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특강 6 - 모르드개와 하만 (에스더 6-7장)
에스더 7장 9-10절
"왕을 모시는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1. 역전의 하나님
오늘은 에스더 공부 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에스더 6장과 7장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에스더 6강의 제목이 '모르드개와 하만'입니다. 그런데 3강의 제목을 보면 '하만과 모르드개'로 되어 있습니다. 하만과 모르드개나 모르드개와 하만이나 같지 않습니까? 다를 바가 없는데 앞뒤 이름 배치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3강을 공부할 때는 하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만이 유대인들을 다 몰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하만의 음모가 사실 먹혀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늘 우리가 나누게 될 6강, 에스더 6장과 7장을 보면 역전이 됩니다.
그래서 모르드개가 하만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압하고 이기는 통쾌하고 재미있는 장면이 오늘 6강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에스더 이야기를 보면서 다양한 교훈을 얻게 되는데, 에스더 이야기는 역전의 이야기입니다.
1-1. 두 잔치의 대조
잔치 모티브가 앞에 여러 개 나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하수에로가 베푼 잔치 기억나시죠? 아하수에로의 잔치는 그가 왕이 되는 잔치였습니다. 물론 그가 왕이었지만 그런 인간 왕 말고, 온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는 그 잔치였습니다. 사람이 주인 되는 잔치, 사람이 왕이 되는 그 잔치 끝이 어떻게 됐습니까? 처음에는 화려하게 시작했습니다. 백이십칠 도의 지방관과 관리들을 다 모아서 화려하게, 아주 열광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백팔십 일 동안 했습니다. 마지막이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이 엉망진창입니다. 왕후를 폐위시키지를 않나, 자기네들끼리 술에 취해서 엉망진창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벌이는 잔치, 사람이 주인 되는 자리는 항상 끝이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막 대단한 것처럼 시작을 했는데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자기들끼리 분열하고 싸우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다 온데간데없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잔치의 원형, 요한복음 2장에 보면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는 어떻습니까? 갈수록 좋아지잖아요. 갈수록. 연회장이 말했습니다. "너희는 이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두었도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다는 말입니다.
1-2. 순종이 가져오는 역전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처음보다 나중이 좋은 인생입니다. 처음에는 별볼일 없고, 처음에는 하만 같은 사람에게 매일같이 눌리고 매일 힘겨워하고 어려움을 겪는데, 그런데 끝이 좋은 인생, 나중에 좋은 인생, 항상 이기고 승리하는 인생, 그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승리의 인생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가방 들고 교회만 다니면 되느냐,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면 끝이 좋은 인생이 가능한가, 마지막에 역전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질 수 있는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의 핵심은 순종에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하인들을 불러놓고 말하지 않습니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래서 내 인생이라는 큰 잔치판에서 우리가 주님 말씀에 순종만 하면 결국 그 순종의 끝은 좋게 되어 있습니다.
그 순종의 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단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이걸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이걸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서 일하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에게 열매를 주신다는 사실이 오늘 이 본문에서도 우리에게 증거가 되어서 나타납니다.
2.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만이 모르드개 살해 음모를 꾸미는 날 밤, 왕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하만이 자기 아내와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자기 자랑과 업적을 막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누가 걸립니까? 모르드개가 기분 나쁜 거예요. 이놈이 항상 대궐 문 앞에 또아리 틀고 앉아서 절을 안 하니까, 지나가도 그냥 본 척 만 척하니까 그것 때문에 불쾌하고 기분 나쁘다고 하니까 아내와 친구들이 말합니다.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만들어서 거기에 다십시오. 왕에게 허락을 받아 오십시오." 그래서 하만과 그의 아내와 친구들은 음모를 꾸몄습니다. 일을 열심히 합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고, 자기가 높아지려는 음모를 계속 꾸밉니다.
그럼 그때 하나님은 뭘 하고 계셨을까요? 사탄이 일하는 건 보이지 않습니까? 세상에 악의 권세가 부지런하게 일하는 건 다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눈에 보이십니까?
2-1. 왕의 잠을 빼앗으시다
일자를 한번 보십시오.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왜 갑자기 잠이 안 오는 거예요? 이 사람이 매일 밤마다 주색에 빠져 있었는데, 그날은 옆에 여자도 없고 술도 없고 하필 그날 잠이 안 옵니다.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사탄이 열심히 일합니다. 하만도 일하고 그의 친구들과 그의 아내가 모여서 작당을 하고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모르드개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에스더에게도 보이지 않고 유대인들, 지금 다 금식 기도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데, 그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식으로 일하실지 보이지를 않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 왕을 잠을 재우지를 않습니다.
