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강 - 다윗, 돌아오다 / 전체녹취

사무엘상하 특강 17 - 다윗, 돌아오다 (삼하 17-20장)

사무엘하 19장 22절과 23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랴 하고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지난 시간에 압살롬의 반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과 압살롬의 결정적인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사실 다윗은 무능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판단력도 떨어지고 몸도 이전처럼 날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죄인이었지만 회개한 죄인이었습니다. 반면 압살롬은 유능했지만 회개하지 않은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당연히 무능하지만 회개한 죄인 다윗에게로 임하셨습니다.

결국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략을 받아서 일을 진행했는데,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무력화하십니다. 아히도벨은 자기의 모략이 채택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이제 이 싸움은 끝났구나"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립니다.

1. 위기 속 도움

1-1. 바르실래의 헌신

이제 그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계략대로 전 군대를 다 모았습니다. 전체 모든 대군을 다 모으고, 한마디로 폼나게 다윗과 함께 일대 결전을 벌이기 위해서 전쟁터로 나갑니다. 그런데 그때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윗을 도운 한 노인이 계셨습니다.

위기에 처한 다윗과 그의 가족을 도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17장 26절을 보면 "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 쳤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성경을 이렇게 읽어서 그렇지, 이스라엘 온 무리하고 압살롬이 진을 쳤다는 것입니다. 지금 압살롬은 그냥 몇 천 명 군인들을 모아 가지고 다윗을 잡으러 온 게 아닙니다. 그야말로 후새의 모략대로 엄청나게 큰 대군을 다 이끌고 다윗 한 사람 잡으려고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그런 상황을 보면 백성들은 누구나 다 두려워서 떨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심정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라도, "다윗이 시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도 드러내놓고 다윗의 편을 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압살롬이 이 전쟁에서 승리해 버리면, 나중에 다윗을 편들었던 사람을 잡아다가 감옥에 넘기거나 죽이거나 괴롭히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런데 바르실래라는 한 노인이 계셨습니다. 27절을 보시면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드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바르실래라는 아주 훌륭한 노인이 계셨습니다. 이분들이 군량미를 잔뜩 가져다가 다윗과 다윗의 군인들을 먹이기 시작합니다. "힘내라"고 말입니다. 다윗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런데 압살롬 입장에서는, 만약에 나중에 압살롬이 승리하고 나면 이 노인을 가만히 두겠습니까? 가만히 둘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 것을 보면 바르실래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한 것입니다. 어쨌든 이 바르실래가 다윗과 다윗의 군인들을 도왔습니다. 여기 보면 여러 가지 것들을 가져왔습니다. 밀가루도 있고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한 백성들을 먹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큰 대접을 받고 전쟁에 나갑니다. 이제 이 바르실래에게 다윗은 나중에 보답을 합니다. 큰 보답을 합니다.

1-2. 다윗의 지혜로운 작전

다윗 일행이 세운 작전은 무엇입니까? 아무리 다윗이 늙었다 하더라도, 이제 이전과 같지 않다 하더라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는 회개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지혜의 영입니다. 지혜의 영, 성령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니까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셔서 그에게 아주 기발하고 탁월한 지혜를 주셨겠지요.

다윗이 보시면 이렇게 합니다. 18장 1절, "이에 다윗이 그와 함께한 백성을 점고하여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들 위에 세우고" 일단은 지휘체계를 확고하게 합니다. "왕이 그 백성을 내보낼새 삼분의 일은 요압의 휘하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 휘하에 넘기고,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휘하에 넘기고" 그랬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한 것을 보면 사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굉장히 지혜로운 전술입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을 삼등분했습니다. 지휘관을 각각 세 사람을 세웠습니다. 요압, 또 한 사람 요압의 동생 아비새, 그리고 잇대라는 한 사람, 지휘관 세 분을 각각 세워 가지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군인들을 배치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한쪽이 공격받아 가지고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한쪽이 살아 있고, 또 다른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한쪽이 살아 있고, 그래서 크게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압살롬처럼 군인들이 한꺼번에 몰려 다니지 않도록 이렇게 작전을 세운 것입니다.

