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특강 2 - 언약궤 (삼상 4-6장)
사무엘상 4장 9절에서 11절까지 말씀입니다.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치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 중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아멘.
오늘은 사무엘서 공부 두 번째 시간입니다. '언약궤'라는 제목으로 사무엘상 4장에서 6장까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야기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들을 때는 "아, 재미있구나. 그랬구나" 하고 잘 들어오는데, 한 번 두 번 곱씹고 다시 새겨 놓지 않으면 그냥 이야기처럼 흘러가는 것이 스토리가 있는 본문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들은 한 번 두 번 되짚어 보시고 복습해 보시면 훨씬 더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4장 1절 말씀이 교재에 빠져 있는데, 1절을 먼저 한번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자,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그랬습니다. 이 말을 4장 1절의 첫 시작에 두고 있는데, 이 말을 왜 4장 1절의 첫 시작에 두었는가.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사무엘이 말한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는 말씀의 능력이요, 또 하나는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무엘이 말씀 전하는 말씀 능력의 사람이라서 그가 전하는 모든 말씀이 이스라엘 공동체 백성들의 마음에 떨어지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역사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또 두 번째, 사무엘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 소리를 다 듣고 어쨌든 다 응답해 주셨다는 뜻이에요. 자, 이제 엘리 시대는 저물고 사무엘의 시대가 날이 갈수록 흥왕해지고 있는 이런 시대입니다.
이제 백성들은 희망을 봅니다. 지난 시간에 봤죠.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우리로 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선지자로 세움 받음을 온 백성들이 다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 왔습니다. 백성들에게 온 백성들에게 두루두루 다니며 설교하고 다녔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그 말씀에 권능이 있고 능력이 있으니까 백성들 마음, 심령이 움직이지 않았겠습니까? 은혜를 받고 움직이고, 그리고 나서 전쟁이 일어난 거예요,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자, 그러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식에 의하면, 말씀 듣고 충만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 받은 자들이 전투에 나갔습니다. 그러면 그 전쟁은 어떻게 되어야 정상입니까? 져야 됩니까, 이겨야 됩니까? 이겨야 정상이잖아요.
1. 패배의 원인
1-1. 은혜는 받았으나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2절을 보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들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사천 명이나 죽었어요. 엄청난 숫자가 죽은 거예요.
자, 전쟁에 졌다니까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공식과는 어긋나는 일이 여기서 벌어진 거예요. 그러면 여기에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게 느껴져야 됩니다. 뭐가 잘못됐을까요? 많은 것들이 꼬여 있겠죠. 이 안에는 뭔가 우리가 알 듯 말 듯한 문제들이 여기에 들어 있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은 들었는데 회개가 빠져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는 말씀 듣는 건 좋아해요. 하나님 말씀 듣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성경 공부하는 거 좋아하고, 은혜 받는 거 좋아하고, 예배 드리는 거 좋아하는데, 그런데 돌이키지를 않아요. 자,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자기를 고치고 그렇게 살려고 애쓰지를 않습니다. 그냥 젖는 것만 좋은 거예요.
지금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도 지금까지 이런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엘리 시절에 엘리가 무슨 범위가 있고 말씀의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젊은 사무엘이 성장하면서 강력하고 힘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은혜는 받았는데 회개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가장 많이 회개해야 될 자들이 누구입니까? 엘리, 홉니, 비느하스, 이 지도자들이잖아요. 지금 위에서부터 지금 썩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들이 전혀 회개할 생각이 없는 거예요. 돌이키지를 않죠.
자,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고 했잖아요. 하나님은 통회하고 회개하는 심령을 바라고 원하시는데, 회개하지 않고 통회하지 않고 돌이키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이들을 심판하시는 거죠. 하나님 백성들이니까 배줄기를 때려서 돌이키게 하시는 거죠.
1-2. 언약궤의 우상화
자, 그러면 여기서 사천 명이 죽고 났을 때, "왜 이럴까?" 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여 가지고 회의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무엘을 찾고... 지금 사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지도자는 사무엘이잖아요. 엘리도, 홉니도, 비느하스도 아니에요. 영적 지도자의 위상은 이미 사무엘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냥 껍데기만 홉니와 비느하스, 엘리가 가지고 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자신을 돌아봐야 되는데, 한 번 더 들어갑니다. 이제 한 번 더 들어가면 재앙이죠.