잠 안 올 때 특효약이 뭡니까? 설교 듣는 거죠. 잠 안 올 때 책을 읽든지 설교를 듣든지 하면 잠 잘 오잖아요, 조용한 목소리 들으면. 그런데 그 당시는 들을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이 왕이 평소에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자기가 책을 읽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역사책이 얼마나 재미없습니까?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사람 시켜서 읽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거 읽으면 잠이 좀 들려나 하고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자기랑 관련 있는 일이 그 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겁니다.
2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때 일이 기억이 나고 소름이 돋고, 그리고 열이 확 올라오면서 잠이 더 안 오는 거예요. 그때 왕이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처리하긴 했는데, 목 매달아 죽이기는 했는데, 이 뒤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하시고 있는 겁니다.
2-2. 결코 쉬지 않으시는 분
여러분, 하나님은 쉬고 계실까요? 일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절대로 쉬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 나 오늘 일주일간 휴가 좀 갔다 올게" 하면 해도 안 뜨고, 달도 안 뜨고, 바람도 안 불고, 다 죽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동식물들이, 해를 한 삼 일만 안 띄워 보십시오.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지구의 공전과 자전이 멈추고 자연, 만물, 모든 것이 다 멈추면 난리가 나겠죠.
이사야 62장 1-3절을 한번 보십시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하나님이 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걸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그건 우리의 믿음이에요.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실 것 아닙니까? 하나님 당신의 일을,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2-3.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뭡니까? 기도밖에 더 있습니까? 힘이 있습니까? 권력이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누구한테 붙잡고 로비할 돈이 있습니까? 권력도 없지 않습니까? 모르드개와 에스더와 유대인들,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이 형편과 상황과 처지에서 내가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는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시기 때문에 내 하나님 손에 왕관이 되게 하실 때까지 하나님은 결단코 쉬는 법이 없습니다.
내 인생 엉망진창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쉬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린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가족들 중에 절대로 예수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저 인간이 교회 오면, 내가 전도는 하는데, "교회 갑시다, 교회 갑시다, 신앙생활합시다" 하는데 절대로 안 올 것 같은데, 갑자기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따라 나서서 교회 온다고 하더니, 사람이 변해도 저렇게 변할 수가 없어요.
자, 그러면 그건 갑자기 그 사람이 미친 겁니까? 아니면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게 하나님이 일하신 거예요. 그동안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우리는 몰랐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심하다 때마다 그분의 마음을 만지시고 때로는 감동하게 하시며 일하신 겁니다. 그게 하나님 하신 일이에요. 우리는 뭐 했습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 기도밖에 됐습니까? 교회 와서 "아버지여, 주여" 하고 울고 기도하고, 그거예요. 그래서 이게 믿음이 필요한데,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위한 수고를 쉬지 않으십니다. 내 자녀를 위한 수고도 하나님은 쉬는 법이 없습니다.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모든 것 다 알고 계시는데, 그래서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걸 믿지 않거나 포기하면 곤란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6-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삼십팔 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고쳐주셨거든요. 그게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니까, 1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하나님은 안식일이라고 쉬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계속 병든 자, 상한 자를 보시고 하나님은 눈동자같이 보시고 이제까지 일하시니까, 우리 예수님께서도 우리 주님도 불쌍한 자, 병든 자를 그냥 보고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제까지 일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주님이 우리 인생에 일하고 계시고 지금 오늘 우리 읽은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왕을 통해서 일하고 계시잖아요. 아하수에로를 재우지 않고 역대 일기 읽게 하고 그거 귀에 들리게 하며 역사가 막 나타나는 겁니다.
3. 하나님의 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잊고 있었던 왕이 하만에게 무엇을 물어봅니까? 3절,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큰일 난 거예요. 왜 큰일났느냐? 역대로 왕들이 이런 일들을 행한 사람에게 큰 상을 줘야 앞으로도 이런,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으면 사람들이 고발을 해줄 것 아닙니까? 상을 안 내렸어요. 상을. 왕이 정신이 없어서 그냥 지나간 거예요.