또 하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휘관 세 사람 중에 마지막 사람이 누굽니까? 가드 사람 잇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지난 시간에 우리가 살펴보았는데,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 때 왕궁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그때 가드 사람 잇대에게 다윗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는 원래 블레셋 사람이고, 네 고향에 가지 않겠느냐? 이제 돌아가도 좋다. 네 주인에게 돌아가고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제 너는 나를 섬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잇대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왕을 따라가겠습니다. 한번 왕이신데 제가 영원히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 잇대를 다윗은 군 부대 삼분의 일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세웠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장점입니다. 다윗에게 충성을 다하면 그의 출신이 어떻든,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그의 출신이 블레셋 사람이건 그의 출신이 유다 사람이건 그런 것 상관하지 않고 훌륭하고 좋은 사람을 지도자로 등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혈연을 따지고 지연을 따지고 그의 능력을 따지고 나랑 친한가 친하지 않은가, 나와 코드가 같은가 같지 않은가 뭐 이런 것을 따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나라에 헌신되고 충성된 사람인가, 이 사람에게 부대를 맡기면 군대를 맡기면 정말 목숨 걸고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래서 잇대에게 삼분의 일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전쟁에 나갑니다. 그런데 당시 이렇게 얘기합니다. 2절에 보면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합니다. 왕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밧세바 사건을 기억하기 때문이겠지요. "그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는데" 왕은 그냥 자기 왕궁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왕궁 옥상에 올라가서 저 건너편에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지금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다윗이 자기가 직접 전장에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하고 경우가 다릅니다. 군인들이,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3절, "백성들이 이르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마음을 쓰지 아니하리이다 왕은 우리 만 명과 같으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정말 지혜로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압살롬이 노리는 사람은 다윗 한 사람입니다. 백성들 만 명, 이만 명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윗 하나만 죽이면 끝나는 게임입니다. 그래서 만약 다윗이 전장에 나가 가지고 그냥 앞에서 지휘하다가 화살에 맞아서 피 흘리다가 죽기라도 하면 그냥 이 게임은 끝나는 것입니다. 압살롬 하나를 잡아도 이 전쟁은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왕이 그 뒤에 후미에 있던 것과 지금은 상황이 다른 내용입니다. 그래서 왕은 지혜롭게 행해서 살아남고, 어쨌든 후방에서 이 군인을 지휘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이 백성들의 청을 듣고 자기는 뒤에 남습니다. 그런데 전열을 정비하고 전쟁에 나가는 장수들에게 다윗이 한 가지 의미 있는 부탁을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명령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 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은지라" 백성들이 다 듣게끔 명령했습니다.

지휘관 세 사람을 세워놓고 명령했는데, 이것을 보면 두 가지가 생각이 나야 합니다. 첫째는 다윗은 전쟁의 승패를 거의 직감한 것 같습니다. 이 전쟁은 이미 나에게 전세가 기울었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다윗이니까요.

그런데 두 번째는,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압살롬과 상대해서 싸우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해버리면,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해버리면 압살롬을 죽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잡더라도 가급적이면 환경이 허락하면 생포해서 와라든지, 너무 가혹하게 목을 치지 말라든지 하는 등등의 부탁이 아니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백성들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전쟁에서 이 얘기를 들었던 백성들은 멈칫멈칫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아군이 누군지 적군이 누군지. 지금 이것을 보면 다윗의 분별력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압살롬의 최후

2-1. 자기애의 대가

지금 이런 상황을 맞이하고 전쟁에 들어갑니다. 전세가 어떻게 됐을까요? 6절을 보시면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매 그날 그곳에서 전사자가 많아 이만 명에 이르렀고" 이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이만 명이나요.

