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 보아스의 타장마당 / 전체녹취

룻기 특강 4 - 보아스의 타작마당 (룻기 3장)

룻기 3장 7-9절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오늘은 룻기 공부 네 번째 시간입니다. '보아스의 타작마당'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룻기를 보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룻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뜨려야 합니다. 사실 룻 하면 이름부터 조금 약해 보입니다. 연약해 보이고 수동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룻은 그런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굉장히 강인하고 저돌적이며, 자기 할 말 다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그 은혜를 자기 것으로 취하려 했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룻기를 보면서 간절한 소원이 있으면 진심으로 구하고 최선을 다해 나의 할 일을 해야겠다는 결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은 이제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1. 연결 고리의 역할

룻기를 보면 그 중간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먼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 딸아, 내 며느리야, 여기 있으라. 떠나가라 하지 않겠다." 그렇게 붙잡아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나오미가 없었다면 룻은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무슨 수로 살았겠습니까?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세상을 떠났는데, 나오미에게 룻이 인생을 연결해 주는 연결 고리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룻에게는 누가 살아갈 만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해 주었을까요? 물론 보아스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베들레헴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본 것처럼 룻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습니다. 곡식 베는 사람들 사이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게 해 달라고, 베는 자 사이에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원래는 타작이 끝나고 나서 거기서 주워 가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환이 허락해 준 것입니다. 성경에 그분의 이름은 나오지 않으나, 그 사람들이 룻을 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룻기를 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연결 고리와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연약한 자, 어려운 자, 마음이 상한 자, 인생을 놓아버리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결 고리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오히려 칼이 되어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서 그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내가 무심코 한 행동 하나가 그로 하여금 삶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룻기는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또 한 가지 공동체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베들레헴 공동체가 참 좋은 교회입니다. 이런 좋은 교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당시 룻이 살고 있었던 시대는 왕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룻은 정말 좋은 교회, 좋은 공동체를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 참된 교회가 어디 있느냐, 요즘 세상에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좌절과 패배감을 바꾸어 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내가 좋은 교인이 되면, 내가 베들레헴 교회의 한 사환 같은 사람이 되면, 내가 룻 같은 사람, 보아스 같은 사람이 되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우리 교회가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베들레헴 교회 같은 좋은 공동체가 되지 않겠습니까? 룻기가 우리에게 그런 희망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2. 나오미의 승부수

2-1. 은혜를 경험한 나오미

이제 오늘은 보아스의 타작마당입니다. 타작마당이 가지고 있는 상징이 상당히 특별합니다. 거기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는 날, 나오미가 룻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지난 시간에 우리가 고엘(גֹּאֵל)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았습니다. 가알(גָּאַל)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영어로 하면 'relative', 친척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고엘, 구속자, 건져 주는 사람입니다. 이제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를 본 것입니다. 3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2장까지 주도권은 누가 가지고 있었습니까? 룻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룻이 "어머니,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됩니다" 하고 아주 주도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가서 곡식 주워 오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3장이 딱 시작되면서 그 주도권을 누가 가지게 됩니까? 나오미가 가집니다. 지금까지 나오미는 사실 베들레헴에 돌아오고 난 후부터 그냥 꽂아 놓은 화초처럼 별 의지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 과거와 후회에 사로잡혀서 말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며느리가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라는 사람을 우연히, 마침 만나게 하시고 거기서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여기서 뭔가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은혜를 한번 경험하고 나니까 나오미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한 말을 한번 보십시오. 1절 다시 보니까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합니다. 안식, 복되게 하겠다. 선물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며느리에게 안식할 곳과 복되게 하는 것, 이것이 결국 나중에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룻은 이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보장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이것 먼저 주십시오.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것도 주시고, 하나님 이것 다 주시면 제가 그다음 뭔가 하겠습니다." 그런데 룻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민족, 고향, 모압 땅을 떠납니다. 우선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가 보장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됩니다" 하고 신앙 고백부터 한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니까 안식할 것도 주시고 그를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여정을 우리가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우선 순종하는 것입니다. 먼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장해 달라, 보여 달라, 나에게 손에 쥐어 달라 합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믿음 생활에 열매가 없는 이유가 먼저 헌신하고,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먼저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오미가 그것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네가 먼저 순종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2-2. 구체적인 코칭

2절을 보십시오. "네가 함께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리리라." 이제 타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2장과 3장의 시차가 얼마 정도 되었다는 이야기입니까? 7주 정도 된 것입니다. 6주에서 7주입니다. 말씀드렸죠, 보리 추수 시작해서 밀 추수 끝날 때까지가 약 6주에서 7주 정도 걸립니다.

