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특강 12 - 통일 이스라엘의 왕 (삼하 5-6장)
사무엘하 5장 1-3절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오늘은 사무엘상하 말씀 공부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제목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인데, 사실 인간 다윗으로 본다면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닙니까?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마음에 품었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영광스럽고 최고로 영화로운 순간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 입장에서 우리 인생을 보면, 인간적인 입장 말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윗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광야라고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광야를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에 걸쳐서 공부를 했는데, 이제 사실 지금부터는 다윗 인생에 아주 복잡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정치를 해야 되니까요. 광야에서는 정치할 일이 없잖아요. 그저 하나님과 자신만의 관계가 있는데, 사실 이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부터는 정치인 다윗이 되는 겁니다. 정치인 다윗은 사람을 다루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기 입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하고, 그 가운데서 신앙의 양심을 지켜 가며 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출애굽의 여정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광야 40년이었고 그다음 가나안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도 실패를 많이 했죠.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죄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고 난 후에 짓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노예가 되었고, 가나안 7족속을 다 내쫓지 못했고, 결국은 하나님이 참고 견디고 또 참으시다가 북이스라엘을 먼저 멸망시키고 남유다를 멸망시키죠.
그래서 우리가 인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나님 보실 때도 과연 크게 성공인가, 사실 그때부터 우리 진짜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겁니다. 어쩌면 다윗 인생의 진짜 영적 투쟁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서부터, 그때부터 다윗 인생의 진짜 영적 투쟁이 시작됩니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잠시도 한눈팔 시간이 없습니다. 광야는 광야라서 그렇고, 가나안은 가나안이라서 그렇고, 왕이 된 후는 또 그 후라서 그렇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다윗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1. 목자로 세움 받은 왕
다윗에게 온 이스라엘 장로들이 한 말을 살펴보십시오. 이 이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습니까? 다윗이 사울이 죽고 나서 모든 사람들은 다윗이 왕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 스스로 쳐들어가서 왕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었죠. 하나님이 유다 지파의 수도인 헤브론으로 올라가라 하셔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한 지파, 유다 지파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세월이 7년 6개월이었고, 그 기간 동안 저 북쪽의 11지파에는 허수아비 왕 이스보셋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군대를 장악한 실질적인 권력자 아브넬이 있었습니다. 아브넬이 죽었어요. 이스보셋도 암살을 당합니다. 이제 때가 온 겁니다. 그런데 그 때가 와도 다윗은 스스로 자기가 움직여서 쳐들어가지 않아요. 기다립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읽었던 5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모든 지파라고 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부 다 나온 게 아니고 지파의 대표들이 온 거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찾아온 겁니다.
1-1. 실질적 왕의 역할
이 절이 중요한데요.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사울 왕 때도 실질적인 왕의 역할은 누가 했단 말이에요. 다윗이 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미 다윗이 실질적인 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걸 다 알고 있어요.
우리는 '아, 내가 지금 이렇게 수고하는 걸 누가 알아줄까? 내가 이렇게 정말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투쟁을 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사는 걸 누가 알기는 할까?' 사람이 몰라주는 게 억울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더 아시고, 사실은 사람들도 다 알고 있어요. 표현만 하지 않을 뿐. 지금 이분들도 다윗에게 와서 "과거에 사울이 왕이었을 때 실제로 진짜 왕은 다윗 당신이었습니다"라고 말하죠.
1-2. 목자의 정체성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이 '목자'라는 말이 진짜 중요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입을 통해서 다윗에게 말씀하실 때 이걸 명확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왕이 아니라 목자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 된 사람들에게 주신 그들의 진짜 정체성은 목자 정체성입니다. 왕이 아니에요. 왕은 자기 맘대로 하는 존재잖아요. 백성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고, 백성의 재산을 빼앗을 수도 있고 백성에게 상을 내릴 수도 있고, 생사여탈권을 다 가진 자가 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장로들의 입을 통해서 다윗에게 "앞으로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목자다" 이걸 명확하게 한 번 더 각인시켜 주십니다.
목자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목자는 중간자의 역할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누구와 누구의 중간자예요? 진짜 목자, 들판에서 양 치는 진짜 목자는 양과 목자장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됩니다. 목자는 자기 마음대로 양을 끌고 다니지 못해요. 목자장 되신 분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오늘 어디로 갈까요?"
다윗이 들판에서 진짜 양을 치며 목자로 살 때, 그때 다윗의 목자장은 아버지 이새였어요. 이새가 자기 집에 사무엘이 왔는데도 "넌 집에 오지 마. 너 여기서 양을 쳐라" 하니까 목자장의 말에 순종하잖아요. 다윗이. 목자는 위로는 목자장의 말에 순종하는 자가 목자예요. 그러면 다윗이 왕이 되었는데 목자라는 말은 목자장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란 뜻이에요.