그런데 이것은 뭐 다윗이 전략을 잘 세워서 그랬다, 다윗이 탁월한 군인이어서 그랬다, 요압이나 아비새나 잇대가 잘해서 그랬다, 이런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다윗에게 승리를 주려고 작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과 이미 떠난 사람, 두 사람이 싸우는데 누가 이겨야 정상입니까? 회개하지 않은 사람하고 회개한 사람하고 싸우는데 당연히 회개한 사람이 이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승리를 주시려고 작정하신 싸움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죽습니다. 그 죽는 과정이 아주 특별합니다. 9절에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친지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왜 노새를 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압살롬은 자기 스스로 왕이 됐습니다. 말을 타야 정상인데 노새를 탔습니다. 노새를 탄 이유가 뭐 여러 가지 설들이 있는데, 지금 이게 나무 수풀이 우거진 수풀 사이를 막 달려야 되니까 말을 타고 달리면 거기에 걸릴까 봐 말보다 키가 작은 노새를 탔다는 설도 있는데, 그것도 사실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노새를 타고 질주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림에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 나간지라" 합니다. 어떤 그림인지 상상이 되시지요? 노새가 달려가는데 그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버린 것입니다. 노새는 지나가 버리고 대롱대롱 나무에 매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하게 여겨야 되는 것은, 그럼 투구를 도대체 쓰지 않은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투구를 안 쓴 것입니다. 지금 보통 전쟁터에 나갈 때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말을 타고 장비를 갖추지 않습니까? 사울 왕의 사위랑 골리앗과의 싸움에 나가는 다윗에게 자기 갑옷을 입혀 주지 않습니까? 칼도 채워주고요. 기본적으로 왕들은 자기 무기와 자기를 보호할 수 있는 도구를 다 갖추고 전쟁에 나가는 게 상식인데, 이 사람은 투구를 안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기니까 이 머리카락이 가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가지고 대롱대롱 매달려 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이 사람 압살롬은 투구를 쓰지 않았을까요?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무엘하 14장 25절과 2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것은 지금 압살롬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더라" 잘생겼다는 얘기입니다. "그의 머리털이 무거움으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일 년에 한 번 머리를 깎았답니다.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더라" 어쨌든 엄청난 양의 머리털을 자랑했던 사람입니다.

자기는 자기 머리카락이 굉장히 자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이것을 투구를 쓰면 어떻게 됩니까? 투구를 쓰면 쓸 수도 없지요.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게 휘날리는데 쓸 수가 없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려면 적어도 투구를 쓸 수 있도록 머리를 짧게 깎고 전쟁터에 합당하고 어울리는 옷차림과 자기 몸과 그리고 무언가를 갖추고 나왔어야 되는데, 지금 이렇게 나온 것은 준비 자체가 안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굉장히 깔본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다 모으고 전쟁에 나왔는데 자기는 사실 해야 될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말도 아니고 노새 탔습니다. 그리고 그냥 말 달리고 놀고 있는 것입니다. 부하들이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요. 그러다가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가지고 대롱대롱 매달린 것입니다.

자기애로 충만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몸을 사랑하고 자기 머리털을 사랑하고 자기 몸 귀한 줄만 아는 사람, 그 안에 어떻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임하십니까? 그런 사람이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압살롬을 이렇게 비웃지만 우리도 사실 자기애가 있지 않습니까? 자기 잘난 맛에 살지 않습니까? "나는 이건 굉장히 잘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인생을 오래 살다가 돌아보면 내가 어디서 걸려서 넘어졌는가 생각해 보면 내가 자랑하던 것 때문에 실패합니다. 잘생긴 얼굴, 예쁜 미모 자랑하면 그것 때문에 인생이 힘들어지고, 많은 권력과 물질을 자랑하면 그것이 결국 내 인생의 발목을 잡고 골목이 되고 맙니다. 인간관계의 좋은 친구들을 자랑하면 그것이 결국 내 머리카락이 되어서 상수리나무에 나를 걸리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내가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압살롬은 이렇게 다윗도 무시했고 자기애로 충만하다가 이것 때문에 죽습니다.

2-2. 요압의 선택

걸려서 대롱대롱 달려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다윗의 부하들이 봅니다. 보십시오. 10절,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왜 이 말만 할까요? 다윗이 죽이지 말라 그랬으니까요. 너그러이 대하라 그랬으니까요. 요압이 그 얘기를 듣고 경을 칩니다. 화를 냅니다. 요압이 직접 가서 죽입니다.

14절, "요압이 이르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요압의 무기를 든 청년 십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인지라" 요압은 다윗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압이 이것을 잘한 겁니까, 못한 겁니까? 이게 평가가 엇갈립니다. 다윗의, 왕의 명령을 어긴 것은 군법상 잘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보면 압살롬은 반역자입니다. 이 압살롬 때문에 지금 이 전쟁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사람이 죽어야 전쟁이 끝나는 것 아닙니까?

어쨌든 만약에 압살롬을 살려서 다윗에게 데려가면 다윗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포로로 잡아서 밧줄로 꽁꽁 묶어 데려가면 또 이전과 똑같은 반복이 되겠지요. 암논과 다말 사건에서 다윗이 암논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압살롬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래서 보낸 세월이 이 년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이 어디 유배 보내 놓고 "압살롬, 압살롬" 하고 가슴 아파하고 보고 싶어 하다가 나중에 세월이 지나면 또 아무런 문제 없이 또 사면해 버리고 그러겠지요.

