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 - 사울, 왕이 되다 / 전체녹취

사무엘상하 특강 4 - 사울, 왕이 되다 (삼상 10-12장)

사무엘상 10장 20절에서 22절까지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물으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 보따리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아멘.

오늘은 사무엘상하 특강 네 번째 시간입니다. 드디어 사울이 왕이 됩니다. 사울이 왕이 되는 이 상황이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이었을까요, 재앙이었을까요?

사실 복과 재앙, 복과 저주를 우리가 단편적으로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살펴보겠지만 이것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울 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사울이 잘하면 자기에게도 복이 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도 복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징조를 보여 주시고 이미 말씀을 주셨는데, 그 징조와 말씀대로 제대로 행하지 못해서 결국은 문제가 많이 생기게 됩니다. 오늘은 사울의 최고 전성기 이야기만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우리가 지난 시간에 몇 가지 예를 살펴봤습니다. 첫째로 사울은 준수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인물이 아주 좋았다는 뜻입니다. 키가 굉장히 컸고 사람의 어깨 높이만큼 머리가 하나 더 있을 만큼 키가 굉장히 큰 사람이었고 인물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유력한 집안입니다. 집안도 좋았습니다. 배경이 일단은 좋았지요. 그리고 아버지의 암나귀들을 잃었는데 사울이 직접 나귀를 찾으러 갑니다. 순종 잘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한 군데만 가서 살펴본 게 아니라 두루 다녔으나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세 번이나 반복할 만큼 그는 순종적이고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이 사울에게 말한 것을 그냥 물리치지 않고 잘 들어줍니다. 소통에 굉장히 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무엘 앞에 가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외적으로 볼 때 더할 나위 없이 굉장히 좋은 사람입니다. 이제 그런 사람이 왕이 됩니다.

1. 기름부음과 세 가지 징조

1-1. 기름부음의 의미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어떤 말을 전했습니까? 10장 1절입니다.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것을 보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지도자, 리더를 세울 때 항상 기름을 붓지 않습니까? 그런데 리더로 세우는 것은 두 단계를 거칩니다. 우선 먼저 기름을 붓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는 표시를 먼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진짜 공식적인 왕이 됩니다.

다윗을 한번 보십시오.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갑니다. 가서 형들 일곱 명이 다 지나갈 때까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집에 또 아들이 없느냐?" "막내가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데리고 와라."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을 부었으면 왕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기름을 부었으면 그때부터 왕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공식적으로 왕 업무를 수행할 때까지, 실제로 다윗 같은 경우는 십수 년이 걸렸습니다. 굉장히 오랜 세월 훈련받았습니다. 광야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죽을 뻔한 고비도 여러 번 넘깁니다. 진짜 왕이 되는 것하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것하고 시차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지금 여기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사울에게 기름 붓는 것도 지금 비공식적인 것입니다. 사무엘과 사울, 이 두 사람 사이에만 기름부음이 있거든요. 지금 공동체 백성들 앞에서는 이 사람이 아직 왕으로 세움을 받기 전입니다. 조금 있다가 같은 10장에 나오는데 제비뽑기를 합니다. 열두 지파를 다 놓고 제비를 뽑으니 베냐민 지파가 되고,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또 제비를 뽑으니 여러 집안 사람들이 나오고, 그 안에서 사울이 뽑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식적인 행사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이미 비공식적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에게 성령의 기름을,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먼저 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시차를 두시는 이유는 그 차이의 기간 안에 훈련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윗을 보십시오. 이 십수 년의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이 훈련받았습니까? 오랫동안 훈련받고 죽도록 훈련받고, 그렇게 훈련받아서 진짜 왕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과 다윗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가 이 시차입니다. 10장 1절에서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10장 20절에서 22절 사이에서 이제 진짜 왕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이에 훈련 기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훈련 기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이 실패한 원인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원인이 훈련 기간이 짧거나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 훈련 기간이 없었을까요? 백성들이 하도 재촉을 하니까, 백성들이 목숨 걸고 재촉을 하니까, 빨리 왕을 세워달라고 야단법석이니까 그런 것입니다.

