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에스더와 하만 / 전체녹취

에스더 특강 5 - 에스더와 하만 (에스더 5장)

에스더 5장 2-3절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아멘.

에스더서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통쾌함도 있고, 은혜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특별하게 이 여인을 사랑해 주셨을까 하는 부러움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역전의 이야기가 대단히 많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역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 그것이 끝이 아니라 거기에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시록 끝을 보면 결국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후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계시록의 마지막입니다.

그 외에도 믿음의 선진들 삶을 보면 처음에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믿음 생활하고 하나님과 함께 이 길을 쭉 걸어가다 보면 마지막에는 주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에스더 이야기도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처음에는 보잘것없고 별 볼 일 없던 고아 에스더, 그리고 그의 사촌 오빠 모르드개가 있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다 몰살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하나님께서 역전시켜 주십니다.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보면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최후 승리합니다. 이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후 승리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최종 승리, 최후 승리가 내 것이 될 수 있는가, 내가 과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리가 내 것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승리했는데 내가 지고 만다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의 최후 승리, 최종 승리는 그 나라에 동참하는 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만일 이때에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대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네가 이 자리에 함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기나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패배하고 말 것이다, 그 메시지 아닙니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너무 경도되어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권선징악입니다. 선은 권하고 악은 징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 고전에 보면 권선징악의 정신이 쭉 나오는데, 성경은 권선징악처럼 보이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선한 것에 대한 기준이 모호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발을 딛고 동참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하나님 나라 사역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온몸을 던졌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에스더 이야기의 메시지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제 이쯤 가면 흐릿했던 것이 명확해지고, 에스더를 볼 때 오해했던 것이 해소되며, 하나님께서 이 에스더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가 조금씩 보일 것입니다.

1. 금식 기도 후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

이제 5장을 보겠습니다. 3일이 지난 후 에스더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1절을 보시면 "제삼일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삼일이 무엇으로부터 3일입니까?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부탁과 청을 듣고 처음에는 자기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다음에는 그 상황에 대한 모르드개의 응답을 들었습니다. 그 응답은 굉장히 강력한 도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결단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 결단을 했습니다.

자기가 죽고자 결단을 하고 나서 부탁을 합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지금부터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3일 동안 나를 위해서 금식하고 기도해 달라. 나도 내 시녀와 함께 똑같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3일 동안 기도하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 3일은 금식 기도한 기간입니다. 혼자 기도했습니까? 온 유대인들이 같이 기도한 시간입니다. 이 3일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냥 "제삼일에"라고 말하지만, 이 3일 동안 유대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을까요?

절망 가운데 희망을 한 줄기 보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 희망을 붙들고 기도하지만 과연 이것이 될까 하는 절망과 낙심 가운데 또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3일이 정말 중요한 까닭은 공동체의 위기 대처 능력이 이 3일 안에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유대인 공동체입니다. 유대인 공동체가 정말 탁월하고 뛰어났던 이유는 이들에게 무슨 역량이 있거나 탁월해서가 아닙니다. 이 사람들이 한 가지 목표와 목적을 위해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 금식 기도해 주었다는 것, 이것이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도하면서 모르드개를 탓한 사람이 없습니다. 공동체가 이토록 건강했습니다. 만약에 누구를 탓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라도 당신처럼 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같이 기도한 것입니다. 같은 마음으로 같이 기도하고, 같이 뜻을 모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가 건강하냐, 교회가 건강하냐, 가정이 건강하냐 하는 문제는 위기 대처 능력에 있습니다. 위기 대처 능력이란 어떤 상황이 닥치면 매뉴얼대로 활동하는 문제가 아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내 인생도 그렇습니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이 일이 누구로부터 온 것이냐를 따져 묻기 시작하고, 누구를 탓하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이미 끝난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박살 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때부터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1-1. 하나님 백성의 집중력

