동생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르드개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성품이 어떻습니까? 사촌 여동생을 자기 딸같이 양육합니다. 지금 여기는 이방의 땅입니다. 유대인 핏줄을 가지고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사촌 여동생을 자기 딸같이 양육했습니다.

부모가 없는 고아인데 에스더라는 이름의 뜻이 페르시아어로 '이슈타르(Ishtar)', 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 의아한 것이 생깁니다. 아니 좋은 유대식 이름, 히브리 이름을 놔두고 왜 성경은 페르시아 이름 에스더라는 이름을 썼을까요? 이슈타르는 사실 여신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썼을까요? 우리로 치면 일제강점기 때 창씨개명 당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 그 사람의 조선 이름이 아니라 일제의 이름을 갖다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해도 됩니까?

여기서 성경이 말하고 싶은 것이 아마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질과 내용이지 껍데기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 이야기가 한 번도 안 나옵니다. 하나님 이름이 단 한 번도 안 나오는데, 그런데 하나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그 이름 자체가 이슈타르, 별, 이방의 신을 이야기하는 이름입니다. 페르시아에서 그렇게 부르는 이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정말 페르시아 이방의 신을 섬기는 사람으로 살았습니까? 에스더의 삶을 보십시오. 그의 삶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으로 불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의 이름의 껍데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 중심의 삶이냐 그렇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우리가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직분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집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사느냐가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에스더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삶이 진실로 하나님의 백성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유다인들 중에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가지고 살면서도 엉망진창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름값 못하고 살아간 사람들 말입니다.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2. 끌려간 에스더

8절을 잘 읽어보셔야 합니다.

"왕의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며"

어떤 조서와 명령입니까? 전국 각지에 있는 처녀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한다는 명령과 조서가 반포되었습니다. 명령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조서와 명령. 이 명령에는 어떤 의미가 들어가 있습니까? 강제성이 들어가 있습니다.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여 헤가이의 수하에 나아갈 때에"

처녀들이 도성 수산에 많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처녀들은 끌려온 자들입니까? 자발적으로 자기 발로 온 자들입니까? 능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처녀들이 모였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왕의 왕후가 될 것을 기대하고 모인 처녀들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을 보십시오.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도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에스더는 자기 발로 "나 왕후가 되고 싶어요. 나 몸매가 좀 되고 미모가 되니까 저도 왕후가 되고 싶어요" 이러고 간 것입니까? 아니면 끌려간 것입니까? 자발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끌려간 것입니다. 왕의 조서와 명령 가운데 명령에 해당되어서 잡혀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에스더의 외모는 어떠했을까요? 사진도 남아있지 않고 그림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소문날 만큼 아름다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뭔가 좀 인물 반반하고 괜찮은 처녀들은 다 데려간 것입니다. 그냥 잡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에스더 입장에서는, 모르드개 입장에서는 이방 결혼을 유다인들이 율법으로 금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신앙이 제대로 된 사람들은 이방 결혼을 못하는 것입니다. 칼이 들어와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자발적으로 자기 발로 간 것이 아니라 끌려간 것입니다. 그것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에스더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에스더라면, 부모가 없습니다. 고아입니다. 사촌 오빠가 나를 돌봐줍니다. 사촌 오빠의 직업은 수산궁을 지키는 아주 하급 관료 문지기입니다. 궁을 지키는 문지기가 출퇴근 시간이 일정합니까? 교대 근무하겠지요. 그렇게 사는 이 아이가 자기가 미모가 좀 있다고 해서 끌려갔습니다. 여기에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이 아이의 마음이, 에스더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 에스더를 그냥 왕후가 되어서 팔자 고치고 잘 먹고 잘 산 성공 스토리로 읽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잡혀간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와 있는 것도, 자기 부모 때, 할아버지 때 여기 온 것도 기구하고 억울한데, 그런데 또 거기에 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왕후가 된다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생각이나 했겠느냐고요. 그냥 그렇게 쓰임받다가 버림받는다고 생각했겠지요.

