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특강 4 -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 4장)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16)
이번 학기 우리가 룻기를 공부했고, 지금은 에스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룻기를 읽을 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이 이야기가 남편 잘 만나서 팔자 고친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룻기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훨씬 더 처절하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배웠습니다. 실제로 룻기를 공부하니까 그런 부분이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도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스더 이야기도 오늘 우리가 읽어본 말씀처럼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실제로 그 가녀린 한 여인이 제국에 맞서서 믿음으로 싸우고 믿음으로 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더 이야기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끝까지 읽어봐도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서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또 통전적으로 보아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에스더 이야기를 보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스토리가 있는 본문을 보면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여러분은 그 인물들을 어떻게 읽으십니까? 나와 아무 상관없이 그냥 객관화해서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아하수에로 왕 같은 인물을 보면 이분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우선 자기중심적이고, 제 멋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전쟁도 자기 멋대로 일으키고, 국가 예산도 마음대로 쓰고, 왕후 폐위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동시에 이분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에는 아주 열심인데, 하기 싫은 일은 아예 안 하는 사람입니다. 또 판단력이 부재한 사람입니다. 전쟁에서 지고 왔는데, 그러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이 뻔한데도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리분별이 없는 판단력 부재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나라를 맡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사실 아하수에로는 인간 이하의 빵점짜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난만 하고 비판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이 사람 속에 있는 내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얼마나 게으른 인간인지, 나 하고 싶은 일에는 열심을 내는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얼마나 큰 게으름인지 이것도 한번 헤아려 봐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 선과 악의 분별, 선한 것 중에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해 내는 능력, 그리고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다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별, 이 분별이 과연 나에게도 정상적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를 통해서도 나를 보고, 에스더를 통해서도 나를 보고, 하만이라는 인간을 통해서도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보면 그 속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추어서 회개하게 되겠지요. 잘하는 것이 있으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거의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하는 실마리가 잡히는 본문입니다.
1. 모르드개의 회개와 기도
하만이 등장하고 나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절합니다. 마치 신전에 가서 절하는 것처럼 다 절하는데, 하만에게 모르드개는 하급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리이고 신앙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전해줬고, 결국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전체가 다 진멸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넣어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페르시아 제국 일 년 예산의 삼분의 이 정도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만큼 규모가 될까요?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얼마 정도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지출 예산이 656조 6천억 원입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지요. 그런데 그중에 삼분의 이 정도 하면 400조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입에서 400조라는 말을 올릴 일이 없으니까 말도 제대로 안 나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하면 127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만이 도대체 무엇을 해서 그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단들은 돈이 많습니다. 이단들은 돈이 엄청 많고, 정상적인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땀 흘리고 수고하고 애쓰고 나의 노동의 결과로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먹고사는 사람들은 항상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 이 하만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만큼의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을까요? 한번 상상해 보시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정도 돈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 전체를 진멸하고 그 재산을 다 가져오려고 합니다. 은 일만 달란트를 집어넣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뽑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비정상적인 것 아닙니까? 사람을 죽이고 살육하고,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물질을 모으는 사람들이 하만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속에는 능력이 없어서 못하지 욕망은 있습니다. 그런 욕망은 우리 속에도 하만 같은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세히 끄집어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를 비추어 보자는 말입니다. 이제 그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만의 음모로 유대인들의 살육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모르드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1절을 보십시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이 모든 일이 무엇입니까? 하만이 유대인들 살육을 결정했다는 것, 왕이 인장 반지를 그냥 줘버렸다는 것, 그 인장 반지에 도장이 찍혀서 왕의 조서가 반포되고 전국 127도에 다 뿌려지고 방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11개월 남은 시한부입니다.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여러분, 이것이 무엇 하는 장면 같습니까? 옷 찢고, 재 뒤집어쓰고, 굵은 베옷 입고, 대성통곡하는 것 말입니다. 무엇을 할 때 이렇게 합니까? 회개할 때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왜 회개를 하는 것입니까? 왜 회개합니까? 모르드개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회개하는 것입니까?