그리고 목자는 실제로 양들과 같이 호흡하잖아요. 양 떼를 데리고 다니면서 쉴 만한 물가로 가고 푸른 풀밭으로 가고, 굶기면 안 되잖아요. 일단은 먹여야 돼요. 돌봐야 돼요. 그리고 한 마리라도 맹수에게 물려 가면 끝까지 가서 찾아와야 돼요. 양들의 생명에 자신의 생명을 걸어야 돼요. 그게 목자예요. 양들은 던져놓고 자기만 어디 뒤에 가서 도망갈 수 없어요. 목자 정체성이 바로 그런 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면서 "넌 목자다" 이 말은 목자장이신 내 말을 들어야 된다는 얘기고, 또한 너는 양들과 호흡을 같이 하라, 그들이 죽으면 양은 너도 같이 죽고 그들이 살면 너도 같이 살고, 그 생명이 곧 네 생명이고 너의 생명이 곧 양들의 생명이다 이걸 하나님이 이스라엘 장로들의 입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거거든요.
그래서 다윗은 여느 왕들과는 달랐어요. 다윗부터 시작해서 모든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 목자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지키며 살아야 했는데, 다윗도 사실 이걸 못했어요. 어디서 넘어집니까? 밧세바 사건에서 넘어졌잖아요. 밧세바 사건에서 자기 양인데 자기 양을 죽였어요. 밧세바의 남편을 죽였잖아요. 자기 양인데. 그리고 뒤에 가면 나오겠지만 전쟁하는데 다윗은 전쟁터에 가지 않아요. 양들만 전쟁터에 내보내고 자기는 그냥 왕궁에 머물러 있었어요. 그건 목자로서 처음 약속과 틀린 거잖아요.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실 때 그렇게 세우지 않았는데, 하나님께 물어보고 행동해야 되는데, 평생 동안 다윗이 왕으로 사는 동안은 목자장과 양들 사이에 중간자의 역할이에요.
1-3.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우리 예수님 한번 봅시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그랬잖아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어요.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중재자예요. 목자장이신 하나님, 양들인 우리, 우리 예수님이 항상 양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감당하셨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가정의 부모도 마찬가지로 목자예요. 목자장인 하나님과 양들인 우리 자녀 사이. 교회 목사도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 다 똑같은 원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거예요. 다윗만 그런 게 아니고.
그러면 목자는 우선 뭘 해야 됩니까? 목자장에게 매일 물어봐야 돼요. 결재를 받아야 된다고요. "이거 해야 됩니까? 이거 말아야 됩니까?" 결재 없이 하면 월권이에요. 그러면 거기서 항상 사단이 생기고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또 목자는 양들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펴야 되잖아요. 양들이 굶고 있는지 배가 부른지, 저희끼리 싸우는지, 어디 다른 데로 간 놈은 없는지, 집 나간 놈 있으면 가서 잡아야 되고, 싸우는 놈 있으면 말려야 되고, 배고파서 굶고 있으면 먹여야 되고, 눈코 뜰 새 없잖아요. 목자가. 목자는 항상 위아래를 신경 쓰고 살아야 돼요.
그래서 이때부터 다윗은 이 막중하고 무거운 사명을 받은 거예요. 이 원리를 가지고 우리 다윗 일생을 보셔야 돼요. 이 원리에 충실하면 다윗은 성공한 인생이고, 이 원리에 충실하지 못했을 때 그때마다 넘어진 인생이 되고 말았죠.
2. 세 번의 기름부음
그리고 여기서 3절을 해보니까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성경에 한 사람에게 기름을 세 번 부은 사건은 다윗밖에 없어요.
사무엘상 16장을 해보면 사무엘이 와서 먼저 우선 기름을 붓죠. 그렇죠. 그리고 사무엘하 2장을 해보면 유다 지파의 왕이 될 때 그때 또 한 번 기름을 붓죠. 지금 5장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 또 기름을 부어 세 번의 기름부음이 있어요.
2-1. 칭의, 성화, 영화
우린 이걸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원리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로마서 공부할 때도 살펴봤는데, 우리는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과정을 통해서 구원의 여정을 경험합니다. 칭의가 뭡니까? 나는 의롭지 않은데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칭해 주는 것이 칭의의 차원의 구원이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하나님이 다윗을 멋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들판에서 양 치다가 불려 와가지고 그냥 기름부음 받은 거예요. 이걸 우리가 칭의의 차원이라고 본다면, 그러면 그때부터 진짜 왕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 거잖아요.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기도 하고, 미치광이 왕 사울을 위해서 수금을 연주해서 악령을 쫓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골리앗과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왕에게 쫓겨나서 광야에서 훈련을 엄청나게 받기도 하고. 이 모든 여정은 진짜 왕이 되어가는 과정이거든요. 이게 성화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내가 너를 의롭다 한다" 하고 무조건 딱 기름 부으셨어요. "내가 너를 선택한다"고. 그런데 그때는 우리가 그냥 믿음으로 구원받은 거지 진짜로 내가 의로운 게 아니거든요. 정말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켜서 내 속사람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꾸어 가신다고요. 그게 뭡니까? 성화잖아요.
