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 사울, 버림받다 / 전체녹취

사무엘상하 특강 5 - 사울, 버림받다 (삼상 13-15장)

본문: 사무엘상 15장 10-11절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아멘)

오늘은 사무엘상하 공부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세우신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그 이전에 이미 사울은 굉장히 세움 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일단 그는 우선 잘생겼습니다. 키가 크고 잘생기고 준수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은 유력한 집안이었고, 또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나섰을 만큼 순종적이었고, 한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 다녀볼 만큼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종의 말에 귀를 기울일 만큼 소통에도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고, 동시에 선지자 앞에서도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섯 가지 덕목을 한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사실 우리는 그중에 한두 가지가 있을까 말까 한데, 사울은 왕이 될 만큼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급하게 왕을 세워 달라고 한 나머지 훈련받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쓰임 받고 제대로 세움 받으려면 훈련받는 게 중요한데, 훈련받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그에게 세 가지 징조를 보여 주십니다. 네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고 지금처럼 이렇게 겸손하게 살기만 하면 언젠가, 그리고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하실 것이다.

세 가지 징조를 보여 주시는데, 첫 번째가 내려가다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다시 찾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앞으로 너의 염려거리, 걱정거리는 하나님인 내가 해결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너는 염려할 필요도 없고 걱정할 필요도 없고, 열심히 주어진 일만 감당하면 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떡 두 덩이를 받았잖아요. 가다가 먹고살 걱정 절대 하지 말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 일 열심히 하면 먹는 것 입는 것, 너희 백성들, 이 나라 모든 민족들 먹여 살리는 것 내가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세 번째가 블레셋 사람의 영문 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적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님께서 징조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항상 그는 왕이 된 이후부터 끝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메시지였습니다.

훈련을 받지 못하는 대신에 이것을 잘 기억하고 항상 꺼내 보고 되새기고 곱씹고 생각하고 살면 절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죠. 물론 그 이후에 암몬 사람 나하스의 군대를 물리친 일도 있었지만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13장부터 15장까지의 내용은 사울이 버림받는 내용입니다. 왜 버림받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네 번이고 곱씹어서 말씀하신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버림받는 것입니다.

1. 기다림에 실패하다

1-1. 평화를 깨뜨린 사울

이제 오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교재 27쪽을 보시고, '기다림에 실패하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된 지 2년 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 2년이라는 말이 오늘 우리 교재에는 나와 있지 않는데, 13장 1절을 보시면 잘 나타납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자, 2년 동안 이제 40세에 왕이 되고 지금은 42세가 되었습니다. 그럼 2년 동안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다른 말로 하면 2년 동안 평화의 시대가 왔다는 거 아닙니까. 2년 동안 평화의 시대가 왔다는 건 왕으로서는 굉장히 잘했다는 겁니다.

암몬 사람 나하스의 군대를 물리치고 난 이후에 2년 동안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블레셋도 침범한 적이 없었고, 주변의 다른 나라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넘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사무엘이 그랬죠. 지금까지 사무엘의 역할은 정치와 종교를 함께 관장하는 자리였는데, 왕을 세우고 난 이후에 사무엘은 이제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죠. 정치하고 전쟁하는 것은 왕에게 맡겼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나라를 위해서 백성들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만 하고 있는 거죠. 사무엘은 기도하고, 왕은 하나님 말씀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얼마나 환상적입니까? 2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의 시대가 지속되어 간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인데, 그런데 사울이 이 평화의 시기를 자기 스스로 깨뜨립니다.

