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 한나와 어린 사무엘 / 전체녹취

사무엘상하 특강 1 - 한나와 어린 사무엘 (삼상 1-3장)

사무엘상 1장 10-11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멘.

서론: 사무엘서를 공부하는 이유

지난 학기에는 요한계시록을 공부했고, 그다음 학기에는 레위기를 공부했습니다. 수요 사경회를 시작해서 열심히 공부해 왔는데 지금까지 함께 공부한 과목이 열한 과목입니다. 열한 과목이나 공부를 하고 이제 열두 번째 과목으로 사무엘상하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하는 분량이 굉장히 많습니다. 사무엘상이 31장까지 있고, 사무엘하가 24장까지 있어서 총 55장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지난 학기에 레위기 말씀을 27장까지 공부했는데 17번에 걸쳐서 살펴보았고, 이번 학기 사무엘상하 55장에 달하는 내용을 총 18번에 걸쳐서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면 좀 바쁘게 분주하게 움직여야 되겠지요. 교재를 보면 진도가 자세히 잘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어떤 내용으로 공부하는지를 미리 한번 읽어보고 오시면 훨씬 더 이 자리에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사무엘상하를 왜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공부하게 됐는가, 도대체 왜 이번 학기는 사무엘서를 공부하는가. 사실 서문에 제가 적어 두었는데, 우리가 정말 광야 같은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매일 합니다. 광야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다윗이시고, 다윗이 광야에서 성공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광야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광야는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광야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훨씬 더 달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하나님이 억지로 우리를 고생시키는 공간이었지만, 다윗에게 광야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3편에는 광야를 경험한 다윗의 이야기가 아주 생생하게 나와 있습니다. 사무엘상하를 공부하면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광야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공부해 보려고 사무엘서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서는 제목이 사무엘서인데 사실 주인공은 사무엘이 아니고 다윗입니다. 그런데 주인공 다윗은 16장에 가서야 처음 등장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서를 보면 사무엘, 사울, 다윗 이렇게 세 분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이 저자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사실은 있습니다. 누가 썼느냐, 어떤 사람은 사무엘이 기록했다고도 하고, 어떤 분은 나단이 기록했다고도 하는데, 사실 사무엘서에서는 저자가 별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이 저자가 표현하고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한데, 사무엘서의 구조는 실패와 성공, 실패와 성공이 반복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엘리 제사장이 나오지 않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실패한 제사장입니다. 그다음 사무엘은 성공한 제사장이자 마지막 사사입니다. 사울이 나오지요. 사울은 실패한 왕입니다. 다윗이 나오지요. 다윗은 성공한 왕입니다. 그래서 이분법적으로 대비가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실패와 성공, 실패와 성공. 그럼 우리는 사무엘서를 통해서 무엇을 느껴야 되는가, 뭘 깨달아야 되는가. 누구의 길을 따라가야 우리 인생은 성공할 수 있는가.

여기서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주는 복이나 영화 같은 성공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공적인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 정답이 어디 있는가. 사무엘의 길과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무엘서를 통해서 광야를 공부하고 성공적인 인생의 답을 찾고, 이것이 학습 목표입니다. 18주간 이 목표를 가지고 총 55장의 여정을 함께 달려가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1장에서 3장까지 내용인데, 제목을 보시면 교재 6쪽에 있지요. '한나와 어린 사무엘'로 되어 있습니다. 한나, 아시지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굉장히 유명한 여인입니다.

1. 한나의 가정과 배경

1-1. 엘가나의 혈통

사무엘의 가정에 대해서 말해 보십시오. 1장 1절을 보겠습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 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제 우리는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성경을 공부하는 방식으로 봐야 됩니다. '에브라임 사람'이라는 말을 한번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두 가지 방향으로 보셔야 되는데, 에브라임 지파 사람인가, 아니면 에브라임 땅에 사는 사람인가, 아니면 에브라임 지파 사람인데 에브라임에 사는 사람인가. 질문이 좀 어렵지요.