그리고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 중의 하나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하나님 없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의 차이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은 항상 잔치합니다. 술 마시고, 먹고, 지나치게 오랫동안 잔치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니까 딱 굶어버립니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기들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위기에서 저 악한 하만의 궤략을 꺾어 주시고 우리를 건져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끊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결단이라고 부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하려고 합니다. 전부 다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고, 문제 해결도 하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이 상황에서 최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끊어낼 수 있는 것, 그것이 결단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일단 결단하고 한 가지에 집중하면 이 문제 해결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채워 주십니다. 그런데 이것도 놓지 못하고 저것도 놓지 못하고, 여기에도 한 발, 저기에도 한 발 딛고 있으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유대인들, 특히 이 일을 책임지고 왕 앞에 나가는 에스더는 어떤 상황입니까? 두렵고 떨리는 상황인데 금식 기도했습니다. 배는 고픕니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의 육체의 욕망을 딱 단절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최대로 예민해집니다. 영적 예민함이 아주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이제 그 영적 예민함이 어떻게 발현되는지가 오늘 이야기에 잘 나옵니다.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궁 안뜰에 들어오면 됩니까, 안 됩니까? 부르지 않았는데 들어오면 안 됩니다. 왕궁 안뜰에 섰습니다. 그때 각오를 한 것입니다. 죽을 각오를요. 그런데 왕이 옛날 와스디처럼 그를 폐위시킬 수도 있습니다. 폐위시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법에 따라서 죽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폐위시키는 것도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11개월 후에 다 몰살당하도록 이미 조서가 내려졌기 때문에 폐위되면 11개월 후에 죽는 것이고, 지금 죽이면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어찌 되었든지 에스더는 여기에 죽을 각오를 하고 왕의 안뜰에 딱 섰습니다. 금식 기도하고, 중보 기도를 힘입고서요. 왕이 어전에서 대궐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이 모습을 봅니다.

1-2. 기도 후의 행함

여기서 우리가 아주 중요한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기도는 했습니다. 중보 기도도 입었습니다. 사람들이 막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해야 되는 것도 알고, 기도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기도도 해줍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그 일을 성취하도록 해야 되는 것은 누가 해야 합니까? 내가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것 먹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결단하고 환관장에게 못 먹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말하는 순간 이미 죽을 수도 있습니다. 포로가 어디에 와서 함부로 그렇게 합니까. 중요한 것은 입을 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문제는 기도하고 나서, 저 예배당 문을 나가서, 교회 문을 나서서 우리의 삶에서 기도한 대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3일 동안 얼마나 많이 망설이고, 얼마나 많이 불안하고, 또 결단과 불안이 반복되었겠습니까? 그리고 딱 결단했습니다. 3일 동안. 그리고 나서 왕 앞에 선 것입니다. 이것이 행함 아니겠습니까?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보십시오. 야고보서 1장 22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듣기만 하는 것은 곧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마 야고보 사도는 이것을 경험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설교를 많이 듣고, 성경 공부를 많이 하고, 이 예배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기도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러면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다 아는 것처럼,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것이 생각이 안 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적용이 안 됩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살아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나를 반추하고 돌아보면 후회합니다. 그때 그랬어야 되는데 왜 못 했을까. 왜 이런 일이 발견됩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 인생에 평소에 말씀을 가지고 실천하고 적용하고 살아보지를 않았으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결정적인 순간에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풀어주는 문제를 실컷 보고 있으면, 인강을 열심히 듣고, 교사들이 풀어주는 것을 다 보고 있으면 다 풀 것 같습니다. 다 압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가방 던져놓고 공부 안 하고 복습 안 하면 시험 치면 0점입니다. 안 해보니까 그 짧은 시간에 다양한 문제들을 내가 풀어서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안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누가 속이는 것입니까? 사탄이. 우리는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야, 너 성경 공부 많이 했잖아. 너 신앙생활 40년 했는데 지금까지 들은 설교가 몇 편이야? 성경을 올해도 일독했고 작년에도 일독했고 성경 필사도 했고." 그런데 안 사는 것을, 한 번도 참아본 적도 없고, 한 번도 사랑해 본 적도 없고, 한 번도 누구를 위해서 헌신해 본 적도 없고, 성질나는 대로 말 다 하고 행동 다 하고 그랬는데 무슨 말씀을 아는 것입니까? 그래서 말씀은 살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왜 실천하는 자가 복을 받을까요?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주의 일에 동참하는 자니까, 동참하니까 복 받는 것입니다. 우리 편이니까요.