이번 전세를 뒤집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합니까? 4장 3절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옴에" 사천 명이 죽고 돌아온 거예요.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고"
자, 어떤 뉘앙스예요? 자기 반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오늘 우리를 패하게 하셨는고"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이 사람들도 왜냐면 말씀에 은혜받고 충만해져서, 그리고 나왔는데 졌다니까요. 장로들, 쯤 되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열두 지파의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 천부장, 백부장, 오십 부장, 십 부장 그중에서 리더십이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자신의 문제를 못 보는 거예요. 자기 성찰이 없는 거죠. 기도하지 않으니까, 회개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이들이 어떤 짓을 합니까?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 다음 잘 보세요. "그것으로" 줄 치세요.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그것으로', 언약궤로.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되는데 '그것으로', 언약궤로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이게 뭐예요? 이게 우상숭배죠 뭐. 언약궤를 가져다가 언약궤가 우리를 구원하게 하자. 이 장로들이 모여서 회의한 게 결과가 이거예요.
4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법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언약궤가 오니까 대제사장의 아들, 대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세트로 달려온 거예요. 언약궤 비치기려고.
자, 이런 엉터리 지금. 실질적 영적 지도자 사무엘은 없고, 악한 지도자 홉니와 비느하스, 이스라엘 백성들 공동체에게 악한 영향력을 끼친 엘리의 두 아들, 이들이 지금 언약궤를 가지고 여기 왔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이들이 이렇게 결정을 내린 데는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요단강을 건널 때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제사장들이 어깨에 언약궤를 메고 건넜었거든요.
여호수아 3장 11절에서 13절까지 제가 읽겠습니다.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을 건너가리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이거 잘 아시죠, 이 사건.
그 당시 요단강이 창일하게 막 넘쳐나는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요단 강물이 멈춰 선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마른 땅같이 건너갔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시내산에서 지었는데, 그것을 메고 광야를 가로질러 왔고, 언약궤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간 거예요. 가나안 땅에 가나안 땅의 사십팔 개의 성읍들을 하나하나 다 무찌르고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그 자리에 있었던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 그 자체에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거죠.
그런데 그때와 지금의 결정적인 차이가 뭡니까? 지도자의 문제 아니에요? 모세와 여호수아가 있었고, 지금은 엘리, 홉니, 비느하스가 그들의 지도자예요. 하나님과 관계성이 좋은 영적인 지도자가 그 당시에는 있었고, 지금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악한 지도자가 그들의 리더예요.
지금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있고,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언약궤만 가지고 오면 승리할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궤에 승리의 능력이 있다 이렇게 믿고 가는 거죠.
이건 마치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헌금 거액을 많이 드리고 교회에서 시키는 거야 열심히 봉사하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지금 여기 홉니와 비느하스 보세요. 홉니와 비느하스, 이 둘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레위인들에게 메워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 이들의 행위를 우리가 공부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들,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자들, 하나님 앞에서 입에 담지 못할 온갖 죄들을 다 쏟아내고 만들었던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왔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여기에서 승리를 주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이죠.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승리를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패하게 하시죠. 지금 이것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예요.
그래서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예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내가 하나님과 꺼리끼는 문제가 있는가, 죄 문제가 있는가, 나와 하나님이 정말 친밀한가, 영적으로 내가 하나님과 정말 친밀한 관계 선 가운데 있는가. 그게 있다면 다른 걱정할 이유가 없죠. 내가 가난해서 헌금을 마음껏 못 드리고, 내가 몸이 불편해서 주일전에서 마음껏 섬기거나 봉사하지 못하고... 그게 뭐가 문제가 됩니까? 내가 하나님과 기쁜 관계, 좋은 관계 가운데 있는데.
그런데 지금 여기 하나님과의 관계는 딴 나라로 보내버리고 언약궤만 가지고 나왔다고 승리할 수 있느냐? 천만의 말씀이에요.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 언약궤 자체가 지금 우상이 된 거죠. 지금 심각한 거죠.
여러분, 언약궤 안에는 뭐가 들어 있습니까? 세 가지가 들어 있었죠. 그죠? 십계명의 두 돌판,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만나를 담은 항아리, 만나가 다 사라지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도 없어지고, 나중에는 십계명의 두 돌판만 남아요. 그러면 언약궤는 곧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래서 언약궤는 곧 말씀인데,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언약궤를 메고 갔어요. 이건 너무 역설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가 기도를 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데 하나님께 복을 구해요. 하나님의 약속은 전혀 지키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뭔가를 구하고 요청하는 것, 많아요. 절대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말씀과의 관계예요. 지금 그걸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거죠.
