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특강 16 - 압살롬의 반역, 그 이후 (삼하 15-17장)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사무엘하 15:5-6)
오늘은 사무엘하 15장부터 17장까지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사무엘상하 공부 열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이제 오늘을 포함해서 세 번만 더 하면 열여덟 번째에 대장정을 다 마칩니다. 사실 사무엘상하 공부는 이야기로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점은 들을 때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 재미있는데,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 휘발성이 강해서 다 날아가 버리고 내가 뭘 들었지 기억이 별로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 공부하고 나면 한두 번 들춰 보시고 살펴보시며 교훈도 새겨 보시면 훨씬 더 잘 새겨질 것 같습니다.
1. 반역의 전조
오늘 우리가 함께 공부할 내용은 압살롬의 반란입니다. 다윗이 왕위를 찬탈당합니다. 그것도 자기 친아들에게서 왕위를 빼앗깁니다. 엄청난 사건이지요. 사실 왕권을 찬탈당하고 왕이 왕좌에서 내려오는 일은 그 나라의 역사에서 백 번 일어나지 않는 아주 드문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라는 아주 위대한 왕이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깁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사건은 그냥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이전부터 계속해서 누적되어 왔던 문제들이 이런 사건으로 한번 펑하고 터진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압살롬의 반란이라는 외면에 보이는 것만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차곡차곡 쌓여져 왔던 전조가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전조의 문제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다가 어느 날 임계점을 넘으면 펑 하고 터지는 것이거든요.
1-1. 다윗의 원죄
압살롬의 반란 이전에 어떤 문제들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계속 봐왔던 것인데, 일단 원죄라는 표현을 좀 사용하면 다윗의 원죄가 있지요.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으로 있을 때, 그때 맞이한 부인이 여섯 명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 여섯 명마다 아들이 하나씩 다 있었습니다. 아들이 여섯 명이에요. 부인이 여섯 명이고, 나중에 밧세바가 또 솔로몬을 낳았잖아요. 미갈도 있었는데 미갈은 자녀를 낳지 못합니다. 나중에 말년에 아비삭까지 총 아홉 명이에요. 그런데 그중에 미갈과 아비삭을 빼면 왕자만 일곱 명입니다. 당연히 어머니가 다 다르니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자기 스스로 만든 것이지요.
1-2. 밧세바 사건의 징계
더 심각한 것은 다윗과 밧세바와의 범죄입니다. 하나님이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셨지요. "네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굉장히 무섭게 임하는 것입니다. 이미 환경이 다 마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암논이 자기 배다른 자매 다말을 연모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사랑이 아니었어요. 육체의 욕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다윗이 분별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분별력이 없으니 나중에 사고가 터집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윗이 암논을 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과거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지요. 압살롬도 벌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살인자니까요.
참 묘한 것이 다윗이 범한 범죄가 간음과 살인이잖아요. 결국 그 아들들이 간음의 문제, 성적인 문제, 살인의 문제, 그 두 가지 치명적인 범죄를 다시 저질렀는데, 그 문제를 아들들이 반복합니다. 그러니 아버지로서 자신이 없는 거예요. 이것을 다스릴 수 있는 영적인 자신감이 없어요. 그렇게 머뭇대고 있는 시간 동안 이 상황은 계속해서 곪아 가고 문제가 생기지요.
1-3. 회개 없는 사면
그런 상황에서 압살롬을 그냥 사면해 버렸습니다. 회개가 있어야 사면이 있는 것이지요. 회개가 있어야 용서가 있는 것인데, 회개하지도 않았던 그 압살롬을 그냥 사면해 버렸습니다. 엄연히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 엄연히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법이 있는데, 우리가 아는 다윗이 하나님 율법과 말씀의 법을 자기 스스로 깨 버린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 압살롬 반란의 전조입니다. 이게 무르익으니까, 이런 상황이 되니까, 사탄이 가만히 보니까 이제 때가 온 거예요. 그런 때가 온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펑하고 터지고 나면 우리는 문제에만 집중하는데, 그 문제 이전에 있었던 상황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자기 성찰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똑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어디서부터 내가 넘어졌는가, 이걸 돌이켜 봐야 합니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서 고치고 꿰매고, 회개할 것 회개하고, 청산할 것 청산하고, 그게 인생을 새롭게 사는 과정이거든요. 그런 과정을 살지 않으니까, 덮고 싶으니까, 그런다고 지워집니까? 그런다고 지워질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해서 상황이 아주 심각해집니다.