우리 예수님이 보실 때, 야고보 사도가 계속 이야기합니다. 14절, 2장 14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여러분, 여기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것은 믿음과 행함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 안에는 행함이 무조건 포함되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함께하는 것이지, 행함과 믿음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19절 말씀을 보니까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귀신들도 믿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귀신들이 예수님을 믿을까요, 안 믿을까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믿음과 행함을 분리시키는 의미에서 만약 분리시킨다면, 귀신들도 예수님을 믿을까요, 안 믿을까요? 행함이 없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면, 그렇다면 귀신들도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1-3. 귀신의 믿음과 참된 믿음

한번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5장 6절, 7절 말씀을 보시면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이 '그'가 누구냐 하면 거라사 광인입니다. 거라사 지방은 이방인 거주 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활동하실 때 한 번은 유대인 지역에서, 한 번은 이방인 지역에서 활동하셨는데, 이방인 거라사인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귀신 들린 광인, 군대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 멀리서 보고 예수를 보고 달려와서 절합니다. 이 사람이 달려오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사람 속에 있는 군대 귀신이 달려와서 절하는 것입니다.

7절을 보세요.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일단 여기까지 한번 봅시다. 여기까지 잘 보십시오. 멀리서 보고 달려와서 절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사람이 거라사의 광인, 귀신 들린 광인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이것만 딱 떼서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예의 바릅니까?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하시면서 이 정도 대접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배척하고 돌을 던지려고 했고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서 보고 달려와서 절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말했던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면 이 귀신은 예수님을 믿는 자입니까, 안 믿는 자입니까? 압니다. 알아보고 온 것입니다. 알아보고 온 것이고, 만약 행함과 관계없다면 이 믿음이 탁월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을 한번 보세요. 7절.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이 두 마디가 중요합니다.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상관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알긴 아는데, 예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도 알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삼위일체 중에 한 분인 것도 압니다. 그런데 거기 와서 절까지 합니다. 그런데 "당신과 나와 상관없습니다." 상관없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당신, 나에게 말하지 마세요."

부모가 자식에게 제일 서운할 때가 언제입니까? "이제 다 컸으니까 아버지와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인생을 사시고 저는 저의 인생을 살겠습니다. 서로 간섭하지 맙시다." 이러면 호적 파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자식이 있으면 생각만 해도 열받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와는 상관이 없다. 당신이 나에게 말하는 것은 나는 상관없다. 그런데 난 당신을 알고, 나는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할 테니,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나는 내 일을 하게 내버려 두라는 이야기입니다.

또 두 번째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여러분, 괴롭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믿으면서 괴롭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막 헷갈립니다. 이 말을 어떻게 해야 되지요? 예수님 믿으면 일정 부분 괴로워야 합니다. 뉘앙스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찔림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에 성령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설교 들을 때, 성경 읽을 때, 기도할 때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괴로움 아닙니까? 하나님 말씀은 이렇게 있는데 내가 그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내 자아에 대한 괴로움, 하나님 말씀은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갈등, 그것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 괴로움이 없으면 우리는 성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괴로움이 없다면 우리는 마귀 신앙을 갖고 있든지, 아니면 완벽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완전하십니까?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귀 신앙을 갖고 있든지요. 여기 나오는 이 군대 귀신 들린 마귀, 사탄 마귀는 예수님을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상관없다, 당신의 말과 나를 엮지 마라,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하지 마라."

이것이 마귀 신앙입니다.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이 바로 이런 마귀 사탄 신앙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라면 가장 잘 믿는 존재는 사탄 마귀가 가장 잘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탄 마귀 신앙 가지고 살겠습니까? 진짜 우리가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분투하고 해보는 것입니다. 그냥 부딪쳐 보고,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물질 앞에 굴복하지 말고, 맨날 돈 걱정하지 말고, 믿음으로 한번 해보고 투쟁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한번 살아가 보고,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고, 내 존재의 가치를 믿고,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믿고 해보는 것입니다.