2절과 3절입니다. 화면을 보시면,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여기 굉장히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3절에 보니까 블레셋 사람의 뭘 쳤다고 그랬습니까? 수비대를 쳤다고 그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먼저 침략한 게 아니에요. 블레셋 사람들의 국경 수비대가 있을 것 아닙니까? 자기들 국경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있는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백성들 가운데 군인 3천 명을 징집해서 2천 명은 자기가 데리고 있고, 천 명은 요나단이 데리고 있고, 근데 요나단이 데리고 있는 천 명의 군인들이 블레셋의 수비대를 쳐 버렸습니다. 먼저 선제공격을 한 겁니다. 평화를 깨뜨린 건 사울 쪽에서 먼저 깨뜨린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계속해서 살펴보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전쟁을 할 때는 메시지를 주시잖아요. 뒤에 살펴보겠지만, 먼저 선제공격을 하라고 할 때는 선지자를 통해서 아말렉 족속을 쳐라 뭐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먼저 주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십니다.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 될 이유를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적들이 침범해 오면 그 적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하나님이 기도하면 그다음에 길을 알려 주십니다. 근데 이런 식으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선제 공격하고 먼저 쳐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근데 사울이 자기 스스로 2년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자기가 먼저 쳐 나가 버린 겁니다. 잘한 겁니까, 잘못한 겁니까? 이건 하나님의 사인이 없었는데 자기 멋대로 먼저 움직인 거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뭐 여러 가지 추측이나 상상을 할 수 있는데, 아마 왕으로서 자기 존재감을 조금 더 표현하고 싶고 나타내고 싶었겠지요. 암몬 사람 나하스의 군대를 이겼잖아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2년 동안 아무도 자기들을 치러 오지 않아요. 존재감이 작고 미미해져요. 근데 사실 백성들 입장에서는 전쟁 없는 태평성대가 가장 좋은 것 아닙니까? 이 나라의 왕이 누군지, 전쟁해 가지고 장군의 이름이 높아지고 위대해지는 건 사실 좋은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나라의 4성 장군이 누구인지, 국방부 장관이 누군지, 그거 별로 평화의 시대에는 국민들은 모르지 않습니까? 근데 이걸 사울이 못 견딘 거죠. 그래서 먼저 전쟁을 선포하고 쳐 버렸습니다.

이제 블레셋이 어떻게 나올까요? 잘 됐구나 하며 가만히 있겠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이제 백성들 사이에 위기감이 생긴 거예요. 사울은 이걸 노렸던 겁니다. 길갈에 모여서 백성들을 이끌고 뭔가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자꾸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일하고 싶고 전쟁하고 싶고.

5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이제 이건 명분이 있는 전쟁 아닙니까? 먼저 침략당했으니까요. 얼마나 모였습니까?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니, 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어요. 병거가 삼만이에요. 엄청나게 많은 병거들, 마병들, 그리고 군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화의 시대를 주신 건 물론 블레셋과 싸워야 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스라엘은 힘을 내적으로 더 키워야 됩니다. 왕은 세웠으나 정치 제도가 완비되지 않았잖아요. 왕이 군인을 징집했는데 겨우 모은 군대가 3천 명밖에 안 돼요. 근데 그 군대 가지고 어떻게 블레셋과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명분 있는 전쟁의 명분을 블레셋에게 줘 버린 거죠. 이제 상황이 심각해집니다. 이제 이렇게 되니까 전면전이잖아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면전입니다.

1-2. 자기 주도적인 사울

이제 여기서 사무엘이 등장을 하죠. 이제 백성들이 모였어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 주셔야 되잖아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일으킨 전쟁인데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사울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으며 상황은 어떻게 전개됩니까? 8절 보시면, "사울이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7일 동안 기다렸어요. 아마 사무엘이 이렇게 약속했던 것 같아요. 7일 안에는 내가 그곳에 도착하리라. 근데 이레를 기다렸는데 도착하지 않았어요. 왜 오지 않았을까요? 길이 막혀서? 오다가 차가 퍼져서? 무슨 문제가 생겨서? 왜 못 왔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거죠. 첫 번째 이유는 지금 여기서 사울이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거죠. 우선 자기가 일으킨 전쟁이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스스로 자기 존재감을 뽐내고 나타내기 위해서 평화의 시대를 깬 사울이 자기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그리고 나서 전쟁에 나가야 이 전쟁을 하더라도 승리를 주실 거라는 하나님의 메시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일주일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일을 시작하실 때 시험을 하시는데, 그 시험의 분기점에 지금 사울이 서 있는 겁니다. 그 시험의 분기점이 뭐냐, 내가 주도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이 주도하시는가입니다.

지금 여기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 사회잖아요. 예배와 제사는 사무엘이 관장을 해야 정상이고, 그리고 전쟁과 정치는 사울이 하는 겁니다. 백성들과 함께요. 그런데 지금 사무엘이 오지 않으면 번제를 드릴 수 없고, 예배 드릴 수 없고, 그러면 전쟁 개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그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되는 거예요. 이건 마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요단강 딱 건넜을 때,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길갈에서 할례 행하고 기다린 것처럼, 바로 눈앞에 여리고 성이 있는데 언제 여리고 성에서 군대가 나와서 자기들을 칠지 모르나, 그러나 믿음으로 기다렸던 것처럼, 그들은 지금 여기서 기다리는 거죠. 백성들이 흩어지건 말건, 소수의 군대가 남건 말건, 그 옛날 기드온이 300명의 군사를 가지고도 위대한 승리를 한 것처럼 기다려야 했던 거죠. 그 믿음을 다 알아보기 위해서 사무엘은 지체하고 있는 겁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지체하고 있는데, 근데 사울은 여기서 굉장히 자기 주도적인 성격을 드러냅니다. 9절 보십시오.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자기가 해 버린 거예요. 해치워 버린 거죠. 그냥 지금 우리 여기서 객관적으로 보면, 아니 사무엘이 약속해 놓고 약속을 어긴 건 사무엘 아닌가, 일주일 안에 오기로 해 놓고 오지 않았으면 당연히 번제는 해야 되고 전쟁은 해야 되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걸 영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2. 사무엘의 책망