왜 이런 질문을 드리느냐 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엘가나와 한나를 통해서 사무엘이 태어났다는 것을요. 사무엘은 나중에 제사장이 됩니다. 제사장이 될 수 있는 지파는 레위 지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가 에브라임에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면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 않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궁금한 것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읽을 때 사무엘상 1장 1절을 읽으면서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면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읽으면 성경을 겉핥기로 읽는 것입니다. 그래서 줄을 치고, "이게 도대체 무엇이지, 이 사람은 제사장인데 왜 아버지가 에브라임에 살았지" 하고 물음표를 찍어 두고 물어보고 궁금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왜 그럴까요. 역대상 6장 16절과 28절을 보면 비밀이 나오지요. 한번 보십시오.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이며"(16절)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라"(28절)

제가 이것을 듬성듬성 두 절만 적어 두었는데요, 역대상 6장은 레위 지파의 족보, 계보를 적어 놓은 족보입니다. 역대상 6장이요. 그런데 거기 보면 사무엘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사무엘의 집안이 레위 지파 자손임을 역대상 6장이 정확하게 기록해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무엘 집안,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레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가 이미 구약을 공부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땅 분배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열두 지파에게 땅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12지파라 함은 요셉 지파가 두 지파로 나뉘어집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 지금 이거 제가 하는 말을 마치 방송처럼 그냥 듣고 계신다면 이건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럼 구약 공부부터 다시 하셔야 됩니다.

요셉 지파는 므낫세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로 나뉘어서 12지파가 되고, 레위 지파는 땅 분배를 받지 않았습니다. 왜 안 했습니까? 레위 지파는 48개 성읍으로 다 분산 배치했습니다. 전부 다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의무를 주셨지 않습니까. 세 가지 의무가 무엇입니까. 첫째 예배, 둘째 신앙 교육, 셋째 재판.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 정복 후에 왕을 세우지 않고 레위 지파를 통해서 율법으로 가나안 땅 전체를 통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 엘가나의 집안은 가나안 땅 정복 후 정착한 이후에 에브라임 산지를 분배받은 레위 지파라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이 사람은 레위 지파이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아들 사무엘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1-2. 두 아내를 둔 제사장

이제 혈통을 우리가 증명했고, 2절을 한번 볼게요.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우리 여기에서 그냥 넘어가면 됩니까? 아니요. 제사장인데 아내가 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이것은 사사 시대의 역사적 흐름과 그 당시에 사사 시대 말기의 영적 혼탁함을 가지고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사사기 말미에 보면 17장부터 21장까지, 나중에 집에 가서 한번 읽어 보세요. 거기에 두 사건이 나옵니다. 레위인 첩 사건이 하나 나오고, 미가의 신상 사건이 나옵니다. 얼마나 사사 시대가 타락했는지 레위인이 첩을 둔 사건이 나옵니다. 레위 지파 사람도 시대의 흐름과 풍조를 따라 흘러가서,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로 한 가정을 세우신 것을 역행해서 자기 마음대로 두 아내를 두고 살았단 말입니다. 이 사람은 레위 지파였지만 에브라임 산지에 살면서 세상 풍조를 따라 아내를 둘이나 뒀습니다.

그런데 자기 나름대로 아내를 둘이나 둔 이유를 항변할 수는 있습니다. 이유가 나오지요. 2절에 보니까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이것 때문입니다.

한나가 아이가 없어서요. 성경은 사람의 이름을 열거할 때 항상 서열 중심으로 나열합니다. 그렇다면 한나가 먼저 나오지요. 그다음 브닌나가 나오지요. 그러면 첫 번째 얻은 아내가 누구라는 뜻입니까. 한나입니다. 한나와 결혼을 했는데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명색이 제사장이라면 기도를 하든지, 구하든지 그래서 하나님이 안 주시면 둘만 행복하게 살든지 그러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제사장이 자녀를 낳기 위해서 두 번째 부인을 들인 것이지요.

이런 상황입니다. 그러면 그 당시 제사장으로서 엘가나는 낙제점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도 못하고, 나중에 결국 한나가 사무엘을 낳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간절하게 엎드려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라가서 아내를 둘이나 둡니다.

이런 상황입니다. 엘가나의 정체에 대해서 우리가 충분히 살펴보았습니다.

1-3. 엘가나의 인품

그런데 엘가나는 사람은 참 좋은 인품입니다. 신앙적으로는 낙제인데 사람 좋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교회만 안 나오고 정말 좋은 사람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겉모습만 갖춘 제사장이어서 4절에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그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제물의 분깃을 주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자녀'라고 했으니 브닌나가 아이를 하나 낳았습니까, 아니면 둘 이상을 낳았습니까? 둘 이상, 복수의 자녀를 낳은 것입니다. 그것이 아들인지 딸인지 알지 못하지만요.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한나를 사랑함이라."