그냥 매일같이 상처받았다고 나자빠져 있지 마십시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다 군사들인데, 군사들이 전투하다 보면 맨날 크고 작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 상처 없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나이 60줄에 접어들면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 맨날 삐그덕거리고 "아이구구구구" 하는데, 그것이 우리의 훈장입니다. 또 몸에 병든 것은 훈장입니다. 사실 자식들 잘 길러내고 수고했다는 훈장이고, 평생 동안 내 몸 아끼지 않고 일했다는 수고의 훈장입니다. 내 몸에 병이 있다는 것도 한편 보면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도 크고 작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처, 별것 아닌 것 때문에 나자빠져서 신앙생활 게을리하고, 사람과의 관계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믿음 생활하고 투쟁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마귀 신앙 가지면 안 됩니다. 마귀도 믿습니다. 우리가 사탄 신앙 가지지 말고 제대로 된 믿음 가지고 사셔야 합니다. 에스더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2. 중보 기도의 능력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기 앞에 나온 왕후를 본 아하수에로 왕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2절을 보세요.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무슨 생각했을까요? 보세요.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저는 이 사이에 생략된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어, 하나님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만지시어." 그렇지 않고는 이 왕이 이럴 수가 없습니다. 맨날 주색잡기에 빠져 있고, 맨날 밤마다 처녀들 불러다가 맨날 나쁜 짓 하는 이 사람이, 1달 동안 가까이하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은 왕후가 국법을 어기고 나왔는데 매우 사랑스러울 리가 있습니까? 이것이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역사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셨으므로 우리는 여기서 중보 기도의 힘을 느껴야 합니다. 중보 기도의 힘을요. 여러분, 이 중보 기도라는 것은 굉장히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나도 기도하고, 주변에서도 기도하고, 그리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나가니까 이것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에스더가 잘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중보 기도의 힘! 그래서 우리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하나님, 50명이면 되겠습니까? 좀 줄여주세요. 하나님, 10명이면 되겠습니까? 좀 줄여주세요." 이렇게 기도한 것처럼 간절하게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관계 전도합니다. 저는 관계 전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내 남편, 내 식구들 전도하려고 발버둥치고 애쓰고 힘쓰고 기도했는데, 이제는 교회가 기도합니다. 엄청난 힘이 함께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역사가 일어납니다. 됩니다.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에 열매가 나타나고, 그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고 일하시기 때문에 중보 기도하면 이루어집니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뜻을 모으고, 그래서 기도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중보 기도가 이렇게 열매가 있습니다.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에스더가 얼마나 눈물이 났을까요? "살았구나." 이 여인이 두렵고 떨리고, 혼자 유대인의 대표로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왔지만 떨립니다. 두렵습니다. 그런데 금 규를 딱 내미는데 이것을 잡았습니다.

그다음을 보세요.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역시 아하수에로입니다. 이런 책임감 없는 사람, 이런 분별력 없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지금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것입니까? 이것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그렇지요. 아하수에로는 원래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무책임하고 게으르고 감각도 없는 이런 사람을 이용해서, 사용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끝을 딱 붙잡은 것입니다. 이 말끝을요. 왕의 말 아닙니까?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하나님이 마음을 만지시니까 사람이 막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저 사람을 하옥시켜라"가 아니고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중보 기도가 너무 강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2-1. 참된 믿음의 열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했습니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러분, 히브리서 11장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믿음은 누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까? 내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저 이번에 로또 되게 해주세요. 저는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이번에 로또 100만 원어치를 살 텐데 이 중에 1등이 나오게 해주세요. 100% 믿었습니다." 그러면 실상으로 나타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나타납니까? 로또 확률이 841만 분의 1이라고 하는데, 됩니까? 그러면 이 믿음이 가짜 믿음입니까? 성경이 거짓말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서 말씀하는 이 믿음은 내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아니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러면 진짜 참 믿음은 내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캐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내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실상이 되고, 그것이 증거가 되고, 그것이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 왜 열매가 없느냐, 내 인생에 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느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만 주구장창 달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만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라를 잃고 이민족의 지배 아래 처해 있는 유대인들, 믿음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기 위해서 거기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나아간 사람들, 그 믿음 지키는 것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 내가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실상이 되고, 그것이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믿음의 증거를 얻었던 선진들 모두가 자기 욕심에 믿음의 증거를 얻은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부 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들에 동참해서 그들이 증거를 얻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나도 바라고 거기에 동참하면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원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나무라고 했습니다. 한 그루 나무의 최종 목적은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열매입니다.