2. 철저한 패배
2-1. 블레셋의 승리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5절 보니까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침에 땅이 울린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가 충천했어요. 왜요? 그들도 역사를 아니까. 과거에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가서 가나안 땅의 모든 백성들을 다 무찌른 것처럼, 요단강이 멈춰 선 것처럼, 지금 이 언약궤가 들어오면 블레셋을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믿고 그들의 사기가 충천하는 거예요. 집단 최면에 걸린 거죠. 집단 자기 기만이에요.
이걸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위에 엘리부터 시작해서 백성들까지 교육이 하나도 안 된 거예요. 신앙 교육. 레위인들의 세 가지 책임이 있었다 그랬죠. 첫 번째는 예배, 두 번째는 말씀 교육, 세 번째는 재판이에요. 지금 엘리가 대제사장으로 있는 이 기간 동안에 사십 년 동안 사사로 다스렸거든요. 그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 교육, 말씀 교육이 일체 안 된 거죠. 그러니까 장로들도 이 모양이고, 백성들도 다 이 모양이고. 지도자가 엉망이면 백성들이라도 깨어 있어야 되고, 백성들이 엉망이면 지도자가 가슴을 치며 그들을 영적으로 끌고 와야 되는데, 다 같이 거기에 있죠.
자, 블레셋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죠? 7절에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이전에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이제 블레셋 사람들도 그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거예요. 이집트를 무찌르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자, 그런데 4장 9절에서 11절, 아까 우리가 읽었던 부분이죠. 이제 블레셋에서 물러날 때가 없잖아요. 어떻게 해요? 거기서도 빼겠습니까?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죠.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같이 되어 힘써 싸우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이 치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 중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도 전쟁하면서 "어? 어? 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왜 이렇게 쉽지? 왜 이렇게 쉽지?" 하면서 했을 거예요. 최초에 사천 명이 죽었죠. 그때 멈췄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궤를 모셔 왔는데 삼만 명이 죽었어요. 궤는 빼앗겼어요.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었어요. 철저한 패배죠.
그냥 얼핏 보면 하나님이 수치를 당한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궤가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졌으니까. 그런데 이게 진정한 하나님의 수치입니까? 그렇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를 주셨다면, 그게 오히려 하나님의 수치예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렇게 다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 이름이 순간적으로 곤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것 쯤은 그냥 감수하시는 분이에요.
이보다 훨씬 더 훗날 남유다 말기에 바벨론에 의해서 하나님의 성전이 불타잖아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올라와서 성전의 그릇과 금, 은과 각종 보물들 다 빼앗아 가고,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뽑고 왕족들 다 줄로 묶어서 다 끌고 가잖아요, 바벨론 포로로. 그래도 하나님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으니까. 망해버려라 하고 그냥 던져 두는 거예요.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은 안전하다"고 설교했어요.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은 안전하다. 우리는 여기 있으니 절대로 망할 일이 없다" 그랬어요. 그런데 왠걸요. 하나님이 철저하게 답파 망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니까. 망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니까요. 이게 역설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 죄짓고 있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자, 하나님은 철저하게 망하게 하십니다. 망해버려야 돼요. 안 돼요? 돼요. 그런 자들이 그래야 거기서부터 새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어설프게 망하면 안 됩니다. 그렇죠.
2-2. 패배의 원인 분석
지금 궤를 빼앗겼어요. 삼만 사천 명 죽었죠. 홉니와 비느하스 죽었어요. 패배의 원인이 뭡니까? 이제 우리가 분석하는 회의 내용입니다.
첫째, 우상숭배죠. 하나님의 궤를 우상처럼 섬겼어요. 우상숭배가 따로 있는 게 아니죠. 하나님의 언약궤는 말씀을 섬기고 말씀을 따르라고 준 건데, 말씀 따르지 않고 거기에 하나님의 궤 자체를 섬겼습니다. 그게 우상숭배죠.
