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특강 3 - 하만과 모르드개 (에스더 3장)
에스더 3장 2-4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오늘은 에스더 공부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주제가 하만과 모르드개입니다. 드디어 악당이 등장합니다. 아하수에로도 아주 악당 중의 악당이지만, 극을 더 극적으로 만들고 긴장감을 더 불어넣는 사람은 바로 하만 같은 악당입니다.
하만과 모르드개를 논하기 전에 이 판을 깔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만이 하만 되게 해주고 하만이 등장하게끔 그 바탕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에 대해서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1. 아하수에로 왕의 실체
이 사람은 에스더서가 시작할 때 첫머리에 나오지만, 페르시아 전역에 127도의 지방관과 관리들, 유력한 사람들을 다 모았습니다. 그것이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전쟁을 준비했으면 제대로 된 전쟁을 해서 이겨야 하는데, 전쟁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돌아왔습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지고 돌아온 것입니다.
지고 돌아와서 그 이전부터 진행된 왕후 간택이 4년 동안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왕후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진짜 이 사람이 왕후를 선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에스더를 왕후로 선택하고 나서 거기에서 딱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처녀들을 다시 도성 수산에 계속 모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여색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에 지고 나서 나라를 정상적으로 만들고 세워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계속 여색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니 국정이 돌아가겠습니까? 국정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결재를 해야 하고, 누군가는 결정을 해줘야 하고, 누군가는 이 큰 제국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제 하만이 된 것입니다. 지금 이런 배경에서 하만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 이런 스토리가 있는 내용의 성경들을 보다 보면 사람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람이건 악한 사람이건, 아니면 거기에서 뒷짐 지고 한 발 빠져 있는 중립적인 사람이건,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리를 한 번 딱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면 그 사람을 본받고, 나쁜 사람이면 이러이러하니 우리가 본받으면 안 된다고 정리정돈이 되어야 합니다.
1-1. 자기중심적 인물
아하수에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이 사람은 굉장히 자기중심성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술판 벌이는 것을 보십시오. 6개월 동안 180일 동안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거기서 자기가 진짜 왕이지만 너무 심한 왕 노릇을 합니다. 자기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고 살고, 왕후가 폐위되고, 4년 동안 왕후 선발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입니다.
1-2. 분별력 없는 인물
두 번째 이 사람의 특징을 보면 분별력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전쟁에 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투자한 사람들을 달래야 하고, 국정을 제대로 잘 이끌어 가야 하고, 자기가 잘못한 것은 사과해야 하고, 잘하는 것을 더 잘하려고 애를 써야 하고,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자기 자리를 좀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런 것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분별력이 없는 인물입니다.
1-3. 게으른 인물
세 번째,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인데, 이 사람은 게으른 인물입니다. 게으름이 무엇입니까? 게으름의 정의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인가만 열심히 하고 있으면 저 사람이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착각입니다. 게으름과 성실은 그렇게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성실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것, 그것이 성실입니다.
부모는 부모의 일을 제대로 감당해야 성실한 것이고, 교회에서는 목사가 목사의 일을 감당해야 목사로서 성실한 것입니다. 성경 공부하고 설교하고 말씀 전하고 심방해야 하는데 맨날 마당에 나가서 땅 파고 앉아 있으면 땀은 흘립니다. 열심히 땀 흘리고 수고하고 하는데 그것을 성실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왕으로서 국정 운영을 자기가 해야 하는데 하만을 거기다가 꽂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세상 사람들을 기준해 본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성실하시고, 하나님은 분별력이 있으시고, 하나님은 사람들을 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성을 깨고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고 또 선한 것 중에 가장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내 위치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아하수에로를 통해서는 이렇게 딱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하수에로와 우리는 하나도 닮으시면 안 됩니다.
2. 하만의 등장과 배경
이제 그 사람이 세워놓은 하만이라는 인간, 이 사람에 대해서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모든 대신 위에 둔 인물이 누구입니까? 그런데 어떤 이유로 아하수에로가 하만에게 꽂혔는지, 이 사람을 왜 여기에 세웠는지는 성경이 지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뒤에 가면 우리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만한 단서가 나옵니다.
1절을 보시면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아각 사람'이라는 이름입니다.
2-1. 아각 사람의 정체
아각이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본 적 없습니까? 사무엘상 15장 말씀을 보면 아말렉 사람들의 왕 이름이 아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루는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에게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비롯해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말렉 백성들의 왕 이름이 아각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라고 말하는데, 이 '아각 사람'이라는 것은 아말렉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아각 왕의 후손, 그 집안 자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만의 뿌리를 올라가고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아말렉 사람에게서 접합점이 있습니다. 거기서 만나는 것입니다.