2-3. 하나님의 손길

9절을 보십시오.

"헤가이가 이 처녀를 좋게 보고"

헤가이는 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내시 중에 대장입니다. 참 놀라운 사실은 헤가이가 이 처녀를 좋게 본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몸을 정결하게 할 물품과 일용품을 곧 주며 또 왕궁에서 의례히 주는 일곱 궁녀를 주고 에스더와 그 궁녀들을 후궁 아름다운 처소로 옮기더라"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1차 오디션 통과라는 뜻입니다. 후궁에 뽑혀 간 것입니다. 여기 수많은 처녀들이 전국에서 다 왔는데, 1차에서 떨어지고 고향으로 짐 싸서 돌아가는 아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그나마 다행인 것입니다. 후궁에 뽑혀가 버리면 그때부터 왕후가 되지 못하면 평생 후궁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평생 이 어린 나이에 여기에 와서 1차 오디션 통과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헤가이가 보고 좋게 여겨 은혜를 베풀었다. 이것은 누가 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에스더가 자기가 기를 쓰고 이것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는데, 헤가이의 눈에 들어서 아름답게 보여진 것이고,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더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1차 오디션 통과해버렸습니다. 좋을까요? 하나도 기쁘지 않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빨리 모르드개 만나고 싶습니다. 외롭습니다. 무섭습니다. 두렵고 전혀 낯선 세상입니다.

이사야 55장 8-9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여러분 이것은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우리 인생이 생각하는 것이 너무너무 다릅니다. 심지어 당사자가 된 에스더조차도 이 일에 대해서 마땅치 않았습니다.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환경을 막 열어가고 계시는 일입니다.

반면에 모르드개는 지금 상황이 어떨까요? 좌불안석입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딸같이 양육한 에스더가 이렇게 끌려가 버렸습니다. 잡혀가서 그냥 1차에서 떨어지고 집에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안 옵니다.

10절입니다.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불이익을 당할까 봐, 혹시 그것 때문에 궁에서 어떻게 잘못될까 봐 말하지 마라고 한 것입니다. 절대 그냥 평범하게 거기 있다가 와라고 한 것입니다.

11절입니다.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

모르드개가 뭔가 힘이 있어서 자기가 권력이 있어서 에스더를 밀어넣어서 왕후로 만들 수 있어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한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좌불안석인 것입니다. 불안하니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마음입니다.

3. 왕후 오디션

12절을 보십시오. 이제 2차 오디션입니다.

"처녀마다"

여기서 처녀는 누굽니까? 1차를 통과한 처녀들입니다. 에스더처럼 전국 각지에서 왔는데 이제 집에 돌아가고, 이제 세미파이널 1차를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이제 왕을 만나기 전입니다.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즉 왕을 모실 만한 왕궁의 법도와 규례대로 12달 동안을 해야 합니다. 1년을 준비해야 됩니다. 미치겠지요.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

왕을 모시는 일에 1년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 그가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

왜 원하는 것을 다 주겠습니까? 마지막 기회니까요. 왕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어필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니까 다 허락해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저 향수 하나 구해주세요. 이런 이런 향수 필요합니다" 하면 그것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저 이런 옷 필요합니다" 하면 이 옷도 맞춰주는 것입니다. 다 해주는 것입니다.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 있는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별난 아이들이 많았겠습니까? 해달라는 것도 많고, 그것을 1년 동안 다 준비시킵니다.

14절입니다.