요압이 이것을 한번 겪었습니다. 두 번 다시 기억하기 싫은 것입니다. 다윗을 너무 잘 아니까 심장을 찔러 죽이고 맙니다.

3. 슬픔에 빠진 왕

3-1. 다윗의 비통함

그 이야기를 다윗이 듣습니다. 33절,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여러분이 이 눈물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공감이 되십니까? 이것은 공감이 되지요. 부모로서는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일반적인 평범한 부모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왕입니다. 지금 나라를 잃고 다시 그 나라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면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별했어야 됩니다.

그의 눈물의 의미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죄를 지어서 이 죄의 결과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자기를 자책하는 것이지요. "내가 암논과 다말 사건이 있을 때 그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분별력 있게 이 사건을 해결했더라면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 년 동안 방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자기 자책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결과로 이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자기 자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냈어야 됩니다. 과거의 다윗은 그랬습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심하게 앓을 때 다윗은 밥도 먹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죽었습니다. 죽고 난 이후 어떻게 합니까? 다윗이 의관을 정제하고 바로 업무에 복귀합니다. 신하들이 묻습니다. "어제까지 우시더니 왜 이러십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실까 했는데 이미 죽었으니 이제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 된다." 그렇게 영특하고 그렇게 영민하고 공과 사를 잘 구별했던 다윗이 이제 이렇게 자기 연민과 자기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3-2. 요압의 책망

이것은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입니다. 108쪽을 보시면 슬픔에 빠져 있는 다윗에게 요압이 어떤 말을 하느냐, 19장 2절,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날에 백성에게 들리매 그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되지라" 이게 말이 안 됩니다. 승리를 했는데 왜 백성이 슬퍼해야 됩니까?

유다 백성들이 목숨 걸고 싸워 가지고 이겼는데, 그러면 상을 내리고 승전고를 올리고 잔치를 해야 되는데 백성들에게 슬픔이 된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어야 됩니다. 백성들에게 나가서 "내가 내 아들을 죽인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내 아들을 잘못 키워서 반역죄를 저질러서 당신들에게 폐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사과했어야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내 아들을 애도할 시간을 나에게 달라"고 하고, 다시 이스라엘을 새롭게 세워 가겠다 했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계속 슬퍼하고 있으니까 백성들은 기뻐하지도 못하고 슬퍼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3절, "그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한 것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백성들을 죄인 만들었습니다. 지도자가 자기 감정에 취해 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백성들을 죄인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자기 감정에서 철저하게 자유로워야 됩니다. 그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어쨌건 간에 요압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요압이 이렇게 말합니다. 6절을 보시면,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수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시니이다 오늘 내가 깨달은즉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속이 후련하게 한번 그냥 쏘아붙인 것입니다. 요압이요, 누구라도 이런 얘기를 한번 해줘야 됩니다.

그리고 요압이 이제 협박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오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리이다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거의 협박입니다.

예수님도 이런 얘기를 여러 번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22절, 누가복음 9장 62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무슨 말입니까? 사명이 있는 자는 사명의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지금 쟁기를 잡고 땅을 파고 김을 매야 되는데 자꾸 뒤돌아보며 어쩌자 말입니까? 그래서 사명을 맡은 자는 그 사명을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지, 자기 감정에 취해 가지고 그 감정도 뭐 다스리지 못하고 앉아 있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도자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가정의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부모가, 부모가 자식들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부모들이니까 자식들이 있는데, 부모라고 슬픈 일이 없습니까?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고 친구가 돌아갈 수도 있고 인생의 슬픈 일을 겪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 슬픔에 너무 빠져 있으면 우리 자식은 누가 건사하고 누가 돌봐 줍니까? 그것 정리할 것 정리하고 그 다음 사명 가지고 해야 될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4. 환궁의 두 가지 실수