2-2. 아말렉과의 악연
아말렉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은 좋은 인연입니까? 아니면 악연입니까? 악연입니다. 아말렉이 얼마나 악한지, 하나님은 아말렉을 지워 없애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 안 듣는 사울 왕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 있습니다. 사울이 진짜 말을 안 들었습니다. 지 멋대로 하고.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이 이 기회였습니다. 사무엘상 15장 1절에서 9절을 보면 2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하나님이 그렇게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다 쓸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식한 말로 헤렘(חֵרֶם) 명령이라고 합니다. 다 없애버리라는 것입니다. 헤렘 명령의 핵심은 전리품을 가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회의 전쟁은 전쟁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전쟁에서 빼앗아 오는 것이 목적입니다. 왜냐하면 자원이 워낙 부족하고 먹고살 것이 부족하니까, 전쟁에서 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짐승들을 가져오고 곡식들을 가져오고, 우리 부족의 여인이 부족하면 여인들 잡아오고, 노동력이 부족하면 남자들 잡아오고, 그것이 고대 사회 전쟁입니다. 그런데 헤렘 명령은 전리품을 하나도 남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 쓸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전쟁을 하다 보면 우리 측도 죽습니다. 우리 편도 죽고 우리도 군량미가 필요하고 투자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투자되는 것에 비해서 아무것도 건지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헤렘 명령입니다.
최초의 헤렘 명령이 떨어진 자리는 여리고성 전투입니다. 여리고성 전투가 가나안 땅 48개 성읍 중에 첫 번째 성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전리품을 절대로 너의 창고에 들이지 마라, 다 쓸어버려라 하셨습니다. 한 집만 예외로 누구의 집이었습니까? 라합의 집입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살려줬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다 쓸어버려라, 그것이 헤렘입니다.
이 헤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전적인 헌신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왜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이 명령을 하시느냐 하면, 사울이 전적인 헌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발은 여기 두고 한 발은 저기 두고 있습니다. 자꾸만 자기 원하는 것, 자기 필요한 것만 자꾸 가지고, 하나님이 보실 때 사울의 진정성이 의심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헤렘 명령을 내립니다. 전적으로 너 나에게 순종할 수 있느냐. 이 전쟁하다 보면 우리 측 군사도 죽을 수 있고 군량미도 들고 투자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 감수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다 쓸어버릴 수 있느냐. 우리 인생 살다 보면 하나님이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에게 이런 것을 요청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민감하게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요구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에게는 그것이 아브라함에게는 헤렘입니다. 100세에 줘놓고는 도로 달라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우리에게 다 내어주셨습니다. 누구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이 전부인데 다 내어주셨습니다.
2-3. 사울의 불순종
그런데 사울이 그것을 지킵니까? 못 지킵니까?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 지키는 것입니다. 이 나쁜 사람이 어떻게 합니까? 보십시오. 7절에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 8절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어떻게 했습니까? 사로잡았습니다. 죽여야 하는데, 이 아각이 누구입니까? 하만의 조상입니다.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한통속이 된 것입니다.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헤렘 명령을 철저하게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나에게 헌신하라 했는데 내 몫 다 챙기고 헌신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울에 달아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이제 사울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역에서 갈로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어떻게 합니까? 32절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옵니다."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약속을 받았겠죠, 사울에게. 너는 죽이지 않겠다고. 그런데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사무엘이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사무엘이 아각을 처단한 것입니다.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각이 남긴 자손 중에 그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이 하만입니다. 이런 악연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말렉인의 구전으로, 아말렉 사람들의 구전으로 사무엘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유대인들은 그들에게는 나름의 원수가 아닙니까? 철천지 원수가 아닙니까?
2-4. 베냐민 지파의 한
그런데 또 우리가 지난 시간에 이것이 복선이라고 알려드린 것이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어느 집안 사람입니까?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사울도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그러면 베냐민 지파 사람 입장에서 사울 왕은 자랑입니까? 수치입니까? 수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왕이 실패하고, 그다음 사울 다음에 두 번째 왕이 누구입니까? 다윗 아닙니까? 다윗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사랑받았던 왕입니다. 그런데 그 다윗 왕은 유다 지파입니다.