1-1. 경건한 유대인의 사고방식
이 경건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우리가 좀 알고 계셔야 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오신 분들의 삶의 방식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먼저 돌아봤습니다. 어떤 상황이 딱 발생하면 우선 자기를 돌아보는데, 자기를 돌아보는 방식 중에 하나님 앞에 신앙적 행위로 반드시 한 것이 회개였습니다.
시편 59편 3절 말씀을 보시면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이 시편은 사울 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사울의 군대를 다윗의 집에 보낸 후에 겨우 탈출하고 나서 지은 시입니다. 어떻게 탈출했습니까? 사울의 딸 미갈이 이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가 다윗을 창문으로 달아내려서 도주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시간을 벌어 줍니다.
그때 다윗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쳤는데 혹시 내 죄는 없었는가? 내가 이런 일을 초래할 만한 내 잘못은 없었는가? 자기를 우선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입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니까 결론이 나오지요. 나는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내 죄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드개도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까 이것은 그냥 일이 아닙니다. 사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을 때 그가 결단한 것 한 가지는 있습니다. 나는 순교를 각오하겠다, 나는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에스더에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하나 죽고 끝내면 되는 일이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민족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내 문제는 없었는가,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회개입니다.
욥기 1장 20절도 한번 보십시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예배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회개한 것입니다. 욥기 1장의 내용 아시지 않습니까? 전 재산 잃었고, 자녀들 다 잃었습니다. 병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예배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 것입니다. 자기를 돌아본 것입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혹시 나에게 잘못이 없는가? 이것이 신앙인의 기본 태도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문제를 외부에서 찾습니다. '너 때문에'라고 생각합니다. 남 탓, 너 탓 하다가 조상 탓까지 하고, 대통령 탓은 맨날 하는 것이고, 맨날 누구 탓 누구 탓 맨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성숙한 신앙인은 남 탓하지 않습니다. 우선 나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나를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참 신비로운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겨서 나를 들여다보면 남에 대한 미움도 그만큼 없어집니다. 신기합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 잘못이 없고 저 사람이 잘못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사람에 대한 미움도 반감됩니다. 왜냐하면 기도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초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습니까? 그분들은 항상 모세 탓, 아론 탓이었습니다. 목이 말라도 모세 탓, 배가 고파도 모세 탓, 무슨 문제만 있으면 탓탓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듣기 싫어서 불뱀 풀어서 다 물게 하셨습니다. 남 탓하는 인생들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자기를 들여다보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선되면 탓하는 것이 줄어듭니다. 교회가 이래서, 누가 이래서, 어떤 사람이, 저 사람이 이래서, 내 아내가 이래서, 내 남편이 이래서, 내가 자식 잘못 만나서 하는데, 무엇을 잘못 만났습니까? 자기가 낳아놓고 누구 탓할 것도 없습니다.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다 결국은 다 자기로부터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르드개가 그것을 시작한 것입니다.
1-2. 막힌 통로와 기도
2절을 보면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옷을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굵은 베옷을 입은 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궐 문 안은 상중에 있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굵은 베옷은 상중을 표시하는 것 아닙니까? 들어가지 못하게 딱 막혔습니다. 지금 궁중 안에서, 대궐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 왕의 인장 반지에 도장 찍고 다 반포하고 나서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 둘이서 술 마시고 있습니다. 그 안은 태평천국입니다. 그 안은 아주 행복합니다. 왕은 거기에서 매일 처녀들 불러다가 밤을 지내고, 술 마시고 즐기고, 금고에는 일만 달란트가 가득 차 있고,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지금 억울한 유대인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기도하는 모르드개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지금 이 안에 에스더도 있는데, 에스더는 바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 들어가서 왕 앞에 시위라도 하고, 대자보라도 붙이고, 큰소리라도 한번 치고 싶은데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통로가 다 막혔는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국의 대궐 문 앞에 감히 누가 들어갑니까? 탱크를 앞세워서 갈 수도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일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 사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때 진짜 하나님이 일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이 이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많습니다. 그때는 누가 일하셔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일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에서 25절 말씀입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셉 이후에, 요셉을 아는 왕이 죽고 왕조가 바뀝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노예의 처지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430년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 하나님께 강구합니다. 노예가 왕을 만날 일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차단됐는데, 노예가 왕 앞에 어떻게 나갑니까? 갈 수가 없습니다. 그 지엄하신 왕을 얼굴이나 제대로 뵐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있으면, 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데, 그때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때 진짜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기도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 해결을 받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의 재미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전능하심을 다시 깨닫고, 그리고 함께 다시 힘차게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바입니다.