성화. 다윗이 이 훈련을 잘 받았어요. 이 훈련을 잘 받아서 결국 마지막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죠. 영화의 차원에서 구원의 완성이 되는 거죠.
2-2. 성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셔야 될 게 칭의와 영화는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릴 선택하셨죠. 내가 손 들고 "하나님 자녀 되고 싶다"고 해서 된 사람이 누가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거잖아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어떤 이유를 통해서든지.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영화는 궁극적 차원의 구원이고 우리가 천국 가는 건데, 우리가 천국 가는 그때는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거예요. 내가 결정할 수 없잖아요.
다만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성화의 차원의 구원이거든요. 훈련받을 때, 훈련받는 태도는 내가 할 수 있잖아요. 훈련받는 자가 성령과 함께해야 훈련을 잘 통과할 수 있거든요. 그렇잖아요. 훈련받기 싫어하고, 내 빼고 도망가고, 죄 짓고 함부로 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데려다가 다시 앉혀놓고, 그러다 또 도망가면 또 데려다가 앉혀놓고 하겠죠. 그러다 안 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지금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아직 천국 가기 전이니까 다 성화의 차원에서 훈련받고 있는 자들이에요.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요. 성령과 함께 동행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되는 거죠.
다윗이 성화의 차원에서 훈련받을 때, 진짜 왕이 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잘한 것도 있지만 미끄러진 것도 있죠. 가드의 아기스에게 가서 1년 4개월 동안 거기 가서 기도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갔다가 그곳에서 큰일을 당한 경우도 있고, 그리고 사울이 쫓고 나서 이제 나는 막 살겠다 해서 나발을 죽이려고 400명을 거느리고 칼을 차고 달려왔던 적도 있었죠.
우리도 성화의 삶을 살다가 죄 지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빨리 돌아와야 돼. 제자리로. 지금 다윗이 세 번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건 우리에게 그걸 상징하고 가르쳐 주는 겁니다.
2-3. 다윗의 나이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여정을 정리해 보십시오. 4절입니다. "다윗이 나이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그런데 30세에 왕이 됐다는 것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된 걸 포함하는 거예요. 5절에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그러면 세 번째 기름부음 받았을 때, 진짜 전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그때 다윗의 나이는 서른일곱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할 때 생각보다 굉장히 젊어서, 어려서 왕이 됐죠. 왜냐하면 당시 진짜 어려서 사무엘에게 기름 받았거든요. 소년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서 이긴 것도 소년 다윗이죠. 이 고생을 다 했습니다.
3. 예루살렘 정복
이제 다윗이 왕이 됐어요. 왕이 되고 나서 진짜 왕이 됐다고요. 이제 그냥 하나님만 인정하는 왕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다 아는 왕이 됐어요. 왕이 되고 나서 첫 번째 사역이 중요하죠. 그렇죠. 여러분들도 우리가 언론, 뉴스, 신문을 통해서 볼 때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 첫 번째 행위, 첫 번째 누구를 만나느냐, 첫 번째 어디를 가느냐, 여기에 상징적인 의미가, 메시지가 다 담겨 있잖아요.
인간 대통령도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통일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첫 번째 일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일이에요. 그 일이 뭐냐. 도읍을 정한 거예요. 수도를 정한 거야. 그런데 그 수도를 다윗이 아주 특별한 곳을 정해요.
3-1. 금단의 땅
다윗이 왕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6절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예루살렘, 우리에겐 너무나 귀에 익죠. 너무나 잘 아는 도시죠.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예루살렘은 금기의 땅이었어요. 금단의 지역이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요. 왜? 이렇게 나오죠. 여부스 사람들이 거기 살고 있었거든요.
여부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때 가나안 땅에 원주민들이 살았는데, 그 원주민들이 7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족속이 여부스 족속이에요. 그러면 이 7족속 중에 여부스 족속은 예루살렘 성에 살면서 아직까지 나가지 않고 여기 살고 있는 거예요.
이놈들이 자그마치 얼마 동안, 이스라엘 백성,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400년 동안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까지 400년 동안 이 땅을 정복을 못한 거예요. 그 싸움 좋아하는 사울도 정복 못했고, 그 위대한 과거의 사사들, 기드온도 삼손도 못했고, 아무도 못한 거예요.
그런데 다윗이 그 땅을 "내가 수도로 정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 군사들을 거느리고 들어간 거예요. 여부스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만큼 이 성은 천혜의 요새예요. 그래서 자기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한 거예요.