우리 이것을 읽을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의아하게 여겨야 되지요. 왜냐하면 엘가나가 정말 한나를 사랑하면 브닌나를 들이지 말아야지요. 그 분깃을 갑절로 주고, 두 배를 준다고 그것이 사랑의 표현입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사고가 터지고, 이미 터지고, 브닌나가 자녀를 둘씩이나 낳을 때까지, 그때까지 한나가 가슴 아파하고 속이 타들어 갔는데, 갑절의 제물을 주고, 갑절의 음식을 주는 게 그게 뭐가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 의미 없지 않습니까. 이것은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굴욕을 준 것이지요.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태를 닫으셨더라"(5절). 6절에도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라고 두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성경에 똑같은 얘기가 두 번 반복된다는 것은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중요하다는 표현이지요.

우리는 여기서 여호와께서 왜 한나에게 임신을 못하게 하셨을까,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표현을 우리가 잘 이해하셔야 됩니다. 즉 이 표현은 이 문제의 해결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 그 열쇠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면 누구 앞에 엎드려야 됩니까? 하나님께 엎드려야 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문제의 생명은 여호와께 달린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는 남편을 쥐어박아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자책해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브닌나를 째려봐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그냥 하나님께 엎드려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서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6절). 왜냐하면 브닌나는 자녀를 여럿 낳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사랑이 누구에게 집중됩니까. 한나에게요. 열받는 것이 브닌나입니다. 그러니까 이 남편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갑절의 분깃을 주고, 갑절의 제물을 주는 게 한나에게 전혀 유익하지 않은 것이지요. 오히려 어리석고 미련한 것이지요. 정말 사랑하면 브닌나를 들이지 말았어야지요.

자녀가 없는 한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7절에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그가 한나를 격분시키므로"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제물을 두 배나 주는 것이지요. 하나님께 올라가서 분깃을 나누어 먹는 것은 화목제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제물은 다 하나님께 태워 드리고, 제사장에게 드리고 하는데, 자기들끼리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은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잔치이지 않습니까. 잔치에 제물, 고깃덩어리를 한나에게 두 배를 주는 것입니다. 매년 그같이 하는 것이지요. 그럼 매년 그렇게 하면 매년 브닌나가 한나를 어떻게 합니까? 십 배로 격동시키는 것이지요.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야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7-8절). 아니, 당신 때문에 먹지 않고 당신 때문에 울지 않고 당신 때문에 내가 지금 힘든데,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사실 이것을 말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나가요, 저도 여자를 잘 모르지만, 자매가 나도 정치 없는 소리 하는 것이지요. 지금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세 번이나 이렇게 얘기하는데, 사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엘가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태를 닫으시고 열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생명의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것인데, 엘가나가 인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니까 가정의 불화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2. 한나의 기도

2-1. 기도의 방향

오늘 우리가 공부할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구절이 그다음 10절과 11절에 나옵니다. 10절을 함께 읽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마음이 괴로워서'와 '통곡하며'를 우리 손으로 살짝 한번 가려 보세요. 보통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마음이 괴로우면 어떻게 합니까? "오늘 울적하니까 술이나 한잔 할까? 오늘 울적하니까 친구를 만날까? 오늘 마음이 괴롭고 열받으니까 브닌나 머리끄댕이 한번 잡고 뒹굴까? 남편 옷을 한번 갈기갈기 찢어 놓을까?" 뭐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보통 보통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다 아니라고 하고 계시지 마시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나는 마음이 괴롭고 또 울적하고 힘드니까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라고 써 있습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기도의 원리가 나오는데, 기도는 방향입니다. 방향이요. 사람에게 공격받지 않습니까.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습니까.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지 않습니까. 그럼 일반적으로 그 사람에게 나는 십 배, 백 배, 천 배를 더 쏟아부어야 시원해진다고 느낍니다. 그렇게 해 보셨지요. 시원해지던가요? 그렇게 해 보니까 속 시원하고 확 풀리고 날아갈 듯 기쁘고 행복하고 그랬던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서 사람 붙들고 내 감정 다 쏟아내고, 할 말 다 하고, 머리끄댕이 붙잡고 뒹굴어도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괴감만 들어서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그러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탄은 계속 우리 앞에서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고 자꾸 미끼를 던지고,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자꾸 침체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이럴 때 과감하게 등을 돌리고, 이럴 때 과감하게 하나님께 엎드려 구하는 것입니다. 통곡 기도요. 거기서부터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방향을 돌리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방향을 사람을 향하여 내가 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전쟁입니다. 가정이 남아나겠습니까. 이 가정에 그때부터는 심각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도 죽고 너도 죽고 다 죽는 것이지요. 전부 다 너무 불행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한나가 정말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는 방향을 돌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2-2. 나실인 서원

서원도 합니다. 너무 억울하니까, 너무 간절하니까 서원하는 것입니다. 화목제 길의로 올라왔지 않습니까. 화목제 중에 세 가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레위기 때 배웠지요. 감사제, 자원제, 서원제. 서원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11절). 서원을 한 것인데, 나실인의 서원을 했습니다.