1-3. 유대인들의 신앙적 일치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모르드개의 입장을 보았고,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3절을 보니까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똑같습니다. 누구와 똑같습니까? 모르드개와 똑같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전통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생기면 일단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계속 반성하고 살피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계속 돌이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난주에도 제가 살짝 말씀드렸지만 정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누구 하나 모르드개에게 원망하는 자가 없습니다. 유대인들 중 누구도 "당신이 그렇게 목이 곧아서, 당신이 대궐 문 앞에서 하만에게 한 번만 고개 숙이면 될 일을, 그것을 안 해서 이 사단이 났다"고 누구 하나 모르드개 찾아가서 옷깃 잡는 사람이 누구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나라도, 나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에게 무릎 꿇는 것처럼 하만에게 고개 숙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도." 이것이 유대인들의 신앙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사람마다 자기 재산 아깝지 않은 사람 없고, 자기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한부 인생 11개월을 남겨놓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내부 분열이 전혀 없습니다.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전부 다 똑같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아예 재 위에 누운 자가 무수히 많고,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라는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이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딱 주어지면 그 말씀 앞에서 우리는 한마음 한뜻 한 행동이 딱 나와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 모르드개가 한 행동에 대해서 누구 하나 비난하지 않는 것은 '저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신앙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은 그냥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숱한 시련과 숱한 고난, 나라 잃었습니다. 지금 성전이 불탔습니다. 이들이 성전 신앙을 가지고 있었을 때 이랬겠습니까? 솔로몬 성전, 화려한 성전 가지고 있었을 때, 그들이 잘 먹고 잘 살 때, 다윗의 치세에서 잘 나갈 때, 주변의 근동 지역을 다 제패하고 살았을 때, 이집트와 어깨를 겨누고 살았을 때, 상아궁을 만들고 있었을 때, 그때 이들의 신앙이 이랬겠습니까? 아닙니다.
솔로몬 시절부터 타락하기 시작했고, 성전은 병들기 시작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엉망진창이 되었고,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이 결탁했고, 그래서 나라가 망했습니다. 성전은 불탔습니다. 지금 성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나라도 없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전은 의미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 직분, 그럴싸한 것들,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솔로몬 성전 없어도 지금 이분들의 신앙이 얼마나 견고합니까?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내 믿음의 성전을 잘 지어야 합니다. 내 믿음의 집을 매일같이 견고하게 잘 지어 나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무너지고 거기에서 실패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냥 망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성전이 있어도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고 다 무너뜨리시는데, 우리 믿음의 성전이 하나 견고하고 아름답게 잘 지어나가야 합니다. 이분들의 신앙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전부 다 같이 죽겠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11개월 후에 죽을 운명인데, 적어도 이 정도 결단과 결기는 있어야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4. 금식의 의미
그다음 에스라 이야기는 금식 이야기입니다. 에스라 8장 21절에서 23절을 보면 "그때에 내가 거기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그랬습니다. 23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가 응락하셨느니라"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귀환하는데, 1차 포로 귀환한 사람들이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이분들은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런데 2차 포로 귀환은 에스라 중심으로 귀환을 했는데, 성전은 재건했는데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사 에스라가 유대인들을 데리고 2차 포로 귀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포로 귀환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성전 안에서 무언가 성전을 구성하고 만들고, 또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왕에게 부탁해서 얻어가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왕이 그냥 달라고 하면 주겠습니까? 그래서 금식한 것입니다. 어떤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때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하수에로 왕과 너무 다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합니까? 잔치를 벌입니다. 전쟁을 해야 하는데 6개월 동안 180일 동안 부어라 마셔라 먹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굶어버립니다. 그냥 금식합니다. 왜입니까? 하나에 집중하려고,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그렇습니다. 먹는 시간조차 아끼고, 나의 모든 가장 기본적인 욕구, 하루에 한 끼 안 먹으면 죽을 것 같은 그 욕구까지도 끊어버리고,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 문제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금식 모티프는 굉장히 중요한데, 에스더도 금식합니다. 나중에 금식을 요청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금식하다가 계속 굶으면 어떻게 됩니까? 천국 갑니다. 그냥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금식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제가 써둔 것입니다.