둘째, 회개하지 않았어요. 자, 하나님의 궤가 성막 안에 가면 어디에 위치합니까? 만약 궤가 성소에 있습니까, 지성소에 있습니까? 지성소에 있죠.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로막혀 있고, 지성소에는 아무나 못 들어가고 대제사장만 대속죄일에 일 년에 단 한 번 들어가죠. 그리고 들어가서 뭐 합니까?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대신해서 회개하잖아요. 그렇죠?
하나님의 언약궤 위에 그룹이 있다 그랬어요. 그룹은 천상대 두 천사가 서로 날개를 마주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여러 번 그림을 봤습니다. 그 자리를 속죄소라 그래요. 자,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궤가 상징하는 것, 첫째는 말씀이요, 그 안에 십계명의 두 돌판이 있으니까. 두 번째는 회개예요. 회개. 그렇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씀도, 말씀대로 듣고 행하지 않고, 회개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패하겠죠. 그러니까 전쟁에 지죠. 역설적으로 바꾸어서 말하면 우리가 승리하고 세상을 이기고 강한 군사가 되려면 두 가지를 잘하면 되죠. 말씀대로 살고, 회개 잘하고.
우리가 살다 보면 죄 짓잖아요. 하루 종일 살다 보면 발이 더러워지잖아요. 그러면 회개해야죠. 작은 티끌이라도 아버지께 내어놓고, "하나님, 이거 제가 생각해 보니 잘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회개해야죠. 그러면 우리는 거침이 없습니다. 어떤 일에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승리하게 하세요.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우상숭배 했고, 회개하지 않았고, 그러니까 패할 수밖에 없는 거라니까요.
셋째, 패배의 세 번째 원인,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했죠. 자기는 변하지 않으면서, 자기는 회개 안 하고, 자기는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언약궤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여기서 지면 하나님의 이름이 수치를 당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합니다. 하나님, 반드시 우리에게 이기게 해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한 거예요.
아이들, 영악한 아이들이요, 백화점 같은 데 가서 엄마 망하게 하려고 팍 물잖아요. 뭐 뒹굴고 떼쓰고 소리 지르고. 그러면 사회적 위치와 체면에 민감한 우리 어머니들께서 "아, 원하는 거 사라. 그러고 장난감 사라" 그러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떼 부려서 얻은 것 어떻게 됩니까? 우리 드는지 말든지 쥐어 든지 맡겨두고 가버려야죠. 거기서 뭐 어떻해요. 그래야 버릇을 고치지.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은 절대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창조주시잖아요.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이용해 먹으려고 해서 됩니까? 자기를 돌아보고 자기가 변해야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패했습니다. 완전히 망해버린 거죠.
2-3. 엘리 가문의 최후
자, 엘리 가문의 최후를 봅시다. 패전 소식을 들은 엘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3절 "그가 이를 때에 엘리가 길 곁 자기의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떨림 즈음이라" 이런 지경이 되었는데도 엘리는 기도하지 않아요. 자, 지독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영적 지도자로서의 자격 자체가 아예 없는 사람이죠.
"그 사람이 성읍에 들어오며 알림에 온 성읍이 부르짖는지라" 소리 지르고 부르짖고 울었다는 뜻이죠. 너무 늦었어요. 온 성읍이 이제 울면 뭐 합니까? 진작에 울었어야지.
사람들은 잘 울지 않아요. 우리가 영화보다가 울고, 슬픈 드라마 보다가 울고, 기뻐서 울고, 억울해서 울고, 많이 울잖아요. 그런데 진짜 울어야 될 때는 회개의 눈물이에요. 통회하고 자복하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따위로밖에 못 사는 것에 가슴 아파하며 울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언제 울어요? 돈 잃어서 울고, 실패해서 울고. 이미 그때는 끝난 거예요,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들 지금 울면서 뭐 합니까? 이전에 울었어야죠. 회개하고. 사천 명 죽었을 때 그때 울었어야 되죠. 그때가 아니면 이미 그 전에 울었어야 되던가. 그런데 우는 것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지금 이렇게 뒷북 치고 그래서 이건 뭐 합니까? 이미 다 끝났는데. 지금 이것도 회개의 눈물이 아니에요.
17절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의 의자에서 뒤로 넘어지며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비참한 결말이죠. 이렇게 엘리가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다합니다.