그런데 왕이 정신이 없어서 지나간 겁니까? 하나님이 잊어버리게 한 겁니까? 하나님이 잊어버리게 한 겁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를 맞추려고요. 그때 상 줬으면 쌀 한 열 가마 줬겠죠. 큰 집 하나 줬겠죠. 모르드개 관직 하나 줬겠죠. 금덩이, 은덩이 좀 줬겠죠. 그 외에 뭐 줄 수 있는 게 있습니까? 돈으로 보상하는 것밖에. 하나님이 잊어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이 지금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3-1. 마침 그때에
4절,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마침' 동그라미 치세요. 우리가 성경에서 '마침' 이런 단어를 만나면 반갑죠. 룻기를 할 때도 봤잖아요. "마침 우연히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습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 자기 밭에 와서 룻을 만났습니다." 이게 진짜 우연입니까? 정말 어쩌다가 일어난 확률 낮은 사건이 어쩌다가 일어난 겁니까? 우리 눈에는 우연으로 보이고 마침 그렇게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걸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왕이 지금 밖에 누가 있느냐 찾는데 마침 그때 누가 와 있었다고요? 하만이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를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하만 정도 되는 제국의 2인자가 모르드개를 자기 손으로 못 죽입니까? 이것까지 왕한테 허락을 받아야 됩니까? 이걸 왕에게 허락받으러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그냥 죽여버리면 돼요. 가둬서 누구 시키든지 그냥 죽이면 돼요. 그런데 오십 규빗 되는 나무에 달아야 되잖아요. 지금 약 22미터에서 25미터 정도 되는 높이예요. 굉장히 높은 높이죠. 그 나무에 단다는 것은 백성들 앞에서 그 사람을 처형한다는 겁니다. 이런 형벌을 내리는 건 왕만이 내릴 수 있습니다. 역적이나 기타 등등의 왕이 정한 법을 어긴 사람. 그래서 이거 왕에게 허락받으려고 나온 거예요.
지금 마침 그때, 지금 왕은 모르드개의 업적을 읽고 있었고, 그걸 가지고 측근 신하들과 상의하고 있었고, 그때 하만이 모르드개를 자기가 만든 높이 오십 규빗 나무에 매달려고 이 앞에 와 있었던 겁니다.
3-2. 자기중심적 착각
6절을 한번 보세요. 하만이 들어옵니다. 왕이 묻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이렇게 물었어요. 애매한 질문이죠? 그렇죠? 애매한 질문이에요 사실. 그런데 신하들은 왕이 던지는 질문을 들으면 생각을 좀 해야 되잖아요. 생각을 다각도로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하만이 이렇게 믿어버립니다.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오 하고"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 이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거든요.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에요. 이런 착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제국의 2인자고, 은 일만 달란트, 한 해 예산의 삼분의 이나 되는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지금 넣어놨습니다. 그리고 왕후가 목숨 걸고 나와서 자기를 두 번이나 왕과 독대하는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안하무인이에요. 철저하게 자기중심이에요. 왕이 지금 이 질문을 하는 건 완전히 자기를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16장 17-18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했어요.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하만 같은 사람이 이런 사람이에요. 자기들의 배만 섬기는 자. 배 아시죠? 배. 자기 위장.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성경이 말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바울의 언어, 그리고 신약의 언어는 '배만 위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배만 위하는 자들. 왜요? 음식점에 가서 자기 좋은 것만 시키는 사람 있죠? 부부가 같이 오랜만에 외식하러 가놓고, "야, 나는 짜장면. 너도 그냥 짜장면 먹어라." 삼십 년 전 짜장면이에요. 나는 지금 탕수육 먹고 싶은데, 이렇게 어디 가서 자기 배만 위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 얄밉잖아요. 밉잖아요. 그냥 이유 없이 밉고 그렇잖아요. 좀 물어보면 되잖아요 옆사람한테. 뭐 먹고 싶냐고. 항상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배만 위하는 사람. 지금 하만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은 거치게 하는 사람이고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에요. 왜? 항상 내가 보는 게 전부니까, 항상 자기중심적이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은 사고도 많이 치고 문제를 많이 일으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게 다 옳아요. 상대방 입장을 생각할 줄 몰라요. 공동체를 잘 못 봐요. 입체적으로 못 봐요.
3-3. 믿음의 성장
그런데 문제는 이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갑니다. 지금 이런 상황처럼. 동네 축구를 해보면, 군대 축구나 동네 축구를 보면 공만 쫓아다니잖아요. 공만. 그냥 공만 따라다녀요. 공 있는 데 막 몰려다녀요. 거의 동물처럼 공 좋아해서 공 던져주면 이리로 우르르, 저리로 우르르, 막 전술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이제 좀 감독이 "너는 이 자리를 지켜라, 너는 이 자리를 지켜라" 하면 그다음에 좀 수준이 높아지면 공만 보는 게 아니고 사람이 보인대요. "아, 이 선수한테 패스해야 되겠구나. 이 선수가 우리 편이구나. 저 선수는 다른 편이구나." 이게 보인대요. 수준이 좀 높아지면.