2. 에스더의 결단
상황을 모르는 에스더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지금 에스더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에스더가 왕후이지만 왕후의 역할을 못하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가까이하질 않으니까요. 매일같이 처녀들을 불러서 밤을 지내니까요. 그리고 왕궁 안에 있는데, 왕후가 거하는 거처가 따로 있습니다. 지금 그 안에서는 그 밖의 일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중궁궐 속에 들어가서 성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4절을 보면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무엇을 전했다는 말일까요? 모르드개의 상황을 전한 것입니다.
자, 지금 이것을 좀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두 사람의 반역을 고발한 적이 있습니다. 빅단과 데레스의 반역을 말입니다. 그것을 누구를 통해서 했습니까? 에스더를 통해서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에스더 주변에 있는, 자기를 돕는 내시들, 그리고 돕는 궁녀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를 아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모르드개가 이런 이런 상황에 있습니다' 하고 고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에스더가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옷을 벗기고자 했습니다. 왜 굵은 베옷을 벗기려고 했을까요? 베옷을 입은 상태로는, 상을 치르는 모습을 한 상태에는 왕궁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평상복을 입혀서 부르려고 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는지 불러서 좀 이야기를 듣고, 직접 사촌 오빠의 입을 통해서 이 상황을 알고 싶어서 부르려고 한 것입니다.
2-1. 모르드개의 의리
그런데 모르드개가 어떻게 합니까?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왜 안 받았을까요? 왜 안 받았습니까? 모르드개는 지금 모든 유대인들의 대표로 지금 밖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다 굵은 베옷을 입고 함께 금식하고 재 위에 앉아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상복 하나 입고 왕궁에 들어간다? 그것을 못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말입니다. 나는 유대인들과 함께 고난받고 이분들과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11개월 후면 죽을 운명인데, 그런데 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다, 금식을 풀 수도 없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누구와 닮았습니까? 사무엘하 11장 8절과 9절을 한번 보십시오. "왕이 또 우리야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그러나 우리야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인의 모든 신하들과 더불어 잤더라" 충성스러운 다윗의 부하 우리야 장군과 닮았습니다. 우리야가 너무 충성스럽습니다. 이런 자가 다윗의 왕국에 있으니까 다윗의 군대가 가는 곳마다 이기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사악한 다윗은 이런 우리야를 살해합니다.