누가복음 13장 6절과 7절 말씀 한번 보십시오.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이 심은 분이 누굽니까? 하나님입니다. 포도원지기는 누굽니까? 예수님입니다. "찍어 버려라. 땅만 버리겠다." 그때 포도원지기가 뭐라고 합니까? "금년에도 참아 달라고, 내가 두엄을 주리니, 만약 그렇게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소서." 금년에도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예수님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고 계십니다.

내 인생에 열매가 없는데, 하나님 앞에 내어드릴 열매가 없는데, 그런데 언젠가 이것은 도적같이 속히 옵니다. 내 코에 호흡이 끊어지는 그날, 그날은 속히 옵니다. 내가 하나님 나라 갈 날을 언제 압니까? 어떻게 압니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오늘도 건강을 주시고, 오늘도 나에게 살 날을 주셨으면 그것이 기회입니다. 열매 맺어야 합니다. 믿음의 열매 열심히 맺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찍혀서 불에 던져지지 않습니다.

2-2. 에스더의 지혜로운 요청

이제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말하는 왕에게 에스더가 어떤 요청을 합니까?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으니까 무엇이든 요청해도 됩니다. 만약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 이때가 기회로구나. 저 하만이 우리를 죽이려고 해요." 이렇게 바로 이야기할 것 같은데, 4절을 보세요.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여러분, 이것이 굉장히 지혜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잔치입니다. 그리고 왕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하만입니다. 그래서 왕이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엮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지금 말한 것,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했는데, 잔치 열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거부합니까? 그래서 여기에 알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왕이 이르되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가니라."

기대감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생각할 때는 항상 지금이 때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이야기했으니까, 왕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으니 무엇이든지 말해보라, 그래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뭐라고 "내가 진상을 한번 조사해 보마" 이러면, 하만 불러다가 "그랬냐, 안 그랬냐" 따지기 시작하면 일이 배가 산으로 갑니다. 그런데 에스더가 기도했습니다. 중보 기도 받았고 자기가 기도했습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시기입니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지혜입니다. 지혜. 놀라운 지혜를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 지혜를 에스더가 지금 사용하는 것인데, 기도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지혜.

에스더의 청을 들어주어 하만을 초대한 왕은 에스더에게 다시 소원을 묻습니다. 이것이 지금 알고 싶은 것입니다. 왕이 막 몸이 달았습니다. 도대체 왕후가, 에스더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었을까? 여기 부르지 않았는데 나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데, 어떤 청을 하려고 나왔을까? 그런데 물어보니까 잔치에 오라고만 하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빨리 듣고 싶어서 하만 불러다가 잔치 자리에 앉았습니다.

6절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곧'에 동그라미 치세요. 앞에요. 왕이 첫 번째 질문할 때 하고 지금하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곧'이 추가됐습니다. '곧'이 무슨 말입니까? 즉시 허락하겠노라. 왕이 지금 마음이 급한 것입니다.

왕이 이 성격 급한 아하수에로가 또 이야기합니다.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이제 진짜 말할 것 같은데, 아직 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한 번 더 간을 보는 것입니다. 한 번 더요. 여러분,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잘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장인들이 자기 작품을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다립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역사적 예술품 같은 것들을 보면 오랫동안 작업한 것입니다. 기계로 깎아낸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전부 다 기다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고, 영적으로 예민해지면서 음식물을 끊고 결단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습니다. 그 지혜가 곧 기다림이고, 지혜가 곧 이런 방법이었습니다.

2-3. 성령이 주시는 지혜

지혜는 언제 주어집니까? 요한복음 14장 26절 한번 봅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보혜사가 누굽니까? 성령입니다. 그가 오시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치면 그것이 지혜 아닙니까? 그 성령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생각나게 하시리라 했습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가 성령 충만해집니까? 언제 유명한 기도원에 가서 원장님께 기도받으면 성령 충만해집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과 2장을 보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전심으로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때 성령이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처럼 각 사람 위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합니다.