그다음에 조금 더 수준이 높아지면 진짜 손흥민 같은 선수가 되면 공간이 보인답니다. 공간이. 빈 공간인데 그쪽으로 공을 차서 우리 선수가 가서 이 공을 잡아서 넣을 거란 계산도 서고요. 믿음의 성장도 이와 같아야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 배만. 자기 기분 나쁘면 다 나쁜 거예요. 다 안 좋은 거고, 이 공동체는 나쁜 공동체고 이 교회는 나쁜 교회예요. 그냥 내가 기분 나쁘면.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면 다른 사람이 좀 보입니다. "아, 이 사람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사람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이렇게 잘 참고 견디지?" 그다음에는 공동체가 보이는 거예요. 공동체가. 교회라는 전체 공동체가. 그게 믿음 성장이에요.
그런데 하만 같은 사람 보세요. 자기만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 왕이 지금 묻는 왕의 진심을 따져보지 않는 겁니다. 입체적으로. 그러면 하만이 만약 이 가능성을 열어놨더라면, "지금 어떤 이유로 이걸 묻습니까?" 하고 물어볼 수 있잖아요. 서로 대화가. 묻지도 않아요. 따지지도 않아요. 무조건 이거는 나를 위한 거다 100% 믿어버립니다.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생기죠.
3-4. 요셉의 교훈
여러분, 이런 상황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시면, 이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걸 느껴야 됩니다. 하나님의 때가 언제입니까? 과거에 모르드개가 빅다나와 데레스의 왕 암살 음모를 발견하고 고발했을 때, 그때 즉각 상 받는 건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그때 서운했을 수 있습니다. 왜 내가 이렇게 큰 공을 세웠는데 나를 세워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건 내 때인 거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는 바로 지금이었습니다. 바로 지금. 그래서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가장 정확하고 가장 특별하고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때에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요셉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창세기 40장 23절,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나 나가면 너 기억하고 너 억울한 건 내가 풀어줄게. 너 감옥에서 꺼내줄게" 그러고 나갔어요. 술 맡은 관원장이 나가자마자 까먹었어요.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만약에 술 맡은 관원장이 이거 기억하고 있었다면, 나가서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그의 기억력을 잊어버리게 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꺼내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감옥에서 건져줬을 겁니다. 그럼 요셉 어디로 가야 됩니까? 둘 중 하나예요. 다른 집에 종으로 가든지, 아니면 자기 집 돌아가든지. 다시 야곱과 형제들이 사는 자기 집으로 가든지.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2년 동안이나 잊어버리게 그냥 던져두신 거예요. 감옥에. 41장 1절 보면,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만 2년 뒤에 바로가 꿈을 꿔야 되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꿈꿀 때까지 2년 동안 둔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 턱이 없잖아요. 이 2년을, 바로가 꿈꿀 때까지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그냥 던져두고 계신다는 걸 알 턱이 있나요? 우리가?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 지금도 하나님은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 이 한 가지는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됩니다. 그거 믿고 있으면 감옥에서도, 또 노예로 살아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걸 해낸 거예요. 하나님의 때는 위대한 때입니다. 2년 동안 하나님이 묵혀두고 기다리게 하고, 그리고 바로가 꿈꾸고 그 꿈 해몽하고 일사천리로 그때부터는 이집트 총리가 돼버리지 않습니까? 그게 하나님의 때인 겁니다.
4. 하만의 역심이 드러나다
왕의 질문 의도를 몰랐던 하만이 어떻게 대답합니까? 보십시오. 7절 읽어보면 거의 미친 사람 같아요. 잘 보셔야 돼요.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절이 희한해요.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자, 왕이 입는 옷을 입혔어요. 그렇죠? 왕께서 타시는 말을 태웠어요.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을 씌웠어요. 그럼 이게 뭡니까? 왕이죠. 뭐, 반역 아닙니까 이거? 이게 반역의 음모 아니에요 이게? 그러면 하만의 마음속에 뭐가 있었다는 말이에요? 역심이 있었다는 거죠. 역심이. 궁예 만났으면 그 자리에서 죽는 건데. 이거 관심법을 하시는 궁예를 만났으면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가는 건데. 이게 욕심 아니에요 이게. 선이 없어요 선이. 이 인간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무리 아하수에로가 정신없는 왕이라 하더라도 이 사람이 자기 아버지 밑에서 왕자로서 왕의 수업을 받은 사람이에요. 제국의 왕이에요. 그래도 이 사람이 왕 아닙니까? 거대한 제국을 이끌고 있는 왕 아닙니까? 그런데 이 대화하는 중에 딱 느낀 거예요. 이 인간이 역심을 품고 있구나 느낀 거예요.