2. 반역을 준비하다
다윗에게 자존심이 상한 압살롬은 어떤 방법으로 민심을 얻었습니까? 15장 2절입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2-1. 사탄의 성실함
'일찍 일어났다' 하는 말이 중요한데요. 뭔가 사고를 치려고 해도 성실해야 되요. 사탄이 보면 굉장히 성실합니다. 하나님이 성실하시잖아요.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지금도 다스리시는 하나님, 만약에 하나님이 성실하지 않으셔서 "미안, 오늘 내가 깜빡하고 해를 못 띄웠어" 하시면 어떻게 되요? 그러면 난리 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성실하신데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다는 것이거든요. 그중에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있는데, 사탄도 하나님의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사탄도 하나님을 모방하는데, 사람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얼마나 성실한지 모릅니다.
요셉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동침하기를 청했다잖아요. 자존심 상하지 않아요? 사실 한두 번 거절당했는데, 그런데 얼마나 성실하냐 하면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날마다 청하는 거예요. 그게 사탄의 성실함이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사탄의 성실을 이기려면 우리는 더 성실해야 되는데, 전쟁에도 나가지 않고 게으르게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낮잠이나 주무시다가 일어나 가지고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이러면 그때부터 끝이에요. 이미 끝난 거예요. 자기 자리를 이탈하고 성실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들, 절대로 사탄의 속임과 계략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게으르다는 것, 지금 압살롬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것을 매일 하는 거예요. 얼마 동안 했을까요? 뒤에 보면 나오는데, 무려 자그마치 사 년을 합니다. 이 짓을 이 정도로 성실하니까 그래도 반역이라도 하고 나라라도 가져가는 거예요. 우리가 이것을 꺾어서 이기려면 우리는 이것보다 더 성실해야 하는데요.
2-2. 왕을 깎아내리다
3절을 보세요.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 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겸손한 척하면서 왕을 헐뜯어요. 겸손한 척하면서 사탄의 작전은요, 하나님의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넘어뜨리려고 하는 대상이 있잖아요. 그 넘어뜨리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서 굉장히 자신을 포장하면서 그 사람을 이렇게 넘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여기서 분별력이 있어야 되는데 이 백성들을 보면 분별력이 없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성실하게 압살롬은 나서서 백성들 앞에서 왕에게 재판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가로채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왕을 교묘한 말로 헐뜯고 왕을 욕보이고 있습니다.
2-3. 하나님 말씀 위에 서다
4절을 보세요. 4절이 심각해요.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를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내가 재판관이 되고 내가 정의를 베푼다' 했잖아요. 지금 이게 가장 심각한 죄예요. 하나님은 이것 때문에 압살롬을 벌하신 겁니다.
자, 이스라엘은 신정 국가입니다. 신정 국가라는 말이 어떤 뜻이에요? 기준이 뭐예요? 뭘 기준으로 다스린다는 겁니까? 말씀을 기준으로 다스린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의 법이 뭡니까? 왕의 법입니까? 왕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까? 아니에요. 왕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정의이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곧 정의와 공의가 되는 것이거든요. 왕과 제사장은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그런데 지금 압살롬이 하는 말 보세요. "내가 재판관이 되고 내가 정의를 베푼다" 그랬어요. 그러면 이 말이 뭡니까? 내가 성경의 권위보다 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성경보다, 너희들 억울함과 너희들 기분 나쁘고 화나는 것을 성경의 권위를 넘어서서 내가 해결해 주겠다는 뜻이에요. 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자기 아버지에게 반역하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 압살롬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보다 더 위에 있는 거예요. 왜 이렇게 할까요? 그런데 왜 다윗은 이 말을 첩보를 통해서 알고 있고 왕궁 앞에서 이런 짓을 하는데도 다윗은 아무런 제재도 못하는 걸까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서 아들을 사면시켜 줘 버렸잖아요. 말씀대로 적용하지 않았잖아요. 다윗이 범한 죄가 성범죄요, 암논이 똑같은 죄를 범했는데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한 마디도 못하잖아요. 다윗이 범한 살인, 압살롬이 범하는데 한 마디도 못하잖아요. 이런 죄 지은 압살롬을 다윗은 사면시켜 줬어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자기 마음대로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압살롬이 성경의 권위를 넘어서 자기가 정의를 베풀고 자기가 재판관이 되겠다 하는데도 한 마디도 못하는 거예요. 지은 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엄마나 아빠는 교회 장로면서, 집사면서, 권사면서 성경 말씀대로 살지도 않으면서" 이런 말 절대로 들으면 안 됩니다. 결단코 그런 말 들어서는 안 되요.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되면 영적인 권위가 하나도 없어져요. 가족이니까, 편하니까, 나와 친한 사람이니까, 편하니까, 그럴수록 더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 주셔야 되요.