그러면 2장이 끝나고 3장이 시작될 때까지 룻은 매일같이 보아스의 밭에서 베는 자를 따라, 묶는 자를 따라, 보아스의 소년들과 소녀들을 따라 일하러 간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다 끝나가는 시점입니다. 7주가 다 끝나갑니다. 추수가 끝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보아스는 더 이상 만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보리와 밀 추수가 끝나고 나면 보아스는 타작마당에다 곡식 단을 켜켜이 쌓아 놓습니다. 그 쌓아 놓은 것을 다 털어서 터는 날입니다. 보리를 까불어서 가라지는 털어 밖으로 보내고 알곡을 다 수확하는 날입니다. 그날은 잔치 날입니다. 하루 종일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해 질 때까지 말입니다.

그날 잔치 날에 원래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타작마당에서 보리와 밀을 까불고 알곡을 수확하는 그날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인심 좋은 날, 가장 복된 날입니다. 그러니까 그 밭의 지주인 보아스가 반드시 오는 날입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마당에 내려가서"라고 했습니다. 우선 이것부터 봅시다.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목욕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으라는 말입니다. 기름을 바른다는 말은 향수도 좀 뿌리라는 말입니다. 목욕하고 향수 뿌리고 의복을 입고.

이 말은 지금 룻이 미망인 아닙니까?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애도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남편을 잃은 여인입니다, 슬픈 여인입니다 했는데, 이제부터 나는 내 남편의 애도 기간, 곡하는 기간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주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나는 이제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제 다시 시집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말입니다.

거기까지입니다. 그리고 타작마당에 내려가라 했습니다.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했습니다. 왜 그 당시 타작마당이 어떤 식으로 변질되어 있었는가 하면, 지금 이 시대가 사사 시대입니다. 왕이 없으므로 백성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막 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타작마당이 변질되어 있는 것을 호세아가 보여주는데, 호세아 9장 1절을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백성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하나님을 음행하듯 떠나고 각 타작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 그러면 타작마당이 어떤 식으로 변질되어 있었다는 말입니까? 음행하는 장소입니다.

곡식 터는 날입니다. 알곡을 거두어 들이는 날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무엇이 빠져서는 안 됩니까? 술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술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7주 내내 뼈 빠지게 일하던 소년들과 소녀들,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술 마시고 흥청망청하고 음행하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이방 사람들은 타작마당이 다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보아스가 거기에서 딱 누워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 지주가, 그 땅의 모든 것을 다 간섭하고 다스리고 있는 지주가 거기 있으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베들레헴이라는 그 동네의 영적 지킴이입니다. 이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가 거기서 잠을 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거기에 보아스에게 보이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말입니다. 왜 보이지 말라고 하느냐? 만약에 의복 갈아입고 몸에 향수 뿌리고 이 여인이 평소와는 좀 다르게, 맨날 머리 질끈 묶고 수건 머리에 뒤집어쓰고 몸빼바지 입고 맨날 곡식 주우러 다니던 여인이 그날따라 새 옷 입고 향수 뿌리고 나타나면 보아스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 여인 출신이 모압이더니, 이방 여인이라, 우리 동네는 이런 동네가 아닌데 물 흐리고 있구나" 이런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보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기 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저기 다른 동네는 다 그렇게 살아도, 다른 동네는 타작마당이 전부 다 썩어빠지고 전부 다 음행하는 동네라도 이 동네는 보아스 때문에, 이 영적 지킴이 때문에 그런 일이 결단코 일어나지 않으니 너는 혹시나 오해받을 수 있으니 나타나지 마라, 저기 숨어 있으라. 나오미의 코칭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체계적이고, 구체적입니다.

4절입니다. "그가 누울 때에" 이제 잠들 때입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라.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라." 그다음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그다음은 나도 책임 못 진다, 이 말 아닙니까? 그다음은 보아스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도대체 이런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래도 뭔가 일을 주려면, 미션을 주려면 "내가 편지를 좀 써 줄 테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하고 나오미가 편지라도 하나 써 주어서 "이것을 네가 심부름하러 왔다고 좀 전해 줘라" 하면 갈 명분이나 있지요. 그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그냥 가서 향수 뿌리고 새 옷 입고 "이제 저는 시집가도 되는 여자입니다" 하고 가 가지고, 한밤중에 하루 종일 일하고 누워 있는 남자의 발치 이불 들고 누워 있으면 미친 여자라고 지탄받습니다. 보아스같이 이렇게 경건하고 이렇게 깨끗한 사람이 이 여자를 제대로 보겠습니까? 그것도 이방 여자를요.