엘리의 며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9절 "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 때가 가까웠더니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는 것과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부려 해산하고 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의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이가봇, 즉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를 엘리에게 보내서 예언이 기억나십니까? "너희 집의 팔을 다 끊어 버리겠다. 노인이 하나도 없도록 하겠다." 그 말씀 그대로 이루어진 거예요. 이제 엘리의 집안이 완전히 심판받고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2-4. 회개의 기회 상실
자, 이제 우리가 한번 상상해 보세요,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어요. 하나님의 궤를 빼앗기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없는 게 있어요. 제가 좀 전에 말씀드렸죠. 뭘 못합니까?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을 지키는 거예요. 일 년에 한 번. 하나님의 궤가 여기 실로의 성막에서 떠나갔다가 이십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돌아오거든요. 다윗이 이십 년 후에 다시 모셔 온다고요.
이십 년 동안, 장장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속죄일을 못 지킨 거예요. 그 당시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일 년에 단 한 번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 앞에 가서 회개해야 그들의 죄가 사함 받거든요. 이십 년 동안 그걸 못했어요.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뭡니까? 회개도 다 빼앗겼다는 거죠. 회개도.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는 속죄소, 제단, 언약궤 자체를 그냥 가져가 버리신 거예요. 회개 안 하니까. 기회를 주고 시간을 주고 성막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진정한 회개를 안 하니까, 하나님이 이십 년 동안 회개를 금하신 거죠. 안 받아주시는 거죠. 공식적으로. 이게 얼마나 무서운 징벌이에요.
우리가 회개하지 않으면 어떻게 삽니까? 죄 속함을 받지 않으면 내가 내 죄를 내가 책임져야 되는데, 죄의 삯은 사망인데 내가 우리 죄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이 어마어마한 죄를... 우리가 오늘도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았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가 아니면 내가 감히 내 죄를 책임질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기회를 놓치니까 이십 년 동안 언약궤 자체를 거두어 가버렸어요. 회개 못하게. 무서운 말 아닙니까?
하나님의 언약궤 안에 말씀이 있죠. 말씀도 그동안 빼앗긴 거죠. 말씀과 회개를 하나님이 거두어 버렸으니까. 말씀이 있을 때 들어야 되고, 회개할 제단이 있을 때 회개해야 돼요. 모든 게 때가 있잖아요. 우리 자녀들 한테 "너 공부해라. 공부할 때가 있다. 열심히 일해라. 일도 때가 있다" 이렇게만 얘기하지 말고, 우리도 회개할 때가 있고, 말씀 공부하고 말씀 들을 때가 있어요.
언약궤가 다 사라졌는데 이제 어디 가서 예배하고, 어디 가서 말씀 듣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사무엘을 일으켜서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 듣게 하시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진정한 개인적인 소통을 하시죠. 그러나 상징적으로 언약궤 자체를 거두어 가셨다는 건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건 잘 기억하셔야 됩니다.
2-5. 사무엘의 시대
또 이제 엘리의 집안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엘리도 죽고, 홉니, 비느하스 죽고,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 낳다가 세상 떠나고. 이제 그 아이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기록도 없고. 이제 누구의 시대입니까? 사무엘의 시대가 왔어요.
사무엘이 시작하는 그 시작의 시점을 한번 보세요. 인간적으로 보면 폐허잖아요. 아무것도 없어요. 실로의 성막에 들어가 보니까 언약궤도 없네요. 실로의 성막에 엘리도 없고, 홉니도 없고, 비느하스도 없고, 아무도 없고. 삼만 사천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었어요. 과부가 넘쳐나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왜 그렇게 하셨을까? 인간적으로 보면 사무엘은 굉장히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주 좋은 환경을 사무엘에게 주신 거죠. 왜? 더 이상 나빠질 데가 없잖아요. 더 이상 더 떨어질 데가 있습니까?
지금 여기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으로 섬기던 언약궤를 거두어 버려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소통하도록 하게 하셨고, 언약궤가 없어서 말씀을 듣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사무엘에게 말씀의 권위를 실어 주신 거죠. 이제 사무엘은 여기서부터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3. 블레셋 땅의 언약궤
3-1. 다곤 신상의 굴복
이제 분위기가 확 바뀌어요. 5장으로 넘어가면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가져갔죠. 모셔 갔다기보다 가져간 거예요.
자, 그 당시 고대 시절에는, 고대 사회에는 뭐 도시 국가가 나라 간, 종족 간, 인종 간 전쟁을 하면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각각 다르잖아요. 이긴 국가는 그가 이긴 나라, 패한 나라의 신을 가져와서 자기 신전에 그냥 둬요. 왜 그렇게 하느냐? 정신적으로도 그대로 지배한다고 믿었거든요. "우리의 신이 너희의 신을 이겼다" 이걸 보여주고 상징하는 거거든요.