"저녁이면 갔다가 아침에는 둘째 후궁으로 돌아와서 빈빈을 주관하는 내시 사스가스 수하에 속하고 왕이 그를 기뻐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면 다시 왕에게 나아가지 못하더라"

평생 후궁으로 늙어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여기서 무엇을 보십니까? 요즘 우리 세상과 똑같지 않습니까? 단 한 번에 자기 인생을 다 거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정말 우리 믿음의 백성들은, 우리 믿음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밀어붙이면 곤란합니다. "너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너 이번에 잘못되면 너 죽고 나 죽자." 요즘 아이들은 그러면 정말 죽어버립니다. 나는 살 가치가 없고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는데 왜 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겁니까? 이 남자 하나에게,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왜 그깟 직장 취직한 그 자리에, 왜 그깟 그 일에, 별것 아닌 일에, 나중에 인생 한 10년 지나고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것이 그것이 안 되더라도 진짜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거기에 인생을 왜 겁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거기에 초연해야 합니다. 진짜 왕이신 하나님께 인생을 걸어야지,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인생을 걸고 그 말씀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그 말씀 앞에서 살아가야지, 왜 별것 아닌 것에 그렇게 인생을 걸고 "그것 아니면 죽겠다"고 이야기합니까? 분위기를 그렇게 몰아가고 자녀들, 아이들한테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살아보면 그렇습니다. 살면 살수록 느끼지 않습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시험 몇 번 떨어질 수도 있고 사업 한두 번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 잘 지키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건강 주시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건강만 주시면 그다음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몇 번 실패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생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호들갑 떨 필요가 없습니다.

3-1. 담백한 에스더

그런데 지금 여기 있는 이 아이들에게는 자기 인생 전부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를 한번 보십시오. 에스더가 어떻게 했습니까?

15절입니다.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같이 양육하는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가이가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담백했습니다. 이 아이는 여기에 목숨 걸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원래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되고 싶은 뜻도 없고 억지로 끌려와서 그냥 여기에 있는 것이니까 자기는 향수도 필요 없습니다. 옷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주는 것 주는 대로 입겠습니다. 저 언니들이 버리고 간 것 입어도 됩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러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더라"

별나지 않으니까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더라. 이것도 누가 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면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입니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나에게 환경이 막 열립니다. 나는 이것을 원했는데 자꾸 다른 쪽으로 환경이 열립니다.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다른 데 뜻이 있는데 하나님이 자꾸 이쪽으로 환경을 열어가시면,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 뜻을 묻고 구해봐야 합니다.

지금 벌써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헤가이에게 관심을 받고 은혜를 입었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3-2. 에스더가 왕후가 되다

2장 16절을 보십시오.

"아하수에로 왕의 제칠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때가 기원전 479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6절로 넘어오는 사이에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지고 왔습니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갔습니다. 전쟁에서 졌습니다. 그러면 투자한 사람들에게 돌려줄 돈이 없습니다. 분위기가 어떻게 될까요?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왕의 위엄이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왕의 위엄은 떨어지고 투자한 사람들은 저 왕에게 뭔가를 내가 뜯어내야 되는데 하고 자꾸 생각할 것입니다. 왕실 안에서는 이제 역모의 느낌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왕은 전쟁에 지고 왔습니다. 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당장 해야 할 일이 국정을 잘 돌봐야 합니다. 수습해야 합니다. 분위기를 수습하고 잘못된 것 사과하고 재기를 꿈꾸고 돈 좀 아껴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왕은 그것과 상관없이 계속 진행합니다.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그 이면에 있다는 것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17절입니다.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이것은 누가 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세 가지 단계를 거쳤습니다. 헤가이 앞에 잘 보여진 것, 은혜를 베풀게 한 것, 은혜를 받게 한 것,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한 것, 이것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세 번째,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한 것, 왕의 마음을 움직인 것,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일이 겹쳐서 일어난 것,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가 무슨 집안 배경이 있습니까? 무슨 재주가 있습니까? 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이제 진짜 왕후가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면 정말 일은 하나님이 되게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하나님이 막으시면 안 되는 것이고, 또 우리가 아무리 그것 아니라고 부인해도 하나님이 몰아가시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이면의 주인공이라는 것,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지금도 내 인생을 주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8절입니다.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좀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정신 나갔구나. 미쳤구나."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정신 나간 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 이것이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4. 역모의 발각