훈련 기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울을 보면 굉장히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일단은 외적으로 내면적으로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겸손한 것하고 진짜 환경이 겸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서 겸손해지는 것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이게 무슨 내용인지 우리가 조금 있다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름 붓는 장면이 없이 제비 뽑아 가지고 그를 왕으로 세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교만하겠습니까? 만약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 와서 그에게 기름 붓는 과정 없이 그냥 쭉 지나가다가 그가 그냥 왕이 됐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교만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기름 붓는 것은 "너는 이제 내가 택한 이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니 그렇게 너를 준비해 가라"는 하나님의 사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서 세례받게 합니다. 어릴 때는 유아 세례, 혹은 시기를 놓치면 성인이 되어서 입교도 하고 세례도 받습니다. 그런데 세례 받았다고 아이가 갑자기 달라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 받고 나도 그 성품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아주 특별하게 변화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그런데 왜 세례가 중요하냐, 왜 그런 세러머니가 중요하냐 하면, 그것은 "너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택한 사람이다. 그러니 말이나 행실이나 하나님의 택한 사람답게 행동해라. 그래야 하나님께서 너를 앞으로 크게 사용하실 것이다"라는 사인이기 때문입니다.

직분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십니다.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목사 안수 받는다고 해서 그때부터 완벽한 목사가 됩니까? 장로로, 집사로, 권사로, 안수집사로 세움을 받는다고 해서 그때부터 완벽한 장로, 집사가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택하셨으니 이제 너 그답게 살아가라. 훈련받고 충실한, 정말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 되라" 하나님께서 그런 사인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라고요. 그래서 두 번의 이런 기간을 거치는 것입니다. 먼저 기름부음 받고, 그다음 진짜 왕이 됩니다.

1-2. 세 가지 특별한 징조

이제 보십시오.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윗에게는 없었던 세 가지 아주 특별한 사건을 주십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 사건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이 사건을 왜 주시느냐 하면 사실 사울은 훈련받을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꼭 기억하라고 세 가지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 첫 번째 사건입니다.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여기서 '나'는 사무엘입니다—"베냐민 경계 셀사의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두 사람을 만났는데요,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당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며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이 어떤 말을 전해 줍니까? 암나귀를 이미 찾았다는 얘기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사무엘이 사울에게 예언해 주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나를 떠나서 내려가다가 두 사람을 만날 텐데 그들이 너에게 암나귀를 찾았다 할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예언하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영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살아가면 네 앞에 닥친 인생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사실 지금 사울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까? 암나귀 찾으러 온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나귀 없어져서 그것 찾으러 여기저기 헤매다가 없어가지고 사환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물어봅시다" 하고 오다가 사무엘을 만난 것 아닙니까? 자기의 당면한 문제는 나귀 찾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의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네가 주의 일을 열심히 하고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네 앞에 닥친 모든 문제는 암나귀를 찾은 것처럼 깨끗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는데, 주의 일을 해야 되는데, 자기 인생 문제에 발목 잡혀 있으면 어떻게 자기 일을 할 것입니까?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아, 앞으로 네가 하나님의 일 하는데 네 앞에 닥치는 인생 문제 걱정하지 마라. 네가 하나님 앞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로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나귀를 내가 찾아 준 것처럼 네 인생의 모든 닥치는 문제는 다 해결해 주마"라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평생 동안 붙잡고 사울이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다. 여기에 대응되는 사건이 있는데 사무엘상 13장에 가면, 우리가 다음 시간에 살펴볼 것입니다.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 있는데 전쟁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고 예배드리고 나가야 됩니다. 사무엘이 와야 되는데 사무엘이 안 옵니다. 기다려도 안 옵니다. 빨리 전쟁해야 되는데 백성들은 전투에 앞서서 마음이 막 나뉘고 흩어집니다. 마음이 급하니까 자기가 제물을 갖고 오라 그러고 사울이 자기 마음대로 번제를 드려 버렸습니다.