그런데 그다음은 그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기에 순종하겠습니까? 저는 나오미가 상당히 승부수를 던졌다고 봅니다.

2-3. 기회를 붙잡다

인생을 살면서 기회라는 것이 몇 번 옵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올 때 기회를 붙잡아야지, 기회를 그냥 흘려버리고 "아, 나중에 그렇게 할 걸, 그때 그렇게 할 걸" 후회해서 무엇 합니까? 기회는 붙잡아야 합니다. 흘러가고 나면,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미련한 사람은 "아, 그때 그게 기회였구나" 합니다.

7주간의 타작이 끝났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승부수를 던지지 않으면, 여기서 이렇게 보아스에게 독대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룻이 보아스를 독대한 적이 있습니까? 7주 동안 독대할래야 할 수 없는 위치입니다. 따로 만나서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매력을 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할 수 없는 상황 아닙니까? 그러면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교회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아파서 병 낫기를 원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분들이 있고, 어떤 분은 너무너무 먹고 살기 힘들어서 가난을 좀 면해 보려고, "교회 가면 그래도 사람들이 착해서 밥은 먹여 준다더라" 해서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옵니다.

지금 룻이 다양한 이유로 왔습니다. 베들레헴에 말입니다. 그런데 와서 7주 동안 호구지책은 해결했습니다. 먹는 것, 사는 것, 그래도 눈앞에 것은 굶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7주가 끝났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데로 가야 합니까?

지금 나오미는 그다음 승부수, 영원한 고엘을 위해서 승부수를 던지는 것입니다. 구속자를 위해서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다양한 이유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나를 구원하고 건져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귀결됩니다. 그래야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예수 믿을 때 누구나 다 자기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책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그다음에 베들레헴 사람들인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사람들을 구속자를 만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7주가 지나고 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적인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오미가 이제 룻을 진짜 구속자와 연결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한 단계 점프업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의 구원을 얻습니다. 지금까지는 호구지책으로서의 신앙생활인데, 이제는 영적인 신앙생활로 한 단계 도약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것을 나오미가 옆에서 코칭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어린 초신자들을 만날 때, 아직까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우리 자녀들을 도울 때, 그때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야, 너 예수 믿고 하나님께 구해 봐, 너 시험 잘 보게 해 줄 거야, 너 취직하게 해 줄 거야" 그것은 7주 동안의 밀 추수, 보리 추수 때나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금방 끝납니다.

진짜 고엘을 만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너 영혼의 구속주, 너 인생을 완벽하게 책임져 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오미가 그 역할을 한 것입니다. "너는 네 할 일을 해.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가서 누워 있어. 그러면 그가 알아서 하실 것이다. 너 교회 가서 기도하고, 금요일 가서 부르짖고, 너 하나님께 가서 너 죄 지은 것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 발치 이불이라도 들고 하나님께 가서 은혜를 구하고 갈망해. 그러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너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서 창조하시고 여기 보내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 아닙니까? 거기까지 나오미가 인도해 준 것입니다.

3. 룻의 청원

3-1. 순종하는 선수

그런데 아무리 코치가 좋아도 선수가 잘 뛰어야 합니다. 코치, 감독이 아무리 잘해도 무엇 합니까? 선수가 "그래, 너는 그렇게 해라" 하고 딴짓해 버리면 끝인데, 이 선수가 특별한 선수입니다.

이 선수를 보십시오. 룻은 나오미의 말에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 5절입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여러분, 좋은 선수는요, 세상에서 축구 선수, 야구 선수 중 좋은 선수는 골 잘 넣고 홈런 잘 치고 뭐 그런 선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선수는 순종 잘하는 선수입니다.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따지지 말고, 묻지 말고, 그냥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니 팔자가 바뀌고, 역사가 일어나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이제 보십시오. 발치 이불 아래에서 자신을 발견한 보아스에게 룻이 어떤 말을 합니까? 이제 그냥 시어머니 말씀대로 타작마당에 몰래 숨어 들어갔습니다. 거기는 여자들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적어도 베들레헴에서는 말입니다. 왜요? 다른 지방에서는 타작마당이 음란한 자리로 다 변해 버렸습니다. 음행을 하는 자리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아스가 베는 자들, 묶는 자들의 일이 다 끝나고 타작하고 나면 다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주인이 딱 되어서 그 지체 높은 양반이 거기서 야영하고 노숙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잠자면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자가 나타나면 됩니까, 안 됩니까? 그러니 나오미가 몰래 들어가라, 가서 대기해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불 밑에 탁 누워 있습니다. 그냥 누워 있는 것입니다.