우리야가 집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나와 함께하고 있었던 전우들이 다 전쟁터에 있는데, 왕이 갑자기 불러서 내가 무슨 일인지 싶어서 오긴 왔으나, 적어도 내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밤을 내 아내와 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도리이고 사람에 대한 예입니다. 지금 모르드개도 같은 맥락입니다.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지도자라면, 이 정도 의리는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다 이러고 있는데, 목사가, 장로님이, 교회 중직이 자기 편한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이 다 고생하고 있는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누릴 것 다 누리고 있으면 가만히 두겠습니까? 백성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지 않습니까? 적어도 지도자는 이 정도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드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2-2. 하닥을 통한 소통
그러니까 이제 에스더가 이렇게 합니다. 5절에 "에스더가 왕의 어명으로 자기에게 가까이 있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령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엇 때문인가 알아보라 하니" 소상하게 알아보라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닥에게 전해라. 왕의 어명을 빙자했습니다. 왕의 어명을 빙자해서 하닥에게, 믿을 만한 사람을 보내서 그 사람을 통해서 듣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또 기억을 좀 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모르드개가 유대인인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다 알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유대인들을 다 진멸하라는 왕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에스더 주변에 있는 하닥이라는 내시와 에스더의 심부름을 하고 있는 궁녀들은 에스더의 신분을 알겠습니까, 모르겠습니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자, 지금 이 상황에서 만약에 누군가가, 이 하닥이라는 사람이나 궁녀 중 하나가, 지금 절대 권력을 가진 자가 하만 아닙니까? 하만에게 이것을 일러바친다면, 혹은 왕에게 이것을 고자질한다면, 상황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하만에게나 왕에게 일러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두 번째는 에스더가 그만큼 인품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그만큼 사랑을 받고,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쉽지 않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2-3. 모르드개의 치밀한 준비
자 이제 모르드개는 자신을 찾아온 내시 하닥에게 무엇을 부탁합니까? 6절을 보면 "하닥이 대궐 문 앞 성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도착합니다.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어떻게 알았을까요? 모르드개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소문이 났겠지요. 또 모르드개도 적어도 말단 관료지만 궁 안에서 대궐 문을 경비하는 사람 아닙니까?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면 모르드개가 상당히 치밀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정신이 아득할 때 아닙니까? 11개월 후면 다 죽습니다. 지금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까지는 누구나 다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모르드개가 한 일은 자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증거를 모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은을 하만이 왕의 금고에 넣었는지, 그리고 조서 초본, 방 붙은 것의 초본 원본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에스더에게 넣어주는 일, 이런 일은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하는 일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어떤 상황이 생기면 감정은 확 올라옵니다. 열은 받습니다. 화는 납니다. 절망은 합니다. 낙심은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떻게 헤어나와야 할지에 대한 원, 투, 쓰리 계획은 아예 없습니다. 울고만 앉아있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문제 해결이 됩니까?
2-4. 지도자의 역할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지도자는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문제는 누구나 다 압니다. 지금 문제는 다 드러났습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한다, 11개월 후에 우리는 다 죽는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께 기도하자, 기본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 그다음 방법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 모르드개 생각에는 이것을 해결할 사람은 하나님이 저 궁 안에 있는 에스더를 통해서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에게 줄 자료들을 모은 것입니다.
지도자는 치밀하고 대안을 준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안이 없으면 지도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문제 모르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저출산 문제, 빈부격차 문제, 정치적으로 좌와 우가 나누어져 있는 문제, 당연히 이런 것은 문제입니다. 요즘 계속 신문에서 얘기하는 연금 문제 등등, 모든 것이 다 문제입니다. 이 문제 모르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를 제시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뒤에 나오지만 문제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죽으면 죽으리라'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가 없어서, 자기를 내어놓지 않으니까, 자기를 죽이려고 하지 않으니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문제 해결이 되는데, 그것이 안 되니까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합니다. 꿈 해몽 할 수 있습니다. 바로가 궁금합니다. 그러면 7년 풍년은 너무 좋은 일이나 7년 흉년은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까? 대안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대안을 제시해 줍니다. 기가 막힌 대안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대안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백성들, 특히 교회 공동체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왜 문제가 없겠습니까?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고, 그 문제는 사람이 모인 공동체니까 당연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좋아하는 것은 문제를 자꾸 부풀리는 것입니다. 문제를 자꾸 더 큰 문제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 대안을 내놓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그 문제 모르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목회자나 당회나 중직들이나 어른들은 이것을 풀어가려고 애를 써야지, 자꾸 문제를 부풀리면 그것은 박살 내자는 것밖에 안 됩니다. 지금 모르드개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기초 자료 수집을 아주 꼼꼼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구약에 보면 이런 분이 또 있습니다. 여호수아 2장을 보면 12절과 13절을 한번 보십시오. 라합 이야기입니다. 라합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집에, 자기가 운영하는 여관에 들어온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라합의 집에 정탐꾼들이 들이닥쳤습니다. 보통의 여성 같으면 정신이 아득하고 가슴이 뛰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숨겨야 할지 고발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숨겨줍니다. 숨겨주고 뒤따라온 군사들을 보내고 난 다음에 이 사람들 딱 잡아놓고 "증표 내라" 그랬습니다. 얼마나 치밀합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것을 이 라합이 알고 있으니까, 그 믿음이 있으니까 증표를 내라 한 것입니다. 이 심판 날에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구원할 증거를 갖고 오라 한 것입니다.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여호수아 6장 2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그의 아버지의 가족,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살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다 해야 합니다. 기도도 하고 치밀하게 계획도 잘 세우고 말입니다.