자기 앞에 있는 문제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준다고 하셨는데, 마음이 급하고 쫓기니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무엘이 오지 않고 블레셋 군대는 저렇게 위압하는데 이것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 텐데 그것을 자기 맘대로 해결해 버렸습니다. 이것을 평생 동안 지키고 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두 번째 예언을 합니다. 3절을 보세요.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을 배알하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리니" 이제 세 명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한 사람은 떡 세 덩이를 가졌고 한 사람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진 자라" 4절이 빠졌는데 4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들의 손에서 받으리라"

세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떡 두 덩이를 그냥 뜬금없이 사울에게 주는 것입니다. "너는 그것을 받는다" 하셨습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줄 것이고 그것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앞으로 네가 기름부음 받은 자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서 살게 되면 너의 먹고 사는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마, 네가 애써 애쓰지 않아도 힘쓰지 않아도 먹는 것 사는 것 그 걱정 없이 해주마, 그런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실은 이런 약속들은 자기가 훈련받으면서 몸으로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으로 지금 훈련시켜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고요.

그런데 사울은 이 약속을 평생 동안 지켰을까요, 못 지켰을까요? 안 지켰습니다. 여기에 대응되는 사건이 사무엘상 15장에 나오는 아말렉 사건입니다. 한번 볼까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이것 잘 아시는 사건이지요.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라고요. 헤렘(חֵרֶם) 명령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쓸어 버려라, 완전히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명령대로 사울이 행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왕은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 보기에 좋은 것, 양이나 소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두었습니다. 하찮은 것만 진멸했습니다. 기름진 것은 다 남겨 두었습니다. 사무엘이 가서 화가 나서 막 혼을 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백성들이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 핑계를 댑니다.

먹고 살 걱정 없이 해주겠다 하셨는데, 네가 기름부음 받은 자로 나에게 헌신만 하면 앞으로 먹고 살 걱정 없도록 해 주겠다고 이렇게 징조까지 다 보여 주셨는데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징조입니다. 10장 5절.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 있느니라" 블레셋 사람들의 영문이라. 블레셋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트라우마입니다. 두려움의 자들입니다. 악당들의 영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네가 거기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아니, 블레셋 사람들의 성읍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니,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의 영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블레셋과 전쟁에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니까 두려워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이 세 가지를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지금 이 세 가지를 한번 더 정리해 보면, 인생 문제 네 앞에 닥치지 않도록 해주겠다, 내가 해결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먹고 살 걱정 없게 해주겠다. 세 번째는 적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면 하나님의 영으로 새 영을 부어 주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은 다윗처럼 오랜 시간 동안 몸으로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훈련받으면서 몸으로 배워야 합니다. 배도 고파 보고 목숨을 걸고 쫓겨 다녀도 보고 온갖 고생 다 해보고, 그러면서 몸으로 훈련받고 배워야 되는데, 아니, 이 백성들이 하도 서둘러 가지고 빨리 왕을 달라고 해서 재촉한 나머지 이 왕을 급하게 세우다 보니 기름 부어 놓고 진짜 왕으로 세울 때까지 훈련할 기간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 가지를 약속으로 그날 바로 주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결국은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켜 가지 못합니다.

1-3. 훈련의 중요성

그래서 훈련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훈련 잘 받아야 됩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훈련받기 싫어합니다. 특히 성도들이 편한 것 좋아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좋아하고 몸 편하고 마음 편하고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여러 가지 훈련받는 것을 다 싫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손에 딱 맞게 쓰시려면 훈련을 시켜야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나이가 많아졌고,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훈련시키는 것을 너무 달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 훈련시키는 것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면요. 그냥 부모의 눈으로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고 안타깝기 그지없어서 내가 자꾸 도와주고 싶고 내가 자꾸 뭔가 해주고 싶은데, 하나님이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 지금 이 아이를 하나님이 빚고 계시구나" 너무 그렇게 보이면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됩니다. 내가 자꾸 개입해 가지고 들어가서 그 훈련을 방해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도 망치고 하나님의 훈련도 막고 차질이 생깁니다.