이렇게 되니까 다윗이 무슨 권위가 있습니까? 무슨 영적 권위가 있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내가 정의를 세운다" 그리고 "내가 재판관이라"고 그러는데, 그렇게 버젓이 백주대낮에 아침부터 돌아다니는데, 이 인간 하나를 다윗이 제재를 못하는 거예요. 자기도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넘어서서 사면시켜 줘 버렸으니까요. "아버지도 그랬잖아요." 이 한 마디에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거예요. 슬픈 일이지요.
2-4. 민심을 훔치다
5절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셋째 아들, 왕의 셋째 아들, 지금 재판관 행세를 하고 있는 압살롬에게 절하려 하는데요.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아니 사람들 마음이 어떨까요? 겸손하기까지 해요. 손을 잡아 주고 백성들에게 입을 맞추기까지 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감동을 하는 거예요. "야, 이분이야말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한번 상상해 볼까요? 사람마다 재판 받으러 오는데요, 재판하러 오는 사람들 마다, 자기가 억울해서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하나님 말씀을 어겼는데 거기에 걸린 것을 오히려 누구에게 누명을 씌워 오는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마다 압살롬에게 딱 걸리는 거지요. 압살롬에게 딱 걸려서 그런 얘기를 해요. 그러면 압살롬이 무조건 그 사람 편에서 해결해 주는 거예요. 왕자의 권위로. 하나님의 말씀 필요 없어요.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삶의 기준은 뭡니까? 누가 재판관이에요? 하나님이 재판관이고 말씀이 재판관이잖아요. 말씀의 권위에 딱 눌려 있던 사람들, 하나님 말씀이 어떤 식으로든 자기의 삶을 주관하고 좌우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내가 가서 얘기하기만 하면 다 들어 주거든요. 초법적으로 자기에게 다 들어 주거든요. 가서 그냥 왕에게, 왕의 아들에게 가서 울기만 하니까 다 해 주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을 훔치는 거지요.
대통령 지지율이 50% 넘기가 쉽습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대로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말씀을 그대로 적용시키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적용시키면 그 사람 인기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인기가 있을 수가 없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그대로 얘기하면, 부모가 하나님 말씀대로 자녀와 가정을 한번 다스려 보세요. 인기가 있는가? 인기가 있을 수가 없지요.
가끔 교회도 목사를 찾아오는 분들이 계신데, 와서 이런저런 하시는 거 들어보면 우리 교인일 때도 있고 다른 분들일 때도 있는데, 주로 이제 돈 얘기를 하시는 분들은 외부인들이거든요. 목사가 교회 재정을 다 알아서 하는 줄 알고 오셔서 막 얘기를 하셔요. 그런데 거기서 목사가 그것을 결정, 그 자리에서 하는 게 정상입니까? 못하는 게 정상입니까? 당연히 못하도록 구조가 되어 있어야 정상 아니에요?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하더라도 당회를 통해서 의견을 모아 보고, 제직회를 통해서 예결산 심의를 해 보고,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올해 예산이 잡혀 있지 않으면 내년 예산에 반영을 시켜서 공동의회를 통해서 교인들의 의견을 묻고, 그게 정상이잖아요. 그런데 오시는 분들에게 "어 그래요?" 하고 전화해 가지고 얼마 가져오셔서 줘 버리면 그게 목회를 잘하는 겁니까? 그게 불법이지요. 성경대로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 말씀대로. 그런데 그렇게 오는 대로 다 해결해 주면 사람들 마음을 훔치지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요. 보기엔 더 시원시원하고. 그런데 그건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입니다. 모든 게 법이 있고 질서가 있고 원칙이 있는 것이잖아요.