7절입니다.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서 곡식 단 더미의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시킨 대로 하는 것입니다. 소리도 못 하고, 숨도 못 쉬고, 얼마나 떨렸을까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거기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상황이 되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먼저 합니다. "나를 음란한 여자로 보면 어떡하지, 소리 질러서 나를 끌어내면 어떡하지, 내 진심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여기서 내가 끌려 나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까? 염려들이 말입니다.

8절입니다. "밤중에"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깜짝 놀란 것입니다.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으니까요.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한 여인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귀신인가, 이게 사람인가? "네가 누구냐" 하니, 놀라 가지고 말입니다.

3-2. 옷자락을 펴 덮으소서

대답한 이 말이 참 멋진 말입니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아십니까? 여기 당신의 옷자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카나프(כָּנָף)라는 말인데, 날개라는 뜻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나를 덮으소서. 당신의 날개로서 나를 덮어 주옵소서,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우리가 한번 이해를 하셔야 하는 것이, 에스겔 16장 8절과 13절을 보시면 이 말이 이렇게 쓰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가 사랑할 만한 때라" 결혼할 만한 때다, 이 말입니다. "내 옷으로" 즉 하나님의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너와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으로 너를 거두어 주겠다, 수치를 가려 주겠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금 은으로 너를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놓은 것을 입히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이므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이 말씀은 포로기 때 에스겔에게 주신 하나님 묵시의 말씀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와 있습니다. 벌거벗은 수치, 포로로 잡혀와 있습니다.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가 너를 덮어 줄 것이다 하셨습니다. 덮기만 합니까? 왕후의 지위를 너에게 주겠다, 은혜를 너에게 베풀어 주겠다. 그것이 하나님의 날개입니다. 그것이 은혜의 옷자락 카나프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요청한 것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그런데 여기 당신의 옷자락, 카나프, 날개로 당신의 여종을 덮다, 이 말은 끄트머리 조금이라도 좋으니 나에게 은혜의 옷자락을 조금이라도 덮어 주십시오, 그 말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은혜의 옷자락이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분이 없습니까?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 따라가면서 예수님의 옷자락 하나 잡았습니다. 예수님 은혜의 옷자락, 그것 잡았더니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가서 이 여인이 나았습니다. 예수님 은혜의 옷자락, 하나님 은혜의 옷자락은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나를 덮어 달라 했습니다. 무엇을 덮어 달라는 말일까요? 여기에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여기 온 것 잘못된 것 압니다. 여인들이 여기에 출입하면 안 된다는 것 압니다. 그런데 제가 금기를 어기고 들어왔습니다. 나의 죄를 덮어 주십시오. 나는 이방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이 감히 이렇게 구할 수 없는 것 압니다. 그러나 들추지 마시고 덮어 주옵소서. 여기서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나를 덮어 주옵소서." 그런 말입니다. 그냥 덮어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 연약함도 부족함도 아는데 덮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방법 아닙니까? 하나님은 일차적으로 무조건 덮고 보시는 분입니다. 사실은 정의라는 것은 드러내는 것 아닙니까? 드러내는 것인데, 하나님은 가려 주고 덮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창세기에 노아가 포도주 마시고 취해 가지고 벌거벗고 드러누워 있는데, 들춘 아들이 있고 덮어 준 아들이 있습니다. 결과 우리가 다 압니다. 허물이란 것은 사람마다 다 있게 마련인데, 그 허물을 여기 가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저기 가서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지금 사실 룻이 잘못한 것이 맞습니다. 금기를 어기고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덮어 달라는 것입니다.

3-3. 말씀을 붙잡다

그러면서 하는 말,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이것은 좀 있다가 말씀드리고, 룻이 하는 말은요, 자기가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닙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나를 덮어 달라" 이 말은 룻기 2장 11절과 12절을 보시면 보아스가 먼저 한 말입니다.

보십시오.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처음 만났을 때,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따라다니는 룻을 보고 처음 만났을 때 한 말 아닙니까?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하나님 날개 아래에 피하러 온 너. 이 말을 룻이 붙잡아 버린 것입니다.