베냐민 지파 입장에서는 이것이 너무 화가 나고 우리 조상 사울이 너무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우리 집안이 대대로 사울 왕만 제대로 잘했으면 우리 집안이 대대로 빛나는 왕의 집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 사울이 아말렉 진멸에 실패한 나머지, 전적으로 희생하고 전적으로 헌신하지 않은 나머지 거기에서 꺾이고 실패한 것 아닙니까? 그것을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뼛속 깊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한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그런데 아무리 아무리 말단 문지기라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아말렉 아각 왕의 후손인 하만이 2인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이 얼마나 많을까요? 얼마나 복잡할까요? 모르드개가 그런 상황입니다.
3. 모르드개의 신앙적 결단
2절을 보십시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여러분 왕이 제정신이 아닙니다. 아하수에로가 아무 생각이 없는 인간입니다. 제가 분별력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습니다. 첫 주에 공부할 때는 술 취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술이 깨고 난 다음에도 제정신이 아닌가 합니다.
3-1. 우상숭배적 명령
그런데 이 사람이 모든 신하들에게 하만에게 꿇어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꿇어 절하라'는 것이 어떤 개념이냐. 그 뒤에 한번 보십시오.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자기보다 계급이 높은, 지체 높은 사람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절하는 것이 그것이 신하된 자의 도리 아닙니까? 아랫사람의 도리 아닙니까?
적어도 그 사회에서는 우리가 이것을 오해하면 모르드개가 상당히 목이 뻣뻣한 사람이구나, 자기 사촌 여동생이 왕후가 되었다 해서 이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는가, 이 사람이 모르드개가 자기 자존심 하나 숙이면 자기 백성들이 위기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이 사람이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다가 온 민족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해하시면 곤란한 것이 '꿇어 절하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느낌이냐 하면 꿇어서 얼굴을 땅에 대다라는 뜻입니다. 꿇어서 절하는데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는 것 어디에서 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이방의 신전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왕의 명령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왕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나 대신에 국정을 책임질 사람이니까 예의를 갖춰라" 이 정도가 아니고, 이 사람 하만에게 마치 신을 섬기듯이 너희는 꿇어 절해라, 신하들에게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3-2. 신앙양심의 문제
그런데 신하들은 그것이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신교 사회 아닙니까? 페르시아 사회가. 이 신도 섬기고 저 신도 섬기고 신전에 가서 다 절하고 사는데, 눈에 보이는 하만이라는 인간에게 고개 한 번 숙이는 것이 무엇이 문제라고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런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르드개는 이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지금 여기 말단 직원으로 이 자리에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어떻게 이방 신전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것처럼 이 사람을 신격화해서 여기에 내가 꿇어 절할 수 있는가? 이것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옛날에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 못했던 것, 차마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이 제대로 있는 분들은 차마 못하는 것입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 황제의 상 앞에 어떻게 꿇어 절합니까? 그것은 못하는 것입니다. 딴 것은 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모르드개가 못합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어떻게 합니까?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이것이 되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다 미완료 동사로 되어 있습니다. 미완료 동사라는 것은 계속 지속됐다는 뜻입니다. 왕이 명령해서 지속적으로 대궐 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꿇어서 절하라고 가르쳤고, 그런데 모르드개는 한 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이 시일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괴로운 일입니다.
3-3. 날마다 이기는 믿음
그러니까 3절을 보십시오.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의아하겠죠. "너는 어찌하여 하만에게 절하지 않느냐" 이렇게 물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하만은 미워도 왕의 명령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왕명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지금 왕과 대척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내가 오늘 허리가 좀 아파서, 내가 무릎이 좀 안 좋아서, 내가 지나가는 줄 몰라서" 이런 식으로 좀 핑계를 대다가 나중에는 4절 "날마다 권하되" 날마다 사람들이 날마다 이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하만이 출근할 때마다 계속 대궐 문을 지나는데 그때마다 하지 않으니까 "야 좀 해라 좀 해라. 너 때문에 우리까지 불똥 떨어질까 봐 겁난다 좀 해라 해라." 이러니까 날마다 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날마다 권한다'는 말을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요셉에게 보디발의 처가 요셉을 날마다 유혹했습니다. 날마다. 여러분 시험이라는 것은 한 번 왔다가 우리가 한 번 이것 이겨내야지 하고 딱 이겨낸다고 그다음 두 번째 안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탄은 그 정도로 게으른 놈이 아닙니다. 사탄은 적어도 나보다 성실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분명합니다. 적어도 나보다는 성실합니다. 사탄이란 놈. 그래서 날마다 유혹하고 날마다 권하고 그래서 날마다 고민하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이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날마다 이겨내야지요. 날마다. 방법이 있습니까? 여러분 일터에 나가거나 세상에 나가면 시험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옵니까? 한 달에 한 번씩 옵니까? 날마다 오지 않습니까? 조금 더 강도가 심하면 1시간에 한 번씩, 10분에 한 번씩 그렇게 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 나 한 10번쯤 했으니까 하나님 이해해 주시겠지 하고 확 넘어가버립니까? 날마다 옵니다.