지금 압살롬은 하나님 말씀에 법과 정의와 질서와 원칙을 자기 기준으로, 자기 마음대로 갈아 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다윗이 이것을 제지해야 되는데 자기가 그렇게 한 전력이 있어서 제지하지 못하고, 두 번째는 백성들이 분별력이 있어야 되는데 백성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없는 거예요. 백성들에게 영적 분별력이...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나쁜 건 줄 백성들도 알아요. 아는데 당장 내 문제를 해결해 주니까, 내가 급한데 해결해 주니까, 지금 이런 식으로 해서 백성들 마음을 훔치는 거지요.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되요. 어떤 게 진리고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지금 당장 네 입에 달콤하다고 해서 그것 계속 빨아 먹고 있다가는 이 다 상해요. 건강 망쳐요. 큰일납니다. 국가재정을 쓰는 것도 그렇고, 정의와 법에 의해서 국가가 통치가 되어야 되는데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해 버리고, 교회 공동체나 어디나 지금 이렇게 돼 가는 거예요. 나라나.
2-5. 사 년간의 준비
7절을 보세요.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이것을 몇 년 했다고요? 사 년. 저는 다윗이 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가만히 있는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 보세요. 암논이 자기 배다른 자매 다말에게 사랑의 표현이 아니고 육체적 욕망으로 여인을 더럽혔잖아요. 그리고 나서 이 년이에요. 이 년 동안 압살롬이 칼을 갈았거든요. 그런데 그 이 년 동안 다윗이 가만히 있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암논을 벌주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어요. 꿀이에요. 그냥 인연을 기다리다가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했습니다.
그술 땅에 가서 삼 년을 있었습니다. 다윗이 온 지역 이스라엘 주변 나라를 다 복속시켰잖아요. 그술 나라가 어떤 나라예요? 다윗의 완전한 영향력 아래 있잖아요. 잡으려고 하면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술에서 삼 년이에요. 그리고 예루살렘에 오고 나서 이 년 동안 또 다윗 앞에 나오지 않고, 이 년 지나서 다윗 앞에 나와서 회개도 하지 않고 사면받았어요. 그 사면이 있은 후 사 년입니다.
총 몇 년이에요? 2 더하기 3, 5, 더하기 2, 7, 더하기 4, 칠 년이거든요. 사람이 기다리면 얼마든지 기회가 오거든요. 근데 칠 년을 다윗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큰 문제가 있다면 잘못한 것도 문제지만 그 잘못에 대해서 그다음의 대처, 그것을 다 놓쳐 버린 겁니다.
3. 다윗의 피신
3-1. 예루살렘을 떠나다
다윗이 예루살렘성을 떠납니다. 다윗 옆에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왕으로 있을 때는 어떤 놈이 내 편인지 몰라요. 그런데 왕권을 빼앗기고 도망갈 때는 진짜가 드러나고 가짜가 드러납니다. 지금 다윗의 막내 부인 중에 하나가 그술의 왕 딸인데 이름이 마아가거든요. 그술 왕의 딸 마아가가 낳은 아들이 압살롬이에요.
그러니까 다윗의 장인이 어딨어요? 그술에 있잖아요. 암논을 살해하고 어디로 도망갔어요? 그술로 갔잖아요. 외갓집으로 간 거예요. 압살롬의 외할아버지가 다윗에게는 장인인데, 그술 왕이거든요. 그런데 다윗이 자기 장인의 나라에 압살롬이 도망가 있을 때 압살롬을 잡으려고 하면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압살롬이 그술에서 삼 년 동안 있었어요. 삼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거예요.
3-2. 가드 사람 잇대
이제 도망갈 때 따르는 무리 중에 가드 사람 잇대라는 사람이 있어요. 가드가 블레셋이에요. 블레셋 가드는 어떤 곳입니까? 골리앗의 고향이에요. 골리앗을 다윗이 어떻게 했어요? 죽였죠. 다윗에 의해 죽임당한 골리앗의 고향 가드에서 온 사람이 잇대입니다. 18절 보세요.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려느냐 돌아가서 왕과 함께 있으라"
이 사람들, 다윗을 따라나서는 가드 사람 육백 명이에요. 600명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거든요.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에요? 블레셋 이방인들이에요. 다윗을 철저하게 따르기로 결단했던 사람들이에요. 어쩌면 이 사람들은 뭐 이스라엘 사람들도 등을 돌리는데 다윗을 따르잖아요. 이 사람들이야말로 이스라엘보다 더 이스라엘이에요. 그것을 따지면요. 이방인이었지만 다윗 왕을 따르기로 결단한 거지요.
우리도 원래 이방인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이에요.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따라야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따라야지요. 예수를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은 끝까지 따라야 되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따라야 합니다.
다윗이 말하지요. "돌아가거라. 외국인인 네가 뭐하러 고생을 하느냐." 그랬더니 21절에서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아, 잇대가 굉장한 고백을 하지요. 이거 룻의 고백 같잖아요. 죽든지 살든지 왕이 가는 곳에 종이 가겠습니다. "돌아가서 왕과 함께 있으라"고 했는데 자기 주인은 다윗뿐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가드 사람 육백 명입니다.