19절을 잘 읽으셔야 합니다.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

난데없이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지금 왕후가 정해졌습니다. 처녀를 다시 모을 이유가 없습니다. 왕후가 정해졌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4년 동안 진행되었고 대규모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대상 수상자가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녀들을 또 모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왕의 음란을 이야기합니다. 왕이 정신 못 차린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왕이 이제 전쟁에서 지고 와서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었으니까 왕후를 세우긴 세웠습니다. 에스더를. 그런데 이제 흥미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에. 그리고 이 나라를 부국강병한 제국으로 만들어 가는데 뜻을 잃은 것입니다. 그냥 아주 말초적이고 육체적인 이런 일에만 탐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보고 나중에 뒤에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는 것을 망설이는 것을 한번 연결시켜 보십시오. 이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는 것을 망설이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이야기합니다. 나중에 왕에게 나가서 이야기하라고. 그런데 에스더가 말합니다. 왕이 나를 부르지 않으면 나는 왕 앞에 나갈 수 없다. 그렇게 잘못되면 죽임당한다. 왕이 나를 찾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다. 왕이 지금 이 짓을 하고 있으니까, 왕이 지금 이런 상황이니까. 왕은 지금 여자에게 빠져 있고 주색에 빠져 있습니다. 대신에 왕 대신에 국내 정치를 맡은 사람이 누굽니까? 하만입니다. 3장의 하만이 등장합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그것을 연결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처녀들을 다시 모읍니다.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앉았더라"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앉아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왕의 대궐, 수산궁의 말단 문지기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면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모르드개가 에스더가 끌려갈 때 이야기했습니다. 차출되어 갈 때 "너는 유대인이라고 말하지 마라."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너와 나는 이제부터 끝이다. 단절하고 살자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기왕에 이제 왕후가 되었으니 이제 나는 너의 앞길에, 너의 일에, 나는 생각지도 하지 말고 너는 그냥 너의 삶을 살아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딸같이 길렀습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이렇게 고단한 교대 근무는 좀 면해야 하지 않습니까? 뭔가 좀 출세도 해야 되고, 왕후의 집안, 사촌 오빠인데,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철저하게 이 선을 긋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부인의 친인척이 자기 관리를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명령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그가 모르드개의 명령을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지금까지는 이렇게 해왔습니다.

4-1. 우연을 가장한 필연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우연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데, 우연이라는 말을 썼지만 이 우연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우연인 것이지 하나님의 계획으로 볼 때는 섭리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장치이고 복선이며 섭리입니다.

21절입니다.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앉았을 때에"

즉 문지기로 일할 때, 이제 야간 교대근무 설 때 같습니다.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여러분, 이것이 말단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만이 한 짓일까요? 아니면 몸통이 따로 있을까요? 당연히 몸통이 있습니다. 지금 분위기가 이랬다고 그랬습니다. 전쟁에서 지고 왔습니다. 나라의 재정은 빵꾸가 납니다. 엉망입니다. 그런데 왕은 계속해서 여색을 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겠지요.

이런 일이 있는 것을 모르드개가 듣게 된 것입니다. 누가 들려준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라고 말은 나오지 않으나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하나님이 우연을 가장해서 필연으로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모르드개는 왜 에스더에게 직접 이야기했을까요? 바로 이야기했을까요? 어떤 루트를 통해서라도 자기 계층이 있습니다. 바로 위 상관이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누가 적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왕을 죽이려는 몸통이 누군지 알 수 없으니까 왕후에게 들어가는 직통 통로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뢰니라"

그러면 이제 왕이 조사를 하겠지요.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사실임을 안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일망타진했겠지요.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일기에 기록하니라"

4-2. 하나님의 타이밍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역모를 꾀하는 일을 발본색원해서 이 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따라와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큰 상이 따라와야 합니다. 그것이 에스더의 사촌 오빠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큰 상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상이 없었습니다.

