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강 - 구원이 임하다 / 전체녹취

에스더 7강 - 구원이 임하다 (에스더 8장)

에스더 8장 7-8절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고 그를 나무에 달았느니라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음이니라"

오늘은 에스더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다음 주가 되면 에스더 공부가 끝납니다. 룻기를 다섯 번에 걸쳐서 공부했고, 이제 에스더를 여덟 번에 걸쳐 공부하면 구약에 나오는 아주 훌륭한 두 분의 여성에 대해서 상세하게 공부를 다 마치게 됩니다. 물론 배웠다고 다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또 되새기고 곱씹어보면서 우리도 룻처럼, 에스더처럼 믿음의 길을 하나님과 함께 아름답게 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어느 특별한 능력이 있었던 분이 아니고, 그저 말씀대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그분 앞에서 살아가신 분들입니다. 원래부터 능력이 출중하고 특별해서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니니까,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삶을 묵상해 보고 되새김질해 보면, 나는 오늘 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답이 나올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인물이 나오는 성경을 보면 주변 인물들이 있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를 보면 모르드개도 있고 아하수에로도 있고 하만도 있는데, 우리가 지난 시간에 하만의 아주 통쾌한 마지막을 보았습니다.

1. 하만이 주는 교훈

1-1. 불순종의 결과

하만이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우선 혈통적으로는 아말렉 사람입니다. 하만이라는 아말렉 사람이 살아남아서 이 후손들에게까지 와서 유대인들을 멸절시키기 직전까지 가게 된 까닭은, 거슬러 올라가 보니까 사울의 불순종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멸 명령을 하셨는데, 그 명령을 어기고 자기 좋은 것은 그냥 살려두었습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항상 뒤탈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은 순종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지금은 내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취사선택하면 뒤에 가면 항상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있는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나름대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가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을 합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좀 어리석고 꽉 막히고 미련해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 보실 때는 그 사람이 나중에 가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경험합니다.

1-2. 돈의 한계

그리고 하만이 어떤 인물입니까?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물입니다. 하만 하면 돈, 돈이 정말 많아서 은 일만 달란트를 현금으로 왕의 금고에 바로 넣을 수 있는 현금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왜 그렇게 돈이 많아졌는지를 성경은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이 사람은 돈이 굉장히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끝에 보십시오. 그 돈이 자기를 구원했습니까? 하만을 통해서 묵상해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맨날 돈, 돈, 돈 합니다. 돈만 있으면 살 것 같고,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고, 돈만 있으면 숨 쉴 것 같습니다. 돈, 돈, 돈 하는데, 그 돈의 한계가 구원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돈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에 교회학교에서 맨날 부르던 찬양이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하만을 보면 그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1-3. 아량 없는 인간

또 하만이 어떤 인물입니까? 아량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량이 요만큼도 없습니다. 속이 좁아도 너무 좁은 인간입니다. 자기 위에는 아하수에로 왕 한 사람만 있는데, 그것도 왕의 인장 반지를 받았습니다. 제국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만한 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모르드개라는 그 한 사람, 그 앞에 무릎 꿇지도 않는 그 한 사람이 처음에는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누가 알려주기 전에는 그만큼 저 새카맣게 저 밑바닥에 있는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끝까지 죽이려고 하니까 결국 마지막에 어떻게 됩니까? 그 화살이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오십 규빗 높이 되는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모르드개를 달려고 했는데, 자기가 거기에 달리고 맙니다. 아량이 없으면 그렇게 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신앙생활을 이렇게 해 가다 보면 좀 넓어져야 합니다. 넓어진다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오래 했는데 너무 완고한 사람이 많습니다. 완고해지고 속이 좁아지고 더 완고해지면, 그것은 신앙생활 잘못한 것입니다.

상대를 좀 이해하고, 공동체도 이해하고, 저 사람의 처지와 형편도 헤아릴 줄 알아야 그것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완고하고 고집 세고 속 좁으면, 자기가 나중에 그것 다 당합니다.

1-4. 사람을 의지한 결과

그리고 이 하만이라는 인간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결국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마지막에 에스더 치마자락을 붙잡다가 죽습니다. "네가 왕궁에서 왕비를 강간하려 하느냐!" 이 말이 왕의 입에서 떨어지자마자 얼굴을 감싸버렸습니다. 사람 의지하는 것을 단적으로 성경은 그렇게 보여준 것입니다. 돈으로도 못 가고, 사람을 의지해도 천국 못 갑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결국 하만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 느끼고 배우고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하만 하면 나무에 달린 사람, 모르드개 하면 그냥 그런 사람, 에스더 하면 이런 사람, 이렇게 단편적으로 아이들 동화 이야기처럼 보지 말고, 이 속에 있는 이 사람과 나를 연결시키고, 교훈을 찾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2. 왕의 선물과 청지기 의식

2-1. 에스더에게 주어진 선물

이제 하만이 죽은 후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원래 성경이나 모든 인생사가 다 그렇지만, 뒤처리가 깔끔해야 합니다. 뒤처리가 구십 퍼센트가 끝났는데 십 퍼센트를 못 해가지고 그것이 불씨가 다시 일어나서 잔불이 되어서 다시 이차 화재가 일어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잔불 정리를 잘 해야 합니다. 하만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최악의 빌런이 죽은 것입니다. 이제 악당이 죽었습니다. 끝난 것입니까?