여호수아 15장 63절 한번 봅시다. 이렇게 돼 있어요. 여호수아서입니다. 어디를 말하는지 잘 보셔야 돼요.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이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에게 주신 땅이거든요. 유다 지파의 땅이에요.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여호수아 15장에 나온 말씀이에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 정복을 명령하셨잖아요. 열두 지파에게 땅을 덩어리로 땅을 다 주셨어요. 그리고 거기에 잔당들, 게릴라로 남아 있는 게릴라전을 하고 있는 잔당들을 너희들이 각자 올라가서 다 쫓아내라 했거든요. 그런데 유다 자손들이 귀찮아서, 싸우기 싫어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전쟁하기 싫어서 안 올라간 거예요.
그래서 그때 쫓아내지 못한 여부스 족속이 400년 동안 여기에 대를 이어서 살고 있었다고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우리가 남북으로 이렇게 분단이 돼 있긴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지가 지금 몇십 년이 지났는데, 1953년에 휴전이 됐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도시 중의 한 도시가 아직 북한의, 그 당시 전쟁에서 물러나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국가의 기능이 상실된 거잖아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이걸 그냥 두고 보고 있었다고요. 그걸 다윗이 가서 정리하는 겁니다.
3-2. 천혜의 요새
그런데 왜 그 땅을 정복하기가 어려웠느냐 하면 한번 보시죠. 저 오른쪽 위에 보면 북쪽이라고 되죠. 글자 보이세요. 그리고 거기 635미터라는 표시가 보입니다. 이게 해발고도예요. 해발고도. 635m, 즉 예루살렘 성은 해발 635m 높이에 이 성이 있어요. 630m 정도 되면 산이에요. 산. 1000m 정도 이상은 아니라도 산이에요. 거기에 성이 있어요. 다윗성이라고 보이죠.
이 다윗성이 이렇게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천혜의 요새라서 아무도 정복할 엄두를 못 내는 거예요. 그런데 다윗은 정복을 했다고요. 어떻게? 거기 보면 이 다윗성, 이 성에는 예루살렘 성에는 샘이 없어요. 물을 먹지 못해요. 그래서 이 성 사람들은 동쪽에, 오른쪽에 보면 기드론 골짜기에 기혼 샘이라고 보이죠. 여기서 물을 수로를 만들어 가지고 물을 끌어다가 먹었다고요. 성 사람들이. 다윗이 이 수로를 타고 올라갑니다. 군인들을 보내요. 그래서 예루살렘 성을 정복합니다.
그게 지금 여기에 나오죠. 8절 사무엘하 5장 8절을 보시면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이게 중요하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그게 기혼 샘으로 올라가서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결국 다윗이 자기 부하들과 함께 가서 예루살렘 성을 정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에 또 다른 이름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일단 예루살렘이 우리가 제일 잘 아는 이름. 다윗이 정복했잖아요. 그 이후에 다윗이 계속 여기 살잖아요. 그래서 다윗성. 그리고 그 성의 산이 있거든요 주변에. 그 산이 시온산이에요. 그래서 시온 산성. 이 세 가지가 다 똑같은 이름입니다. 예루살렘 성, 다윗성, 시온 산성. 다 같은 이름이에요.
3-3. 정복의 의미
이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죠. 왜 의미가 있어요? 일단 인간적으로만 봐도 다윗이 왕이 됐어요.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정말 다윗이 우리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인물인가, 능력을 보여 줘" 이런 사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에게 다윗이 진짜 능력을 보여준 거예요. 400년 동안 쫓아내지 못했던 여부스 족속을 쫓아냈어요. 그리고 그 성을 정복했어요. 무주공산인 그 성을 정복하고 거기에 자기 수도를 삼았어요. 왕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거예요.
그다음에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시고 다 쫓아내라 했는데 400년 동안 정리하지 못한 걸 다윗이 정리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질적인 죄 문제, 그걸 다윗이 "이제는 내가 정리하겠다"는 걸 선언한 거거든요. 이제는 진짜 왕다운 왕이 된 거죠.
그리고 부차적인 이유로 살펴봐도 다윗이 유다 지파의 수도가 헤브론이잖아요. 유다 지파의 왕으로 있을 때는 헤브론에만 살면 됐는데, 이제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됐는데 그냥 유다 지파의 헤브론에 살 수 없잖아요. 그러면 파벌적인 왕이 되잖아요. 도읍을 옮겨야 되는데 어디로 가겠어요. 납달리 지파, 스불론 지파, 에브라임 지파, 누구 지파의 땅으로 가도 다 편든다고 할 거예요. 거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지 않는 땅을 정복해서 그 땅으로 들어가는 거죠.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첫 번째 한 거, 이건 굉장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다윗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10절에 보니까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이런 지혜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런 지혜가. 기혼 샘의 수로를 타고 올라가는 거, 이건 하나님이 주신 지혜죠. 그래서 성경이 이걸 설명해 주잖아요. 그래서 목자는 목자장을 잘 섬기면 목자장이 갈 길을 다 알려 주셔요. 그래서 우리가 목자장에게 항상 물어봐야 돼요. 그러면 양들을 잘 인도할 길을 알려주신다고요.