4-1. 하만에게 내리는 벌
자, 그리고 자기를 지칭한다는 걸 왕이 안 거죠. 보십시오.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니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왕이 존귀하게 한다 그러면 정상적이라면 하만이 물어야 돼요. "이분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가난합니까? 가난하면 땅을 내리십시오. 집을 주십시오. 이분이 땅과 집이 있습니까? 그러면 벼슬을 주십시오."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걸 줘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이건 누구에게 필요한 거냐? 하만에게 필요한 거거든요. 하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습니다. 한 가지 없는 게 뭡니까? 왕관만 없는 거예요. 왕 아래 2인자 아닙니까? 왕이 딱 안 겁니다. 아, 지금 하만은 이런 마음을 품고 있구나. 게다가 지금 왕이 잠이 안 와서 사람 시켜서 듣고 온 게 뭡니까? 역모를 했다가 죽은 두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듣고 왔잖아요. 지금 왕은 지금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겁니다. 이건 누가 계획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예요. 이 놀라운 일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스스로 착각도 이런 착각이 벌어졌습니다.
보세요. 10절,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니라 하니라"
여러분, 이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게 왕이 모르드개에게 주시는 상입니까? 아니면 하만에게 내리는 벌입니까? 그렇죠? 하만에게 내리는 벌이에요. 이걸 우리가 잘 보셔야 돼요. 이미 하만에게 왕의 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건 하만에게 내리는 벌입니다.
그래서 왕의 뉘앙스를 보십시오. "너는 네 말대로" 그랬잖아요. 너 한 말 그대로 해라. 속히. "무릇 내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아하수에로가 갑자기 지혜가 생겼어요. 이 사람이 왜 지혜가 생겼느냐? 이 멍청하고 바보 같고 분별력 없는 사람이,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시고 일을 하니까 이 사람 지혜가 아니에요. 이 사람은 이런 지혜로울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시니까, 하나님 일에 쓰임 받으니까 이 사람이 지혜가 생긴 거예요.
지혜로워 보이죠? 우리가 볼 때도 이건 하만을 벌 주는 겁니다.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가서 왕복을 입히고 왕의 왕관을 씌우고 왕이 타는 말을 태워서 성을 다 돌아다니면서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렇게 한다"고 하는 걸,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모르드개는 아마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 사람이 이제 나를 죽이기 전에 한번 이렇게 말이나 태워주는가 보다" 그런 생각이나 했지 않겠어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 테고. 지금 이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4-2. 유다 사람 모르드개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왕의 말에 복선이 하나 있습니다. 뭐가 좀 이상하세요? 10절. 제가 다시 읽을게요. 찾아보세요.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어떤 사람이요? 유다 사람. 이게 중요해요. 왕이 모르드개의 출신을 알고 있습니다.
유다 사람 모르드개라는 사실을. 왕이 궁중 역대 일기를 들었잖아요. 지금 "그럼 이 사람 누구냐? 도대체 얘는 누구냐?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내가 이 사람에게 상도 내리지 않았고, 너희는 이 사람의 상 받지 않은 걸 나한테 고하지도 않았느냐?" 그리고 왕의 측근들에게 이미 모르드개에 대해서 조사가 싹 끝난 상태예요. 그러면 지금 왕은 알고 있잖아요. 유대인들이 11개월 후에 다 죽임당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일을 누가 진행했다? 하만이 진행했다는 사실도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이미.
이미 이런 상태에서 왕이 하만을 시켜서 모르드개를 말 태워서 성을 돌라고 한 것은 이미 왕의 마음속에 하만에 대해서 저만큼 간 겁니다. 저만큼. 사람이 선을 지키지 않으면 이런 일이 벌어져요.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배만 위하는 사람들, 결국은 자기 뒤통수를 자기 스스로 친 겁니다.
4-3. 마지막 기회
또 한 가지 우리가 여기서 읽어내야 되는 것은 아하수에로의 말을 통해서, 그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닐 거예요. 저는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그 순간 그를 사용하셔서 '유다 사람 모르드개'라고 말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하만이 들었어야 돼요. 귀담아 들었어야 됩니다. 그러면 귀담아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임금이, 왕이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이라는 말을 한 거예요. 그럼 하만은 "왕이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있구나. 그런데 나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는구나." 그럼 거기서 왕의 옷자락을 붙잡고 회개했어야 됩니다. 빨리 돌이켰어야 돼요.