하나님의 형상이 없잖아요. 형상이 없으니까 신상이 없어요. 하나님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언약궤인데 그걸 빼앗아서 왔으니까 굉장한 전리품 아닙니까?
그러면 블레셋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어디다 두었을까요? 자기 신전에다 두었겠죠. 예. 5장 2절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우리가 이겼다"는 거죠. "이제 완전한 승리다. 이제는 끝났다"는 거예요.
자, 다곤 신상. 이것은 인어처럼 생겼는데 남자죠. 자, 다곤 신상은 이 블레셋 사람들이 지중해 연해서 살았거든요. 해안 국가거든요. 오 방백 연합체. 그래서 다곤 신이 바다의 풍랑을 다스린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또 블레셋 사람들이 농사도 지었으니까, 바람과 바다를 다스리고, 풍랑을 다스리고, 그리고 풍어를 기원하고 곡식도 잘 되게 해 주고 뭐 그런 의미를 다 가지고 있어요. 이런 다곤의 신상 곁에다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두었어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블레셋 오 방백 연합체라 그랬어요. 다섯 도시 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룬 거예요. 그중에 가장 번성한 도시가 아스돗이에요. 아스돗의 방백이 제일 대장, 방백들 중에 힘이 있으니까 "우리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게 하라" 그래서 다곤 신상 곁에다가 둔 거죠.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다곤이 세상에, 땅에 머리를 쳐박고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그 다곤 신상을 일으켰어요. 이걸 보면 우상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달아야 되지 않습니까?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니까, 그 신상 자체는 어떤 능력도 없으니까, 사람의 힘을 빌어서 일어나지 않고는 스스로도 일어날 수 없는 게 우상이잖아요. 넘기는 거잖아요.
시편 115편 4절에서 7절을 보면 신상에 대해서, 우상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해요. 제가 읽겠습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어요.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이게 우상의 본질이에요. 이걸 섬기고 있다니까요, 사람들이. 미련하게도. 이런 우상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쳐 빠져 있었는데, 그걸 사람이 다시 이렇게 세웠어요. 머리가 있으며, 적어도 생각이라는 것이 있으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여기에 누가 가서 손 댄 적도 없고, 블레셋 지경에 누가 갑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삼만 사천 명이 죽고 없는데, 거기 가다가 죽을 건데 누가 특공대로 가서 이런 짓을 할까요? 아무도 그런 짓을 못하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죠.
그 다음 날 4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이번에는 보십시오.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머리를 끊었다는 건 가장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끊어 버리셨다는 뜻이고, 두 손목을 끊었다는 건 이 신들의 손이 능력을 의미하잖아요, 그걸 다 끊어 버렸다는 뜻이죠. 하나님이 하신 일이에요.
우리가 이걸 보고 뭘 느껴야 되느냐. 두 가지를 깨달아야 되는데, 첫째는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하나님 스스로 다 하신다는 부분이에요. 우리가 보통 내가 없으면 이 교회 안 돌아갈 것 같고, 내가 없으면 이 조직 망할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하나님 혼자서도 다 하실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왜 우리 인간과 동역하시느냐? 사람을 사랑하시니까. 차라리 하나님 혼자 하는 게 이렇게 깔끔하게 일처리 하시잖아요. 그런데 사람을 통해서 일하는 하나님, 그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고 만들어 가기 위해서 이래도 저래도 하는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 속 써가면서 일하시는 거죠. 그래서 나 같은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셔야 돼요. 괜히 뭐 튕기지 말고, 사용하시면 감사하셔야 돼요.
또 한 가지, 두 번째는 지금 하나님께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이유는요, 이스라엘이 진 것이지 내가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거예요. 적어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이 패배했지 하나님이 패배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 사실을 블레셋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만방 중에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내가 징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심판한 것이지 내 능력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다."
오늘 교회가 망해서 교회가 손가락질 받잖아요.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 거리가 되는 교회들이 많잖아요. 망해 나가는 교회들이 많잖아요. 하나님이 수치 당하고 하나님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거죠. 하나님은 영원토록 존재하시고, 영원토록 홀로 영광 받는 분이시고, 하나님은 절대로 패하시는 분이 아니야, 지시는 법이 없는 분이야. 그걸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겁니다.