2-1. 어리석은 행동

이제 와서 사무엘이 책망합니다. 10절입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니이까" 아니 몰라서 묻겠습니까? 책망하는 거잖아요.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자기가 번제를 드린 이유를 조목조목 댑니다. 첫째,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둘째,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셋째,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얼마나 논리적입니까? 당연히 누구나 이렇게 되면 당연히 이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논리적이잖아요. 합리적이잖아요. 그런데 영적이지는 않습니다. 신앙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라는 게, 세상 사람들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지극히 합리적이고 지극히 논리적이에요. 당연히 A 다음에는 B가 와야 돼요. 1 더하기 1은 2가 되어야 되고, 뭐가 있어야지 뭘 하고, 세상 사람들은 그래요. 근데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꿈꾸고 영적인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죄를 지었잖아요. 지금 사울이 그 죄는 사람들은 몰라요. 자기 스스로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는데도 전쟁을 시작한 것, 백성들은 잘 몰라요. 사울은 알죠. 하나님이 아시죠. 기도하고 있는 사무엘이 아시죠. 그럼 그 죄를 회개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다려야 되는데 기다리지 않고 자기 주도적으로 해 버렸습니다. 이게 심각한 영적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세계가 있고, 그건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예요. 그리고 영적이고 신앙적인 세계가 있습니다. 항상 우리에게 그 선택을 요구합니다. 믿음의 사람들, 어떤 선택을 하며 살 것인가. 눈에 보이는 길이 뻔하다 할지라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시면 우린 영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 압니다. 다시 돌아보고 반추하며 믿음으로 나를 돌이켜 보면,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면.

12절입니다.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아니, 어떤 말씀이 눈에 거슬립니까? "부득이하여"예요. 이 사람에게 예배는 해치워 버리는 것, 이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이 사람에게 예배는 그냥 해치우는 거예요. 이걸 빨리 해야 전쟁할 수 있으니까, 이걸 빨리 해야 전쟁에서 내 존재감이 빛으로 하니까요. 근데 실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전에 사무엘이 실로에 백성들을 다 모았잖아요. 실로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백성들이 모였다는 얘기를 듣고 올라와서 전쟁하러 왔는데, 사무엘은 눈도 깜짝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그냥 그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우레가 내려가지고 블레셋 사람들을 다 죽였습니다. 예배 중심으로 살았으니까, 하나님이 예배를 방해하는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이 알아서 정리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전쟁이 우선이냐, 예배가 우선이냐.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영적 세계가 우선이냐, 내가 먹고사는 전쟁터 같은 내 먹고사는 활동이 우선이냐. 이걸 우리가 결단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사울은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굉장히 예배를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그 옛날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랬다가 망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2-2.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다

그 다음 페이지 넘겨 보시면 28쪽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한 내용을 말해 보십시오. 13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여기 '망령되이' 원어를 보면 히브리어로 싸칼(סָכַל)이라고 됐어요. 싸칼, 이 뜻은 '어리석게 행동하다'입니다. 이게 정확한 표현이에요. 어리석게 행동하다. 무엇이 어리석다는 뜻입니까? 그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 지었는데 회개하지 않음이 어리석은 거죠. 예배보다 전쟁을 우선시한 게 어리석은 거죠.

이제 그 다음 이어서 나옵니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명령이 뭐였길래, 어떤 명령이었기에 그럴까요? 한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제가 도입부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사울을 세우실 때 사무엘에게 징조를 말씀하셨잖아요. 내려가다가 어떤 사람을 만날 건데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았다 할 것이다. 그것이 주는 의미가 뭐였습니까? 염려거리, 걱정거리 그거 다 내가 해결해 주마. 네가 하나님 안에 있기만 하면, 네가 믿음 안에 있기만 하면, 염려와 걱정은 다 없애 주마, 이게 하나님이 사울과 맺으신 약속이었습니다.