빨리. 지금 이 자리가, 왕의 입에서 나온 '유다 사람 모르드개'라는 이 말이 하나님께서 하만에게 주시는 마지막 회개할 기회입니다. 더 이상 이제 기회가 없어요. 더 이상. 하만의 귀에 이 말이 들렸을까요? 안 들렸을까요? 안 들립니다. 절대 안 들립니다. 왜 안 들립니까? 왕이 한 말 보세요.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과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모르드개에게 명하여 행하되" 이렇게 얘기하니까 유다 사람이라고 했는지 이집트 사람이라고 했는지 이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거예요. 자기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니까 들리지를 않는 겁니다.
4-4. 말씀을 듣는 자세
우리가 다 같이 이 자리에 앉아 있잖아요. 다 같이 앉아 있고 다 같이 신앙생활 합니다. 다 같은 교회 다니면서 주일날 전해지는 말씀도 다 같이 들어요. 그런데 어떤 이의 귀에는 이게 내 가슴과 심령을 찌르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찔림 있는 말씀으로 들리고, 어떤 이에게는 하나도 안 들린다고요, 하나도.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누구에게는 이게 내 영혼을 살리는 진리와 은혜의 말씀으로 들리는데, 나에게는 그게 하나도 들리지 않아요. 왜 그런 걸까요?
자기 배만 위해서 그래요. 자기 배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내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거예요. 성경 읽을 때도 내가 읽고 싶은 말씀만 내 눈에 들어오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말씀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그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그걸 전인적으로 통전적으로 다 들어야 됩니다.
그 안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도 있고, 기회를 주시는 말씀도 있고, 우리를 찌르는 말씀도 있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말씀도 있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열심히 받아먹어야 됩니다. 그래야 기회를 붙잡습니다. 기회를. 하만에게 준 마지막 기회라니까요. 이게 '유다 사람 모르드개'라는 이 말, 이걸 못 받아내잖아요. 하만이 못 받아먹잖아요. 하기 짝이 없는 인생입니다.
4-5. 다윗의 신뢰
시편 13편 1-6절을 제가 적어뒀는데요. 다윗의 시편이에요.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리이까"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어느 때까지. 두 자리에 자그마치 네 번이나. 다윗이 왜 이렇게 하소연하는 겁니까? 사울이 나를 쫓으려고 죽이려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내가 해야 됩니까? 언제까지 피해 다녀야 됩니까? 이게 보통 사람들의 하소연이에요.
"하나님, 내 인생의 고난은 언제 끝나는 겁니까?" 지금 모르드개와 유대인들, 에스더, "하나님 언제 이거 회복시켜 주십니까? 우리가 죽을 날은 11개월 후에 날 받아놨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게 지속됩니까?" 이게 믿음의 사람들의 하소연입니다. 그런데요. 3절에 보니까 다윗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절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두려움도 생겨요. 계속 때가 속히 이르지 않으면 회복이 되지 않으면 계속 두려워요.
그런데 다윗은 5절 보십시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이걸 붙잡은 거예요.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소연하면서도 두려움 가운데도 딱 한 가지 붙잡은 게 있는데, 그게 하나님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니 일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니 언젠가 이 고통에서 나를 건져주실 것이다. 이걸 다윗이 붙잡은 거예요. 여러분 이 믿음 갖고 계셔야 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니면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5. 하만의 몰락
이 사건 이후에 하만의 심경 변화를 보십시오.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옵니다. 모르드개는 "참 별일도 다 있네" 이러고 돌아왔을 거예요. "참 희한하다, 이런 일도 다 있네" 하고 왔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그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참 야박하죠. 그의 아내 세레스와 그 친구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지난 시간에 5장 14절에서도, 5장 14절을 한번 보십시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옆에서 펌프질해서, 옆에서 바람잡아서, 옆에서 별 생각 없는 하만에게 "당신이 최고입니다. 나무를 세우십시오. 거기에 모르드개를 다십시오" 하고 막 부추긴 사람들이 그의 아내와 친구들 아닙니까?
그런데 하루 만에, 딱 하루가 지나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옆에 책임지지 못할 인간들이에요.
5-1. 기도의 동역자
그런데 모르드개 옆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기도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에스더 곁에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에스더는 왕궁에 있고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궁 밖에 있잖아요. 그분들이 피눈물 흘리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가 더 강할까요? 바로 그 곁에서 하루아침에 말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말이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사람들하고, 같이 금식하고 기도하고 목숨 걸고 기도의 동역을 해주는 사람들하고. 내 곁에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들 곁에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진짜 나를 위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내 영혼을 사랑하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어떤 사람들이냐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내 곁에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신뢰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기도를 부탁하면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의 동역자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두셔야 돼요. 그런 분들이 내 곁에 많이 있어야 돼요. "야, 나 오늘 너무 심심한데 밥 먹자." 좋죠. 그런 친구도. 그런데 그보다 더 귀하고 더 좋은 동역자 친구들은 눈물로 같이 금식하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돼요. 그래야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야 우리 영혼이 그들을 통해서 새로워지고 힘을 얻고 함께 갈 수 있어요. 이런 사람들 천 명, 만 명 있으면 어디서 쓰겠습니까? 아무 소용없어요. 기도의 용사들이 곁에 많이 있어야 됩니다.