그래서 부모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서 우리 자녀를 하나님이 어떻게 빚으시고 훈련하시는지 묵묵히 보고 기도 열심히 하시면 됩니다. 그것을 마음에 잘 새겨 주셔야 됩니다. 훈련을 제대로 못 받으니까 이상하게 되어 버리는 사울을 보십시오.

1-4. 번제와 화목제의 결단

이제 8절을 보시면,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사무엘이 이 세 가지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너는 먼저 길갈로 내려가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했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왜 드릴까요?

번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레위기에서 배웠습니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입니다. 다 태워서 드리는 것이니까요. 즉 앞으로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기를 온전히 다 태워서 하나님께 번제처럼 다 태워 드려야 된다는 결단의 예배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자원제, 두 번째 서원제, 세 번째 감사제. 감사해야지요, 나 같은 사람을 왕으로 세우셨으니까요. 자원해야 되지요, 열심히 일하겠다고요. 서원해야 되지요, 왕으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고요. 그래서 번제와 화목제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앞의 이 세 가지 징조를 보여 주신 대로 "저는 하나님의 영에 충만한 사람처럼 살겠습니다"라는 결단을 번제와 화목제로 하라는 것입니다.

8절 다시 보겠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 동안 기다리라"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 날에 다 응해 버린 것입니다. 사무엘이 말한 대로 이 세 가지 징조가 그대로 다 응했습니다.

2. 공식적인 왕 즉위

2-1. 미스바에서의 제비뽑기

이제 공식적으로 왕이 됩니다. 훈련 과정이 생략됐습니다. 훈련은 예언으로 대체됐습니다. 10장 17절,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여호와 앞에 모으고"

미스바가 어떤 장소입니까? 원래는 전혀 의미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참한 패배 후에, 블레셋과의 전쟁 후에 완벽하게 패배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빼앗기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엘리는 그 소식을 듣고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서 죽고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삼만 사천 명이 다 죽었습니다.

그 패배 후에 미스바 광장에서 사무엘이 처음으로 그 자리에서 공식적인 대부흥을 했습니다. 설교를 하고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영적 각성이 일어났고 하나님께서 우레로 블레셋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신 장소입니다. "미스바로 모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백성들에게는 어떤 기대감이 있을까요? "조만간 뭔 일이 있겠구나." 미스바에서 좋은 기억이 있으니까 좋은 기억을 가지고 미스바로 올라왔겠지요.

10장 20절에서 22절, "사무엘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이제 제비뽑기를 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별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고 그 중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지라"