3-3. 사독과 아비아달
그다음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등장하지요. 26절입니다. "왕이 또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성으로 도로 메어 가라 내가 만일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사 내게 그 궤와 계신 곳을 보이시리라" 다윗의 믿음이 놀랍지요. 하나님이 다윗을 쫓아온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피난 가려고 했는데 다윗이 거절합니다. 하나님 궤는 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야 되요. 돌아가셔야 되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안 계셔서 우리가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만일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으면 여호와께서 나를 돌아오게 하시고 그 궤와 계신 곳을 보게 되겠지요. 만일 은혜를 얻지 못하면 못 오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게 다윗의 믿음이에요.
3-4. 감람산에서 기도하다
이제 감람산에 올라갑니다. 30절.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니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그들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더라" 아이들이 동산에 올라가 피크닉 가는 게 아니에요. 울면서, 맨발로 산을 올라가요. 산을 올라가서 뭐해요? 거기서 뭐해요? 32절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산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에" 다윗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산 꼭대기, 지금 그 산이 뭐예요? 감람산이잖아요.
여러분,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다윗이 감람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기도한 것은 그 이후로 천 년 후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의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피땀 흘리며 기도하셨는데, 그 예표가 천 년 전에 다윗에게 있었던 거예요.
다윗의 고통을 통해서 시편이 기록되고, 그 시편 중에 메시아 시편들이 있어서 그 시편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아직 이 땅에 오시기 전인데 천 년 전 다윗이 감람산에 기도하는 모습에서 천 년 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있지요. 이것이 예표이고 이것이 성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겪은 이 고통이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3-5. 후사이를 남기다
후사이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끼얹고 산 꼭대기로 온다고 그랬어요. 33절과 34절 보세요.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가면 네가 나의 짐이 되리라 네가 도로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이르기를 왕이여 나는 왕의 종이 되겠나이다 전에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 되겠나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계략을 파하리라"
후사이더러 고향으로 가라고 한 거예요? 아니지요. 왕궁에 남아서 압살롬에게 붙으라고 한 거예요. 왜요? 아히도벨의 계략을 파하기 위해서예요. 다윗에게 책사가 둘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아히도벨과 후사이. 그런데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편에 제일 먼저 붙어 버렸어요. 지금 다윗이 진짜와 가짜를 딱 분별하는 거예요.
4. 참과 거짓의 분별
4-1. 므비보셋의 종 시바
16장에 가면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나옵니다. 므비보셋이 누구예요? 사울 집안의 유일한 적통인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사울 집안이잖아요. 그래서 다윗이 베푸는 은혜로만 왕궁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 므비보셋에게 시바라는 종이 있었는데, 16장 1절에서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에 빵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으니"
갑자기 분위기 좀 괜찮아요? 안 그래요? 막 도망가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음식도 가지고 왔어요. 2절에 "왕이 시바에게 묻되 이것들을 가져온 뜻이 무엇이냐 하니 시바가 대답하되 나귀들은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빵과 여름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사람들이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좀 고맙지요? 그런데 3절에 다윗이 물어봅니다.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은 어디 있느냐 시바가 왕께 대답하되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며 이르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도로 주리라 하더이다" 시바가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예요. 므비보셋이 그런 사람이에요? 어쨌든 그런데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시바가 나중에 므비보셋의 재산을 다 자기 것으로 차지하려고 자기 주인을 저버리고 모함하는 거예요.
4절에서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의 소유가 다 네 것이니라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지금 다윗이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다윗이 지금 판단력이 흐려져 있어요. 지금 판단력이 떨어져 있어요. 나중에 보면 시바가 거짓말을 한 게 드러나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윗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이 배신자 시바에게 속은 겁니다.