5-2. 에스더의 지혜
자, 그 다음 페이지 보시면,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을 초대한 두 번째 잔치에서 에스더는 어떤 청을 했습니까? 이제 두 번째 잔치입니다. 잔치가 두 번째 열렸습니다. 하만이 지금 잔치에 갈 기분입니까? 안 가면 또 어떡해요? 왕후가 불렀는데 가야죠. "왕이 하만과 함께 또 왕후 에스더의 잔치에 가니라" 하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일단 두렵죠. 복잡하죠. 그 다음에 기대도 있었을 겁니다. 어떤 기대? 회복을 향한 기대. 이제 왕후를 지렛대 삼아서 내가 다시 회복되리라. 이 회복을 향한 기대가 있었을 겁니다.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곧'이라는 말이 또 나오죠. 이제 에스더 앞에 뭐가 붙습니까? '왕후'라는 공식 명칭이 붙습니다. 왕후라는. 이제 왕이 이렇게 묻는 건 정식으로 묻는 거예요. 그래서 에스더는 이 말에는 대답을 해야 됩니다. '왕후 에스더'라고 물었으니까.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왕후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아리송한 말을 했어요.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두 번째 요구,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즉 나도 살려주시고 내 민족도 살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어서 말하죠. 4절,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팔려서'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게 에스더의 지혜예요. "왕이요, 조악한 놈에게 속아서 도장을 내줬잖아요." 이렇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요. 나와 내 민족이 팔렸다, 그러면 판 사람이 있을 거고 산 사람 있을 거 아닙니까? 누가 팔아먹었어요? 아하수에로가 팔아먹었죠. 왕이. 얼마에? 은 일만 달란트에. 누가 샀습니까? 하만이 샀잖아요.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당신도 여기에 책임이 있다고. 당신이 정치를 똑바로 못해서 저 인간에게 속아서, 당신한테 책임이 있다는 말이에요.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그런데 말을 참 예쁘게 하죠. 그리고 지혜롭게 하고. 말을 예쁘게 하고 지혜롭게 하는 건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입니다. 내 입에 말이 예쁘지 않고 지혜롭지 않다, 그러면 말을 안 하는 게 낫습니다. 예, 그냥 "저는 지금부터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게 훨씬 더 지혜롭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하나님, 예쁜 말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지혜로운 말 하게 해달라고. 그래야 남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나도 좋습니다.
5-3. 왕의 분노
자, 에스더의 청을 들은 왕의 반응.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말하여 이르되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에 있느냐 하니" 알면서 이렇게 소리 지르는 거예요. 다 알면서. 6절, "에스더가 이르되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왕에게 화살을 돌리지 않죠. 왜냐하면 왕은 하만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자니까. "하니 하만이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하거늘" 이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겁니다. 하만이. 에스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7절 보십시오. "왕이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가니라" 왕은 왜 잔치 자리를 떠나서 후원으로 가버렸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수습이 안 되잖아요. 지금 자기가 자기 인장 반지 빼줬잖아요. 그런데 지금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리고 자기 목숨을 살려준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하는 하만, 또 자기 왕후가, 에스더가 유대인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거 어떻게 수습합니까? 하만을 무슨 명분으로 끌어내려요? 무슨 명분으로? 무슨 명분으로 자기 인장을 친 조서를 무효화시킵니까? 답이 없잖아요. 지금 왕의 입장에서. 그래서 일단은 숨 고르기 하는 거예요. 나가버린 거예요. 그냥. 화가 나서 나가는 것도 맞지만, 생각하는 거죠. "야, 큰일 났구나. 이거 상황이 복잡해졌구나."
그런데 하나님 쉬지 않는다고 했죠.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기가 막히게 일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만이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하니 이는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앎이더라" 참 허무한 거예요. 왕후 에스더에게 생명을 구해서 될 일입니까? 하나님께 구해야지. 에스더 뒤에 계신 하나님께, 모르드개 뒤에 계신 하나님께 구해야지, 사람 붙들고 구하는 거예요. 이게 미련한 일입니다.