어디 갔습니까? 자기는 이미 기름부음 받을 것을 알고 있는데, 왕이 될 것을 알고 있는데 어디 갔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이 또 여호와께 물으되 그 사람이 여기 왔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그가 짐 보따리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셨더라"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짐 보따리에 숨은 사울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일단은 드러나는 것은 겸손합니다. 막 의기양양하지 않고 겸손하지요. 그런데 그 겸손이 진짜 겸손일까요?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을 한번 보셔야 되는데, 아직까지 왕으로서 준비되지 않은 모습이 보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모습, 너무 급하게 자기도 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너무 급하게 훈련받지 않았으니까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이라는 것이 이렇게 짐 보따리 사이에 뒤에서 숨어 가지고, 그 큰 사람이 준수하고 기골이 장대하고 덩치 큰 사람이 거기에 자기를 구겨 넣어 있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일까요? 진짜 겸손은 하나님을 세우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그다음에 보면 사울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겸손은 몸으로 배워 가지고 몸에서 녹아 있고 체득되는 것이지, 이렇게 행구 사이에 숨고 짐 보따리 사이에 숨는다고 그것을 우리가 겸손이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사람의 오히려 더 가려진 모습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모습, 훈련 기간이 짧았고 진짜 왕으로, 왕다운 사람으로 준비되지 않은 모습, 이런 모습이 여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때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도 왕을 세울 만큼 성숙하지 않았고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2-2. 준비되지 않은 왕과 백성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3절,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키가 더라" 일단은 키가 컸습니다. 준수했습니다.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백성들이 왕의 만세를 막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굉장히 공허한 외침입니다. 왜냐하면 왕 만세를 부르면 뭐합니까? 왕 만세를 원했다고요. 심지어 왕이 거할 왕궁이나 집조차 없었습니다. 조금 뒤로 넘어가면 사울이 왕 되고 나와서 소 몰고 있거든요. 농사짓고 있거든요. 세상에 이런 만세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고향에 가 가지고 소 몰고 있는 왕이 어디 있습니까? 왕을 세워 달라고 하나님께 떼쓰고 구르고 "안 됩니다. 우리 왕 세워 주십시오" 하고 소리 칠 때는 언제고 왕을 위한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무것도, 정치 조직도, 군대도,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왕만 하나 덩그러니 세워달라고 얘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리다가 말리다가 세워 달라 그러니까 세우셨습니다. 급하게요.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 그냥 왕게 만세만 불렀습니다.

그다음 보세요. 심지어 27절,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여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반대 세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이런 식으로 절차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도 마음이 하나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반대했을까요? "이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겠느냐?"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베냐민 지파에서 뽑혔기 때문입니다. 당시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 말미를 보면 내전을 겪어서 남자들이 거의 다 죽고 가장 약한 지파였습니다. 사실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 정도는 되어 줘야지요.

유다 지파는 사실 요셉의 마음을 품은 유다 아닙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살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큰 단초를 제공한 게 유다 아니었습니까? 유다 지파에 대한 그리움과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아 있습니다. 또 에브라임 지파. 에브라임 지파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은 에브라임 지파가 여호수아를 배출한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에 대한 리더십이 남아 있습니다. 그 향수가 있는데 에브라임 지파도 아니고 유다 지파도 아니고 베냐민 지파 가운데 이렇게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비토하는 것입니다.

2-3. 공허한 외침의 교훈

우리는 이것을 보면 사람들의 외침이 얼마나 공허하고 허무하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교회가 전도를 굉장히 강조합니다. 밖에서 사람 데려오라고 전도 많이 하라고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진짜 믿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정말 힘쓰고 애써서 이 자리에 데려다 놨는데 은혜받을 수 있을까요? 혹시 오히려 그 사람 영혼에 상처를 줘서 다시는 교회라면 질릴 정도로 우리 교회가 그 사람을 만들어 놓지는 않을까요? 그런 불안감이 없습니까? 그런 생각 한 번도 해 본 적 없으세요?

교회의 조직이나 교회 시스템이 엉망진창인데 전도만 계속 강조하는 것만큼 공허한 게 없습니다. 집안 꼴이 엉망인데 손님 밖에서 초대해 오는 남편, 밉지요. 엉망진창인데요. 교회가 조직도 깨끗하게 갖추고 교회가 은혜가 풍성하고 넘치고 무교회 하나님 말씀의 영의 말씀이 풍성하고 성도들끼리의 사랑이 넘치고, 이래야 전도가 의미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 우리가 전도를 얘기해야지, 맨날 총동원 전도하고 맨날 집사님들 몇 명 데려오라고 하고 그러면 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은데요. 그것이 정말 공허한 것입니다. 전도하자는 말 자체는 좋은 말이지만 우리 꼴을 보고 전도하자 그래야 합니다. 그것부터 먼저 채우고 먼저 세우고 청소하고 우리 안에 있는 터세브르 다 정리하고요. 아니, 사람 한 사람 불렀는데 터세브르 해가지고 도로 내쫓으면 하나님 앞에 무슨 책망을 받으려고요. 교회도 이런 행동을 할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지금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가 이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준비해 놓지 않고 왕만 달라고요. 사울도 준비 안 되고 백성들도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불행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불행해지지요.