4-1. 백성을 분열시키다

이제 다윗이 요압에게 한소리 듣고 일어나고 환궁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환궁을 준비하는 다윗을 보면서 이 정치적인 미묘한 파장과 과정을 좀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19장 9절과 10절 설명을 좀 드려야 됩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다투어 이르되" 여기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은 압살롬 편에 붙은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지금 아직 환궁을 못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못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죽었습니다. 압살롬이 이미 죽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은 압살롬이, 자기가 따르던 압살롬이 죽어 버렸으니까 다윗을 모셔 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이 지금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여기 왕은 다윗입니다. 과거의 다윗이 한 얘기를 자기들끼리 토론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예루살렘을 비우고 갔단 얘기입니다.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유다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입니다. 열한 지파가 자기들끼리 모여서 좀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모셔 오자, 명분을 만들어서 우리가 잘못했다고 하자, 고개 숙이고 납작 엎드리고 다윗을 모셔 오자" 지금 이런 얘기를 토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토론하는 얘기, 이런 소문이 다윗에게 들린 것입니다.

사실은 왕은 명분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압살롬 편에 다 섰는데 왕이 그냥 들어가서 그것을 회개하는 절차, 참회하는 절차, 용서받고 하는 절차 없이 그 사람들을 다시 다스릴 수 있습니까? 어떤 절차 없이, 행정적인 절차 없이요. 그래서 과정과 명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명분을 열한 지파, 이스라엘 지파 열한 지파가 유다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가 왕을 모셔 오자 하는 얘기가 다윗에게 들렸습니다.

이제 다윗이 그것도 없고 그냥 가면 됩니다. 기다리든지 자기를 모셔 올 때까지 기다리든지요. 그런데 다윗이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합니다. 19장 11절과 12절,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이르되" 사독과 아비아달은 압살롬 반란 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왕궁 있었습니다. 후새하고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라 했습니다. 어떤 소식입니까? 열한 지파가 나를 데리러 온다 하는 소식입니다. 이것을 넣어 준 것입니다. 왕궁에 있는 사독과 아비아달에게요.

"그런즉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라" 유다는 자기 집 아닙니까?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돌아오게 모셔오자 말이 왕께 들렸거늘" 여기서 온 이스라엘은 열한 지파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유다 지파를 자극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지파 다시 파에게 열한 지파가 나를 왕으로 모시고 오려고 하는데 왜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이 얘기입니다.

12절,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나중 이 되느냐 하셨다 하라" 다윗이 유다 지파이니까요. 지금 다윗이 꾸미는 일이 무엇입니까? "유다 지파 너희가 열한 지파보다 먼저 와서 나를 모셔 가라"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다윗 답지 않습니다. 과거의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왕이 될 때 하나님께 올라가니까 물어보니까 하나님이 헤브론 거기로 올라가라 그랬습니다. 유다 지파에 있어도 거기 가서 왕이 됐습니다. 7년 6개월을 참고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전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와 가지고 다윗을 왕으로 세워 주었습니다. 기다리면 그들이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 발로 와서 왕을 모셔 갈 텐데, 다윗이 전갈을 넣어 가지고 유다 지파에게 "너희가 먼저 와서 나를 좀 데려가라, 그래야 내 체면이 살 것 같다, 열한 지파는 움직이는데 내 집안 내 골육인 친척들이 왜 움직이지 않느냐, 나 체면이 서지 않고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다, 너희들이 나를 좀 데려가라"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큰 화가 됩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왕은 백성들을 통합하는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목자이니까요. 목자는 양들을 다 통합하는 존재입니다. 속으로는 이놈이 미운 놈도 있고 저놈은 이쁜 놈도 있는데, 그래도 그것을 잘 표현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백성들을 갈라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4-2. 배신자를 군대 장관으로

거기서 또 한 가지 더 잘못된 실수를 합니다. 19장 13절을 보겠습니다. "또 너희는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 장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였더라"

여기 아마사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누구냐 하면 군인입니다. 그런데 지휘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아마사라는 인간을 군대 장관으로 임명해 버린 것입니다. 지금 요압을 대신하여.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떤 전적이 있느냐, 17장 25절,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지휘관으로 삼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인간입니다. 아마사가요. 이해가 되세요?

지금 사람 이름이 많이 나오니까 복잡하고 헷갈려서요. 아마사는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아마사라는 인간을 자기 군대의 군대 장관으로 임명해 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요압을 날려 버린 것입니다. 요압을 왜 군대 장관에서 해임시켰을까요? 요압이 압살롬을 죽였으니까요. 자기 명령을 안 듣고요. 지극히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다윗이 환궁하기 전에 큰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는데, 첫 번째 잘못은 유다 백성들과 나머지 열한 지파 백성들을 갈라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자기 군대 장관으로 세운 것입니다. 군법에 의해서 아마사 목을 쳐야 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세웠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화를 불러일으킵니다.