3-4. 정체성을 밝히다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이것이 큰 결심입니다. 지금까지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조차 정체를 밝히지 마라, 유대인임을 말하지 마라, 너와 나의 관계를 말하지 마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관계 단절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모르드개가 자꾸 물으니까 자기 정체성을 딱 표현한 것입니다. "나 유대인이다."
그런데 이 "유대인이다"라는 말 한마디로 주변의 페르시아 사람들이 이렇게 절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을까요? 아마 100% 이해 못 했을 것입니다. 두 가지를 얘기했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지금 여기에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까 이것을 못한다는 것을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고, 조금 더 들어갔다면 우리 조상 베냐민 지파의 사울과 저 하만의 조상 아말렉 사람 아각 왕과 어떤 인연이고 어떤 악연인지를 아마 설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두 가지 전제가 다 여기에 들어가 있는 말입니다.
"유대인임을 알렸다"는 것이 이것을 알렸다는 말은 무엇을 전제로 하는 것일까요? "나는 이제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그것을 각오하고 얘기한 것입니다.
3-5. 고자질하는 자들
그런데 더 나쁜 놈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같이 일하던 사람들입니다.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그들'이 문제입니다.
사실 하만은 지금 하늘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사람 아닙니까? 제국의 2인자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아래에 말단 중에 말단입니다. 말단 중에 말단이 무릎도 꿇지 않고 절하지도 않는 것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지나가는데 구석에 저 끝에 있는데, 그것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것 눈 뜨고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계속해서 물어보고 그것 쫓아가서 고하는 것입니다. 왜? 관전 포인트니까. "어떻게 되나 보고자" 하니까. 하만이 이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지 보고자 하니까 그것을 보고자 알리는 것입니다. 얘기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중간에서 말 전해주는 사람이 미운 것입니다. 원래 "야 아무개 집사님이 너한테 이런 말 하던데, 그런데 내가 너한테만 얘기하는 거니까 너 듣고 말라고, 그냥 넌 그냥 듣고 말고" 그냥 뭐 그렇게 말하는데, 저 사람이 나쁘죠. 그런데 전해주는 사람이 100배는 더 나쁩니다. 100배는 더 나쁘죠. 항상 정치인들도 그렇습니다. 기자들이 싸움을 붙입니다. 언론이 편 가르기 하고 언론이 싸움 붙이고, 기자들이 카메라하고 마이크 딱 대면서 묻는 것 보십시오. "오늘 뭐 아무개 대표께서 이런 말씀하셨는데 또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래요?" 그러면서 이제 또 막 그래야 이제 기삿거리가 나오니까. 그런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하고 다릅니다.
지금 이 사람들은 이것이 재미입니다. 그냥 사는 재미. 여기에서 이 말 여기 전하고 "야 지금 이것이 얼마나 이슈입니까? 아하수에로 왕의 2인자인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 알고 봤더니 유대인이라더라. 그런데 지금 더 놀랄 일이 뒤에 있는데, 사촌 여동생이 왕후인데." 그것을 알면 더 놀라 자빠지겠지만, 이것을 전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4. 하만의 분노와 음모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일을 하만이 전해 듣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좀 좋은 사람이라면, 꽤 괜찮은 실력자라면, 웃고 넘겨버려야죠. 웃고 넘겨야지. "야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렇겠다" 해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웃고 넘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4-1. 아말렉의 원수 갚음
그전에 제가 출애굽기 17장 말씀과 신명기 말씀을 적어뒀습니다. 출애굽기 17장은 우리가 다 아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는데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에서 덮쳤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80 먹은 노인이 아론과 훌이 직접 전투를 못하니까 젊은 여호수아를 앞장세워서 전투하게 하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서 손 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말렉을 진멸하고 이겼습니다.
그다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14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 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결단입니다. "내가 아말렉을 없이 하여 천하에서 없이 해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
하나님이 왜 이렇게 독한 마음을 가지셨느냐 하면, 하나님 당신의 백성들은 노인, 어린아이, 여자 다 오합지졸들이 다 짐 메고 들고 들쳐 업고 그냥 막 출애굽해서 나오는 길입니다. 정규 군대가 아닙니다.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말렉이 비겁하게 뒤에서 덮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 아말렉을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단하신 것입니다. 모세에게.