그러면 사실 에스더 이야기는 칠 장에서 끝나도 되지 않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더 복잡한 사건이 남아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에게 내린 선물이 무엇입니까? 일 절에 "그 날에"라고 했는데, 그 날이 언제입니까? 하만이 죽은 날입니다. 하만이 죽었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문자적으로 보시면 곤란한 것이, 집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 집만 주었겠습니까?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하만의 집이라는 것은 하만에게 속했던 모든 것을 다 주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하만에게 속했던 것 중에 지금 왕의 금고에 들어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은 일만 달란트입니다. 그것이 원래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데 사용되는 행정비용이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만이 죽었으니까, 그 비용을 그다지 지출할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왕은 자기 나름대로 수지가 맞았고, 하만의 것은 에스더에게 다 주어 버렸습니다. 상을 내린 것입니다.

2-2. 모르드개에게 주어진 인장 반지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습니다. "어떻게 관계되었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나와 모르드개가 사촌 관계다, 나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내 사촌 오라비가 나를 딸같이 여기고 양육해 주었고, 이런 얘기를 왕 앞에서 풀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 절을 보면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었습니다. 하만에게서 반지를 빼었다고 했는데, 그 반지가 무엇이었습니까? 인장 반지, 왕의 도장이 있는 왕의 어인이 있는 인장 반지를 빼었습니다. 빼서 어떻게 했습니까?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은 너무 황당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왕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하수에로, 크세르크세스 일세는 전쟁에서 지고 왔습니다. 그리스 원정에서 크게 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사람이 정치에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나중에 암살당합니다. 정치의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손을 놓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손 놓고 이분이 한 것이 항상 밤마다 처녀들을 데려다가 자기 욕망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뒤에서 뒷바라지하고 해준 사람이 하만입니다. 게다가 하만은 돈이 많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권력을 잡았고, 하만에게 정치를 일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하만이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갑자기 이 왕이 개과천선하고 갑자기 사람이 바뀌어져서 "내가 이제부터 다시 어전에 나가서 정치를 제대로 하겠다, 백이십칠 도를 순시하고 잘하겠다"고 하겠습니까? 사람이 그렇게 됩니까? 바뀌지 않습니다. 신앙의 힘이 아니면, 회개하지 않으면 돌이켜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왕후를 강간하려고 한 혐의를 입고 처형당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리를 누군가는 대신해야 하는데, 사실 모르드개는 충신입니다. 왕의 암살을 밀고하고 알려준 사람입니다. 상을 내리지도 못한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상이 아니라 하만에게 준 벌이었지, 모르드개에게 준 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왕후의 사촌 오라비입니다. 측근 중에 측근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준 것입니다. 왕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것이 하만이 됐건 모르드개가 됐건 왕은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게으르고, 이렇게 무책임하고, 이렇게 자기 일에 대해서 성실하지 않은 인간이 정치를 하니까 그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여기 백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대인들이 하만 한 사람의 농간에 사람들이 다 한순간에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2-3. 청지기의 자세

인장 반지를 빼서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에스더에게 하만에게 속한 모든 것을 주었는데,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두 가지를 보셔야 합니다.

첫째, 지금 에스더가 자기가 받은 상을 모르드개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에스더가 이 행위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모든 공은 모르드개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추상같이 에스더를 나무라지 않았습니까? "네가 오늘 잠잠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망하려니와, 유대인들은 다른 곳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다.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가 심하게 책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에스더가 그래서 고마움을 가지고 "이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오라비가 나를 책망해 주셨고, 온 유대인들이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일이 있으면 항상 이 공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누구의 공인지. 사람들 중에는 남의 공을 가로채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되게 밉습니다. 중간에서 낚아채면. 그런데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인정하고 상 주고 내려주고 해주어야 합니다. 에스더가 지금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이 단어를 잘 보셔야 합니다. 다시 일 절을 보시면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절에 보니까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주었습니까? 어떻게요?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주는 것하고 관리하게 하는 것하고. 이것이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인들이 물질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관리자의 태도입니다.