지금 여기 보십시오.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이 다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고, 성령이 임하니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지식하고 다른 것입니다. 지식은 학교 가서 많이 배우고, 학교 가서 학위도 받고 그러면 지식이 좀 풍성해질지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 모두의 목숨을 건 이런 상황에서 지혜가 와야 되는데, 한 번 삐끗하면 다 낭떠러지로 넘어지는 이런 상황에 지혜가 필요한데, 이 지혜는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아주 특별한 선물인데, 이것은 기도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일수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진짜 중요한 일일수록요. 에스더가 영적으로 예민했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우리는 경험으로 일을 처리하고, 기도하지 않고 누군가의 말을 듣고 일을 처리하고, 기도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과 물질을 믿고 일을 처리합니다. 그러면 다 망합니다. 안 되는 것 압니다. 해보셨습니다. 다. 그래서 다 안 됩니다. 그런데 전심으로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그 지혜가 무엇이었습니까? 두 번의 기다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심히 어려울 때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도해야 합니다. 진짜 간절하게 구하고 또 구하면 지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보니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제자들 파송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지혜로우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우리 주님이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3. 하만의 착각과 교만

이제 하만의 착각을 한번 봅시다. 자신을 두 번이나 잔치에 초대한 왕후를 본 하만의 마음이 어떨까요? 9절. "그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두 번이나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왕궁문을 나서면서, 대궐에서 퇴청하면서 자기 집에 가면서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만은 일단 돈이 있습니다. 돈이 엄청났습니다. 그 돈으로 권력을 샀습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그다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인정 욕구입니다. 돈과 권력이 있는데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으면 거기에 열받습니다. 내 돈의 권위를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내 권력의 힘을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 같은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왕후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왕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왕 앞에 왔습니다. 왕이 "너 왜 왔느냐? 소원을 말해 봐라." 두 번이나 물었는데, "하만과 함께 잔치에 오십시오." 하만은 착각하는 것입니다. 왕후가 목숨을 걸고 왕에게 와서 하는 소원이 나를 잔치에 초대하고 싶었구나. 나를! 내가 이토록 존귀한 존재구나. 내가 은 1만 달란트를 왕의 국고에 넣었더니 왕후가 목숨을 거는구나. 내가 이렇게 인정받는구나. 왕과 왕후가 나를 다 인정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얼마나 즐겁고 기쁘겠습니까?

지금까지 돈 많다고 누려보지 못한 인정 욕구, 권력이 있다고 해도 모르드개 저 하급 관료가 절도 안 하는데, 그런데 거기에서 이제 그는 마음이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다음 어떻게 됩니까?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나." 기분이 상했습니다. 막 기뻐서 나오는데 대궐문에 오니까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고 쳐다보지도 않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냥 딴청 피우고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날입니다. 지금. 그래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짓을 합니다. 10절에 "참고" 참았습니다. 너무 기뻐서요. 이 인정 욕구가 참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인정해주니까 집에 돌아와서 사람을 보내어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내 세레스를 청합니다.

"자기의 큰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왕이 자기를 들어 왕의 모든 지방관이나 신하들보다 높인 것을 다 말하고." 남들이 다 아는 것인데, 다 아는 것인데요. 또 하만이 이르되, 진짜 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왕후 에스더가 그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받은 자는 나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느니라."

얼마나 기뻤으면요!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 4절을 한번 보십시오. 사랑 이야기인데 잘 아시지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그다음 사랑은 뭐라고요?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정의 중에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랑하다, 스스로 뽐내다, 떠벌리다라는 뜻입니다. 왜 사랑이 자랑하지 않는 것일까요? 왜요? 내 자랑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나의 이 떠벌리는 내 자랑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내 자식 자랑을 막 합니다. 내 자식 자랑을 막 합니다. 너무너무 너무너무 내 자식 자랑을 하고 싶어서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에는 자식 때문에 너무너무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뽐내고 싶고 떠벌리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그러면 저 대나무 밭에 가서 하셔야 합니다. 대나무 밭 찾기 어려우면 노래방에 가서 음악 틀어놓고 혼자 자랑 실컷 하세요. 마이크 붙들고요. 동네 사람들하고 저한테 하지 마세요. 저한테 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이라 했는데 자꾸 떠벌리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나도 좀 누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다 알아줍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와서 인정해 줍니다. "아, 그랬다면서. 그때 왜 이야기하지 않았어? 축하한다"고 다 해줍니다.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칭찬받을 때까지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우리는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3-1. 교만은 패망의 선봉

잠언 16장 18절에 바로 나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누가복음 14장 7절에서 11절까지 나오는데, 이 말씀 내용이 이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어떤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왔는데 전부 상석에 앉으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구에게든지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 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때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이 말씀 다 아시지요? 지혜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면 이런 굴욕을 당합니다. 자기 스스로 높은 데 올라가 있으려고 하면 이런 수치 모욕을 당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높여줍니다. 그 진가를 아는 자가 와서 높여줍니다.