4. 블레셋과의 전쟁
이제 우리가 그냥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수도를 정했습니다. 그러면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찔러 보겠죠. 이렇게 찔러 보는데 그중에 제일 먼저 찔러 보려고 온 게 누굽니까? 블레셋이잖아요. 블레셋 지역에서, 빠지면 섭섭하죠. 블레셋이 쳐들어와요.
다윗이 왕이 된 후 블레셋 사람들의 동향이 어떠합니까? 17절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 올라왔다는 말은 블레셋의 다섯 족, 연합체, 5방백들이 전체적으로 전면전을 준비하고 올라왔다는 뜻이에요.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정말 다윗이 저 블레셋, 질긴 놈들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하죠.
그 바로 이전의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전사했잖아요. 사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잖아요.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다윗이 정말 잘해야 되는데 이 두근거림이 있는 거예요.
4-1. 여호와께 여쭈어
다윗이 어떻게 했을까요. 19절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이게 너무너무 중요하죠. 우리가 열왕기나 사무엘서를 읽어 보면 다윗에게는 항상 이것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닙니다. 이렇게 할 때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요. 여호와께 여쭈어.
왜 그렇습니까? 자기 정체성이 목자니까. 목자장에게 물어봐야 되잖아요. 목자는 양들을 안전하게 이끌고 보호하는 게 자기 책임이잖아요. 자기 마음대로 전쟁했다가 양들이 다 죽어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목자장에게 혼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어떻게 할까요?"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쟁했어요. 하나님이 그들을 물을 흩으시듯이 다 흩어 버리셨어요. 바알브라심에서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4-2. 두 번째 전투
그런데 블레셋이라는 족속이 한번 졌다고 곱게 물러날 인간들이 아니에요. 다시 또 들어와요. 악당은 이렇게 집요하잖아요. 23절 "또 전쟁하러 올라오니까" 다윗이 또 묻죠.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거 보세요. 또 물었어요. 다윗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이 목자니까 목자로서 목자장에게 묻는 거거든요.
물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아까 첫 번째 전투에는 "올라가라" 그랬잖아요. 똑같이 물으니까 두 번째 전투에는 하나님이 "올라가지 말라" 그랬어요.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작전 명령까지 다 내려 줘요. 물어보니까. 또 여쭤 보니까.
그래서 두 번째 전쟁도 어떻게 됐어요.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이제 블레셋은 당분간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두 번이나 패배하고 물러났기 때문에.
4-3. 물어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들
우리가 목자라면, 아까 말씀드렸죠, 우린 다 가정의 목자들이고 일터에 목자들이고 교회의 목자이고, 다 목자들이잖아요. 목자는 하나님께 항상 물어봐야 돼요. 목자장에게 아주 세밀한 것부터 큰 문제 작은 문제까지.
그런데 하나님께 묻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들이 있어요. 우리 분노, 혈기. 순간적으로 그때는 잠깐 분노와 혈기를 멈추고 기도하고 여쭤 봐야 돼요. 그리고 나서 그다음 행동하셔야 됩니다.
5. 언약궤 운반 사건
이제 다윗이 왕이 되고 큰일 두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는 수도를 정한 거, 예루살렘을 다윗성으로 만든 거죠. 두 번째는 블레셋을 정리해 버린 거. 이제 백성들이 다윗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겠습니까? "야, 사울 시절하고는 다르구나. 무리하게 용병을 사서 그들에게 월급 주며 이 나라 국방을 지켰던 사울과는 다르구나. 하나님께 항상 물어보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우리는 피해가 없고" 얼마나 좋아요. 백성 입장에서는 이런 왕이 또 어딨어요.
이제 이쯤 되니까, 제가 말씀드렸죠, 왕이 된다는 건 정치하는 자리라고. 이쯤 되니까 다윗이 정치를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제 다윗에게 뭐가 필요합니까? 이제는 권위가 필요한 거예요. 자기가 생각할 때 통치의 명분이 필요한 거예요. 그걸 당시 뭐라고 생각했느냐, 하나님의 언약궤라고 생각한 겁니다.
지금 다윗이 다윗성에, 예루살렘 성에 공고한 왕의 자리로 있어요. 그런데 뭔가 부족하잖아요. 하나님께서 나를 왕으로 인정하셨다는 그 인정하는 뭔가가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요. 그게 하나님의 언약궤라고 다윗이 생각한 거예요.