그래서 정신이 아득하고 가슴 뛰는 것, 그것을 이제 좀 그만하셔야 합니다. "나는 무슨 일만 있으면 눈물부터 나고 아무 생각이 안 난다" 하는데, 그래 가지고 그다음은 무엇을 어떻게 합니까? 그다음에 정신 바짝 차려야지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그다음 내가 해야 할 말, 그다음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기도하고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따르는 사람, 나와 함께하는 믿음이 어린 사람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지도자입니다.
2-5. 에스더의 고민
자, 8절을 보면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이제 부탁을 합니다.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자, 모르드개가 하닥이라는 내시에게 에스더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라 한 것입니다. 왕에게 나아가서 우리 민족을 구원해 달라 구하라 그랬습니다.
하닥의 전갈을 받은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9절을 보면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에스더가 하닥에게 또 말합니다. "너는 모르드개에게 말하기를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세상에 이런 악법이 있습니다. 다만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금 규, 금 지팡이입니다.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여러분 이것이 지금 에스더의 현주소입니다. 지금 이 상황입니다. 자, 와스디 왕후를 폐위할 때, 그때 조서를 내려서 전국에 반포한 법이 있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가 된다는 법 아닙니까? 가정은, 모든 가정은 남자가 다스린다. 그러니까 남자가 부르지 않으면 여자가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국법입니다. 그것이 법으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왕과 왕후라도, 아무리 왕과 왕후의 부부 사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조선 시대도 봉건 사회였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 말은 모르드개가 전한 말에 대한 에스더의 완곡한 거절입니다. 자기 상황을 그대로 알린 것입니다. 여러분 에스더의 고민도 느껴지지요? 에스더의 고민도, 아마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했던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8절을 보십시오.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이 솔직하게 얘기하시는 장면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솔직하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하셨습니다. 에스더라 하고 왜 고민되지 않겠습니까? 이 왕궁에서 자기 혼자 그냥 자기 출신을 숨기고 편하게 살고 있는데, 나만 입 다물면 나는 살 수 있는데, 이런 마음이 왜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사촌 오빠와 민족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7장 23절과 24절 내용을 보니까 빌라도 이야기입니다. 24절에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만약 에스더가 "나는 앞으로 모르드개를 모른다 해라. 하닥에게 아예 가지도 마라" 하고 언로를 딱 차단해버렸으면 에스더는 빌라도가 되는 것입니다. 빌라도 말입니다.
여러분, 빌라도가 얼마나 악한 이름으로 역사에 남아 있습니까?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본디오 빌라도가 고문을 한 번 했습니까? 돌을 한 번 던졌습니까? 채찍질을 한 번 했습니까? 본디오 빌라도는 실제로 예수님에게 몸에 손댄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손을 씻었을 뿐입니다. 손 씻은 것만 빌라도가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 고백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책임자니까, 예수를 넘겨준 자니까,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습니다.