레위기 계속 공부했는데, 나실인은 두 종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평생을 드리는 것, 둘째는 한정된 기간을 드리는 것. 지금 여기 한나는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너무 간절하니까 방향을 돌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서원으로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고백한 것입니다.

2-3. 기도의 장소 실로

이렇게 기도한 장소가 어디냐, 지금 이곳이 어디냐 하면 3절에 보니까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라고 했습니다. 실로 지도 한번 봅시다. 지도 보시면 실로가 있는데요. 실로가 빨갛게 표시된 것 보이시지요. 아래에 보면 예루살렘이 사실 보여야 됩니다. 그런데 잘 안 보일 텐데, 예루살렘에서 실로까지 약 32km 정도 북쪽입니다.

그러면 실로는 지금 실로 옆에 보니까 라마다임 소빔이라고 보이지요. 에브라임 산지 안에 실로가 있고, 이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난 이후에 성막을 모셨던 곳입니다. 성막이 있었던 곳이요. 그러면 성막을 지키는 분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아닙니까. 엘리는 실로에 있는 대제사장, 성막을 지키는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의 가족을 3절에서 설명을 하는데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고, 거기에는 엘리와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있었고, 대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2-4. 기도의 걸림돌

그런데 엘리는 어떤 인간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누가요, 한나가요.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지라" 입술을 주목했습니다. 성도가 기도하면 뒤에서 중보 기도해 주면 되지요. 대제사장이요.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13절)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도의 또 다른 법칙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입으로만 말했지 않습니까. 속으로 말했습니다. 외치지 않았지 않습니까. 주여 삼창 했습니까? 지금 한나가 막 뜨겁게 기도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까? 사실은 우리가 기도할 때 주여 삼창도 하고, 큰 소리로 부르짖기도 하고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해도 들으시고,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이렇게 기도해도 들으시고, 전심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다 들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귀가 먹어서 못 듣는 분이 아니고, 우리가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으니까 안 들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한나는 속으로만, 마음으로만 기도하는데, 입술만 움직이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를 딱 들으셨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엘리는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14절). 언제 봤다고, 언제 봤다고요.

이것이 참 시험 거리인데요. 사실 교회에 은혜 받으러 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배 드리고 은혜 받고 봉사하고 은혜 받고 기쁨을 누리려고 하는데, 참 되지도 않은 것들 때문에, 우리 그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성도들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는다고요. 목회자에게 상처받고, 중직들에게 상처받고, 교회 앞에서 나서서 일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이런 식으로 막말하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요.

대제사장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영적으로 영안이 가려져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그냥 있는 그대로 자기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냥 뱉어 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면 한나가 거기서 뭐 상처받고 가야 됩니까? "대제사장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다니" 하고 그냥 가 버려야 됩니까?

걸림돌이 있습니다. 한나가 여기에 정말 잘 대처합니다. 보세요. 15절에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단호하게 얘기하지요. 아니라고요.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16절). 당당하지요.

문제가 있을 때 방향을 바꿔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사람과 오해가 생길 때 그 오해를 풀었습니다. 기도하러 왔는데 "나는 저 사람 때문에 교회 안 다녀. 나는 저 인간 때문에 꼴보기 싫어서 예배 안 드리고 봉사 다 때려치울 거야" 하면 자기만 손해지요.

항상 걸림돌과 시험 거리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들린 딸을 데리고 주님 앞에 나왔을 때 우리 주님 의도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때 수로보니게 여인이 "저를 개 취급하십니까" 하고 확 삐쳐서 가지 않고, 주님께 말하지 않습니까. "개들도 아이들이 상에서 먹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고 그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 딸이 죽게 돼서 딸을 고쳐 달라고 주님께 갔는데, 주님이 길 가다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만나서 거기서 지체하다가 딸이 죽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 말씀이 꽂히지 않습니까.