결혼 적령기가 되었다고 남자나 여자나 서른이 되었다고 무조건 결혼해 버리면 무조건 불행해집니다. 그 두 사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들을 보면서 인간이 정말 미련하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지혜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일단은 들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 안 듣고 무조건 왕을 요구하니까 준비되지 않고 훈련되지 않은 왕이 자기들 앞에 떡 하니 섭니다. 앞으로가 걱정인데요.

그런데 초반에는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를 이끌어 가시니까요. 준비되어서 속이 알찬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를 그냥 인도해 가십니까 능력이 나타나거든요. 그 첫 번째 사건이 나옵니다.

3. 사울의 첫 번째 승리

3-1. 암몬의 위협

야베스 사람들은 어떤 일을 당했습니까? 사무엘상 11장 1절과 2절을 보시면요.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암몬 사람은 누구의 자손입니까? 모압과 암몬은 롯의 자손입니다. 롯이 피신 중에 두 딸과 동침해서 낳은 아이들이 모압과 암몬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중에 암몬 자손 나하스가 아주 악당입니다. 어떤가 보십시오.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에 올라와서 겁을 주니까 야베스 사람들이 벌벌 떠는 것입니다. "우리와 화친하자. 어떤 요구든지 다 들어주겠다" 하셨습니다. 2절,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에게 치욕이 되게 하리라"

이것이 화친하자는 것입니까, 말자는 것입니까? 야베스 사람 오른 눈 다 빼라, 그러면 화친하겠다고요. 이 말은 다 죽이겠다는 뜻입니다. 그냥 쓸어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기분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 암몬 사람이 왜 올라왔을까요? 왕을 뽑았다 하니까, 왕을 세웠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적들이 이스라엘 공동체 상황을 가장 잘 압니다. 외부에서 지금 내부의 상황을 더 잘 알아요. 왕은 세웠으나 아무것도 없는 허수아비 왕이라는 것을, 왕도 준비되지 않았고 공동체 조직도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올라오는 것입니다. 올라와서 겁주고 모욕을 주고요.

그러면 이들이 실제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정상적인 나라였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적이 올라오면 당연히 왕에게 전갈이 가야 됩니다. 그다음 어떻게 되는가 보십시오. 4절,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함에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자세히 보세요.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누구에게 전했습니까?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사울이 사는 기브아까지 왔는데 그 동네까지 왔는데 사울에게 이 얘기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을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까, 안 하는 것입니까? 안 하는 것입니다. 왕은 세워 놨는데 왕은 소 몰고 밭 갈고 있습니다. 지금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국가 시스템이 전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그 얘기 듣고 울고 엉망입니다. 뭐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5절,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다가"—기가 차지요, 왕이 됐는데—"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이렇게 전해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이 한 가지 잘한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관심을 가진 것입니다. 관심을요. 이제 자기가 왕이 됐으니까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우는지 어떤 일이 있는지요.

예수님도 항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 묘한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거기서부터 기적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의 깊게 보고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보고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저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표정의 변화가 있고, 저 사람 얼굴에 근심이 있고요. 백성들이 왜 우는지 사울이 물어본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얘기를 했습니다.