5. 환궁길의 만남들

5-1. 비겁한 시므이

이렇게 해놓고 환궁합니다. 이것을 잘 기억을 하십시오. 환궁하는 다윗을 두려워하는 시므이는 다윗을 어떻게 대합니까? 환궁할 때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갈 때 만났던 사람을 다 만납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 때 왕위를 잃고 쫓겨나 갈 때 다윗에게 욕하고 돌 던졌던 인간이 누굽니까? 시므이입니다. 시므이가 어떻게 됐을까요? 다윗이 올라오니까 벌벌 떨겠지요.

시므이가 이렇게 말합니다. 18절을 보시면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간지라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와서 왕 앞에 엎드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청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은 마음에 두지 마소서" 비겁하지요? 그냥 죽여 달라고 하든지 그냥 저의 목을 치십시오 하든지요. 원래 이런 인간들이 이렇습니다. 비겁합니다. 자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아주 비굴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다윗 옆에 있던 아비새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죽이자고 그렇지요. 21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여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23절,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다윗이 시므이를 죽이지 않습니다. 그때 다윗이 진짜 용서한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열왕기상 2장을 보면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을 합니다. 자기 아들에게 유언할 때 시므이 이야기를 합니다.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으면 숨 넘어가는 유언할 때 시므이 이야기를 할까요? 할 얘기가 천지인데 시므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합니다. "너는 지혜로우니" 솔로몬에게요, "시므이를 그냥 평안히 죽게 내버려 두지 말라" 그럽니다. "백발로 스올에 내려가도록 하지 말라, 가만히 죽게 내버려 두지 말라" 그럽니다.

그 말뜻을 솔로몬이 알아듣습니다.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을 벗어나면 넌 죽는다"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절대로 이 반경을 벗어나지 마라" 시므이가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까, 자기가 한 일이 있으니까 약속을 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겠다고요. 삼 년을 지킵니다.

그런데 삼 년 만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자기 종 둘이 집을 나가서 가드로 도망가 버립니다. 자기도 모르게 시므이가 종 잡으러 예루살렘을 벗어났습니다. 솔로몬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를 죽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므이가 생명을 다합니다. 어쨌든 시므이는 이렇게 앞뒤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5-2. 억울한 므비보셋

그다음 이제 므비보셋이 나옵니다. 다윗이 쫓겨날 때는 므비보셋이 안 나왔습니다. 그의 종 시바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므비보셋이 올라옵니다. 24절,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그의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철저하게 기도로 다윗의 환궁을 기대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므비보셋이 다윗을 배신한 게 아닙니다. 시바가 거짓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다윗이 묻습니다. 25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아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나의 종이 나를 속였나이다 종이 말하기를 내가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이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시바는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때 때 급하게 그 재산 다 뺏어서 시바에게 다 주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제는 왕의 말을 100% 거둘 수도 없고, 다시 시바에게도 좀 재산을 절반 절반 나누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이 이렇게 보면 요나단하고 사이에서 지킨 언약을 100% 수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감정에 휘둘려 가지고요. 어쨌든 속더라도 믿어줬어야 되는데 그것을 믿지 못해서 이런 불편한 감정을 남기고 맙니다.

5-3. 충성스러운 바르실래

이제 그다음 바르실래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아까 오늘 첫 시작할 때 만났던 바르실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압살롬이 전군을 거느리고 와 가지고 다윗과 전쟁하고 싸우는 상황에서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와줬지요.

그런데 다윗이 이제 바르실래에게 은혜를 갚자고 그럽니다. 33절,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그런데 바르실래가 얘기합니다.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그럽니다.

대신에 부탁 한 가지를 합니다. 37절, "청컨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있사오니" 김함이 누구냐면 아들입니다. 자기 아들, 아들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여기서 내 생명을 다할 때까지 살다 죽을 테니 내 아들을 좀 부탁합니다 그럽니다.

그래서 왕이 38절에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합니다. 왕이 너무 고마워하니까 김함은 아버지 바르실래 덕택에 출세하게 됩니다.