4-2. 시므이의 저주
16장 5절에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니 거기서 사울의 집안에 속한 사람이 나오니 그의 이름은 시므이요 게라의 아들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막 돌을 던져요. 왕을 향해서 돌 던지고 저주하고 있어요. 아비새가 뭐라고 합니까? 13절에 "다윗과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기슭으로 다윗에게 맞은편으로 가며 저주하고 돌과 티끌을 던지니"
9절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아뢰되 어찌하여 이 죽은 개가 내 주 왕을 저주하게 하시나이까 내가 건너가서 그의 목을 베겠나이다" 실제로 아비새가 가면 바로 목을 벨 수 있지요. 그런데 다윗이 10절에서 11절에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기 때문이니 누가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행하느냐 말할 수 있느냐 하고 다윗이 또 아비새와 모든 신하에게 이르되 보라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시므이가 베냐민 사람이에요.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 두라"
다윗이 이 일을 겪고 나서 탄식하며 지은 시가 시편 7편이거든요. 시편 7편의 표제어와 1절, 2절 한번 볼까요? "다윗이 시가요 베냐민 사람" 베냐민 사람이라고 얘기하지요. "구스의 말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드린 노래.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건져내소서 건져낼 자가 없으면 그들이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 것이니이다"
다윗의 마음이 느껴지시지요?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밖에 나를 건질 분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지금 사람들이 나를 저주하고 돌을 던지고 이렇게 욕을 하는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가는데 너무 괴롭습니다. 이러고 지금 가는 거예요.
보시니까 어떤 느낌이 드세요? 시므이같이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 혼란기를 틈타서 자기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시바 같은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별력을 가지고 다윗 당에게 충성하는 가드 사람 잇대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다 다양하게 있지요.
그래서 왕으로 있을 때는 어떤 놈이 내 편인지 몰라요. 다윗에게 책사가 둘이 있었다고 했지요. 아히도벨과 후사이. 그런데 아히도벨과 후사이 중에 후사이는 지금 목숨을 걸고 왕궁에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아히도벨은 압살롬의 편에 제일 먼저 도망가 버렸어요. 지금 다윗이 진짜와 가짜를 딱 분별하는 거예요.
이게 우리에게 영적으로 어떤 느낌을 줄까요? 심판 날 참과 거짓이 갈라지고, 우리 인생도 인생의 위기가 닥치면 내가 진짜 하나님 앞에 참 성도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내 믿음이 입술로만 고백하는 가짜였는가 이게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흙으로 빚어진 육체라서 아플 수 있잖아요. 병들 수 있잖아요. 상상하기 싫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 수 있잖아요. 그때 나의 진짜 내 믿음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때 나는 내 믿음을 어떻게 내보이시겠습니까?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도 나는 분별력을 잃지 않고 하나님 앞에 살겠다고 지금 우리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런 상황이 닥칠 때 참과 거짓, 양과 염소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거예요. 평소에는 몰랐잖아요. 다윗이 절대 왕권을 가지고 있을 때 아히도벨이 이렇게 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시므이가 이렇게 하리라고 상상도 할 수 없잖아요. 저주하고 돌 던지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런데 인생의 위기가 닥치니까 참과 거짓이 분별되고 양과 염소가 딱 갈라져요.
5. 압살롬의 입성
예루살렘에 압살롬이 드디어 입성했습니다. 입성해 보니까 다윗은 다 도망가고 없고, 누구만 남아 있어요? 후궁 열 명만 남아 있어요. 16장 15절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있는지라" 이제 점령군이에요. 예루살렘에 무혈 입성했습니다.
5-1. 아히도벨의 첫 계략
아히도벨이 첫 번째 책사로서 왕에게 건의를 합니다. 이렇게 말하지요. 21절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고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왕이 왕의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는다 함을 듣고 왕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의 손이 강하여지리이다" 패륜이지요. 패륜. 그런데 이게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서 하신 말씀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세 가지를 말씀하셨지요. 밧세바와 네 사이에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다, 너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은밀한 중에 죄를 행하였지만 너의 아내들은 백주에 욕보임을 당할 것이다. 백주에 이런 일을 당하는 거예요. 22절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패륜이지요.
5-2. 결정적 갈림길
자, 이제 결정적인 갈림길이 생깁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에 무혈 입성해서 차지했어요. 남은 과제 딱 한 가지가 뭐예요? 압살롬에게 다윗을 잡는 것 아닙니까? 도망가는 다윗을 잡아서 그의 목을 베는 것 아닙니까? 그래야 진짜 왕이 되니까요. 다윗을 잡아서 옥에 가두든지 목을 베든 어떻게 하든지.