에스더가 여기서 자기 마음의 문을 닫고 언로를 차단해 버렸다면 이제 에스더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위치가 중대한 자리입니다.
2-6. 모르드개의 통렬한 권면
자, 하닥의 전갈을 받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전한 말과 이에 대한 에스더의 반응을 보십시오. 12절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하닥이 심부름 열심히 합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또 전달하라 합니다. "너는" 이제부터는 진짜 본심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 말 그대로 다 하는 것입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무서운 얘기입니다. 무서운 얘기입니다. 모르드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악에 받쳐서 도끼눈을 뜨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우선 들여다봤습니다. 자기들을 들여다보니까 죄가 없는 것입니다. 무죄한 것입니다. 결백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도하고 계획한 것은 에스더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네가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다른 길을 통해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이다. 그 신뢰와 그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너는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마라. 너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지 마라. 이것을 강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3. 섭리신앙과 자기 부인
그다음 결정적인 얘기를 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여러분, 여기 하나님 이야기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안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가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3-1. 섭리신앙이란
여러분, 이것을 우리는 섭리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섭리신앙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로 68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957년도 2월에 이 자리에 교회가 세워졌고, 80년대 중반에서 90년이 되기 전까지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로 역할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57년부터 약 1990년 될 때까지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을 넘어오면서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모습을 좀 갖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우리 교회는 아주 숫자적으로도 많은 교회가 됐고, 재정적으로도 풍성한 교회가 됐고, 또 교회 내용적으로도 알찬 교회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교회가 됐습니다. 아직까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 한 사람의 능력으로, 누구 한 사람의 기여로 된 것이 아닙니다. 돌아보면 순간순간 모든 시점마다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스더가 왕후의 자리에까지 오를 때까지 에스더 자기 능력으로 된 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전부 다 그를 사랑해 줬습니다. 이 콘테스트를 맡은 사람들이 에스더를 사랑하고 예뻐해 줬고, 마지막에는 왕도 그를 예뻐하고 사랑해 줬습니다. 왕의 눈에 들었습니다. 자기 미모로 된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닙니까?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아이가, 빽도 돈도 아무것도 없는 여자아이가 왕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섭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될 때까지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몇몇 사람, 어떤 견인차를 감당했던 사람, 그것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그 도구로 말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밖에 우리가 고백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시점에서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어떤 교회가 돼야 합니까? "이때를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이렇게까지 역사하신 것이 아닌가?"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들 보십시오. 전부 다 교회가 다 손가락질 받고, 교회가 교회답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떨어뜨리고 다 떠나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어린 생명들이 교회에 바글바글하고 그들을 양육하고 제대로 세우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안 된다고 생각되는 것이 되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전도가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 교회가 전도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사명들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재정도 풍성하니 "옛날에 보리밥 먹었는데 이제 쌀밥 먹자. 옛날에는 고기 반찬 못 먹었는데 이제는 우리 좀 배부르게 먹고 맛있게 먹고 우리도 좀 쓰자." 이것을 하려고 교회가 이만큼 된 것이 아닙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이 "나는 부모도 없이 자랐고 고아로 자랐는데 이제 내가 왕후가 됐으니 이제 좀 편하게 좀 살려고 했더니, 왜 당신이 내 앞길을 방해하느냐, 이제 나 아는 척하지 마라, 나도 이제 좀 왕후가 됐으니 누리고 즐기고 치장도 좀 하고 즐겁게 살자" 이것이 아닙니다.