이방인들은 주고받습니다. 주어 버립니다. 그냥 "이것은 너 것이야" 하고 주어 버립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모든 것은 전부 다 하나님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다 하나님 것이라서 그냥 관리하는 것입니다. 나는 관리자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관리직에 있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청지기라고 했습니다. 청지기,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청지기가 가져야 할 마음이 무엇입니까? 주인 의식입니다. 주인 노릇이 아니고, 주인 행세하는 것이 아니고, 주인 의식을 가지고 주인처럼 그것을 아끼고 관리하고 최선을 다해서 돌보지만, 그러나 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청지기입니다. 지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거기에 두시면서 경작하고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경작하고 관리하고 다스리라. 그것이 청지기입니다. 그리고 선악과 금지 명령 하셨습니다. 네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손대지 마라. 나머지는 다 내가 너에게 위임했다. 그런데 그것을 먹는 순간 무엇입니까? 청지기의 사명을 어긴 것입니다. 청지기 사명을 어기면 거기 있을 수 있습니까? 쫓겨나는 것입니다.

청지기가 주인 것에 손대는 순간, 이것은 안 된다고 했는데 손대는 순간, 그것은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청지기와 도둑의 차이는 아주 미세한 종이 한 장의 차이인데, 그것은 내가 잘 압니다. 내가 청지기인지, 내가 도둑인지 잘 압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 관리하고 다스리고 경작하고 주인께 이롭게 해야 하는데, 거기서 이것은 내가 누리고 내가 먹고 마시고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순간 이것이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은 자기가 도둑인지 잘 모릅니다. 그때그때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심판을 유예하고 미뤄두셨다가 마지막 날에 심판하면 그것이 재앙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청지기이기도 하고, 물질의 청지기이기도 하고, 나에게 맡겨주신 우리 자녀들의 청지기이기도 하고,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면 그 직분을 받은 사명의 청지기이기도 합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래서 거기에 애착하지 말고, 거기에 목숨 걸지 말고,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9절과 20절 말씀을 봅시다. 이것이 어디에서 나오는 말씀인지 아십니까?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이것은 어리석은 부자 얘기입니다. 부자가 자기 영혼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영혼에게." 이 말이 거슬립니다. 영혼이 자기 것입니까? 하나님 것인데.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이것이 언어유희입니다. 너는 너의 영혼이라고 했지 않느냐? 내 영혼을 도로 찾겠다. 그러면 이 영혼은 누구 것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이 주인입니다.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분이 주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의 청지기이지, 내 영혼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육체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면 내 몸을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아픕니다. 일어나고 앉을 때 계속 비명을 지릅니다. 우리가 신음 소리 내고 "아이고 구구" 합니다. 다 내 마음 같아서는 멀쩡하게 뛰고 싶고 달리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됩니다. 늙고 노쇠하고 병들고, 왜? 하나님 것이니까.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흙으로 빚어졌으니까. 영혼도 내 것이 아니고, 육체도 내 것이 아니고, 돈도 아니고, 다 내 것이 아닙니다. 경건한 유대인들, 다 관리자입니다. 우리도 이것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에스더에게 하만의 집을 다 주었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팔아치우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런데 관리시켰습니다.

3. 두 번째 목숨을 건 결단

3-1. 아직 남은 문제

이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살펴보면, 이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죽을 뻔했는데 사선을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다음 또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얻었습니다. 그다음 권력을 얻었습니다. 인장 반지를 얻었습니다. 생명과 물질과 권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그 자리가 누구의 자리였습니까? 하만의 자리입니다. 하만도 돈과 권력과 생명도 자기는 그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하만의 자리에서 똑같이 돈과 권력과 생명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삼 절을 봅시다. "에스더가 다시 왕 앞에서 말씀하며 왕의 발 아래 엎드려." 왜 이렇게 했을까요? 다시 왕 앞에서 말을 합니다. 왕의 발 앞에 무릎을 딱 꿇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지금 하만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왕이 내린 명령이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아달월 십삼 일에 유대인들을 다 멸절하라는 명령을 전국에 다 반포했습니다. 그것을 주도한 하만은 죽었지만, 사실 그 도장은 누구 도장입니까? 왕의 도장입니다. 하만은 죽었는데, 하만의 음모는 계속해서 살아있습니다. 지금 이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을.

자기만 잘 먹고 잘 살고, 자기만 권력을 가지고, 자기만 명예를 가지고. 이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이제 이 라운드입니다. 여기서부터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은 이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이제 나는 살았고 제국의 이인자가 되었으니 발 빼버린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냥 그대로 그 명령이 유효하니까.

3-2. 에스더의 눈물

그런데 보십시오. 엎드려 말합니다. "아각 사람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 한 악한 꾀를 제거하기를" 그랬습니다. 이것 때문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그다음에 "울며 구하니." 지금까지 에스더가 울었다는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없습니다. 처음 우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에스더가 연기를 한 것인지 진짜 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왕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려고 울었는지.