이제 아히도벨이 두 번째 계책을 올립니다. 두 번째 자기의 모사를 얘기합니다. 17장 1절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내가 일어나서 오늘 밤에 다윗의 뒤를 추격하여 내가 그가 피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그 사람에게 달렸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다윗을 누가 죽이겠다는 얘기예요? 압살롬이요? 아히도벨이요? 누가? 아히도벨이 죽이겠다는 얘기에요. "저에게만 이천 명의 군사를 주시면 제가, 다윗이 지금 멀리 못 갔을 테니까, 쫓아가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겁주고 다윗을 죽이고 다른 사람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않겠습니다. 모든 백성들을 왕에게 돌아오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이게 아히도벨 스타일이에요. 압살롬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아이디어잖아요. 지금 다윗은 늙고 병들고 정신없어요. 도망간다고 정신없어요. 오랜만에 광야에 나가는 것 아닙니까? 진짜 수십 년 만에 가 봤는데 얼마나 가겠어요? 잇대 육백 명이 곁에서 지킨다고 해 봐야 이천 명의 군대를 이길 수 있습니까? 견딜 수 없잖아요.
5-3. 교만이 판단을 흐리다
그런데 여기서 아히도벨이라는 말 세 번 때문에 압살롬의 빈정이 상한 거예요. 압살롬 마음에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이놈이 왜 이래? 내가, 나를... 내가 너를 책사로 세워서 데려왔더니, 니가 가서 다윗을 목을 치겠다고? 너는 한때 다윗의 부하였잖아. 너는 한때 다윗의 책사였잖아.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만 이천 명을 데리고 가서 다윗에게 붙어 버리면 그럼 난 어떻게 되는데?" 이런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요, 지금 압살롬이 유능한, 회개하지 않은 유능한 인간이라 그랬잖아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는 거예요. 지혜가 없는 거예요. 분별력이 없고, 결정적인 순간에 왕은 결정하고 판단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결정하고 판단해야 되는데 회개하지 않으니까, 회개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부어 주지 않거든요. 회개해야 정직한 영, 거룩한 영이 새로워질 것 아닙니까?
회개가 그만큼 중요한데, 그러니까 자아가 올라오는 거예요. 자아. 이거 정말 중요한 얘기예요. 회개하지 않은 인간은 왜 회개하지 않느냐, 자아가 강하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회개하지 않으면 자아가 자기 중심이에요. 내가 주인이고 내가 왕이에요. "내가 와서 다윗을 쳐야지" 이게 왜 여기서 끝난 거예요.
5-4. 후사이의 계략
압살롬이 후사이에게도 물어보지요. 5절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사이도 불러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들어보자" 마음에 안 되니까 물은 거지요. 당연히 마음이 안 되니까요. 마음에 들면 바로 채택이에요. 아히도벨이 이제 후궁들과 동침하라고 했을 때 후사이 말도 들어 보자 했어요? 안 했잖아요. 마음에 드니까 바로 채택했잖아요. 그런데 지금 마음이 안 되니까 후사이 말도 들어 보자.
후사이가 이렇게 얘기해요. 아주 조심스럽게. 7절 "후사이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한번 딱 찍고 시작하지요. 좋지 않다. 전제를 깔고 후사이가 말합니다. "대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아버지는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지금 그가 어느 구렁이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와, 엄청나지요. 그래서 솔깃하잖아요. 얘기 들으니까. 그러니까 압살롬이 가만히 드니니까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에요. 자기 나기 전부터 다윗은 전설적인 인물이잖아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아, 이거 그냥 쉽게 봐서는 안 되겠구나" 마음이 생기지요.
동시에 11절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우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에 많은 모래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친히' 동그라미 치세요. 요즘 애들 말로 말하면 뽀대 나잖아요. 온 나라 군인들 다 모으고 거기에 압살롬이 "나를 따르라" 하고 딱 칼을 들고 나서면 폼 나잖아요. 멋지지 않아요?
그런데 아히도벨은 뭐라 그랬어요? "저에게만 이천 명만 그냥 주시고 내가 가서 다윗의 목을 치고 오겠나이다"라고. 기분 나쁘지요. "친히 당신이 전장에 나가시고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거든요.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다 모으시고 그 중심에 왕이 서십시오.
13절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다윗이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로 그 성을 꽁꽁 묶어서 강으로 끌어갑시다 하는 얘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지금. 그런데 이게 그렇게 멋있게 들리는 거예요. 왜요? 회개하지 않아서 분별력이 없으니까, 자아가 충만하니까, 자기를 막 치켜세워 주니까요.
그래서요, 이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 그 사람을 한번 띄워 줘 보세요. 이렇게. 그러면 그때 이어졌는데 알아서 춤추는 인간은 정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에요. 잡기 참 쉽습니다. 자기 중심성이 있어서.