결국은 이 아버지가 지혜롭고 분별력 있게 회개한 다윗 편에 서 가지고 그의 아들이 생명도 부지하고 출세하고 왕궁에 가서 다윗과 함께 그 다음 인생을 누리게 됩니다.

6. 분열과 반란

6-1. 지파 간 갈등

그런데 이제 여기서 아주 아까 우리가 말씀드렸던, 다윗이 두 가지 잘못이 있었지요. 다윗이 환궁하기 전에 저지른 두 가지 잘못, 이스라엘 열한 지파가 다윗을 모셔 오려고 의논을 했는데 그것을 알고 유다 지파에게 먼저 전갈을 넣었습니다. 일대 일로 유다 지파와 나머지 열한 지파를 갈라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자기 군대 장관으로 임명했습니까? 그것이 지금 화근이 됩니다.

19장 41절과 42절, 이렇게 나옵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이것은 열한 지파입니다. 지금 다윗이 환궁하고 있는 중에 얘기하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가족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무슨 말입니까? 열한 지파가 원래 다윗에게 청을 넣어서 다윗을 모셔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가 먼저 가서 왕을 데려와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한 지파는 뒤통수 맞은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왕께 나가서 이렇게 따지고 드는 것입니다.

42절, "모든 유다 사람이" 이제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합니다. 열한 지파 백성들에게요.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이렇게 막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여기서 유체이탈입니다. 한마디도 못합니다. 왜요?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까요. 자기가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갈을 넣어서 유다 지파에게 전갈하라 하고 나를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가 한 짓이 있으니까 한마디도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끼리 싸우게 만든 것입니다. 백성들끼리 감정이 안 좋아지게 만든 것입니다.

유다 지파 한 지파하고 나머지 열한 지파,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솔로몬 사후에 남왕국 북왕국으로 갈라집니다. 여기에서부터 감정의 골이 깊어지다가 남쪽은 유다 지파, 시므온 지파 하나입니다. 유다 지파 속에 시므온 지파가 들어 있었던 것이지요. 북쪽은 나머지 지파가 다 올라가 버립니다. 여기서부터 자기들끼리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 일을 누가 주도한 겁니까? 왕이 주도한 것 아닙니까? 왕이 해야 될 일은 백성들의 마음을 통합하는 일이지 백성들을 갈라지게 하는 게 왕이 해야 되는 일이 아닙니다. 유다 지파에게 전갈 넣어 가지고 나를 데려가라 내 체면이 뭐가 되냐고요. 그런데 왕은 출신은 유다 지파지만 통일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모든 백성의 왕입니다.

대통령이 나를 뽑은 사람에게만 대통령이고 반대표를 던진 사람에게는 대통령이 아니고 그런 것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통합하고 하나가 되고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그래야 되는데, 지금 이렇게 되니까 백성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6-2. 세바의 반란

그러면 여기 열한 지파는 어떤 마음이 될까요? "우리는 왕에게 버림받았다. 우리가 먼저 의논해서 왕을 모셔 오려고 했는데 왕은 유다 지파에게 전갈을 넣어서 유다 지파가 왕을 모셔 오게 만들어 버렸구나." 열한 지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둑질하느냐?"

그러니까 열한 지파 사람 가운데 세바 같은 인간이 나오는 것입니다. 세바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20장 1절 2절,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함에"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이제 열 받으니까요. 다윗이 유다 지파만 끼고 도니까 이제 다윗에게 우리는 찬밥이다, 그래서 세바가 깃발을 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새의 아들에게서 우리가 받을 분깃이 하나도 없도다"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 온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은 열한 지파입니다. "유다 지파를 제외한 열한 지파가 다윗을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니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이제 유다 사람들은 다윗을 따르게 되고 나머지 열한 지파는 세바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나중에 솔로몬 사후에 남왕국과 북왕국의 그림자를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 탓입니까? 다윗 탓입니다.

다윗이 그래놓고 이제 어떻게 합니까?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하겠지요. 진압 전에 다시 진짜 해야 될 게 뭡니까? 사과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과를요. 열한 지파의 장로들을 불러 놓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지요. 그런데 이제 진압을 합니다.

보십시오 4절, "왕이 아마사에게" 이렇게 새로 세운 군대 장관, 원래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에게요.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 일 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아마사가 사람을 잘 모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사는 한번 배신자 아닙니까? 배신했습니다. 배신한 사람이 유다 지파에서 군인들을 모으려고 하는데, 지금 유다 지파가 군인들을 모으면 열한 지파 연합군과 싸워야 됩니다. 내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군인들이 순순히 여기 징집에 응하겠습니까?