그래서 모세가 신명기 말씀은 자기는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렇게 살아라" 하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거기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신명기 25장 17-19절입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이것이 출애굽기 17장 이야기입니다.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이 아말렉 사람들입니다. 내 뒤에 떨어진 약한 사람을 치는 자들. 이 얼마나 비겁한 존재들입니까?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이것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이행할 사명을 누구에게 주셨습니까? 사울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그 헤렘 명령을 행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입니다.
그 맥락입니다. 지금. 그런데 이 역사를 잘 알고 있는 모르드개가 어떻게 그 후손 하만에게 마치 우상을 섬기듯이 그 앞에서 무릎 꿇고 절할 수 있습니까? 이러면 그것 안 되는 것입니다.
4-2. 악은 모양이라도
그런데 세상은 우리에게 항상 유혹을 합니다. 뭐라고 유혹합니까? "그냥 하는 척이라도 해. 그냥 넌 살아야 되니까. 무릎 꿇고 고개 숙이지 말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 엎드리기만 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렇죠?
그런데 바울이 그랬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23절 말씀입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악을 어떻게 하라고요? 모양이라도 버려라. 왜요? 영과 혼과 육이 영광의 주님이 오실 때 온전하게 보존되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마음만 아니면 되지. 내 마음만 하나님을 향하면 되지. 내 진심은 하나님께 있는데, 내 몸이 여기 좀 무릎 꿇는다고 해서 그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고."
그런데 말씀하셨습니다. "영과 혼과 육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온전히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영만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과 혼과 육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셨습니다. 흉내라도 내지 마라. 악은 그 모양 자체를 아예 흉내 내지 말고 아예 담지 말고 아예 답습하지 말라. 모르드개가 아예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무릎을 꿇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띄고 그래서 위기를 당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상황 우리가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쉽게 타협합니다. 너무 쉽게. 그리고 그것을 지혜라고 우리 자녀들에게 또 가르쳐 줍니다. "그냥 하는 척해. 그냥 하는 척해. 마음만 아니면 되니까."
4-3. 하만의 분노
모르드개에 관한 말을 전해 들은 하만은 어떻게 반응하느냐? 5절 보십시오.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누가 전해주니까 이제 그것을 눈여겨본 것입니다. "그래 내가 이제 제대로 보지. 자 잠깐 서봐라 보자. 저기 서 있는 놈이 누구냐? 저놈이 하만이? 저놈이 뭐로 되겠냐?" 하고 하만이 딱 본 것입니다.
"매우 노하니" 여러분 여기서 누가 생각납니까? 매우 노한 것을 보니까 아하수에로 왕이 생각나야 합니다. 너무 닮았습니다. 하만과 아하수에로. 아하수에로는 어디에서 화가 났습니까? 자기 왕비가 술 취했는데 불렀는데 오지 않으니까 거기서 매우 노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큰 그릇이 되고 넓은 그릇이 되고, 적어도 제국을 통치할 만한 사람이 되려면, 그냥 이 정도는 못 본 척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저 말단 직원이, 저 문지기가 그러면 그런 사연이 있겠지. 유대인이니까." 그래 하고 그냥 넘어가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와 하만이 똑같습니다. 너무너무 닮았습니다. 무섭게 닮아 있습니다.
4-4. 성급한 일반화
또 닮은 것이 하나 나옵니다. 6절에.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그들이 문제입니다. 중간에서 고자질하는 놈들.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하만 정도면 모르드개는 지금 당장 목을 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런데 모르드개만 죽여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즉 페르시아 제국 127도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여러분 이것도 아하수에로와 너무 닮았습니다. 아하수에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왕비 와스디가 불렀는데 오지 않으니까 조서를 내립니다. 전국 127도의 모든 여자들은 남자들의 말에 순종해라. 이것을 성급한 일반화라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버리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잘못했으면, 지금 모르드개는 죽을 각오를 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불러서 목을 치면 그냥 끝나는 일입니다. 물론 거기에 에스더가 어떤 역할을 할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런데 하만은 이제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되겠다, 유대인 모두를 진멸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하만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기들 아말렉 민족의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그들의 이야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다 멸하라고 했다, 진짜 다 멸망당할 뻔했다, 이제 내가 내 손에 기회가 왔으니 이 기회에 유대인들을 다 멸절시켜버리겠다. 이제 역헤렘입니다. 역헤렘. 거꾸로 아말렉 민족의 자기가 지도자가 되어서 그 사명을 가지고 역설적으로 헤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지금 이것이 결국은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그 화근이 누구에게부터 오는 것입니까? 사울에게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주신 명령대로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진멸시켜버렸다면 하만은 여기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 좋은 사람 살리고 자기 눈에 좋은 것은 다 살렸습니다. 아각은 물론 사무엘이 죽였지만.