3-2. 하나님의 영의 감동

사울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6절에,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거룩한 분노입니다. 즉 사울은 지금 자기 능력이 없습니다. 훈련받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하나님께서 그를 강권적으로 끌어 가셔야 일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자기 능력이 지금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거룩한 분노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스라엘 모든 열두 지파에게 소집 명령을 보냅니다. 군대를 소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려고 했기 때문에 33만 명의 군인들이 모입니다. 보십시오,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지파에서 30만 명, 유다 지파 3만 명, 합해서 33만 명이 모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제 왕이 왕같이 대접받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뭔가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통문을 다 이스라엘 공동체 열두 지파에 보냈고 그들이 군대가 되어서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이 전쟁을 승리하면 이제 국가적인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판을 닦아 주시는 것입니다. 보다 보다 안 되니까, 이 왕도 안 되고 백성들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되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판을 깔아 주고 지금 방향을 다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9절, "와 있는 전령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함에 그들이 기뻐하니라"

이제 사울은 전쟁을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착하고 성실해 보였고 순종 잘하고 아랫사람과 소통 잘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지 그가 전투 중에 한번 "나를 따르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그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이끌어 가시니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3-3. 대승의 기록

11절,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새벽에 기습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정오까지,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쳤습니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대승을 거둔 것입니다.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이제 백성들도 자신감을 얻은 것입니다. 사울을 비토하던 자들을 끌어내서 우리가 죽이겠습니다 하고요. 이제 이렇게 해서 진짜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사건을 통해서 왕으로 대접받지 못했던 사울이 이제 드디어 왕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합니다. 이제 여기서 겸손해야 됩니다. 여기서 자기가 했다고 뽐내면 그때부터 이제 진짜 이상한 데로 가는데요.

3-4. 하나님께 영광 돌림

승리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죽이지 말자 그랬습니다. 사실 사울도 그런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자기를 비토하고 싫어하던 사람들, 그런데 그런 일 하지 말자 그랬습니다.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자기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다고요. 그래서 사울이 여기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끝까지 쭉 갔으면, 이렇게만 끝까지 쭉 가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주셨던 이 세 가지 예언과 징조를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평생 살았다면 자기도 행복하고 이스라엘도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누구보다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게 왕을 요구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에게 성공할 수 있는 왕의 조건 세 가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렇게만 했더라면, 하나님을 앞세우고 자기는 그 뒤에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그것이 무너지니까 실패한 것입니다.

4. 길갈에서의 새로운 결단

4-1. 길갈의 역사적 의미

사무엘이 말합니다. 14절,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왜 길갈일까요? 15절,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여러분, 사실 실로도 있고요 미스바도 있습니다. 실로는 폐허가 됐지만 성소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스바는 역사적인 대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곳입니다. 실로도 있고 미스바도 있는데 왜 길갈일까요?

여호수아 5장 2절 그리고 8절에서 9절, 제가 한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길갈은 '굴러가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이 "그때에"라는 말입니다. 2절에 "그때에"라는 말이 중요한데, 그때가 언제일까요?

여호수아 5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고 난 후 그때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왔습니다. 요단강 앞에까지 왔습니다.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제사장들이 어깨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그 발이 요단강에 닿자마자 강물이 멈춰 서고 마른 땅까지 건넜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거기서부터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의 48개 성읍들이 다 긴장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 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쳐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을 먹이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고 사막에서 길을 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가나안 사람들이 다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긴장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성이 가나안 땅의 제일 첫 번째 성인 여리고성입니다. 가나안 땅에 첫 번째 성, 여리고성이 제일 강한 성입니다. 여리고성 바로 앞에 있는 자리가 길갈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할례를 행하라" 하셨습니다. 왜 하필 그때인가요?