3. 해램 명령

3-1. 철저한 진멸

오늘 교재에 두 번째 질문, '해램(חֵרֶם) 명령'에 대해 알아봅시다. 믿음 하나로만 아말렉을 진멸해 보라, 그 말씀이거든요. 근데 이거 쉽지 않아요. 사울에게는요. 왜냐하면 이렇게 연습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지금까지 사울이 한 모든 전쟁은 전리품을 얻는 전쟁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 가져오고 자기 창고 채우고, 이게 재미들리는 거예요. 즐거운 거예요. 신나고, 백성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용병들에게 창고 채워 주고, 그들에게 급여 주고. 고대의 전쟁이 다 그렇잖아요. 전쟁하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은 여자들 잡아오죠. 아이들은 일단 죽이죠. 고대 전쟁 보세요. 남자들 죽이고, 아이들 죽이고, 여자들 잡아오고, 쓸만한 거 다 가져오고, 그렇게 해서 한 마을을, 한 부족을 다 초토화시킵니다.

근데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전리품을 하나도 받지 않았어요. 특별한 사람입니다. 특이한 사람이에요. 지금 여기도 역시 하나님의 해램 영역입니다. 지금 이게 사울에게는 굉장한 고민거리예요. 자기 믿음을 지금 올려놓고 하나님께서 시험해 보고 있는 거니까요. 근데 이 해램 명령이 옛날 사울 시절에만 있다? 천만의 말씀이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 명령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일어나죠. 우리가 직업의 현장에서 내 시간을 들이고 열정을 들여서 일하면 뭐라도 생기잖아요. 급여를 받고, 유형과 무형의 자산을 얻지 않습니까? 일하면요. 근데 교회에서 봉사하면 한 푼도 안 줘요. 열심히 봉사하는 데, 열심히 일하는 데, 어떤 이득 되는 것도 없어요. 그게 우리가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적인 해램이에요. 정말 열심히 교회 공동체에서 나에게 맡겨 주신 영적 사명을 다 감당하는 데, 하나님 나에게 직분 주셨잖아요. 그 직분을 위해서 내가 뼈가 부서지게 열심히 일해요. 근데 유형과 무형의 자산으로 나에게 오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 주지도 않아요. 스스로 그러면 내 상급은 하늘에 쌓이는 것 아닙니까?

저 하늘에 교회가 타락할 때는 사람들마다 자기의 지분을 요구하는 거예요. 교회 공동체에서 내가 이만큼 쏟고 했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열심히 하고 열심히 땀을 흘렸기 때문에 날 인정해 달라고, 날 인정해 주고 나에게 직분 달라고, 날 높여 달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날 세워 달라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뭐 선물이라도 달라고, 교회를 통해서 사업하려고 하고, 교회를 통해서 자기 이권 취하려고 하고, 그렇게 교회가 타락해 가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믿음을 달아 보려고 이런 영적 해램을 끊임없이 명령하시는데, 우린 그것과 하고 상관없이 살아요. 그냥 교회가 나에게 이익을 주는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부터 서로가 그걸 누리고 서로 주고받고 그리고 살고 있어요. 악한 거죠. 그거 하나님께서 철저히 그거 다 진멸하라고 했는데, 우리 욕심도 진멸하고 철저하게 그런 거 버리라고 했는데요.

3-2. 선택적 해램의 죄

지금 어쨌든 사울은 굉장한 시험대 위에서 있습니다.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사울은 그의 나라가 영원히 하나님 안에서 가는 거고, 여기 통과하지 못하면 이제는 끝난 거예요. 어떻게 됐습니까? 잘 알잖아요. 우리가 29쪽 보십시오. 사울은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7절, 15장 7절입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의 아말렉 사람을 치고" 잘했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죠. 목을 쳐야 되는데 사로잡았다니까요.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선택적 해램을 한 거예요. 선택적인 해램을 한 거죠.