그래서 악은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악은 악과 타협하면 그것이 남고 남고 또 쓴 뿌리가 남아서 나중에 내 대가 아니라 우리 자손의 자손 때까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 생각하셔야 합니다.
잠언 19장 19절을 제가 적어뒀는데요.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 즉 다른 말로 하면 분노하는 자를 하나님은 벌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을 건져주지 말라 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가 그랬고요. 하만이 그랬습니다. 분노를 조절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벌한다고, 그 벌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5. 유대인 학살 계획
이제 하만은 제국의 2인자입니다. 그런데 그냥 2인자가 아닙니다. 1인자인 아하수에로는 지금 어디에 빠져 있습니까? 여색에 빠져 있습니다. 처녀들을 도성 수산에 모아놓고 매일같이 그 여인들을 불러서 밤을 보냅니다. 그런데 지금 에스더는 왕후가 되었는데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에스더는 지금 그 곁에 갈 수도 없습니다. 부르지도 않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니 왕은 주색에 빠져 있고 왕후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 못하는 사람이고, 하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5-1. 제비를 뽑다
7절 "아하수에로 왕 제12년 첫째 달" 아하수에로 왕 제12년이라고 하면 우리가 연도를 한번 계산을 좀 해봐야 합니다. 아하수에로가 왕이 됐을 때가 기원전 486년이니까 제12년이니까 기원전 474년 정도 됐을 것입니다.
"첫째 달 곧 니산월(נִיסָן)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פּוּר)를 곧 제비를 뽑아" 즉 이 제비를 뽑은 이유는 유대인들을 다 멸절시킬 날을 받은 것입니다. "열두째 달 곧 아달월(אֲדָר)을 얻은지라" 여러분 니산월과 아달월은 바벨론 시대 때 그들이 불렀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히브리 이름이 아닌데, 이 니산월은 유대인들의 역력 또 페르시아인들의 역력에 의하면 요즘 현대력으로 하면 약 3월 말에서 4월 정도 됩니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그것이 첫째 달입니다.
첫째 달에 제비를 뽑았는데 언제 처형하라고요? 12번째 달. 그러면 지금 제비 뽑아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11개월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제비를 뽑고 난 하만이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당장 다음 달에 제거하면 좋은데 11개월 뒤나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제비 뽑는 것은 하나의 절차입니다. 그 사람들이 다 다신교 문화입니다. 신전에 가서 제사장들하고 신전 여성들 있습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 제비를 뽑는데 그 제비 뽑은 날이 열두 번째 마지막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11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11개월이라는 시간은 하만에게는 굉장히 지루하고 기다리기 힘든 시간이고, 유대인들에게는 어떤 시간입니까? 이 시간이 죽음의 시간입니다. 이제 11개월 남았습니다. 날 받아 놓은 것입니다. 죽을 날. 자연사 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들의 칼에 죽을 날입니다. 살육당할 날입니다. 진멸의 날, 죽음의 날입니다.
5-2. 왕의 허락을 받다
하만은 유다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왕의 허락을 받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허락을 받습니까? 이제 하만이 그래도 허수아비지만 왕은 왕이니까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룁니다.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여러분 여기 이 하만이 하는 말을 보면 구체적입니까? 구체적이지 않습니까? 전혀 구체적이지 않습니다. 원래 이 정도 대규모 살육을 하려면 육하원칙이 정확하게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여기 보니까 한 민족이라고 했는데 그 민족이 어느 민족인지 명시하지 않습니다. 왕의 법률을 어긴다고 했는데 그 법률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누가 어떻게 조직적으로 어겼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왜? 법률을 어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왕의 명령을 어겼지 왕의 법률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이지 않고 명확하지 않습니다. 선후 앞뒤 좌우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말해버리는 것입니다.