그런데 에스더는 지금까지 굉장히 냉정했던 여인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고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웁니다. 울면서 얘기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보면 그냥 문자 그대로 보면, 에스더가 민족을 얘기할 때는 눈물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나를 살려달라고 할 때는 울지 않았지만, 민족을 살려달라고 할 때는 울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 절에 "왕이 에스더를 향하여 금규를 내미는지라." 이전에 우리가 왕 앞에 나갈 때 왕이 금규를 내밀었습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였습니까? 너를 살려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지금 또 금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너의 얘기를 듣겠다, 한번 얘기해 보라, 살려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다시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서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금기된 말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묻지 않았는데 왕한테 지금 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청이 무엇입니까? 왕의 명령을 뒤집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도 생명을 건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더 사 장에서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그것만 에스더가 생명을 걸었다고 생각하는데, 왕이 금규를 내민 것이 두 번입니다. 에스더는 두 번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한 번은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에게 나갔고, 두 번째는 왕이 묻지도 않았는데 왕에게 청원을 한 것입니다. 그 당시 법에 의하면 에스더는 두 번이나 목숨을 걸었습니다.

3-3. 조서 철회 요청

이제 금규를 내밀어서 "한번 들어보자" 그랬습니다. 이야기를 듣자. 그러니 에스더가 일어나 왕 앞에 서서 이르되 "왕이 만일 즐거워하시면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좋게 여기시면 나를 좋게 보실진대." 사설이 깁니다. 사설이 길다는 얘기는 말이 좀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말이 어려울 때 우리가 빙빙 돌립니다. "야, 그거 됐고 핵심을 얘기해." 그런데 아이들이 돈 달라 얘기 못 해가지고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결국은 돈 달라는 얘기인데.

그런데 지금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렇게 사설이 길다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그 얘기입니다. "조서를 내리사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대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하소서."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아십니까? 왜 무서운 말이냐 하면, 그 당시 제국의 황제들의 위치가 지금의 대통령급이 아닙니다.

그 당시 제국의 황제들이 나라를 다스리려면 제국의 영토가 넓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넓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을 속여야 합니다. 기만해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백성들을 속여야 될까요? 제국의 황제는 신인 것입니다. 신 그 자체로. 그래서 영생불사. 이집트 파라오들 보십시오. 이집트 파라오들 피라미드 만들어서 미라 만들어서 그것을 그 피라미드에 집어넣어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것처럼 거짓말합니다. 그 육체가 죽고 나도. 그리고 거기 부장품들 막 집어넣고, 심지어는 같이 살던 사람들도 같이 막 집어넣어 버립니다. 생매장해 버립니다. 그것은 과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장의 풍습. 왜 있습니까? 저승 가는 길에 같이 가시라고.

그것은 옛날에 진시황도 마찬가지였고, 제국의 황제들은 전부 다 신급입니다. 그러면 신이 내린 명령은 오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류가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국의 황제고, 이 사람은 백성들에게 신이라고 얘기했는데 그것을 철회할 수 있습니까? 철회했다는 것은 여기에 오류가 있고 문제가 있다는 것인데. 심지어 가톨릭에서도 가톨릭의 교리로 교황무오설을 얘기합니다. 교황은 사람인데 교황이 말한 것은 틀리지 않는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는 말이 틀리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심지어 가톨릭조차 그렇게 하는데, 과거에 제국의 황제들 다 자기가 신입니다. 그런데 신 앞에서, 자기들이 말하는 신적 존재 앞에서 에스더가 와서 "철회하소서." 그것을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3-4. 신앙 교육의 힘

에스더는 페르시아에서 자란 아이입니다. 그들의 문화권에서 자란 아이입니다. 문화를 이기게 하는 힘이 신앙의 힘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우리 아이들이 이 악한 문화에서 삽니다. 학교 가면 진화론을 가르치고, 사회 가면 점점 더 세속적 가치가 기본값이 되어 있는 이런 사회에 우리 아이들이 삽니다. 그런데 거기에 물들지 않고 이 아이들이 세속에 쓰러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말씀과 믿음, 그 신앙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에스더를 누가 가르쳤겠습니까? 모르드개가 가르쳤습니다. 모르드개가 강력하게 가르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적 존재인 황제 앞에서 "철회하소서." 저는 그 앞에 왕 앞에 가가지고 금규 내밀고 그런 낭만적인 것보다 이것이 지금 더 치열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미 자기는 다 이루었습니다. 생명도 얻었고 권력도 얻었고 돈도 얻었습니다. 이 얘기하기가 입이 안 떨어지는 것입니다. 다 얻었는데, 이러다가 왕이 갑자기, 이 사람이 약간 미치광이 기질이 있습니다, 정신줄 놓고 휙 돌아서 "이것이 지금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하네" 이러는 순간 하만처럼 얼굴을 누가 와서 싸버리는 것입니다.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각오하고 "철회하소서"라는 얘기를 합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그래서 저는 에스더가 대단한 것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의 힘은 신앙 교육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냥 나온 것 아닙니다. 절대. 그래서 에스더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모르드개입니다. 잘 가르쳐야 합니다. 듣든 안 듣든 우리 자녀들, 우리 아이들 잘 가르쳐야 합니다.