항상 우리가 정말 중요한 기도 응답을 받기 전에 이런 시험 거리가 옵니다. 걸림돌이 옵니다. 문제들이 생깁니다. 특히 넘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으로 오지요. 이 대제사장, 우리로서는 시험이지 않습니까. 그 대제사장에게 감히 뭐 멱살잡이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힘없는 한 요인이요. 그런데 당당하게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오해를 풉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이 걸림돌 정도는 넘어가야지요. 자기 기도가 간절한데 거기서 넘어지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엘리가 또 이렇게 말합니다. 17절에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우리 정도 되면 "너 입에 발린 소리 하는구나" 하고 가겠지요.

그런데 한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18절에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주의 종의 인격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 종의 인격이 어떠하든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니까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축복하는 것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자기 복이 되는 것입니다. 크게 자기 복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 사람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나는 그것을 뛰어넘은 얘기입니다. 훌륭하지요.

한나의 믿음을 정리해 보셔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는 방향이라 했고요, 그리고 기도할 때 걸림돌이 있는데 한나는 걸림돌을 지혜롭게 훌륭하게 뛰어넘었고, 그 사람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응답받은 것입니다.

3. 기도의 응답

3-1. 하나님이 기억하심

그다음 페이지 넘기시면 8쪽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그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19절)

성경에 이런 표현이 간혹 나오거든요. 창세기 30장 22절에도 이 표현이 나왔는데 한번 함께 읽어 볼게요.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하나님이 라헬에게 아들을 집중적으로 주셨지 않습니까. 라헬이 약이 올라 죽겠습니다. 그러다가 포기할 때쯤 되니까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셨다'는 뜻은 이제 그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뜻이지요.

"한나가 임신하여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20절). 사무엘(שְׁמוּאֵל) 이름의 뜻이 '구하다'라는 뜻이거든요. 하나님께 구하다.

3-2. 서원의 이행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제 한나의 걱정은 아들이 생겼으니 기르게 됩니다. 아이를 바쳐야 되지 않습니까. 서원했는데요. 간절하게요. 그런데 한나는 기도 후에 서원도 철두철미하게 지킵니다.

보세요. 1장 24절에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젖을 뗐다 하면 몇 살쯤 됐을까요. 제가 어릴 때 네 살까지 젖 먹었어요. 아무리 오래 먹어도 서너 살쯤 되겠지요. 그럼 꼬맹이를요, 네 살짜리 아들이 얼마나 예쁘고 귀합니까? 그것을 떼서 성전에 올려 보낸 것입니다.

1장 27-28절에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우리 지난번 레위기 공부할 때 서원을 공부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요. 서원은 아내가 서원한 것을 남편이 무를 수 있습니다. 아내가 서원한 것, 그리고 딸이 서원한 것을 아버지가 무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무르는 값을 지불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한나가 서원한 것을 엘가나가 무르지 않습니다. 서원한 것을 그대로 지킵니다.

이것을 지켰다는 것은 레위기 법, 신명기 법전을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명기 23장 21-23절입니다. 읽어 볼게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서원을 속히 지키라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한나는 이 말씀 그대로 서원을 행합니다. 사실 쉽지 않지요. 어려운 일이지요. 그런데 서원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4. 한나의 찬양

4-1. 여호와로 말미암아

서원을 그대로 행하고 한나가 이 상황을 하나님께 찬양으로, 기도로, 기도이지만 찬양이고 찬양이지만 기도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는 노래를 올려드립니다.

교재 9쪽에 사무엘상 2장 1-3절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이것은 너무 중요하지요. 줄 치셔야 됩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두 가지가 중요하지요. 왜냐하면 지금 한나가 아이를 낳았지 않습니까. "내 마음이 사무엘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가 아니라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입니다. 그리고 지금 한나가 아이를 하나님께 드렸지 않습니까. 그러면 슬플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한나는 진심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뿔은 자존심이지 않습니까. 나의 영광, 자존심, 내 영광이, 내 자존심이 아들을 낳아서 높아졌다가 아니라, 내 영광, 내 자존심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높아졌습니다.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다,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 아들을 낳아서 기뻐하는 게 아니고요,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합니다.

4-2. 복의 출처

한나가 여기에서 훌륭한 점은요, 복의 출처를 정확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게 뭡니까? 복에 매몰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벌면 돈에 묻혀 버리고요, 자녀의 복을 주시면 자녀에게 묻혀 버리고, 건강의 복을 주시면 건강에 묻혀 버리고요. 복에 묻혀 버리면 복을 준 분이 뭐가 됩니까?