상이 없었을 때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요? 인간적으로는 서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이 없게 한 것도, 왕이 이것을 놓치게 한 것도, 왕의 주변 인물들이 이것을 까먹게 하고 이것을 챙기지 못하게 한 것도,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 주어버리면 안 되니까요. 나중에 왕이 궁중일기 뒤지다가 이것을 발견해서 그때 상례를 해야 되니까요.

여러분, 우리는 즉각적인 기도 응답을 원합니다. 내가 기도했는데 즉각 내 손에 딱딱 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타이밍과 우리 인생의 타이밍이 참 다릅니다. 나는 그것을 즉시 원하는데 하나님은 "야 좀 기다려라. 내가 나중에 몇 배로 쳐줄게. 이자에 이자까지 따따 불려 줄게"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다 필요 없으니까 지금 주세요. 지금 당장 요만큼이라도 지금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요셉 이야기를 아십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 두 사람의 꿈을 해몽해 줍니다. 떡 맡은 관원장은 죽고 술 맡은 관원장이 풀려납니다. 나갈 때 이야기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내가 너를 기억하고 당장 여기서 꺼내주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술 맡은 관원장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자기가 기억력이 없어서 잊어버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잊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가 꿈을 꿔야 되니까요. 바로의 꿈이 있고 그때 기억해야 그 타이밍에 기억해야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니까요.

만약에 술 맡은 관원장이 기억력이 비상해서 즉시 기억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거기서 꺼내주었겠지요. 당장 그의 권위로 꺼내주면 어디로 갑니까? 요셉이 갈 데가 뻔합니다. 보디발의 집에 다시 가든지, 아니면 거기 못 가니까 옆집에 취직하든지, 아니면 자기 아버지 야곱의 집에 다시 터덜터덜 가든지, 그것밖에 더 있습니까?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만 2년 뒤였습니다. 2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요셉은 미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하나님이 기다리게 하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타이밍, 하나님의 때를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좀 견딜 수 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떤 것을 주시려고 이렇게 기다리게 하시나?

창세기 40장 6-8절에 요셉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그들은 누굽니까?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 이들이 왜 근심하고 있습니까? 꿈을 꿨는데 도무지 이상하고 해몽이 안 되니까요. 지금 요셉도 이 감옥에 죄수로 들어와 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범하려 했다는 모함을 받고 여기에 감옥에 죄수의 신분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하는 것을 보십시오. 아침에 그들을 보니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살필 정도의 세밀한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내가 지금 먹고 살기 힘든데, 내 마음이 지금 지옥 같은데, 내가 누구를 돌보고 내가 무슨 교회 일을 하고 내가 무슨 기도를 하고 내가 누구를 살피고 섬기느냐고, 내 마음도 하나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는데"라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 상황이 이래도 타인을 섬기고 타인을 살필 수 있고 그 얼굴에 근심의 빛이 묻어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면 거기서부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모르드개를 보십시오. 모르드개가 충성을 다합니다. 모르드개가 대궐문 앞을 지키는 하급 말단 관료입니다. 그냥 거기서 자기 일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는 가슴이 쿵쾅쿵쾅 뜁니다. 사촌 여동생 에스더의 남편을 지금 죽이려고 하는 저 일을 듣고 그래서 그것을 어떤 수를 써서라도 에스더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일이 나중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우리는 내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도 살필 수 있어야 되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들었으면 최선 다해서 일할 수 있어야 되고, 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널브러져 앉아 있으면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르드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가며

이제 2장까지 내용을 잘 기억하시고, 다음 시간에는 악당이 등장합니다. 원래 이런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는 빌런이 좀 나와야 합니다. 하만이라는 전형적인 악당이 등장하는데 다음 시간에는 하만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에스더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의 이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악한 왕을 통해서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왕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섭리로 나를 통해 환경을 열어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일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크고 높으신 경륜을 모르고 내 멋대로 하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주여, 용서하여 주옵소서.

에스더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 모르드개를 통해서 일하신 하나님, 오늘 우리를 통하여도 일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악합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고 일하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주여,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하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열심히 기도하게 하시고 깨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따라 최선 다하여 움직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