3-5. 끝까지 함께함

그러면서 얘기합니다. 육 절에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차마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차마 보리이까" 하니. 원래 첫 시작은 화려하게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잘하는 것이 힘듭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요한복음 13장 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랑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유다까지 사랑하고 발 씻어주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끝까지 하려면 끝까지 해야 합니다. 하다가 중간에 치우지 말고. 시편 119편 33절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한결같음이 중요합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한결같습니다. 끝까지.

3-6. 권력과 돈의 사용

우리가 이것을 통해서 또 기억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하만도 권력을 가졌습니다. 그도 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진 권력과 그가 가진 돈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가졌던 권력과 돈은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권력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돈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사용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누구의 손에 그 권력이 들어가느냐, 누구의 손에 그 돈이 주어지느냐, 누구의 손에 이 시간이 들려지느냐, 누구의 손에 칼이 들려지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가치중립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 시간을 가졌을 때, 물질을 가졌을 때 하만처럼 쓰면 안 됩니다. 그것을 우리는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시간을 가지거나 권력이나 돈을 가지면,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답게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 똑같은 환경,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만과 모르드개, 에스더가 하는 마지막 결론은 하늘과 땅 차이에 동과 서가 먼 것처럼 완전히 극과 극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믿음의 사람들에게 다루어 보시는 것입니다. 나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이냐, 나의 물질관은 무엇이냐, 나의 시간관은 무엇이냐, 나의 권력관은 무엇이냐. 여기에 통과하면 하나님이 더 많은 물질을 주시겠습니다. 잘 쓰니까.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용하니까.

4. 왕의 대답과 새 조서

4-1. 철회할 수 없다

이제 에스더 간청에 왕이 어떻게 답할까요? 긴장되지 않으십니까? 잘 읽어야 합니다. 칠 절.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어떤 느낌이냐 하면요. 계산은 끝났지 않느냐. 하만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모든 소유를 너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 말입니다.

팔 절. "너희는 왕의 명의로 유다인에게 조서를 뜻대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칠지어다." 이전에 하만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끊어서 읽고요.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 이것이 무엇입니까?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이전에 하만이 도장 찍고 인친 조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반포된 조서. 이미 반포되어서 전국 각지에 가서 다 붙어버린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철회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더의 청이 무엇이었습니까? "철회하소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왕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철회할 수 없다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하나의 가능성과 전제를 열어둡니다. "내가 왕의 인장 반지를 하만에게서 빼서 너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그것을 가지고 한번 지혜롭게 해봐라." 이런 뜻입니다. 이해되십니까? 이것 헷갈리면 안 됩니다. 왕은 자기의 신적 권위를 내려놓지 않습니다. 왕은 자기가 잘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철회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지를 주었습니다. 너 인장 반지 너한테 있습니다. 내 것. 그것 가지고 너 뜻대로 한번 해봐라. 지혜롭게. 이제 공은 누구에게 넘어왔습니까?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 넘어왔습니다. 유다인이 죽고 사는 문제는 다시 이들에게 넘어왔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파트입니다. 그래서 그냥 우리는 하만이 죽어서 끝, 이것이 아닙니다.

4-2. 회개할 줄 모르는 왕

여기서부터 왕은 절대로 제국의 일인자의 권위와 신적 권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인간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진짜 호의는, 그리고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잘못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다고, 저 하만에게 속아서 그랬다고." 그래서 반포하면 되는데, 그것을 못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을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발전이 없습니다. 성장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회개입니다. 사람 앞에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와 사람들 앞에서의 사과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입니다.

사과 못하는 사람, 그 사람 절대로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잘못할 수 있습니다. 사과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한마디면 다 해결될 것을, 그 사과를 안 하니까 수십 년째 가슴에 사과 못 받은 사람들의 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릴 때 부당하게 아버지에게 혼나고, 맨날 나는 큰딸인데 밑에 아들만 둘 있다고 맨날 나만 일 시키고 학교도 안 보내주고 맨날 뭐 하면 딸만 때리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한테 사과도 한번 안 하시고. 아버지 막 기일 만들면 열 받고 화나고 그러던 내가 더 밉고. 막 사과 한번 하시고 돌아가시지 그것을 못 하셔 가지고. 그래서 인간에게는 돌이키는 것이 사과고, 하나님께는 회개.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인간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5. 새 조서의 반포