거기서 할례 행하고 들어눕고, 남자들이 다 할례받고 누워 있으면, 적어도 아물고 걷고 활동할 때까지 최소한 1주일인데, 그 당시에 소독약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자연적으로 낫고 활동할 때까지 기다리려면 줄잡아 보름인데, 그때 만약에 여리고성에서 군대가 나와서 다 쳐버리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때 하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말씀 듣고 백성들이 할례를 행했습니다. "낫기를 기다릴 때라" 하셨습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어제나 저제나 혹시 우리가 할례받고 여기 누워 있는 것을 알고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여기서부터 48개 성읍을 전투하고 이겨내는 것은 너희가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너희가 뭘 해? 여기서 할례받고 들어누워 있어도 여리고성 문은 내가 닫아놓고 내가 지킬 테니까 너희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할례받고 누워 있으면 된다, 라고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나안 땅 싸움의 성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전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는 전투,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성에서 한 사람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다 나을 때까지 하나님이 돌봐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까? 그 길갈로 사무엘이 백성들을 다 이끌고 가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했습니다.

4-2. 사무엘의 의도

그러면 여기서 사무엘의 의도가 무엇입니까? 길갈에서 여호수아로부터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모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한 것처럼 사울 왕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가장 스타가 된 사람이 누굽니까? 사울입니다. 백성들의 눈에는 사울이 위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눈에는 이제 사울만 따르면 우린 걱정할 게 없어 보이거든요. 사울도 엉겹결에 왕이 되었는데 하나님의 영이 그를 이끌어 가서 승리했습니다. 교만하게 딱 좋습니다.

그런데 길갈로 가서 그날의 그 정신을 깨닫고 기억하고 돌이켜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된다, 이것을 왕부터 백성들까지 다시 깨닫게 하려고 사무엘이 그들을 다 이끌고 길갈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의도를 알았을까요? 물론 사무엘이 얘기했겠지요. "길갈에는 이런 우리의 역사가 녹아 있는 곳이라"고요.

4-3. 사무엘의 당부

거기서 사무엘이 당부를 합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12장 13절,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왕이 위대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게 중요합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만" 여기 왕도 같이 넣었습니다.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만 만일 너희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이 좋은 날에 재 뿌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지금 이때가 사무엘이 느끼기에는 이 나라의 위기라고 느낀 것입니다. 승리했을 때가 위기라고 느낀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교만하게 딱 좋으니까요. 정말 길갈에서 나라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나라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공할 때를 조심해야 됩니다. 잘될 때, 문제없을 때, 그때 진짜 조심해야 됩니다.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거야"라고 중심을 잡지 않으면 그때 무너지면 답이 없습니다.

4-4. 사무엘의 결단

이제 사무엘이 스스로 무엇을 결단합니까? 22절,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그다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두 가지를 약속해 줍니다. 기도와 가르침입니다.

사실 사무엘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정치적인 지도력은 누구에게 넘어갔습니까? 사울 왕에게 넘어갔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결정의 중심에는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다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이 세워졌으니까, 이 왕이 이제 진짜 지도자로 등극했으니까, 정치적 지도력은 왕에게 넘어가고요.

그런데 사무엘은 결단합니다. 기도와 가르치는 것은 내가 하겠다, 영적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기도 열심히 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 앞에 계속하는 것입니다.

우리 어르신들도 그래야 합니다. 이제 내가 경제 활동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돈 벌어서 뭐 주지 못하는데, 기도하는 것, 가르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기도는 하는데 가르치는 건 잔소리라고 생각해서 "난 차마 못하겠다" 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도 계속하셔야 됩니다.

사무엘이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사울 왕이 다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의 진심이 느껴지시지요?

나가며

그래서 오늘 이 이야기는 사실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여러 교훈을 줍니다. 잘 기억하시고 다시 한번 돌이켜 보시고, 훈련받는 것 겁내지 마시고, 또 훈련 안에 있는 우리 자녀들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가르쳐 주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때는 교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울을 세워 주시고 훈련의 기간이 짧은 그를 위해서 세 가지 예언과 징조를 보여 주신 하나님, 사울은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훌륭한 왕이 될 수 있었으나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해서 실패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우리는 훈련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훈련받고 있다면 우리는 한 걸음 뒤에 물러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 되게 하여 주옵소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왕을 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그렇게 미련하게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우리 스스로를 살피고 돌아보고 준비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며 길갈에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하신 사무엘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