아브라함이 그랬지 않습니까. 이스마엘에게 묻혀 버리고, 이삭에게 묻혀 버리고, 그러니 하나님이 이스마엘 많이 낳았으면 이스마엘 끊어 내라 하고, 이삭을 바치라 하시지 않습니까.

한나는 복의 출처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높여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무엇으로 완성이 됩니까? 기도가 완성되는 것, 기도 응답받은 후에 찬송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 응답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요. 아닙니다. 기도 응답받고, 기도가 내 소원대로 이루어지고 응답받고 나서, 그다음에 태도가 그다음 하나님과 그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완벽했습니다. 이 부분이 어느 것 하나 진짜 뺄 것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는 잘하는데, 응답받고 나서 무너지거든요. 한나는 응답받은 후에도 초심을 지키고, 서원한 그대로 갚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 드리고, 얼마나 훌륭한지 모릅니다.

3절에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브닌나를 향해서 가는 말이지요.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는 이시로다" 다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6-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이 나를 낮추기도 하시고, 자녀를 주셔서 높이기도 하시고, 복의 끝에는 출처가 하나님이시다. 이 위대하고 놀라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셔야 됩니다.

5. 엘리 가문의 타락

5-1.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

그런데 문제는 이제 한나와 엘가나가 아들 사무엘을 성전에 성막에 올려 드렸는데, 근데 그 집에 천하의 유명한 불량배가 둘이 있었습니다.

2장 11-12절에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아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사장의 아들들인데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볼게요.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냄비나 솥이나 큰 솥이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그같이 할 뿐 아니라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겠노라 하였으니"(13-16절)

이런 식의 행패질을요. 예배를 경거리하고 멸시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더라"(17절) 성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대제사장입니다. 신앙 교육이 엉망이니까 이따위로 사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그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한번 호되게 책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22절에 "엘리가 매우 늙으니라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계속 발전하지요. 여호와께 드릴 제물을 함부로 먹다가,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을 함부로 취하다가요.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23절) 이게 끝입니다. 아버지가 그를 책망한 게 그것뿐입니다.

5-2. 방임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진실로 이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했으면 어떻게 했어야 될까요. 제사장 직을 그만두게 해야지요. 못하게 해야지요. 쫓아내야지요. 거기서 끊어 내야 됩니다.

오늘 새벽에 함께 나눈 말씀인데, 스스로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제사장은 이 율법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특히 여기가 대제사장 가문 아닙니까. 제사장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말씀을 가르치고, 재판하고 판단해 주는 자리에 있거든요. 그런데 이 집 자녀들이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 무슨 권위가 서겠습니까? 그리고 이 사람들은 누가 통제합니까? 사람이 통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통제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다스릴 수밖에 없거든요.

자기 스스로 율법에 맞추어서 자기를 구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의미가 뭡니까? 죽음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임 당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은 죽음입니다.

정말 이 아버지가 이 아들들을 사랑하고 아꼈다면 책망하고 호되게 나무람으로써 내쫓아야 됩니다. 굶어 죽든지 말든지, 하나님께 벌받아 죽지 않고 나가서 굶어 죽는 게 낫지 않습니까. 쫓아야 됩니다. 그냥 둔 것이지요.

6. 사무엘의 성장

6-1. 세마포 에봇

그런데 한편 한나를 봅시다. 2장 18절에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기니라" 세마포 에봇은 누가 지어 줬습니까?

19절에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세마포 옷, 에봇과 겉옷은 제사장들이 입는 조끼입니다. 그런데 세마포로 만들어 입혔습니다. 세마포는 성결과 순결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즉 너는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물들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죄짓지 말고 성결하게 살아야 된다. 그것을 엄마가 어릴 때부터 일 년 내내 아이가 성장하고 자라는 데 맞추어서 세마포 에봇을 집에서 매일 이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면서 한나가 얼마나 그랬을까요. 아들 보고 싶어서요. 그것을 지으면서 한나가 얼마나 많이 기도했을까요. 그렇게 귀한 아들입니다. 내 품 안에 놓고 기르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엘리는 자기 품 안에서 길렀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앙 교육을 엉망으로 하니까 이런 지경이 되는 것이고, 사무엘은 성전에 떨어뜨려 놓고 길렀는데 엄마가 매일 기도하고 기르니까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지 않습니까. 여호와 앞에 성결하게요.