5-1. 시완월 이십삼 일

이제 공이 넘어왔습니다. 모르드개에게. 모르드개가 또 지혜의 사람입니다. 구 절 보십시오. 그때, 그때가 언제냐?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 일에." 하만이 살아있을 때 유대인들 살해 명령에 조서에 도장을 찍은 날이 언제였습니까? 니산월 십삼 일입니다. 그것이 일월입니다. 정월 십삼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완월이라고 하면 삼월입니다. 삼월 이십삼 일입니다. 그러면 세월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두 달 열흘 지났습니다. 칠십 일 지났다는 말입니다. 딱 칠십 일. 이 칠십 일 동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이 칠십 일 동안 벌어질 때까지 유대인들은 칠십 일 동안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고, 에스더서를 한눈에 이렇게 쭉 읽어가지만, 칠십 일 두 달 열흘 동안 너무너무 힘든 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두 달 열흘 동안 유대인들은 이제 죽을 생각만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고통받았습니다.

이제 시완월 곧 삼월 이십삼 일에 왕의 서기관이 소집되고,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조서를 썼습니다. 모르드개에게 위임했으니까요. 조서를 써서 인도로부터 구스까지의 백이십칠 지방 유다인과 대신과 지방관과 관원에게 전하였는데, 각 지방의 문자와 각 민족의 언어와 유다인의 문자와 언어로 썼습니다. 내용은 뒤에 나옵니다. 어쨌든 조서를 썼습니다. 어떤 내용의 조서를 썼을까? 철회는 못하는 것입니다. 철회는 못한다 그랬으니까. 이제 조서를 썼습니다.

십 절. "아하수에로 왕의 명의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을 치고 그 조서를 역졸들에게 붙여 전하게 하니 그들은 왕궁에서 길러서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는 자들이라." 이제 급한 것입니다. 호흡이 막 가빠집니다. 준마를 타는 자들을 딱 준비시켜서 조서를 쓰고 쭉 보냅니다.

5-2. 다말의 믿음

잠시 창세기 38장에 유다와 다말 이야기를 보면, 이 이야기를 여기 인용해 놓은 이유는 그런 얘기입니다. 유다와 다말 이야기는 우리가 그냥 인간적으로 보면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륜 이야기입니다. 그냥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런데 이것을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왜 창세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도 유다 지파의 그 시작을 알리는 시점을 여기에다가 왜 기록해 두었는가. 다말의 믿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유다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습니다. 첫째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둘째 아들. 그 시대의 율법에 의해서, 그 시대의 문화적인 관습에 의해서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형수를 취해서 자식을 낳아서 형의 이름으로 입적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룻기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둘째가 씨를 형수에게 주기 싫어서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치셔서 죽었습니다. 이제 셋째 아들이 있습니다. 셋째 아들에게 원래 법대로 하면 아버지 유다가 주어야 합니다.

셋째 아들을 며느리에게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유다가 딱 생각하니까 이 며느리가 그냥 세상 말로 재수 없는 여자인 것입니다. 우리 집에 시집와서 아들 둘이나 죽었습니다. 셋째까지 주려니 불편하고 찝찝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내쫓아 버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쫓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클 때까지 친정에 가서 좀 기다려라." 그런데 다말은 압니다. 시아버지가 어떤 인간인지. 그래서 다말은 거기에서 변장을 합니다. 창녀의 복장을 입고.

다말이 한 행위는 도덕적으로 보면 비난받을 일이지만, 그러나 그 당시 여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유일한 선택. 죽은 남편의 아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대를 이어가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시아버지에게 접근합니다. 시아버지는 성적으로 방종한 인물입니다.

"염소 새끼 줄 테니 하룻밤 자자" 그랬습니다. 염소 새끼 지금 들고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을 내가 당신과 어떤 약속을 맺겠느냐. 담보물을 달라 합니다. 담보물 얘기를 합니다. 십팔 절. 창세기 38장 18절.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담보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 담보물을 찾으러 갔는데 여인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들려오는 소식에 며느리가 아기를 가졌다. 유다가 무릎을 칩니다. 잘 됐다. 이제 이 여인을, 이 며느리를 끊어낼 때가 됐구나. 그러면서 부정한 짓을 했다고 죽이려고 듭니다. 그때 다말이 담보물을 끄집어냅니다. "이 주인의 아이입니다." 유다가 하는 말입니다.

이십오 절과 이십육 절을 보십시오.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왜 이 이야기를 여기다가 적어두었냐 하면, 다말이라는 여인의 결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와 너무 비슷하지 않습니까? 에스더가 죽음을 각오한 것처럼 다말도 죽음을 각오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다말을 예수님 족보에다가 올려두신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이름을. 그리고 이 믿음의 여인을 그 족보에다가 올려놓고, 다말의 아이를 통해서 다윗이 태어납니다. 그 후손 중에. 그리고 그 후손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지 않습니까?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하룻밤 즐기는 쾌락으로 폄하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인데요. 죽음의 문제인데요. 죽음의 문제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누구도 그 죽음의 문제를 함부로 다룰 수 없는데, 다말은 거기에 목숨을 건 것입니다. 에스더처럼. 그래서 적어둔 것입니다.