"당신이 말했지 않습니까? 하나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러 왔습니다, 제가. 그런데 하나님 날개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날개가 눈에 보입니까? 당신이 하나님 날개가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 말꼬리 잘 붙잡아야 합니다. 말꼬리입니다. 남들이 누가 말하면 말 잘 던지는 분들 있습니다. 그냥 착 인심 쓰고 말입니다. 그 말꼬리 딱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을 룻이 잘한 것입니다. 기억력이 좋은 것입니다. 보아스가 그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은혜가 되니까 그 말을 딱 기억하고 있다가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어 달라고, 주의 날개가 되어 달라고 그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여기 다 있습니다. 성경에 말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내가 원하는 것만 기도하지 않습니까? 달라고, 달라고, 달라고 계속. 그런데 말씀을 딱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래, 내가 꼼짝도 못하겠네. 내가 한 말을 붙잡고 늘어지니"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리라.' 그러면 제가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했습니다. 그러면 주셔야지요. 왜 안 주십니까?" 하나님께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구하고 외치고 달라고 하고, 말씀 붙잡고 말씀 붙잡고 살고, 그 말씀이 주는 위력을 붙잡고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 들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 붙잡고 말입니다. 룻이 그것을 잘한 것입니다.

3-4. 기업을 무를 자

그런데 룻이 하는 말을 보십시오.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청혼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나를 덮으라 함은 한 이불을 덮자는 이야기 아닙니까? 지금 그것이 끄트머리든 무엇이든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청원하는 것입니다.

당돌하지 않습니까? 보통 이 당시 여성들이 청혼을 기다립니다. 마음에만 품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기가 기어 들어가 가지고, 거기가 어디라고, 청원하는 것입니다. 그냥 발치 이불 들고 있다가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우리가 이야기했습니다. 무른다, 물러 준다. 그 세 가지가 있다 했습니다. 첫 번째가 피의 물음입니다. 피의 물음은 무엇입니까? 원수를 갚아 주는 것, 보복하는 것을 가장 가까운 친척이 합니다. 두 번째가 몸을 물러 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노비로 팔렸습니다. 그러면 돈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돈을 주고 이 사람을 다시 빼 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가 토지를 물러 주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땅을 팔았습니다. 그러면 돈 주고 토지를 다시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룻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다." 토지도 물러 달라는 이야기이고요, 또 결혼도 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토지를 물러 달라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엘리멜렉의 친족이니까요. 그런데 "당신의 옷자락을 펴서 나를 덮으소서. 한 이불을 덮고 잤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나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런데 이것은 구약의 율법에 있는 것입니다. 계대 결혼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형이 결혼했는데 자녀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으면 이 자녀는 누구 자녀가 됩니까? 형의 이름으로 입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집에는 형제가 아무도 없습니다. 두 형제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면 가장 가까운 친척이 이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대 결혼과 토지를 무르는 것은 각각 따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토지를 물러 줄 의무는 있어도 계대 결혼까지 할 의무는 이 사람에게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 이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당시가 사사 시대라 했습니다. 사사 시대에 율법이 있긴 있습니다. 법적으로 율법이라는 것이 기록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대로 사람들이 삽니까? 삽니까? 율법대로 살면 사사 시대 때 "왕이 없으므로 백성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런 말이 있을까요? 율법대로 안 삽니다. 제사장도 자기 땅 팽겨치고 다 도망가는 나라인데요.

그런데 율법이 없는 시대, 율법이 있기는 있으나 아무도 그 율법대로 살지 않는 시대,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데 이것을 하겠습니까? 자기 생돈 들여 가지고 그 토지 사서 다시 그 사람에게 주고, 나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데 이 여인 거두어 가지고, 내가 죽으면 유산도 이 여인에게, 여인이 낳은 아들에게 주어야 하고, 그러면 이 자녀는 내 이름으로 입적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이 여인의 남편 이름이 되는 것이고, 아무런 영양가가 없습니다. 사실은 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닙니까? 전부 다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룻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결론적으로 우리가 다 아시다시피 이것을 다 합니다. 보아스가 말입니다.

여러분, 율법 그대로 성취가 되려면 거기에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더해져야 합니다.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율법이 현실이 되려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요. 율법이 현실이 되려면 말입니다.

십계명을 보고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진짜 부모 공경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 율법이 그대로 이루어지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그 율법이 성취가 되려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말씀이 계대 결혼에 대한 말씀과 기업 물음에 대한 말씀인데, 율법이 성취가 되려면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아스는 무엇입니까?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를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서 오벳을 낳고, 이렇게 예수님 족보에 나옵니다.