5-1. 언약궤의 행방
그 하나님의 언약궤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언약궤. 과거의 다윗이 출연하기 전에, 다윗이 아주 어렸던 시절에, 그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끌고 나갔다가, 가지고 나갔다가 전쟁은 지고 그들은 죽고 언약궤는 빼앗기고 엘리는 그 소식 듣고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이가봇, 사무엘상 3-4장에 나오는 사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이후에 블레셋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 봤어요. 자기 다곤의 신당에 모셔 뒀어요. 다곤이 무너지고 목이 부러지고 난리법석이 났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 여기 모셔도 될 수 없다" 해서 보내요. 그래서 그 보낸 하나님의 언약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오랫동안 거기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제 이 하나님의 언약궤만 모셔 오면 명실공히 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다"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든 거예요. 좋은 생각입니까? 나쁜 생각입니까? 좋은 생각이죠. 인간적으로 나가면 이보다 더 완벽한 생각이 있을 수 없어요. 인간적으로는. 그런데 거기에 그의 기도가, 문제가 있잖아요. 하나님이 이건 곱게 보실 리가 없습니다.
5-2. 3만 명의 과시
수도를 다윗성으로 정한 후 다윗이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6장 1절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하나님의 언약궤 모셔오는 데 3만 명을 모을 이유가 있어요? 이만큼 많은 무리를 과시하고 싶은 거예요. "이제 내가 통일 이스라엘의 대단한 왕이다" 이걸 과시하고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자기 자랑을 하고 싶은 거죠.
이 절이 중요하죠. "방신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메어 오다. 이것이 중요해요. 원래 하나님의 궤는 민수기에 보면 어떻게 돼 있어요? 메어 오도록 했죠. 다윗도 이걸 알았다고요. 하나님의 궤를 메어 와야 되는 걸 알고 있어요. 메고 와야 되는 걸. 누가? 레위 자손의, 고핫 자손이,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동할 때는 메고 와야 돼요.
5-3. 새 수레
그런데 3절 보세요.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하나님의 궤를 메고 와야 했는데 갑자기 수레에 싣고 오네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 누구네 집에서 나옵니까?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수십 년 동안 방치돼 있던 하나님의 궤가 거기서 나와요.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요즘으로 말하면 신형 자동차 거죠.
3절, 4절 보세요. "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니라" 군악대, 오케스트라, 활의 악대를 앞에다가 두고, 그다음에 주문 제작한 아주 대단한 브랜드의 자동차를 모셔 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딱 모신 거예요. 그리고 3만 명을 연도에 쭉 집결시켜놓고, 그리고 왕의 권세를 드러내는 거죠.
다 좋아요. 전부 다 화려하고 다 완벽해요. 다 좋은데 한 가지 딱 안 좋은 게 있어요. 한 가지 문제. 그게 뭐예요. 말씀대로 하지 않은 거예요.
5-4. 민수기의 명령
민수기 4장 15절 제가 읽을게요. "진영을 떠날 때에" 진영을 떠날 때라는 말은 움직일 때라는 말이에요. "움직일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친 후에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메고 가라 그랬죠. 언약궤는.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만지면 안 돼요. 어떻게 돼요? "그들이 죽으리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니라" 메고 가야 되죠.
지금 다윗이 한 거 다 좋아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만 명이 모였고, 군악대와 오케스트라가 모였고, 주문 제작한, 요즘으로 치면 벤츠 최신형이 와서 언약궤를 모시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다 좋은데 말씀이 빠져 있습니다.
5-5. 웃사의 죽음
어떻게 돼요. 6절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우린 여기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만약 우리가 거기 있었다면 소가 뛰는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막 비틀거리고 넘어질 듯했는데, 그거 안 붙잡겠어요? 붙잡겠죠. 당연히. 그런데 왜 하나님이 웃사를 쳐서 그를 죽이셨는가?
보세요. 아비나답의 집에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가 모셔져 있었다고요. 그렇다면 이 아비나답과 이 아들 웃사와 아효는 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를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봤으면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하나님의 언약궤를 왕이 모시고 가는데 자기들이 왜 앞장서서 거기서 연도에서 3만 명의 환호를 받고 앉아 있습니까?
아비나답은 "내가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셨기 때문에" 자기 공을, 자기 의를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내가 수십 년 동안 이 언약궤를 모셨는데 이제 왕이 모셔 가니까 여기에 돈을 달라, 혹은 나를 인정해 달라, 관직이라도 달라, 우리 아들을 여기에 앞장 세워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얼굴이라도 나타내게 해달라" 자기의 의를 나타내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이 잘못한 게 뭡니까? 하나님의 궤를 만지면 죽는다는 사실을 성경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이놈들이 자기 자랑을 하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데, 수십 년 동안 관리는 했는데 성경을 읽지 않았어요.
5-6.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건 마치 오늘 우리에게 뭐와 같으냐 하면, 교회 장로로, 권사로, 목사로, 집사로 수십 년 동안 봉사는 했는데 성경 1절 읽지 않은 것과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이 뭘 좋아하시는지, 하나님이 뭘 싫어하시는지, 교회 가방 들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나 수십 년 동안 우리 교회 교인이라고 사람들에게 다 자랑하고 다녔는데, 나 교회에서 칠순 되었다고 잔치한다고 사람들 와 가지고 수건도 나누어 주고 다 했는데, 그런데 성경은 몰라요.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이 죽는지, 어떻게 하면 내 영혼이 사는지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요.