하만은 참 그런 부분에서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이 모든 일이 만족하지 아니하도다 하니." 자랑을 막 했는데, 갑자기 불현듯 오늘 퇴근하는데 모르드개가 저기 앉아서 고개 뻣뻣이 쳐들고 있는 것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기분이 확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컴플렉스입니다.

대통령 지지율 100% 되는 것 보셨습니까? 모세가 모든 사람들이 다 지지해 준 사람입니까? 다윗왕이 왕 중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마음에 합한 왕이라고 했는데, 다윗을 사랑하는 사람만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적자들이 있었습니다. 항상요.

민수기 11장 11절, 12절을 보세요. 모세가 하나님께 지금 호소하는 장면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백성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말 잘 들으면 이런 말 하겠습니까? 워낙 말을 안 들으니까 모세가 미치겠습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년 동안요.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모세가 이런 말도 합니다.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모세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너무 말을 안 들어먹으니까요.

그런데 하만은 이 한 사람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을요. 그러니까 큰 그릇이 못 되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에게 다른 소리 하는 사람도 있고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민주사회에서 누가 반대 못합니까? 반대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정당한 절차와 정당한 방법을 거쳐서 반대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라면 그것이 더 열려 있어야 되고, 믿음의 공동체라면 얼마든지 그것이 가능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만은 그것을 못 견디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사람을 찍어내려고 하다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하만이 그대로 당합니다.

3-2. 마음을 다스리는 자

잠언 16장 32절 한번 보세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마음을 못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 다스리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고 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같은 맥락인데 읽어보겠습니다.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내가 아무리 속 썩여도 내가 업고 내가 품겠다. 우리도 이런 마음 조금이라도 좀 닮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좀 품을 수 있습니다. 내치기 시작하면 결국 혼자밖에 남지 않습니다.

3-3. 하만의 어리석은 결단

이제 하만이 모르드개 때문에 자꾸 열을 받자, 아내와 친구들이 무엇을 제안합니까? 14절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제가 죽을 줄 모르고 자기 관 짜 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나옵니다.

잠언 16장 29절 한번 보십시오.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그의 아내 세레스와 그의 친구들이 꾀어서 좋지 않은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면 이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자기가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나중에 이 분들이 책임을 질까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냥 말만 던지는 것입니다. 마구 던져줍니다. 던지는데 그 미끼를 물었던 사람이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분별하셔야 합니다. 내 곁에 누가 있어야 될지, 내 곁에 어떤 사람을 두어야 될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던지는 말을 내가 혹해서 다 물면 안 됩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4. 기도의 능력

지금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유대인들이 목숨 걸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당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소수민족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에서 유대인들 나라도 없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관료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오직 기도 하나로 지금 밀어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만은 은 1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넣었던 사람입니다. 제국의 2인자입니다. 그런데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이 그저 기도로 맞붙고 있습니다. 누가 이길까요? 기도가 이깁니다. 당연히 기도가. 그래서 기도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고, 기도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 이 사실을 잘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에스더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동참하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흘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각오를 가지고 죽음의 자리로 나아갔던 에스더처럼 주여, 우리도 말씀을 알고 듣고 깨닫고 거기서 그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실천하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귀신의 믿음 가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마귀 믿음 가지지 않게 하여 주시며, 적어도 우리는 마귀 사탄보다 나은, 행동하고 실천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열매 맺는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국의 권세 있는 자들보다, 은 1만 달란트의 돈보다 더 강력한 것이 기도라고 하셨사오니 주여, 우리가 기도하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간절하게 기도하여서 악한 사탄의 진, 견고한 진을 허물어뜨리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한 역사 허락해 주시고, 성령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