그리고 여기 "당신이 기업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히브리어로 '키 고엘 아타'(כִּי גֹאֵל אָתָּה)라고 되어 있는데요,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왜냐하면 당신은 구속자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진짜 구속자는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진짜 구속자, 이것이 구약 성경에서 이미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49장 7절을 보면 하나님 당신이 구속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구속자를 히브리어로 보면 '고엘 이스라엘'(גֹּאֵל יִשְׂרָאֵל)이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고엘이십니다.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이 고엘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속자가 되신 것입니다.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너를 말입니다.

그러면 진짜 복받는 수준의, 가장 수준 높은 신앙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손해가 되더라도 너를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누가 해야 합니까? 지금 교회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고엘로서의 역할은 사라지고 교회가 돈 되는 것만 하려 합니다. 교회가 땅 장사하고 교회가 부동산 장사하고 교회가 돈 되는 것만 합니다. 교회가 이런 자들, 룻 같은 사람들을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돌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와서 마음껏 자기를 표현하고 기댈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슬픈 일입니다.

4. 현숙한 여인

4-1. 보아스의 반응

이제 룻이 청원을 했습니다. 자기는 했습니다. 할 만큼 했습니다. 룻이 말입니다. 그러면 10절, 보아스의 반응입니다.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보아스는 "내 딸아"라는 말을 여러 번 하거든요.

왜 그런가 보시면,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보아스가 볼 때 룻은 젊은 사람에게 시집갈 수 있는 충분한 미모의 경쟁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의 경쟁력이 있고 말입니다. 이미 모압 지방에서 자기 시어머니 따라올 때부터 시어머니가 가라 했습니다. 그런데 안 갔습니다.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를 수 있는 상황이 됐는데 안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가 베푼 인애가" 누가 베풀었다는 말입니까? 보아스가 아니라 룻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보아스가 한 말을 잘 보셔야 합니다. 지금 룻이 인애를 베풀었다 했습니다. 룻은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가난한데, 지금 여기 종으로 와서 진짜 종처럼 보리 이삭 주워서 살고 있는데, 그런데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러면 룻이 인애를 처음에도 베풀고 나중에도 베풀었다는 말 아닙니까?

처음에 베푼 인애가 무엇입니까? 보아스가 말하는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베푼 인애입니다. 두 번째 베푼 인애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베푼 인애입니다. 나를 선택하고 나에게 청원해 주어서 고맙다, 그 말입니다.

지금 보아스가 하는 것을 보십시오. 보아스는 룻을 불쌍해서 거두어 준 것이 아닙니다. 같은 인격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내 딸아"라고 했습니다. "젊은 자를 따르지 않았다"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보아스의 나이는 젊습니까, 많습니까? 많은 것입니다. 보아스가 나이가 많은 것입니다.

보아스가 결혼했을까? 이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 궁금해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부인이 몇 명이나 됐을까 뭐 이런 것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나이가 많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내 딸아" 여러 번 이야기했고, 그리고 또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않았다" 이것을 보면요.

그런데 하나님이 여기에, 여기에 은혜를 주셔서 나중에 자녀가 납니다. 그런데 룻은 나오미의 아들, 자기 남편이랑 모압 땅에서 10년 동안 결혼생활 할 때 자녀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이 나이 많은 보아스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린 것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것입니다.

4-2. 아셋 하일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하고, 또 한 가지 11절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또 이야기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룻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아는 것입니다. 거절당할까 봐 두렵고, 여기서 소리 질러서 끌어낼까 봐 두렵고, 뭐 등등 여러 가지 두려움을 아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다 한다고 합니다. 다 한다고 합니다. 그냥 얼마나 좋습니까? 다 한다고 합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이것을 원문 그대로 하면요,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백성 성읍의 문들이 다 아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문들이 다 안다. 무슨 뜻일까요? 베들레헴 성에 각 집마다 문이 있을 것 아닙니까? 모든 집이 다 안다는 말입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말입니다.

여러분, 현숙한 여자가 우리에게 어떤 이미지입니까? 일단 말이 좀 없어야 하고, 그리고 비녀 꽂아야 하고, 그리고 좀 착해야 하고, 밥 잘 해야 하고, 뭐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여기 보십시오. 현숙한 여인, 히브리어로 '에셋 하일'(אֵשֶׁת חַיִל). 유능한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네가 유능한 여인인 줄 모든 성의 문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보니까 우리 2주 전에 공부한 것 생각나지 않습니까? 유능한 사람, '이시 기보르 하일'(אִישׁ גִּבּוֹר חַיִל). 그러면 보아스는 이시 기보르 하일이고, 룻은 에셋 하일입니다. 유능한 사람들입니다.