3-2. 독한 종기 재앙
이제 아스돗 사람들에게 종기가 나요. 6절 보니까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무겁게 임하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보십시오. 이 이방인들도 얼마나 똑똑해요. "그의 손이", 여호와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을 친다" 알고 있잖아요. 이방인들도 이렇게 똑똑한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을 이렇게 모를까요.
이제 아스돗 사람들이 어떻게 해요? 8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아 이르되" 오 방백 연합의 대표들이 다 모인 거예요.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이제 오 도시 중에 두 번째 도시 가드로 옮겨 가는 거예요. 가드로 옮겨 가면 좀 나을까?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란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가드도 초토화됐어요.
이제 가드에서 어디로 가요? 10절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세 번째 도시 에그론으로 갔어요.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이제는 모두가 막는 거예요. 백성들이 막는 거죠.
이제 거기서 멈춘 거예요. 블레셋의 오 방백 연합체 중에 첫 번째 아스돗, 두 번째 가드, 세 번째 에그론으로 가다가 멈춰 섰어요. 이제 어떻게 됐을까요?
3-3. 언약궤의 귀환
자, 11절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이제 돌려보내려고 자기들이 회의를 한 거죠. 12절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침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이제 돌려보냈는데, 문제는 어떻게 돌려보내는가가 문제. 어떻게 돌려보낼까? 결론부터 말하면 블레셋 사람들은 블레셋 나름의 방식으로 돌려보내요. 자기들의 방식으로. 어쨌든 자기들 식으로 예를 다해서 돌려보내요.
6장 2절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여기 제사장들은 자기 다곤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이에요. 그 복술자들을 불러서 물어봐요.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물을 드려야 할지니라"
쥐어 들은 건 있어 가지고 속건제는 잘 해드려야 된다네요. 물론 이들이 말하는 속건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레위기 오 가지 제사법의 속건제와 일치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지금 그 뒤의 내용을 보면 거의 두 가지 정신은 그대로 있어요.
속건제를 언제 드립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하고, 이웃에 대해서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 이웃에 대해서 물어 주고, 하나님께 와서 예배 드리는 게 그게 속건제잖아요. 지금 이 궤를 가져 왔다가 블레셋 사람들 전체를 죽이게 하고, 독한 종기가 나게 했잖아요. 자기 백성들을 괴롭히잖아요. 그거 배상하고, 그다음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용서의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돌려보내는 거예요.
이거 보면 이방인들도 어쨌든 예를 다하고 최선을 다해서 예배 드리려고 해요. 자기 방식이라도. 그런데 하나님을 오래 동안 모셨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도 없고, 돌이킴도 없고, 말씀도 없고.
4절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물을 삼을까" 속건제를 뭐로 할까요?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 어찌하였든지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어쨌든 자기 방식으로 뭘 갖고 와 가지고 제물을 드리고 돌려보내는 거죠.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게 나와요. 실제로 보십시오.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워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와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기서 두 가지가 나오는데요. 하나는 새 수레예요. 원래 하나님의 언약궤는 수레에 모셔올 수 없습니다. 레위기 율법, 출애굽기 율법, 민수기 율법을 전부 다 보면 하나님의 언약궤는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다녀야 돼. 그게 법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들은 율법을 모르잖아요. 몰라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새 수레라' 그랬어요. 가장 좋은 수레로. 가장 좋은 수레로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그 수레에 매어서 모셔 가게 하자. 말씀을 모르니까 이렇게 하는 거죠. 모르니까.
그리고 또 이 소 두 마리를 매어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가게 하는데, 그 소에게는 송아지가 있을 것 아니에요. 그 송아지는 따로 떼서, 다른 데로 떼어 놓게 해요. 왜 그렇게 했을까? 뒤에 이유가 나와요.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지금 블레셋 방백들이 헷갈리는 거예요. 이런 일이 진짜 하나님의 능력인가, 아니면 우연히 일어난 일인가. 이걸 한번 시험해 보려고 한 거죠. 그 시험을 어떻게 하느냐. 소 두 마리를 수레에 메어서 큰 길로 보내는데, 그 소들에게는 송아지가 있었다 그랬죠. 송아지를 그 소가 보는 앞에서 떼다가 다른 데로 두어 놓아요. 그러면 소들은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자기 송아지가 있는 데로 방향을 틀겠죠. 그게 당연한 동물의 본능 아닙니까? 송아지가 울고 막 떨어지려고 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이건 우리에게 우연히 일어난 일이고, 송아지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길로 송아지와 멀어지는 길로 계속 가서 그 길 끝에 있는 도시인 벧세메스로 가면, 이건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재앙입니다. 이렇게 분별하기로 하고 이들이 시험을 해 본 거예요.