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여기 사무엘처럼, 어린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냄새가 뭡니까? 초콜릿 냄새요? 쿠키 냄새요? 엄마 냄새 제일 좋아하지요. 엄마 냄새요. 엄마 품에서 서너 살까지 지내다가 뚝 떨어져서 얘가 혼자 사는데, 무서운 형들하고 사는데, 그런데 항상 엄마가 매년 올라올 때마다 엄마 냄새가 가득한 세마포 에봇을 채워 줍니다.

그 아이의 마음에 그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는, 상상을 하고 훈련을 하면서, "나는 성결하게 자라야 되는구나." 엄마가 매번 그 옷을 입혀 줄 때마다 "너는 이 옷처럼 깨끗하고, 죄짓지 말고 성결하게 자라야 된다. 저 형들처럼 저렇게 되면 안 된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지냈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기도로 키운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6-2. 전인적 성장

이제 이렇게 되니까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감에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고 그리하여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0-21절)

하나님이 한나에게 이렇게 자녀를 많이 주신 이유는, 이제 사무엘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책임진다. 이제 너는 여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온전히 내가 돌보고 책임질 테니 너는 이제 너의 일상으로 돌아가라 하시며 다시 다섯 자녀를 주셨지 않습니까. 세 아들과 두 딸을요.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6절) 전인적으로 자랐습니다.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에게 사랑받고요. 우리 예수님도 그랬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사무엘이 전인적으로 자랐습니다. 어머니 한나가 그랬지 않습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고, 기도의 걸림돌이 있을 때 대제사장이지만 담대하게 아니라고 말하며 오해를 풀었고요. 전인적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한 것을 말하는 것이거든요. 어머니 한나가 그랬고, 아들 사무엘이 그랬고,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신앙은 치우치는 것이 가장 안 좋습니다.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는 것은 굉장히 안 좋은 것입니다. 전인적인 신앙,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사랑받고요. "나는 하나님 앞에는 사랑받는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자신이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다" 그러면 내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다시 원점에서부터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나는 성경을 열심히 읽는데 기도는 안 한다." 문제인 것입니다. "기도는 많이 하는데 성경은 한 자도 읽기 싫어." 그것도 문제인 것이지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전인적으로 가셔야 됩니다.

7. 하나님의 심판 예고

7-1. 하나님의 사람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서 직설적으로 예언을 합니다. 책망이자 예언입니다.

28-29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여기 너희는 엘리와 홉니와 비느하스 세 사람을 동시에 일컫는 말입니다.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찌게 하느냐" 일차적 책망이지요. 나보다 아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가장 귀한 제물로 너희 자식들을 살찌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30절) 여기서 중요하지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께서 제사장 가문에 내리신 진노입니다.

7-2. 리더십에 대한 엄격함

하나님은 특별히 리더십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격하셨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갔지요. 나답과 아비후가 불에 타 죽었지요. 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이 권한도 그만큼 주셨거든요. 노동하지 않지 않습니까. 땀 흘리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잘 먹고 잘 삽니다. 어깻살 매일 먹고요. 오른쪽 뒷다리가 맨날 제사장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족해서 삶은 고기 말고 날고기를 뭐 하겠다고 날것을 갖고 오라니 이게 말입니까, 뭡니까? 그런 아들들을 책망하지 않고 나무라지 않는 엘리를 하나님이 책망하고, 가문을 멸문지화로 삼겠다고 하신 것이지요. 무서운 책망이지요.

31절에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4절에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들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절에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누굽니까? 이 사람이 사무엘이지요.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누구입니까? 다윗이지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책망하시고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더 이상 타협이 없습니다.

8. 사무엘을 부르심

8-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던 때

이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 2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부분 어디에서 많이 공부했지요.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2-3절)

성소에서 절대로 꺼지면 안 되는 게 하나님의 등불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등불이요. 하나님은 빛이시니까요. 성도들이 와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이지요. 홉니가 하겠습니까? 비느하스가 하겠습니까? 그놈들이 안 하지요. 늙은 아버지가 하겠습니까? 아버지는 눈 어둡고 처소에서 누워서 주무시고 계시고요. 그 일을 누가 하고 있는 것입니까. 사무엘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전 안에 누웠더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사무엘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아무도 안 하니까, 아무도 안 하는데 진짜 책임 맡은 대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은 안 하는데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 없다고 안 되는 법이 없습니다. 겉보기엔 누가 나 못해, 내가 안 하면 누가 할 거야 하는 것 같지만, 사무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이런 작고 연약한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에 등불을 밝히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고 이끌어 가시고 인도해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일할 거리를 주실 때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나중에 가서 교만한 자리에 있다가 "나 아니면 누가 할까" 하다가, 나 아니라도 할 사람이 많은 것을 목격하고 슬피 울게 될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맡은 책임, 소임, 사명을 감당하셔야 됩니다.