왜 그랬을까요? 당연하죠. 용병들 때문에 급여를 줘야 되니까, 또 자기 욕심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예요. 그냥 제가 볼 때는 사울은 별로 고민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그거, 나는 그냥 내가 할 일 하는 거고, 그래도 전쟁에 이겼으니까, 용병들 데리고 나와서. 이제 하나님은 사울을 어떻게 보실까요? 이제 너는 끝났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사무엘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10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후회하다'가 히브리어로 보면 나함(נָחַ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한숨 쉬다', '탄식하다'라는 뜻이에요. 아이고 하는 거 괜찮아요. 우리가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정말 엉뚱하고 어이없는 짓을 할 때, 뭐라고 할 말이 없을 때, 한숨밖에 나오는 게 없잖아요. 그때 하나님이 한숨 쉬시는 거예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한숨 쉬다, 탄식하다가 하나님의 찬송이 되어야지, 우리가 하나님의 한숨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램을 명하셨는데, 우린 그 해램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쨌든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고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거, 그거 자꾸 추구하고 찾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 보고 한숨 쉬실 거예요. 아이고 인간아, 인간아, 내가 너 같은 것 때문에 내 아들을 십자가에 내줬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한숨 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사울에게 징조를 주셨지 않습니까? 떡 두 덩이 주면서 너 겸손하게 말씀대로만 살면 먹고사는 걱정 없을 거라 했잖아요. 근데 자기가 직접 나서서 전리품 수거해서 창고에 들이고 부자 되려고 하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하나님 어떻게 기뻐하시겠어요.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제 선지자의 숙명이에요. 사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조금 심하게 책망하는 것 같기도 하긴 한데,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렇게 온 밤을 지새워서 탄식하고 기도하고 눈물로 엎드리는 거죠. 왜 눈물을 흘리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자식 앞에서는 자식을 나무라고 애초리도 때리고 책망하지만, 하나님 앞에 와서는 통곡하고 우는 것과 똑같은 것 아니겠어요? 지금 사무엘이 억장이 무너지는 거예요. 사실 이렇게 세웠는데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자기 맘대로 하는 왕, 이제 하나님이 버렸는데 어떻게 합니까?

4. 사울의 영적 문제

4-1. 자기 영광 추구

사무엘과 사울의 대화를 통해 사울의 영적 문제를 찾아보십시오. 12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첫 번째 영적 문제,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보통 이렇게 잘하지 않잖아요. 나쁜 곳에 와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어요.

자꾸 비교되죠. 사무엘이 에벤에셀, 도움의 돌을 세웠잖아요. 미스바와 센 사이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아닙니까? 근데 지금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어요. 정신 못 차린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은 해램 명령 자체도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에요.

4-2. 거짓말

두 번째 영적 문제입니다. 13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거짓말입니다. 두 번째 영적 문제, 거짓말. 우선 명령을 했습니까? 새빨간 거짓말이죠. 눈이 빨갛잖아요. 지도자의 덕목 중에 거짓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이 죄 지을 수 있고 잘못할 수 있죠. 그러면 정직하게 얘기하고 정직하게 엎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지도자 감이 아닌 거죠.

4-3. 책임전가

14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무리가 중요해요.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책임전가입니다. 세 번째 영적 문제, 책임전가. 그냥 잘못했다 하면 되는데, 거짓말하고 책임전가 줘요. 은연중에 이 사람의 영적 문제가 또 보이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라고 말하죠. '당신의'요.

자 그 다음 페이지 넘겨서 30쪽입니다.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왔나이다 하는지라" 아, 이제는 뭐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거죠. 거짓말에다가 책임전가에다가, 덧붙여서 이런 심각한 영적 문제 더 이상 이 사람은 두고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사울이 하는 일을 보면 끝까지 계속 가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계속 진행하잖아요. 브레이크가 없잖아요. 계속해서 사무엘이 와서 견고하고 또 견고하고 이야기해도, 사실 사무엘 같은 사람은 진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영적 거장입니다. 훌륭한 영적 지도자예요. 이런 영적 지도자를 나의 멘토로 두었다는 건 대단한 축복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영적 지도자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이런 짓을 해요. 그래서 우리는 목회자 탓, 영적 지도자 탓할 게 아니에요. 나의 문제예요. 내 개인의 문제요. 사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으면, 아무리 사무엘 같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서 있어도 사울 같이 이런 인간들이 생겨나는데,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 아무리 훌륭한 영적 지도자가 있으면 뭐합니까?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지 못하면 방법이 없고 답이 없습니다.