지금 다윗은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세운 것도 크게 잘못한 일입니다. 인사를 잘못한 것입니다.

6-3. 요압의 권력 장악

이렇게 되니까 다윗이 그다음 또 다른 악수를 둡니다. 6절, "다윗이 아비새에게" 아비새는 누구입니까? 요압의 동생입니다.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 눈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함에"

아니 아마사를 군대 장관으로 세워 가지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라 해 놓고 군인들 징집이 안 되니까 아비새를 또 다른 군대 장관으로 세운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인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여기서 누가 소외됐습니까? 누가요? 요압이 소외됐지요. 그런데 요압은 누구의 형입니까? 아비새 형입니다. 아비새가 군대 장관이 됐고 요압은 군대 장관은 아닙니다. 그런데 실질적인 권력은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요압이 가지고 있지요.

요압이요, 지금 다윗은 압살롬을 죽였기 때문에 요압을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요압이 마음에 안 들면 잡아다가 묶어다가 죽여 버리든지 감옥에 집어넣어 버리든지요. 또 그건 못합니다. 왜요? 옛날 옛날 누구 사건, 우리아 사건입니다. 우리아 살해를 자기가 지시한 것이 약점 잡힌 게 있어서요. 요압에게 해 준 것이 있고 또 그것도 함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압이 어떻게 합니까? 9절,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요압이 아마사를 찾아갑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요.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니"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다음 보세요.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을 주의하지 아니하므로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찔러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은지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결국 진짜 실권은 누가 다 가져갔습니까? 요압이 다 가져가 버린 것입니다.

아마사에게 군대 장관을 임명했는데 왕이 임명한 장관을 요압이 죽여 버립니다. 그래도 왕은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럼 이 왕은 뭡니까? 허수아비지요. 지금 다윗이 말년으로 갈수록 껍데기만 남아있는 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판단력도 흐려지고 분별력도 사라지고 갈수록 갈수록 이렇게 되어 갑니다.

이제 세바의 반란을 어떻게 제압하느냐, 세바가 어느 한 성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요압이 진짜 배포가 큰 사람입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성 사람들이 세바를 내놓지 않으니까 성 전체를 다 박살 내라고 그럽니다.

보십시오 15절, 15절 끝에 보시면, "이에 그들이 아벨 벳마아가로 가서 세바를 에워싸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성 자체를 다 박살 내라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 성에는 한 지혜로운 여인이, "이러다가 우리 다 죽는다" 성 사람들을 설득해서 세바를 잡아서 목을 쳐서 던져 줍니다. 22절,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지니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요압은 멀쩡하게 그냥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바 반란 훌륭하게 진압했지요. 요압은 철저하게 성과를 내는 사람입니다.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성과를 철저히 내는 사람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23절,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다윗이 요압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절대 통제 못합니다. 약점 잡힌 게 한두 개여야지요. 밧세바 우리아 사건부터 시작해서 압살롬 사건부터 뭐 이것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맺는 말

그래서 지도자가 자기가 제대로 서지 못하면 그 안의 기강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라꼴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다윗의 삶을 통해서 살펴볼 것이 있다면, 지도자가 제대로 분별하고 제대로 서야 나라가 평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환궁합니다. 그냥 그대로 올라오든지 아니면 때를 기다리면 백성들이 다 와서 모셔 갈 텐데, 거기서 백성들을 갈라치게 했고 압살롬의 군대 장관 하던 아마사를 세웠습니다. 배신자를 세운 것입니다.

결국 그것이 나중에 자기의 화로 돌아옵니다. 심각한 문제가 일어납니다. 분별력, 그리고 하나님 뜻대로 하고 기다리고 뜻대로 하는 것,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윗의 실패를 거울삼아서 우리는 이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오늘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의 말씀으로 그대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분별력 있게 깨어 있으라" 하시고, "언제나 지도자답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시고, "선한 마음을 품고 살아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씀하시며 깨닫습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다윗의 실패를 거울삼아 언제나 믿음으로 지혜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겸허히 나아가도록 도우시고, "과거에는 참 잘했는데 사람이 변했다"는 소리 듣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가 한결같이 하나님 나라 가는 그날까지 온전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고 지혜로운 주의 종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