5-3. 돈의 위력
그런데 하만이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내가 은 1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들이리이다 하니" 이것입니다. 여러분 은 1만 달란트가 지금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일 것 같습니까?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페르시아 전체 1년 예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돈이었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페르시아가 127도를 다스리는 제국 아닙니까? 그 1년 예산의 3분의 2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하만이 왕의 2인자가 되었던 까닭이 이것 아니겠습니까? 이 돈, 어마어마한 돈, 권력. 지금 왕은 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하수에로는 국고가 탕진됐습니다. 전쟁에 지고 왔습니다. 사람들을 이렇게 붐업시켜서 돈을 걷어서 갔는데 투자된 돈을 돌려주기는커녕 자기 갖고 있는 국고도 다 써버리고 왔습니다. 전쟁에 졌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난 아말렉 사람 하만이라는 사람이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국의 2인자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민족을 멸절하겠다 하면서 은 1만 달란트를 꽂아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죽이는데 돈이 들까요? 안 들까요? 돈이 듭니다.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돈이 듭니다. 전국 127도에 다 전령들을 보내야 하고 거기에 행정 비용들이 들 것 아닙니까? "그 돈도 제가 이 돈에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허락만 해주십시오."
왕이 허락 안 할 수 있습니까? 그 수많은 엄청나게 많은 백성들 가운데 유대인들, 그들 죽어서 자기한테 해될 것도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5-4. 탐심은 우상숭배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탐심이 곧 우상숭배라고 했는데, 골로새서 3장 5-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탐심이 우상숭배라 하셨습니다. 돈을 탐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탐심이 결국 이것이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리고 하만은 돈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돈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탐심이 그것을 여기서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5-5. 인장 반지를 주다
그러니까 왕이 어떻게 합니까? 10절 "왕이 반지를 손에서 빼어 유다인의 대적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에게 주며" 이 반지는 인장 반지입니다. 반지에 도장이 있는 반지입니다. 반지를 빼서 줘버리는 것은 인감을 주는 것입니다.
인감을 여러분 인감도장 함부로 누구에게 주라고 배웠습니까? 아무한테 줘도 됩니까? 인감도장을 주면 어떻게 됩니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왕의 인장 반지를 빼서 그냥 줘버렸습니다. "네가 어떤 조서를 꾸미든지 뭘 만들든지 내 도장을 가지고 네가 찍든지 말든지 너 멋대로 해라." 은 1만 달란트에 인장 반지 줘버렸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상당히 부주의한 사람입니다. 창세기 38장 18절 말씀을 보시면 유다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제가 읽어볼게요. "유다가 이르되" 이 유다는 야곱의 네 번째 아들 유다입니다.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이것이 무슨 내용입니까? 며느리 다말과 사이에서 있었던 얘기 아닙니까? 그 이야기는 이제 우리가 창세기 이 본문이 가까이 오니까 그때 가서 얘기하고, 며느리를 창녀로 착각해서 한순간 정욕이 발동한 유다가 이 여인과 하룻밤을 위해서 자기 것을 내놓는데, 창녀인 줄 알았던 며느리 다말이 담보물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담보물이 도장과 끈과 지팡이였습니다. 인감도장 내놓는 인간 얘기 또 있었습니다.
또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지팡이. 그 당시 유대인들은 유목민들 아닙니까? 들판에서 양 치고 돌보고. 그런데 사막에 뱀들이 있습니다. 맹독을 가진 뱀들이. 또 전갈들도 있습니다. 지팡이가 있어야 자기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뱀이 오면 뱀의 머리를 꾹 누를 수 있는 것, 전갈을 집어다가 던질 수 있는 것. 그것 줘버렸습니다.
끈이 무엇입니까? 허리띠. 끈이 없으면 그냥 치렁치렁 흘러내리는데 끈을 매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끈 허리띠, 허리띠 끈, 지팡이, 도장을 줘버렸습니다. 한순간 정욕에 눈멀었습니다. 상당히 부주의한 인물입니다. 유다가. 그런데 물론 이런 유다가 나중에 나중에 반전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아하수에로도 인장 반지 줘버립니다. 돈에 눈멀어서 줘버립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합니다. 이 분별력을 가지지 못하면 자기도 패가망신하고 나라도 망하고 자기 주변 사람들이 다 고통받습니다. 분별력 없는 인생 때문에 주변에 힘들어하는 분들 많습니다. 가장이 분별력을 잃으면 자녀들, 그 가족, 식구들이 다 괴롭습니다. 지도자가 분별력을 잃으면 그 공동체가 다 괴롭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5-6. 비용 회수 계획
11절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의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이것을 우리가 잘 이해하셔야 하는데, "그 은을 네게 준다" 은 1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들인다고 했는데, 왕이 "나 안 받겠다. 너에게 다시 돌려준다." 이 말이 아닙니다. 네가 왕의 금고에 넣어둔 그 은으로 행정비용을 지출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그 비용을 써라 이런 뜻입니다.