잠언 31장을 제가 적어 두었는데, 잠언 31장이 현숙한 여인 이야기입니다. 현숙한 여인, 우리가 진짜 생각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이미지의 현숙한 여인인가? 성경이 말하는 현숙한 여인은, 그 유능한 여인은 어떤 여인인가 보십시오.

10절입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진주보다 더하다 했습니다. 일단 비싸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연산 진주, 아주 비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결핍하지 아니하겠으며" 현숙한 여인, 에셋 하일은 그런 여인과 함께 살면 굶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부지런합니다. 14절,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며" 우리가 룻을 생각하면서 이것을 읽으면 딱 룻입니다. 딱 룻입니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부지런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려면 환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기 살림을 말입니다. "너는 오늘 어느 밭에 가서 일하고, 너는 어떤 일하고" 일을 시키려면 일을 알아야 시킵니다. 모르는 사람은 시키지도 못합니다.

"또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 가지고 그것으로만 끝내지 않고 투자를 잘해서 포도원도 일구는 여인이란 말입니다. 이 여인에게 가면 살림이 불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능한 여인입니다.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자기의 장사가 잘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일이 잘될 때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만 하면 뭔가 좀 욕심쟁이 같은 이미지가 딱 생깁니다. 그런데 그다음 20절입니다. "그는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펴며 곤궁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자기 것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나누고 베풀 수 있는 사람, 이것이 에셋 하일입니다.

23절입니다.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말입니다. 성문에 앉는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성문에서는 재판이 일어났습니다. 억울한 자, 가난한 자, 힘든 자들이 성문에 와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와서 재판을 받았는데, 그 남편이 성문에 앉았다 했습니다.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남편을 고귀하게 만들어 주는 여인입니다.

25절입니다.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뒤로 갈수록 더 잘되는 사람입니다. 28절,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자녀들과 남편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인이 이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30절입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여호와를 경외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성경을 반쪽짜리로 읽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성으로 대표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 에셋 하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정말 좋은 성도가 어떤 성도입니까? 그 성도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교회가 그 성도로 말미암아 흥하고 부흥하고 복받고, 그 성도가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손을 베풀고 나누어 주고, 그가 함께하는 사람들을 존귀하게 해 주고, 자기 남편을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하는 것처럼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성도 아닙니까? 그 성도의 비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현숙한 여인, 현숙한 남자들이 되셔야 합니다. 에셋 하일들이 되셔야 합니다.

5. 기업을 무를 자

5-1. 손해 보는 자리에 당당하라

그래서 이것은 지금 보아스가 한 칭찬입니다. 보십시오. 진심인 것 같습니까, 입에 발린 말인 것 같습니까? 진심인 것입니다. 고맙다고, 너의 인자가, 너의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 하다. 나를 선택해 주어서 고맙다. 동시에 너는 현숙한 여인이다, 에셋 하일이다. 상대방을 다 인정해 줍니다.

그러면 보아스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람을 보면 껍질을 봅니다. 외모를 보고, 입고 있는 옷을 보고, 타고 다니는 차를 보고, 살고 있는 집의 평수를 보고, 그 사람의 학벌을 보고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이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처럼, 우리 하나님처럼 그 사람 존재 자체를 보는 것입니다. "너는 현숙한 여인이라고, 너는 진실로 훌륭하고 현숙하다." 그렇게 인정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보아스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2절입니다.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했습니다.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다." 여러분,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쉬울까요? 내가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어떻게 됩니까? 내 재산이 손해 봅니다. 현재 재산 당연히 손해 봅니다. 왜냐하면 엘리멜렉과 그의 친족, 나오미의 집안사람들이 다 팔아먹고 가 버렸습니다. 그것을 다시 사서 주어야 합니다. 재산을 손해 봅니다.

또 미래의 잠재적 재산도 손해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룻과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나는 이제 나이가 많고 늙는데, 나는 세상을 떠나고 나면 이 재산이 이 아이에게 상속이 될 텐데, 그러면 이것은 내 이름으로 상속되지 않습니다. 룻의 죽은 남편 이름으로 갑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기업을 무를 자다."