가난했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부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고 그를 성공하게 만들어 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내 인생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전보다 더 참담한 처절로 돌아갑니다. 모르드개가 말합니다. "너와 네 아버지 집이 멸망할 것이라"고.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2. 섭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임
하나님의 섭리를 내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를 내 믿음으로 끌고 가지 않으면,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 은혜 가운데 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직분 주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도 감사한데, 그것도 모자라 교회 직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어깨 힘주라고 직분자로 세워주셨겠습니까? 남들에게 인사받으라고 직분 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다 허리가 끊어질 때까지 일하고, 주의 영광 위해서 부서질 때까지 섬기고, 주의 몸 된 교회의 종으로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섭리신앙 아닙니까? 그 섭리신앙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이 죄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지금 왕궁 안에서 어쩌면 한 발은 뒤로 빼고 있는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통렬하게 한 방 날린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이 이야기 듣고 말입니다.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너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 이때를 위하여 네가 헌신해라" 이 말입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인생은 다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재고 재고 재고 또 재고, 집에 편지는 한 백 통 써놨는데 한 통도 못 주면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겠습니까? 이때가 중요합니다. 때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가 언제 이 때가 꺾일지 누가 압니까? 허리도 못 펴고, 다리도 저리고, 손가락도 저리고, 주의 일 못할 때가 곧 옵니다. 곧 옵니다. 이때 일해야 합니다. 이때 일하고, 이때 주의 일하고, 그래서 이 때를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3-3.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또 금식 모티프가 나옵니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불신자들은 부어라 마셔라 잔치하고, 믿음의 사람들은 금식합니다. 자기의 오락을 끊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기도 부탁만 한 것이 아니라 나도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나도 금식 기도하고,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행동하겠다는 것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기도 부탁했고, 나도 기도하고, 나도 행동하겠습니다. 이렇게 돼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4절과 5절을 한번 봅시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그가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해야 합니까? 아하수에로 왕입니까?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그 맥락입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얘기하고, 에스더가 "내가 죽으면 죽으리이다" 합니다. 이 육체는 한 번 죽습니다. 육체는 두 번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진짜 무서운 죽음은 영혼의 죽음입니다. 그것을 계시록은 '둘째 사망'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몸은 죽이는데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국가 권력, 총칼, 그따위 두려워하지 마라. 진짜 두려워해야 할 분은 너의 영혼을 데려갈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이지 사람 앞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단입니다.
자, 마태복음 16장 23절을 한번 볼게요.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가 신앙 고백한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시니까, 예수님이 이제 베드로의 믿음이 좀 좋아졌나 보다 하고 베드로에게 또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결코 이 일이 주께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막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우리 인생은 항상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사이 갈림길에 있습니다.
이어서 마태복음 16장 24절, 25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 말입니다.
죽자고 우리가 결단하고, 죽음을 결단하면 대안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이 땅의 문제는 다 알고 있는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내 정치적 생명을 다 걸겠다는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공동체든지 지도자가 자기가 죽고자 하면 그 공동체는 살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죽어라고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는데 그 집이 안 되는 집 보셨습니까? 부모가 못 배워도 돈이 없어도 죽으라고 일하고 자식들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는 과정, 그 자녀 잘못되는 것 보셨습니까? 누군가가 희생하고 누군가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 거기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법칙입니다. 신앙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자리에, 그 땅에 묻히신 밀알 자리에 열매가 나타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생명들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살려고 하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죽으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교회는 잘 됩니다. 그 공동체는 됩니다. 에스더 하나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니까 민족이 구원받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 한 사람,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그 사람 말입니다. "네가 해라" 이러면 안 됩니다. "나는 못하니까 네가 해라" 그러면 안 됩니다. "내가 해야 합니다. 내가" 그래야 다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려운 상황, 위기 상황, 누구도 이 문제를 풀어갈 수 없을 것 같은 꽉 막힌 상황에서 모르드개가 민족을 이끌고 기도했습니다.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왕궁에도 들어가지 않고 백성들과 함께 거리에서 기도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전한 말씀을 듣고 깨우치고 뉘우치고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도 이 결단이 살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도 살고 모든 사람이 살고자 하고 도망가는 미련한 자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십자가 지고 죽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까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 지고 자기 부인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시고,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이 고백, 섭리신앙을 우리가 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섭리가 내 인생을 타고 아름답게 열매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