그러고도 돈이 얼마든지 남으니까 유다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 이제 왕의 도장도 받았으니까 일사천리입니다. 12절 "첫째 달 13일에" 첫째 달 니산월이죠. "왕의 서기관이 소집됩니다. 하만의 명령을 따라 왕의 대신과 각 지방의 관리와 각 민족의 관원에게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쓰되 곧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치니라" 왕의 반지를 쥐고 도장 찍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그 조서를 역졸에게 맡겨 왕의 각 지방에 보내 열두째 달 곧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 하였고" "그 재산을 탈취하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재산을 탈취해서 은 1만 달란트 회수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만입니다.
악한 자들은 돈을 절대로 그냥 내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냥 베푸는 것입니다. 이 하만 보십시오. 내가 1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꽂고 그다음에 이것을 회수할 방법을 다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술에 취해서 여자에 취해서 전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회수돼 갑니다. 다 나갑니다.
"이 명령을 각 지방에 전하기 위하여 조서의 초본을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여 그날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라 하였더라."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유대인들.
5-7. 유월절 전날
그런데 여러분 니산월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첫째 달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포로기 이후에 첫째 달을 니산월이라고 했고, 포로기 전에는 적어도 포로기 전에는 첫째 달을 아빕월(אָבִיב)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아빕월 들어보셨죠? 아빕월 하니까 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아빕월은 제가 여기 적어뒀습니다. 출애굽기 13장 4절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출애굽한 날입니다. 아빕월 이 날. 첫째 달 14일이 유월절입니다. 첫째 달 14일이. 그런데 유월절 전날 이 조서가 반포됐습니다.
유월절 전날. 유대인들은 유월절 축제를 즐겨야 하는데, 양고기 먹고 무교절 무교병 먹고 그러면서 유월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날을 즐기고 그날을 축하하고 그날을 기뻐해야 할 그날인데, 그 전날 이 조서가 선포됐습니다.
여러분 유월절, 이것이 상당히 드라마틱한데,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할 때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그들을 건져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것처럼, 너희들이 지금 죽음의 위기에 빠져 있으나 유월절에 모든 죽음의 사자가 다 지나간 것처럼 너희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지나갈 것이다.
그것이 그 하루 전날, 또 그다음 날. 이것이 오늘 이 말씀이 주는 복선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백성들은 적어도 이런 위기와 이런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5-8. 도성의 혼란
이런 상황에 이 조서가 반포되고 곳곳에 다 붙어버리면 왕의 명령이 반포된 후 나라와 수산성의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15절 "역졸이 왕의 명령을 받들어 급히 나감에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성은 어지럽더라."
왕은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입니다. 하만과 함께 독대하고 술자리 하고. 그런데 도성 수산은 어지럽더라.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잘 보셔야 하는 것이 유대인들이 누구 하나 모르드개에게 책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뒤에 가도 그래요. 모르드개에게 찾아와서 멱살잡이하거나 쌍욕을 하거나 나쁜 놈이라고 하거나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잠언 6장 16-19절을 보시면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적어뒀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 잘 보십시오. 하만과 아하수에로에게 해당되는지 안 되는지 보십시오. "곧 교만한 눈, 거짓된 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다 해당됩니다. 다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적어뒀습니다. 우리는 이것 중에 하나도 해당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적어도 하나도 해당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미워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절대로 여기에 해당되면 안 됩니다. 절대로.
오늘 이 말씀 잘 기억하시고, 하만과 모르드개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드디어 일하실 때가 다가오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면 안 된다, 유다인들은 원망하지 않았다, 모르드개를 단 한 번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악한 자 아하수에로와 악한 자 하만이 만나서 이 땅의 백성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그들을 살육할 음모를 꾸밉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한 말씀을 따라 모르드개는 우상에게 무릎 꿇는 듯한 모습조차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여서 죽음의 벼랑 끝까지 내몰린 모르드개와 유다인들. 주여 우리도 믿음의 절개를 이렇게 지켜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쉽게 타협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세상 사람들 다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도록 주여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붙잡아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시고, 손해 볼지라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그 길을 쫓아 걸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 백성 삼아 주시옵소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함을 깨닫게 하시고, 그 승리의 끝에 주의 백성이 개가 부르며 하나님의 깃발 흔들며 서 있는 놀라운 축복과 영광과 은총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