5-4. 하나님의 명분
자, 8절 보십시오.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오니 하만이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렸거늘" 자, 에스더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왕후의 자리 걸상에 앉아 있고요. 하만이 지금 그 앞에 머리를 숙이다가 에스더가 반응을 안 하니까 점점 가까이 와서 왕후의 무릎을 잡고 거기에 고개를 파묻고 엎드려 있는 거예요. 이 모습을 왕이 봤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왕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왕이 이르되 저가 왕궁 내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니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매 무리가 하만의 얼굴을 싸더라" 얼굴을 가리고 끌고 나가버린 겁니다.
이게 왕이 하만을 처리할 명분이었습니다. 후원으로 나가버렸죠. 그리고 나서 하만이 왕후에게 살려달라고 구하죠. 사람 다리 붙잡고 그 다리에 얼굴 파묻고 살려달라고 발 붙잡고 매달리죠. 그런데 왕이 와서 보니까 이게 하만을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입니다.
자, 마음에 역심을 품었죠. 그리고 왕후에게 이런 짓을 하려고 했다. 그러면 은 일만 달란트 돌려줘야 됩니까? 안 줘도 됩니까? 안 줘도 되잖아요. 안 줘도 되잖아요. 이제 그리고 이런 역심을 품은 놈이 꾸민 모든 일은 다 무효화시켜도 되잖아요. 하나님이 일하셨잖아요. 이렇게 하나님이 일하시면 인간이 손댈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너무 뒤탈 없이, 너무너무 깨끗하고 완벽하게 하나님이 딱 깔끔하게 처리해버립니다. 이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에요. 그러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들처럼 기도하는 거예요. 그냥.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면 이런 역사가 일어난다니까요.
5-5. 자기 함정에 빠지다
"왕을 모시는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자, 이제 막 일러바치는 거예요. 이제. "하만이 높이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이르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하만이 높아지고 싶었죠. 제일 높아졌어요. 25미터 높이에 그 성에서 제일 높은, 뷰가 제일 좋은 곳에, 최고 높은 곳에 자기 소원대로 됐다니까요. 높아지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제일 높은 곳에 올려주셨어요. 얼마나 위대하신 하나님인지. 하만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됩니다. 가장 높은 곳의 하나님이 그를 높여주셨습니다.
가장 높고 높은 곳에. "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왕은 속으로 웃겼을 거예요. 이 돈 다 내 거라고. 이제.
보십시오. 잠언 26장 27절,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잠언 말씀 하나도 틀린 거 없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시편 7편 15-16절, "그가 웅덩이를 파 만들며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악한 사람은요,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자기가 판 웅덩이에 자기 스스로 빠진다고 했습니다.
5-6. 기도의 열매
그런데 이건 또 반대 말도 있어요. 성경에 보면 시편 35편 11-13절 한번 보십시오. "불의한 증인들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질문하며" 다윗의 시편이거든요. 불의한 증인들이 다윗을 막 모함하는 장면입니다.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이다" 다윗은 그 사람에게 선을 막 베풀었는데 이 사람들이 거짓 증인을 서고 그리고 불의한 일로 다윗의 영혼을 외롭게 합니다.
그런데 13절,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기도해 줬다는 말이에요. 그 사람들이 아플 때.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여러분, 기도가 딴 데 가지 않아요. 절대. 내 원수를 위해서 다윗이 금식 기도했는데 그 기도가 돌고 돌아서 내 품으로 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내가 저 인간 위해서 기도하기 싫잖아요." 그런데 기도하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셔서 그 사람이 고쳐지면 그건 너무너무 좋은 일이고, 그 사람이 내 기도를 받지 않고 고치지 않고 계속 자기 악한 길로 계속 가버리면 그 기도가 돌아서 다시 내 품으로 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는 절대로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기도하면 좋은 기도. 내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내 품으로 돌아와요. 그가 안 받으면, 그가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면, 그 사람이 받을 인격이 되지 않고 그 사람이 오히려 악을 행하면 그건 나에게 돌아온다고요. 다윗이 그걸 경험하고 드린 시편 아닙니까?
그런데 악도, 내가 판 웅덩이에 내가 빠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정확하신 분입니다. 오늘 모르드개와 하만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역전을 우리에게 선물하시는 분이시다. 그 역전을 선물하시는 과정은 우리의 순종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일하시니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면 된다. 이걸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저 기도하고 주의 일에 힘쓰고 내 힘이 닿는 데까지 주를 위해서 성실하게 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시고 내 인생을 위하여 하나님이 모든 일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고 깨닫습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아서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소연하고 울었던 다윗처럼 우리도 매번 그렇게 울고 하소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사랑을 의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오니 주여,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우리가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를 쉬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역사가 내 인생을 역전으로 이끌어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