여러분,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자기 고백인데, 성도는 손해 보는 자리에 당당해야 합니다. 내가 교회라고 이야기할 때는요, "나는 성도입니다, 나는 교인입니다" 말할 때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무게감입니까?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입니다, 예수쟁이입니다" 이 말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손해 볼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성질 내서도 안 되고, 야비하게 굴어서도 안 되고, 사기 쳐서도 안 되고, 그 말을 하는 순간부터 나는 십자가 지고 따라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딱 드러냈으니까요.

지금 보아스가 그러합니다.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다." 그렇게 말하는 것, 그것이 쉬운 것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성도라는 것을 감추고 싶어 합니다. 왜요? 사람들이 하도 욕하고 손가락질하니까, 손해 보는 것도 싫으니까, 그냥 이렇게 그냥 조용히 살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말씀하셔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딱 말씀하셔야 합니다.

5-2. 더 가까운 친척

그런데 보십시오.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지금 이 성에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보아스보다 친척의 촌수가 더 가까운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긴장감이 확 생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보아스가 이것을 현실을 회피하려고 이러는 것입니까? 13절입니다. "이 밤에 여기서 머물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야, 걱정하지 마. 그 인간 내가 처리할게. 내가 너 좋아하니까, 네가 이쁘니까, 네가 이 밤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렇게 할 텐데, 보아스는 있는 것을 그대로 다 이야기해 줍니다. "그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보아스는 이미 계산이 딱 서 있습니다.

왜요? 두 가지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룻이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토지만 물러 달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계대 결혼까지. 그것까지 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 현재의 재산까지 손해 보고 미래적 재산까지 다 손해 볼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요구할 참인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제 다음 시간에 우리가 보게 될 텐데 말입니다.

보아스가 이제 그렇게 하고 왜 아침까지 누워 있으라 그럴까요? 지금 밤에 나가다가 사람들 눈에 띄면 너는 이상한 여자로 오해받고 또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배려하는 것입니다.

6.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보아스가 이제 룻을 어떻게 집으로 돌려보냅니까? 14절입니다.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밤이 가장 깊을 때, 정적이 깔리고 칠흑같이 깜깜하고 누구도 하나 깨어 있지 않은 그 깊은 밤에 말입니다.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이유는 말씀드렸습니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보아스가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보내면 어머니 있지 않습니까? 나오미가 있지 않습니까?

16절입니다.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좋은 뜻입니다. 보아스가 말입니다. 그는 나그네가 와서 환대받고, 와서 좀 배부르게 먹고, 좀 남는 것이 있고, 누구든지 와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곳, 사랑을 베풀고, "야,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받았네"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느낌, 그것이 교회입니다. 풍성하고 기쁨이 있고 그런 곳, 밥을 주더라도 꾹꾹 눌러 가지고 주고, 그렇게 주어야 합니다.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러분, 참 예수님 같고 하나님 같지 않습니까? 일을 이루실 때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사야 62장 1절을 한번 보십시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이 스스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쉬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쉬지 않는다 하셨는데, 보아스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 리디머, 고엘의 상징입니다. 쉬지 아니한다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제 인간이 할 일은 다했습니다. 사람이 할 일은 다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그 밤에 타작마당에 들어가서 발치 이불 들고 할 말 다 하고, 할 이야기 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나의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최선 다해서 믿음 생활 열심히 하고 사는 것입니다. 최선 다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은혜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맥 빠져서 "하나님, 나 그냥 이렇게 있을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러면 굶어 죽습니다.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야 될 때가 있고, 이렇게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얻고 누리는 것이라 했으니 계속해서 일하고 할 일 다 하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니 이제 다음 시간, 룻기 마지막 시간에 열매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좋은 공동체, 베들레헴 교회 공동체처럼 주여,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 되게 하옵소서. 룻도 나오미도 보아스도, 베들레헴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고 키우는 연결 고리가 되었사오니, 주여 우리도 그런 귀한 연결 고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옷자락, 주의 날개 그늘, 보아스의 옷자락 아래 머물기를 원했던 룻을 하나님께서 거두어 주시고 보아스가 거두어 준 것처럼 우리도 그런 넉넉한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그저 7주간에 보리 추수, 밀 추수로 그치지 않도록 도우시고, 은혜의 자리로 더 깊이 들어가고, 진정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 앞에 우리를 세우고, 믿음이 연약한 자를 세우고, 우리 자녀들을 세우는 큰 믿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 다 하고 그다음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기대하오니, 하나님 일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