결과가 어떻게 됐을까요? 6장 10절에서 12절 화면을 보시면 이렇게 나오죠.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에 메우고" 젖 나는 소, 송아지에게 젖먹이는 소예요.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그랬어요.
왜 울었을까요? 예, 자기 새끼 송아지들을 떼고 가니까. 암소가 울고 가요. 울면서 벧세메스로 가요.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갔어요. "정말 이 소가 벧세메스까지 가나 안 가나" 아, 강력한 힘에 의해서, 본능을 거스르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 암소 두 마리가 자기 본능을 거슬러서 벧세메스까지 간 거죠. 하나님이 일하신 거예요.
이걸 통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뭘 느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지금 이런 일을 통해서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거예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죠.
율법을 몰라서 이들이 새 수레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싣고 송아지와 소를 매었잖아요. 그것을 하나님이 뭐라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고 내가 너희를 이렇게 벌 주었다"는 걸 만천하에 보여주신 거잖아요. 그건 하나님이 블레셋 백성에게 주신 기회였어요. 지혜로웠다면 이 하나님의 궤를 붙잡고 돌아왔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들도 구원받지 않겠어요?
블레셋 사람들이죠. 절대 안 돌아와요. 우상을 섬기는 관성에서, 다곤의 목이 부러져 나가고, 손목이 부러져 나가고, 몸뚱아리만 남았는데, 그닥 오늘 다시 이렇게 세워 가지고 이거 신이 맞나 싶은 생각. 이들이 바로 블레셋 사람들이에요.
4. 벧세메스의 비극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벧세메스까지 와요. 언약궤를 받은 벧세메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13절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둠에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렸고"
벧세메스 사람들이 기쁨으로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 예상치 않았던 일이 벌어져요.
19절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오만에다가 칠십을 쳐들였어요. 어떤 사본에는 칠십 명, 어떤 사본에는 오만 칠십 명, 뭐 어떤 것이 맞느냐 틀리냐 라는 주장들이 있으나 이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언약궤는 만지면 되니까 안 됩니까? 성물을 허락되는 레위인 고핫 자손만 어깨에 메고 가게 돼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누가 대제사장만 일 년에 단 한 번 지성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들이 호기심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여다본 거예요. 그 안에 뭐가 있는가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거죠. 이 정도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육이 안 돼 있고, 훈련이 안 돼 있고, 신앙 교육이 하나도 안 돼 있는 거죠.
이들이 죽었어요. 이들의 죽음은 누구 때문입니까? 가르치지 않은 레위 지파 대제사장 엘리, 홉니, 비느하스. 이들 때문에 죽은 거예요.
20절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가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꼬 하고"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요. 이제 자기들도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 두려운 거죠. 기럇여아림이라는 저 시골 마을로 보내버렸어요.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메고 산 위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으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십 년 동안 방치된 거죠. 시골 저 산 구석에.
결론: 말씀과 회개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말씀과 회개를 상징하는데, 회개하지 않고 말씀 듣지 않으면 그건 그냥 그 짝에 불과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도 빼앗아 가시고, 말씀 들을 기회도 빼앗아 가십니다. 기회가 있을 때 말씀 듣고 회개하는 생활을 상실하게 하셔야 되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믿음생활을 성실하게 잘 감당해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절대로 패하는 법이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한 것이고 그들이 실패한 거지, 하나님은 실패한 적이 없다. 이것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언약궤 말씀 마음에 깊이 새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서 승리는 바라고 축복만 바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홉니와 비느하스, 이스라엘의 장로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진 않은지 돌아봅니다.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고,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통회자복하며 회개하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매 순간 깨닫게 하옵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블레셋 사람들에게까지 넘쳐서 그들이 돌아오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백성으로 살았음을 보며, 우리도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여, 말씀 듣고 깨닫는 인생 되도록 도우시고, 언제나 주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 능력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고 깨닫고 행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