8-2. 사무엘을 부르심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릅니다. 4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신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이때 사무엘은 하나님께 대답한 게 아닙니다. 아직도 한 번도 하나님 임재 경험을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무엘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니까 할아버지 엘리가 부르는 것으로 알고 할아버지한테 달려간 것이지요. 엘리가 아니라고 하거든요. 그것을 세 번 반복합니다.

8절에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신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엘리도 세 번째 해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러 줍니다.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9절)

하나님이 또 부릅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이것이 사무엘 인생의 모토가 되었지요.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8-3. 첫 번째 말씀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요, 어린 사무엘을 이렇게 부르셨으면 좀 희망차고 좋은 얘기해 주면 좋지 않습니까.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으면 "넌 참 착하고 귀하구나. 네 어머니도 귀하고, 네 아버지는 좀... 좀 그랬지만 나중에 엄마 말 잘 듣고 사람이 바뀌었어" 하고 칭찬해 주고요. 그리고 "너 참 힘들고, 잠 많을 텐데, 하나님의 성전에 등불 켠다고 고생이 많지. 너 앞으로 잘 될 거야" 하고 하나님 그렇게 축복해 주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 어린 사무엘에게 엘리 집 안에 멸망할 말씀을 하십니다. 보세요.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11-14절)

끔찍하고 무섭지요. 하나님이 이 어린아이에게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첫 번째 음성이지 않습니까. 이 음성은 평생 기억합니다. "너는 앞으로 엘리처럼 되면 안 된다. 너는 앞으로 평생 동안 내가 너를 하나님의 종으로, 나의 종으로 사용할 텐데 너는 절대로 저렇게 망해 가면, 엘리처럼 살면 안 된다." 이것을 하나님이 경고하시기 위함이고요.

두 번째는 이것을 봐서 엘리에게 전하라 하거든요. 사무엘이 못 합니다. 그것을 엘리가 괜찮다고 나에게 얘기하라 하거든요. 그래서 편안하게 사무엘이 그냥 들은 얘기를 전합니다.

제사장으로 사는 삶이요, 성도들에게 좋은 말만 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에게 좋은 말만 하고 "축복받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도 됩니다"라고요. 그런데 사실 책망해야 될 때가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면 큰일 난다고, 그러다가 사탄의 종 노릇하다가 지옥 간다고, 그런 말도 해야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처음부터 강하게 얘기하시는 것이지요. "넌 앞으로 이런 사명을 할 수밖에 없다. 세월이 악하니까, 사람들이 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두 가지의 뜻으로 하나님은 그렇게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9. 말씀의 권능

9-1. 땅에 떨어지지 않는 말씀

19절에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말씀의 권능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전하는 말씀, 설교하는 말씀이 성도들 마음속에 그대로 와서 꽂히고 뿌리내리고 열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사무엘이 기도한 것 다 응답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사무엘이 어떻게 살았는지 우린 다 보셨지 않습니까. 우리의 말에 권위가 있으려면, 우리 말에 힘이 있으려면, 말이 공중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성소에서 기도하고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자기 전심을 드리고 성결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결한 자를 쓰시거든요.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열심히 기도한 사무엘처럼 성결하면 쓰실 것입니다.

9-2. 선지자로 세움 받음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에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20절)

단은 이스라엘 제일 북단이고요, 브엘세바는 제일 남단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런 뜻이지요.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대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신지라"(21절)

결론

오늘 우리가 한나와 어린 사무엘에 대해서 이렇게 공부했습니다. 이제 다음 시간은 4장에서 6장까지 언약궤를 다루는 말씀인데, 집에서 한번 읽어 보시고 오늘 공부 잘 복습하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한나와 어린 사무엘을 통해서 한나의 기도와 한나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 기도했고, 기도의 장벽과 장애물이 있을 때 슬기롭게 극복했으며, 기도 응답을 받은 후에 서원을 충실하게 지켰으며, 기도 응답에 사로잡혀 지내지 않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한나처럼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아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세마포 에봇을 지어 입힌 한나처럼 우리도 자녀들을 위하여 눈물의 기도 없는 부모 되게 하옵시고,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의 말에 힘과 권위가 있게 하옵시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자녀를 방임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항상 하나님 앞에 눈물로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하는 아름다운 주의 부모, 아름다운 주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