그래서 죽는다고. 이렇게. "내가 수십 년 동안 교회라고 봉사했으니까 나 인정해 주십시오. 나 인정해 주십시오." 웃사가 죽은 건 다윗의 공명심과 자기 아버지 아비나답의 무식함과 아들 웃사와 아효의 성경 읽지 않음이 함께 결합된 작품이에요. 다 똑같은 인간들이에요. 우리도 이 사람들 욕할 이유가 없어요.
교회에서 자기 직책 자랑하고, "열심히 내가 이거 이렇게 섬겼다"고 자랑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내가 알고 있고 읽고 있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은 얼마나 살고 있는지 이걸 돌아봐야 되는데. 만약 웃사와 아효가, 아비나답이 민수기의 말씀을 한 자라도 읽었다면 자기 두 아들 앞세우지 않아요. "우리는 수십 년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영광입니다. 그러니 모셔 가십시오. 이제 우리는 이걸로 우리 사명 다 했습니다" 이래야 정상 아니에요?
그런데 교회에서도 자기가 봉사한 거 알아달라고, "내가 여기서 안 한 게 뭐가 있냐고, 얼마나 내가 열심히 뼈 빠지게 봉사했는데 알아달라"고. 그런데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님 말씀에, 그들은 정말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깊이 읽고 묵상하고 있는지 그걸 돌아보셔야 돼요. 그러지 않으면 우리 영원히 죽어요. 웃사가 여기서 죽은 것처럼. 이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과 같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 수십 년 모셨다고 자랑할 거 하나도 없고, 자기 아들 앞세울 거 하나도 없고, 알아달라고 얘기할 필요 하나도 없고. 모르니까 소가 뛰니까 그거 붙잡아서 죽은 거 아닙니까?
5-7. 다윗의 두려움
이렇게 되니까 9절 보십시오.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두려워하여. 왜 두려워했을까요. 들킨 거죠.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을 들킨 거예요.
통치의 정당성과 명분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 오려고 하는 거, 첫 번째 다윗의 죄죠. 두 번째, 다윗이 알고 있어요. 어깨에 메어 와야 되는 거. 그런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내가 그래도 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인데 멋지게 보이고 싶고 화려하게 보이고 싶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거, 이게 찔리는 거예요. 이게 두려운 거예요. 사실은 내가 죽어야 되는데, 사실은 내가 죽어야 되는데 웃사가 죽었구나. 그래서 두려워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 오지 못했어요.
다윗이 왕이 되고 난 이후에 과거의 광야 시절과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달라졌죠. 예루살렘 성 정복하는 것,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이건 잘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정치적 의도가 들어가잖아요. 하나님 앞에서는 순수하게 순전하게 해야 되거든요. 다윗이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한 거 아닙니까? 따지고 보면 이게 홉니와 비느하스와 다르게 뭐가 있습니까? 똑같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그런 만만한 분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라고요. 내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왕권을 강화하고, 내가 하나님을 이용해서 남들에게 멋지게 자랑하려고 하고, 그런 하나님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얼마나 간단하고 단순합니까? 그런데 타락은 이 단순하고 간단한 것에서부터 비껴 갈 때 그때부터 타락이 시작됩니다.
5-8. 오벳에돔의 복
그런데 보세요. 11절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수십 년 있었는데 아들이 죽었어요. 복이 없습니다. 그 집은. 오벳에돔의 집에서 석 달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와 그 온 집에 복을 주셨다 그랬어요.
뭘 의미할까요. 신앙은 연수로 자랑하는 게 아니에요. 뭐 몇 대째 신앙인이고, 우리 할아버지가 어쨌고,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뭐 옛날에 선교사님과 교회를 몇 개 세웠고, 이거 다 쓸데없는 얘기예요. 전부 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게. 지금 내가 예수님 어떻게 믿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석 달 모셨는데 말씀대로 잘 모시니까, 말씀대로 행하니까 하나님이 그와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 그렇죠. 다윗에게 희소식이 들려요.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 반색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걸 다윗이 깨닫고 다시 하나님의 궤를 모시러 가요.
5-9. 다시 모셔 오다
12절 보세요.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벳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는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벳에돔의 집에서 다윗성으로 올라갈새" 이제는 수레에 모시지 않아요. 기쁨으로 어떻게요? 메고. 말씀대로 하죠.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는데 그때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메어 왔다 그랬어요. 이제 백성들은 잔치를 하고 이제 야단났죠.
6. 미갈의 업신여김
그런데 하나님의 궤가 다윗성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는데 다윗이 베 에봇을 입고 춤을 추다가 옷이 좀 흘러내렸나 봐요. 이걸 사울의 딸 미갈이 봤어요.
16절 보세요.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우리가 이 말씀 많이 듣고 잘 알죠. 그죠. 그런데 여기 미갈의 죄가 아주 심각해요.