5-3. 자위권 부여

이제 모르드개가 왕의 명령으로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의 내용이 궁금합니다. 이 조서의 내용, 십일 절입니다. 잘 보셔야 합니다. 조서에는 이렇게 있습니다. 다 궁금합니다. 도대체 뭐라고 썼는지. "왕이 여러 고을에 있는 유다인에게 허락하여." 왕이 유다인에게 허락을 했습니다. 무엇을 허락했느냐?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각 지방의 백성 중 세력을 가지고 그들을 치려하는 자들과 그들의 처자를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되."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라는 말입니다.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이제 아달월 십삼 일이 되면, 조서가 반포된 날이 되면, 물론 하만이 죽었으니까 동력은 크게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왕의 금고에 있는 은 일만 달란트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행정 비용으로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왕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라 그랬습니다. 조서가 붙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백이십칠 도에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을 죽이려고 이를 갈고. 왜냐하면 죽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 나서 재산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왕이 이미 명령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질 때 너희가 스스로 보호해라. 그 보호의 권한을, 자위권을 유대인들에게 준 것입니다. 자위권을 모르드개가 그것을 썼습니다. 조서에다가. 세력을 형성하고.

지금 이것이 세 번째 달, 즉 삼월 이십삼 일에 반포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이 벌어지기까지 구 개월 남았습니다. 약 팔 개월 이십 일 정도 남았는데, 그 기간 동안 자기 세력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모르드개가 조서에 써서 왕의 도장을 찍어서 보내준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은 똑같이 다른 민족을 학살한 적이 없습니다. 방어였습니다. 방어. 방어권을 준 것입니다. 이전에는 일체의 방어권도 없었는데, 이제는 방어권을 주었습니다. 십이 절을 보십시오. 팔 장 십이 절.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서 아달월 곧 십이월 십삼 일 하루 동안에 하게 하였고." 하루를 준 것입니다. 하루. 이 하루가 언제입니까? 아달월 십이월 십삼 일. 이 하루가 학살 명령이 일어나는 그날입니다. 그날 딱 하루. 그들이 학살하러 올 때 너희도 너희를 방어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는 뜻입니다.

십삼 절 한번 봅시다. "이 조서 초본을 각 지방에 전하고 각 민족에게 반포하고 유다인들에게 준비하였다가 그 날에 대적에게 원수를 갚게 한지라."

이것을 보면 속이 시원합니까? 아니면 답답합니까? 시원합니까? 답답합니까? 답답합니다. 왜 답답하냐? 우리는 그러면 방어만 하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니까. 그런데 한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하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유대인 모르드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소문이 다 전국 각지에 날 것입니다. 그러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유대인들을 공격하겠습니까? 공격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면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진짜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도적떼들만 왕의 명령이라는 명분으로 유대인들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가 얼마든지 자위권을 가지고 그들을 죽여도 좋다. 이제 이렇게 얘기해 준 것입니다.

6. 기쁨의 잔치

6-1. 수산성의 분위기

조서가 반포된 후에 수산성과 유다인들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십사 절 한번 봅시다. "왕의 어명이 매우 급함에" 급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하니까. "역졸이 왕의 일에 쓰는 준마를 타고 빨리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도 반포되니라."

십오 절.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모르드개가 출세했습니다. 굵은 베옷 입고 있다가 지금 옷이 바뀌었습니다. 이 옷이 바뀐 것을 왕과 함께 왕 앞에 서서 수산성에 딱 자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모르드개가 자기 잘난 맛을 자랑하려고 이렇게 했을까요? 하만처럼. 아닙니다. 보여주는 시각 효과가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너희들 소문으로만 들었지. 그런데 이것이 진짜야. 유대인인 내가 이 제국의 이인자가 되었으니 이 명령 너희들 제대로 들어라. 왕이 내린 명령은 그대로 살아있으나, 왕의 어인으로 또 다른 이차 명령을 내렸으니 너희들이 함부로 공격하면 죽임당한다. 생각 잘해라.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십육 절을 보십시오.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는지라" 십칠 절 주십시오. "왕의 어명이 이르는 각 지방 각 읍에서 유다인이 즐기고 기뻐하여 잔치를 베풀고 그 날을 명절로 삼으니 본토 백성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유다인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인 되는 자가 많더라." 이것이 무슨 의미냐 하면, 두려워해서 내가 유대인 되고 싶다고 갑자기 피를 바꿀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호적을 바꿀 수 있습니까? 못 바꿉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유대인처럼 행동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 명절로 정했습니다. 명절로 정하고 잔치를 열어서 거기 와서 같이 먹고 같이 마시고 같이 즐거워했다는 뜻입니다.