5. 최종 선고

5-1.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선고를 내립니다. 사울에게 내린 최종 선고가 무엇입니까? 22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아주 유명한 말씀이 여기서 나오는 거죠. 이 사람의 문제가 예배와 삶이 철저하게 분리된 것 아닙니까? 지금 사울의 문제가 예배라고요. 예배는 그냥 부득이하게 해치워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삶은 그냥 제 멋대로 하는 거예요. 근데 진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예배를 통해서 내가 변화되는 거잖아요. 예배를 통해서 내 심령이 변화되고 내 삶이 변화되고, 그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거, 이게 예배인데, 근데 이 사람은 예배는 그냥 형식이에요. 그리고 자기 행동은 엉망이에요. 욕심대로 해요.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으려면 사울의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반대로 사울의 길과 반대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사랑 받습니다. 다윗처럼요. 23절입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사신 우상은 사악한 우상이에요.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으니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을 버리는 겁니다. 우리는 말씀 어기는 걸 쉽게 생각하는데요, 여기 나오잖아요. 하나님의 말씀 버리는 건 곧 하나님을 버리는 거예요. 말씀이 나에게 명령했는데 그 말씀을 행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것, 우린 곧 하나님을 버리는 거 같아요.

말씀대로 행하는 게 어렵잖아요. 그러나 분투하고 살아내려고 애쓰고 힘쓰고 투쟁하고 기도하고 힘 달라고 구하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듣게 되는 것 아닙니까?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성령께서 힘을 주셔서, 그래서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능력인데요.

5-2. 오늘부터 시작된 지옥

28절입니다.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오늘'이라는 말이 중요해요. 오늘, 일하루 초, 당장 오늘, 이 순간,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다. 그럼 하나님은 이때 이미 다윗을 마음에 두신 거예요.

자 그런데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오늘 왕을 왕의 자리에서 영적으로 내리신 거잖아요, 폐위된 거잖아요. 그러면 당장 끌어내려야 되는데, 사울이 여기서 진짜 왕 자리에서 끌어내림 받는 것은 사무엘상 끝까지 가야 돼요. 지금 15장이잖아요. 31장까지 가야 돼요. 그래야 거기서 길보아 산 전투에서 죽거든요. 근데 지금 이건 영적인 사형선고거든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지금부터 너에게 지옥이 시작될 거다, 너는 왕의 자리에 앉아 있으나 너는 왕이 아니라 지옥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거다, 두고 봐라. 진짜 그렇잖아요. 다윗이 부상하면서 질투에 눈 멀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껍데기는 왕의 왕관을 쓰고 있으나 실제로는 왕으로서 어떤 행사도 할 수 없는, 백성들은 다윗을 찬양하고 사울을 무시하고. 이때부터 진짜 지옥 같은 인생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껍데기 유지하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 인정하시고 세워 주셔야 우리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되는 거죠.

5-3. 체면만 구하는 사울

자 그런데 여기 기록되지 않은 15장 27절과 30절 한번 볼게요. 화면 보십시오. 즉 이렇게 하니까 사울이 어떻게 해요.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얼마나 세게 잡았던지요. 사울이 이렇게 말하죠. 30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오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끝까지 이런 모습이에요. 이게 회개하는 인간입니까? 자기 체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끝까지 왕 자리에 위치만 차지하려고 하는 악한 인간이죠.

5-4. 아각의 최후

여섯 번째 질문입니다. 아말렉 왕 아각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오라 하였더니 아각이 즐거이 오며 이르되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하니라" 아각이 즐거이 와요. 자기는 안 죽는다고 확신하는 거예요. 왜요? 왜 이렇게 확신할까요? 사울이 '너 살려줄게' 약속했을 테니까요. 왜 살려줄게 약속했는지는 불명확한데 여러 가지 해석이 있어요. 첫째는 아각 또한 용병으로 사용하려고, 둘째는 아각이 숨겨 놓은 재물을 다시 탈취하려고. 근데 아각은 자기가 안 죽는다고 확신하고 있어요.

근데 사무엘이 어떻게 합니까? "사무엘이 이르되 네 칼이 여인들에게 자식이 없게 한 것 같이 여인 중 네 어미에게 자식이 없으리라 하고 그가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서 아각을 찍어 쪼개니라" 결국 사울이 하지 않은 해램 명령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것을 보며, 이 사울의 몰락과 사울이 버림받는 내용을 보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해램 명령을 어떻게 이루고 실천해 가야 할지 깨닫고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울을 통해서 우리를 봅니다. 나 자신의 죄성과 완악함과 나 자신의 이중성을 봅니다. 아버지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무시한 사울처럼 살지 않도록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해램 명령을 내리실 때 철저하게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엎드리고 복종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진실로 성령님이 함께하옵시고, 우리에게 기회가 있을 때 영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그 민감함 안에서 믿음 생활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서게 하옵소서.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니다. 아멘.