6-1. 창밖으로 내다보다가
"창밖으로 내다보다가" 그랬죠. 그러면 미갈은 지금 여기에 이 아름답고 행복한 잔치에 자기가 참여하지 않는 거예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거잖아요. 그렇잖아요. 지금 하나님의 궤가 한 번 실패한 거 아닙니까? 석 달 전에 한 번 실패했잖아요. 다윗이 돌아와서 얼마나 상심하는지 봤잖아요. 자기가.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이제 하나님이 오벳에돔의 집에 복을 주시는 걸 알고 다시 가서 어깨에 메어 오는데 온 이스라엘이 다 잔치예요.
온 이스라엘이 다 기뻐해요. 여기 보셔요. 나오잖아요. 19절 사무엘하 6장 19절 보시면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모든 백성이 잔치하는 자리이거든요. 전부 잔치하는데 자기 혼자 창밖으로 이걸 내다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업신여기는 거예요. "왕이 체통 없이 잘한다"고.
그렇게 되니까 다윗이 이 말을 듣고 어떻게 얘기해요. 그런데 그거 마음으로만 업신여긴 게 아니고요, 다윗에게 이런 얘기까지 해요. 20절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들어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여종들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6-2.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그러니까 다윗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21절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이 한마디가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우리가 미갈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예배 공동체 안에 깊숙이 들어오지 않으면서 예배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지 않아요. 기쁨으로 찬양하지도 않아요. 마음 다해 말씀 듣지도 않아요. 그리고 기도자가 기도할 때 함께 기도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찬양대 찬양을 평가하고, 설교를 평가하고, 기도자를 평가하고. 교회 공동체에 깊숙히 발을 들여놓지 않아요. 봉사하지 않아요. 그런데 교회 봉사자들을 평가하고.
하나님의 일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죠. 하나님의 일 열심히 하다 보면 인간적인 열심이 지나쳐서 과실을 범할 수도 있고 잘못할 수도 있죠.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가지고 업신여기고 평가하고 욕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그 사람이 옳습니까? 열심히 뛰어들어서 주의 일 하다가 실수하고 다시 바로 잡아 가는 사람이 옳습니까? 하나님은 후자를 더 기뻐하실 것 아니에요.
미갈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인간이에요. 자기는 일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열정적으로 주의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열정적으로 예배 드리지 않으면서 예배를 평가하고 성도를 평가하고 교회를 평가하는 자들이에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 소리 들으면 힘이 빠지죠. 시험에 들죠. 확 안 하고 싶죠. 얼마나 기쁜 날이에요. 지금 다윗에게 얼마나 기쁜 날입니까? 그런데 다윗이 거기에 넘어져서 은혜를 쏟아 버리지 않아요. "나는 이 일은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이 말이 뭡니까?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6-3. 열매 없는 인생
그래서 어떻게 돼요. 23절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다윗이 가까이하지 않았다는 얘기에요. 이걸 영적으로 보면 그의 인생에 열매가 없다는 얘기거든요.
예배에 가까이 들어가지 않고, 주의 일에 열심히 봉사하지 않고, 그러면서 입만 살아 있는 자들, 하나님이 그의 인생에 열매 주시겠습니까? 그의 인생에 열매 맺히게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열매 없습니다. 어떤 열매도 그의 인생에 맺히지 않아요.
뛰어들어서 열심히 일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부대끼면서 문제가 있으면 서로 조율하고 풀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지. 미갈 같은 인생, 그런 인생 정말 교회 안에 많습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면 곤란해요. 열심히 일하고 섬기고, 창밖으로 내다보고 거기서 불평하며 말하되 주나라.
이게 뭡니까? 이 즐겁고 기쁜 잔치를 다윗이 이걸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넘겼다는 사실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광야 시절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있었고 그 안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았지만 이제는 정치인이 되어야만 해서 오히려 더 험난한 영적 투쟁을 해야 합니다.
주여, 오늘 우리에게도 광야 시절이 오히려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주여, 가나안에 들어온 이후 우상숭배에 넘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주여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다윗이 하나님께 항상 여쭤보고 목자 정체성을 가지고 목자장이신 하나님께 항상 물어보고 기도하며 나아갔던 것처럼, 주여 우리도 우리 가정에서 목자이며, 일터에서 목자이며, 교회 공동체에서 목자이오니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고 행동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양 떼를 향하여 마음을 두고 부지런히 살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주의 능력 임하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그와 웃사와 아효 같은 자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열심히 주의 일에 섬기고 봉사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들 되도록 도우시고, 하나님의 일에 섬기고 봉사하고서 우리 자랑과 자기 공과 자기 의를 드러내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또한 오늘 우리에게 믿음과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항상 배우고 깨달은 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기억한 것 마음에 깊이 새기고 주의 능력과 은혜 따라 나아가도록 도우시고, 미갈 같은 미련한 자가 되지 않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