6-2. 두 잔치의 대조

그래서 여기에 나오는 잔치 이야기를 보시면, 처음에 일 장에서 보았던 잔치의 끝을 압니다. 왕후 와스디가 폐위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그 잔치의 대장입니다. 하나님 없습니다. 그런 잔치는 갈수록 망하는 잔치고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잔치 보십시오. 마지막에, 마지막에 행복합니다. 마치 요한복음 2장에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그 포도주를 순종함으로 채우니까 뒤에 나오는 포도주가 앞에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포도주였다는 것, 갈수록 좋은 인생이 된다는 것. 그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6-3. 기도, 하나됨, 실천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너무너무 중요한 사실은 지금 여기 팔 장까지 오면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봅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첫째, 기도했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지금 이 잔치가 기쁨이 된 배경에는, 위기가 닥쳤을 때 기도했습니다. 금식기도 했습니다. 에스더도 기도했고, 모르드개도 기도했고, 유대인 모두가 다 기도했습니다.

둘째, 기도할 때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 탓하지 않았습니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기도할 때 합심한 것입니다. 진짜 마음을 합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가 기도할 때 마음을 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부 동상이몽이고 다른 생각하고 너는 너 생각, 나는 내 생각, 자기 계산이 다 다르고, 누구 미워하고. 이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공동체성을 가지고 철저하게 하나가 되어서 기도했습니다.

셋째, 기도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에스더가 어떻게 했습니까? 두 번에 걸쳐 목숨을 걸었습니다. 실천했습니다. 행동했습니다. 그러니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 안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실천이 안 됩니다. 우리가 기도 잘해야 하는데, 기도 잘하라는 것이 유창하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 봉사 좀 잘하게 해 주세요." 이것이 기도입니까? 무엇입니까? 이것은 기도 아닙니다. 봉사하면 됩니다. 자기가. 그것을 왜 기도합니까? 하면 되지. 우리 학생들, "하나님, 저 공부 좀 열심히 하게 해 주세요." 열심히 하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책상 앞에 앉혀 놓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좀 자기한테 힘듭니다. 다리를 부러뜨려야 되니까. 그러면 앉아있겠지. 해롭습니다. 자기한테.

그런 기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공부 좀 열심히 하게 해 주세요. 저는 주의가 산만한데 자리에 좀 앉아 있고, 엉덩이 무겁게." 그러면 못 움직이게 하는 것밖에 답이 더 있습니까? 그런 기도하면 안 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 저 오늘부터 교회 일 합니다. 봉사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제 약점은 사람을 보고 사람에게 시험 드는 것인데, 제가 사람 보는 눈 가지지 않고 하나님 보게 해 달라고" 기도가 좀 그렇게 가야 합니다. 엉뚱한 기도, 자기가 하면 되는 것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그러실 것입니다. "참, 너도 기도할 것이 없는가 보다. 네가 해라. 네가 해라" 그러시겠죠? 좀 생각하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생각하고 하나님 입장에서 기도하고, 하나 되고 실천하고 그랬습니다.

제가 여기 사도행전 8장을 적어 두었는데요. 이것은 사마리아 성에 빌립 집사님이 간 것입니다. 팔 절에 보니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랬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잔치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성, 버림받은 성입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게 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칠백 년 동안이나, 칠백 년 이상이나 그 성에 기쁨이 없었는데, 이 성에 기쁨이 있었던 까닭은 빌립 집사님이 가서 그랬습니다.

그것이 본인이 직접 가서 복음 전하고 헌신하고 수고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 기쁨의 잔치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면 실천하시고 행동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때로는 에스더처럼, 때로는 다말처럼 우리가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 견디고 이겨내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땀 흘리고 수고하고 시간을 들이고 물질을 들이고. 그것 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잔치를 기대합니까? 에스더는 그것을 우리에게 극명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이제 다음 시간 마지막 시간 기대하시고, 또 앞 에스더 이야기를 한번 복습하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에스더의 목숨 건 믿음과 실천을 보았습니다. 그는 왕후로서 권력도 물질도 생명도 얻었지만, 모르드개와 함께 다시 왕 앞에 나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신적 존재인 왕 앞에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목숨을 걸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삶을 보시고 그들을 건져주셨습니다.

주여, 오늘 우리의 인생에도 잔치가 벌어지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주인 되지 않고 하나님이 주인 되는 잔치가 벌어지게 하여 주시고, 그 중심에 우리의 순종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하기 싫은 것, 힘든 것,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들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때 하나님이 걸으시는 길은 무엇이고 역사하시는 능력과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