5-5. 하나님의 개입
그다음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사이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기로 명령하셨음이라" 이렇게 돼 버리고 끝난 거예요. 이제.
자, 그리고 나서 이제 후사이가 뭐랍니까? 자기 편 두 사람도 있잖아요. 누구지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 15절에서 "후사이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으니 이제 너희는 빨리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전하라 이르기를 오늘 밤에 광야 나루터에서 쉬지 말고 아무쪼록 건너가소서 하라 혹시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몰살할까 하노라 하니라"
이렇게 됐어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하지요? 22절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
5-6. 아히도벨의 최후
이 얘기를 듣고 이 전갈을 받고 이제 아히도벨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히도벨이 딱 알았어요. 23절 "아히도벨이 자기의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음이 그의 조상의 묘에 장사되니라" 비참하지요.
우리는 시편 55편을 좀 보셔야 되요. 시편 55편. 일단 8절과 9절이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 때 피하면서, 피한 후에 요단 나루터를 건너거나 이후에 한숨 돌리면서 지은 시거든요.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이다" 다 폭풍과 광풍이에요. 압살롬의 반란. "주여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내가 성내에서" 예루살렘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나이다"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무섭지요? 다윗이 이렇게 격정적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한 거예요.
누구의 혀를 잘라 버리라고 얘기하는 걸까요? 아히도벨. 왜냐하면 다윗과 아히도벨이 같이 전쟁의 작전을 논했던 사람 아닙니까? 어느 땅을 차지하는 전쟁을 하려고 하면 책사가 두 사람이 있었는데, 후사이와 아히도벨, 두 사람을 데리고 다윗이 항상 작전을 짰던 작전 참모들이잖아요. 그런데 그 작전참모 중에 한 사람 아히도벨이 저쪽에 붙었다고요. 그러니까 다윗이 "저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하고 기도한 거예요.
우리 기도할 때요, 누가 나를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 암놈의 혀 좀 잘라 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어요? 우리 할 수 있나요? "얼마나 끔찍해라" 해 본 적도 없고 상상도 못했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윗보다 착하다니까요. 그런데 이런 끔찍한 얘기가 다윗의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이유는 다윗의 솔직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토로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너무 멋있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억울하면 억울한 대로 하나님 앞에 다 쏟아내세요. 다윗이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그렇다고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다윗이 참 힘들었다고요.
12절에서 14절 보여 주세요. "나를 책망하는 자는" 이거 잘 읽어 보셔야 되요.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가 아니라'라고 해서 아히도벨이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지라도'라는 거예요. 그런 복잡한 심정을 표현하는 거예요. "내가 차마 참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가 '미워하는 자인데' 내가 그를 피하여 숨으리라. 다윗의 말이 복잡하지요. 심정이. '원수가 아니라'고 해서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고 해서. "그는 곧 너, 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누구예요? 아히도벨이지요.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누구예요? 아히도벨이지요. 15절, 16절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저주를 막 이렇게 퍼붓는 거예요. 지금.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6. 회개의 능력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부르짖고 나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 강하게 확신하는 이유가 뭐예요? 회개했으니까요. 회개한 죄인이니까요. 회개하고 하나님의 때리는 거 다 맞아먹고 있잖아요. 지금. 회개한 사람은 이렇게 떳떳하다고요.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하나님이 때려, 그 죄에 대한 책임 져, 책임 지금 지고 있잖아요. 온몸으로. 그러면 어떻다고요?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악인의 혀를 잘라 달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어떤 얘기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회개하지 않으면 자기 교만에 도취되어서 기도도 하나요? 탄식하는 것도 없지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지요. 그러다가 망한다고요. 그러다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거, 죄 짓지 않는 게 첫 번째로 중요하지만, 졌다면 회개해야 되요. 그래야 내가 '전제가 되는 영점'이 되어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거든요. 다윗이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건 회개를 해서 그런 거예요. 회개해서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셔서.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압살롬의 반란, 이 큰 사건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님을 보았습니다.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저 일어나는 일이 없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작은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하게 하시고, 작은 아픔이 있을 때 끊어내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회개하지 않은 유능한 압살롬 같은 자가 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회개하고 무능한 다윗 같은 사람 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 인생에 회개하여 정결한 영이 우리 인생, 우리 마음속에 함께 임하도록 도우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이 떠나지 않는 위대한 회개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세상 시험을 붙잡아 죄 짓지 않도록 도우시고, 혹시라도 죄 졌다면 말씀 앞에서 돌이키고,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 또 돌이켜서 주의 긍휼을 입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